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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東醫)의 전통을 세우다-조선사람 허준
"동의(東醫)의 전통을 세우다-조선사람 허준" 내용보기
서구의 의학계는 16세기 후반, 17세기 초반에 놀라운 성취를 이루고 있었다. 바실리우스의 인체 구조에 대한 연구와 하비의 피의 혈액순환이론 발표로 사람의 몸을 바라보는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본격적으로 근대 의학의 길을 향해 나아갔던 시기였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 의학적인 성취는 서구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조선 역시 세계 의학적으로, 또 동아시아 의학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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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의학계는 16세기 후반, 17세기 초반에 놀라운 성취를 이루고 있었다. 바실리우스의 인체 구조에 대한 연구와 하비의 피의 혈액순환이론 발표로 사람의 몸을 바라보는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본격적으로 근대 의학의 길을 향해 나아갔던 시기였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 의학적인 성취는 서구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조선 역시 세계 의학적으로, 또 동아시아 의학적으로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었는데, 그 주역은 단연 허준이었다. 그의 역작 ‘동의보감’을 통해 일궈낸 업적은 놀라웠다.

허준은 단순히  병증, 약물, 처방, 침구 등 풍부한 치료법을 정리했지만 그는 치료법에만  관심을 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양생과 수양을 강조하고 있다.

다산 정약용은 동의보감을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기준으로는 동의보감은 중국 의서를 전재해서 정리했기에 새로움이 없는 동의보감을 박하게 본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동의보감은 내용이 아니라, 그 내용을 담은 구성 방식이 획기적이었다고 보고 있다. 그 구성 속에 허준의 철학이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내경-외형-잡병-탕액-침구로 짜여진  ‘동의보감’의 구성 체계를 통해 ‘병’ 보다 ‘몸’을 중심에 놓고 나아가 우주와 자연, 인간, 그리고 몸과 질병에 대한 관련성을 꿰뚫어 제시했고 그럼으로써 새로운 조선의 의철학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거기에 중국 의학과는 차별되는 동의(東醫)의 전통을 확실하게 세웠다는 평가도 받고 있는데, ‘동의보감(東醫寶鑑)’이란 제목부터 의미심장했다. 중국의 남의, 북의 와도 견줄 수 있는 조선의 의학 즉 동의(東醫)의 전통을 분명히 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허준을 높이 평가하고 있지만 일견 소설이나 드라마로 알려진 사실과 다르거나 지나치게 미화된 허준의 모습을 염려하고 있다.

실례로, 유의태는 허준의 스승이 아니고, 양예수와 허준은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다. 그리고 허준은 천첩 소생이 아니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드라마 허준이 방송된 지 10년 넘었지만, 유의태가 허준의 스승이라는 등 드라마적 허구가 대중들에게는 여전히 사실처럼 잘 못 알려진 사례를 언급하고 있다.

이렇듯 ‘조선 사람 허준-상상의 허준 역사 속의 허준’ 은 책의 제목에서부터 드라마 속 허구와 역사적 사실의 간극을 대중들에게 전달하려는 의도가 보였다. 필자는 상업적 이익 때문에, 허준 또는 동의보감에 대한 사실이 왜곡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동의보감이라는 제목을 단 책만 해도 수백여 종이 쏟아져 나오고, 음식이나 한약도 동의보감을 근거로 해서 판매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동의보감의 위력이 21세기에도 여전히 발휘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인데, 그렇게 파급력이 큰 만큼 드라마 속 ‘허준’,‘동의보감’과 사실에 근거한 ‘허준’과 ‘동의보감’에 대한 냉정하고 실제적인 접근 또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e****0 2010.07.31. 신고 공감 4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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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임을 바꾼 혁명가..
"패러다임을 바꾼 혁명가.." 내용보기
신분질서가 확고했던 조선 중기, 서자의 신분으로 죽은 후 정1품의 최고까지 오른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동의보감을 쓴 허준이다. 이러한 입지전적인 모습과 그가 펴낸 동의보감이라는 책 덕분에 우리는 그의 삶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된다. 우선 이책은 말 그대로 허준에 대한 본격적인 평전이다. 지금까지의 허준의 모습이 상상과 허구로 덧칠되었던 것에 반해 이 책은 사료에 입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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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질서가 확고했던 조선 중기, 서자의 신분으로 죽은 후 정1품의 최고까지 오른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동의보감을 쓴 허준이다. 이러한 입지전적인 모습과 그가 펴낸 동의보감이라는 책 덕분에 우리는 그의 삶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된다. 우선 이책은 말 그대로 허준에 대한 본격적인 평전이다. 지금까지의 허준의 모습이 상상과 허구로 덧칠되었던 것에 반해 이 책은 사료에 입각해서 최대한 허준의 삶과 그의 저서들을 복원하려 했다. 이 책에 사상의학으로 유명한 이제마가 한의학 3대 저작 중 하나로 "동의보감"을 꼽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것은 얼핏 같은 나라 사람이니까 그 업적을 과장해서 표현했다고 쉽게 웃어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중국의 전통에서 벗어나, 허준이 확립한 새로운 조선 한의학의 전통에 대한 이제마의 자신감의 발현이라고 보아야 될 것이다. 이 부분은 허준이라는 인물이 동아시아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 의학사에 가지는 위치를 알 수있는첫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한의학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 때 조선은 그 것을 쫓지 않고 허준을 통해 중국과는 다른 자신들의 방향을 잡은 것이다.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작이다. 패러다임이라는 용어가 적절한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패러다임이 가지는 의미가 여기서 충분히 통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나온 것처럼 다양한 발전 가능성 중 중국과 조선은 각기 다른 카드를 선택한 것이다. 그 어느쪽이 딱 옳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갈림길에 허준이 서 있다. 더 크게 보면 서양의학과 한의학 이 두 의학도 이러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어쩌면 의학분야말로 동서양을 비교할 때 가장 구별되고 대조되는 학문이며, 사회결정론을 지지해주는 좋은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똑같은 질병치료와 예방을 위해 태동하였지만 그 둘의 모습은 너무도 대조적이다. 서양에서 매스를 들고 인체를 해부할 때 동양은 침과 약재를 통해 인체의 경락을 탐구했던 것이다.서양의학이 결코 한의학보다 우월해서 지금의 주도적 위치를 차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의학 외부의 정치적 입장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오히려 병의 원인을 치료하는데 있어서는 증상만을 치료하는 서양희학보다 한의학이 더욱 효과적이다.아마도 만약 아시아가 세계의 패권을 잡았다면 한의학 중심의 의학이 더욱 발전했을 것이다. 이렇게 패러다임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동의보감"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책이 그때까지 나온 책들의 짜깁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은 "수박 겉핥기'식의 비판일 뿐이다.허준은 마지막 저서인 "벽역신방"에서 그 자신의 예리한 관찰력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러 고금의 의학서를 그의 말처럼 "술"하지 않고 "찬"한 것은 "동의보감"이 단순한 의료지침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허준이 이 책을 통해 의학을 보는 눈을 새롭게 바꿨다는 사실이다. 이책으로 말미암아 조선한의학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만들어 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제마가 그 조선만의 패러다임으로 평가했을 때 "동의보감"이 한의학3대 저작이라는 이제마의 말은 조금의 과장과 민족적 편견도 들어있지 않은 공정한 평가가 된다. 아마도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의 내용을 담은 "프린키피아"를 통해 현대 물리학의 체계를 세웠듯이 "동의보감" 역시 조선한의학의 체계를 새웠던 것이다.허준이 단순한 의원이 아니라 여러 서책을 두루 읽은 학자라는 점 역시 여기서 중요할 것이다.그가 단순히 병을 고치는 의원이기만했다면 "동의보감"과 같은 저서는 결코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껏 남한과 북한이 동의보감을 공통된 가장 중요한 교재로 사용하고 있음은 아직도 동의의 전통이 지속되고 있고 "동의보감"의 큰 틀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의문인 동시에 가장 늦게 이해할 수 있었던 질문은 조선사람 허준이라는 제목이다. 왜 하필 조선 사람이라는 수식어를 붙였을까? 이것은 아마도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작가의 숨은 주제일 것이다. 나는 책을 다 읽고 난 뒤 한참이 지나서야 비로소 제목의 숨은 뜻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조선의 패러다임, 중국의 북의와 남의의 전통에 뒤지지 않는 동의의 전통을 세운 허준.(세웠다기 보다는 확립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나서,중국과는 다른 조선이라는 사회가 요구하는 것과 필요로 하는것을 허준은 이루어냈다. 그렇기에 저자는 그 앞에 조선사람이라는 수식어를 붙였을 것이다.하지만 이 조선사람이라는 의미가 그저 그가 우리의 선조이기 때문에 가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선조가 허준에게 새로운 의서를 만들라고 명했을 때 그것은 우리나라를 위한 책이 아니었다. 단순히 중국 의서를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게 고치는 작업이 아니었다."동의보감"의 편찬목적은 분명했다. 그것은 동아시아 의학체계 전반에 관한 거대한 프로젝트였다. "향약구급방" 역시 허준 이전에 중국 약재의 조선화를 시도했었다.그 역시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또한 그 의미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허준은 단순히 번역을 한 조선사람이 아니다. 그가 가진 조선 사람이라는 의미는 한차원 더 확장해서 보아야 할 것이다. 영국사람 뉴턴의 "프린키피아"가 영국인만의 위대한 유산이 아니듯이, "동의보감" 역시 한국이라는 좁은 지역만의 유산이 아니다. 허준은 한의학을 새로운 경지로 발전시킨 거대한 발자국을 남긴 인물이다.우리는 한의학의 혁명가로써의 허준을 평가해야하고 그 시대의 입장에 서서 평가해야한다. 허준은 한의학을 조선화시킨 사람이 아니라 조선한의학을 국제화시킨 인물이라고 해야 올바른 평가라 할 수있을 것이다.허준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허준이 처한 시대적 상황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계의 것을 단순히 받아들이고 이해하는데 그쳐서는 안된다. 허준과 같이 주도적인 위치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생성할 수 있는 능력을 이 시대는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드라마에 나온 인간 허준이라는 인물보다 의학자 허준이라는 인물을 더욱 자세히 알아야만 하고, 그 중요성도 더욱 커지는 것이다.
b*****5 2002.05.2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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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의 편찬과 허준에 대한 그릇된 사실과 역사적 진실
"동의보감의 편찬과 허준에 대한 그릇된 사실과 역사적 진실" 내용보기
이책을 쓰게 된 동기.... 저자는 말한다. 이책을 쓰게 된 동기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사회적인 것..... 우리 주변에 소설이나 드라마를 통해 허 준의 그릇된 사실이 진실인 양 떠돌고 있는 그것. 일차적으로 역사 속의 허 준이란 인물은 현대에 들어와서 매우 왜곡되게 말하고 있다... 그것은 허 준이란 인물의 신상은 그다지 알려 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허 준이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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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쓰게 된 동기.... 저자는 말한다. 이책을 쓰게 된 동기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사회적인 것..... 우리 주변에 소설이나 드라마를 통해 허 준의 그릇된 사실이 진실인 양 떠돌고 있는 그것. 일차적으로 역사 속의 허 준이란 인물은 현대에 들어와서 매우 왜곡되게 말하고 있다... 그것은 허 준이란 인물의 신상은 그다지 알려 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허 준이란 역사 속의 인물은 오늘날 일반인 들에게 잘 알려지고, 드라마나 소설을 쓸 만큼 유명세를 탈 것인지 전혀 몰랐을 것이다. 만약 허 준이 미래를 내다보고 알았다면 허 준은 자기에 관해 자서전이나 자기에 관한 자료들을 남겼을지 모른다. 허 준의 업적은 화려하다. 그의 대표적 저서는 동의보감....."중국의 의서의 잘못을 바로잡아 믿을 만한 의서를 만들어라" 의학 이론 처방의 잘못을 바로잡고 올바른 처방만을 가려 내는 것이란 엄청난 의학의 식견을 요구한다. 조선 의학계에 그런 임무를 수행 해낼 만큼 능력을 갖춘 인물이 존재 하고 있었던 것일까? 당대 중국의 의학을 평과, 정리 할만한 의학의 수준을 갖추고 있다고 자신하지 않았다면 이같은 주문은 허문에 불과한 것이었으리라... <동의보감> 프로젝트 팀에는 정말 당대의 최고의 명의가 망라되었다. 병신년(1596)에.... 허 준이 선조의 명을 받고 물러나 유의 정작, 태의 양 예수, 김응탁, 이명원, 정예남 등과 함께 기구를 설치하고 편찬을 시작하여....... 허 준, 정작, 양 예수, 김응탁, 이명원, 정예남, 등 여섯 명이 뽑혔음을 알 수 있다. <동의보감> 프로젝트의 팀장은 허 준... 팀원 중 나이와 경력으로 볼 때 허 준 보다 나은 인물도 섞어 있었지만 허 준이 수장을 맡게 된 이유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프로젝트 팀의 해산... 소강 상태에 빠져 있던 왜란이 이듬해인 정유년(1597)에 재발. 난리가 나자 팀원들은 뿔뿔이 흩어져 단독 임무 수행을 했던 것이다. 뿔뿔이 흩어진 탓에 선조대왕께서 허 준에게 홀로 작업할 것을 명령 반도 채 되지 않아 임금님께서 승하하시고 말았다. 선조의 죽음은 수의 허 준을 공경으로 내몰아 "왕을 죽인 의원" 이라는 문책을 받았다. 귀양 살이 를 하게 된 허 준은 오직 저술에만 시간을 쏟아 부어 1608년부터 1610년 사이에 모두 마무리 지은 것이다. 동의보감은 오늘날 한의학의 발전을 가져 왔음에도 가언이 아니다. 둘째는, 학술적 인 것..... 허 준의 의학적 성취가 어 떠 했으며, 왜 우리가 허 준을 논해야 하는지 대한 진지한 물음과 답이 필요하다. 하고 말한다. 지금까지 허 준은 출생년도는 1546년 또는 1547년 으 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 발견된 『태의원선생안』 이라는 책자에는 허 준의 출생년도가 1537년 족보와는 무려 10년이나 차이가 난다. 최근 몇 해 사리에 새로운 자료가 발굴 되어 허 준의 정확한 출생 년도가 밝혀 졌지만 아주 정확한 허 준의 출생일은 밝혀 지지 않는 것 같다. 이렇듯 허 준의 자료가 너무나도 부족하며, 허 준은 시체를 해부하지 않았다. 동의보감은 만병통치의 근원이 아니다. 유 의태는 허 준의 스승이 아니다. 허 준은 과거에 급제하지 않았다. 허 준과 양 예수는 라이벌 이였다. 허 준은 생전에 정1품 보국숭록대부 작위를 받지 못했다......라고 밝혀진 다음에...... 허 준에 대하여 알고 싶은 사람은 이책을 한번 읽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동의'라는 말의 첫 인상은 문자그대로 중국과의 구별이다. 돌이켜보건데, 애초에 선조가 새의서를 발주한 동기는 '당대 중국 의학 정리'였다. 그리고 선조에게는 그것을 해낼 조선 의학계에 대해 자신감이 있었다. 따라서 조선 의학계의 능력과 성취를 높이 사 는 식으로 그 프로젝트는 결론 지은 것은 당영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l****r 2001.12.1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