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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잊지 못할 순간"이라는 표현을 쓴다. 왜 "순간"이라고 할까.. 최민식의 사진을 보면서 나는 그런 "순간"들을 경험한다.
사진은 대체로 셔터가 열렸다 닫히는 몇십분의 일, 몇백분의 일 초 동안의 기록이다. 그러나 어떤 사진들은 그 찰나 속에서 긴 여행을 하게 한다.
이 책에 실린 첫 사진 <서울 용산역 앞에서, 1957>을 보자. 한 여자아이가 담벼락 아래서 국수를 먹고 있다. 땅바닥에 그릇을 놓아두고 쪼그려앉아 숟가락으로 어설프게 뜨고 있는 것은 아무런 양념도 없고 심지어 국물도 없는 흰 면발이다.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고 머리도 예쁘게 묶었지만 그냥 맨발이다. 신발을 어디선가 잃어버린 걸까, 아니 어쩌면 담장 모퉁이 아래에 조그맣게 돋아 있는 자리가 자기한테 꼭 맞는 식당이라 여겨서 신발을 벗어놓고 올라갔던 것일까.. 발톱이 너무 새하얗게 보일 정도로 그을린 발에는 신발이나 양말 자국이 없다. 그럼 늘 맨발로 다녔을까.. 담 저쪽으로 지나가는 사람의 다리가 보이는 걸로 봐서 이곳은 길거리인 것 같은데, 사진 제목을 보니 용산역 근처구나. 근데 이 아이는 왜 혼자 있을까? 혹 저 국수를 다 먹고 났을 때 저 아이는 울고 있지는 않을까?
이 책을 엮은 조세희(참 잊기 힘든 소설 <난쏘공>을 쓴 바로 그 조세희는 기자생활을 하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사북 지역에 가서 직접 사진 작업을 하여 <침묵의 뿌리>를 냈다)는 "뒤에야 나는 사진이 갖고 있는 기능 가운데서 우리가 힘 빌어야 할 한 가지를 발견했는데 그것은 기본 과제 해결에 그렇게 열등할 수 없는 민족인 우리가 버려두고 돌보지 않는 것, 학대하는 것, 막 두드려 버리는 것, 그리고 지난 시절의 불행이 떠올라 몸서리치며 생각도 하기 싫어하는 것들을 받아들이게 하는, 즉 재소유시키는 기능이었다. 이 문맥에서 볼 때, 장기간에 걸친 최민식의 작업을 쉽사리 뛰어넘을 것은 없다."라고 평가하며 바로 그 관점에서 최민식의 사진 65점을 골랐지만, 최민식의 미학적 성취를 놓친 것 같지는 않다.
인적 없는 지하도 계단에 햇빛 한 장 들어오는 자리에서 담요를 뒤집어 쓰고 앉아 있는 이의 모습을 담은 <부산 광복동 지하도 입구, 1967>을 보면서 아름답다는 느낌을 갖는다. 그것은 알량한 동정심을 넘어서는 최민식의 "따뜻한 시선"의 힘이 아닐까. [인상깊은구절] 사진을 보는 것과 글을 읽는 것은 전혀 다른 일에 속한다. 말과 사진은 똑같이 대상을 표현하고 똑같이 분위기를 갖지만, 이 두 가지는 언제나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소설을 쓰는 나의 경험에 의하면, 나에게 감동을 주는 사진은 예외없이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담고 있는데, 그것을 보는 순간 내가 써야 할 말의 숫자는 갑자기 늘어난다. 최민식의 사진을 볼 때마다 나는 우리가 이미 겪었던 일과 지금도 겪고 있는 일, 그리고 그것이 크고 깊어 무엇으로도 감출 수 없는 우리의 상처에 대해 말하고 싶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