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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황된 바램이었지만, 오래 전 앵무새 죽이기를 읽고서 애티커스 같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장성한 아이를 두고서 이 책을 다시 읽으니 어려운 소망이었다는 씁쓸한 기억만 납니다. 이제는 아이에게 이 책을 추천하는 것이 책을 읽은 대답입니다. 매체들은 관심을 높이기에 극성입니다. 앵무새 죽이기의 저자 하퍼 리 55년 만의 신작 파수꾼 2015년 7월 14일 전 세계 동시 출간! 과연 저도 거기에 휩쓸려 하퍼 리의 신작과 다시 번역했다는 앵무새 죽이기를 세트로 구입하여 새로 읽었습니다. 파수꾼을 먼저 읽었습니다. 너무나 익숙한 이름들이 기억과는 다른 연령대로 등장합니다. 영화의 속편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파수꾼을 읽으니 앵무새 죽이기를 다시 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앵무새 죽이기를 읽다가 영화를 찾아서 다시 봅니다. 알고 있는 내용인데도 감동이 뭉클뭉클 솟아납니다. 앵무새 죽이기의 끝 부분을 읽을 때 눈가가 촉촉해졌습니다.. 예전에도 이 부분에서 눈물이 났었습니다. 몇 번이라도 다시 읽고 싶은 책입니다. 책 읽기란 자신을 읽는 것입니다. 그래서 책 읽기는 각자의 것입니다. 이 책에서 어떤 사람은 스카우트를 읽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애티커스, 톰 로빈슨, 유엘…… 책 속의 누군가와 관련된 자신을 읽게 됩니다. 어느 세대이건 톰 로빈슨은 존재하니 말입니다. 자신의 공동체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의 가치는 이 책을 읽었다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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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라배마에서 생긴 일> <아이들이 심판한 나라> <앵무새 죽이기> 이 서로 다른 제목들은 제가 하퍼 리의 작품을 만난 순서들입니다. <앨라배마에서 생긴 일>은 까마득한 기억 저편을 뒤져보면 아마도 TV의 <명화극장>이나 <주말의 명화>, 아니면 명절 특선영화로 본 것이 아닐까 싶은데 그야말로 까마득한 옛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기억나는 거라곤 흑백영화였다는 것과 기본적인 줄거리, 그리고 잊을 수 없는 그레고리 펙의 애티커스 핀치(우리나라 성우분의 멋진 음성이 덧입혀진) 정도입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지낼 때 영화의 원작이라는 사실에 고무되어 읽었던 책이 청담문학사에서 펴낸 <아이들이 심판한 나라>였습니다. 번역 후기를 읽어보니 <아이들이 심판한 나라>는 결국 정식 판권없이 출판된 해적판이었군요.
▲책장 구석에 꽂혀있던 20여년 전의 그 책입니다. 책 값이 3,800원이었던 그 시절...(^^;) 어쨌든 그렇게 영화와 해적판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하퍼 리의 소설을 20여년이나 지나서 <파수꾼> 덕분에 제대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앵무새 죽이기>는 이미 읽었던 책이기도 하고, 하퍼 리가 <파수꾼>을 먼저 썼다는 책 소개글 때문에 <파수꾼>을 먼저 읽었죠. 아마, 제가 스카우트 - 아니 진 루이즈였다면 반응이 비슷했을 것같습니다. 제3자이기 때문에 반응의 강도는 훨씬 약했지만, 책의 중반부쯤 좀 멍하기는 했으니까요. 세월이 뭘 어떻게 바꾼 것인지 저도 그녀처럼 묻고 싶어지더군요. 정말 ‘나도 <앵무새 죽이기>를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하고요. 하지만, 책을 다 읽고서 파수꾼을 세운다는 의미를 곰곰 되새겨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세상사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내리면서 그 정의의 기준이 되는 나름의 파수꾼을 세우게 되죠. 그러나 최종적으로 우리 삶에 대한 진정한 파수꾼을 밖에서 찾는 건 부질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가치관과 삶을 끝까지 지탱시키고 책임지며 선택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이니까요. 절대자가 아닌, 단지 먼저 어른이 되었을 뿐인 인간 누군가를 파수꾼으로 영원히 쳐다보기에는 삶이란 게 그리 간단하지도 확실하지도 않지요. 환상, 혹은 우상이라는 알을 깨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똑바로 바라본다는 것은,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 감수해야할 무게같은 게 아닐까 합니다.
▲ 책을 읽다가 겉표지가 거추장스러워 벗겼더니 지도가 나오더군요. <앵무새 죽이기>와 <파수꾼>의 시차를 반영하듯 몇몇 건물들의 위치와 명칭이 바뀐 것을 볼 수 있어 흥미롭습니다. 번역 후기에서는 하퍼 리의 변호사가 두 소설을 별개로 생각하라고 조언했다지만 ‘사소한 불일치’를 그야말로 사소하게 넘겨주면, 이 두 이야기의 연결점을 통해 우리도 한 단계 더 성장하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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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책 읽고 리뷰 쓰기가 힘들다. 책을 봐도 감동도 없고, 사는게 힘들어서 그런가. 실망한 부분이 좀 있어 그냥 넘어 가려다 잠이 안와 리뷰를... 앵무새 죽이기 -> 파수꾼의 순으로 읽었다. 시대순이자 발표된 순이니까. 앵무새 죽이기는 60년 전에 나온 소설로 과연 고전이라 부를만 하다. 작가가 이후에 다른 글을 쓰지 못했다는 것도 이해가 간다. 인종차별이 너무 당연해서 흑인을 옹호하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분위기에서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는 신념을 지키는 스카웃의 아버지(이름이 생각이 안난다 ;;)는 과연 멋지다. 그게 인권에 기본한 것이 아니라 거짓에 물러 살 수 없다는 신념이었다고 파수꾼에서 밝혀지는데 이게 왜 문제가 되는지는 의아하다. 파수꾼에서 진 루이스가 삼춘한데 구타를 당하고서야 좀 진정하고 아버지를 이해하려고 하던데 좀 맞아도 싸다고 생각했다. 웃겼다. 결론이 급하게 가족간의 대화합으로 끝나서 약간은 당황. 출판사에서 작품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게 아닌가 싶었는데 어쨌든 그만큼 좋은 책이다. (훈훈한 결론) 다만 앵무새 죽이기에서 아무리 봐도 아빠의 동생 같던 고모가 파수꾼에서 누나로 번역되는 건 이상하다. 책을 보는 내내 껄끄러웠는데 역자 후기에서 정황상 누나가 맞을꺼다라고 결론을 내준다. 같은 출판사에서 낸 같은 저자의 같은 배경의 소설인데 좀 맞춰주면 안되나. 처음에 역자가 다른걸 보고 살짝 불안 했는데 역시나 찝찝하다. 유도신문 같은 오타겠지만 뭔가 껄끄러운 오타(파수꾼)와 450m를 450km로 잘못 표기 (앵무새)한 것도 거슬린다. 원문은 못봤지만 문맥상 4.5km도 오바다. 근데 앵무새 죽이기의 번역 후기에는 미터법으로 표기한 것을 하나의 성과로 내세운다. 잉? 열린책들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출판사인데 아쉽다. 홍보와 마케팅 일정을 맞추려고 완성도를 포기한 느낌적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잠은 여전히 안오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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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의 소설. 정식 출판 되기 전 읽어 보진 못하고 대략적인 입소문 정도만 알고 있었던 그 소설이 어느덧 이렇게 잘 다듬어진 판본으로 나왔다.
루이즈 핀치. 화자는 두 책 모두 이 여자다. 작가 하퍼 리 자신을 많이 투영한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에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것.
애티커스 핀치라는 훌륭한 인격체, 그리고 세 명의 아이들과 이웃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 <앵무새 죽이기>는 뭐 하나 부족한 부분이 없는 수작이다. 문체를 루이즈 핀치의 연령에 맞춘 것은 신의 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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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는 원서로 먼저 접했었다. 부족한 실력으로 완독하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번역본이라도 꼭 읽어보리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 다짐이 잊혀져가는 어느때 하퍼 리의 새 소설책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찾아보니 ebook으로 세트를 판매하길래 덜컥 구입했다. 2015년 한 해 동안 읽었던 도서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도서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앵무새 죽이기는 수십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많은 곳에 회자되고 또 사랑받는 소설이다. 그렇기에 새 소설 파수꾼 또한 열렬한 환호와 뜨거운 관심 속에 출간을 했던 것이다. 내가 감히 평론을 하기에는 부족한 깜냥인 것을 안다. 그렇기에 이 문학 서적 두 권은 말없이 끄덕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찬사가 아닐까 생각한다. 기회가 된다면 ebook이 아닌 종이책으로도 구매해보고 싶다. 이제는 ebook을 잘 보지않게 되어서인지 한번만 읽고 안 읽게 되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종이책으로 새로 구매하여 늘 곁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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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도 2월, 고속버스터미널에서 TIMES 잡지를 구매해 읽던 나는 움베르트 에코와 이 책의 저자 하퍼 리의 부고를 접하였다. 두 거성이 비슷한 시기에 작고했다는 기사를 읽고, 나는 왠지 모를 허전함에 휩싸였다.
하퍼 리가 '앵무새 죽이기'를 세상에 내놓은 나이는 20대 후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Lee, 즉 아일랜드계 미국인의 성으로 남부 미국인의 대표적인 성씨 중 하나이다. 우리가 가장 잘 아는 남부 미국인 하면 남북 전쟁 당시 남부 총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이 있다.
그녀가 젊은 시절을 보낸 20세기 초중엽은 미국 사회의 일종의 격변기였다. 흑인들이 인권을 부르짖고, 여성들이 인권을 부르짖던, 근대에서 현대로 전환되는 큰 획을 그은 시기였다. 그런 역사의 격동기에 그가 쓴 '앵무새 죽이기' 는 그야말로 성경 다음 가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기호학의 대가인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 에 대한 글도 조만간 써 볼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