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나키스트 이회영이라면 쉽게 생각나지 않는 생소한 이름이다. 부끄럽게 대학 4년을 역사학과에 다니면서도 처음 들어본 이름일 정도다. 그러나 이제 이 책을 통해서 이회영의 치열하고 끊임없는 도전을 이해하고 존경하기 시작했다. 당시 일제의 탄압이 시작되면서 이회영은 그 엄청난 부를 정리하고 만주로 대가족이 전체로 망명을 가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대단히 힘들고 엄청난 결정이라고 생각된다. 아무리 혁명과 개혁을 부르짖어도 우리는 기득권의 사람들은 요지부동. 그들의 기득권만을 지키려고 혈안이 되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회영은 그렇지 않았다. 오직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그 험난한 미래를 기꺼이 선택한 것이다. 이런면에서 그의 삶은 많은 시사점을 우리에게 전할수 있다. 우리의 주변에는 자신의 지위가 조금만 높아진다면 금방 정신적으로 늙어 버리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그는 이제 몸은 젊은 사람일지라도 이미 정신적으로는 개혁과 전진을 모르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아나키스트 이회영은 이런 삶과는 절대로 다른 사람이었다. 당시 조국의 독립과 인류의 화해를 위해서 그는 당시 유행하던 공산주의가 아닌 아나키즘을 선택하고 있다. 이것은 현재 서구에서 다시 아나키즘이 유행하고 선호되고 있는 현실로 볼 때 대단한 선견지명이라고 생각된다. 이회영의 삶은 차가운 감방에서 고문끝에 숨진것으로 사람들은 일본의 부정에도 이해하고 있다. 가족이 오기도 전에 장례가 치루어질 정도로 혹독하게 고문을 당한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위대한 죽음에 우리가 어떤 헌사로 그를 위로할 수가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며 잠시 헐리웃 영화를 생각해본다. 미국영화는 끊임없이 그 유치한 내용과 화약을 대량으로 사용한 대작을 만들어낸다. 개인적으로 별로 유쾌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눈여겨 본 것은 미국은 그런 영화로 잊혀지지 않는 미국의 영웅을 새로운 생산하고 기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반면 우리는 어떤가? 영웅은 이미 독재시대에 만들어져 아직까지 사회전반의 이데올로기를 장악하고 있는 영웅들 뿐이다. 그러나 이런 영웅들은 이미 이미지가 박제화되어 더이상 어린이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적으로 새로운 기운을 불어 넣기가 어려운 점이 있다. 바로 이런 점이 우리 사회의 조기 노인화를 양상하고 있다고 난 생각하고 있다. 아나키스트 이회영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가치는 끊임없는 도전정신이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그가 선택한 아나키즘은 젊은 정신이고 혁명적인 정신이다. 그의 생각에 동의는 못할지라도 그의 삶은 본받을 필요는 있다고 생각된다. 인터넷이 국경을 허물고 있고 오직 도전만이 중요시되는 이 시대에 이회영은 새로운 영웅이 될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현재의 일본의 역사서 왜곡을 바라보면서 들끓고 있는 분노를 미래를 위해서라도 일제에 저항하던 우리의 영웅을 발굴하는데 조금만 쏟아야 한다는 생각도 해본다. 일본의 왜곡도 분노스러운 것이지만 민족의 영웅도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은 초라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영웅의 발굴이 바로 일본의 왜곡에 정당하고 침착한 대응이라고 생각된다. 저자 이덕일은 과거 여러권의 저서로 인해서 친숙한 저자다. 과감히 강단에서 벗어나 쉽고 재미있는 역사서로 새로운 역사서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 대중적 저술가이다. 그가 우암 송시열에 대한 여러가지 우상화를 과감히 비판하고 우리에게 각성을 촉구하더니 이제 아나키스트 이회영의 삶으로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영웅을 제시해 주고 있다. 아주 만족스러운 책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매우 재미있다는 사실이 나를 매료시킨다. |
|
일제 강점기 때 노블리스오블리제를 몸소 실천하며 고된 항일운동가의 길을 걸었던 아니키스트 이회영이라는 분에 대한 글인데 최근 새롭게 조명을 받은분이지요...
구성이나 내용도 재미있고 우리가 잊고 있던 분을 만난다는 점에서도 훌륭한 책입니다...
글쓴이는 조선왕독살사건과 우리역사 수수께끼 1,2 등을 지은 정통 역사학자이면서도 풀어쓰는 역사이야기를 즐겨하는 이덕일이라는 분이 지은 책이지요...
이회영이라는 인물은 우리나라 초대 부통령을 지낸 이시형의 형님이 되는 분으로 조선 말기 집안이 몇대를 먹고살수 있을 정도로 큰 부자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국의 독립을 위해 비밀결사 활동도 하시고, 전 재산을 처분하여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항일 독립운동에 매진하며 본인은 정작 중국에서 딸의 옷도 못입힐 정도로 궁핍한 생활을 하셨던 아주 강직하고 모범적인 분이라고 합니다.
독립을 위해 사상을 택하였던 식민지 시대의 전형적인 지식인으로 신채호 선생님등과 우리나라 초기 아나키스트를 이끌던 중요한 인물입니다.
실존 인물에 대한 책이지만 워낙에 소설적인 삶을 살아오신 분이라 어지간한 소설보다 훨씬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
| 솔직히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진정한 아나키스트의 모습을 알지 못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대립하는 사상속에서 그 존재에 대한 책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또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 [아나키스트]속의 인물들은 이 책 속의 실존 인물들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모든 부귀와 명예를 버리고 나라를 위해 희생하며, 일구월심 독립만을 위해 싸웠던 그들에 대한 평가가 너무 미미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만 해도 왠만한 위인전집에 다 수록되어 있어 어린 시절, 그의 흉내를 낸다고 서서 세수를 한 적이 있을만큼 널리 알려진 분이지만, 이회영이라는 이름 석자는 독립운동가라는 사실밖에 모를만큼 무지했었다. 그저 이승만은 임정의 자금을 횡령했던 친미주의자, 김구는 민족주의라는 단편적인 사실로 오랜 세월 나라를 위해 일하던 독립운동가에 대해서 다 안다고 생각했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책을 읽는 내내 통탄할 수 밖에 없었다. 반민특위 등으로 철저히 역사의 베일 속에 숨겨진 독립운동사가 밝혀져 도덕성과 애국심이 기본이 된 정치인들의 모습을 하루빨리 볼 수 있었으면 한다. |
| '누구도 억압하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억합당하지 않으리라'- 아나키즘과 아나키스트를 잘 대변하는 문장이다. 아나키즘은 나에게는 너무나도 낯설었다. 몇년전에 '아나키스트'라는 영화를 하였는데, 나는 아나키스트가 테러와 무장투쟁을 하는 사람들로 인식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와는 너무 거리가 먼 사상으로 인식되었던것은 분명하다. 아나키즘은 공산주의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공산주의는 아나키즘 일수는 있지만 아나키즘은 공산주의가 될수 없다는 말이있는데, 이런 인식이 우리에게는 없고 단순히 공산주의로 인식하여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생소하고 잊혀진 것들이다. <아나키스트 이형과="" 젊은그들="">은 아나키즘을 중점으로 중국에서의 이회영과 독립투사들의 활동을 말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이회영이라는 이름이 생소한다. 아마 그의 이름앞에 아나키스트라는 이름이 항상 따라다녀 이회영이야 말로 정말 투철한 독립투사임에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잊혀진 존재이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이회영에게 감탄을 하였는데, 잘나가는 세도가의 자손자리를 버리고 재산을 몽땅 독립운동에 투자하고 자신의 몸과 가족의 몸까지 독립운동에 헌신한 점은 정말 높이살점이라고 할수있다. 이런 이회영이라는 사람이 왜 우리에게는 잊혀져야 했고 100년후 우리에게 다시 나타난 이유는 뭘까? 이회영으로부터 우리는 미래의 대안을 찾을수 있다. 바로 아나키즘이다. 고등학생 형에게 아나키즘이 무엇인가 질문한적이 있는데, 아주 정확히 '무정부주의자'라고 했다. 정부가 없는 자들. 하지만 이 말은 아나키스트를 잘 말해주지 못한다. 책에서도 나왔듯이 아나키스트는 자유연합주의라고 읽어야 본질을 알수 있다. 이데올로기 때문에 이렇게 고통받는 민족이 또 있을까? 우리는 그놈의 사상인가 하는놈때문에 너무나도 많은 피와 눈물을 흘려야만 했고, 지금도 고통을 받고있다. 이런 사회의 혼란속에 아나키즘은 대안이 될수 있을까? 누구도 억압하지 않고 억압당하지 않은 정신은 이시대의 필요하다. 이 시대 자유와 평화를 위해...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잊혀진 독립투사들을 많이 알게되었다. 김구선생이나, 안중근의사, 윤봉길 의사등 - 이런 사람뒤에 묵묵히 자신을 희생하며 조국의 독립을 꿈꾼 젊은그들. 오늘 왜이리 가슴이 아플까? 왜 이제서야 그들을 알게 되었을까? 오늘은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하루가 되어야 겠다.아나키스트> |
| [우리는 그 누구로부터 억압당하지 않으며 그 누구를 억압하지도 않는다]란 말에서 진정한 아나키즘의 면모가 드러난다. 우당 이회영 일가의 이야기나 개인적인 약력은 위의 미디어 리뷰에 잘 소개되어 있어 느낌만을 적을까 한다. 지난 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때 신간기사에서 발견하고 읽은 책인데 다 읽고 난후의 느낌은 뭐랄까. 평전이나 전기류를 읽고 난다음의 감동과 비슷했다. 남루한 일상속에서 맥없이 타성에 젖어 하루하루를 보내는 날들속에서 정신이 번쩍 들게해주는 각성제 같은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고나 할까. 나역시 무정부주의자 쯤으로 아나키스트를 이해하고 있었고 무정부란 곧 아노미 상태와 비슷한 혼란을 떠올렸었는데, 사회주의와 평등의 뿌리는 같으나 독재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으며 자본주의와는 역시 소득의 균등한 배분이 이루어지지 않아 평등의 원칙에서 벗어난다는 점에서 아나카스트들은 그들에게도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이상을 현실에서 실현시키지 못하고 스러져간 젊은 넋들의 용기와 조국애는 생각만해도 내가슴이 뜨거워지기에 충분하다. 만주벌판에서 사재를 털어 독립운동을 위한 군사학교를 만들어 후진을 양성하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쳐와 딸자식의 옷가지까지 팔아야하는 어려움속에 처해있어도 조국의 광복을 위해 일신의 영달을 마다한 그 정신에서 진정한 자유를 아는 아나키스트들을 모습을 발견할수 있었다. 나는 역사에는 문외한이다. 그런대도 이런류의 책을 읽으면 가슴깊은 곳에서 우리민족의 지난날들에 대한 회한으로 아쉬움이 생기고 또한 지금 현실속에서 역사의 배경으로 이름없이 살아가고 있는 내 삶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며 반성하게 된다. |
| 우리 사회에서 진정 존경할 만한 원로나 건강한 보수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자민련이 '원조 보수'를 강변하고, 조선일보나 한나라당이 '보수'의 깃발을 지키는 십자군을 자처하더니, 얼마 전에는 이른바 '원로'들이 시국 선언을 통해 이들을 거들고 나섰다. 거의 코미디 수준이다. 보수에는 그 나름의 합당한 기준이 있다. 도덕성, 성실함, 애국심, 민족애, 권리에 대한 주장과 책임에 대한 자각 등이 그것이다. 흔히 '노블리스 오블리제'라고 하는 '가진 자(지배층)의 엄격한 의무'를 한국의 '보수 세력'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백범 김구 같은 일관된 보수 우익이 친미 반공 사이비 우익에게 암살 당한 역사에서 우리 나라 '보수' 세력의 뒤틀림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몸소 보여준 인물이 몇이라도 있었다는 건 그나마 위안이 되는 일이다.([한겨레 21] 372호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참된 보수를="" 아십니까="">를 읽어보자!) 이회영, 이시영 형제를 비롯한 일가족이 막대한 재산을 청산하고 만주로 이주하여 독립 운동 기지를 건설하고자 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적이다. 그들 집안은 정승, 판서를 무수히 배출한 조선의 명문 갑족이었으니 그야말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몸소 실천한 셈이다. 대다수 집권 양반층이 일본에 협력한 대가로 작위를 수여받은 사실에 비추어보면 그 의미는 더욱 두드러진다.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은 이회영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아나키스트 운동을 소개하고 있다. 만주로 건너간 우당 이회영은 가산을 털어 독립군 활동의 요람인 신흥무관 학교를 세웠고, 고종 망명 계획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그후 우당은 외교론에 치우친 임시정부와 거리를 유지하면서 북경, 상해 등지에서 젊은 운동가들의 대부 역할을 했으며, 그 과정에서 그 많던 재산을 탕진하고 '딸의 옷까지 팔아'먹는 극빈한 처지로 내몰리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도 민족 해방을 위한 의지를 꺾지 않았던 우당은 1923년 무렵에 아나키즘을 받아들여 아나키스트를 자처하게 된다. 책에 의하면 그는 이후 대체로 아나키스트 단체의 활동을 배후 지원하다 1932년 일경에 체포되어 옥사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의열단이나 다물단, 한인애국청년단, 남화한인청년연맹 등 테러 단체들의 활동이나, 아나키스트와 공산주의자 간의 대립, 아나키스트 세력과 민족주의 우파 간의 협력, 경쟁 관계 등이 우당의 행적과 맞물려 자세하게 쓰여 있다. 이제껏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던 아나키스트 운동을 복원하려는 저자의 의욕이 너무 강해 오히려 이회영의 일대기가 그에 종속된 듯한 느낌이 드는 점이나, 전체적인 운동 지형 속에서 아나키즘을 그리기보다는 그것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서술이 읽기에 껄끄러운 측면이 있다. 아나키즘이나, 그 운동 방침으로서의 테러리즘은, 일방적으로 미화될 수만은 없는 복잡한 측면을 가지고 있는데, 저자는 그런 미묘함을 애써 외면한 채 아나키즘을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새로운 이념'인 것처럼 흥분하고 있어 좀 의아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우리에게 '이회영'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을 발견할 수 있게 해준다. 존경할 만한 원로, 이런 인물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사이비 보수, 허깨비 원로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지름길이 될 법하다. '그 시대에 친일 안 한 사람이 누가 있느냐?'는 몰역사적인 반론이 '보수 세력'에 의해 버젓이 펼쳐지는 상황을 보며, 44세의 나이에 압록강을 넘어 만주로 떠났던 이회영의 그 뜨거운 젊음이 이 시대에도 간절히 필요함을 느낀다.참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