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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한 호치민 평전은 이 책과 푸른숲에서 나온 <호치민 평전> 딱 두 권이다. 물론 우리말로 번역된 책에 한해서. 푸른숲의 <호치민평전>은 사놓기만 하고 아직 안 읽었는데 미국 편향적인 시각을 지적하는 리뷰가 꽤 있어 읽기를 망설이고 있다. 게다가 이 책의 두께가 또 만만치 않아 시간과 공력을 들였건만 그만한 결과가 나오지 못할까봐 지레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에 비해 이 책은 아주 얇다. 또 본격적인 호치민 평전이라는 꼬리표를 붙여주기에는 솔직히 부족한 면이 없지 않다. 호치민 개인의 일생이 베일에 싸여 있다는 점, 그의 정치스타일이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 개인적으로 드라마틱한 스캔들이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점 때문에 그의 인생에서 사적인 면을 그려내기란 상당히 힘들어 보인다. 그는 공식적으로 평생 독신이었으며 따라서 자식도 없고 가정도 없고 그야말로 일생을 베트남의 독립에 헌신한 인물이다. 그래서일까? 초반부는 비교적 호치민의 삶에 중점을 두지만 1945년을 넘어가면서부터는 호치민의 평전이라기보다는 베트남 혁명사가 주인공이 되고 만다. 결과적으로 베트남 현대사 이해의 첫걸음으로 아주 쓸 만한 책이라는 평가가 더 적합할 듯싶다. 호치민은 평생 검소하고 소박한 삶을 추구했으며 권력의 정점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협화음을 거의 완벽하게 차단한 대단한 인물이며 베트남의 독립이라는 역사적 과제와 개인적 삶을 온전히 일치시킨 당대 최고의 혁명가이다. 동시에 뛰어난 정치적 감각과 외교능력으로 현실 속에 꿈 한 자락을 펼쳐 보인 탁월한 정치가이다. 젊은 시절 프랑스 공산주의자들과의 교류와 코민테른에서 활동했던 그의 경험은 오히려 그에게 자주적인 의식을 강화시키는데 일조했다. 만국의 공산주의자가 단결하기에는 국가적 장벽이 너무 높았을까? 프랑스 공산주의자의 방점은 프랑스에 있었고 스탈린으로 대표되는 소련의 공산주의 역시 미국을 제압하는 강대국 소련에 강조점이 있다는 것을 일찍이 간파한 그의 혜안은, 여타 공산주의 국가 지도자와 비교할 때 더욱 빛이 난다. 혁명의 본질적 속성, 이상주의와 이념적 선명성과 급진성이 범하기 쉬운 극좌적 경향의 함정을 피하고 현실 세계 정치의 타협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그야말로 긴 호흡으로 베트남의 해방과 독립을 꿈꾸었던 그의 뚝심과 저력은 가히 대가의 경지이다. 연합국의 일원으로 베트남을 점령한 중국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중국의 베트남 지배는 길고도 집요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간신히 벗어난 프랑스 군대의 재주둔과 남베트남의 분리를 수용했으며 디엔비엔푸의 결정적 승리로 프랑스의 항복을 받아내는 것도 가능한 유리한 정세에서 그는 다시 한번 모든 것을 빼앗겼다.(이른바 1954년의 제네바 협정) 그 역시 협정이 이행되지 않으리라는 것, 끝까지 투쟁해야만 통일 독립 국가를 세울 수 있다는 것, 결국 미국과 전쟁을 벌여야함을 모르지 않았다. 두 걸음 전진하기 위해 한 걸음 물러섰지만 한순간도 목표를 잊지 않았다. 타협적이다 못해 굴욕을 느낄 정도로 빈약한 협정 결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국민들이 호치민의 판단을 받아들였고 그의 지도력은 변함이 없었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것을 가능케 한 힘이 그의 본질적 지도력이며 그것은 베트남 국민들이 만들어 준 것이다. 호치민의 뛰어난 자질을 알아본 베트남 국민이 없었다면 과연 그의 능력이 제대로 피어날 수 있었을까? <베트남 10000일의 전쟁>의 저자는 호치민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자주적 민족주의자였고 그것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미국의 잘못을 질책했다. 이 책의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이 호치민이 단지 제 2의 티토가 아니라 새로운 종류의 정치적 인간, 즉 마르크스주의를 진정한 국제주의로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으로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저버렸다고 아쉬워한다. 분명한 것은 이런 것이다. 호치민은 결코 전쟁을 통한 해결을 선호하지도 추구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프랑스, 미국과 끊임없이 타협을 시도했으며 원하는 것은 베트남의 독립뿐임을 수없이 외쳤고 국제적 협정을 충실히 이행했다. 베트남의 무력투쟁은 언제나 마지막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밀어붙인 것은 언제나 강대국이었다. 프랑스와 미국의 오만, 자기네들의 아량과 적선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는 안하무인의 태도와 주인을 무는 개는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건방이 스스로를 함정에 빠트렸고 보기 좋게 패배했다. 더 슬픈 것은 정당함이 승리하는 동화의 세계와는 달리 현실에서는 대개 이 건방짐이 이긴다는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호치민의 정치사상이 무엇이었든, (예컨대 핵심은 이런 것이다.) 자본주의냐 공산주의냐가 관건이었다기보다는 자주적인 태도가 문제였던 것이다. 친미 자주나 친소 자주둘 다 조화를 이루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미소냉전이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던 시절 동양의 작은 나라가 자주적인 태도를 견지하기 위해 걸어야 했을 좁디좁은 길을 생각하면 그 성취가 진정 대견스럽다.
그 때문에 호치민은 중요한 순간, 좌와 우 모두로부터 배척받았고 그럼에도 강고한 신념만큼 유연하고 노련한 현실 감각으로 위기를 극복했으며 자주적인 자세로 말미암아 베트남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잃지 않았고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다. 남은 이야기 하나 연합국의 승리로 독립을 얻었고 권력 공백 상태에서 호치민의 베트민이, 여운형의 건준위가 독립을 선포했다는 점에서 베트남과 우리나라의 상황은 비슷했다. 호치민, 여운형, 박헌영 모두 미국을 포함한 연합국(독립을 지원하리라는, 최소한 방해하지는 않으리라는)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고 배신당했다. 베트남만큼 복잡하게 얽힌 해방 공간에서 그들은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놓쳤는가? |
| 체 게바라 평전의 영향으로 한껏 고무돼 있는 내 눈에 들어온 또 하나의 평전. 체 게바라가 생전에 존경해 마지않았다는 호치민이라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베트남전의 원흉, 사악하고 간교한 늙은이 같은 매우 근거없는 이미지들의 나열 뿐인데 그런 무책임한 판단의 근거를 누가 제공했는지 책을 읽고 나면 자명해질 것이다. 이 책은 호치민이 그의 본명이 아니라는 것, 생일이 본인과 같다는 것 등 미처 알지 못하던 여러가지 자그마한 사실들을 알려주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호치민이 평생에 걸쳐 조국의 독립을 위해 서구열강들과 싸워왔다는 사실, 체 게바라와 마찬가지로 냉전의 양극 사이에서 오직 조국의 안위를 위해 끝없이 자신을 내던졌다는 사실, 철저히 왜곡된 상태로 우리가 접해야 했던 베트남전의 진실 등 베일에 싸여온 사안들을 과감히 적고 있다. 책을 읽고 나면 우리나라가 그 전쟁에 참전했던 것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일 수밖에 없는지 처절히 깨닫게 된다. 밀림에 숨어 사악한 계락으로 베트남의 공산화를 꾀하던 늙은 빨갱이가 '타임'지의 표지를 장식하며 다음과 같은 기사의 주인공이 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 호치민은 외세에서 해방된 통일 베트남의 건설에 일생을 바쳤다. 그리고 고통받는 그의 조국의 1,900만 인민은 이런 미래상을 이루기 위해 전력을 다한 그의 헌신 때문에 심한 고통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애정어린 마음으로 '호 아저씨'인 그를 이해했다. 남베트남인도 같은 감정을 품고 있다. 현재 살아 있는 민족 지도자 가운데에 그만큼 꿋꿋하게 오랫동안 적의 총구 앞에서 버텼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 ... '체 게바라 평전'과 더불어 반드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좋은 책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체 게바라 평전'에 비해 무지 얇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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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평전의 영향으로 한껏 고무된 상태에서 눈에 들어온 또 하나의 평전.
체 게바라가 생전에 존경해 마지않았다는 호치민이라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베트남전의 원흉, 사악하고 간교한 늙은이 같은 매우 근거없는 이미지들의 나열 뿐인데 그런 무책임한 판단의 근거를 누가 제공했는지 책을 읽고 나면 자명해질 것이다.
이 책은 호치민이 그의 본명이 아니라는 것, 생일이 본인과 같다는 것 등 미처 알지 못하던 여러가지 자그마한 사실들을 알려주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호치민이 평생에 걸쳐 조국의 독립을 위해 서구열강들과 싸워왔다는 사실, 체 게바라와 마찬가지로 냉전의 양극 사이에서 오직 조국의 안위를 위해 끝없이 자신을 내던졌다는 사실, 철저히 왜곡된 상태로 우리가 접해야 했던 베트남전의 진실 등 베일에 싸여온 사안들을 과감히 적고 있다.
책을 읽고 나면 우리나라가 그 전쟁에 참전했던 것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일 수밖에 없는지 처절히 깨닫게 된다. 밀림에 숨어 사악한 계락으로 베트남의 공산화를 꾀하던 늙은 빨갱이가 '타임'지의 표지를 장식하며 다음과 같은 기사의 주인공이 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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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은 외세에서 해방된 통일 베트남의 건설에 일생을 바쳤다. 그리고 고통받는 그의 조국의 1,900만 인민은 이런 미래상을 이루기 위해 전력을 다한 그의 헌신 때문에 심한 고통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애정어린 마음으로 '호 아저씨'인 그를 이해했다. 남베트남인도 같은 감정을 품고 있다. 현재 살아 있는 민족 지도자 가운데에 그만큼 꿋꿋하게 오랫동안 적의 총구 앞에서 버텼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체 게바라 평전'과 더불어 반드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좋은 책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체 게바라 평전'에 비해 무지 얇다. [인상깊은구절] 높은 곳에 있지도, 먼 곳에 있지도 않다 황제도 아니고 왕도 아니다 그대는 그저 큰길가에 서 있는 보잘것없는 이정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바른 방향을 일러주어 길을 잃지 않게 한다 아직 길 위에 서 있는 이들에게 얼마나 더 가야 할지 알려준다 그대의 노고가 가볍지 않으므로 사람들은 늘 그대를 기억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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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그 나라에 대해 그다지 많은 것을 알진 못한다. 하지만 그 나라가 나의 많은 관심을 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와 그다지 크게 다르지 않은 역사 때문이 아닐까 한다. 남과 북이 나뉘어 전쟁을 했고, 그 결과 우리는 분단이라는 결과물을 얻었다. 그에 비한다면 베트남은 조금 더 행복한 역사를 지닌걸지도 모른다. 적어도 둘로 나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느 쪽이 더 행복하고 덜 행복하고를 따지는건 우스운 일이 아닐까 한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고 베트남인들이 원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에 있어서, 그 나라의 민족이 주체가 될 수 없었던 시간들은 시련이 아닐까 한다. 그런면에서 베트남과 우리나라는 모두 시련의 역사를 지닌 것이다.
대부분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한명의 영웅시, 신성시되는 인물이 존재한다. 쿠바의 카스트로가 그러하고, 북한의 김일성이 그러하다. 그리고 호치민은 어쩌면 베트남에서 그와 같은 위치에 해당하는 인물이 아닐까 한다. 오늘날 베트남의 곳곳에서 그의 이름을 딴 시설들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호치민시, 호치민 정치학원, 호치민 청년동맹, 호치민 국도 등이 바로 그 예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신성화에 대해 우리는 늘 비판하곤 했었다. 지난 날 체 게바라가 쿠바혁명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볼리비아로 떠나야 했던 이유가 바로 다름 아닌 혁명 이후 도래했던 관료주의 체제의 고착화였던 것 처럼, 우리는 사회주의 체제에 대해 그러한 체제적 모순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노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평전'이라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을 조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과정에서 가끔씩은 영웅화 되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한동안 우리 사회에서 유행하던 체 게바라의 평전이나 전태일 평전-물론 그들은 위대했다-이 결과적으로 인물을 영웅으로 만들며 또 다른 형태의, 책의 판매라는 상업주의에 의도적이건 비의도적이건 간에 빠져들었던 것 처럼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책 역시도 그러한 요소가 전혀 없노라고 이야기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앞에 언급한 책들과 많이 다른점을 지니고 있다면 그것은 이 책을 기술한 작가가 호치민과 직접적인 만남을 가졌었다는 게 아닌가 싶다. 인간이라는게 100% 객관적일 수는 없지만, 그와 같은 만남은 그로 하여금 호치민에 대해 조금은 더 정확한 관점을 가지게 만들지 않았을까 라는 일종의 기대감이 존재하는 것이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이 떠오른다. 호치민을 이해하고, 그의 위대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베트남에 대한 전반적인 배경이 선행되어져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작가는 그러한 나의 생각에 부흥이라도 하듯이, 책의 첫 부분에서 베트남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서술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그의 인생은 단 한순간도 평온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를 부를는 수많은 호칭, 즉 가명들이 존재했던 것을 보면 그것을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는 그 와중에서도 내면의 평온을 유지했었던 것 같다. 그가 위대하다고 이야기되어질 수 있는 것은, 수많은 나라를 오가면서 그 어느 곳에서도 냉대를 받지 않았던, 그곳 사람들을 사로잡았던 그의 인간성 때문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는 적어도 내가 볼 땐 일방적인 공산주의자로 이야기 되어질 수 없을 듯 싶다. 물론, 그의 사상적 기반이 마르크스-레닌주의 였음을 부인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에게선 맑시스트 이전에 민족주의자, 그리고 현실주의자로서의 면모가 보여지는 것이다. 그것은 순간순간마다 미국, 프랑스 등과 협력을 하는 모습들을 통해 볼 수 있다. 또한 그는 기존의 사회주의 진영이 소련의 위성국에 불과한, 소련의 지시에 따른 행동만을 하던 것과는 달리, 그 나름대로의 판단에 입각한 국가 건설에 몰두한다. 그것은 자유민주주의,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떠나서 '민족'적 차원을 앞서 생각하고, 민중을 위한 국가를 건설하는 그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대목인 것이다.
그의 이러한 위대함은 1969년 그의 사망과 관련된 타임지의 보도에서 잘 드러난다. 냉전의 시초가 보이기 시작하던 그 시기, 뉴욕타임즈는 '현재 살아있는 민족 지도자 가운데에 그만큼 꿋꿋하게 오랫동안 적의 총구 앞에서 버텼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책의 끝머리에 적혀있는 '그의 강철 같은 의지 앞에서는 높은 산도 몸을 낮춘다'라는 말 역시, 물론 이는 한니발에게 바쳐진 묘비명이다, 그의 위대함을 잘 드러내는 말이 아닐까 한다.
힘의 원리에 의해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잠식하고, 약소국은 강대국에 의해 원치 않는 역사를 만들어가야 했던 그 시절, 호치민은 분명 베트남의 희망이었다. 그가 택한 노선이 사회주의적이고 공산주의적인 노선이었고, 그로 인해 실제적으로 베트남인들이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프랑스, 미국이라는 강대국과의 싸움에서 결코 경제적인 식민지로, 이데올로기적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고 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호치민'이라는 영웅이 존재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인상깊은구절] 길 위에 나서봐야 위험을 받아들일 수 있다. 산을 오르고 나면 또 다른 산이 보인다. 그러나, 애써 산꼭대기에 올랐을 때에야 만 리 먼 곳을 한눈에 전망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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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에 있지도, 먼 곳에 있지도 않다 황제도 아니고 왕도 아니다 그대는 그저 큰길가에 서 있는 보잘것없는 이정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바른 방향을 일러주어 길을 잃지 않게 한다 아직 길 위에 서 있는 이들에게 얼마나 더 가야 할지 알려준다 그대의 노고가 가볍지 않으므로 사람들은 늘 그대를 기억하리라 어쩌다가 호치민에 대해서 얘기를 나눌 일이 있었다. 그리 아는 것이 없어서 많은 얘기를 하지는 못했고 하게 된 말들에 대해서도 맞는 말이라고 자신 할 수 없었다. 틀린 생각들이 많았을 것 같다. 호치민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호치민이 이름이라는 것과 베트남 독립에 지대한 공헌이 있다는 것 정도만을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생각해보니 그것만 알고 있는 것 같고 나머지는 어딘가에서 지나치듯 들었거나 그러리라 추측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너무 알고 있는 것이 적다는 생각이 들었고 중고서점에 가게 되었을 때 책들을 그러던 중 찰스 펜의 ‘호치민 평전’이 눈에 들어왔고 그때 생각이 떠올라 곧장 손에 쥐게 되었다. 국내에 호치민의 생애에 관한 책은 많이 소개되진 않았고 출판된 책들 중 윌리엄 J. 듀이커의 ‘호치민 평전’이 가장 상세하게 호치민을 살펴보고 있어서 그 책을 읽어야했지만 1,000쪽에 가까운 분량이 부담스러워 우선은 간단하게 삶을 알아볼 생각으로 찰스 펜의 ‘호치민 평전’을 읽어보게 되었다. 저자는 AP 통신기자였고 미국 정보국 CIA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동일 업무를 하던 OSS에 근무하면서 직접 호치민을 만나보기도 했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어서 한편으로는 미국 측의 입장에 기울어져 호치민에 대해서 알려주겠지만 아주 왜곡된 시선으로만 호치민을 다루지는 않았을 것 같았고 실제로도 어느 정도의 객관적 시선으로 호치민을 살펴보고 있다. OSS 출신이라는 선입견 때문일까? 읽으면서 평전이라는 느낌보다는 어쩐지 한 인물에 대한 보고서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되도록 간결하게 호치민의 삶에서 주요한 내용들을 빠르게 확인해보고 있다. 호치민을 생각하면 당연히 베트남을 떠올리기 마련이고 호치민에 대해서 알아볼 때 베트남을 떼어놓고 말할 것은 거의 없다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호치민은 베트남 독립을 위해서 모든 삶을 걸어왔고 그것이 가능하기 직전에 삶을 마감했다. 아쉽게도 독립을 달성하는 그 순간을 경허하진 못했지만 그것이 완수되는 것을 의심 없어하며 삶을 마감했을 것 같다. 되돌아 봤을 때도 과연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혼란스러운 상황과 과정 속에서 수많은 어려운 조건 속에서 이뤄낸 업적이기 때문에 베트남 사람들은 여전히 자부심을 갖고 있을 것이다. 외세의 힘에 무릎을 꿇고 깊은 좌절을 맛보았던 경험이 있는 나라의 국민이고 베트남처럼 스스로의 노력으로 독립을 쟁취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베트남의 경우가 그리고 호치민이라는 존재가 보다 특별하게 생각된다. 베트남이 독립하기까지 지난한 과정을 겪어왔던 호치민의 삶이기 때문에 그리고 오로지 베트남 독립을 위해서 살아왔던 호치민이었기 때문에 그 누구와 비교해도 편하고 안락한 삶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저자가 말하듯 호치민은 베트남 독립과 전쟁이 완결되기 전에 사망을 했기 때문에 그의 과거에 관한 정보가 생각보다 부족하기만 하고 (본인 스스로가 많은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전쟁이 진행되는 도중이라 일부러 알아보려는 노력도 적었을 것이고) 청년기 이후의 삶에 대해서 다룰 때에도 독립을 위한 처절한 노력으로 가득할 뿐이라 상대적으로 극적인 매력이 적어서인지 호치민은 다른 (혁명 혹은 독립에 성공한)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덜 주목되는 것 같다. 무관심한 것 같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호치민을 말하는 경우는 적은 것 같은데, 어째서 연구자들이 호치민에 대해서는 특별히 관심을 갖지 않는지 조금은 궁금하게 된다. 좀 더 상세하게 살펴보고 그 고된 삶을 자세히 알아본다면 지금처럼 야박하다고 말할 정도로 언급되는 경우가 적은 이유에 대해서 궁금증과 또는 불만을 갖게 될 것 같다. 어쩐지 홀대당하고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소련과 중국과 같이 사회주의 그리고 공산주의 국가들 중 핵심 국가에서 벗어나 있는 주변부 국가의 지도자였기 때문에 덜 주목하게 된 것인지 그게 아니면 일정하게 소련과 중국과 거리를 갖고 있어서 항상 의심스럽게 생각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여러 방식으로 견제를 받았고 절대적인 지지를 받지 못했던 삶처럼 죽음 이후에도 이런 저런 방식으로 주변부로 미뤄놓거나 덜 주목하게 되는 것 같다. 더 많은 연구자들의 연구와 검토가 이뤄진다면 좀 더 다양한 모습을 알 수 있을 것이고 좋은 모습들만이 아닌 부정적인 평가들도 생겨나겠지만 아직 많은 것들이 감춰져 있고 덜 다뤄진 것 같다는 생각에 호치민의 삶에 대해서 좀 더 꾸준한 관심이 이어져야 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그리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지만 아시아에서 살아가면서 너무 아시아에서 알려는 노력이 부족한 것 같다는 반성을 새삼 해보게 된다. 조금이라도 더 알아봐야겠다. 저자는 되도록 길고 장황하지 않게 마치 보고서로 작성하듯 호치민의 삶을 다루고 있다. 중요한 사건들이 간단하게 언급되고 상세하게 다룰 필요가 있는 부분들도 대략적으로 논의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기 때문인지 빠른 진행으로 그의 삶을 알 수 있게 해준다. 호치민의 삶에서 저자가 생각하기에 무척 중요한 내용들만을 되도록 짧게 다루고 있다. 더 깊이 알 수 없지만 대략적으로는 삶을 알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어린 시절 해외를 떠돌던 시절 유럽과 미국에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공부하게 된 과정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서 어떤 노력들이 있었는지 소련으로 중국으로 향해서 무엇을 깨닫게 되었는지 베트남으로 돌아와 독립을 위해서 계속되는 투쟁과 전투의 과정들 처음에는 프랑스를 나중에는 미국과 베트남 독립을 위해서 싸우는 과정들 그 과정 속에서 보여주는 기민한 정치적 노력들 까지 호치민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룰 수 있는 순간들만 잘 골라냈기 때문에 (사람들에 따라 누락되고 제외된 부분들을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삶을 조금은 엿볼 수 있고 그 짧은 엿보기의 과정에서 호치민에 대한 존경심을 갖게 만든다. 어떻게 저런 삶을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존경심만 커지게 하는 삶이었다. 본보기로 삼기에는 너무 힘겹고 고난으로 가득한 삶이고 스스로에 대해서는 엄격하면서 베트남 독립을 위해서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던 호치민의 삶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게 된다. 너무 위대한 삶이라 어떤 식으로 비난하든 반박하고 싶고 호치민의 입장을 옹호하고 변명이라도 해주고 싶어지는 삶이었다. 물론, 삶에서 어떤 잘못도 없는 삶은 가능하지 않듯이 베트남 독립의 과정 속에서 호치민 또한 곤혹스러운 부분도 있고 애써 변명해도 그 잘못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들이 있기 마련일 것이다. ‘호...’에서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아주 간략하게 언급되고 있지만 호치민의 전체 삶을 생각한다면 그 잘못된 부분들에 대해서 충분히 비난과 비판이 필요할 것이지만 호치민의 잘못을 크게 나무라고 싶기 보다는 어쩌다 그런 상황으로 번졌을지 그 상황과 호치민의 곤란한 입장을 먼저 이해해보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에 대해서 무언가를 말하라면 결국에는 찬사만이 남게 될 것 같고 실제로도 악의적인 평가보다는 칭송이 대부분인 것 같다. 무척 존경심을 갖게 만드는 삶인 것 같다. 시간과 기회가 허락한다면 좀 더 그의 삶을 알아보고 싶다. 베트남 독립과 혁명을 위해서 일생을 바쳤던 삶이었고 누군가에게 비난을 받기 보다는 존경과 존중을 받을 삶이었다. 아쉬운 부분도 실망을 느끼는 부분도 있겠지만 다른 이에 비해서 잘못된 부분이 많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쩐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언급되는 경우가 적다는 생각에 여러 위대한 혁명가 혹은 지도자를 말하게 될 때 일부러라도 앞에 자리하도록 해야겠다. 참고 : 호치민이 공산주의자인가 민족주의자인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논란이 계속 있을 것 같다. 둘 다라는 말이 맞을 것 같지만 때에 따라서 실리를 챙기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어려운 상황 속에서 무언가를 모색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주 떠올리며 생각할만한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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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혁명가의 모습이란 어떤 것일까? 단지 카리스마가 있다고 해서 혁명가가 되는 것도 아닐 것이며 정치적인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혁명가가 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혁명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희생하고 그 어떤 어려움에도 굴복하지 않는 강인한 의지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호치민은 진정한 혁명가라고 할 수 있겠다. 오랜 기간 동안 그의 신념은 굽힌 적이 없었다. 이는 그가 타계한 후에도 수많은 베트남 사람들에게 하나의 표상으로 자리 잡음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이 책에는 호치민의 어린 시절부터 타계 후의 이야기까지가 정리되어 있다. 업적과 정치적인 신념에 대한 해설 뿐만 아니라 호치민의 인간적인 모습까지 잘 살려내고 있다.
다만 책의 장정, 분량에 비해 책값이 조금 비싸게 책정되었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일 수 있겠다. [인상깊은구절] 사물은 진화한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비 온 뒤에야 날씨가 맑아진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세상은 젖은 옷을 벗어버린다. 수천 리를 달리니 산에는 비단 양탄자가 펼쳐져 있다. 햇볕이 따스하고 바람이 상쾌하니 꽃들이 활짝 웃고, 비에 씻겨 깨끗해진 높은 나뭇가지에서 새들이 합창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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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호치민과 김일성이 유사하다고 주장한 이들이 있었나보다. 민족의 안위를 위해서 공산주의를 이용했다는 것. 친김일성계 이북사람들이 그랬을 것이고, 친이북정권계 이남 사람들이 그리 말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궁금증에서 펼쳤다. 민족주의와 공산주의 간의 애매한 경계가 궁금해서다. 요즘 '민족주의'말을 하면 촌스러운 사람 취급을 당한다. 세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세상이라지만, 민족주의적인 마음을 어디 감출수 있으랴. 호치민이 공산주의자가 된 것은, 오로지 베트남 민족을 위해서였다. 얼추 김일성과 닮아 보일 수 있다. 김일성은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한층 나아가 우리식 '주체사상'을 만들었다고 하지 않는가?
중국과 소련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면서, 자국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려는 모습도 좀 닮아보인다. 그런데 둘 사이에는 너무 많이 다른 점이 있다. 김일성이 뻥이 심한 반면 호아저씨 호치민은 뻥이랑은 거리가 먼 사람이다. 다음에 정식으로 서평을 쓰겠지만 김일성의 자서전 <세기와 더불어>와 그의 측근들의 '우상화작업'은 뻥투성이다. 아니, 뻥이라기 보다는 과장이라고 해야 그분들 기분이 좀 낫겠다.
어쨌든 호아저씨는, 오두막에서 살기를 원했고 시장바닥의 우리네 일반사람들과 뒹구는 것을 원했던 아저씨였다. 우상화를 경계하고, 스스로 초라해지기를 원했던 옆집 아저씨 같지 아니한가?
지금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미국이 있고, 그에 맞짱뜨는 유일한 나라 북한이 있다. 누군가는 이것이 꽤나 자랑스러운것 처럼 북한편을 든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미국을 몰아낸 배트남이라는 나라를 또한 기억해야 한다. 북한처럼 벼랑끝 억지외교를 부리는 것이 아닌, 민족적 정당성에 호소했던 호치민 사상을 기억해야 한다. 미군들이 배트남에서 맥을 못췄던 이유는 일반 시민들이 모두 호치민의 편에 섰기때문이다. "우리가 너희를 구해주러 왔다"는 미군들의 명분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무력은 결국, 정의 앞에 무릎꿇는다. 핵폭탄을 끌어안고 벼랑끝에서 외교술을 부리는 북한에게는 없다. '정의'라는 게 없다. 김일성의 '우상화 작업'과 호치민의 '호 아저씨'는 바로 이렇게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 냈다.
지금 우리는 어떤 정의를 가슴에 지니고 있는가. 세기의 영웅이 되기보다는, 아저씨를 꿈꾸는 자의 가슴속에서 그 정의를 본다.
이 책은 바로 그 '정의'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다. |
| 평소 신뢰하는 한겨레신문 서평에서 호치민평전소개를 보고 저널리스트가 쓴 평전은 정말 아니더라..는 개인적인 취향을 접고 구매하기를 클릭했다. 가격에 비해 너무나 빈약한 책을 받아드는 순간 한번 실망했고..쌈지돈 아까워 끝까지 읽고 난 다음엔 이러한 취향은 신념으로 굳어졌다. 한겨레를 비롯해 멋드러진 서평을 적어놓은 일간지 책마을 기자들은 과연 이 책을 제대로 읽어본 후 서평을 썼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원서를 보지못해 번역을 문제삼는 건 논리적 한계가 있겠지만..이 책을 읽고 과연 몇명이나 대학교수 번역작이라고 생각할까. 우리 대학의 병폐. 제자들(이책 번역수준은 원생도 아닌 학부생 수준인 듯)에게 한꾸러미씩 떠넘긴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오프라인 서점에서 이책을 봤다면 절대로 사지 않았을 책..책장에 꽂아둔 시퍼러둥둥한 책을 보고있자니 엄한 호아저씨에게도 감정이 상하는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