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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농촌소설 흙무당
"최고의 농촌소설 흙무당" 내용보기
이석배 장편소설 『흙무당』은 지인에게 선물로 받은 책이다. 책을 받았을 때는 부담스러웠다. 작품이나 작가 모두 생소한데다, 제목의 의미도 이해가 안 되며, 분량도 530여 쪽이나 되었다. 책을 펼치자니 중압감부터 느껴졌다. 그래도 아침 녘에 일어나서 읽기 시작한 책에서 느낀 마음을 적어보겠다.   첫째, 순식간에 빨려 들 정도로 흡인력이 있었다. 예상 밖이었다. 저자는 1
"최고의 농촌소설 흙무당" 내용보기


 

이석배 장편소설 『흙무당』은 지인에게 선물로 받은 책이다. 책을 받았을 때는 부담스러웠다. 작품이나 작가 모두 생소한데다, 제목의 의미도 이해가 안 되며, 분량도 530여 쪽이나 되었다. 책을 펼치자니 중압감부터 느껴졌다. 그래도 아침 녘에 일어나서 읽기 시작한 책에서 느낀 마음을 적어보겠다.

 

첫째, 순식간에 빨려 들 정도로 흡인력이 있었다. 예상 밖이었다. 저자는 1929년 생으로 20여 년 전에 작고한 뒤에, 아드님에 의해서 발간한 유작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일제강점기에 소년기를 보냈으며, 1960년대 이전에 청춘기를 보낸 연배이다. 지루한 옛이야기가 아닌가 싶었는데, 뜻밖에도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저자가 60대 시절에 마지막 열정을 기울였다는 의미가 담긴 책이다.

 

주인공은 농촌과 흙을 몹시도 사랑한 50대 내외의 여성이었다. 흙에 미치다시피 빠져있고, 흙과 소통하는 듯하다 해서 동리에서는 ‘흙무당’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그녀의 모습에서 나의 어머니나 할머니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흙무당은 미녀와는 거리가 멀고, 그렇다고 해서 새마을 지도자도 아니다. 그저 억척스럽게 평생 동안 농사만 지은 우리 어머니들 같은 분이다. 어머니들의 추억을 보는 듯해서 때로는 숙연한 마음도 들었다.

 

둘째,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마음에 와닿았다. 기생충같이 흙무당(추간남)의 단물만 빨아먹는 남편 이준보,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가출한 장녀 초순이와 차녀 차순이, 심성과 외모 모두 나무랄 데 없는 효녀 삼순이, 아버지를 빼어 닮은 듯한 아들 달기……. 그들은 1970년쯤에 태어난 시골 아이라기보다 그보다 10년쯤 전에 출생한 세대처럼 보였다. 내 고향 마을에도 초순이와 차순이, 삼순이, 달기 같은 친구들이 있었다. 가만히 생각하니 이준보와 추간남 같은 부부도 있었던 듯하다. 흙을 사랑했던 고향의 옛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는 듯 숙연한 마음마저 들었다.

 

셋째, 책장을 넘기면서 오랜만에 행복한 종말을 기대했다. 흙무당같은 분이 행복한 삶을 살기는 쉽지 않은 나라이다. 삼순이 같은 처녀가 고운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성장하기에는 우리 농촌은 너무도 안녕하지 못하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라도 그들이 행복했으면 하는 생각을 간절히 했다.

 

모두 12부 534쪽의 이 작품은 단숨에 읽기는 분량이 너무 방대하다. 오늘 5부 211쪽까지 읽었다. 앞으로 사흘에 걸쳐서 읽으면서 그날 그날의 느낌을 적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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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묘한 매력이 있는 작품이었다. 1929년생의 작가가 작고 직전인 20년 전에 쓴 소설이다. 작가는 일제강점기 때 학창생활을 했고, 1960년대 이전에 청춘기를 보냈다. 당연히 근대소설 태동기의 작품을 보는 듯한 문체가 느껴진다. 또한 고전소설처럼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서술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어찌 보면 세련되지 못한 형식처럼 보이면서도 책장을 넘길수록 강한 흡인력을 느끼면서 매력을 발산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신앙에 가까울 정도로 흙에 집착하는 흙무당의 생각이 우리가 지니고 지켜야 할 농민의 생각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녀의 언행이야말로 신토불이의 신념이자 실천이어야 할 것이다.

 

다섯째, 등장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나는 이 소설과 유사한 시골에서 성장했다. 흙무당과 준배의 가족은 물론 오리골의 전통적인 권세가인 윤 씨와 박 씨 일가, 지서주임, 공장의 사장 등에서 나의 어린 시절의 이웃을 만나는 듯했다. 특히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인 삼순이! 70년대 이전의 시골에는 어느 동리나 그런 처자가 한둘은 있지 않았을까?

 

여섯째, 한국전쟁의 비극도 실감이 났다. 전쟁으로 인해 남과 북의 통치가 뒤바뀌는 가운데 각 마을에서 일어난 비극, 국군에 복무하다 부대에서 낙오되어 고향에 왔던 나의 선친도 그 비슷한 체험을 했다. 다만 흙무당의 아버지같이 비극을 당하지는 않았으며, 종전 이후 밀고자들을 용서하고 포용함으로써 이웃과 불화로 이어가지 않았을 뿐이다.

 

모두 12부 534쪽의 이 작품은 단숨에 읽기는 분량이 너무 방대하다. 이틀째에는 9부 391쪽까지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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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 뜻밖에 흥미진진하게 읽으면서 감동을 느꼈다. 뜻밖이라고 표현한 것은 작가도 생소한 분이고, 출판사인 고글도 메이저 업체가 아니다. 또한 인터넷 서점에서 베스트셀러로 알려지지도 않은 작품이다. 내게 감동을 준 책들은 대개 ‘작가, 출판사, 지명도’ 등이 삼위일체가 되거나 최소한 한 조건이라도 성립된 경우였다. 이 작품은 그중 어느 조건도 성립되지 않은 경우이므로 재미 면에서는 거의 포기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 작품에서 이렇게 큰 감동과 재미를 함께 느꼈으니 그야말로 모래 속에서 보석을 발견한 듯한 기쁨이다.

 

여덟째, 흙무당의 흙사랑 외에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이 책에는 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으로 인한 아픔도 담겨있다. 삼순이의 외할아버지는 좌익으로 몰려 국군에게 죽었고, 영규의 할아버지는 반동분자로 몰려 인민군에게 죽었다. 두 사람의 죽음에는 각각 양가의 가족이 연루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 삼순이와 영규가 사랑을 속삭이는 것이 가능할까? 특히 흙무당은 피를 토할 정도로 반대한다. 영규는 흙무당을 설득하기 위해 이렇게 호소한다.

 

“삼순 씨로부터 양가의 비극을 상세히 들었고, 저도 대강은 알고 있습니다. 어쨌든 두 집안의 비극이요, 민족의 비극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씨와 박 씨 간에 자고로 무슨 원한이 있었겠습니까? 분단의 상황에서 양가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불행하게도 시대적 제물이 되고 만 것입니다. 우리 양가는 공동의 희생자입니다. 때문에 이와 같은 비극도 좋게 말하면 인연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양가는 서로 앙숙관계가 아니라 가장 근접한 사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공동으로 두 가문을 희생시킨 원흉들에게 복수를 가해야 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씨 할아버지(삼순이의 외조부)는 이승만이가 죽이고, 박 씨 할아버지(영규의 조부)는 김일성이가 죽였습니다. 그들 뒤에는 냉전체제하에 미국과 소련이라는 양대 세력이 군림하면서 약소민족을 조율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 씨는 노태우 정부에, 박 씨는 김일성 정부에 희생의 대가를 요구해서 보상받아야 합니다. 황당한 주장이라고 비웃겠지만, 저의 생각으로는 이와 같은 절차가 인도적 차원에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404쪽)”

 

그러면서 영규는 두 가문의 원수는 이승만과 김일성이지 상대방이 아니며, 자신들의 결혼이 그런 비극적 요소를 도려내는 길이라고 역설한다.

 

물론 흙무당은 대로 하면서 영규를 몰아치지만, 영규의 호소를 들으면서 우리의 상황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우리의 가장 큰 원수는 나라를 삼킨 일본이고, 다음 원수는 남북을 분단시킨 미국과 소련이 아니겠는가? 또한 세 번째 책임을 묻는다면 그 하수인이 되어 분단을 고착화시킨 이승만과 김일성 및 그 후계자들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좌익이니 종북이니 수구니 친일파니 하면서 피해자끼리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일까? 큰 원수들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묻지 못하면서……. 이 작품과 관계없는 내용이겠지만 영호남의 갈등도 주범은 박정희와 김대중이다. 그러나 현실은 경상도놈이니 전라도놈이니 하면서 피해자끼리 아웅다웅하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이 책에서는 그 밖에도 우루과이 라운드 타결로 인한 농민들의 피해 등 곳곳에서 피폐해진 농촌의 현실을 통렬하게 고발하고 있다. 그 밖에도 군대에 간 흙무당의 아들 달기를 놓고 돈을 써서 면제를 시키지 않았다고 나무라는 부녀회장과 문답을 나누는 장면도 가슴을 치게 했다.

 

“우리 얘야 벌써 옛날에 다 돈 들여 단도리 했지. 지금껏 그냥 있겠어. 무슨 수를 쓰든지 써서 군대를 빼는 게 장땡이라구. 지금 군대 가는 사람들은 정말 돈 없고, 빽없고, 권세 없는 바보들이나 가는 거라구. (부녀회장의 말 455쪽)”

 

“우리 같이 무식헌 사람이 그런 일을 할 수가 있나유. 그런 것은 회장님같이 똑똑현 사람들이 하는 짓이쥬. 저희는 지금도 사내자식은 누구나 군대에 가는 걸루 알고 있쥬. (흙무당의 말 455쪽) ”

 

부녀회장의 말이 맞다. 군대는 빼는 게 장땡이다. 군대는 불쌍한 바보들이나 가는 거다. 군대 갈 시간에 공부하고 돈 벌어야 장관이나 총리, 심지어 대통령도 되고, 하다못해 큰소리치며 살 수 있고…….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선친은 한국전쟁 때 중상을 입은 국가유공자로서 부상 후유증으로 인해 40대에 일찍 떠났으며, 나와 아들은 사병으로 만기 제대를 한 우리 집안은 무엇인가? 아마도 대한민국에서는 바보 문중인가 보다.

 

아홉째, 우리말 속담과 토속어의 보고이다. 벽초 홍명희 선생의 『임꺽정』을 가리켜 우리말의 보고라고 격찬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책을 읽으면서 그것을 몇 번이고 실감했다. 이 책에서 그런 느낌을 다시 느꼈다. 많이 쓰는 속담은 물론 속담 사전에 올라있지 않은 속담과 관용어들이 곳곳에서 숨 쉬고 있다. 흙무당의 욕설을 듣노라면 걸찍한 각설이 타령을 듣는 듯 후련하기도 하다.

 

사흘 만에 완독한 책으로 12부 534쪽의 대작이다. 나로서는 드물게 속독을 한 작품이었다. 이 글에서는 전에 3편으로 나누어 썼던 리뷰를 이 작품에 대한 사랑을 담아서 한 편으로 정리했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중학생 이상의 독자라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재미와 감동과 교육적 효과가 모두 어우러진 작품이다. 쉬지 않고 토하는 흙무당의 비속어가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욕쟁이 할머니의 욕도 화제가 되는 세상이다. 그것마저도 넓은 의미에서 산 공부가 되리라고 본다.

y******3 2022.08.01. 신고 공감 4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이석배] 흙무당 (1차 리뷰)
"[이석배] 흙무당 (1차 리뷰)" 내용보기
이석배 장편소설 『흙무당』은 지인에게 선물로 받은 책이다. 책을 받았을 때는 부담스러웠다. 작품이나 작가 모두 생소한데다, 제목도 이해가 안 되며, 분량도 530여 쪽이나 되었다. 책을 펼치자니 중압감부터 느껴졌다. 그래도 아침녘에 일어나서 펼친 책에서 느낀 마음을 적어보겠다.   첫째, 순식간에 빨려 들 정도로 흡인력이 있었다. 예상 밖이었다. 저자는 1929년 생으로 15년
"[이석배] 흙무당 (1차 리뷰)" 내용보기
이석배 장편소설 『흙무당』은 지인에게 선물로 받은 책이다. 책을 받았을 때는 부담스러웠다. 작품이나 작가 모두 생소한데다, 제목도 이해가 안 되며, 분량도 530여 쪽이나 되었다. 책을 펼치자니 중압감부터 느껴졌다. 그래도 아침녘에 일어나서 펼친 책에서 느낀 마음을 적어보겠다.

 

첫째, 순식간에 빨려 들 정도로 흡인력이 있었다. 예상 밖이었다. 저자는 1929년 생으로 15년 전에 작고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일제강점기에 소년기를 보냈으며, 1960년대 이전에 청춘기를 보낸 연배이다. 지루한 옛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는데, 뜻밖에도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60대인 시절이 아닌가?

 

주인공은 농촌과 흙을 몹시도 사랑한 50대 내외의 여성이었다. 흙에 미치다시피 빠져있고, 흙과 소통하는 듯하다 해서 동리에서는 ‘흙무당’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그녀의 모습에서 나의 어머니나 할머니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흙무당은 미녀와는 거리가 멀고, 그렇다고 해서 새마을 지도자도 아니다. 그저 억척스럽게 평생 동안 농사만 지은 우리 어머니들 같은 분이다.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읽는 듯해서 때로는 숙연한 마음도 들었다.

 

둘째,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마음에 와 닿았다. 기생충같이 흙무당(추간남)의 단물만 빨아먹는 남편 이준보,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가출한 장녀 초순이와 차녀 차순이, 심성과 외모 모두 나무랄 데 없는 효녀 삼순이, 아버지를 빼어 닮은 듯한 아들 달기……. 그들은 1970년쯤에 태어난 시골 아이라기보다 그보다 10년 쯤 전에 출생한 세대처럼 보였다. 내 고향 마을에도 초순이와 차순이, 삼순이, 달기 같은 친구들이 있었다. 가만히 생각하니 이준보와 추간남 같은 부부도 있었던 듯하다. 흙을 사랑했던 고향의 옛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는 듯 숙연한 마음마저 들었다.

 

셋째, 책장을 넘기면서 오랜 만에 행복한 종말을 기대했다. 흙무당같은 분이 행복한 삶을 살기는 쉽지 않은 나라이다. 삼순이 같은 처녀가 고운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성장하기에는 우리 농촌은 너무도 안녕하지 못하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라도 그들이 행복했으면 하는 생각을 간절히 했다.

 

모두 12부 534쪽의 이 작품은 단숨에 읽기는 분량이 너무 방대하다. 오늘 5부 211쪽까지 읽었다. 앞으로 사흘에 걸쳐서 읽으면서 그날그날의 느낌을 적으려고 한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50대 이상의 독자에게는 농촌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한편 문체도 힘차며 독자를 흡인하는 매력이 있다. 젊은 세대도 몰입하면서 감동을 느낄 작품이 아닌가 싶다.

y******3 2015.10.27. 신고 공감 2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이석배] 흙무당 (3차 리뷰)
"[이석배] 흙무당 (3차 리뷰)" 내용보기
이석배 장편소설 『흙무당』은 감동적으로 완독했다. 530쪽을 사흘 만에 읽었으니 나로서는 드물게 속독을 한 셈이다. 이 책에서 느낀 점을 몇 가지만 적겠다. ) -->  일곱째, 뜻밖에 흥미진진하게 읽으면서 감동을 느꼈다. 뜻밖이라고 표현한 것은 작가도 생소한 분이고, 출판사인 고글도 메이저 업체가 아니다. 또한 인터넷 서점에서 베스트셀러로 알려지지도 않은 작품이다. 내게
"[이석배] 흙무당 (3차 리뷰)" 내용보기

이석배 장편소설 『흙무당』은 감동적으로 완독했다. 530쪽을 사흘 만에 읽었으니 나로서는 드물게 속독을 한 셈이다. 이 책에서 느낀 점을 몇 가지만 적겠다.

 

일곱째, 뜻밖에 흥미진진하게 읽으면서 감동을 느꼈다. 뜻밖이라고 표현한 것은 작가도 생소한 분이고, 출판사인 고글도 메이저 업체가 아니다. 또한 인터넷 서점에서 베스트셀러로 알려지지도 않은 작품이다. 내게 감동을 준 책들은 대개 ‘작가, 출판사, 지명도’ 등이 삼위일체가 되거나 최소한 한 조건이라도 성립된 경우였다. 이 작품은 그 중 어느 조건도 성립되지 않은 경우이므로 나는 재미 면에서는 거의 포기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 작품에서 이렇게 큰 감동과 재미를 함께 느꼈으니 그야말로 모래 속에서 보석을 발견한 듯한 기쁨이다.

 

여덟째, 흙무당의 흙사랑 외에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이 책에는 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으로 인한 아픔도 담겨있다. 삼순이의 외할아버지는 좌익으로 몰려 국군에게 죽었고, 영규의 할아버지는 반동분자로 몰려 인민군에게 죽었다. 두 사람의 죽음에는 각각 양가의 가족이 연루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 삼순이와 영규가 사랑을 속삭이는 것이 가능할까? 특히 흙무당은 피를 토할 정도로 반대한다. 영규는 흙무당을 설득하기 위해 이렇게 호소한다.

 

“삼순씨로부터 양가의 비극을 상세히 들었고, 저도 대강은 알고 있습니다. 어쨌든 두 집안의 비극이요, 민족의 비극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씨와 박씨간에 자고로 무슨 원한이 있었겠습니까? 분단의 상황에서 양가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불행하게도 시대적 제물이 되고 만 것입니다. 우리 양가는 공동의 희생자입니다. 때문에 이와 같은 비극도 좋게 말하면 인연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양가는 서로 앙숙관계가 아니라 가장 근접한 사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공동으로 두 가문을 희생시킨 원흉들에게 복수를 가해야 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씨 할아버지(삼순이의 외조부)는 이승만이가 죽이고, 박씨 할아버지(영규의 조부)는 김일성이가 죽였습니다. 그들 뒤에는 냉전체제하에 미국과 소련이라는 양대세력이 군림하면서 약소민족을 조율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씨는 노태우 정부에, 박씨는 김일성 정부에 희생의 대가를 요구해서 보상받아야 합니다. 황당한 주장이라고 비웃겠지만, 저의 생각으로는 이와같은 절차가 인도적 차원에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404쪽)”

 

그러면서 영규는 두 가문의 원수는 이승만과 김일성이지 상대방이 아니며, 자신들의 결혼이 비극적 요소를 도려내는 길이라고 역설한다.

 

물론 흙무당은 대노하면서 영규를 몰아친다. 영규의 호소를 들으면서 우리의 상황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우리의 가장 큰 원수는 나라를 삼킨 일본이고, 다음 원수는 남북을 분단시킨 미국과 소련이 아니겠는가? 또한 세 번째 책임을 묻는다면 그 하수인이 되어 분단을 고착화시킨 이승만과 김일성 및 그 후계자들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좌익이니 종북이니 수구니 친일파니 하면서 피해자끼리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일까? 큰 원수들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묻지 못하면서…. 이 작품과 관계없는 내용이겠지만 영호남의 갈등도 주범은 박정희와 김대중이다. 그러나 현실은 경상도놈이니 전라도놈이니 하면서 피해자끼리 아웅다웅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책에서는 그밖에도 곳곳에서 우루과이 라운드 타결로 인해 피폐해진 농촌의 현실을 통렬하게 고발하고 있다. 그밖에도 군대에 간 흙무당의 아들 달기를 놓고 돈을 써서 면제를 시키지 않았다고 나무라는 부녀회장과 문답을 나누는 장면도 가슴을 치게 했다.

 

“우리 얘야 벌써 옛날에 다 돈들여 단도리 했지. 지금껏 그냥 있겠어. 무슨 수를 쓰든지 써서 군대를 빼는게 장땡이라구. 지금 군대가는 사람들은 정말 돈없고, 빽없고, 권세없는 바보들이가 가는 거라구. (부녀회장의 말 455쪽)”

“우리 같이 무식헌 사람이 그런 일을 할 수가 있나유. 그런 것은 회장님같이 똑똑현 사람들이 하는 짓이쥬. 저희는 지금도 사내자식은 누구나 군대에 가는 걸루 알고 있쥬. (흙무당의 말 455쪽) ”

 

부녀회장의 말이 맞다. 군대는 빼는게 장땡이다. 군대는 불쌍한 바보들이나 가는 거다. 군대갈 시간에 공부하고 돈 벌어야 장관이나 총리도 되고, 하다못해 큰소리치며 살 수 있고……. 정말 그럴까? 선친은 한국전쟁 때 중상을 입은 국가유공자, 나와 아들은 사병으로 만기 제대를 했으니, 우리는 바보 문중인가 보다.

 

아홉째, 우리말 속담과 토속어의 보고이다. 벽초 홍명희 선생의 『임꺽정』을 가리켜 우리말의 보고라고 격찬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책을 읽으면서 그것을 몇 번이고 실감했다. 이 책에서 그런 느낌을 다시 느꼈다. 많이 쓰는 속담은 물론 속담사전에 올라있지 않은 속담과 관용어들이 곳곳에서 숨 쉬고 있다. 흙무당의 욕설을 듣노라면 걸찍한 각설이 타령을 듣는 듯 후련하기도 하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중학생이상의 독자라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을 듯하다. 재미와 감동과 교육적 효과가 모두 어우러진 작품이다. 쉬지 않고 토하는 흙무당의 비속어가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욕쟁이 할머니의 욕도 화제가 되는 세상이다. 그것마저도 넓은 의미에서 산 공부가 되리라고 본다.

y******3 2015.10.29.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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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배] 흙무당 (2차 리뷰)
"[이석배] 흙무당 (2차 리뷰)" 내용보기
이석배 장편소설 『흙무당』은 530여 쪽이나 되는 대작이다. 나는 두툼한 책에 대해서는 부담을 느끼고 있다. 빨리 읽지도 못하고, 책을 들기에 무거우니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완독하려면 일주일 가까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틀 만에 391쪽까지 읽었다. 아마 내일이면 완독이 될 듯하나 오늘의 느낌을 기억하지 못할 듯해서 지금까지의 내용을 바탕으로 2차 리뷰를
"[이석배] 흙무당 (2차 리뷰)" 내용보기

이석배 장편소설 『흙무당』은 530여 쪽이나 되는 대작이다. 나는 두툼한 책에 대해서는 부담을 느끼고 있다. 빨리 읽지도 못하고, 책을 들기에 무거우니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완독하려면 일주일 가까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틀 만에 391쪽까지 읽었다. 아마 내일이면 완독이 될 듯하나 오늘의 느낌을 기억하지 못할 듯해서 지금까지의 내용을 바탕으로 2차 리뷰를 적어보겠다.

 

넷째, 묘한 매력이 있는 작품이었다. 1929년생의 작가가 작고 직전인 20년 전에 쓴 소설이다. 작가는 일제강점기 때 학창생활을 했고, 1960년대 이전에 청춘기를 보냈다. 당연히 근대소설 태동기의 작품을 보는 듯한 문체가 느껴진다. 또한 고전소설처럼 작가의 자신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서술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어찌 보면 세련되지 못한 형식처럼 느껴지면서도 책장을 넘길수록 강한 흡인력을 느끼면서 매력이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신앙에 가까울 정도로 흙에 집착하는 흙무당의 생각이 우리가 지니고 지켜야 할 농민의 생각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녀의 언행이야 말로 신토불이의 신념이자 실천이 아닐까 싶다.

 

다섯째, 등장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나는 이 소설과 유사한 시골에서 성장했다. 흙무당과 준배의 가족은 물론 오리골의 전통적인 권세가인 윤씨와 박씨 일가, 지서주임, 공장의 사장 등에서 나의 어린 시절의 이웃을 만나는 듯했다. 특히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인 삼순이! 70년대 이전의 시골에는 어느 동리나 그런 처자가 한둘은 있지 않았을까 

 

여섯째, 한국전쟁의 비극도 실감이 났다. 전쟁으로 인해 남과 북의 통치가 뒤바뀌는 가운데 각 마을에서 일어난 비극, 국군에 복무하다 부대에서 낙오되어 고향에 왔던 나의 선친도 그 비슷한 경우를 당했다. 다만 흙무당의 아버지같이 비극을 당하지는 않았으며, 종전 이후 밀고자들을 용서하고 포용함으로써 이웃과 불화로 이어가지 않았을 뿐이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세대를 초월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등장인물들의 대화에서 비속어가 남발되고 있으니 교육적으로 안 좋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말과 글도 난무하는 사회다. 오히려 생생한 토속어를 배우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y******3 2015.10.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