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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멕시코 마야 문명의 발굴장에서 두 모녀가 15년만에 만난다.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사망한 후, 딸은 불안해지고, 예민해진다. 그리고 어머니께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미국에서 멕시코 오지의 발굴장까지 찾아간다. 하지만 딸은 어머니가 자신을 내칠까 두려워 절대로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고, 어머니는 딸이 자신에게 뭘 요구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하기만 하다. 어머니와 딸 사이에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어머니를 유혹하는 고대 마야의 여사제가 있고, 이 세 여자들은 서로의 속마음을 교묘히 숨기고 차근차근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 과정은 완만하며 큰 사건도 없이 조금씩만 보여줄 뿐이고, 하루하루의 지루한 일상만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발굴장의 끈끈한 공기와 기묘한 긴장감은 고대 마야 여사제의 요구가 무엇인지 알게 된 어머니가 딸을 살리기 위해서 행동하기 시작하면서 극에 달한다. 사건은 터지고 하나의 극점으로 몰고 가고 어느 기타 다른 소설들처럼 어머니와 딸은 서로를 조금이나마나 이해하게 되고 긴장이 해소된다.
제목인 '추락하는 여인'은 물 속에 던져졌지만 다시 물위로 올라와 무녀로 대우받게 된 고대의 여인이겠지만, 결국 모든 여성은 자신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간에 사회적 억압 속에 추락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것을 견디고 이겨내서 비상飛上을 하던지 그대로 추락해서 물에 빠져 죽던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소설은 요즘 유행하는 다른 장르 소설과 달리 아주 밋밋하고 일상적이다. 줄거리는 매우 완만하고 묘사는 섬세하다. 스펙터클한 것에 익숙한 청소년층이 보기에는 밍밍하고 지루하며 따분하기만 할 것이다. 자극적이고 급박한 전개와 유머 등이 난무하는 요즘 환타지 소설들과는 확실히 구분이 된다. 소재가 환상적인 면이 있지만, 국내 출판된 여느 환타지 소설에 비교했을 때 매우 이질적이다. 문체는 차분하며 조용하기만 하다. 방방 떠있는 듯한 문체로 대표되는 국내 환타지 소설과 확실히 다르다.
시공사의 SF,환타지 문고인 그리폰북스 중 이 책만큼은 그리폰북스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이 책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이 책은 절대로 페미니즘 환타지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의 해설자인 송경아씨의 평대로 순문학에 가깝다. 도대체 순문학과 장르문학과의 경계는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이 책은 장르문학의 이름을 달고 출판되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아마도 페미니즘 문학이나 마술적 리얼리즘 문학의 이름을 달고 나왔다면 이렇게 쉽게 잊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목요일 밤. 또 한번의 타버린 저녁 식사를 하고, 나는 마야 달력의 기록을 점검하면서 초막에 앉아 있었다. 그 돌기둥을 들어올리려 시도하다가 돌아온 이 후 나는 감기에 걸렸다. 비록 그날 저녁은 따뜻했지만 이따금씩 나는 심한 한기와 떨림으로 고생을 했다. 나는 마리아에게 따뜻한 차 한주전자를 준비해 달라고 할까 생각했다. 팔팔 끓는 차에 럼주를 타서 마시면 감기가 물러갈 것 같았다. |
| 추락하는 여인은 상당히 오랜 시간을 걸려서 읽을 수 있었다. 이유를 딱히 집어내기가 어려울 듯 싶다. 굳이 생각해 보자면, 우선 초반부터 흥미를 끄는 스토리라기 보다는 너무나 느릿느릿 전개되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게다가 '추락하는 여인'이라는 제목에서 암시하고 있듯, 물리적으로 실제 추락하는 절정 부분이 있을 것을 미리 알기 때문에, 그걸 생각하다 보면 초반에 더 몰입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고고학이라는 생소한 소재를 사용한 점은 소재의 독창성 면에서는 좋지만, 쉽게 책에 빨려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내가 가장 큰 단점으로 느낀 것은 번역의 문제점이다. 번역하는 분이 경험이 적은 분은 아닌 듯 하지만, 읽는 내내 글이 걸렸고, 제대로 이해가 가지 않아서 다시 읽기를 수십 번이었다. 역시 번역서는 번역의 질이 그 작품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제2의 창작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 점에 있어서 추락하는 여인은 실패작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매끄러운 번역이었다면, 이렇게 읽는데 몇 년의 시간이 걸려서 겨우 성공하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된다. 조금만 읽어도 내용 짐작이 다 되고, 뻔한 플롯이라는 점이 단점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공들여 쓴 티가 역력이 나고, 엄청난 마야 문명에 대한 자료 조사가 빛을 발하는 것 같은 소설이다. 읽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일을 해낸 것 같은 기분이다. 아직도 책은 많이 남아 있다. 다른 것들은 적어도 이 책보다는 쉽겠지, 그런 생각 뿐이다. |
| 역자역시 말했지만 한국에서 쟝르문학의 위치는 확고하다. 그것은 바로 '싸구려 대중 문학'이라는 것이다. 최근의 환타지 붐-SF팬의 입장에서 보자면 거의 혁명이다-을 생각해보면 특히나 SF분야는 국내에서 대단히 괄시받고 있다고 생각된다. 시공사의 SF,환상문학 시리즈인 그리폰북스 시리즈로 나온 이 책은, 하지만 순수문학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물론 그 소재자체는 마야시대와 관련되어있는 환타지적인 소재이긴 하지만 절대 가벼운 소재에 진지한 주제가 잡아먹히고 마는 '정말'팔기위한 환타지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이 책의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또하나는 '패미니즘'소설이라는 것인데, 평론이나 리뷰에서 그렇게 떠든다고 절대 믿지말라는 것이다. 이 소설이 페미니즘이면 스티븐 킹 역시 패미니스트 소설가로 불러야 할것이다. 소설의 주무대는 마야유적의 발굴현장이다. 주인공은 고고학자이며 주인공의 딸은 전남편의 부고를 접한다. 둘은 벌써 몇십년째 서로 만난적이 없었다. 딸은 어머니를 찾아 고대의 유적 발굴지로 간다. 그녀들은 서로 어떠한 이유로 상처받아있고 서로에 대해 겁내한다. 주인공은 그 유적지에서 타인은 보지 못하는 마야시대의 사람들은 본다. 그녀의 딸도 그 고대의 그림자들을 보지만 서로에게 그에대해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서로에게 거절당할까 두려운 것이다. 이 소설에 별다섯을 주는 것은 물론 개인적인 취향이다. 하지만 최근 읽은 그 어떤 소설보다 최고임에는 틀림없다고 말하고싶다. 이소설이 '쟝르소설'이란 편견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지 못한다면 정말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사족 :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의 '마야문명'과 같이 읽으면 더욱 재미있더군요 |
| 이혼 후 고고학자로 살아온 어머니와 아버지의 죽음 후 그런 어머니를 찾아온 딸이 익숙하지 못한 상징 속에서 자기들의 자리를 찾아간다. 자기가 발굴해내는 고대를 이미지로나마 직접 접할 수 있는 어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딸 앞에서 어머니로서의 자신을 찾아내질 못 한다. 그리고 그녀 앞에 나타나는 여인의 환영은 점점 더 확실하게 자신의 의사 표현을 해나가면서, 희생물로 딸의 자리매김을 할 것을 말해온다. 신화 속을 보면 부모를 위해 희생물이 되는 자녀의 이야기가 꽤 된다. 구약 속의 이삭이 가장 유명한 희생물 아들이라면, 이피게네이아는 가장 유명한 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둘은 모두 산 제물이 될 것을 요구받고, 부모의 결단에 의해 제단에까지 끌려가지만 결국은 산 제물로 바쳐지는 위기를 벗어나 부모뿐 아니라 자신의 미래까지도 약속받는다. 이 소설에서도, 어머니는 계속되는 여인의 요구에 결국 오석칼을 집어들지만, 딸은 산 제물의 위치를 벗어나 어머니를 구원하고 자신의 위치도 새로 찾아낸다. 신화에서의 산 제물이란 인가의 죄를 대속한다는 의미가 가장 클 것이다. 그렇다면 자식의 결단과 희생 없이는 (부모의 결단과 희생이 중요한 것만큼이나) 부모 자식간의 관계는 그저 관습에 따른 반복 행동밖에 되지 않는 것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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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환타지'라는 장르가 상당히 인기가 높다. 서점에 가봐도 환타지 소설류는 점점 늘어가고, 신문의 책소개에도 환타지 소설이 종종 등장한다.
이 책이 환타지 소설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그래서 선택하는 독자들에게는 약간 실망감을 줄 수가 있는 책이다. 이 책에도 환타지적인 요소들이 등장하지만 그것은 요즈음 활개치는 환타지에 비하면 그렇게 자극적이지 않다. 강하고 자극적이지 않아 이것이 환타지인가 하는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
이 책을 페미니즘 소설로 보기도 하던데, 소설이나 영화에서 여성이 주인공이라고 전부 페미니즘은 아니다. 물론, 이 소설에 나오는 모녀-엘리자베스와 다이안-가 영화 '델마와 루이스'에서 나오는 두 여자 주인공처럼 소위 '일탈'하는 과정을 보여주지 않아 페미니즘이 아닌 것 처럼 보일수도 있겠다.
사실, 요즈음은 무엇이든지 강하고 자극적이어야 통하는 시대이다. 깔끔하고 섬세한것보다 강하고 자극적인게 훨씬 더 받아들여지는 세상이다. 이 소설이 너무 밋밋하여(?) 이것도 저것도 아닌것처럼 느껴지는 것일수도 있겠다.
그러나, 고대문명-이 책에는 마야문명-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보면 고대문명에 대한 시각이 조금더 넓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인상깊은구절] 나는 꿈들과 주휴 카크라는 그 늙은 여인에 대한 기억으로 긴장하고 들떠 있고 당황해하고 있었다. 나는 네 마리의 새가 근처의 숲 속에서 날아오르자 깜짝 놀랐고, 도마뱀이 내가 걷는 길을 가로지르자 놀라서 껑충 건너뛰었다. 주휴 카크와의 만남은 내 스스로가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보다 더 심하게 감정을 흔들어 놓았다. |
| 언젠가 조선일보에서 '올 여름에 꼭 읽어야 할 판타지 소설 10편'을 추천하는 기사를 보다가 그 중에 이 책이 함께 있어 잔뜩 기대하고 책을 주문했었다. 책을 얼마 읽지 않아 내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판타지 소설'과는 꽤 거리가 있는, 그냥 현실적인 소설에 약간의 판타지적 요소가 첨가된 소설이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다. 문제는 이 소설이 판타지 소설이냐 아니냐, 페미니스트 소설이냐 아니냐가 아니었다. 소설 자체가 어쩜 그렇게도 밋밋할 수가 있는지...... 설마, 뭔가 있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끝까지 읽다가 결국 아무 것도 없음을 발견하고 매우 허탈하게 책을 덮어버렸다. 이렇다 할만한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물들간의 내적 외적 갈등이 치밀하게 엮였다가 풀어지는 것도 아니고, 마야문명에 대한 방대한 지식으로 지적인 만족감을 주는 것도 아니고.... 정말 이도저도 아닌 지루한 모녀의 일상이 끝없이 밋밋하게 나열되다 끝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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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지만 또 나같은 피해자가 나오는것을 막기 위해서 이글을씁니다.
"읽지마세요"
예전에 절간에서 너무 심심해서 읽었던 무슨말인지 알아들을수도없는 금강반야심경이 헐씬 재미있더군요. 도도체 누가 이책을 한국에 소개하기로 결심했는지 얼굴이라도 보고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