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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미학'이라는 단어를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다. 남성용 변기에 사인을 하고 '샘'이라는 제목을 붙여 내놓은 것도 미술이라고 불리우는 요즘 시대이기에, '아름다움'이라는 단어의 뜻에 대해서도 함부로 말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안그래도 쉽게 파악하기 어려웠던 예술이란 개념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바람이 불면서 그 어느 때보다 난해하고 어려운 전문용어가 되어버렸다. 최근 예술과 미학에 대한 사람들의 지적욕구가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미학'이란 나같은 일반대중들이 다가서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고급학문임에는 틀림없다. 예술과 철학 전반에 대한 폭넓은 배경지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미학'이란 결코 만만하게 여길 수 없는 학문이라는 것을 조금씩 깨달아 가던 내게 있어 '미학 오딧세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무척 특이하고도 신기한 책이었다.무엇보다도, 매력적이기는 해도 쉽게 접근하기는 어려웠던 미학에 대한 이야기를 쉽고 자유롭고 재치있고 풀어나갔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성이자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이론 역사의 두갈래 큰 뿌리로 여겨지고 있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화를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구성도 의미심장하면서도 참신했다.
가장 돋보였던 점은, 공허한 말장난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철학이론들을 마그리뜨와 에셔의 그림들을 통해 보다 생생하게 풀어나가는 구성방식이다.예를 들자면 에셔의 작품 중에 '세 개의 세계'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는데, 저자는 이 그림 속에 나타난 세 개의 세계,즉 물밖과 물속, 수면을 이용해 이드, 초자아, 자아의 개념을 알기 쉽게 풀어나갔다. 마치 에셔의 그림이 이 책을 위해 그려진 것처럼. 원래 마그리뜨의 작품세계에 관심이 많았기에 저자가 마그리뜨의 작품을 재치있게 유용한 소도구로 활용하는 방식에 특히 관심을 가졌는데,자신이 작품을 통해 철학을 한다고 믿어왔던 마그리뜨의 그림들은 이 책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그림들이었다. 도끼로 벤 나무의 뿌리가 도끼를 휘감고 있는 '알렉산더의 노동'은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파는 꼴이 되어버린 논리실증주의자들의 모순을 표현하기에 너무나도 적절한 그림이 되어버렸다. 책의 세세한 내용은 생각하지 않더라도, 작가의 자유로운 집필방식과 참신한 구성, 거기에 톡톡 튀는 재치까지 더해져서, 이 책은 누구나 어렵고 부담스럽게 여기는 철학에 대한 책 답지 않게 무척 재미있는 책이 되고 말았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작가가 작가의 작품 속에서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일이 많아서 그런지 책을 읽는다기보다는 작가와 토론이라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많다.
미학이라는 학문은,인류가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개념 중의 하나인 아름다움-비록 전통적인 개념의 아름다움은 아닐지라도-에 대한 학문이기에 그만큼 매력적인 학문임에 분명하다. 이해하기 쉽고 접근하기 쉽다면 더더욱 매력적일 것에 틀림없다. 같은 예술작품이라도 작품이 만들어지게 된 사상적 배경을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에 따라 각각 다른 깊이를 가지게 될 것이다. 사실 모든 예술은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어느정도는 독자의 해석에 달려있다. 같은 작가의 같은 작품일지라도 관객들은 그 작품 너머로 제각기 서로 다른 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처럼 '아름다움'에 대한 학문적 고찰은 우리로 하여금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해주고, 더 나아가 우리 삶을 정신적으로 더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뫼비우스의 띠처럼, 에셔와 마그리뜨의 그림처럼 수수께끼같기만 한 미학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한줄기 뚜렷한 빛줄기가 있다면, 바로 그러한 깨달음이 아닌가 싶다. 부담스럽게만 느껴지는 철학과 예술을 좀더 편하게 만나고 싶다면, 또 그 속에서 한줄기 광명을 찾는 일을 시작하고 싶다면 우선 이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책의 상태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최근엔 종이질도 좋아지고 표지디자인도 보다 세련스러워졌다. 책의 크기도 달라지고 컬러도판도 실리게 되어서 무척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값이 더 비싸진거야 만족스럽게 여길 수만은 없지만 그거야 어쩔수 없는 노릇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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