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먹은 음식으로 무엇을 만들어내는가를 알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먹은 음식으로 비계와 똥을 만들고 어떤 사람은 건전한 일과 즐거운 유머에 쓰며, 또 어떤 사람은 하느님 곧 진리를 향해 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의 한 구절이다. 세상을 살면서 무엇을 얻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몸으로 받아들여 꺼내놓을지가 더 중요하다는 작가의 인식이 드러난 구절이다.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자연을 돌아보면 우리는 '구멍만 둘인' 누에가 지닌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 뽕잎을 먹고 똥을 싸고, 뽕잎을 먹고 똥을 싸다가 어느 날 문득 누에는 먹은 것을 고운 비단실로 토해낸다. 아무리 잡스럽고 사소한 일상일지라도 소중하게 되새김질해서 신성을 부여하는 성인의 모습이 누에의 일생과 겹쳐 보이다니. [나무신부님과 누에성자]에서 시인 고진하씨는 원주 치악산 일대에 기거하면서 사소하고 잡스러운 일상의 경험을 성실한 누에처럼 고운 비단실로 토해 내고 있다. 그가 가족들과 치악의 벽촌에 머물면서 겪었던 이야기들은 주목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아내와 함께 시장에 나가서 꽃게를 흥정하다가 결국 상인을 못 믿고 생태만 사온 이야기며, 느닷없이 호수를 거닐며 하늘빛을 보고 싶었다는 것이며, 아내가 도둑괭이에게 일부러 음식을 먹여준다는 속삭임이나, 산불로 다 타버린 숲을 거닐며 안타까워하는 말들은 실은 옆집 사람들의 경험담일 수도 있고 성실한 동네 어른의 입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이 경험들을 그냥 배설하지 않고 가지런한 언어로 비단결처럼 아름답게 써나간다. 그것은 그가 겸손하고 좋은 눈과 귀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눈과 좋은 귀는 무엇일까. 시인은 말한다. 모든 존재는 저마다 신이 들려주는 한 마디씩의 말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 마리 풀쐐기라도 충분한 시간을 갖고 들여다보면 따로 설교 준비를 할 필요가 없을 만큼 신성으로 가득 차 있다고. 숲과 물의 사원에서 돌이나 곤충과 교감이 있는 눈과 귀라면 얼마나 좋은 눈과 귀가 아니겠느냐고. 인간중심, 자아중심의 눈과 귀가 자신의 내면만 응시하는 오만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면 자연과 공존하려는 눈과 귀는 사소한 일상도 성스러운 체험으로 승화시키는 누에성자의 겸손을 실천하고 있는 것. 타인을 돌아보지 못하는 눈과 귀가 아니라 다른 사물과 사람에게 몸을 굽혀 듣고 볼 수 있는 누에성자의 눈과 귀. 이 글을 통해 작가는 스스로 누에가 되어 이야기를 엮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누에성자가 되기 위해 자기성찰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아름다움은 꾸미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닦는 데에 있다는 진실을 비유적으로 제시하면서 그 과정 속에는 상처와 아픔이 뒤따르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옻나무의 체액은 온갖 고통 속에서 흘러나오지만 아름다운 광택과 더불어 모든 물건을 썩지 않도록 보존해주는 혜택을 인간에게 주지 않는가. 사랑이란 곧 아픔과 희생을 통해서, 자신을 한없이 낮추고 타인을 높이면서 얻어지는 것. 고름이 흘러나오는 문둥병자를 껴안고 한 밤을 지낼 수 있었던 성 프란체스코를 생각해 보자. 얼마나 더 낮은 곳으로 가야만 하는가를... 작가의 소망은 욕망을 버리는 데에 있다. 한없이 상승하고 싶은 욕망, 한없이 소유하려는 욕망, 한없이 집착하려는 욕망에서 벗어나는 순간을 작가는 상상한다. 숲이 다 타버린 산 위에 서서 더 이상 서글픈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 자신의 신념이나 종교를 절대화하고 신비화하지 않는 것(그런 까닭이었을까, 기독교 신자인 그가 불교와 우파니샤드에 이르기까지 깨달음을 얻고자 했던 것은). 추위를 피하기 위해 목불을 태우고 사리를 찾으려 했다던 탁발승의 이야기는 곧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었는지. 입속에는 말이 적게, 마음속에는 일이 적게, 밥통 속에는 밥이 적게, 밤이면 잠이 적게 해야 한다는 금언. 나무나 풀이 되어 한곳에 고요히 붙박여 하냥 평화를 누리고 싶어하는 작가의 바람이 한결 쉽게 이해가 간다. 더워지고 짜증나는 여름. 고진하의 산문집은 솔숲을 상상하게 하며, 일상에서 깨달음을 얻게 하며, 아이들에게 산문의 맛을 느끼게 해 줄 것 같은 기대를 가지게 해서 글을 읽는 내내 즐거움을 선사해주었다. 오랜만에 쉽고 간결한 산문의 맛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