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음표로 가득 메우던 ‘처음’의 그 자리를, ‘아하!’하는 탄성으로 채우게 한 두 번째 읽기. 글의 앞부분에 작가가 많은 힌트를 주고 있지만, 우리는 안개 속에 갇혀 있는 관계로 그것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다. 그래서 처음보다 두 번째로 책을 읽을 때가 더 재미있다. 책을 덮는 순간, 내 안에서 생기는 많은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생각에 잠긴다. 겉으로 보여지는 브리튼족과 색슨족의 평화스러운 분위기와는 달리, 그들 사이에 벌어진 전쟁의 잔재가 남아있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전개하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작가가 전하는 이야기에 몰입하며 ‘민족 간의 평화와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떠올려보는 시간도 가져본다. 특히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다음의 이야기는 인상적이다. 브리튼족인 노부부 액슬과 비어트리스는 아들을 찾아 떠난 길에서 비를 피하기 위해 폐가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노파와 뱃사공을 만나는데, 뱃사공에게서 ‘이상한 섬’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 이 노파가 말하는 섬은 보통 섬이 아니에요. 우리 뱃사공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그곳에 많은 사람을 태워다 주었고, 지금쯤 그곳 들판과 숲에는 수백 명이 살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곳은 이상한 곳이에요. 거기에 들어간 사람은 절대로 다른 영혼을 보지 못하는 채 홀로 풀밭과 나무 사이를 거닐지요. 가끔 달빛이 환한 밤이나 폭우가 쏟아지려고 할 때면 그곳에 함께 머무는 동료 거주자들의 존재를 느끼기도 해요. 그러나 대부분의 기간 동안 모든 여행자들은 마치 자신만이 그 섬의 유일한 거주자인 것처럼 행동하지요. 가끔 부부가 함께 섬으로 건너가도록 허용되기도 하지만 드문 일이에요. 두 사람 사이에 대단히 강한 사랑의 유대가 있어야 하지요. 오랫동안 이어져 온 지속적인 사랑, 그런 걸 보는 경우는 정말 드물어요. 그런 사랑을 보게 되면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두 사람을 함께 배에 태워 갑니다.” 액슬과 비어트리스에게는 전혀 관련이 없을 줄 알았던, 그 이상한 섬에 그들의 아들이 있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이 그곳에 가야 하는 장면이 마지막 장에 전개된다. ‘이상한 섬’ 사람들의 이상한 행동. 지금의 우리 모습이 자연스럽게 겹쳐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자신의 일에 몰두하느라 주위를 볼 수 없고, 자신조차 들여다 볼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분명 한 공간에 있지만 서로의 존재를 느낄 수도 없는 우리. 이렇듯 책을 읽는 중간에 멈춰서, 생각하는 시간을 마련해 주는 장면이 많다. 액슬과 비어트리스의 여정을 쫓다보면 그들의 삶 뿐만 아니라 나의 삶도 돌아보며 자신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어찌된 일인지 습지를 뒤덮은 안개만큼이나 짙은 안개 속으로 과거가 사라져버렸다. 갑자기 모두가 병에 걸린 것처럼, 과거의 일 ―설령 아주 최근 일이라도―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사람들의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았다. 겨우 어제나 그제 있었던 일이나 사람인데도 세상이 모두 잊어버렸다. 한 시간 전 일인데도 마치 오래된 과거의 어느 날 아침 일처럼 쉽게 잊어버리게 만드는 이 안개는 무엇 때문에 우리에게 몰려온 것인가? 생각을 집중할수록 기억의 조각들은 희미해졌다. 조각난 기억을 되살리며 아들을 찾아서 길을 떠나는 브리튼족인 노부부 액슬과 비어트리스. 뱃사공에게 남편을 빼앗겼다고 주장하는 과부들, 암용 케리그를 죽이라는 임무를 받은 서른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색슨족 전사 위스턴, 도깨비들에게 기습을 당하고 가슴 바로 밑에 상처가 난 열두 살 색슨족 에드윈, 아서 왕의 조카인 브리튼족 가웨인 경, 수도원에 있는 지혜로운 조너스 신부와 그의 곁에서 조용히 그를 지지하며 묵언 수행중인 니니언 신부, 부모님에게 잊힌 불쌍한 아이들과 함께 요정, 괴물 등이 등장하면서 역사 판타지물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전쟁의 손길이 무고한 사람들에게 미치지 않도록 할 방법을 생각하게 만들던 과거의 액슬. 액슬이 중재했던 법이 지켜지며 브리튼족과 색슨족에게 평화가 유지되던 오래 전의 그 날, 아서 왕이 평화조약을 깨고 색슨족을 공격한다. 자기 자식을 죽인 사람을 형제라고 부르며 상처로 인한 흔적이나 그늘 한 점 거의 보이지 않는 이 땅. 브리튼족과 색슨족 간에 벌어진 전쟁의 상처를 치유한 것이 아니라 오래 전에 일어난 살육의 잔해들이 모두 파묻혀졌다. 학살과 마법사의 술수 위에 세워진 평화가 영원히 유지될 수 있을까? 잘못된 일이 사람들에게 그냥 잊힌 채 벌받지 않기를 바라는 신은 없다. 소년 에드윈의 몸에 난 상처는 도깨비에게 물린 것이 아니라 용이 낸 상처라서, 에드윈은 색슨족 전사 위스턴을 자연스럽게 암용 케리그에게로 인도한다. 그리고 노부부는 이 땅을 온통 뒤엎어서 기억을 빼앗아 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수도원의 조너스 신부와 색슨족 전사 위스턴에게서 듣게 된다. 아서 왕의 조카 가웨인 경은 수도원장에게 가서 색슨족 전사 위스턴의 정체와 계획을 알린다. 이에 위스턴을 두려워하는 브레누스 경은 서른 명의 병사들을 보내어 위스턴을 죽이려 하고, 그로 인해 액슬과 비어트리스 그리고 에드윈도 위기에 처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웨인 경 덕분에 브리튼족 노부부와 에드윈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색슨족 전사 위스턴은 순발력과 지혜로 병사들의 공격에 대응하다가 조너스 신부와 니니언 신부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다. 위스턴은 용의 수호자인 가웨인 경과의 결투에서 이기고, 잠들어 있는 늙은 용 케리그를 죽인다. 그리고는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브리튼족 노부부에게 솔직하게 말한다. 용을 죽인 것은 다가올 정복 전쟁을 위해 길을 닦기 위한 것이라며, 학살이 시작되기 전에 서쪽으로 최대한 멀리 움직이라고 말한다. 색슨족의 정의와 브리튼족에 대한 복수가 시작되는 것이라고. 액슬과 비어트리스는 아들이 있는 섬으로 가기 위해 뱃사공을 만나는데, 뱃사공은 배에 비어트리스만을 태우고 강을 건넌다. “난 계속 궁금했어요, 공주. 만일 안개가 그처럼 우리에게서 기억을 빼앗지 않았다면, 그 세월들을 지내는 동안 우리의 사랑이 그렇게 강해질 수는 없었겠지요? 아마 안개 덕분에 오래된 상처가 아물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럼 잘 가요, 액슬.” “잘 가요, 내 하나의 진정한 사랑.” 우리가 좋은 것만을 생각하고 바란다고 해서 어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이든 피하지 말고, 부딪히고 이겨내야 한다. 깊은 상처는 더디게 낫지만 결국 다 낫기 마련이기에. 가즈오 이시구로가 이야기 곳곳에 숨겨놓은 보석을 찾는 기분으로 읽어갔다. 작품에 묻어나는 그의 진실한 삶의 태도, 진중한 성격, 차분한 모습에 매력을 느끼게 된다. <파묻힌 거인>을 시작으로 그의 작품을 많이 읽게 될 듯 하다. ‘이 땅을 걸어다니는 동안 하느님의 눈에 멋지게 빛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 가웨인 경을 떠올리면서, 오늘도 나의 자리에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행복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또한 비어트리스에게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조언한 낯선 여자의 음성도 기억하리라. “그 낯선 여자(짙은 색 누더기 차림의 여자로, 어느 뱃사공이 남편을 데려가는 바람에 혼자 바닷가에 남겨졌다고 함.)는 내게 조금도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경고했어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우리가 함께 나눈 일을 기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
|
호스피스 병동에 엄마를 입원시켜 놓고 나와 동생은 병원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슬픔에 빠질 겨를도 없이 절차와 수속들에 허덕였다. 다인실이 좀처럼 나지 않았고 그 와중에도 병원비 걱정에 1인실을 거부하는 엄마와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올해 여름 엄마는 동생이 좋아하는 호박죽을 만들어주기 위해 호박을 썰다가 손을 베었다. 동생은 엄마가 힘이 드니 자신에게 썰어달라고 했는데 귀찮다고 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때 호박 썰어줄걸.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동생은 그 일을 말하며 후회했다. 나는 놀랐다. 호박죽을 만들어 먹기도 하는구나. 나와 달리 엄마와 사는 동생은 그런 호사를 누리고 살았구나. 가슴 한 쪽이 뻐근했다. |
|
가즈오 이시구로의 노벨상 수상으로 장르소설의 틀을 허문 쾌거가 아닌가 싶다. 더욱이 그는 한국에도 꽤나 인기 많은 작가이면서 대중적으로 인지도를 키워왔기에 앞으로 어떻게 세계관을 구축하고 넓힐지 기대가 크다. 파묻힌 거인은 그의 가장 최신 장편이다. 개인과 인류의 대학살 등의 흥망성쇠를 작품의 모티프로 삼아 거대담론을 환타지적 세계로 옮겨 심었다. 아픈 기억은 어떻게 다룰지 상처는 어떻게 보듬어야 하는지 망각은 존재할 수 있는지 작가는 묻고 또 묻고 있다. |
|
판타지에 인간의 불완전한 기억을 섞어서 무거운 주제를 지루하지 않게 접근한 방법이 좋았다... 아서왕이 죽고 난 후 평화로운 시대...각기 다양한 부족들이 마을을 이루며 살아가는 곳... 안개가 끼면 전날의 기억을 잊어버리고 현재의 행복한 기억만 남아 뭔가 모호하고 몽환적이며 무기력한 기운이 흐르는 곳.... 어두컴컴한 동굴에서 생활하는 노부부가 어느 날 과거속의 아들을 기억해내고 그리워하며 길을 떠난다...노부부가 아들을 찾아 떠나며 만나는 색슨족 전사...도깨비에 물린 소년.. 아서왕의 조카라 불리는 노기사를 만나며 일어나는 희귀한 사건들... 과거를 망각하고 현재의 기억만 가지는 것이 암용의 입김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용을 무찌르기 위해 떠나는 자들과 이를 막으려는 사람들... 좋은 기억만 갖고 현재의 행복과 안정을 추구할까 아니면 비록 아프더라도 과거의 어떤 기억이든 받아들여 앞으로 나아가는 게 옳을까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
|
재미있게 읽은 소설 노벨문학상 작가의 최신작이란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아서왕 이야기를 소재로 다룬 소설이라 고르게 되었다. 이전에 버나드 콘웰의 아서왕 연대기를 매우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기에 그 때의 느낌을 되살리고 싶은 심정이 컸다. 다만 아서왕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적으로 해석해 소재로 가져온 것은 아니고 마법, 용 ,도깨비 등 이질적인 소재를 그대로 가져와 사용하고 있다. 사람들의 기억을 방해하는 망각의 안개가 서린 땅에서 어느 한 노부부가 기억 저편에 묻힌 아들을 떠올리고 그를 만나러 길을 떠나는게 소설의 시작이다. 여정의 과정에서 섹슨족 전사와 소년,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지키는 노기사 등을 만나면서 기억을 잃는 이유를 알아내고 그 해결과정에 점차 다가가게 되면서 망각의 안개가 지운 것은 개인과 개인 사이의 기억 뿐만 아니라 민족들간의 역사란 것을 알게 된다. 시간이 지나 점차 기억이 옅어지는 것이 불행인지, 축복인지 생각하게 되는 소설이었다 |
|
가즈오 이시구로의 노벨문학상 수상작 파묻힌 거인입니다. 작가의 이름만 보고 일본인인줄 알았는데 54년에 태어나 60년에 영국으로 이주했으니 그냥 영국인이죠 ㅎㅎ 망각의 안개가 내린 평야. 두 부부는 서서히 기억이 지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아들이 있다는 사실이 조금씩 기억나는데.. 망각의 안개가 내린 황량한 평원을 무대로 펼쳐지는과거와 기억, 사랑에 관한 잊히지 않을 이야기 |
|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5권째다. '나를 보내지 마'로 시작해서 '파묻힌 거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의 소설을 보여준다. 그 스타일도 다르다. 하지만, 결론은 늘 같다. 독자에게 던진다. 엔딩이 없다. 왠지 더 이어질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소설은 끝이고 다음 장을 넘기면, 역자의 해설이나 소감이 나온다. 해석은 자유다. 틀에 박힌 해석을 할 수 있지 않다. 잔잔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파문이 일고 소용돌이 친다. 그리고 생각에서 계속 맴돌다가 정리된다. 여기서 정리는 폭풍 후의 정리라서 남아 있는 것이 없다. 그저 다시 백지로 만들어 버린다. 작가의 목적은 무엇일까? 이런 것들은 중요하지가 않다. 난해하지 않지만, 더 깊게 생각해야 한다. 어렵지 않게 읽히지만, 읽고 나면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사회적이지만, 철저히 개인적이다. '파묻힌 거인'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2005년에 '나를 보내지 마'를 내고 10년만에 등장한 소설. 전작이 SF에 관련된 느낌의 책이라고 한다면, 본작은 판타지 느낌. 그러나 그런 양식을 이용했다고해서 공상과학이나 판타지는 아니다. 그렇게 주루륵 읽히는 소설이 아니다. 여전히 처음에는 더디지만, 어느 순간 휙휙 책장을 넘기는 나를 볼 수 있다.(ebook은 클릭이 빨라진다.) 기억이 가물가물 거리는 나이 든 주인공, 그리고 전사, 소년, 아서왕의 조카, 수도원, 용, 그리고 뱃사공. 고대 영국을 배경으로 소설은 전개된다. 솔직히 처음에 기억이 가물가물한 주인공과 용이 나올 때도 판타지 형식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저 무지한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용이 등장하고, 그 용을 죽여야 기억이 돌아 온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졌을 때, 뭐지? 하는 생각을 한 독자가 나 뿐만이었을까? 도대체 '거인'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이 들어 답답하기까지 했다. 아마 '거인'의 상징적인 의미 해석도 독자마다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기억' 혹은 '폭력'으로 해석된다. 오히려 악당 같은 이미지의 용이 이러한 기억들을 제어하면서 '폭력'을 망각 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측면에서 작가가 주는 반전은 참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가는 누구 하나 악당으로 만들지 않는다. 과연 누가 악당인가? 전사와 나이든 기사의 결투에서도 누구를 응원했어야 했는가? 용을 죽이는 사명을 가진 전사와 이를 지키려는 기사. 둘 다 악당이 아니다. 그리고 서로 그 것을 이해한다. 그저 관점이 차이가 폭력을 가져온 것이다. 적이 아니다. 그저 관점의 차이일 뿐이다. 용을 보는 입장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어마한 능력과 파괴력을 가진 용이지만, 지금은 늙어서 자신의 목을 치러 오는 적이 있어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그 목을 내어 놓는다. 대단한 결투를 기대했다면 참 실망스러운 대결이다. 그리고 차라리 용이 죽지 않고 그대로 망각의 안개 속에서 사람들이 지내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도 든다. 전사는 새로운 폭력을 준비하기 위해 용을 죽인다고 이야기 한다. 새로운 전쟁을 위해 용을 죽이고 용을 지키던 기사를 죽인다. 전혀 악의 없이 말이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브리튼족으로부터 부모를 잃었던 아픔 기억만이 그를 모든 시련을 극복하게 만든다. 전사가 그의 왕으로부터 뽑힌 이유도 기억을 잃지 않기때문이었다. 강력한 증오가 그의 기억을 잃지 않게 한 것이다. 주인공 노부부는 뱃사공을 다시 만난다. 섬까지 배를 태워 보내주는 뱃사공. 여기서 기억은 어떻게 작용하는가? 각기 다른 기억을 하게 되면 둘 다 섬까지 갈 수 없다. 남편은 그것이 불안했고, 부인은 그리 불안해 하지 않는다. 좋았던 기억, 싫었던 기억을 떠올리고 그것을 각각 뱃사공에게 전달한다. 뱃사공은 둘의 인연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 둘이 떨어질 일은 없을 거라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아내를 믿지만, 남편은 믿지 않는다. 먼저, 아내를 실고 떠날 것처럼 보이는 뱃사공, 아무 걱정 하지 말라고 그렇게 신신당부를 하지만, 남편은 뱃사공을 지나쳐 바다를 헤쳐 나간다. 이것이 마지막 장면이다. 섬까지 헤엄을 쳐서 가는 것일까? 알 수 없다. 아마 수용하는 도중 익사하거나 다른 괴물들에게 잡혀 먹을 수도 있다. 아내는 지친 몸을 배에 맡긴 채 뱃사공의 노젓는 힘에 의지해 섬까지 갈 것이다. '파묻힌 거인'이 잠에서 다시 일어나는 시간, 다시 폭력이 돌아온다. 그리고 기억이 반드시 좋은것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모든 기억이 다 떠오른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그저 기억의 일부만 떠오를 것이다. 패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에서도 역사, 혹은 기억이 가져 올 수 있는 왜곡을 소설을 통해 보여준바가 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영화 '메멘토'도 아무리 그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몸에 새겨보지만, 쉽게 왜곡되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서 작가가 말하고 독자에게 생각을 요구하는 것은 비슷한 것이 아닐까? 기억이 망각의 안개 속에 파묻혀 있을 때 사람은 오히려 행복할 수도 있다. 반드시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 수도 있다. 좋지 않은 것들에 대한 복수의 감정과 파괴의 감정이 일어나는 것 보다는 차라리 그런 것들이 없이 희미해진 과거에 치우치기 보다 지금과 나중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을 유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물을 헤쳐 나가는 장면은 새로운 의지의 구현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뱃사공이 어떻게 하든 그것에 의존하지 않고 나의 현재와 나의 사랑, 그리고 내 운명은 내가 개척할 것이라는. 그러나 기억의 구성이 잘못되서 왜곡이 된다하는 단점이 있다 하더라도, 그 못지 않게 기억을 되살려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그것이 폭력을 동반하더라도 말이다. 시비는 없다. 단지 여러 상황들이 있다. 그렇기때문에 저자는 등장인물들을 그렇게 엮어 놓고 선악을 구분하지 않았다. 망각의 입김을 뿜어내는 용조차도 불쌍해 보이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
|
가즈오 이시구로의 10년만의 작품인 파묻힌 거인은 놀라운 변신을 보였는데, 이번엔 역사 판타지물로 용과 도깨비, 괴물 그리고 늙은 기사와 전사가 등장한다. 망각의 안개로 뒤덮힌 마을에서 지난 날을 잊은 채 사랑으로 살아가던 브리튼족 노부부가 어느날 흐릿한 기억을 떠올리며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아들을 찾아 여행을 시작한다. 여행길에 아내 비어트리스가 남편을 잃을까봐 불안해하며 병을 앓고 있는듯 불편한 증세를 보이면서 이들의 여행길에 알 수 없는 그림자가 드리우며, 기이한 만남과 사건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색슨족 전사 위스턴이 이들 노부부의 여행길에 동행하고, 전설 속 아서왕의 조카로 알려진 가웨인 경이 늙은 기사의 모습으로 등장하는가 하면, 알수없는 비밀에 쌓인 수도원, 도깨비에게 잡혔던 뒤로 이상한 환각 증상을 보이는 소년 애드윈, 갖가지 기괴한 도깨비까지 등장하면서 작품은 신비한 분위기를 더해가며 점점 모호한 의문의 안개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들은 정말 아들을 찾아 떠나는 것일까? 며칠만 가면 아들이 사는 마을에 닿을 수 있다고 하는데 왜 그토록 오랫동안 아들을 찾지 않았던 것일까? 가슴속에 솟아나는 의문들은 모험담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점점 커져간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대답을 내놓지 않고 그저 물음을 던진다. 우리는 과거를 기억해야 하는가? 오늘을 좀 더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면 과거의 기억을 묻어야 할까?... (옮긴이의 글중에서)
|
|
가즈오 이시구로의 [파묻힌 거인]은 판타지의 색을 입었지만, 상당히 진중하고 무거운 무게감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그도 그럴것이 작가는 유고내전과 르완다 학살에서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주인공 노부부의 아들을 찾기 위해 떠나는 여정은 느리고 답답하지만, 종착에는 읽는 이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쭉 읽어내려가다가 무언가 얹히는 느낌, 기억에 대한 생각들, 무언가 기억나지만 흐릿해서 말문을 열 수 없는 많은 것들이 떠오름을 느낀다. 정의할 수 없는 막연함이 느껴질때쯤 이야기는 끝이 난다. |
|
역사 판타지물 형식의 소설 '파묻힌 거인'에서 가즈오 이시구로는 망각의 안개 때문에 과거를 잊고 사는 사람들과 세상의 얘기를 그려내고 있다. 나로서는 하나의 대단원을 맺게 되는 셈이다. '위로 받지 못한 사람들' 2권을 제외하고는(이 책은 내게는 너무 난해했다) 국내에 번역된 이시구로의 책들을 다 읽었다(즐거운 시간들이었다). '파묻힌 거인'이 그의 최고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결말 부분은 여전히 감동적이었다. 기억을 되찾든 아니든, 기억을 믿든 의심하든,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마지막 순간은 오고야 마는 것일까. 나에게는 용도, 도깨비도, 괴물도, 마법사도 아닌 브리튼족 노부부의 마지막(으로 추정되는) 순간을 함께하는 친절한 뱃사공의 설명과 배려가 가장 판타지적인 요소로 느껴진다. 기대와는 달리 우리 대부분은 그런 평온한 순간을 경험할 수 없을테니까. 이 책에 대해 내가 기억할 유일한 결론이다.
"섬에 가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해요, 공주." 그가 말했다. "그렇게 해요, 액슬. 이제 안개도 사라졌으니 할 이야기가 많을 거예요. 뱃사공은 아직 물속에 서 있어요?" "그래요, 공주. 이제 내가 가서 그와 화해할게요." "그럼 잘 가요, 액슬." "잘 가요, 내 하나의 진정한 사랑." 그가 물속을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내게 말을 걸어올까? 그는 우리의 우정을 회복하겠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내가 돌아섰을 때 그는 내 쪽을 보지 않고 다만 육지 쪽을, 작은 만에 지고 있는 석양만을 바라본다. 그리고 나 역시 그의 눈을 유심히 살피지 않는다. 그는 내 곁을 지나 계속 물속을 헤치고 가며 뒤돌아보지 않는다. 바닷가에서 날 기다려요, 선생. 내가 조용히 말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내 말이 들리지 않고 그는 계속 물속을 헤치며 간다. -p47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