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본질은 경험이라고 한다. 이렇게 가정해보자. 개인마다 전 생애의 행복 총량을 측정할 수 있다고 치자. 한 사람은 젊은 시절 일확천금의 기회를 얻어 일찍부터 호의호식하며 평생을 살았다. 다른 한 사람은 부와 권력을 누리진 못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정기적으로 만나고 가끔은 평소에 마음에 담아두었던 곳으로 여행을 하며, 자주는 아니지만 때때로 고급 식당에 가서 최고로 맛 좋은 음식을 먹는다.

행복이 주가의 그래프처럼 고점과 저점이 있다면, 첫 번째 사람은 그래프의 가장 높은 꼭짓점에 도달했으므로 그 순간에는 최고 수준의 행복을 맛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행복의 효용은 감소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이상의 자극을 지속적으로 경험하지 않으면 그래프는 점차 하향하는 곡선을 그리게 된다. 젊은 시절 큰 성공을 일찍 이뤄낸 인물이 인생 전체로 보면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 모습을 종종 보게 되는 이유다.

두 번째 사람은 행복의 그래프가 아주 높이까지 솟아오르지는 않지만, 행복을 불러일으키는 경험을 반복적으로 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행복의 곡선이 파도처럼 출렁이게 된다. 100점짜리 성공을 맛보지는 못하지만 70점짜리 행복은 주기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평생으로 환산해서 총량을 구해보면 70점짜리 행복감을 꾸준히 경험한 두 번째 사람이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다.

행복은 일확천금과 같은 한순간의 드라마틱 한 사건이나 이벤트보다는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것을 먹고 가끔은 괜찮은 장소로 여행을 떠나야 도달할 수 있는 곳이다.

행복을 느끼는 경험은 인간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도록 진화되어 왔다. 대표적으로 행복감을 가져다주는 요소는 먹는 것, 이성과 함께하는 것, 경쟁에서 이기는 것 등이다. 인간이 초콜릿을 먹을 때는 왜 독버섯을 먹을 때와 다르게 느낄까? 멋진 이성과 있을 때는 왜 가슴이 두근거리고 관계를 맺고 싶을까. 다른 사람보다 뭔가 잘하게 되면 왜 기분이 좋을까. 이는 모두 한곳으로 향하는데, 그런 행위는 생존과 번식을 더 잘할 수 있는 행동이고, 유전자 관점에서는 이 행위에 행복감이라는 좋은 먹이를 줘서 열심히 하도록 장려하는 것이다.

인간의 거의 모든 행복감을 느끼는 경험은 이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쪽과 연결되어 있다. 원시시대 영양분이 부족했을 때는 단 것을 먹어 비축해 두어야 생존에 유리하고, 이성과 만나고 관계 맺을 기회가 많을수록 번식에 유리하다. 다른 사람보다 경쟁에서 우위에 있다면, 생존과 번식에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지금 내가 의식적으로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도록 행동한다는 것이 아니라,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형질을 가지고 있는 종이 끝까지 살아남아 우리의 조상이 되었고, 우리는 그 행동에 행복감을 느끼도록 진화했다는 말이다.

인간은 어느 순간부터 전두엽이 발달하면서, 생에 대한 의지를 넘어서 '이성'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타인을 공감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때로는 자신을 희생하고 더 많은 사람의 이득을 위해 행동하기도 한다. 유전자의 관점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다. 물론, 유전자의 생존과 번식을 위한 행동에 행복감이라는 먹이를 주었지만, 거울신경계의 발달로 다른 사람의 감정과 고통을 공감하게 되면서, 타인의 생에 대한 의지마저도 자신의 행복과 연결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제까지 인간은 행복을 인생의 목표라고 여겼다. 열심히 일하고, 사랑하고, 경쟁하고, 타인을 돕고, 심지어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도 더 큰 행복에 도달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만약 행복을 느끼는 어떤 뇌 부위가 있어 그 부분이 자극될 때 행복감을 느낀다고 치자. 새로 개발된 신약을 통해서 간단히 뇌의 행복 영역을 자극하여 행복감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면, 그건 행복일까? 아니면 우리가 의식적인 행동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짜 행복이라고 불러야 할까?

우리가 행복을 느끼기 위해 행한 일련의 행동들도 사실은 행복감이라는 먹이를 맛보기 위한 의도적인 행위였다면, 한 알의 알약을 통해 동일한 행복감을 느끼는 것도 윤리적,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밀한 약이 개발되어 육체를 망가뜨리거나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부작용을 없앤다면 일종의 약물을 통한 행복감을 경험하는 행위는 적극적으로 권장할 만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운동을 열심히 해서 뇌의 특정 부위를 자극해서 얻는 행복과 약물을 통해 직접 얻는 행복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책에 의하면, 인간이 유전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도록 설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가 도무지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바로 미래를 위해 현재를 지나치게 희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진화적으로 모든 생물은 현재의 관점에서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도록 행동한다. 돌이 날아오면 피하고, 남성은 더 많은 이성과 잠자리를 갖기 원하고, 배가 고프면 먹는 행위가 그렇다. 일종의 단기적인 반응으로 나타나는 행동들이다. 그러나 인간은 전두엽의 발달로 상상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고 보다 먼 미래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전두엽이 덜 발달한 아이들은 미래를 예측하거나 준비하는데 서툴다. 부모는 아이의 미래를 생각해서 훈육하고, 아이는 현재의 욕망에 보다 더 반응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미래 예측의 정확도가 높다면, 현재를 희생해서 미래를 대비하는 것은 일면 합리적으로 보인다. 문제는 인간은 대부분 미래를 예측하는 데 뛰어나지 않다는 거다. 과거를 기억하는 게 군데군데 구멍 뚫린 그림을 채워 넣는 것이라면,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그냥 커다란 구멍 그 자체라는 것이다. 우리의 상상력은 현재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현재의 상황이 미래의 예측에 과도하게 반영된다. 그래서 실제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백 년 전에 사람들은 미래를 상상할 때 하늘을 나는 자동차나 무선 통신은 그렸을 수 있으나, 여성의 권리 신장이나 스마트폰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아예 미래를 대비하지 않는다면 거지꼴을 못 면할 수도 있지만, 마찬가지로 미래를 상상하고 준비하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도 좋지 않다는 거다. 미래를 조금만 생각하는 게 가장 좋은 대안이겠지만, 실제로 우리가 미래를 그려보지 않으려 해도 마치 심장이 뛰듯 미래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는 없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코끼리가 더욱 생각나듯이, '미래는 중요하지 않아, 현재에 집중해!'라고 마음먹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아무 생각 없이 무위의 경지에 이르는 명상은 고난도의 정신 수양인 것이다.

그럼 어쩔 수 없이 미래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면 정확도를 최대한 높이는 방법이 있을까? 이 책에서는 우리가 '내일'을 어떻게 느낄지 정확하게 예측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오늘'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보면 된다고 한다. 타인이 회상하는 과거의 기억, 즉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방식은 해답이 아니다. 자신의 과거도 미래와 유사하게 오염되어 있으므로 미래에 근접하기 위해서는 타인이 현재, 바로 지금 느끼는 감정을 봐야 한다. 그러나 타인을 대리인으로 사용하기에 인간은 너무나도 자신을 독특한 존재로 여기기 때문에 그것마저 쉽지 않다고 한다. 상상하는 능력을 통해 지구의 알파 동물로 자리했지만, 결국 그로 인해 미래에 행복을 저당 잡혀 오늘을 불행하게 사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고나 할까.

최인철님의 굿라이프와 서은국님의 행복의 기원을 재미있고 유익하게 읽어서,

유사한 책을 찾다가 발견한 책입니다.

마침 최인철, 서은국님이 번역도 하셨네요.

책의 초반부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흥미로운 얘기들이 나오는데,

가면 갈수록 너무 어려워서 읽기 힘들었습니다.

굿라이프와 행복의 기원은 실용적이고 와닿는 부분이 많았는데

이 책은 과학적인 근거 설명에 치중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