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의 노래 / 데이비드 쾀멘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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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수족관과 동물원을 좋아한다. 동물들의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를 해치고 있는 곳이라 좋아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웅덩이속 귀여운 하마의 엉덩이, 여유로운 기린의 표정, 큰 수조속을 유유히 헤엄치는 고래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다. 아웅다웅하고 일희일비하는 내 주위의 좁은 관계에서 해방되는 느낌이 든다. 아마도 수족관이나 동물원이 없어진다면 그 속의 동물들을 보기위해 더 큰 비용과 시간을 들여 더 먼 곳으로 갈 수 밖에 없어서 나는 그곳의 존재를 마음속으로 지지하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도시공학, 생명공학 그리고 대학원에서 환경학을 공부한 분으로, <어린이과학동아>를 거쳐 <과학동아>기자로 일하고 있다. 환경과 보건, 에너지, 고인류, 물리 분야에 관심이 많다. 로드킬에 대한 기사로 2009년에 미국과학진흥협회에서 언론상을 받은 이력이 있다고 한다. 책에 등장하는 13종의 생명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생태계의 구성원입니다. 따라서 모두가 서로에 대해 한마디씩 대화를 건넬 수 있는 사이입니다. ... 그래서 이들에게, 서로를 향해 사람처럼 '말'을 할 수 이는 기회를 줘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서로에게 할 말이 많을거예요 ... 무엇보다, 제 아무리 긴 링크를 거친다해도 결국 연결될 운명인 것이 지구라는 폐쇄된 행성에 살고 있는 생물 모두의 당연한 삶이 아닐까요. 그러니 이들 생명의 가치에는 높고 낮음의 차이는 많지 않으리라 확신합니다. 적어도 한쪽이 다른 나머지의 삶을 좌지우지해도 좋을 정도로는 말이죠. 그 한쪽이 누구인지는 아시겠죠. <사라져가는 것들에 안부를 묻다> 는 인간과 동시대를 살고있는, 아니 인간보다 더 이전부터 지구의 주인이었던 13종의 동물들이 서로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두에서 설명하든 모두가 생태계의 구성원으로 서로 '만날 기회'는 없다고 해도 각각의 위치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고 이 관계를 인간의 '언어'를 통해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저자의 지식과, 이미 그 '동물'에 대한 공부를 충분히 한 다른 저자들의 지식, 여기에 상상력을 더해 보여준다. 생물학, 생태학등의 과학적인 내용을 토대로 하되, 단순히 '이해하기 쉽게'라는 기준에서 벗어나 풍성한 문학과 철학 내용이 어우러져 흡사 '에세이'같기도 한다. 과학적 사실과 철학적인 이야기가 어우러져 있지만, 인간에 의해 서식지가 파괴되거나 진화하거나 사라진 동물들의 이야기 속에서 아련함과 미안함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람들은 당신이 매우 못생겼고 징그러우며, 재수가 없는 동물이라고 말합니다. 영화나 만화에서 기분나쁜 악당의 소굴이나 마녀의 성을 묘사할 때면, 꼭 주위에는 달빛을 배경으로 당신의 그림자가 파닥이는 모습을 그리곤 하지요. 심지어 병균이나 바이러스를 옮기고, 가축이나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다는 말까지 합니다. 음습한 동굴에서 검은 날개막을 옷 삼아 거꾸로 매달려 자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합니다. 지구의 중력에 굴복해 사는 우리 사람들의, 그리고 대다수의 다른 동물들의 일상적인 생활 습과을 온몸으로 전복했기 때문일까요. 죽어서도 거꾸로 매달린다는 당신의 습성이 그악스럽게 보였기 때문일까요 / 사람이 박쥐에게 中 첫 시작은 사람이 박쥐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그다지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박쥐, 박쥐는 '전 세계 포유류 종의 20%'를 차지하는 종이 다양한 포유류 라고 한다. 책은 박쥐의 생태와 동굴속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변화된 모습을 '박쥐에게 이야기하듯' 과학적 사실에 근거하여 편지글 형식으로 풀어낸다. 박쥐의 초음파능력에 대해 설명하고, 박쥐의 종을 위협하는 '질병'에 대해서도, 기후변화나 풍력발전때문에 사라지는 박쥐의 '현재'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감정을 쏙 빼고 연대기표나 넘버링을 해가면서 하던 과학과 생태계 의 fact 속에 철학과 감정, 마음을 넣어 풍부한 Story를 만들어낸다. 혹자는 미운 마음에, 당신 따위 죽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건 착각입니다. 당신은 생태계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작은 박쥐 하나가 하룻밤에 먹을 수 있는 해충의 수는 3000마리 이상입니다. ... 뿐만 아닙니다. 과일과 꽃가루를 먹는 큰박쥐아목 박쥐들은 꽃가루를 옮겨줍니다. 벌처럼 식물 생태계를 연결시키고 농업을 돕는 역할을 하죠. 박쥐가 사라지면 열대 생태계 전체가 혼란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의 편견에 시달리는 박쥐이지만, 생태계에서는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종임을 설명하고 사라져가는 박쥐를 보호하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까지 함께 이야기해준다. 아는 만큼 더 좋아진다고 했던가? 챕터 하나만을 읽었는데 박쥐랑 굉장히 친해진 생각이 들면서 나도 그들의 존재를 지켜내기 위해 더 관심을 기울여야 겠다는 다짐까지 하게 만든다. 다음은 박쥐가 꿀벌에게 쓰는 편지가 이어진다. 똑같이 꽃을 사랑하고, 꽃 사이의 '짝짓기'를 완성해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고 사라져가는 종의 하나이기에 그들의 공통점은 퍽이나 많다. '사라져가는 꿀벌'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 편지는 꿀벌의 '집단생활'을 거쳐 양봉으로 이어진다. 꿀벌의 이야기를 하지만 그 속에서도 인간사회를 꼬집어 잠깐 비틀어주기도 한다. 요즘 당신의 이미지가 예전처럼 매력적이지 못하게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많이 듭니다. .... 다만 당신의 트레이드마크인 '근면함'이, 인간 사회에서 예전만큼은 각광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물론 꿀벌씨 당신 잘못은 아니에요. ... 근면한 개인이 자신의 삶을 책임질 수 없다는 허무함. 근면함이 가져올 성과에는 보이지 않는 낮은 천장이 있으리라는 부조리함. 노력할 이유도 동기도 사라져버리는 세상. 이런 철학적 허무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는 불운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한국 사회는 어느정도 허무주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꿀벌이 호랑이에게, 십자매가 공룡에게... 릴레이 형식으로 전하는 편지속에, 저자는 생태계에서의 그 동물들의 역할, 흥망성쇠, 편지를 쓰는 종과 건네받는 공간의 연관성, 존재의 '철학적 사유'까지 함께 버무려 정보와 감정을 함께 전달하는 특별한 이야기를 곳곳에 숨겨두었다. 과학동아의 기고와 서정시, 주역의 문헌이 함께 등장하는데 이렇게 위화감이 없을 수 있다니... 저자의 글쓰기 실력에 감복할 따름이다. 하나하나 설명하다가는 끝이 없을 것 같아, 마음에 담는 부분만 발췌하여 소개한다. 호랑이야, 나 네가 너무 그리워. 너를 본 지 너무 오래됐어. 네 울음 소리가, 숨소리가 기억 속에 희미해. 찬 공기를 통해 퍼지던, 적요한 몸짓이 내뿜던 소리없는 포효 소리도 꿈속 같이 멀게 느껴진다. 네 털 속에 숨어 붕붕거리며 기분 좋은 화음을 내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시간과 공간을 우리는 갈라져 살아왔지. 시간은 거의 한 세기에 가까워지고 있고, 공간은 삼천리 밖으로 벌어져 있어. 이 편지가, 그 아득한 간극을 메우고 과연 네게 닿을 수 있을까. 언젠가는 가 닿으리라 믿지만, 가까운 미래가 아니더라도 실망하지 않을께. 정말, 실망하지 않을게. / 꿀벌이 호랑이에게 中 비둘기만큼 전 세계의 야생과 도시 환경에 두루 적응해 번성한 동물은 달리 없어요. 오직 딴 한종이 있을 뿐이지요. 네 비둘기 아저씨도 잘 아는 바로 그 동물, 사람이에요. 대형포유류임에도 개체수가 70억을 넘게 번성하고 있고, 극지방을 포함한 전 세계에 발자국을 남기고 있습니다. 사실 사람을 제외한 그 어떤 동물이 보기에는, 사람이야말로 유해동물일지 몰라요. 온갖 환경을 점령하고 자신의 취향대로 바꾸며, 심지어 다른 동식물을 몰아내기도 서슴치 않지요. '비둘기는 하늘의 쥐'말고 '사람은 지상의 쥐'라는 음반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라고요. 그러나 비둘기 아저씨, 아저씨는 기죽지 말고 꿋꿋이 사세요. 비록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고 동상에 하얗게 새똥을 튀기며 사람들을 기겁하게 만들지만, 우리가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이 세상에 사는것은 아니니까요. / 고래가 비둘기에게 中 좀 다른 이야기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동이나 지능에 대해서는 과대평가를 하고, 다른 동물에 대해서는 과소평가를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앞서 제게 편지를 보내준 비둘기씨가 서운함을 표시한 적이 있는데, 비둘기의 인지능력이나 계산능력, 전략적 판단이나 학습을 하는 능력, 기억력 등을 보고 사람들은 놀랐다고 하더군요. 이런 놀라움은 애초부터 잘못된 편견을 가졌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동물에게는 사람과 비슷한 종류의 능력이 없다는 편견이지요. 하지만 사실 동물은 원래 사람못지 않은 인지, 계산, 판단, 학습, 기억능력을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데 그저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아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십자매가 공룡에게 中 아마 저자가 어설프게 과학과 다른 인문학을 접목시켰다면 이도저도 아닌 책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과학동아> 기자답게 책은 각각의 동물 (그것이 비록 멸록 멸종된 공룡이나, 네안데르탈인 일지라도)에 대한 최신판의 과학정보를 제대로 담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다른 장르로 확대, 펼쳐나감으로써 좀 더 매력적이고 한차원 더 나아간 콜라보레이션을 보여준다. 돼지와 고래가 도대체 어떤 연관성이있는지, 공룡의 모습이 실제로 어떠했는지,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는 연관성이 아예 없는것인지, 한국 호랑이는 과연 부활할 수 있는지, 나를 놀라게 했던 각각의 정보들은 왠지 스포일러 같아 독자들을 위해 남겨둔다. 마지막으로, 인간이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을 꼬집어 조금 가슴아팠던 문구를 소개하고 리뷰를 정리하고자 한다. 자의든 타의든, 인간은 언제부터인가 동물이 사는 새벽에서 배제됐습니다. 힘없고 몸을 보호할 다른 무기도 변변찮던 수백만 년 전의 초기 인류는, 자신을 사냥할 수 있는 육식 동물이 판을 치는 한밤과 새벽의 아늑한 어둠을 버리고 작열하는 태양이 지배하는 낮을 택했습니다. 인류는 낮에는 움직이고 밤에는 숨어 쉬는 주행성 동물이 됐습니다. 그 결과 새벽의 괴괴한 고요함을 충분히 낯설어하게 됐습니다. 새벽을 낯설어하게된 건 그저 미학적인 문제일지 모르지만, 동시에 벌어진 다른 일은 실질적인 문제였습니다. 인류와 다른 동물들과의 사이가 벌어졌습니다. 동물에 대해 인류는 점점 같은세계를 공유하는 일원이라는 인식을 잃어갔습니다. ... 인류의 삶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되는 동물은 없애고, 이롭다고 생각하는 새로운 토지개발을 위해서라면 서식지쯤은 우습게 파헤쳤습니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동물의 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았고, 그들의 생각과 느낌은 열등하다고 여겼으며, 말도 못하는 동물의 권리따위 골칫거리였을 뿐이었으니까요. 그들은 약한 존재였으니까요. '새가 전부 사라지면, 인간도 함께 멸종될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열심히 쌓아올린 문명과 과학이 한순간의 자연재해로 스러지듯 인간도 자연의 일부에 지나지 않다. 그래서 더더욱 함께 살아가는 '생태계의 존재'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그들을 망가뜨리는 것이 아닌 보호해야됨을 이 책은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에서 '자연'으로 생각의 깊이를 늘려준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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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의 제목을 접해들었을 때, 그냥 자기계발서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님, 잊혀진 사람들에게 편지정도 쓰는 내용을 담은 책 정도랄까? 그러면서 속으로 뜸금없이 MID출판사에서 이런책을 냈나? 싶어서 다시 한번 더 찾아봤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의 실체를 알게되고 꼭 읽어보고 싶었다.
이 책은 릴레이 편지를 담은 책이 맞다. 다만, 사람에서 사람으로 넘어가는 편지글이 아니라 지은이의 손을 빌려 동물이 동물에게, 동물이 곤충에게, 곤충이 또다시 동물에게 그렇게 편지를 쓰는 방식을 취한다. 그러나 시작은 인간에서 끝에는 인간들로 끝난다. 왜 끝이 복수냐고 물으면.... 편지의 시작은 한 사람이 박쥐에게 쓰는 편지로 시작하여 호모 사피엔스라는 인간을 칭하는 학명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다른 종들이 지은이의 손을 빌려 지금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인간들에게 하고픈 이야기들이 참으로 많았나보다.
그리고 그 못난 인간들은 우리에게 쓴 편지 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에게 쓴 편지까지도 가로채 읽고 있다니.... 인간 vs 인간이었다면 비밀침입죄라고 처벌 받았을텐데... 얼마나 인간이 야속하게 느껴질까? 더구나 인간들은 그들의 있는 자리마저도 위태롭게 만드는 종족일텐데 말이다. 책을 모두 읽고나니 왠지모를 숙연한 기분마저 든다.
내 자신은 태어나고 싶다해서 태어난 존재는 아닌데... 소위 만물의 영장이라 스스로를 칭하며 이세상에 있는 자연과 자연에 속해있는 부속물들을 마음대로 조리해 먹고, 이용하고, 해치고.... 그러면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살아가며, 문제점을 파악하고서도 그 문제를 '법'과 '관습' 등에 얽매여 사는 처지라 해결 못하는 생물이 인간이 아닐까?
무튼, 남의 편지들을 몰래 빼내어 읽어낸 비밀침입죄를 선고받아야 할 여기에 있는 또 한명의 인간이 다른 인간들에게 또 같은 죄를 받으라고 권하려고 한다. 이 편지들을 (이 책을 읽으며, 책의 편지를 내용별로 편지지에 옮겨주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그들이 읽지 못해 아쉬운 느낌도 든다.) 내 서평을 읽는 사람들에게 드립니다. 받으시지요? ^^
이 책은 '사실 멸종 위기의 동물들이 또 다른 동물들에게 남기는 자연과 환경, 함께 사는 철학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 표지에 쓰여있다. 가장 먼저, 어떤 못난(?) 인간 하나가 아니... 지은이 윤신영님이 박쥐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애절하기 그지 없더라구요. 박쥐에 대해서의 인식은 정말 좋지 못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박쥐는 어두운 곳에 있으면, 사람의 눈을 파먹는다 (정말일까? 그 내용은 책에 없어 궁금하다.), 흡혈귀이다. 피해야 한다는 등의 설이 존재하고 있는데, 사실, 박쥐는 사람들을 피해(?) 동굴에 살면서 그들끼리 초음파로 대화를 나누고, 깊은잠에 빠지곤 하며 음지에서 살아가는 동물일 뿐이란 사실에 놀랐다. 더구나 흡혈박쥐는 존재하지 않으며, 요새는 황금박쥐와 같은 개체는 수가 매우 낮아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사람이 지구의 거의 전체부분을 차지하고 살아가다보니 그들이 그런 음지로 밀려나 살게 된것은 아닐런지?
그리고 이 박쥐는 꿀벌에게 편지를 보냈다. 서로 전혀다른 세계에 사는 둘은 왠지모르게 서로에 대해 너무나 잘 아는 것이... 의심스럽지만... 얼마전 꿀벌들이 모두 폐사하고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언뜻 들었다. 그래서인지 집에도 이전에는 매해 벌꿀이 잔뜩 있었는데... 올해는 꿀이 없다. 정말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삶을 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들은 어떤 기생충들 때문에 멸종위기에 쳐했다. 이를 두고 어떤 학자가 말하기를 " 꿀벌이 모두 죽어 멸종하면, 지구의 종말도 멀지 않았을 것이다."했다. 나도 이 말을 듣긴 했다. 그런데.... 책에서는 그게 아니라고 한다. 이 세상에 여러 다양한 종들이 있기에 꿀벌을 대체할 다른 곤충이 나타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내 생각엔 꿀벌이 충매화들을 위해서는 가장 두손 두발 다 걷고 도와주는 곤충인데 그를 대체할 곤충이 누가 있다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제까지 어떤 개체가 멸종되면 그렇게 매꿔주는 다른 개체군이 존재를 했다. 이번에도 그럴까? 개인적으로 꿀벌은 없어지면 매우 우울할거 같다. 그럼 앞으로 벌꿀을 먹기 어려워 질테니까...
이 예쁜 꿀벌은 호랑이에게 편지를 썼다. 호랑이! 우리나라는 백두산 호랑이로 꽤 호랑이가 유명한데... 그들도 멸종위기에 쳐해진지 오래됐다고 한다. 불쌍한 호랑이.... 우리나라는 특히 호랑이와 관련한 전래동화들이 매우! 많은데... 그들이 사라져도 동화는 남아! 라고 말하며 쿨하게 보내줄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생태계 내 인간을 제외한 최상의 포식자로서 마음에 드는데... 신경을 좀 써줘야 할 듯하다.
호랑이는 까치에게 쓴다. 까지가 멸종위기라고?! 하며 읽으면서 의아하긴 했는데.. 역시 다읽고서도 의아하다. 확실히 도시에서 까치를 보기는 꽤 힘들다. 그런데, 시골로 가면 다른 새들보다 제일 많은게 까치던데.... 무튼 이 까치들도 역시 TV뉴스에 여기저기 둥지를 짓고, 사람의 일상을 괴롭히는 동물로하여 포획을 하기도 했다. (인간편리를 위해 ) 그래서 도시에서는 까치를 보기가 꽤 힘들게 되었고, 그들의 개체수도 확연히 줄어들었다고 판단하신듯하다. 무튼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회화를 보건, 작품을 보건... 호랑이와 까치는 같이 그려지는 경우가 무수히 많고, 동화속에서도 둘이 자주 등장한다. 그래서 둘이 친한 친구로 인정!!
첫번째 챕터는 그렇게 끝나고 다음 챕터는 육종과 진화를 주제로 돼지->고래, 고래->비둘기, 비둘기-> 십자매, 십자매-> 공룡 의 순서로 릴레이 편지를 쓰게 되는데, 이 챕터에서 돼지는 사람이 육종하여 키웠는데, 십자매도 사람이 원하는데로 육종하고 진화시켜 왔다는 생물이란 사실에 대해 크게 놀랐다. 이 챕터에서 우리 인간들이 역시 편의를 위해 육종도 하고, 키우며 쓸모없다 싶음 버리고... 돼지의 친척벌인 고래는 저 먼~ 바다로 쫓아내버리고, 돼지는 구제역 생겼다고 묻고, 태우는 이런 현상들 문제가 있는게 아닐까?
세번째 챕터는 가장 먼저, 버펄로가 사자에게 보낸다. 사자는 '동물의 왕'이자 '백수의 왕'이라 칭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자가 나타나면 온갖동물들이 줄행랑을 치며 도망치는데 무섭긴하지만. 실제 난 사자의 위엄을 잘 모르는 듯하다. 이전에 배우길 숫사자는 정말 게을러서 사냥도 암사자에게 시킨다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기에...
이 백수의 왕은 네안데르탈인에게 편지를 쓴다. 네안데르탈인은 그들은 호모 사피엔스의 친척벌이자 과거 같이 지구에 존재하던 또다른 인류이다. 현생인류와는 비교적 다르게 생겼지만, 이들이 그 유명한 구석기시대의 주먹도끼를 사용하던 그 종이다. 네안데르탈인은 인류에게 편지를 쓴다. 거의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이지만, 현재 인류에게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흐르고 있고, 조사결과 그들이 단순하게 그들끼리의 소통을 했다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사실, 능숙하게 소통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것이 아직 연구중이며 앞으로도 밝혀질 것이 많지만, 이들은 현재 멸종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유전자가 우리에게 흐르고 있다. 친척이라더니... 그렇게 네안데르탈인은 우리의 유전자속에서 앞으로도 같이 살아갈 것이다. 또한 그들의 마지막 부탁은 네안데르탈인에게 무관심했던것 처럼 현재 지구상에 살아가고 있는 모든 생물들에게 무관심하지 말고 같이 살아가자고 말한다.
이러한 내용이 담겨있으니, 모두 읽고나면 숙연해질 수 밖에...... 아무리 생태계가 세월이 흐르면 다시 원위치 된다고 해도 한 번 망가진 생태계가 복원되는 데에는 시간이 정말 많이 걸리며, 그 기간 인간뿐아니라 생태계의 많은 종의 동물들이 타격을 받고 없어지거나 개체수가 줄어든다. 그리고 사람은 사람과 사람사이에서도 상호작용하며 살아가지만, 생태계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으며, 사람도 자연의 일부일 뿐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기에 멸종동물들을 보호해야하며 그렇게 같이 상호작용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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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윤신영/MiD]멸종에 대한 재미난 인문편지
가을에 어울리는 책 한 권이다. 노랫말처럼 가을은 편지를 하는 계절이니까. 동물이 다른 동물에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릴레이 편지를 쓴다면 어떨까. 멸종 위기의 동물들이 편지를 남긴다면 누구에게 어떻게 남길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기에 언젠가는 멸종하겠지만 막상 닥친다면 유서를 남기듯 편지를 쓰지 않을까.
이 책에는 생태계의 먹고 먹힘에 대해 다루다가 <주역>의 구절을 등장시키기도 하고, 호르몬 반응을 언급하다다 시를 인용하기도 하며 멸종을 이야기하다가 영화장면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7쪽)
이 책은 생물학, 생태학 등의 내용을 담은 멸종에 대한 경고들이다. 문학과 철학을 담은 생존에 대한 사유이기도 하다. 동물이 종이 다른 동물에게 보내는 안부편지 같은 인문서다. 13종의 생명들이 서로 연결되어 릴레이 식 문안 편지를 나눈다. 각자의 관점에서 이야기할 기회를 준책이다.
세상은 복잡계 물리학, 복잡계 경제학, SNS처럼 모두 망으로 연결되어 있다. 지구촌은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상, 모든 생물들도 하나로 연결된 세상이다. 그러니 이렇게 릴레이 문안 편지를 나누다 보면 전 생태계가 연결될 것이다. 개체 수가 많은 인간, 최고의 포유류로 군림하는 인간이 같은 포유류인 물윗수염박쥐에게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을까. 환경부가 정한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인 물윗수염박쥐는 강원도 석회암 동굴의 구멍에 서식한다는 박쥐라고 한다. 당신이 떠난 텅 빈 동굴을 생각하며 이 편지를 씁니다. 당신이 아직 동굴에 머물고 있던 시절에 방문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합니다. 당신의 몸은 아직 냉기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 냉기는 곧 동굴의 냉기였습니다. 체열을 스스로 생산할 수 있는 포유류의 일원임에도, 겨울이면 몸의 온도를 낮춰 겨울잠을 자는 당신, (19쪽)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제 머리에 떠오른 것은 한 편의 시였습니다. 이성복 시인의 ‘파리도 꽤 이쁜 곤충이다’라는 제목의 재미난 시지요. 사람들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은 대상에 대해 막연히 편견을 가지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21쪽)
인간이 박쥐에게 보낸 편지엔 오마주의 성격이 강하다. 박쥐는 영화나 만화에서 나쁜 악당으로 나오거나 사람의 눈을 파먹는다거나 피를 빨아 먹는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지만 이는 인간들의 편견이기에 인간의 입장에서 애써 나서주고 싶을 정도라고 표현한다. 지구의 중력을 거부하며 거꾸로 매달리는 박쥐의 꼿꼿한 자존심, 생존을 위해 온도가 안정적인 곳인 동굴을 찾는 박쥐의 현명함, 체온을 낮춰 겨울잠을 자기에 최적인 장소로 동굴을 고른 탁월한 안목 등 구구절절이 똑똑한 박쥐에 대한 찬사의 나열이다.
동굴의 안쪽이 그 지역의 연평균 기온과 맞먹다니, 처음 듣는 말이다. 김선숙 박사는 붉은 박쥐(황금박쥐)는 220일을 잔다는 사실과 박쥐가 겨울잠을 자는 온도와 시기, 그리고 분포 사이에는 절묘한 관계가 있음을 밝혀냈다. 박쥐가 동면에 이르는 온도는 약 13°C이다. 그렇게 그는 붉은 박쥐의 동면 시기와 외부의 최저기온 변화가 직접적인 연관이 있음을 밝혀냈다. 그러니 박쥐의 분포와 동면 온도, 시기를 알면 기후변화를 추적할 수 있다는 얘기다. 편지엔 박쥐의 초음파 발사 능력, 비행능력, 몸집이 작은 종일수록 초음파의 주파수가 높다는 사실, 동굴 같은 곳에 있을 때가 숲 같은 곳에 있을 때보다 주파수가 높다는 사실 등이 나와 있다. 덤으로 판코박쥐, 관박쥐, 검은집박쥐, 황금박쥐(붉은 박쥐)의 , 토끼박쥐의 흰코증후군 등도 세세하게 편지에 적었다.
편지 속에는 박쥐의 습성, 종류, 특징들이 구구절절하게 담겨 있다. 영화 <매그놀리아>에서 개구리가 하늘에서 비처럼 내린 이야기, 2014년 1월 호주에서 10만 마리 박쥐가 하늘에서 떨어져 죽은 사연, 2012년 미국에서는 풍력발전소 때문에 60만 마리의 박쥐가 죽었다고 한다.
풍력기 앞에서의 바람의 압력 때문에 박쥐들의 장기가 파열되고 귀나 폐에 심한 상처를 받다니. 풍력발전소가 그 지역의 동물들에게는 치명타를 주다니. 조력발전소가 물범들에게 치명적이라니. 인간을 위한 친환경적인 발전소가 동물에겐 재앙이었다니, 에너지 문제를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정리해 보자. 박쥐는 전 세계 포유류 종의 20%를 차지하는 포유류다. 한국에는 23종이 살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1200여 종이 살고 있다. 팔과 다리, 꼬리가 연결된 날개막 구조를 이용해 새처럼 난다. 초음파를 이용해 어둔 곳에서도 먹이를 찾아내고 날 수 있다.
인간이 박쥐에게 보낸 편지에는 조해진의 <새의 종말>,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김경주 시인의 시도 소개되어 있다.
찬물에 종아리를 씻는 소리처럼 새 떼가 날아오른다.
새 떼의 종아리에는 능선이 걸려 있다. 새 떼의 종아리에는 찔레꽃이 피어 있다.
새 떼가 내 몸을 통과할 때까지
구름은 살냄새를 흘린다. 그것도 지나가는 새 떼의 일이라고 믿으니
구름이 내려와 골짜기의 물을 마신다. 나는 떨어진 새 떼를 쓸었다
-김경주 ‘새 떼를 쓸다’ 전문(44~45쪽)
모든 생물은 기온의 차, 환경의 차에 적응하기도 하지만 때론 적응 못하기도 한다. 적자생존, 자연도태설이 지배하는 세상이지만 때론 약자가 살기도 한다. 저자는 박쥐를 보호하는 방법을 이야기 하면서 생태계의 약자에서 사회적 약자로 옮겨가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이 책은 인문편지다. 인간이 박쥐에게, 박쥐가 꿀벌에게, 꿀벌이 호랑이에게, 돼지가 고래에게, 고래가 비둘기에게, 비둘기가 십자매에게, 십자매가 공룡에게, 버펄로가 사자에, 사자가 네안데르탈인에게, 네안데르탈인이 인간에게 보내는 안부편지 형식의 인문편지다.
형식도 새롭고, 내용도 참신하다. 과학과 문화가 만나고, 생태계와 철학이 만나니까. 멸종에 대한 인문서 같다. 지구를 스쳐갔던 지난 생물들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그들 사이에 오간 편지가 있다면 이럴까. 발칙하고 참신한 발상에다 내용은 진국이기에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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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멸종을 다룬 책『멸종』을 읽었다. 다섯 번의 대멸종 사건을 짚어보고, 제6의 멸종에 위기의식을 느끼며 경각심을 가지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100만 년에 2~3 종이 사라진다는 진화론의 세계, 지금도 이 세상에서 어떤 종은 사라지고 있다. 주변에 많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하나 둘 사라져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꿀벌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말 꿀벌이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는 것인가?' 의문을 갖게 되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고,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다.
이 책은 기획 자체가 신선했다. 사라져가는 것들이 안부의 편지를 전하는 구성이다. '인간이 박쥐에게, 박쥐가 꿀벌에게?' 사라져가는 것들이 서로 어떤 안부를 주고 받을지 궁금했다. 그와 더불어 이 세상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보고 싶었다. 부담없이 서간문 형식으로 된 이 책『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를 읽으며 세상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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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새로운 방식으로 과학을 읽고 사유할 수 있게 하는 책의 사례를 만들어 보고자 했습니다.
색다른 과학 텍스트가 등장하는 밑거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프롤로그 7쪽)
저자의 시도는 기대 이상의 성공적인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과학이 어렵다는 선입견을 가진 나에게 이 책은 쉽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게다가 사람이라는 존재로서, 박쥐, 꿀벌, 호랑이, 까치, 고래, 비둘기 등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과학에 접근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해준 책이다.
이 책에는 가장 먼저 인간이 박쥐에게 보내는 편지글이 실려있다. 사실 나 또한 박쥐는 음습한 동굴에서 검은 날개막을 옷 삼아 거꾸로 매달려 자는 모습을 불편하게 생각한다. 편지글을 보면 박쥐를 귀엽게 볼 수도 있지만, 첨부된 사진을 보면 다시 원래의 느낌이 되살아나 몸서리쳐지는 것이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일단 생긴 것은 둘째로 하고, 박쥐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흡혈박쥐는 오직 남미에만 사는 극히 일부의 박쥐(세 종)뿐이며, 그나마 사람이 아닌 가축의 피를 먹습니다. 서양의 뱀파이어 전설과는 아무 관계가 없고,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아요. (33쪽)
요즘 미국에서는 2006년부터 몇 년째 흰코증후군이라는 박쥐 병이 대유행이고, 일부 종은 그 지역에서 거의 멸종에 이를 정도로 피해가 심각하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보게 되었다. 작은 박쥐 하나가 하룻밤에 먹을 수 있는 해충의 수는 3000마리 이상. 박쥐가 사라지면 그에 따른 생태계 교란도 불보듯 뻔한 일이 될 것이다.
릴레이식 편지글은 박쥐가 꿀벌에게 보내는 편지로 이어진다. 꿀벌이 박쥐에게 편지를 쓴다? 박쥐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소연하기도 한다. 이 편지글을 읽다가 놀라게 된 사연은 '낭충봉아부패병'관련 글과 사진이었다. 2010년부터 전국을 휩쓸던 '낭충봉아부패병'이라는 전염병 때문에 동양 꿀벌의 상당수가 집단폐사했습니다.(56쪽) 꿀벌의 하소연은 이뿐만이 아니다. 서양에서는 '봉군붕괴현상'이라고 불리는 기묘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유없이 어느날 갑자기 그냥 '사라집니다' 이런 일도 있었구나! 현재 자연 생태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글을 많이 볼 수 있다.
호랑이에 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조선 전기와 중기까지만 해도 호랑이는 산 속 외에도 야트막한 지형의 물가 습지에서도 태연히 살았다니,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흥미롭다. 굳이 도시로 데려와 애지중지 키우다가 이제는 도시에 너무 많아졌다고 혐오동물 취급하고 있는 비둘기, 비둘기가 십자매에게 쓴 편지를 통해 알게 되는 십자매의 과거와 노래능력 등 다양한 이야기로 그 동물에 대해 새로이 알게 되는 점이 많았다는 것이 이 책을 읽는 맛이었다.
이 책은 사라져 가는 동물들에 관해 상세한 정보를 전해주고 있어서 사실전달면에서 뛰어나다. 게다가 우리의 일상에서 일반인이 잘못 생각하던 것을 일깨워주기도 하고, 문학,철학적인 면으로도 접근해주어서 읽을 거리가 풍성한 책이다. 가독성이 뛰어나고, 누구든 한 번 쯤 다른 종에 대해서 그 입장에서 생각해볼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이 책의 색다른 시도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시작으로 이런 시도가 다양하게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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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 저자 윤신영 | MID | 2014.10.22 페이지 348 | ISBN 9791185104126
독특한 과학에세이입니다. 과학 용어 일색으로 딱딱하거나 건조무미한 듯 간결해야만 하는 기존의 과학 글쓰기 방식에서 벗어난 편지글 형식의 과학에세이거든요. 그렇다고 구구절절 감성만 가득할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 과학과 인문의 만남이 참 멋지게 어우러졌답니다. 생물학, 생태학을 바탕으로 문학과 철학이 켠켠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 책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이 책은 멸종된 동물 또는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의 릴레이 편지가 담겨있습니다. 전혀 상관없을 것 같아 보이지만 생태계에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13종의 생명이 주인공입니다. 막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편견을 가진 이들은 이 글을 보며 놀라운 사실들을 알게 될 겁니다. 편지글 형식이라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이 글에 잘 담겨있는 느낌입니다.
다른 어떤 동물보다 예민하고 정확한 온도 감각을 지닌 박쥐. 무시무시하고 바이러스가 득실댈 것만 같은 이미지로 우리에게 인식되어 있는 박쥐였는데 인간이 박쥐에게 보낸 편지를 읽으며 편견을 싹 없애게 된 계기가 되었네요. 박쥐가 왜 동굴에서 사는지, 동굴과 박쥐의 긴밀한 관계 등 다양한 과학지식은 물론, 왜 박쥐가 생태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자연의 힘을 이용하며 재생에너지로 각광받는 풍력 발전, 조력 발전처럼 생태계에 그다지 문제없어 보이는 발전 시설이 그 지역에 살던 동물에게는 재앙이 된 사례는 충격적이기도 했어요. 게다가 작은 박쥐 하나가 하룻밤에 먹을 수 있는 해충의 수는 3000마리 이상이라고 하네요. 박쥐가 줄면 결국 인간에게 되돌아오는 것은 해충 떼일 테지요.
『 사람이 사라진 세상은 특별히 더 좋을 것도 없겠지만, 특별히 더 나쁠 것도 없을 거예요. 세상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스스로 그러한(자연) 모습 그대로 일 거예요. 』 - p84
지난달에 읽었던 <생명 시작의 끝과 시작, 멸종> 책에도 나왔지만 생태계를 구성하던 동식물이 사라지는 멸종이 불과 100여 년 만에 엄청나게 이뤄졌습니다. 인간에 의한 선택으로 인한 진화가 동식물에게서 나타나게 되고, 반대로 인간의 선택으로 숱한 동식물이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해로운 동물을 쓸어없앤다는 명목으로 인간이 행하는 일들을 생각해봅니다. 우리가 과연 '없앨' 권리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합니다. 위험 요소가 되는 대상을 무조건 없애면 된다는 사고방식만이 아니라, 위해가 될 수 있는 동물과도 지구를 나눌 수 있다는 또 다른 사고방식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쉽지 않을 거라 외면하지 말고 시도할 가치가 있다는 인식이 중요한 거겠지요.
『 어쩌면 인간과 비둘기 둘 사이의 다툼은, 생존력 강한 두 동물이 도시라는 생태계를 동시에 점유하면서 일어나는 어쩔 수 없는 분쟁이 아닐까 싶네요. 』 - p191
다른 동물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야말로 유해동물일지도 모릅니다. 애초에 잘못된 편견을 가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동이나 지능에 대해 과대평가를, 다른 동물에 대해서는 과소평가를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군요.
주어진 환경에 적극적으로 조절하는 능력인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그 어느 종보다도 탁월한 인간. 하지만 문명화에 성공한 사람은 사자의 위협에서 벗어난 대신, 만성적인 미지의 압박을 받게 되었다는 부분에서는 피로사회인 현재를 떠올려봅니다.
지구의 역사 속 무수한 멸종 동물 목록의 말단에 이름이 올려진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척 인류였던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종(네안데르탈인)이 현재 우리 인간, 호모 사피엔스종에게 전하는 글은 더욱 애틋하네요. 닭을 제외하고 가장 개체 수가 많은 종이 호모 사피엔스, 바로 인간입니다. 개체 수가 가장 많은 닭 역시 공장식 축산업이란 이름으로 인간이 인위적으로 손 댄 결과겠고요. 어쨌든 인간의 번성을 이유로 다른 동물의 살 권리를 억압하는 것은 정당성을 얻기 힘든 일이라는 것을 지적합니다. 같은 세계를 살아가는 일원이라는 인식이 전혀 없다는 것이죠.
생태 지식 정보는 물론 그리움이 담긴 편지글 형식의 과학에세이 <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를 통해 공존의 마음을 가지길 바라봅니다. 생명의 가치에 더 중하고 덜 중함은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인간 역시 생태계의 일부분이라는 인식을 잊는다면 결국 공멸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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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생태계의 먹고 먹힘에 대해 다루다가 <주역>의 구절을 등장시키기도 하고, 호르몬 반응을 언급하다가 시를 인용하기도 하며 멸종을 이야기하다가 영화 장면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현대 사회는 과학이 사회와 문화적 맥락 여기저기에 깊숙하게 스며 들어 있고, 또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사회입니다. 이 책의 노력은 미완일 수 있지만, 색다른 과학 텍스트가 등장하는 밑거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지구촌 사람들은 대여섯 단계만 거치면 누구와도 연결된다
예전에 흔히 쓰던 말 중에 '한두 다리 건너면 아는 사이'라는 말이 있었다. 사회적 동물인 우리 인간은 과거에 그만큼 서로 가까웠다는 말이다. 현재 지구촌의 인구는 70억 명을 상회하고 있다. 그래서 요즈음엔 대여섯 단계를 거치면 지구촌 사람들은 누구나 다 연결된다고 말하며, 이는 네트워크 과학이라는 분야로 발전되었다.
앞으로는 과학과 통신 수단이 발달하면서 거치는 단계가 점점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무튼 '아는 사이', 이는 우리 인류에게만 국한되는 얘기가 아니다. 1만 킬로미터가 넘는 지역을 이동하는 철새, 남북위를 가로지르며 큰 바다를 자유자재로 헤엄치는 고래 등 동물의 생태계 또한 상호 연결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사실 지구촌 생명체는 현재 포유류가 장악하고 있다고 표현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대형 포유류 중 가장 많은 개체수를 자랑하는 동물은 무엇일까? 맞다. 바로 우리, 사람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증가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유산을 지구촌의 절대법으로 금한다면 아마도 더 크게 늘어나지 싶다. 포유류뿐만 아니라 양서류, 파충류 등으로 확장해 봐도 하나의 종種으로서 사람보다 개체수가 많은 동물은 닭뿐이다. 2009년 FAO 기준 186억 마리나 된다. 어쩌면 우리가 술안주로 열심히 치킨을 먹는 이유도 그래서일 듯하다.
사람이 앉은 자리에 풀도 자라기 어렵다는 말처럼, 인간이란 종은 정말 독하다. 아무튼 대형 동물 종은 분명 사람보다 개체수가 적다. 지구라는 행성의 대멸종의 역사를 살펴보면 한 종의 개체수가 지나치게 많을 경우 멸종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지구의 심판은 물도 불도 아닌 인간에 의해 발생하지 않을까?
책은 여러 종의 동물들이 릴레이하듯 서로가 서로에게 쓰는 편지를 싣고 있다. 정말 재미난다. 편지란 수신자의 안부를 묻는 것이 가장 기본이다. 발신자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이는 수신자의 안부로 모아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편지글의 특징은 제삼자인 인간들에게 의미심장한 안부를 묻고 있는 듯하다. '밤새 인간은 안녕하신가?' 처럼 말이다.
이 책은 생물학, 생태학 등 과학적인 내용을 뼈대로 하되, 문학이나 철학 내용을 가미함으로써 더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마치 잔칫상을 받은 기분이 들 정도이다. 대체로 과학에세이를 어렵고 딱딱하다고 여긴다. 좀 더 쉽고 이해하기 편하도록 쓰라고 무언의 압력을 많이 받아 왔다. 아니 지금도 받는 중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이를 거부(?)하고 대신에 편지글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도입했다.
저자 윤신영은 연세대학교에서 도시공학과 생명공학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환경학을 공부했다. <어린이과학동아>를 거쳐 현재 <과학동아> 기자로 일하고 있다. 환경과 보건, 에너지, 고인류, 물리 분야에 관심이 많은 편이며 라디오 환경 코너를 진행했고, 환경단체 소식지 고정필자로도 활동 중이다.
<노벨도 깜짝 놀란 노벨상>(과학동아북스, 2012), <과학, 10월의 하늘을 날다>(청어람미디어, 2012, 공저), <백인천 프로젝트>(사이언스북스, 2013, 공저) 등을 썼고, 번역서로 <소셜 네트워크>(과학동아북스, 2012)가 있다. 특히, <길 위의 공포, 로드킬>(2008년 6월 15일)이라는 특집 기사로 2008년 11월 미국과학진흥협회(AAAS)의 '어린이과학뉴스' 부문 과학언론상을 수상했다.
어느 개체, 어느 종이든 생명의 다른 이름은 죽음이고, 진화의 끝과 시작은 멸종이다. 사라져 가는 생명들 또한 모두 서로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 거대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하나의 죽음이 때로 한 종의 씨앗이 되고, 그리고 한 생명의 존재는 종종 우주 자체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살아남은 종은 또 다른 종의 안부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책은 제일 먼저 인간이 박쥐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한다. 그러면 박쥐는 인간에게 보내는 답장 대신 꿀벌에게, 다시 꿀벌은 호랑이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서식지가 파괴되는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다음으로 돼지가 고래에게, 고래가 비둘기에게, 비둘기가 십자매에게, 십자매가 공룡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우리는 진화를 배운다. 마지막으로 버팔로가 세렝게티의 사자에게, 사자가 네안데르탈인에게, 네안데르탈인이 인류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함께사는 공생을 깨닫도록 한다.
황금박쥐는 어디로?
당신이 떠난 텅 빈 동굴을 생각하며 이 편지를 씁니다. 당신이 아직 동굴에 머물고 있던 시절에 방문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합니다. 당신의 몸은 아직 냉기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 냉기는 곧 동굴의 냉기였습니다. 체열體熱을 스스로 생산할 수 있는 포유류의 일원임에도, 겨울이면 몸의 온도를 낮춰 겨울잠을 자는 당신, 저는 당신을 굳이 깨울 생각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자는 모습을 들여다보고 나왔답니다. 지금 그 때의 기억을 되살려 당신에게 그리움의 편지를 씁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박쥐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다. 못생겼고, 징그럽고, 재수가 없는 동물이라고 말이다. 회사내에서 동료들에게 '박쥐 같은 놈'이라고 듣는 것은 최악의 혹평이다. 즉 의리 없이 여기 저기 붙어먹는 존재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은 상태의 대상물에 대해 막연하게 편견을 가지는 때가 많다.
사실 만화나 영화에서 악당의 소굴이나 마녀의 성을 묘사할 때, 달빛을 배경으로 박쥐의 그림자가 파닥이는 모습을 그리곤 한다. 또 음습한 동굴에서 검은 날개막을 옷 삼아 거꾸로 매달려 자는 모습은 보는 이를 상당히 불편하게 만든다. 지구의 중력에 순종해서 살고있는 우리 인간들에겐 무척이나 비정상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경남 충무나 고성 일대에서는 파리를 '포리'라 한다
- 이성복, <파리도 꽤 이쁜 곤충이다> 중에서
동물이 동굴에 거처를 마련하는 것은 꽤나 오래되고 보편적인 습성이다. 환경적으로 비바람 등을 피할 수 있는 안정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박쥐는 겨울잠을 잔다. 겨울잠은 먹이가 없는 겨울을 잘 견딜 수 있도록 몸의 대사를 최저로 낮추는 생존의 본능인데,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체온을 일정하게 낮은 온도로 유지하는 것이다. 동굴의 입구는 찬 공기의 유출입으로 온도가 낮지만 안으로 깊숙할수록 공기 유입이 적어 온도가 상승한다. 한참 들어가다 보면 더 이상 온도가 오르지 않는 지역이 나온다. 바로 '항온대恒溫帶'이다. 그래서 박쥐는 겨울잠을 동굴에서 잔다.
동면중인 붉은박쥐
붉은박쥐(황금박쥐)는 다른 종보다 일찍 겨울잠에 들고 이듬해 늦게 깨어난다. 10월 중순에 겨울잠에 들어 5월 중순에 깨어난다. 1년 중 220일 동안 겨울잠을 자는 잠꾸러기다. 국립생물자원관 김선숙 박사는 특이한 겨울잠 패턴을 연구한 결과, 동면시기는 외부 최저기온 변화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음을 발견했다. 붉은박쥐는 섭씨 13도에 겨울잠에 들었다.
뱀파이어 전설의 주인공 흡혈박쥐는 오직 남미에서만 사는 극히 드문 종이다. 그나마 흡혈도 사람이 아닌 가축들의 피를 먹는다. 서양의 뱀파이어 전설과는 전혀 무관하다.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 등장하는 흡혈귀는 사람만큼 크다. 어찌 박쥐의 덩치가 크다 한들 이렇게 사람에게 달려들겠는가? 이처럼 정확하지 않은 판타지물은 사람들에게 혼란만 가중시킨다. 결코 박쥐는 사악한 동물이 아니다.
전 세계의 박쥐는 큰박쥐아목과 작은박쥐아목으로 크게 분류된다. 덩치가 비교적 큰 큰박쥐아목은 주둥이가 뾰족하고 눈이 크다. 언뜻 보면 날아다니는 여우나 개처럼 생겼기에 '날여우박쥐'라고도 불리는데 대부분 열대나 아열대 지방에 분포하며 한국에는 없다. 반면 작은박쥐아목은 극지방을 제외한 전 세계에 살며, 크기가 아주 작고 한국에 사는 종이다.
큰박쥐아목 박쥐는 과일이나 꽃가루, 꿀 등을 먹고사는 초식성이고, 작은박쥐아목 박쥐는 말이 육식이지 대부분 곤충을 먹고 사는 육식성이다. 앞서 살펴본 흡혈박쥐는 육식성으로 작은박쥐아목이므로 영화에 등장하는 뱀파이어처럼 사람 피를 빨아 먹는 경우는 결코 없다.
2008년 2월,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서는 박쥐의 조상 '오니코닉테리스 핀네이'의 골격 화석을 발표했다. 현재의 박쥐와 거의 비슷한 날개막 골격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두개골의 구조를 분석한 결과, 초음파를 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왜냐하면 초음파를 내고 반사음을 받아들이는 역할을 담당할 기관이 머리에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음파를 내게 된 것은 일정 기간 진화를 거친 후였음을 알게됐다. 전 세계 박쥐의 15%는 초음파 능력이 없다.
멸종위기 야생동물, 작은관코박쥐
2014년 8월, 오대산국립공원사무소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 작은관코박쥐가 오대산에 서식하는 것을 처음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 박쥐는 동굴에 살지 않고 숲 속 나무 껍질이나 낙엽 아래에서 생활한다. 일반적으로 동굴이 박쥐들의 아파트임을 감안할 때, 매우 특이한 케이스이다.
어릴 적 시골에선 해질녁에 박쥐를 제법 많이 보았다. 특히 여름엔 더 했던 것 같다. 아마도 이는 집박쥐 또는 검은집박쥐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여름철 모기나 하루살이 등 먹이를 사냥하러 나선 것이리라. 이런 이름이 붙은 데에는 사람들이 사는 집의 처마 밑에 살았기 때문이다. 본디 박쥐는 1년에 단 한 마리만 낳는다. 긴 겨울잠을 자야 하는 특성 상 번식 성공률을 최대화하려는 번식전략 탓이다. 하지만 집박쥐는 한 번에 서너 마리를 낳는다.
토끼박쥐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으로 지정된 또 다른 녀석은 바로 토끼박쥐다. 이름처럼 귀가 길고 몸이 작아 곤충처럼 날렵하게 날 수 있다. 다른 동굴성 박쥐보다 비교적 일찍 겨울잠에서 깨는 종이다. 제일 먼저 살펴 본 붉은박쥐는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인데, 박쥐연구가 손성원 경남대 교수는 "박쥐 개체수가 70년대에 비해 80~90년대에 반으로 줄었다"고 말한다.
개구리 비로 도로 바닥이 모두 개구리 시체들이다
영화 <매그놀리아>의 마지막 장면은 하늘에서 개구리 비가 내린다. 1981년 그리스 네프리온에선 약 12분 동안 하늘에서 실제로 개구리가 떨어져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1989년 호주 입스위치에선 갑자기 하늘에서 5만 마리가 넘는 정어리가 소나기처럼 내리기 시작했다. 왜 그랬을까? 과학적으로는 토네이도 설이 가장 유력하다. 즉 토네이도에 의해 빨려 올라간 생물이 다시 떨어진 것이란 설명이다.
2014년 1월, 호주 동북부에선 하늘에서 10만 마리가 넘는 박쥐가 우수수 떨어졌다. 그 원인은 남반구를 덮친 기록적인 이상고온 현상 때문이었다. 미국 등이 한파로 고통받고 있을 때, 반대로 여름이던 남반구는 더위가 극심했던 것이다. 박쥐들이 그 무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한꺼번에 죽어나간 것이다.
환경운동의 고전 격인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1962년)의 첫 대목도 무척 인상적이다. 봄, 꽃이 피어 화려한 색의 잔치가 열렸음에도 늘 듣던 새들의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이게 무슨 일인가? 살충제와 제초제를 뿌린 지역에 새들이 살 수 없어서 떠나버린 탓이었다. 곤충들을 먹고사는 새들에게 곤충이 없다면 생존을 위해 당연히 삶의 터전을 옮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늘을 나는 박쥐가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을 가득 채우던 새들의 소리가 침묵으로 바뀌는 순간, 그 어떤 경고음보다 더 불길하다. 친환경 재생에너지로 각광받고 있는 풍력발전도 우리에게 문제점을 시사하고 있다. 북미 전역에서 풍력발전소 아래에서 박쥐 시체가 가장 많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2012년 한 해 동안 미국에서 풍력발전소 때문에 죽은 박쥐가 무려 60만 마리이며, 이는 풍력발전기 날개에 맞아 죽었다는 것이다.
생물의 세계에서 가장 먼저 예민하게 기후변화를 느끼는 약자弱者가 바로 박쥐이다. 동굴에 숨어 있다가 야밤에 돌아다녀서 눈에 잘 띄지 않아 그 존재에 대한 관심이 없었기에 갑자기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져 우리 인간들에겐 무척 충격적이었다. 작은 박쥐 하나가 하룻밤에 먹을 수 있는 해충의 수는 3천마리 이상이다. 과일이나 꽃가루를 먹는 큰박쥐아목 박쥐들은 꽃가루를 옮겨준다. 박쥐가 사라지면 열대 생태계가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박쥐와 자연에게 가는 길이 멀지않고, 박쥐와 자연, 그리고 인간은 모두 다 하나다. 박쥐를 만나고 지켜주는 일은 영원히 지속돼야 할 것이다.
지구 역사상 유례 없는 대형 포유류의 전성기
아프리카 밖으로 진출했을 때도, 당신의 수는 그리 눈여겨 볼 만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 수는 더 소수로, 아마 수백~수천 명의 인구가 조금씩 홍해 북쪽의 육지나 아라비아 반도로 나갔을 것입니다. 당신의 일부는 동쪽으로 진로를 바꿔 인도와 동남아시아를 거쳐 호주까지 진출했습니다. 이런 확산은 무척 빨리 이뤄져서, 호주에서는 이미 5만~6만 년 전에 당신이 남긴 흔적이 남아 있을 정도입니다. 아마 따뜻한 기후를 보이는 열대우림 덕분에 살기 좋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책의 마지막 편지는 네안데르탈인이 우리 인류에게 보낸 것이다. 2012년, 공식적으로 전 세계의 인구는 70억을 넘겼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유일하게 닭만 인류의 개체수를 넘어설 뿐이다.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털복숭이 인류가 처음 아프리카에 탄생했을 때는 보잘 것없는 하나의 종이었다.
지금은 작은 섬으로 떨어진 동남아시아부터 호주 사이도, 빙하기여서 낮아진 해수면 덕분에 육지로 이어진 곳이 많았고, 배를 통한 이동도 지금보다 손쉬웠을 것이다. 반면 지금의 유럽인 서북쪽으로 가는 흐름은 더뎠다. 지리적으로 더 가까웠음에도 불구하고 훨씬 춥고 척박한 곳이었기에 약 4만 년 전 즈음에야 유럽에 진출할 수 있었다.
동서로 갈라져 유라시아를 횡단하고 있을 때, 지구는 비교적 따뜻한 간빙기였다.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가 공존하던 시기에도 비교적 따뜻한 날이 이어졌다. 온화한 환경 속에서, 인류의 인구는 점점 늘어났다. 네안데르탈인이 스페인 지브롤터해협 끝에서 마지막 흔적을 남기며 사라지고 있을 2만 4천년 전 현생 인류의 개체수는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마지막 빙하기의 절정을 겪으며 인구의 증가 추세는 주춤해졌다. 약 1만 8천~2만 1천년 전 즈음 해수면이 낮아진 덕에 유라시아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은 연결되었고, 이를 틈타 인류는 디딜 수 있는 모든 육지에 거의 진입할 수 있었다.
현생 인류는 농업혁명과 신석기 기술 혁명이 이뤄진 약 1만 년 전 이후부터 비로소 1천만 명을 초과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 각지에 철학이 꽃피던 기원전 500년 쯤 인구는 1억을 넘어섰고, 중세 시대에 수억을 돌파한 후 산업혁명이 있었던 19세기에 드디어 10억을 초과했다. 이어서 20억은 1927년에, 30억은 1959년에 돌파했다. 이후부터 약 12~15년마다 10억 명이 늘어나고 있다. 아마도 앞으로 인구의 증가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란 예측도 있다.
"더 놀라운 것은 단 하나의 종, 호모 사피엔스라는 사실이다"
이젠 현생 인류와 닮은 종은 없다. 모두 사라졌다. 우리 인간만이 홀로 살아남은 인류이다. 이미 인류의 개체수는 자연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만약에 다른 동물이 이런 수준으로 증가했다면 '창궐'이란 용어를 사용하면서 인간은 구제내지는 박멸에 나섰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동물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과연 인간만이 이 지구라는 행성을 독차지할 권리가 있을까? 다른 동물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사냥을 즐기면서 또 기후변화를 초래하는 일을 해도 무방할까? 현생 생물체 중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종은 현화식물과 벌과 나비 같은 곤충이 아니던가 말이다. 이는 서로 공생하면서 이로움을 주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들에게 해답은 던져진 셈이다. 공존이다.
오르한 파묵의 소설 <하얀 성>은 우리에게 철학적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오스만 제국에 납치된 베네치아의 어느 한량이 그곳에서 자신과 닮아도 너무도 닮은 판박이 사람을 만난다. 주인공은 그 사람의 집에 감금된 채 고향으로 돌아갈 기약 없는 날만 기다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주인공은 오스만인에 대한 동질감을 느끼게 되고, 주인을 대신해 오스만 제국의 정계에서 활약한다. 결국 두 사람은 자신들의 운명을 맞바꾼다. 주인공은 오스만 제국에 남고, 주인은 베네치아로 간다.
인류의 삶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되는 동물은 마구 죽이고, 돈이 되고 이롭다고 생각되면 동물의 서식지는 안중에도 없이 토지개발을 감행한다. 본디 산의 주인은 그곳에 거처를 정해 살던 동물과 식물임에도 산행을 간 인간의 무리들은 "야호"를 외쳐대며 동식물의 삶을 짓밟는다. 약자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약자를 돌보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인간에게 돌아오는 이익이 거의 없다고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맹자의 꾸지람이 귓가에 맴돈다.
"왜 하필 이익에 대해 이야기합니까. 인의仁義를 이야기해야하지요!" - <맹자>, '양혜왕 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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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형식을 빌려 내가 아닌 읽는 이의 안부를 다정히 묻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정하고 그리운 인사들이 켜켜이 쌓여있지만,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그들 모두 사라져가는 동물들이 서로를 향해 내지르는 외마디 비명에 더 가깝다. 책을 읽는 동안 인간이라는 종이 참 싫어졌다. 그리고 내가 그 인간이라는 사실이 매우 공포스럽게 다가왔다. 동물의 시선으로 담아내는 우리가, 내가, 인간이 경멸스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이 책은 ‘너희가 잘못이야!’라는 직접적인 꾸짖음을 담고 있지 않음에도, 동물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 메세지를 강렬하게 전달하고 있다. 공존, 공생하기보다는 오로지 인간의 관점에서 행해지는 대량 학살들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왜 인간은 자연과 함께 살기를 일순위에 두지 않을까. 왜 이 지구가 마치 우리만의 소유물인 듯 마음대로 훼손하고 바꾸고 정돈할까. 그러다 문득, 마지막 편지에 눈길이 갔다. 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는 이 책의 마지막은 ‘인류’였다. 그래, 이대로라면 인류 역시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피어오른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살아간다면, 조금도 바뀌지 않는다면 결국 이 지구에서 추방당하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인류일지도 모르겠다. 앞을 내다볼 수 있으면 좋겠다. 거시적으로 바라볼 때, 무엇이 옳은지 판단할 수 있으면 좋겠다. 공생하는 삶으로 노선을 바꿀 수 있으면 좋겠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많은 것을 취하려 허우적대지 않고 나를 위해 남을 해하는 것을 당연시 하지 않으면 좋겠다. 나부터 먼저 할 수 있는 공생의 길이 무엇인지 돌아본다. 지구에서 별 것 아닌 존재였던 시절의 우리에게서 오히려 배울 것들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 p. 81. 노동한 만큼 얻을 수 있는 게 꿀벌 씨와 저 박쥐가 사는 세계의 윤리학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원을 축적하면서 이런 단순명쾌한 법칙을 버렸습니다. 인간 사회 곳곳은 '꿀을 이미 많이 쌓아둔 꿀벌만이 계속 꿀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는', 그래서 한 번 가난한 사람은 언젠까지고 계속 가난하고 굶주릴 수밖에 없는 희망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 p. 83. 부디 위기를 슬기롭게 이기세요. 그리고 언젠가 사람이 사라지고 난 뒤의 세상에서 우리, 화초와 과실이 흐드러진 낙원을 축복하며 다시 만나요. 그 땐 향긋한 감로주를 한 잔씩 나눌 수 있을 거예요. 사람이 사라진 세상은 특별히 더 좋을 것도 없겠지만, 특별히 더 나쁠 것도 없을 거예요. > p. 123. 전깃줄이나 과수원은 사람만이 살아야 하는 곳에 지어진 건 아니잖아요. 그 땅은 사람이 살기 전부터 제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다시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가 살던 곳입니다. 그런 땅에 전신주가 생겼고 과수원이 일궈졌습니다. 저희는 그저 바뀐 환경에 맞춰 살았던 것 뿐이에요. 살던 땅을 방해하고 침범한 것이 우리 까치인가요? 또 백번 양보해 '잘못'을 인정한다고 해도, 그 해결이 저희를 죽이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게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피해를 입는 사람에게는 물론 귀찮은 존재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죽여야 할 당위는 없습니다. > p. 192. 비둘기 아저씨, 아저씨는 기 죽지 말고 꿋꿋이 사세요. 비록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고 동상에 하얗게 새똥을 튀기며 사람들을 기겁하게 만들지만, 우리가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이 세상에 사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사람에게 물으려고 합니다. 애초에 생태계를 교란시킨 게 누구나고요. 동물에겐 낯선 도시 환경을 만들고, 바위와 절벽에 살던 아저씨를 도시로 들여온 게 누구냐고요. > p. 213. 오늘도 도시의 거리는 맑고 밝고, 소란하고, 더럽다. 그 더러움의 일부는 어쩌면 내가 만들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아니었어도 이 도시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게 더러웠을 거야. 네가 사는 새장 안은 어떻니. 역시 맑고 밝고 소란하고 더러울까. 그 소란함의 일부는 어쩌면 네가 만들었을지도 모르지만, 네가 아니었어도 인간의 사회는 스스로 획득한 언어 덕분에 꽤나 소란했을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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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미 사라졌거나 지금도 천천히 사라져 가고 있는것들의 이야기를 서로가 서로에게 전달하는 편지 형식으로 담은 책이다. 코로나 19로 혐오 동물이 된(이미 그랬던) 박쥐에서부터 구제역으로 몸살을 앓았던 돼지, 닭둘기라는 오명으로 그 이미지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비둘기에서부터 이제는 완전히 사라진 한국의 호랑이, 또 머나먼 초원 세렝게티의 버팔로와 사자, 그들에게서 부름을 받은 네안데르탈인 까지.
사라져가는 그들이 다른 멸종위기의(또는 멸종해 다른 동물에게 편지를 할 수 없는 친구들에게까지) 동물들에게 편지를 쓰는 화자의 방식이 독특했는데 그 방식때문일까? 좀 더 사실적으로 다가오기도 했고 좀 더 생명력있게 다가와 읽는 내내 마음이 눅눅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상대를 걱정하고 그 이후의 삶을 내다보는 한 생명체의 이야기들 속에서 지금 현 시대속의 자연이 주는 울림들에 새삼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지구안 생명계들에게 왜 사라져 갔는지를 묻고 또 유추하며 끝임없이 철학적 물음들을 던져준다. 진화론에 따른 이유, 기후변화에 따른 이유, 포악한 인간종의 횡포에 따른 이유, 그 어느 이유를 끌어다 붙여야 이들이 사라져가는 이유들이 설명이 될까. 이 책을 읽으며 우리에게도 같은 물음들을 한번 던져본다. 결국 이들의 사라짐이 기후 변화든 인간의 횡포든 사라져가는 이유에 대한 고찰들에 신중을 가하고, 그에 따른 대처와 후속 조치들에 힘써야 함을 다시 한번 새기게 되었다.
죽어서도 바다로 돌아가 많은 것들을 뿌리 내려주는 고래처럼 우리 인간도 그들에게 또 지구에게 작게나마 무언가를 남겨줘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더 이상 인간으로인해 멸종되거나 구제역처럼 명분없이 살처분 되는 동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80억 호모 사피엔스로써 언제고 이 인류도 끝이 나는 날을 한번쯤은 상상해본다. 그땐 누가 우리들의 안부를 궁금해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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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바삐 앞으로 내달리는.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기 바쁜 현대이기에
항상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희생이 따른다는 사실...
p.124"저를 더 연구해주세요. 그리고 보호대책을 마련해 주세요....
책에서도 여러번 언급하지만 생태계를 뒤바꾸는 잔혹한 능력을 가진 인간,
<꿀벌의 민주주의><철학자의 늑대><인도의 철학><도도의 노래>....
"만약 우리 모두가 그들에게 귀 기울이고 그들을 돕기 시작한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