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의 정쟁 마지막 5편에서는 장희빈과 인현왕후,사도세자, 영조, 정조 등 사극에 단골로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모두 드라마틱하고 파란만장한 영욕의 삶을 보여 줬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들이 겪어야 했던 비극이나 파란들은 개인의 성정에서 오는 문제만은 아니었다. 모두 정쟁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었던 것이었다.
궁녀에서 후궁, 그리고 왕자를 낳고, 중전으로 조선시대 최고의 신분상승을 보여준 장희빈, 그녀가 중전이 된 것도, 죽음에 이른 것도 모두 서인,남인의 환국과 연관이 돼 있었다. 숙종은 환국을 감행하며 정국의 주도권을 행사했고, 그 와중에서 희생되는 신하들이나 중전이 폐서인됐다 다시 복위되는 등의 혼란 을 야기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숙종은 변덕도 심하고, 몰인정한 군주였지만, 또 그렇 게해서라도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하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었던 것이다.
한번 권력의 맛을 본 자는 결코 권력을 놓지 않으려 한다. 각 당은 차기 권력을 확보하기 위해 세자와 세자빈 간택에 민감할 수 밖에 없었다. 장희빈의 비극이나, 경종의 후사를 두고 연잉군 (영조)을 세제 로 책봉하게 된 사도세자의 비극은 모두 당인들이 차기 권력을 겨냥한 포석에서 파생된 문제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지 과유불급인 법이다. 치열해진 정쟁은 많은 폐단을 드러냈다. 환국이 거듭됐고, 잦은 옥사를 낳게 됐다. 목숨을 잃거나, 귀양 을 가는 신료들이 늘어나게 됐다. 피비린내가 짙어지면서,당 간의 대립은 격화됐고, 때론 목숨을 건 대립으로까지 치달아 갔던 것이다. 거기에 서인들은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됐고, 노론은 다시 시파와 벽파로 갈리고, 또 온건파와 강경파로 나뉘었다. 또 또 외척이 당파의 구심점이 되면서,복잡해진 당내 역학관계로 인해 왕은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영조와 정조가 탕평책을 시도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과도한 정쟁으로 인한 소모전이나 피로감도 상당했을 것이고, 그런 정쟁은 왕에게도 정치적 부담으로 가중됐을 뿐 아니라 왕권의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그 결과 영정조시대는 조선의 르네상스라 불릴 만큼 치세를 이루었다. 영조는 노회한 정치력을 발휘했고, 정조는 그 어느 왕보다 높은 학문적 식견을 발휘하고 적재적소의 인재를 기용하면서, 문물을 숭상하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을 품게 했던 것이다.
조선의 정쟁 시리즈 다섯 편을 읽는 동안 무엇보다 기억에 남았던 것은, 각 당들이 자당의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해, 타당을 공격하기 위해 끊임없이 상소를 올리거나 왕에게 진언하는 것이었다. 놀라울 정도로 집요해서 왕도 상당한 압박을 느꼈을 것이다. 조정 전체의 이해보다는 자당의 이해를 더 우선시 하고 명분을 내세우는, 비타협적인 자세는 다른 당과의 공존과 상생의 여지를 없애버리고 말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옥사나 귀양을 떠나는 인물들이 나오게 됐다. 그러니 왕 또한 괴로웠때가 많았을 것이다. 불과 어제까지 신하였던 사람을 귀양을 보내거나 사약을 내리는 일은 아무리 왕이지만 고통스러웠으리란 짐작은 가고도 남았다.
그럼에도 신봉승은 당쟁 아닌 정쟁이었음을 강조한다.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면 목숨을 버릴지언정 임금의 명도 거역했고, 집권한 세력이 정의와 청렴을 부르짖으며 자신들에게 항거하는 사림들을 제거하기 위해 옥사와 환국을 거듭했다면 정쟁이라고 해도 마땅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봉승의 이런 견해에 선뜻 동조하게 되지 않는다. 당쟁을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해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