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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시끄럽다. 울분이 터진다. 사실 학교에서 배운 역사와 역사 관련 서적을 보며 알게 되는 역사의 괴리감 때문에 분통터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렇기에 이런 감정이 치밀어오르리라는 예상은 어느 정도 했다. 하지만 그 정도의 각오를 하고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는데 상상 이상으로 머릿속이 시끌시끌하다. 복잡한 마음으로 한동안 혼란스러울 것이라 짐작된다. 역사를 제대로 알고 싶다는 생각에 선택한 이 책 『위험한 역사 시간』은 한동안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을 상기시켜줄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저자는 이주한. 단재 신채호 선생 기념사업회 간사를 역임했으며, 2015년 현재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이자 역사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에 유래가 없을 정도로 훼손되고 비틀어진 한국사의 원형을 복원하기 위해 치열하게 연구하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과『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가 있다. 식민사학 해체 국민운동본부 대변인이며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이사를 맡고 있다.
"이것이 사실인가?"하는 의문을 갖고 역사 교과서를 분석했다. 역사 교과서에는 한국이 없고 중국과 일본이 있었다. 중국과 일본이 역사의 주체이고 한국은 객체였다. 위험한 역사다. (10쪽) 수능에서 국사가 제외된다고 했던 때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떠올리며 울분을 토했지만, 교과서 자체가 말도 안되게 뒤틀렸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사실 학창시절에는 교과서에서 보게 되는 역사가 전부였지만, 그 시기를 지나 다양한 역사 관련 서적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기는 했다. 모든 책이 100퍼센트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감안해도 학교에서 배우던 역사와 다르다는 점에서 혼란스럽기는 했다. 좀더 관심을 가지고 볼 수도 있었을텐데, 역사는 역사를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기에 그냥 그런 의견도 있다는 것을 보기만 했다.
이 책은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제목이 모두 '위험하다'. 1장 '역사를 보는 눈이 위험하다', 2장 '중국사로 둔갑한 한국사가 위험하다', 3장 '한없이 작아지는 반도사관이 위험하다', 4장 '불멸의 임나일본부설이 위험하다', 5장 '역사 교과서 옆의 책도 위험하다'라는 소제목들만 보아도 현재의 아슬아슬한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같은 문장도 어떻게 해석해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와닿는 것이 다르다. 교과서를 신봉하기만 했던 것인지, 학창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이것은 대단한 문제다. 문제를 문제인 줄도 모르고 살아왔던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보니 그 위험성이 피부에 와닿는다. 뒷골이 당겨서 한꺼번에 보기에는 위험하다. 두고두고 읽고 생각해볼 책이다.
단재 신채호는 『독사신론』에서 "내가 현재 각 학교의 교과용 역사책을 살펴보니 가치가 있는 역사책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100여 년 전 단재가 겪었던 뼈아픈 비극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역사의 수레바퀴는 끝내 제 갈 길을 찾아 전진할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할 줄을 모르는 '진실 추적자들'이 점점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402쪽) 역사에 관한 이야기는 시작도 끝도 없는 논쟁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의식을 가지고 점진적으로 변화를 시도한다면 우리 후세에는 제대로 된 역사를 배우고 클 수 있을 것이다. 100여 년 전 단재가 겪었던 뼈아픈 비극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지만, 해당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연구하고 일반인에게 다양한 저서를 통해 알린다면 희망이 없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역사 교과서가 진정한 역사책으로 거듭나는 데에 일조하는 책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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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하다. 한심하다. 분노가 치솟는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느꼈던 감정이다. 어떻게 이런 왜곡의 역사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걸까? 잘못된 역사를 가르치면서도 아무런 자책감도 없는 걸까? 사료에 근거한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고 자신들이 만든 틀, 아니 자신들이 만든 틀도 아닌 일제의 식민사관의 틀 안에서 역사를 뒤틀어버린 이들이 이 땅의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를 책임지고 검증하고 있다니. 어이가 없어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의 왜곡은 첫 부분에서부터 시작된다. 저자는 가장 먼저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를 문자 유무로 구분하는 방법, 사람이 아니라 도구로 시대를 구분하는 방법이 지닌 오류를 지적한다. 이런 분류법에 담긴 오류를 인지하고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다. 나 역시 어렸을 때부터 배웠던 방식이기에 그러려니 했다. 이 책은 그런 나의 시각을 완전히 바꿔주었다.
문제는 이런 오류가 책 전반에 걸쳐 지적하는 역사 교과서의 오류와 비교해보면 오히려 미미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고조선에 대한 왜곡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단군이 세운 조선의 역사를 신화로 돌리면서 고조선의 역사를 시간적으로, 기술적으로 축소시킨다. 이런 역사 왜곡이 1차 사료를 기반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 누구도 이에 대해 반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역사적 사료들은 오히려 역사 교과서에 수록된 내용과는 정반대되는 사실을 들려준다. 도대체 이런 역사 왜곡이 어떻게 생겨나게 된 것일까?
심각한 역사 왜곡은 이 땅의 주류사학들에 의한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역사적 틀에 맞지 않는 주장은 별다른 확인절차도 없이 재야사학 혹은 극단적 민족사관으로 매도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제시하는 역사적 틀은 어떤 것일까? 이들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일제 식민사관의 주창자들에 닿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이들은 겉으로는 식민사관을 배척하지만 그 속내에는 식민사관의 주장이 뿌리 깊이 박혀있다.
이들이 교과서를 통해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역사는 우리의 역사가 아니다. 중국의 역사이고, 일본의 역사이다. 이런 현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것일까? 답답하고 또 답답하다.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이 남이 있음은 역사학계에서 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 올바른 역사를 알려주기 위해 애쓰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국사 교육은 .....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과 능력을 길러주는 데 가장 큰 목표를 두고 있다. (p.35 / 국정 <고등학교 국사> 머리말 중에서)
국정 교과서에 실린 이 말에 진정으로 책임을 지는 학자들이 우리 아이들의 역사를 담당하는 그 날, 진정한 한국사라고 부를만한 한국사가 기록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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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SNS에서 한 여학생이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서 써 놓은 글을 읽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분명 뉴스 혹은 신문 아니 국사책만 읽어봤다면 할머니들이 왜 그렇게 일본 대사관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는지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이야기를 너무나 당연하게 써놓은 걸 보고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동생과 이것과 관련해서 이야기한 끝에 문제가 언제부터인가 국사가 필수과목이 아닌 선택과목이 되면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런 일들을 겪기 전까지만 해도 (개인적으로도 국사 성적이 좋지 않았던 터라..) 국사시간이 졸립고 따분한 시간으로 여겨졌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 부끄러울 뿐입니다.) 그리고 선택과목이 되었다고 했을 때도 무슨 큰 문제가 있으려나하고 안일하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몇년 사이에 이런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걸 보니 그런 생각했던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지금에와서 다시 국사 수업을 들을 수는 없겠지만 혹여나 누가 저에게 국사 관련 질문을 한다면 한치의 망설임없이 대답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수능공부하면서 국사책 내용은 당연하게 진실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첫페이지 선사시대부터 제가 얼마나 고민없이 그동안 공부를 해왔는지에 대해서 놀랐습니다. 물론 학창시절에는 시험에 합격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기에 이런 고민조차없이 공부하는게 당연했는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현재 중,고등학생들도 저와 비슷한 길을 걸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과연 그런 문제의식없이 공부에만 매진하는것이 과연 옳은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교과서에서도 '임나일본부설'에 대해서 참조사항으로만 공부할 뿐 실제 이 학설이 주는 의미에 대해서 자세하게 들여다 볼 겨를이 없습니다. 만약에 시험에 나온다면 그렇게 쉽게 넘길 사항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저 또한 국사 공부를 착실하게 해오지 않았던 터라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국사에 대한 중요성 뿐만 아니라 현재 교육실정에 대한 걱정을 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성인이 되어서 국사에 대한 필요성을 느낀다면 다행이지만 하루살이처럼 살기도 바쁜 세상 속에서 과연 국사를 제대로 공부하라고 외친들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고등학생들이 참고도서로 이 책을 한번쯤 꼭 읽어보았으면 합니다. 내가 배우고 있는 우리나라 역사가 과연 그대로 받아들여도 좋을지 고민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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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은 우리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최초의 국가일까 아닐까?
고조선과 기자, 위만 조선. 청동기와 철기의 유물, 유적으로 미뤄 본 역사 시대와 같은, 고대사 부분에서 이런 것들이 중요했던가?, 라는 생각을 했던 자체가 국사 교육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고대 문화에 대해서 교과서를 자세히 외웠던 기억이 오래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주입식 암기 위주 교육에서 나 만의 생각이 있었을 리도 없었고, 맞는지 틀렸는지의 비판 의식도 없었던 학창 시절에 오로지 점수 따기 위한 국사 교육에서 어떤 비평이 있을 수가 있었겠는가. 그 때의 기억이 또렷하면 할수록 지금 현재에 와서는 혼란이 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요즘에 와서야 일제 강점기, 조선을 강제로 합병하고 이것을 합리화 하기 위해서 날조, 왜곡한 국사의 잔재물을, 학교 국사 교육으로 부터 그대로 흡수 시킬 뻔 했었다는 생각도 들면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았던 부분은 오히려 안도를 해야 하는가?
215쪽 역사 교과서에 '단군 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했다' 는 사실 한 줄이 들어가는데 광복 후 무려 60 여년이 걸렸다. 역사 학계가 단군이 건국한 고조선을 역사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뜻있는 역사학자들과 시민들, 소신있는 일부 공무원들이 줄기차게 노력한 결과였다.
각종 책을 읽어가며 비교, 분석을 통해 옳고 그름을 스스로 알아내고 싶다는 의욕도 생기는 것이, 국사를 편찬한다는, 역사학자와 고고학자의 판단과 비평이 아직도 완전히 마련되어 있지 못한 상태 라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옛부터 남아있는 자료, 삼국사기, 제왕운기, 세종 실록 지리지 와 같은 책의 내용을 무시해 버리고 일제 사고하의 해석을 그대로 받아 들이는 태도는 이미 신뢰를 잃어 버렸고, 믿을만한 자료를 찾아서 또 반대 해석과 비평을 한 각종 책들을 접하고자 하는 생각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한 마디로 사고의 위험성을 일깨워 주는 책이다. 역사 부분의 생각이 막혀 있거나 더 알려고 하지 않는 자세 또한 죄가 됨을 말해 보고자 하는 책 이다. 그 중에서도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과서에서부터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있음을 탓하고 싶은, 그러면서 자라나는 세대에게 제대로 교육하지 못하고 올바르게 가르치지 못하고 있음을 답답해 하고 있다.
이렇게까지?, 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역사에 관한 우리의 자세는 안일했고, 답답하리만큼 그대로 받아 들였고, 의심없이 받아 들이는 자세를 가지고서 다음 세대에게 전달 하려 하고 있다니, 누구의 역사인데 이토록 무책임하고 무감각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는 것인지도 작가는, 앞선 사학자들의 태도를 들어서 우리 역사의 현 위치를 말해 주고 있다. 일본 사학자가 정립해 놓은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역사를 있던 그대로 해 놓았겠지, 라는 의심의 여지 없는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진실 앞에서 그것이 과연 진실일까?, 라는 생각도 해 보지 않는다는 그것은 오늘 날, 꼬마 아이들도 동화책을 읽으면서, 저 속의 판다는 정말 판다일까?, 라고 의심해 보기도 한다는데 역사를 연구하는 사학자들의 입장 고수는 어찌 이 보다도 꿈쩍 않는 불변의 태도를 보일 수가 있는지, 그것이 어떤 정치적, 사회적, 외압에 의한 것 보다도 '틀' 이라는 자신 스스로의 내부 속에서 갇혀 있다는 것이 더더욱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 역사를 외면하는 한국사 교과서의 실체를 밝힌다.> 라는 부제 아래 비평을 하고 있는 저자는 역사 비평, 열린 역사, 다양한 시각과 해석을 바탕으로 한국사를 연구하고 있는, 식민 사학 해체 국민 운동 본부 대변인을 맡고 있다 한다.
이 저자의 비평은 고조선에서 부터 시작하고 있다. 이 성계의 조선과 구별해서 고조선이 된 것이 아니라 단군왕검이 건국한, 오래 전에 있었던 조선 이라는 의미의 교조선 이다, 라고 여러 자료에서 기록이 남아 있음에도 우리 자신의 고대사가 아니기를 바라는 것 같이 보이고 있다고. 일제의 조선사 편찬도 고조선부터 역사에서 지워 버리는 작업 이었다고 말한다.
이런 식으로 우리의 고대사를 지워 버리는 것은 우리의 조선사 가 아니라 일제에 의한 역사, 중국에 의한 역사, 반도 내에서만 존재하는 역사로 만들고 궁극적으로, 이 부분에서는 독자인 나도 상당히 놀란 부분이었는데, 고대 시대에 원래 일본 땅이었다, 라는 주장, 일본이 고대에 다스렸던 땅이었으므로 현재에 되찾겠다는 뜻의 임나일본부설 까지 주장해 왔다고 한다.
저자는 바로 이렇게, 우리의 고대사가 왜곡됨으로써 생겨나는 파장을 바로 잡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침묵하고 있는 태도, 중 고등학교의 역사 교과서에 나온 잘못된 기술 등을 지적하며 비평하고 있다.
한반도 내에서만의 좁은 식견, 옛 사료를 연구하지 않고 부정하는 자세, 임나일본부설과 같은 끔찍한 식민 사관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한 해외의 어느 역사 교과서가 제대로 된 우리 역사를 말하게 할 수 있을까? 우리 스스로의 교과서, 국정, 국정보다 한 술 더 뜨는 검정 교과서들이 버젓이 버티고 있는데 중국, 일본이 한국의 역사를 왜곡하고 자기네들의 이익에만 어울리는 역사를 만들어 낼 때 우리는?
두 눈 뜨고 우리의 고대사를, 우리의 고대 국가와 고대 영토를 당연히 우리 것이 아니게 만들어 버리는 일 아닌가? 허탈한 웃음이 나오려 한다. 남의 나라 역사 교과서가 왜곡이라는 것을 어떻게 말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자신의 역사 교과서 조차도 올바르지 않은 상태에서, 또한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 자체가 바로 그렇게 왜곡된 상태인 것을.
책을 읽어가면서, 역사 관련 서적들을 좀 더 많이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특히 식민 사관 관련부분에서. 그리고 " 생각 " 이라는 것을 해 가면서 읽어 가도록 해야 한다는 그런 느낌도 갖게 한 책이다. 학교 선생님들, 그리고 세로운 세대, 중 고등학생들이 있는 가정에서도 읽어 보면서 가족 간에 대화를 나눠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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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무려 12년간의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우리와 뗄레야 뗄수 없는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하는 존재이다. 어릴적의 고정관념은 교과서에서 파생한다고 생각해도 될 정도로 교과서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대단하다. 일본이 한국과 중국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제국주의시절의 만행을 왜곡하는 이유도 그때문이다. 그만큼 교과서는 신중하게 서술해야 하며 그만큼 권위있는 기관과 집필진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런데 그 권위있는 기관과 서술자들이 오류를 안고 책을 쓴다면 어떻게 될까? 많은 사람들이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모른채 그것을 사실로 안고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학설이 나타나면 그에 대한 생각이 바뀔거라고 생각하지만 처음에 굳어진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어릴적 국사교과서를 보면서 고구려의 광대한 영토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역사를 자세히는 몰라도 지도를 통해 강역을 확인할수 있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고구려의 멸망을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고 만주가 우리의 강역이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교과서는 중요하다. 특히 사진과 그림은 글보다 훨씬더 받아들이기 쉬운 관계로 그만큼 더 중요하다.
저자는 한국역사교과서의 오류를 끓임없이 지적하고 있다. 역사교과서는 수차례의 개정을 거쳐왔지만 기존의 학설과 그다지 변한건 없는 듯 하다. 백제,신라,고구려가 건국된 3세기 이전의 기록은 여전히 여러부족국가들이 난립하는 상태로 가르쳐지고 있고, 고조선의 존재는 축소,부정되고 있으며 최근에 발굴된 고조선의 것으로 보이는 홍산문명은 중국문명으로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대한민국의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씩 봐야 할 이 교과서가 이런 오류투성이라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어쩔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설령 자신이 고조선이 설화가 아닌 실존하는 국가로서 존재했다고 생각하더라도 중요한 시험에서 교과서에서 배운대로 쓰지 않는다면 그 문제는 틀리게 된다. 이런 상황속에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한들 과연 심도있게 그 연구를 지속할수 있을지, 설령 후에 사학을 전공한다하더라도 지도교수가 논문을 통과시켜주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자신의 학설을 포기할수 밖에 없는 현실인 것이다.
한국 고대사를 심도있게 연구한 분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고조선을 연구했던 윤내현 교수님은 원래 중국사 전공이었다. 고대중국사를 연구하던중 중국관련사료에 고조선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언급되는것을 보고 그때부터 고조선 연구에 매진하게 되었다고 한다. 고대사를 연구했던 최재석 교수는 원래 사회학을 연구하던 분이었다고 한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기존의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할수 있었던 것이 이분들의 고대사 연구를 객관적이게 만들었다고 볼수 있다.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이덕일의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에서 처음 접했을때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있다. 학창시절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했다는 왕들을 달달외웠는데 중앙집권구축의 실질적인 의미가 그 때가 비로소 국가체계가 완성되었다는 이야기였다는 진실은 내가 기존사학을 비판하는 도서를 줄줄이 찾아보는 계기가 되었던것 같다. 몇년이 지나서 고대지명까지 달달외울정도는 아니더라도 왠만한 내용은 줄줄이 알고 있을만큼 많은 책을 찾아보고 읽었다. 그 동안 기존사학계는 아무런 변화도 없다. 이 책을 읽기 한달전에 읽은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에서 이덕일 교수가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까지 갔다는 내용을 보면서 기존사학계의 치졸함을 엿볼수 있었다. 재판에서 이덕일 교수가 이겼음에서 항소에 상고까지 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논리적인 비약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이유가 궁금해질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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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와 역사개념 자체를 인류역사에 그대로 적용하는것의 오류를 설명하고 신석기 시대 탄생한 국가들이 있는데 역사교과서는 이러한 상식에 눈을 감는다고 하니 시대순으로 맞추어진 역사관에서 탈피하여 진짜 역사로서의 기술을 다시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왜냐하면 역사는 진실이지 거짓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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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역사 교과서 문제로 나라가 시끌벅적하다. 좋은 일로 문제가 된다면 좋다만, 좋지 않은 일로 문제가 되고 있어서 속상하다.도대체 누굴 위해서 그러는 것일까? 전세계 대부분이 채택하고 있지 않은 것을 채택하겠다는 정부를 보고 있자면 놀라울 뿐이다. 현재 채택하고 있는 나라를 보면 놀랍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란 말인가, 얼마전 한국사 국정화 문제가 나왔을때에는 설마 했었다. 그냥 그러다 말겠지 했다. 역사 선생을 비롯해 많은 대학 교수들과 시민들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우려를 표명함으로 잠시 수면아래로 내려가나 했는데, 최근 정부에서 강하게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하겠다고 발표를 했는데, 난 이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때마침 [위험한 역사 시간]을 만났던 때이기에 더욱 놀랐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역사가 아니다라는 이 책을 보면, 상당히 놀라운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동안 우리가 배워왔던 역사는 진정한 한국사가 아니라고 한다. 저자도 말하듯이 우리는 우리 역사를 한국사로 생각하지만, 한국 역사학계와 역사 교과서는 우리 역사를 다른 나라의 역사로 보고 있다고 한다. 그 역사는 어디인가? 바로 중국이다. 왜 우리 역사가 중국의 역사가 되어야 하는 것인가? 그것을 파혜치다보면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곳이 바로 일본이라고 한다. 우리의 정체성은 어디도 아닌 한반도에서 나왔는데, 그렇지 않다고 하는 단체가 어디도 아닌 국내 학회에 있다고 하니 심히 부끄러울 뿐이다. 우리가 배웠던 역사 교과서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한국사의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들을 보면 참으로 놀라울 뿐이다. 19세기도 아니고 20세기도 아닌 21세기에 말이다.
현행 검정 교과서도 문제가 있다고 하는 저자인데, 앞으로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채택하고 있지 않은 역사 교과서가 국정화가 되면 어떤일이 벌어질지 생각하기도 싫다. 난도질당하고 여기 저기 누더기가 된 역사를 우리 아이들이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음 하는데, 과연 바람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바람대로 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걸어본다.
우리 모두 역사 앞에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 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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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읽기까지 우리 역사에 대해 부끄러운 생각은 어느정도 가지고 있었지만 이렇게 잘못된 역사를 교육시키는 나라라는 생각을 해 보지는 않았던 터라 마지막 장을 덥는 순간까지 나는 충격에 휩싸여 그야말로 지금껏 알아왔던 우리의 역사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새로 정립해야 하겠다는 마음을 먹게 했다. 물론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시대물과 사극 등을 통해 그시대의 문화와 사람들의 삶을 보기는 했지만 정작 우리의 역사가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역사관을 펼쳐내지 못라고 중국사관이나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의 맥락위에서 펼쳐진 역사관이라면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기도 하거니와 우리의 역사를 이렇게까지 폄하하고자 하는 족속들의 숨겨진 의도를 파악해 그들을 단죄하고 싶어진다. 저자 이주한은 세계사에서 유래가 없이 훼손되고 비틀어진 한국의 역사를 원형 그대로 복원 하고자 노력하며 열린역사를 지향하는 역사학자로 판단해도 될듯 하다. 우리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부분이 바로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역사교육이고 보면 저자가 피를 토하듯 열변하는 모습을 그려 볼 수 있다. 우리 교육 현장의 역사 교과서가 어떻게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지 또 그러한 왜곡된 역사 교육의 현장을 어떻게 바로 잡아야 하는지를 독자들에게 커다란 화두로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지금까지 학교 역사 또는 국사 시간에 배운대로 생각한 문명발생에 대한 지도와 그 해설에 대해 왜 이상한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스스로를 질책하곤 하지만 나의 잘못도 잘못이지만 정작 가르침을 주는 교사들 역시 그러한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곤 결굴 학생이나 교사나 여가에 대해 오십보 백보라는 불명예를 떠안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비단 이러한 것이 교사와 학생의 잘못만은 아닐것이며 이는 우리의 역사를 주체적으로 세워야 할 국가의 책임 또한 없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인류의 문명을 소개하며 4대강 유역의 문명을 소개하지만 정작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를 가르는 서구적인 프레임에 갖혀 한국문명의 사람짐에 대해서는 아무도 반론도 이의도 제기하지 못한 못난 후손들이 되고 말았다. 더구나 우리가 역사적 근원으로 다양하게 활용하는 [삼국사기]에 대한 조선총독부의 교묘한 조작과 왜곡의 실체를 지금껏 눈치 채지 못하고 있음은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처럼 아직도 '조선에 조선사라고 할 만한 조선사가 있었는가'하는 물음에는 답하지 못할 정도로 개악적인 역사교육을 아무런 의식없이 진행하고 있는듯 해 정말 통탄하고 비탄한 마음 가눌길이 없다. 우리의 의식속에 깆들어 있는 식민사관에 대해 지금이라도 제대로 국민들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 또한 그러한 식민사관으로 길들여진 우리의 모습들을 어떤 방법으로든 많은 사람들이 알게되고 더이상은 존속치 않토록 개선해 나가야 할 역사교육의 새로운 장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바램으 가져 보지만 현실은 모두 나몰라라 하는 상황인듯 안타깝고 안타깝다. 얼마전 검정 역사교과서의 식민사관 또는 중화사관에 물든 교과서들로 나라 전체가 들끓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 국가 주도의 국정으로 전환해 발행한다는 소식도 들었지만 정작 중요한것은 국정과 검정의 차이가 아니라 올바른 역사관을 올바른게 국민들에게 심어 줄 수 있느냐의 문제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때 국민 개개인 역시 우리의 역사에 좀더 관심을 갖고 올바른 역사를 알고자 노력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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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소리 없는 전쟁의 한복판에 서있다. 이 전쟁은 바로 ‘역사 전쟁’이다. 역사는 단순히 지난 시간 속에 죽어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존재하는 하나의 국가와 민족 속에서 생동하는 생명력으로서, 그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국민들을 하나로 묶는 끈이라 할 수 있으며, 그 국가와 민족이 미래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기반이고, 그 방향을 지시하는 나침반과 같은 그 무엇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통찰해보면 각 민족과 국가들은 주변 민족과 국가들과 부단히 투쟁하며 명멸을 반복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동력의 바탕에는 항상 역사의식이 있었다. 뚜렷하고 투철한 역사의식을 가진 민족은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하여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 나라는 그들의 역사를 그들의 국익에 맞게 서술하고 국민들에게 역사의식을 끊임없이 가르쳐 주입시키고 있는 소이이다. 역사적으로 우리 한민족은 북쪽으로는 중국의 한족을 비롯한 여러 민족과 다퉜고, 남쪽으로는 왜(일본)의 수많은 침략을 물리치며 우리의 정체성을 유지해왔다. 이것은 비단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의 일이며 미래의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과연 이러한 전쟁 속에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존감을 높이며 역사의식을 충분히 고취시키고 있는가. 한국의 정치, 경제, 문화 등 분야에 뿌리박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의 원인을 추적하다 보면 하나같이 이른바 친일파, 더 정확히 말해서 친일부역모리배를 청산하지 못한 것에 닿는다. 이는 사학계도 예외가 아니다. 요즘 우리 사학계를 편리하게 ‘강단사학’과 ‘재야사학’으로 나누는데, 강단사학은 말 그대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자들로서 그들의 학설은 주로 교과서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고, 재야사학은 강단사학에 맞서 그들의 주장과 다른 학설을 펴고 있다. 물론 강단사학이 주류가 되고 재야사학은 비주류라 할 수 있다. <위험한 역사 시간>에서 비판하고 있는 바가 바로 ‘강단사학자’들의 주장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들의 연원을 쫓아가보면 일제시대에 ‘조선사편수회’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친일학자들에게 닿는다. 이병도를 중심으로 한 이들 친일학자들은 해방 후 경성제국대학에서 서울대학교로 간판을 바꾼 곳에서 여전히 활동하며 일제의 식민사관에 근거한 그들의 학설을 전혀 반성하지 않고 그대로 후배, 제자들을 길러내며 끈질기게 그 생명을 유지해왔다. 즉 일제의 식민사관이 그대로 우리 교과서에 반영되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뜻이고, 다시 말하면 황국신민을 지금도 길러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제의 식민사학의 핵심 논리가 “한국은 주체성이 없고 주변 민족의 지배과 간섭, 침략에 의해 전개된 타율성, 정체성의 역사다. 한국은 중국와 일본 등 주변국의 지배를 받아야 발전할 수 있다.”(p.387)이다. 그들은 한국 역사를 ‘시작은 가능한 한 늦게, 강역은 좁게’ 학설을 세우는 것이 기본 논리이기도 하다. 그들은 이른바 ‘실증사학’이라는 것을 내세워 단군의 고조선 건국을 실증적으로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역사가 아니고 신화일 뿐이라고 하여 한국 역사의 시작을 부정하였다. 이들은 위만조선 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역사의 문턱에 닿았으며, 실질적으로는 한사군 시대에 한국의 역사가 시작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한국의 역사의 시작 자체가 식민지의 역사였음을 주장하면서 일제의 조선 지배를 합리화하려는 기본적인 식민사학의 논리이다. 물론 하나의 가소로운 학설일 뿐이지만, 지금도 강단에서는 표면적으로 몇 가지 말만 바꾸고 실질적으로는 그 내용은 그대로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이미 고고학적으로 중국보다 고조선 강역에서 청동기, 철기 문명이 먼저 발달했다는 것이 밝혀졌는데도 불구하고 교과서에는 여전히 청동기 문물이 중국에서 전해졌으며, 철기 문물은 연나라 유민으로 들어온 위만이 가져온 것으로 기술되어 있는 것도 문제다. 그들이 주장하는 ‘실증사학’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사실이다. 일본인들이 주장하고 ‘임나일본부설’ 또한 허구 그 자체임을 알아야 한다. 중국사, 한국사에서 ‘임나일본’에 대한 내용은 일언반구가 없다. 오로지 허구적 상상력의 소산이라고 알려진 <일본서기>에서만 언급되고 있으며, 그 내용 또한 한반도 경영이 아니라 대마도로 추정되는 것일 뿐이다. 이것도 역시 일제가 조선을 침략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서 임나일본부, 즉 왜의 한반도 남부 경영을 주장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 연장으로 한국의 고대사를 조작, 왜곡, 축소했으니, 그 근원은 바로 일제의 한국 지배라고 할 수 있겠다. 자, 지금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자. 친일군인의 딸이 대통령의 자리에 앉아있고, 친일기업가의 아들이 여당의 대표직에 있다. 이것은 단적인 하나의 예일 뿐, 사회 각 분야 곳곳에 친일파의 후예들이 윗자리에 앉아 지배하고 있다. 이들은 한 번도 반성하지 않았다. 오히려 역사를 왜곡하여 자신들의 뿌리를 합리화하고 있다. 그들이 바로 ‘뉴라이트’라고 일컬어지는 자들이다. 뉴라이트들이 비록 겉으로 일제의 조선 식민지배를 대놓고 찬양하지 못하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데, 그 내용이란 일제가 조선을 점령함으로써 러시아의 남하를 막고, 조선의 근대화를 앞당겼다는 것으로서 일제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완용은 나라를 팔아먹어 만고의 역적이 되었지만, 나라의 정신까지 팔아먹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나라의 정신을 팔아먹고 있는 자들로서 이완용보다 몇 천배 악랄한 자들이며, 인체의 질병에 빗대어 이들은 뇌를 파먹는 ‘살인 아메바’라고 할 수 있다.
국제 사회는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무한 경쟁 사회이다. 여기에서 살아남으려면 정말 정신 차려야 한다. 그 정신이 바로 ‘역사’이다. 박은식 선생은 ‘역사는 국가의 정신’이라고 말했다. 정신이 살아 있으면 그 나라는 죽어도 살아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정신이 죽어 있으면 그 나라는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 한국은 살아있는가? 러시아 역사학자 유 엠 부찐이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이 또한 생각해볼 일이다.
“동북아 고대사에서 단군 조선을 제외하면 아시아 역사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 만큼 단군 조선은 아시아 고대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런데 한국은 어째서 그처럼 중요한 고대사를 부인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일본이나 중국은 없는 역사도 만들어 내는데 당신들 한국인은 어째서 있는 역사도 없다고 그러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나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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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역사시간 - 이주한 - 이 책은 우리 광복 70주년이 무색하게 사학재단 역사가들의 역사관에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음을 시사했다. 저자는 사학재단의 한국사에 우리는 중국을 위하고 일본을 위해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던 아시아권의 변방에 위치한 중국과 일본의 심부름꾼이 되어 있는 형국이라며 철저한 역사왜곡에 목소리를 높였다. 저자는 현재 한가람 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이자 역사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내용은 중, 고등학교 역사 교과목의 출판사와 역사를 다루고 있는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 등 다양한 곳에 수록되어 있는 왜곡된 내용, 부분을 조목조목 짚어 놓았다. 논리적으로 비교 분석한 대조표를 만들어 읽는 이로 하여금 이해도를 높였다. 역사적 근거가 있음에도 자국의 역량이 부족했다는 이유로 무조건 축소하고 외면하고 부정하며 왜곡해 버리는 동북아재단연구소 사학자들의 태도를 비판했다. 또한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 검정되지 않은 지도 및 자료를 발췌하여 잘못된 부분을 꼬집어 자료 증거의 부재, 억지를 반박해 놓았다. 국가의 미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야하는 교육부에서 역사학 교과목으로 검증되지 않은 역사책을 활용을 하고 있으며 그것을 배우고 익히는 대한민국의 자녀, 청소년이란 것에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더 심각한 것은 그것을 적극 추진하여 세계적으로 홍보를 하는 등 국비로 지원하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의 정부라는 것에 혀를 차게 한다. 누군가 말했다. “우리선조의 우월함과 훌륭함을 후손인 우리는 백 년 동안 한걸음도 발전시키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과거 우리의 글과 말을 없애버린 그 시절 일본인들은 백년을 내다보며 도서관을 만들어 무조건 독서를 시키고 읽기를 강요하며 국민의 의식수준을 향상시켜 세계의 주인이 되도록 교육을 시켰던 일본인들이었다고 한다.”
언젠가 칼럼을 우연히 보았다. 백제인의 역량으로 막사에서 살던 일본인의 생활상을 완전히 바꿔놓은 역사가 있었던 내용이었다. 우리나라 공주에서 거의 똑같은 주택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일본의 낮은 문화수준을 한국의 선조가 일깨워준 것이었다. 베틀, 부엌, 흙벽, 의식주까지 통째로 기술을 전수하며 지붕만 있던 움막집에 살던 일본인의 생활상에 영향을 미쳤다는 글을 신문 칼럼에서 읽었다. 그런 실증적인 자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선조의 우월성을 사학재단은 사실을 왜곡하며 축소하기에 급급한 모양이다. 지역 문화탐방을 하다보면 어디를 가나 박물관이 있다. 그 지역의 시대적 배경을 알리는 고유한 유물과 유적을 발견할 수 있다. 역사적인 유물과 유적 실증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그 당시 역사에 대해 더 깊이 있게 사실을 캐내고자 하는 것이 역사학자의 소임이다. E H Carr 역사란 무엇인가 중에서 편파적인 역사관에 대해 이렇게 비판했다. “현재와의 관계에서 과거를 연구하는 것, 한쪽 눈을 현재로 돌린 채 과거를 연구하는 것은 역사에 있어서 모든 죄와 궤변의 근원이다. 바로 이것이 비역사적이라는 말의 본질적인 의미이다.” 라고 했다. 우리의 현 사학재단의 역사관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책으로 인해 역사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기성세대와 전 국민의 적극적인 역사인식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어 무조건 일독을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