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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박완서 선생님의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읽다가, 선생님이 소설가로서 이청준 선생의 『별을 보여드립니다』에 영향을 받고 높이 평가하셨다. 그래서 궁금했다. 수많은 소설가를 모두 설렵하려하지만 아지ᅟᅵᆨ 내게 의욕만 앞세울 뿐이다. 박완서 선생의 추천은 충분히 이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편소설집에 10편의 소설이 실려있다. 그 중에 내 심중을 끌어 잡아 당긴 소설은 〈별을 보여드립니다〉도 대단하지만 〈얼굴 없는 방문객〉이 마음에 진한 향기를 남겼다. 사람마다 취향과 성격이 다르듯이 초보 소설가에겐 이청준 선생의 소설의 백미가 아닐는지. 최근 소설집 또는 작품집을 만낙 어려웠는데 짧지만 행복한 시간이었다. 특히 소설집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커다란 울림과 뱡향성을 제시해준 작품이라 생각한다. 소설가가 다른 소설가의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에선 분명 번쩍임이 뇌리를 스친다.
〈별을 보여드립니다_1969〉 망원경 장례식을 차루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영국 천체문리학을 공부하던 그의 도벽과 거짓말을 중첩해서 하늘을 물속에 수장하는 이론적 접근이 신선하다. 특히 태어난 해 쓰셨다니 내겐 아주 특별하다. 〈행복원의 예수_1967〉 고아원에서의 퇴출 기억. 군대 흰침대의 유혹을 완성하기 위한 꼼수. ‘예수님이 용서해도 내가 못한다.’는 최노인의 용서라는 유언이 짠하다. 두 가지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의 알사탕 내기가 반짝인다. 〈마스코트_1969〉 전쟁 중의 콘솔 중위. 언제나 죽음이 상주한 기간에 추락한 전투기 조정사의 권총 개마리판에 여인의 미소가 비극이다. 그런데 그 비극 안에 또 다른 세상을 비춘다. 빛과 어둠의 대비 같다. 〈그 가을의 내력_1973〉 석구와 금옥이. 누렁이와 베스. 사람과 동물의 갈등을 조화롭게 대비를 통한 스토리가 인상적이다. 〈구두 뒷굽_1975〉 구두 굽을 갈아주는 사람과 쫒기고 쫒기는 묘한 신경전의 심리묘사가 그만이다. 익숙한 것에 위로받는 범인과 직업적 관심에 집업병이 묘하게 교차한다. 〈꽃동네 합창_1976〉 동요 작가 이수권 선생의 비오는 날의 일상? 〈얼굴 없는 방문객_1978〉 서예가 손정현의 교통사고로 제2의 인생 시작, 소설가 P씨와 이야기 서사를 바꿈으로 인한 예정된 죽음. 불가사이를 빙자한 진정한 단편소설의 묘미를 잘 표현한 작품이다. 〈현장시정_1972〉 대학생 시절 원주천에 막걸리를 박스로 쌓아 놓고 밤새 술 먹던 기억이 소환되어 재미있게 읽었다. 회사 야유회에서 돌아가며 노래 부르는 그 긴장과 마음 콩닥이는 기분이 전해졌다. 〈대흥부동산공사_1973〉 교장으로 정년퇴임한 부친의 소일거리를 아들 입장에서 풀어낸, 미래의 우리들 이야기다. 〈별을 기르는 아이_1976〉 이미 사고로 장례를 치른 누이를 찾아나선 진용을 도우며 생긴 일화들이다. 누군가를 계속 그리워하며 찾아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별을보여드립니다 #이청준 #중단편소설 #열림원 #문학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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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논문으로 이청준이라는 작가를 정하기 전까지, 이청준에 대한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굳이 있다고 한다면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왔던 「선학동 나그네」가 우선 떠오르고 그 뒤로 「축제」 정도가 떠오를까. 가장 좋았던 작품은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게 빌려 읽었던 「눈길」. 읽는 동안 소설 속에 푹 빠져들어 훗날 PD가 된다면 이 작품을 드라마로 꼭 꾸며보겠다고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내게 이청준은 그 정도의 작가였다. 하지만 그가 내 논문에 등장하면서, 나는 그의 초기 작품부터 줄창 읽어나갔는데, 이 책이 바로 그 첫 번째다. 이름하여 『별을 보여드립니다』.
이 『별을 보여드립니다』에는 그의 등단작으로 널리 연구된 「퇴원」부터 시작하여 내가 가장 재밌게 읽었던 「등산기」까지 그의 초기작들이 모아져있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든 글을 쓰는 사람이든 첫 작품이 죽을 때까지 따라다닌다고 볼 때, 그는 참 운이 좋은 편이다. 초기에 이렇게 좋은 글들을 쏟아냈으니.
이청준은 어느 대담에선가 자신은 항상 자신이 도달한 것의 마지막을 썼다, 고 말했다. 그 말이 얼마나 섬뜩하면서 무서운 말인지, 글을 써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자신을 늘 극한까지 밀어붙였다는, 더 이상 쓸 수 없을 때까지 썼다는 그 말. 그 말은 일견 오만이고 일견 자신감이지만 한편으로는 초조함이기도 하다. 끝이 다가오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쓸 수 밖에 없는.
감각적이고 빠른 문체, 혹은 난데없이 등장하는 섹스신에 질려버렸다면 이청준의 초기 작품집을 한 번 들여다보는 것은 어떨까. 그의 초기 소설에는 배부르고 감정의 사치가 아닌,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이 담겨 있다. [인상깊은구절] - 너 전화 교환수라는 거 생각해본 일 있어? 영훈이 문득 그에게 묻는다. - 교환수? - 그래. 그 여자들은 언제나 남의 대화를 이어주면서 거기서 겨우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있을 것이거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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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시선이라는 것은 얼마나 영악하고 유연하고 잔인하고 따스한 것일까. 글을 읽으면서 그러한 의문이 들었다. How many~ 로 시작하는 단순한 숫자매김이 아니라 그 양과 깊이에 따른 다양한 견해들이 불쑥 불쑥 솟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소설이라는 것이 이만큼이나 풍부하게 한 사람의 내면을 두드린다면 그것만으로도 작품으로서는 충분하다고 본다.
소설 ‘별을 보여드립니다’는 시대적 상황에 근거한 수 많은 아픔과 외로움을 담고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고뇌와 아픔
을 그 시절의 낭만과 순수로 미화시켜, 더욱 처절하고 괴롭게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다.
시작은 오늘이 두번째인 친구의 도벽으로부터다. 서술자인 나는 유일한 재산목록에 들어가있는 소형 트랜지스터와 구하기 힘들었지만 고서점으로 가봐야 몇 푼 받아내지도 못할 책을 잃어버린 것을 알아채고 ‘그’가 다녀갔음을 깨닫는다. 나는 그가 가져간 몇 가지의 별 것아닌 물건들의 부재를 알아차리고 잠깐 화가 치밀지만 그에게 드러내놓고 표현을 하지는 못한다. 이전에도 그가 가져간 물건에 대해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던 이유는 다시 나타난 그가 가진 두가지 버릇 - 하나는 도벽이었고, 하나는 거짓말 - 에 대해 언젠가는 그가 털어놓을 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떠한 이야길 도출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보다는 그저 던져진 상황에 만족하고 세상과 타협하려고 하는 그저 그런 보통 인물이지만 관찰자로서의 역할만은 충분히 해내기 때문에 후에 주인공인 그의 무대를 마지막까지 바라보는 유일한 관객이 된다.
사건의 전개는 의식의 흐름에 따른 현재와 과거 또 그 이전의 과거 그리고 현재와 같은 상황을 두서없이 표현하고 있는데, 오랜만에 귀국을 하는 그의 배웅을 나간 친구들을 외면한 채로 무언가를 찾는 듯한 그의 시선으로 나는 그가 유일하게 사랑을 속삭였던 민영을 떠올린다.
이야기는 좀 더 과거로 흘러 친구들에게 그가 자신의 졸업식에 와달라고 부탁을 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나와 친구들은 누구든 가겠거니 하여 자신의 상황을 핑계로 아무도 그의 졸업식에 나가지 않는다. 그는 상심하여 술을 마시는 모습을 방관한 채로 바라보게 된다. 그는 가장 절박한 상황에 믿었던 친구들에게 본의 아닌 배신을 당한 것이었다. 배신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는다. 늙으신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홀가분하다는 어조로 그는 나에게 돈을 빌리지만 갑작스런 상황에 놓인 나는 또 다시 그에게 돈을 전해주지 못한다.
갑작스러움. 그는 늘 그런 방식으로 나와 사람들을 시험하곤 한다. 사실 배신이라는 것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 상황인지도 모르지만 그는 주변의 사람들을 믿지 아니하고 - 정확히는 사랑을 하지 않는다고 표현하고 - 끊임없이 시험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주변의 사람들에게서 자신이 가진 어떠한 희망같은 부류들을 끝없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행동의 부당성에 애써 해명하려 들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은 자신의 친구들이 먼저 물어주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중의 전개로 인해 그 부분은 지워버렸다.
그러던 그가 별을 보여주는데에 5원씩 받는다는 망원경과 청년을 발견한 것을 이 소설은 하나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천문학을 전공한 학도답게 발길을 지나치지 못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별을 볼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함부로 별을 보인다며 나의 돈까지 탈탈 털어 낡은 망원경을 산다.
별이란 것은 천문학을 전공한 그에게 일종의 직업 혹은 학업으로서의 중요한 위치라기 보다는 일종의 상징이랄 수 있는데, 절망과 가난에 고립된 배고픈 내면에 반짝 빛을 주는 희망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해는 그 자체로 존재감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그가 해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작은 샛별이라면 어떨까. 눈에 뜨일 만큼 빛나지도 않아서 맑은 날 한참을 낡은 망원경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야 간신히 보이는 정도의 별이라면 안개낀 어둠을 걷는 것과 같은 현실에 더욱 어울리는 빛의 종류일 것이다. 태양은 그 자체가 고결하고 당당한 존재이기에 방황하는 청춘들에게는 경외의 감정을 동반하면서도 그만큼 강렬한 반발심도 들지 않을까. 그러한 그의 심리는 ‘나는 지금 아무것도 가진 게 없잖아. 제발 별만이라도.... 별만이라고 그냥 내 것으로 놔둬 줘....’ 라는 대사에서 나약하게 드러난다. 사람도, 사랑도 아무런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자신에게 별은 그저 하나의 희망인 것이다.
이즘에서 중요한 것은 앞서 말한 바처럼 왜 하필이면 그의 관찰자가 나인가하는 점이다. 나는 너무 무관심하지도 정열적이지도 않다. 그의 도벽과 거짓말을 염두해두면서 직접적으로 그에게 표현하지 못하는 정도의 소심함을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소시민으로서 한탄하는 그의 모습조차도 감정을 거의 배제한 채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상황이 훨썬 더 절절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수지채산은 맞지 않는 일이지만, 길게 보면 그게 뒤가 안심이 되는 일이다’라는 문장에서 친구에게 마음을 쓰면서도 전부를 걸지는 않는 무언가에 정열적이지 못한 자신의 내면을 끄집어내면서도 친구에게 마음을 쓰는 그러한 자, 관찰하고 탐색하며 하나씩 풀어나가는 관찰자로서의 나의 역할이다. 나의 역할은 출국 전에 그와 함께한 동행길에서 더욱 자세하게 드러난다. ‘언제나 자신을 줄 수 없었던 거리, 먼지만 삼키며 걸었을 거리, 뭐라고 해도 그가 지금 거기서 다시 쫓겨나려 하고 있는 거리,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것을 보아두고 싶었을지 모르는 그 거리’를 지나자 군데군데 강의 침묵에 압도당한 사람들의 침묵에 나는 오싹함을 느끼면서도 그를 염려하며 따라간다.
마지막에서 그가 별을 보려고 한 행동과 장례식을 하는 행동 역시 희망의 상징이랄 수 있겠다. 장면은 갑자기 반전하여 강가에서 투신하는 한 커플의 이야기가 나온다. 삶에 집착을 보이는 여자는 내버려두고 남자는 강가에 투신하여 모두들 당황하는 분위기가 되지만, 유서가 드러나는 부분에서 그는 ‘죽으려고 하는 사람의 말을 살고 싶은 사람이 알아들 수 있는 줄 알았느냐'며 조소한다. ‘살아 있는 사람들끼리도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배를 사서 이름모를 장례식을 한다는 그를 따라 강가로 나아가는 나는 그에게 자신이 그토록 기다려왔던(혹은 그렇게 여겼던) 그의 거짓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고 아이러니한 감정에 빠져든다.
망원경을 빠뜨리는 광경은 너무나도 낭만적인 문체로 표현이 된다. 한편의 시처럼. 어쩌면 그는 다시는 오지 못할 순수를 강가에 묻으며 또 다른 희망을 바랬던 것은 아닐까. 잔잔히 별 그림자가 무늬진 강을 덮고 잠들면 이놈은 별의 꿈을 꾸겠지. 라고 여기면서 다시는 상처입지 못할 망원경을 바라며 또한 자신의 삶조차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를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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