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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평을 넘어 대동으로 가는 길 정치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정치판’이란 말을 많이 사용한다. ‘판’이라는 단어는 사전적으로 ‘일이 벌어진 자리나 장면’이라는 객관성을 지닌 말이지만, 우리가 쓰는 ‘정치판’이라는 말에는 아주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당략 차원의 무수한 정책만 남발하는 정치계에 대한 냉소가 아마도 ‘정치판’의 숨은 의미는 아닐는지. 엄밀한 의미에서 국민도, 국가도 없는 정책 부재의 상황, 그것이 ‘정치판’을 바라보는 일반 국민들의 시각일 것이다. 이런 시대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박광용이 영조와 정조의 나라에서 제기한 문제, 즉 18세기 영․정조 시대 핵심 정책인 ‘탕평’과 ‘대동’을 통해 현대의 정치 문제를 재정립해보자는 문제제기는 시의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지은이는 영.정조 시대 탕평 정책에 나타난 시대적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는 탕평을 변화하는 시대에 대응하는 상황 논리로 파악하고 있다. 탕평의 시대(18세기)가 “지배층 입장에서는 혼란의 시대였지만, 생산 담당층의 입장에서는 자기 자리 찾기의 시대였다”라고 지은이는 무엇보다 강조한다. 이에 따르면 ‘탕평’은 왕권강화-왕도정치 구현이라는 정치사적 의의를 넘어, 변화하는 시대 상황을 포용하여 ‘근대사회로 전환해나가는’ 역사적 의의를 아울러 지니고 있다. 지은이는 ‘탕평’의 의미를 시대 상황의 변화, 곧 당쟁, 새로운 중간계층의 성장, 백성에 대한 파악방식의 변화라는 세 가지 문제 상황과 결부시켜 논의하고 있다. 특히 유통경제의 발달과 맞물린 새로운 중간층의 성장은 백성에 대한 파악 방식의 변화를 초래한 일차적인 원인으로 볼 수 있는바, ‘탕평’의 지향점이 ‘대동’이었다는 저자의 관점은 이러한 시대 상황을 분석함으로써 얻은 결론이라 하겠다. 곧 저자는 ‘탕평’을 당쟁의 해소라는 소극적인 차원에서 해석하지 않고, ‘사회의 틀을 새롭게’ 구성해 보려는 위로부터의 개혁, 말하자면 사회개혁의 정책적 반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탕평'을 사회개혁 수단의 일종으로 보는 저자의 견해에는 현대 한국사회의 정치적 문제점에 대한 저자 나름의 근본적인 인식 태도가 깔려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정책 부재의 정치 현실을 타개하는 역사적 전거로서 저자는 영.정조 시대의 '탕평론'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탕평’의 한계 역시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진보적 개혁을 꿈꾸면서 보수적 개혁을 추진’한 것이 정조 개혁의 한계라는 저자는 지적한다. 그는 탕평을 바탕으로 한 영.정조 시대의 개혁이 ‘주자 성리학의 이데올로기’에 갇힌 체제 내적인 개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영.정조가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백성과의 대화가 ‘특권층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는 저자의 비판 역시 현대의 정치인들과 관련하여 깊이 생각해 볼만한 문제라고 하겠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과거사의 사실들을 통해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역사를 과거와 현대의 대화라고 정의한 토인비의 말을 구태여 떠올리지 않더라도, 우리가 역사를 해석하는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과거를 통해 재정립하기 위해서이다. 그런 해석이 없다면 역사를 사유하는 작업은 무의미한 일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영.정조 시기 정치 원칙 8가지를 정리하면서, 이런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크게 보면 ‘정치의 탕평과 사회의 대동은 함께 가는 길’이라는 말 속에 이미 내재되어 있는 저자의 해답은 내적으로는 정치적 의리와 개인적 지조를 지키는 '자호자' 곧 인물의 문제와, 외적으로는 세계화론과 민족주체성의 문제를 어떻게 통합시킬 것인가라는 '개방성'의 문제로 요약된다. '자호자'의 문제는 비이성적인 추종을 참다운 의리로 해석하는 현대 정치인의 속물적인 근성에 비판점을 두고 있으며, '개방성'의 문제는 세계화라는 미명 아래 '전통성'을 철저하게 외면하는 정치인들의 전통 의식 부재를 문제 삼고 있다. 이런 비판적 인식을 통해 저자가 제시하는 정치의 모습은 결국 합리성에 바탕을 둔 의리 있는 정치인들이 ‘전통’과 ‘진보’를 조화롭게 화해시켜 나가는 정치로 연결된다. 이 책에서 간과할 수 없는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저자는 사회진화론에 근거한 ‘무한경쟁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이 책에서 시도하고 있다. ‘다른 종 사이에만 적용될 수 있는 이론’인 적자생존, 자연도태론이 결국은 ‘인간적 도덕성, 그리고 고유성과 보편성을 종합할 수 있는 역사 발전 이론’의 상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저자의 지적은 ‘강한 힘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우리 정치인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만 같아 씁쓸해지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 책의 의미가 모든 정치인들의 가슴 속에 남아, 영.정조 시대에 서려 있던 꿈이 200여 년이 지난 현대사회에서나마 실현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것은 물론 정치인들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근대화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작업은, 그리고 그 시대가 꿈꾸었던 이상을 되찾는 작업은, 한국인으로서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들이다. 이런 의미들이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새겨질 때, 이 책에서 제기된 다양한 문제들이 현실 속에서 개혁될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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