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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가 파헤치는 자본주의 생리학 - 『자본주의 역사와 중국의 21세기』
"역사학자가 파헤치는 자본주의 생리학 - 『자본주의 역사와 중국의 21세기』" 내용보기
본인의 정치색을 밝히라면, 표현의 자유를 부분적으로만 허용하는 이땅에서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고 말하겠다. 그럼에도 안철수 열풍이 몰고 간 현실 정치는 씁쓸하기 그지 없다.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특정인이 유명세만으로 단번에 차기 서울 시장 후보감으로 뽑히는 현실은 착잡하다. 많은 사람이 현실 정치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백 번 동감한다. 그럼에도 안풍과 한국
"역사학자가 파헤치는 자본주의 생리학 - 『자본주의 역사와 중국의 21세기』" 내용보기

본인의 정치색을 밝히라면, 표현의 자유를 부분적으로만 허용하는 이땅에서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고 말하겠다. 그럼에도 안철수 열풍이 몰고 간 현실 정치는 씁쓸하기 그지 없다.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특정인이 유명세만으로 단번에 차기 서울 시장 후보감으로 뽑히는 현실은 착잡하다. 많은 사람이 현실 정치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백 번 동감한다. 그럼에도 안풍과 한국의 근대화를 박정희라는 장기집권한 대통령의 덕으로 돌리는 태도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특정인에 거는 신화적인 상상력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기묘하게도 안풍이 한바탕 나라를 휩쓸고 간 때에 나는 『자본주의 역사와 중국의 21세기』를 다 읽었다. 이 책의 저자는 황런위다. 처음 책을 사고 이 책이 내게 도착했을 때 몰랐다. 황런위가 레이 황이라는 사실을. 한국에서는 황런위라는 이름보다는 레이 황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다. 실제로 내가 처음 그의 저작을 읽은 것도 『1587 아무일도 없었던 해』로 레이 황이 쓴 책이다. 지금 그 책을 검색해 보니, 절판으로 뜬다. 아싸! 다행이다. 난 이 책을 소장하고 있기에. 이래서 한국에선 소장 가치가 있는 책은 무조건 사야 한다. 특히 학술서적은 절판이 판매중보다 일상이기 때문이다.

이산이라는 출판사 이름을 믿고, 제목에 꽂혀 산 책인데 '황런위'가 '레이 황'의 중국 이름이란 사실을 알자 나의 기대는 배가 되었다. 이 책, 꼭 읽어야겠어. 『1587 아무일도 없었던 해』를 읽었던 나에게 레이 황은 스토리텔링을 소설가처럼 잘하는 역사가였다. 그의 스토리텔링이 유독 뛰어난 이유는 사건을 바라보는 입체적인 시선과 독특한 발상 덕택이다. 저 책에서 그는 명나라가 망한 이유를 어떤 실책을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런 과정에서 여러 인물을 조명하며 명말의 위기를 효과적으로 분석했다.

명나라 역사를 기술한 황런위가 자본주의를? 알고 보니 레이 황은 매크로 히스토리(Macro History)라는 관점으로 중국사를 종횡무진 휘젓고 다녔더라. 『자본주의 역사와 중국의 21세기』는 황런위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허나. 한국에선. 내가 이 책을 2011년에 샀는데, 10년 전에 나온 책이 아직도 1판 1쇄다. 대학 진학률이 80% 이상이면 뭐하나. 이런 책이 안 팔리고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인걸.

책에 따라서 접근법을 달리 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가면 괜찮지만 학자가 쓴 책은 때에 따라서 결론부터 읽고 처음부터 읽는 게 이해에 도움이 될 때가 많다. 이 책도 그렇다. 나는 처음부터 끝가지 순서대로 읽었지만 결론부터 읽었다면 더 쉽게 이해하고 빨리 읽었을 듯하다.

결론에서 황런위가 말하는 바는 뚜렷하다. 첫째, 자신은 경제학자가 아니라 역사가다. 둘재, 자신은 자본주의의 병리학을 연구(마르크스)하지 않고 생리학을 다뤘다.

이러한 관점 하에 저자는 자본주의 용어를 정의하고 구체적인 역사 전개 과정을 이야기한다. 자신은 중상주의라는 용어를 더 선호하지만 이미 자본주의라는 말이 광범위하게 통용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용한다고 운을 뗀다. 많은 사람이 자본주의를 연구하지만 자본주의를 정의하는 데 어려워한다. 레이 황 같은 대학자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대중을 통치하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종교와 같은 특정 이데올로기. 경찰력과 같은 폭력. 그리고 자본주의적 작동 방식. 레이 황의 설명을 들어 보자.

법제상으로 개인의 이익을 보장하고 공사의 이해가 하나로 융합되어 각자가 자신의 명예와 이익을 쟁취할 때 저절로 국가나 사회의 체제가 강화되도록 하는 것이다. (중략) 분명한 것은 자본주의가 위의 방법을 가장 고도로 그리고 가장 효율적으로 발휘될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현대정치에서 자본주의의 효율을 능가할 만한 것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518쪽)

자본주의를 정의할 때, 레이 황은 브로델을 따른다. 보통 경제학자가 시장과 국가를 구분지으려 하는 데 반해 브로델은 시장이 곧 국가(근대민족국가)라는 점을 견지한 학자다. 사유재산을 보호하고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을 구축하는 데 국가와 시장은 불가분의 관계다. 근대 역사를 조금만 본다면 현실에서 미시경제학의 논리가 얼마나 무용한지 알 수 있다. 수급의 법칙만으로 이뤄지는 시장은 세계종교가 만들어낸 절대자만큼이나 추상적이다.

영웅주의는 황런위에게 시장주의처럼 거론할 가치가 없는 관점이다. 러시아 자본주의 발전을 서술할 때, 러시아 차르가 얼마나 나쁜 놈인지 이야기하거나 프랑스 자본주의 발전을 말할 때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가 된장녀였다는 점을 꼬집는 것은 역사 이해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특정 개인이 역사를 좌우할 수 있다는 점을 황런위는 부정한다. 적어도 그에게는 역사는 구조를 살피는 학문이지 개인의 위인전을 쓰는 문학이 아니다.

황런위가 이 정도 관점으로 자본주의 역사를 서술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그가 쓰는 본문을 좀 더 차분히 음미하며 즐길 수 있다.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베네치아에서부터 네덜란드, 영국과 프랑스 미국 그리고 러시아와 황런위의 조국 중국에 이르는 광범위한 시공간을 분석함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역사가 빠졌다는 사실이다. 또한 황런위 자신도 인정하지만 자본의 역학과 관련한 경제학적 분석이 빠져 있다. 이 때문에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편한 역사책일지 모르지만 왠지 다 읽고 나서도 '자본주의가 어떻게 발전했지?'에 대한 의문이 안 풀린다. 뭐, 이런 의문은 한 두권의 통사만으로 풀 수 없는 어려운 문제긴 하다. 그리고 제목에 버젓이 나와 있는 21세기는 아주 가볍게 취급하고 넘어간다. 미래에 대한 혜안을 얻을 길이 없다.

어쨌든 자본주의 통사를 짜임새 있게, 그것도 아주 재미있게 기술했다는 점은 역시 레이 황이다는 찬탄을 부른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l****i 2011.09.22. 신고 공감 2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