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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난 친구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았다. 외딴 집에 사는 지리적 특성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워낙 소심하고 부끄럼이 많아서 친구집에 놀러갈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우연찮게 친구를 만날까 기대하며 친구집 근처를 자주 오가곤 했다. 그러나 가끔 동네 형이나 친구를 만나게 되어 그들이 나를 부르면 마지 못해 같이 합세하곤 했다. 그러다 동네형의 제안에 따라 우연찮게 교회란 곳을 가게되었다.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초등학교 3, 4학년까지는 교회를 다녔던 거 같다. 일요일에 거의 빠지지 않았고, 여름성경학교도 잘 나갔다. 여름성경학교 땐 심지어 새벽예배도 참석했다. 그때 성경을 접하게 되었고, 어설프게 성경을 공부했던 거 같다. 돈이 없어서 성경책을 사 읽어보지는 못했다. 성경책이 없어 교회갈 때 참 창피했었다. 그때 아브라함, 모세, 요나, 이사야, 엘리야 같은 사람들의 이름과 창세기, 출애굽기, 사무엘상(하), 사사기 등의 구약 성경도 경험하게 되었다.
성경의 신약은 어느정도 저자가 분명하게 등장하지만, 구약은 저자가 불분명한 거 같다. 아마도 오래전부터 구전되는 유대인 역사를 누군가 한참 지나서 정리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민족들의 신화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당시의 사람들 인식과 지식 문화 사상을 감안해 읽어야 학술적 가치를 파악할 수 있으며, 만약 종교적 신념으로 읽어야 한다면 일반인과 인식하는 수준과 방식은 상당히 다를 것이다.
내가 성서 이야기를 선택한 이유는 연이어 이어온 과학서적의 경험에서 뭔가 반작용이 발생한 것이 아닌가 싶다. 뭔가 종교적 사유를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단편적이고 체계적이지 않은 나의 성경에 대한 이해를 이 책을 통하여 정리해보고 싶었다. 분량이 5권이나 되기 때문에 구약과 신약을 폭넓게 다룰 것으로 기대했다.
먼저 구약 상권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요셉을 낳고 등등으로 시작하는 첫장에서 옛이야기를 경험하듯 구약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사마천의 사기열전과 비슷한 느낌으로 유대인에게서 중요한 신화적 인물들이 열전으로 이어진다. 요셉이란 인물은 우리가 엑소더스라고 부르는 출애굽기의 모세로 이어지고, 여호수아를 거쳐 이룩된 이스라엘 연합체는 다윗을 통하여 본격적 왕국으로 발돋움하며, 지혜의 왕 솔로몬에서 왕국의 정점을 맞은 이후로 쇠락해 멸망하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그 과정에서 몇 명의 유명한 예언자(혹은 선지자) 등이 등장한다. 창세기의 천지창조와 아담과 이브를 어떻게 소개할까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량을 배정하지는 않은 거 같다. 더구나 배치도 아브라함과 모세에 이어서 붙인 것으로 볼 때 저자가 일반독자들의 반감을 의식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창세기의 천지창조는 일반시민에게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내용이다. 그 부분에 그 유명한 노아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구약 상권의 핵심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의 방탕과 은혜의 연속기록인 듯 하다. 이스라엘 민족은 금방 타락해 우상을 숭배하고, 타락해 가면 하나님은 응징하고 또 가엽게 여겨 용서하면 어느새 금방 또 타락해 결국 다시 응징받는 얘기가 이어진다. 노아의 대홍수, 모세와 광야의 방황, 소돔과 고모라, 삼손 이야기 그리고 솔로몬 조차도 타락과 징벌의 상황을 피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권의 내용은 이스라엘의 멸망 후의 역사적 인물들로 시작한다. 멸망 후의 인물들에게서 다시 발돋움해 가는 이스라엘의 과정을 역사적 인물로 설명하고 있는 듯 하다. 페르시아 지배하에서의 중요인물과 이스라엘의 재도약 과정을 정리해 나간다. 마카베오란 인물은 우리가 흔히 아는 개신교 성경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여기저기 찾아보니 이스라엘 역사에서 아주 중요했던 실존인물로 보인다. 그래서 카톨릭의 구약성경에서는 중하게 다루는 부분인 듯 하다. 그래서 개신교회를 다녔던 내게는 낯선인물이었다. 페르시아에서 이스라엘이 독립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며, 그 과정에서의 성경적 관점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내용들이 있는 듯 하다.
다음에 이어지는 시편은 말그대로 찬양시에 해당하는 것 같다. 주요 저자는 다윗. 다위 이외에 무명인들의 종교시가 구성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흔히들 종교신화에서 볼 수 있는 서사시, 종교행사에 쓰이는 찬양시 등에 해당되는 오랜 역사속의 구전 또는 기록전승되는 작품을 이스라엘 민족이 정리한 것이 맞을 듯 싶다. 다음에 이어지는 지혜의 5서가 이어진다. 욥기, 잠언, 집회서, 지혜서 아가가 그러하다. 집회서와 지혜서는 개신교 성경에는 빠져있다 한다.
하권의 마무리는 예언서이다. 예수의 탄생과 삶을 준비하는 예언가들의 예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사야, 미가, 예레미야 등은 개신교에도 잘 알려진 예언자이며, 바룩이라는 낯선 예언자도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에스겔, 그 유명한 다니엘도 등장한다. 이러한 예언서의 역사적 등장의 상황을 보면 이스라엘이 멸망해 핍박받는 상황에서 마카베오가 등장해 투쟁을 통해 이스라엘이 잠시 독립하는 시점 전에 집중되는 것을 알 수있다. 다양한 예언자의 등장과 이스라엘 민족의 상황이 무관하지 않은 듯한 생각을 했다.
저자의 구약에 대한 서술이 너무 관념적 종교론, 맹신적 추종 등에 치우치지 않아서 좋았다. 일부 맹목적 기독교주의자들은 경계해야 한다. 물론 신앙적 추종과 신념 믿음을 배제하고 일반인의 상식적 판단으로 종교와 성경을 재단하지는 말아야 하지만, 나 같은 무신론적 일반인에게는 근본주의나 맹목적 추종은 거부감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종교를 선교하는 극렬주의자들이 실패하는 이유인데, 그들은 그것을 모른다. 자기중심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난 저자의 서술태도가 근본주의적이고, 맹목적인 종교주의에 치우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작품의 내용과 성경의 언급 그리고 이스라엘 역사-물론 신앙적 중심의 역사-를 흥미롭게 경험할 수 있었다. 자신의 종교를 중심에 놓되 최대한 객관적이고 역사적 사실들의 근거를 가져와 성경을 설명하려 노력했던 부분이 작품을 이해하고 성경을 이해하며 좀더 평이하게 다가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듯 하다. 일본인의 기독교관이 우리나라 기독교관과 다르기 때문일까
신약편은 역시나 예수탄생 및 복음전파 과정을 4복음서로 시작한다. 다시 말하면, 요한, 마태, 마가, 누가복음을 중심으로 상권이 구성되어 있다. 4복음서는 너무나 많이 알려져 있고, 더구나 예수를 종교지도자 혹은 구원자, 메시아 등으로 일반 대중에게 알려져 있어 접근하기 어렵지 않은 내용 흔히들 아는 내용으로 구성한다. 예수탄생에 대한 내용을 시작으로 세례 요한에게 세례 후 예수와 세례 요한은 인척관계인 듯-본격적인 복음전파 일화들이 굴직한 내용으로 복음서 기준으로 설명되고 있다. 주요 제자들을 만나게 되는 과정과 그들과의 일화 등이 소개된다. 복음과정에서의 기적(?)들도 세부적으로 나열되어 있다. 사마리아 여인의 일화는 일반 대중에게도 너무도 알려져 있다. 더불어 문둥병자 치료 일화도 소개되고 있다. 저자는 예수의 삶을 총 6기로 구분해 설명하는 듯 한데 이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인지는 모르겠다. - 그 중 상편에 1기와 2기를 소개하고 있다. 1기는 12명의 제자-사도라고 한다-를 얻어 본격적인 복음전파 과정의 시작기를 얘기하는 거 같다. 제2기는 복음전파의 내재화기라고 할 수 있을까? 그 유명한 산상수훈의 일화가 여기서 세부적으로 극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막달라의 잔치일화도 제법 알려진 내용이다. 저자의 저술 능력은 다양한 성경의 구절을 신약과 구약을 아우르며 적절한 설명과 상황에 맞게 인용하여 전달하고 있다는 것으로 보이는데, 성경의 말씀에는 앞으로의 일을 예언하는 구절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며, 그 구절들을 예수생존당시의 상황과 사건들에 그대로 연결하여 설명하는 것이 아주 효과적인 성경의 설명이며, 나름의 합리성을 구축하는 방식이라고 생각된다.
신약 중편은 3기와 4기의 사건과 흐름을 다루고 있다. 아마도 예수가 열두 제자를 만나 선교활동의 최정점을 찍고 서서히 비극적인 결말을 은근하게 준비하는 느낌을 받았다. 과거를 이미 알고 있는 우리나 저자로서는 예수의 희생을-희생이라는 게 너무 평이한 단어일지도 모르겠으나 난 기독교인이 아니므로 다른 적정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서서히 말씀과 예언 그리고 예수의 행적을 통하여 준비하듯 설명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일 것이다. 세례 요한은 헤롯왕은 살로메의 요구를 받아들여 세례요한을 죽이는 데 그 이야기가 간략히 언급되어 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율법학자에게 가르침으로 주는 내용도 등장한다. 예수가 방문하는 장소나 인물들을 공공연하게 마지막으로 언급하는 서술이 자주 눈에 띄기 시작한다. 결국 4복음서의 마무리를 서서히 준비해 가고 있는 것이다. 성경학교나 또는 각종 성경공부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나사로의 부활에 대한 일화도 이맘때의 사건인 듯 소개된다. “나사로야 나오라” 저자는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중요하고 심오하게 다루고 있다. ‘되살려낸 자가 지금부터 죽음으로 향하려 한다면, 그의 죽음은 이미 그 자신에게 지배된 죽음인 것이다. 죽음을 꺽어 이긴 자가 죽음을 통과하려 한다면 그것은 죽음을 최종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일본어 번역은 쉬운 번역에 속한다고 생각하는데, 좀 어렵게 번역한 거 같다.)
마지막 신약 하편은 5기인 예수의 죽음과 6기인 예수의 부활을 다루고, 신약 성경에서 어찌보면 여타의 사도보다 더욱 높게 평가받는 사도 바울이 주인공인 사도행전과 바울을 포함한 교회구성원의 서신들 그리고 예수의 죽음을 끝까지 지켜봤던 유일한 제자인 요한이 쓴 것으로 알려진 요한계시록을 아주 간략하게 소개한다. 요한은 순교하지 않고 천수를 누린 유일한 제자인 듯 하다. 물론 우리로 치면 유배식으로 섬에 갇힌 시기도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예수의 등장과 선교는 서기 28년부터 30년까지 단 3년간 진행되었다는 것이 역사적인 사실인 듯 하며, 서기 30년 선교활동이 이어지며 서서히 예수는 본인의 죽음을 예견하고, 제자들에게 은연 중에 그런 상황을 간접적으로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예수가 선교 과정 중 보이는 여러 기적과 가르침에 제자들은 예수의 죽음을 막상 예상하지는 못했을 거 같다. 최후의 만찬, 유다의 배신과 베드로의 예수부정 등 너무나 잘 알려진 사건들이 5기의 주요내용이긴 하나, 난 저자가 예수의 죽음에 도달하는 과정에 대한 묘사가 왠지 모르게 가슴에 남는다. 그렇게 예수가 죽음에 이르고 3일 후 부활하는 사건을 다루며 성서이야기 신약편의 구성이 정점을 찍게 된다. 사도 바울은 이력이 독특한 사람이다. 로마 시민권자이며 유대인을 박해했던 인물에서 기독교에서 너무도 귀하고 중요한 인물이 되어 순교까지 하게된 것이다. 4복음서에 미치지 못하나 사도행전이나 로마서 등 바울이 등장하는 말씀은 기독교에서 아주 중하게 다뤄지는 듯 하다. 마무리는 요한계시록이다. 죽음을 얼마 남기지 않은 사도 요한이 기록한 성경의 마지막 장이다. 로마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기독교 박해에 따라 파트모스 섬에 갇힌 고통스런 상황에서 써내려간 예언서이다. 책에서 잠시 밝히기도 했지만, 요한이 계시록을 써내려간 시기는 본격적인 로마황제의 기독교 박해 시기인 듯 하다. 당시 교회와 기독교의 상황 그리고 예수의 죽음을 실제로 경험한 노년의 그로써는 어쩌면 예언서의 기록은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요한계시록의 파악에 있어 중요한 자세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요한은 파악하고 이해한 사상을 그의 소양, 자란 환경이 익숙해 있는 역사와 전통, 풍습 등 모든 개인적, 민족적 과거의 체험이 오랜 세월에 걸쳐 그의 내부에 자라게 하고 계승하게 했던 심벌리즘의 두루마리 그림으로 기술했던 것이다.”
이렇게 성서이야기 5권에 대한 느낌과 정리를 마무리한다. 제법 오랫동안 읽었던 책이다. 생각보다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나는 성서를 믿음의 책이라고 생각한다. 구약은 유대의 역사에 대한 기록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구전되던 내용을 오랫동안 기록하고 다듬어 유대인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기록한 것이다. 신약은 예수의 가르침과 선교를 핵심으로 두고 그에 가지친 주요 사도들의 행적과 기록이다. 나는 예수의 행적에서 보여지는 여러 가지 기적들을 믿지는 않는다. 아마도 예수 사후 사도들에 의하여 기록되면서 상징성을 띠면서 그런 내용으로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믿음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신약이 어렵다고 생각된다. 구약정리편보다 신약 정리편을 읽는데 많은 시간이 들고 덜 집중됐던 것도 결국 믿음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나는 기독교의 믿음의 과정도 수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말로만 믿는다고 해서 도달할 수 있는 믿음이 아닌 것이다.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그들이 과연 성경이 상징하는 진정한 믿음에 도달했을까? 나는 회의적이다.
“신약 성서는 지적 만족이나 지성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극히 단순한 마음의 책이다. 마음을 보다 위대한 것으로 향해 열기 위한 책이다. 이웃과 타인을 향해 자기를 드러내고 자신을 열기 위한 책이다. 그것은 우리와 함께 자라나야 할 책이다. 단숨에 읽어야 할 책이 아니라 날마다 읽으면서 생각하고 애쓰면서 살아가기 위한 책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초월한 기쁨을 위한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