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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적 글쓰기, 그 권위주의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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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우 교수의 『비평과 권력』은 엄밀히 말해 문학 비평을 다룬 실제적인 글이라기 보다는 문학비평에 대한 쟁점과 문제점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일종의 문학적 에세이이다. 그동안 우리 평단의 비평적 글쓰기는 배타적이며 독보적인 권위를 향유하여 왔다. 문학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한 일반 독자들은 비평가의 글에 대해 반박하거나 논쟁을 벌이는 것에 대해 감히 엄두도 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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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우 교수의 『비평과 권력』은 엄밀히 말해 문학 비평을 다룬 실제적인 글이라기 보다는 문학비평에 대한 쟁점과 문제점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일종의 문학적 에세이이다. 그동안 우리 평단의 비평적 글쓰기는 배타적이며 독보적인 권위를 향유하여 왔다. 문학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한 일반 독자들은 비평가의 글에 대해 반박하거나 논쟁을 벌이는 것에 대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평단의 문제점을 문학평론가인 권성우 교수가 지적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첫째,우선 문학 섹트주의와 에콜에 대한 비판은 시의적절하다고 본다. 문학과지성사나 창작과비평사의 경우, 자사 출판의 책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이었다. 이는 출판사의 상업주의 전략과 무관하지 않을 텐데, 예를 들면 장경렬의 『미로에서 길찾기』(문학과지성사)와 『꿈의 페달을 밟고서』(창작과비평사)에 대한 각 출판사의 태도가 바로 그것이다. 문학비평이 작가와 독자 사이에 진정한 비판과 안내자 역할을 수행하는 행위라고 한다면 문학비평가는 편견과 교만을 넘어 냉철한 균형감각과 비판적 시각으로써 작품을 분석해야만 한다. 둘째, 비평적 글쓰기에 대한 열린 마음과 자세이다. 그동안 누가 문학비평에 대해 얘기하면 그 사람의 자격부터 시비를 걸었다. 감히 평론가도 아닌 주제에 문학에 대해 뭘 안다고, 이런 생각들은 무의식 중에 비평가 스스로가 '문학적 권위주의'의 포로가 되었음을 시사해주고 있다. 하지만 권성우 교수는 강준만 교수에 대해 '문학비평가'라고 지칭하고 있듯이, 문학에 대해 열린 마음과 자세로써 그 누구와도 얘기할 수 있는 자유로운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비평과 권력』의 특징은 이런 문학적 담론에 대한 '개방성'이다. 앞으로 우리 비평이 더욱 풍부해지고 발전하려면 비평계에 잔재하고 있는 이런 권위주의적 사고를 발본색원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창작과 비평에 참여하는 자들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비판과 성찰의 자세를 보일 때가 왔다. 문학에 대한 정파와 학연을 넘어 잘못된 점을 겸허히 인정하고(권 교수가 김탁환의 비평적 궤적에 대한 비판의 잚못된 논거를 시인하듯이)자신과 타자에 대해 냉철한 비평적 균형감각을 보일 때 우리 평단의 미래는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될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나는 이 시대의 비평환경에는, 문학적 질에 대한 '비판'과 '평가'를 냉철하게 수행하지 않는, 텍스트 분석 위주의 수사학적 비평가들을 그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특정한 문학적 에콜의 들러리로 전락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텍스트 분석이 비평에서 대단히 중요한 과정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비평가는 없을 것이다.
p****t 2001.09.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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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우, 칼날과 눈물의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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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원고지 안에 갇혀 있지 않다. 원고지를 둘러싼 손들에는 힘이 느껴진다. 권력이다. 전에 강준만과 권성우의 과 이명원의 을 읽었고, 문학권력 논쟁을 여러 매체를 통해서 조금씩이나마, 어슬프게나마 접했던 나로서는 권성우의 이 비평집을 읽는 것은 조금은 지루한 일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논쟁적인 성격의 담론이 제공해주는 그 뜨거운 감자의 맛은, 감자의 새롭지 못한 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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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원고지 안에 갇혀 있지 않다. 원고지를 둘러싼 손들에는 힘이 느껴진다. 권력이다. 전에 강준만과 권성우의 <문학권력>과 이명원의 <해독>을 읽었고, 문학권력 논쟁을 여러 매체를 통해서 조금씩이나마, 어슬프게나마 접했던 나로서는 권성우의 이 비평집을 읽는 것은 조금은 지루한 일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논쟁적인 성격의 담론이 제공해주는 그 뜨거운 감자의 맛은, 감자의 새롭지 못한 지루한 모양새를 어느 정도 극복하게 한다. 여전히 감자는 뜨겁다. 문예지나 계간지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생생한 현장은 아니고 지나간 싸움터의 흔적이라지만 여전히 불이 타올랐었던 그 뜨거움이 살아있는 재로서 남아있는 듯 하다. <인물과 사상>을 통해 내게 비판적 세계인식의 결정적 뿌리를 심어주었던 강준만과 <비평의 매혹>을 통해 내게 잔잔한 비평문학의 음성과 자기 성찰과 고백을 알려주던 권성우. 이 둘이 다시 만나는 광경을 다시 한 번 엿볼 수 있는 비평집이기도 하다. 강준만의 비판적 글쓰기에 대한 권성우의 비판적 글쓰기가 그것이다. 강준만이 폭넓고 끝없는 지식인 비판을 행하고 있는 것과 권성우가 메타 비평을 중요시하고 있는 모습은 서로 닮아있다. 그리고 그들의 문제 의식과 자기 성찰, 성실함도 그렇다. <비평의 매혹>이란 깃발을 들었던 권성우가 논쟁의 전장 속에서도 여전히 솔직하게 내면 풍경을 드러내면서 자신의 ''멜랑콜리와 낭만''을 이야기했을 때, 치열한 문학권력 논쟁을 치러내면서 얻은 상처와 반성적 성취 등을 다룬 대목과 어우러져 독자에게로의 (긍정적 의미에서의) 감정적 호소가 성공한다. 뛰어난 문학비평가는 무사의 날카로운 칼날과 눈물 많은 서정시인의 감수성을 동시에 지닐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아래와 같은 지적은 독자들에게, 좁게는 당대의 비평가들에게, 얼마나 예리한 칼날이 될 것인가.

[인상깊은구절]
나는 이 시대의 비평 환경에는, 문학적 질에 대한 ''비판''과 ''평가''를 냉철하게 수행하지 않는, 텍스트 분석 위주의 수사학적 비평가들을 그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특정한 문학적 에콜의 들러리로 전락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텍스트 분석이 비평에서 대단히 중요한 과정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비평가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뛰어난 텍스트 분석비평이 한국비평의 풍요에 결정적인 보탬이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러나 그와 별도로 지금과 같이 섹트주의가 만연하고 있는 정황에서는, 공허한 텍스트 분석 비평보다는 차라리 별의 수로 작품의 질을 판별하는 영화저널의 비평방법이, 그 명백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질에 대한 솔직하고 냉엄한 평가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아닐가? 별의 숫자를 냉철하게 관리하는 것 자체가 비평가의 ''비평적 생존''과 직결되기에(물론 이러한 바램은 쉽게 구체화될 수 없을 것이다. 텍스트 분석이라는 미명 하에 너무나 주관적인 비평들이 난무하는 비평적 현실에서 나온 ''농담 아닌 농담''으로 받아들여주길 바란다).
n****w 2003.07.1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