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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평에 관한 여러가지 견해를 나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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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책은 가장 큰 단점을 재미가 없다는 사실이다. 학생들의 강의나 일부 전공자들을 위한 학술서가 아닌 보통의 사람들을 타깃으로 삼았다면 이렇게 재미없는 책은 출판되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고대사나 연구 실적이 미비한 발해나 백제를 다룬 책이라면 몰라도, 정조나 영조는 우리와 몇 백년 차이를 두지 않는 근세의 이야기다. 또 사극이나 여러가지 매체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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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책은 가장 큰 단점을 재미가 없다는 사실이다. 학생들의 강의나 일부 전공자들을 위한 학술서가 아닌 보통의 사람들을 타깃으로 삼았다면 이렇게 재미없는 책은 출판되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고대사나 연구 실적이 미비한 발해나 백제를 다룬 책이라면 몰라도, 정조나 영조는 우리와 몇 백년 차이를 두지 않는 근세의 이야기다. 또 사극이나 여러가지 매체를 통해 두 임금은 우리에게는 아주 친숙한 인물이다. 충분히 재미있는 접근이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저자는 탕평에 대한 여러가지 연구 결과를 나열하는데 이 책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마치 영조와 정조가 평생을 탕평만 연구하던 죽은 것처럼 말이다. 둘째, 이 책의 답답한 편집을 참을 수 없다. 가뜩이나 재미없고, 같이 수록된 자료 그림도 별볼일 없는데 박스안에 가둔 문장은 숨이 턱턱 막힐 것 같았다. 시원시원하게 보는 이들을 편안하게 해 주면서도 쉽고 재미있게,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 사학자의 소명이 아닐까?
i****3 2003.06.0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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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기 단절의 아쉬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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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배우기를 조선의 르네상스가 영조와 정조의 시대라고 배웠다. 단지, 학문을 장려하고 실학을 이끌었다는 것만은 아니지만 이 이상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언젠가, 수원의 화성에 대한 책을 읽고나서 정조의 깊은 뜻을 알게 되었었다. 우리시대의 황금기를 찬찬히 설명한 저자의 해설은 교과서 이상의 것이다. 다만, 일부분에는 전문적인 내용이 나와서 다소 지루한 면이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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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배우기를 조선의 르네상스가 영조와 정조의 시대라고 배웠다. 단지, 학문을 장려하고 실학을 이끌었다는 것만은 아니지만 이 이상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언젠가, 수원의 화성에 대한 책을 읽고나서 정조의 깊은 뜻을 알게 되었었다. 우리시대의 황금기를 찬찬히 설명한 저자의 해설은 교과서 이상의 것이다. 다만, 일부분에는 전문적인 내용이 나와서 다소 지루한 면이 있었지만, 우리문화의 자긍심릉 갖기에는 충분한 것이었다. 여러 신하들의 당파싸움에 대한 해결방안과 그것을 바탕으로 경제재혁을 이끌어 농업사회인 조선을 상공업으로 변환하려는 의지와 그것을 달성하기위한 구체적인 방업으로 규장각을 설치한 것을 보면 타고난 혜안이 있음을 알 수 있다.너무나 아쉬운 것은 정조사후 10년 이내에 정도의 공적이 무너진 것이다. 그긋은 우리민족의 운명인가보다. 고작 200년전의 일인데도 너무나 먼 시대이전의 것으로 느껴지는 것은, 이후의 문제가 우리에게 전달이 되지 않아서 일 것이다. 혼란을 대동의 시대로 유도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직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의 군주가 동일한 문제에 대하여 같은 고민을 하였다는 것이 놀랍고, 지역으로, 의식으로 분단된 우리 민족을 누가 어떠한 방법으로 이어줄 수 있는 지가 아주 염려스럽다. 다시 그시대로 복귀하는 우를 범하면 안되는네, 지금에는 누가 영조과 정조의 역활을 할 수 있을까?
s****7 2005.08.1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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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유효한 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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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 정신으로 세운 조선의 신도시 수원 화성" (김동욱 저/돌베개) 이란 책을 접하면서 빠져든 정조 임금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다른 관련서를 찾게 된 것이 이 책을 접하게 된 동기였다. 그 사이 "정조의 화성행차 그 8일" (한영우 저/효형출판)을 통해 그 시대의 향기를 더욱 진하게 느껴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앞서의 두 책을 통해 잃어버린 르네상스 시대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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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 정신으로 세운 조선의 신도시 수원 화성" (김동욱 저/돌베개) 이란 책을 접하면서 빠져든 정조 임금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다른 관련서를 찾게 된 것이 이 책을 접하게 된 동기였다. 그 사이 "정조의 화성행차 그 8일" (한영우 저/효형출판)을 통해 그 시대의 향기를 더욱 진하게 느껴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앞서의 두 책을 통해 잃어버린 르네상스 시대에 대한 향수에 젖어있던 나를 이 책은 정치사라는 분야에 걸맞게 냉철한 목소리를 깨워주었다. 이 책이 출간된 것이 98년 4월. 미디어 리뷰를 보니 새로운 정권의 출발에 때맞춰 "탕평"이라는 화두를 언급하고 있다. 근데 나는 그 정권의 마지막 해인 올해에야 읽은 것이다. 뭐든지 때를 놓치면 흥이 없는 법이다. 밥이든 농담이든. 근데 그 화두 자체는 아직도 진행형인 것은 왠일일까? 출간 당시 베스트셀러 10위 안에도 한 두주 들었던 모양이던데.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읽고도 이해하지 못했거나, 이 사회를 바꿀 만큼의 수의 사람들이 읽지 않았던 때문이리라. 아니면 또 다른 이유라도? 내용 중 저자는 영정조의 개혁의 실패 이유로 다음 다섯가지를 들었다. 첫째 주자성리학의 이데올로기를 바꿔놓지 못한 것, 둘째 군제개혁의 미완성, 셋째 백성을 정치집단으로 구체화하지 못한 것, 네째 인재선발 방식의 근본적 개혁 실패, 다섯째 토지개혁에 실패하고 상공업 강화책을 쓰지 못한 것. 그 중에서 백성을 정치집단으로 구체화하지 못했다는 것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정조 임금도 주자학에 정통했던 성리학자였으니 애시당초 백성과 함께(!) 하는 정치같은 것은 생각도 하지 않았겠지. 하지만 실패가 주는 교훈은 지금도 통용될 수 있을 듯하다. 백성(시민)과 같이 하지 않는 정치가들 만의 개혁은 매우 허약하고 허망하다는 것. 같은 식으로 "탕평"이라는 화두도 정치가들의 몫이 아니고 결국 "시민"들의 힘에 의해서만 구체화되고 실현될 수 있는 게 아닐까하고 생각하게 된다. 논리의 비약이 있지만 이 점이 이책을 아직 따끈따끈하게 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튼 이 책은 조선 영정조대의 정치사가 붕당론, 군주론, 인물론, 그리고 탕평론으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 당쟁과 유혈투쟁으로만 어렴풋이 기억하는 혐오의 시대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해준다. 때마침 tv에서 "장희빈"이란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다. 이 책을 찬찬히 읽어보면 환국으로 대표되는 그 시대의 처절한 투쟁의 시작과 과정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듯 하다.

[인상깊은구절]
중국에서는 '탕평'의 정치이념이 이상적인 정치원칙론으로만 존재했고 실제 정치이념으로 한 세기에 걸쳐 적용된 경우는 없다. 곧 탕평론은 조선의 정치현실에서만 실제로 적용된 독자적인 정치이념이다.
l****1 2002.12.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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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평을 넘어 대동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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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평을 넘어 대동으로 가는 길      정치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정치판’이란 말을 많이 사용한다. ‘판’이라는 단어는 사전적으로 ‘일이 벌어진 자리나 장면’이라는 객관성을 지닌 말이지만, 우리가 쓰는 ‘정치판’이라는 말에는 아주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당략 차원의 무수한 정책만 남발하는 정치계에 대한 냉소가 아마도 ‘정치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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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평을 넘어 대동으로 가는 길

 

 

 

정치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정치판’이란 말을 많이 사용한다. ‘판’이라는 단어는 사전적으로 ‘일이 벌어진 자리나 장면’이라는 객관성을 지닌 말이지만, 우리가 쓰는 ‘정치판’이라는 말에는 아주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당략 차원의 무수한 정책만 남발하는 정치계에 대한 냉소가 아마도 ‘정치판’의 숨은 의미는 아닐는지. 엄밀한 의미에서 국민도, 국가도 없는 정책 부재의 상황, 그것이 ‘정치판’을 바라보는 일반 국민들의 시각일 것이다. 이런 시대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박광용이 󰡔영조와 정조의 나라󰡕에서 제기한 문제, 즉 18세기 영․정조 시대 핵심 정책인 ‘탕평’과 ‘대동’을 통해 현대의 정치 문제를 재정립해보자는 문제제기는 시의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지은이는 영.정조 시대 탕평 정책에 나타난 시대적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는 탕평을 변화하는 시대에 대응하는 상황 논리로 파악하고 있다. 탕평의 시대(18세기)가 “지배층 입장에서는 혼란의 시대였지만, 생산 담당층의 입장에서는 자기 자리 찾기의 시대였다”라고 지은이는 무엇보다 강조한다. 이에 따르면 ‘탕평’은 왕권강화-왕도정치 구현이라는 정치사적 의의를 넘어, 변화하는 시대 상황을 포용하여 ‘근대사회로 전환해나가는’ 역사적 의의를 아울러 지니고 있다. 
  

지은이는 ‘탕평’의 의미를 시대 상황의 변화, 곧 당쟁, 새로운 중간계층의 성장, 백성에 대한 파악방식의 변화라는 세 가지 문제 상황과 결부시켜 논의하고 있다. 특히 유통경제의 발달과 맞물린 새로운 중간층의 성장은 백성에 대한 파악 방식의 변화를 초래한 일차적인 원인으로 볼 수 있는바, ‘탕평’의 지향점이 ‘대동’이었다는 저자의 관점은 이러한 시대 상황을 분석함으로써 얻은 결론이라 하겠다. 곧 저자는 ‘탕평’을 당쟁의 해소라는 소극적인 차원에서 해석하지 않고, ‘사회의 틀을 새롭게’ 구성해 보려는 위로부터의 개혁, 말하자면 사회개혁의 정책적 반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탕평'을 사회개혁 수단의 일종으로 보는 저자의 견해에는 현대 한국사회의 정치적 문제점에 대한 저자 나름의 근본적인 인식 태도가 깔려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정책 부재의 정치 현실을 타개하는 역사적 전거로서 저자는 영.정조 시대의 '탕평론'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탕평’의 한계 역시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진보적 개혁을 꿈꾸면서 보수적 개혁을 추진’한 것이 정조 개혁의 한계라는 저자는 지적한다. 그는 탕평을 바탕으로 한 영.정조 시대의 개혁이 ‘주자 성리학의 이데올로기’에 갇힌 체제 내적인 개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영.정조가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백성과의 대화가 ‘특권층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는 저자의 비판 역시 현대의 정치인들과 관련하여 깊이 생각해 볼만한 문제라고 하겠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과거사의 사실들을 통해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역사를 과거와 현대의 대화라고 정의한 토인비의 말을 구태여 떠올리지 않더라도, 우리가 역사를 해석하는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과거를 통해 재정립하기 위해서이다. 그런 해석이 없다면 역사를 사유하는 작업은 무의미한 일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영.정조 시기 정치 원칙 8가지를 정리하면서, 이런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크게 보면 ‘정치의 탕평과 사회의 대동은 함께 가는 길’이라는 말 속에 이미 내재되어 있는 저자의 해답은 내적으로는 정치적 의리와 개인적 지조를 지키는 '자호자' 곧 인물의 문제와, 외적으로는 세계화론과 민족주체성의 문제를 어떻게 통합시킬 것인가라는 '개방성'의 문제로 요약된다. 
  

'자호자'의 문제는 비이성적인 추종을 참다운 의리로 해석하는 현대 정치인의 속물적인 근성에 비판점을 두고 있으며, '개방성'의 문제는 세계화라는 미명 아래 '전통성'을 철저하게 외면하는 정치인들의 전통 의식 부재를 문제 삼고 있다. 이런 비판적 인식을 통해 저자가 제시하는 정치의 모습은 결국 합리성에 바탕을 둔 의리 있는 정치인들이 ‘전통’과 ‘진보’를 조화롭게 화해시켜 나가는 정치로 연결된다. 
  

이 책에서 간과할 수 없는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저자는 사회진화론에 근거한 ‘무한경쟁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이 책에서 시도하고 있다. ‘다른 종 사이에만 적용될 수 있는 이론’인 적자생존, 자연도태론이 결국은 ‘인간적 도덕성, 그리고 고유성과 보편성을 종합할 수 있는 역사 발전 이론’의 상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저자의 지적은 ‘강한 힘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우리 정치인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만 같아 씁쓸해지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 책의 의미가 모든 정치인들의 가슴 속에 남아, 영.정조 시대에 서려 있던 꿈이 200여 년이 지난 현대사회에서나마 실현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것은 물론 정치인들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근대화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작업은, 그리고 그 시대가 꿈꾸었던 이상을 되찾는 작업은, 한국인으로서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들이다. 이런 의미들이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새겨질 때, 이 책에서 제기된 다양한 문제들이 현실 속에서 개혁될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o*****s 2017.08.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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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와 정조의 르네상스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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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평박사'라는 별명을 얻을만큼 조선조 영,정조시대의 탕평정책에 대해 일관되게 추적해 온 저자 박광용 교수가 영,정조 시대 개혁의 의지와 역사적 지혜를 모두 모은 책이다.   저자는 조선시대를 통털어 진정한 르네상스는 76년을 이끈 영,정조 시대와 그 시대의 인물들로 이루어졌다고 단언한다. 과연 그의 말대로 영조와 정조의 나라는 그렇게 위대한 나라였을까?   무수리의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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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평박사'라는 별명을 얻을만큼 조선조 영,정조시대의 탕평정책에 대해 일관되게 추적해 온 저자 박광용 교수가 영,정조 시대 개혁의 의지와 역사적 지혜를 모두 모은 책이다.

 

저자는 조선시대를 통털어 진정한 르네상스는 76년을 이끈 영,정조 시대와 그 시대의 인물들로 이루어졌다고 단언한다. 과연 그의 말대로 영조와 정조의 나라는 그렇게 위대한 나라였을까?

 

무수리의 아들로서 후사를 보지 못한 형을 대신해 천신만고 끝에 와위에 오른 영조는 즉위시부터 독살의 주축이라는 유형, 무형의 견제를 받게된다. 영조가 개혁의지를 가지고 이를테면 절대통치자에서 개혁정치가로 탈바꿈하지만 그에게는 또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아킬레스건이 있었으니 바로 사도세자의 죽임이다.

 

이 책에서 사도세자에 대한 특이한 역사적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영조가 왕세자인 사도세자를 죽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사도세자의 비행 10조"다. 왕실 내부의 상황을 비교적 잘 알 수 있는 관청인 '액정서' 별감 나상언의 형 나경언이 영조에게 진언한 것으로 알려진 이 비행10조는 나경언이 사형에 처해지고 그의 상소는 몇 사람만이 읽어보고 곧바로 불태워져서 모두 전해지지는 않지만

 

- 세자의 아들인 "인"을 포함하여 여러 사람들을 죽인 일

- 여승을 궁에 불러들인 일

- 시전상인의 재물을 빌려 쓰고 갚지 않은 일

- 북성으로 나가 유람한 일

- 평안도로 여행을 간 일

 

등이다. 아무리 왕세자라고는 하나 죄없는 사람들을 자기 멋대로(물론 울화증이 생겨 약간의 정신병적 증세가 있었다고는 하더라도...) 목숨을 끊은 행위는 규탄받아 마땅할 것이며 이 책에서 처음 접하게 된 사도세자의 비행이다.

 

여승을 궁에 불러들인다는 것은 어떤 죄에 해당할까? 나경언의 진언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지만 후에 영조가 "네가 훗날 여승의 아들을 왕자로 삼을 셈이야"라고 책한 것으로 보아 여승과 관계를 갖지 않았는가 측측된다. 북성으로 나가 유람한 일과 평안도로 여행을 간 일이 비행에 속하느냐는 것은 역시 '반란'과 관계가 있다 하겠다.

 

사도세자는 영조 37년인 1761년도 봄에 평양을 여행하였다. 그런데 평안도에는 조선의 변방을 지키는 정예군이 주둔하고 있다. 또한 평안도에서 거둬들이는 세금 즉 곡식은 중앙정부로 수송하지 않고 현지에서 사용했다는 점으로 볼 때 사도세자를 죽인 영조는 사도세자가 군사 쿠데타를 줄곧 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사도세자가 생전에 다소 포악한 면이 있어 여러 사람을 죽였고 또 정신적으로도 울화증이 있어 문제가 많았다는 점은 이 책을 통해서야 알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영조가 그렇게 잔인한 방법으로 사도세자를 죽인 이유가 전혀 이해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반면에 결국 당파싸움에 말려 억울하게 죽게 된 사도세자를 애석해하는 바람에 그에 대한 평가가 너무 미화되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야기가 곁가지로 흘러간 감이 없지 않지만 영정조 시대를 통털어 가장 중요한 사건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국왕이지만 기초가 부실했던 영조는 외척을 모두 물리치고 탕평책을 썼고 정조시대에는 수원의 화성건축으로 왕권을 되살리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결국 76년이라는 결코 짧지않은 시대에는 르네상스를 가져왔을지 모르나 그들의 개혁은 결국 그들 시대에서 끝나고 말았다.1800년에 정조가 죽고 탕평정치는 종결되었고 영조, 정조 두 왕의 생전 업적들도 복잡한 당파에 다시 묻혀 개혁정치가 오히려 혁파당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200년전의 탕평정치로 좋은 한국인, 좋은 한국사회를 설명하고 이를 새로운 문화적 캐릭터로 창조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따라서 당시의 탕평정치는 오늘날 정당 안팎의 인사탕평책 뿐 아니라 지역 대립해소를 위한 지역탕평책, 남북통일을 지향하는 이데올로기 탕평책이라는 정치적 실험에까지 적용할 수 있는 개척적이고 창조적인 정치적 통합노력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어느 독자의 지적처럼 이 책은 소설처럼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역사는 일면 재미있는 면도 있지만 아프고 어려운 시대의 증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역사는 언제나 되풀이 되고 우리는 그 당연한 교훈을 어렵고 아프게 읽을 필요도 있기 때문이다.  

k****p 2007.09.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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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조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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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평박사라고 불린다는 박광용 교수의 책이다.   영조와 정조가 '탕평책'을 잘 써서 치세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한다. 역시 영조보다는 정조를 앞에 둔다.   영정조시기에 대한 책이 많은데 그것도 그럴 것이 그 시기가 무지하게 드라마틱하다. 환국이 거듭되고-사실 '환국'정치의 진수는 숙종이지만- 음모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특히 사도세자 건은 백미다. 그래서 이 시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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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평박사라고 불린다는 박광용 교수의 책이다.

 

영조와 정조가 '탕평책'을 잘 써서 치세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한다.

역시 영조보다는 정조를 앞에 둔다.

 

영정조시기에 대한 책이 많은데 그것도 그럴 것이 그 시기가 무지하게 드라마틱하다.

환국이 거듭되고-사실 '환국'정치의 진수는 숙종이지만- 음모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특히 사도세자 건은 백미다. 그래서 이 시기와 관련된 사극도 무지하게 많거니와

이인화는 '영원의 제국'이라는 베스트셀러를 만들기도 했다.

 

'붕당과 평탕'이라는 제목을 붙여도 될 정도로

붕당의 형성과정부터 시작해서 평탕책의 구체적인 적용까지

백과사전식으로 열거되어 있다.

 

이덕일보다는 신권에 대해 붕당에 대해 긍정적이다.

붕당을 조선정치의 후진성이라고 지적했던 일본역사가들의 '식민사관'에 저항하는 측면이 크다.

사실 일본이 정치가 어쩌고 저쩌고 할 자격은 없다. 내가 보기엔 일본에는 '정치'라는 게 없었다.

 

끝도 없는 그 시대의 인물들의 열거가 부담스러웠고

간간히 보이는 시의적인 평가가 눈에 거슬렸고

내가 보기엔 말도 안 되는 그의 마무리 글이 짜증났다.

 

다만 '붕당'과 '영.정조간의 역사적인 사건'이 나름대로 체계적인 정리되어 있어

그 시대를 알고자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책이라 평가한다.

그의 역사해석에 대해서는 그리....인상적인게 없었다.

k*****k 2008.12.0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