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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후배로부터 자신의 인생을 뒤 흔들어놓은 한 인물을 만났다는 말을 듣고 그게 누구냐고 했더니..‘이진선’이라고 한다. 난 그 사람이 누군데 했더니 ‘아름다운 집’에 나오는 주인공이란다. 그 전에 나는 이 책을 오래전에 살까 망설이던 참이여서.. 아..손석춘씨 소설 말야? 그 주인공 소설 속 인물이잖아...하고는 내심 관심 없는 척 하면서 당장에 그 책을 주문하였다. 그리고 조금 오랜 기간 동안 학교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간간히 읽었다. 마지막까지 다 읽고 나서는 왜그리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이진선이라는 한 인간이 그토록 고독하게 살아온 삶을 생각하는데 최진이씨의 말이 그토록 와 닿았다. 누군가와 그토록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대화할 사람이 없었던 이진선... 나도 사실 중간 중간 읽으면서 이진선은 너무 자학적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이상과 현실을 좁혀나가지 못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허무주의가 삶의 많은 영역을 덮고 있다는 생각도.. 그렇지만 그의 삶은 시종일관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 현실의 땅에서 내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 그리고 끝없는 자기성찰 그리고 결국은 자신의 삶이 실패했다고 했지만 그것은 틀리지 않았다는 것.. 순간순간 최선을 다한 그의 삶에 나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한 인간의 내면적 삶을 지켜보면서 그의 실제 삶을 생각해보았다. 중간 중간에 나왔던 부분처럼 그의 삶이 사회주의 혁명의 진정한 자주적 길을 찾지 못한 동지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 사회에 편승되어 가던 사람들 그리고 안락 아니 적어도 부인과 자식을 잃지 않을 수도 있었을 교수의 자리를 그는 단호하게 거절하지 않았던가...그것도 철학을 실천할 때라는 것을 분명히 알았던 사람이었다. 누가 감히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단 말인가...그가 스스로 죽음을 택하기 직전까지 단 한순간도 자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그의 인생이지만 진정 그는 삶이 기대하는 바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의 삶의 순간순간의 다짐은 서약이었고 그 서약은 거의 맹목적이다 싶을 정도의 철저하게 자신이 선택한 상황에 대하여 최선을 다하겠다는 서약이었다. 시대적 운명을 벗어날 수 없었던 그의 삶이 이 땅의 지식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진정으로 보여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삶이 아닌 인민이라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그의 사랑이 허공을 가르는 듯한 사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는 진정으로 그들과 함께 잘 사는 그런 진정한 사회주의를 꿈꾸어 온 자였다. 순간순간 자신의 현재의 사상을 점검해보지 않았다면 시대의 조류에 편승되어 살아가지 않았을까...
동시의 그가 살아온 외로운 삶은 내 마음에 너무도 아픔을 가져다주었다. 아내를 잃은 뒤 지독하리만큼 홀로일 수밖에 없었던 이진선의 삶을 생각하면서 내내 눈물을 흘렀던 이유도 그것이다. 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그런 외로움의 깊이... 이진선의 삶의 기록 가운데 문학가가 되고 싶다는 부분을 보면서 인간의 본능적인 글쓰기에 대한 부분을 볼 수 있었지만 그의 기록은 그야말로 삶을 읽고 쓰는 세계를 읽는 글이었다. 나 역시도 글쓰기를 멈추고 있지는 않지만 내 삶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듯 했다. 그는 한 평생을 아름다운 집이라는 우리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고민하고 자신을 부여잡았지만.. 나는 가끔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보다는 힘들다는 하소연에 그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 인간의 고독한 삶 그리고 자신이 진정 나아갈 바를 알고 끝까지 자신과 싸워나갔던 삶..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이 시대에 다시금 생각해 본다. 너무 거창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우리에게 지금 현재 주어진 삶에서 일관되게 추구해야 할 이상이 있다면.. [인상깊은구절] 다시 돌아보거니와 명백히 난 실패했다. 그러나 실패가 반드시 그르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더 분명하게 자부할 수 있다. 옳은 길을 걸어왔노라고 내게 주어진 삶은 온 순간마다 사랑했노라고 주어진 한계 속에서 최선을 다했노라고 그 한계는 아직 오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언젠가 무너질 것을 확신하노라고. 그 사랑의 연장선에서 내 삶의 마지막을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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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라는 장르는 픽션, 즉 허구의 이야기들이지만 실제로 일어났을 법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중, 고등학교때 배웠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이 이야기들은 픽션일까, 아니면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었을까 궁금증이 들었다.
1938년 4월 1일을 시작으로 1998년 10월 10일의 마지막 일기까지, 급변하는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인물인 리진선의 삶이 담담하게 담겨 있었다.
1. 제목인 <아름다운 집>은 리진선의 아들인 서돌이의 답변에서 따온 듯 했다. 혁명이 무엇인지 아냐며 아들에게 묻자, 서돌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 잘살게 아름다운 집을 짓는 거예요. 맞죠?"라고 답한다. 우리 나이로 다섯살, 만으로 이제 겨우 네살인 아이의 대답으로 혁명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것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장 확실하게 표현한 답이 아닐런지.
2. 사람의 인연이란 참으로도 묘한 것인가 보다.
리진선은 사랑하는 가족들을 눈 앞에서 폭격으로 잃게 된다. 그때의 심정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내 옆의 동료가 그렇게 되어도 견디기 힘든 상황일진데, 하물며 가족인데 오죽하였을까.
두 사람의 인연은 오래전 한 절에서부터 시작되었지만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었다. 비구니로 위장한 진이와 그의 아내 여린,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진이가 리진선에게 모두 한 사람처럼 느껴진 것은 이어질 수 없는 인연이지만, 그렇다고 끊어질 수도 없는 인연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이어진 인연은 진이에게로 이어져 있었다. 둘의 한여름밤의 짧은 사랑은 진이에게 결실을 맺어 상준이라는 아들이 태어났고, 다시금 손자에게는 두산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진이의 남편이 백인수였기에 손자의 이름은 백두산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진이와 진선의 인연은 묘하게 얽혀져 있었지만 결국 두 사람은 부부의 인연으로 맺어지지 않는다. 어떤 정신적 동지라고나 할까, 이렇게 맺어지지 못하는 두 사람의 사랑에 가슴 한켠이 아려왔다.
3. 언론인인 손석춘은 있었을듯한 이야기를 꾸며내는 재주보다는 객관적 사실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것에 더 익숙하지 않았을까? 일기는 철저히 리진선의 1인칭 주관적 시점에서 씌여졌지만 들어가는 이야기와 나오는 이야기는 한 언론인의 관점에서 서술되었다.
전문 이야기꾼의 글이었다면 이 책은 철저하게 잘 짜여진 셈이다. 하지만 한 인간의 삶은 그럴듯한 이야기보다도 훨씬 드라마틱할 수 있는 법이다. 특히나 역사적 격동의 세월을 보낸 사람에게는.
4. 지금 북한은 김일성을 똑 닮은 김정은으로의 3세대 승계가 일어나고 있다. 리진선의 유고글 중에는 김정일에게 보내는 편지와 '아직 오지 않은 동지에게' 보내는 글이 있다. 그가 북한사회 속에서 2세대 세습에 대한 한 사회주의자의 고민이 묻어나는 글이다. 또한 '아직 오지 않은 동지에게'는 젊은 세대에 대한 늙은 사회주의자의 따사로운 손길이 묻어난다.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이 바로 사회주의의 실패를 말하지를 않는다고 리진선은 말한다. 민족과 계급을 떠나 인류 모두가 사랑과 노동 속에 창조적으로 살아갈 <아름다운 집>을 지으려는 열정의 불꽃이 꺼지지 않을 것이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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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었구나.. 혁명이란 사람들이 모두 잘살게 아름다운 집을 짓는 거였구나...... 그런거였다.우리 어른들은 어린아이의 생각 보다도 한참이 부족하다니... 1월9일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소식 뉴스를 접하면서 이 문장을 대하니 감정이 더 많이 복잡해 져 온다.
이진선을 나는 몰랐다. 그러나 그가 쓴 일기 속에 나오는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어디서 이렇게 생생한 역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는가? 소설 보다 더 소설 같은 삶을,우리의 역사 한 가운데서 살아 냈던 이진선! 그의 일기를 통해,역사의 현장에서 고뇌하고 힘겨워했던 지식인을 만날 수 있었다.
손석춘의 소설이란 제목이 달려 있지만.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한편의 다큐였다. 물론 철저히 이진선이란 인물의 생각과 시선으로 바라본 역사의 기록이지만, 한쪽으로의 쏠림이 없는,그의 냉철한 눈으로 역사를 마주한 기분이다. 식민지 시대부터 김일성의 사망까지,그리고 그의 죽음의 과정까지.. 이진선이란 인물은 일기라는 형식으로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었지만,마치 그 시절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이진선의 일기를 기록하면서 느꼈던 저자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늘 조선에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가 고민했고,해결하지 못한,이제는 유언처럼 남긴 그 말이 나에게도 울림으로 다가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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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MBC100분 토론에 패널로 나오신 이 책의 저자인 손석춘 새사연 원장님께 토론과정 중 그의 발언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어 이메일로 여쭌 적이 있다. [손석춘 원장님께 보낸 메일(MBC100분 토론을 보고...)]
이 책은 그 이메일의 답장을 통해 알게된 책이다. 이 소설에 대한 평론가들의 평을 읽다보면 손원장님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것도 볼 수가 있는데, 사실 그것 역시 굉장히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따라서 과연 누가 그 역할일까 궁금증을 자아냈지만, 책장을 한장씩 넘겨가며 결국 마지막 책장을 덮을 즈음에서는 '아, 중요한 것은 나의 궁금증 자체가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 하나와, 1938년 부터 시작하여 혼란스런 해방정국의 남과 북의 현실을 거쳐 마지막 생을 마감한 1998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 지식인의 60여년 동안 변함없이 온 몸을 던져 살아간 혁명의 길, 그 지식인의 철학과 인식이 바로 손원장님의 그것과 동일시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내 책읽기 출발점의 궁금증을 정리 했다. 이진선... 이름 자체도 생소하다. 워낙 지식이 없는 내 탓이겠지만, 흔히 해방정국에서 누구나 알 수 있는 정파별 대표적 지도층이었던 박헌영,여운형,김구 등의 이름과 비교할 때는 더더욱 그러하다. 요즘 '비주류'와 '비주류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 회자되는 듯한데, 한참 그 단어가 매스컴에 오르내릴 때 나의 독서는 함께 이루어졌다. 주인공 이진선 역시 철저히 비주류의 삶을 살아갔기에 그 단어는 매스컴에서 사용되던 그것과 함께 묘한 느낌을 내게 던져주곤 했다. 한겨레에서 기자로 근무하고 있는 손석춘에게 중국 연길에서 걸려 온 전화로 부터 책은 시작된다. 연길에서 걸려온 어느 노인의 '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기록'을 전달해 주겠노라는 제보...평상시 기자는 그러한 제보를 많이 받지만 막상 취재시에는 하찮은(?) 것들이 많았기에 그 제보 역시 그저 그렇게 세간의 기억속에 묻혀버릴 가능성이 많았으나, 손석춘 기자는 무슨 느낌을 받았는지 바로 연길로 향하고 그 노인을 만나 무수히 많은 기록이 적힌 수첩 보따리를 받아오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은 그 노인으로 부터 받은 수첩 속 일기의 내용 그대로를 수정없이 옮긴 글이다. 그 일기 속에는 1938년 부터 기록이 시작되는데 그 당시 연희전문대 학생이었던 이진선이라는 한 지식인이 남한-일본-남한-북한에서 살았던 중요한 역사적 사실과 개인적 고뇌.. 해방 후 북한 사회에서 이루어졌던 공산주의세력간의 권력투쟁, 진정한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숭고한 이념이 아닌 또다른 수정주의로의 변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유혹이나 개인적 안락함과도 타협하지 않은 1998년 죽음을 선택할 때까지도 진정한 혁명가로서 살아간 그의 삶은 그저 감동스러워만 하기에는 너무나 애절하다. 아름다운 집. 책의 제목은 6.25전쟁 당시 북에서 미군의 폭격을 맞고 사랑하는 그의 아내 여린과 함께 한줌의 재로 변해버린 역시 사랑하는 그의 아들 서돌이와의 어느 날 대화에서 나온 말이다. 혁명하러 가느냐는 다섯살 박이 아들의 물음과 혁명이 무엇인지 아느냐는 아버지의 되물음에 천진난만한 다섯살 박이 꼬마 서돌이는 이렇게 답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 잘 살 수 있게 아름다운 집을 짓는 거예요. 맞죠?" 결국 이진선의 삶은 그 아름다운 집을 짓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이었으며, 그 안에 깃든 아내 여린과의 애틋한 사랑과, 아내와 아들이 폭탄과 함께 사라져 버린 뒤 알게 된 최진이와의 가슴아픈 사랑 역시 사랑 그 자체의 관점으로만 읽혀지지 않는다. 언제나 느끼고 생각할 때마다 가슴아픈 우리의 잘못 끼워진 첫 단추. 친일파를 척결하지 못한 채, 어제의 독립군 토벌대가, 서민을 괴롭히던 악랄했던 순사가, 미군정의 통치 편의성과 이해관계를 함께하며 그들의 비호아래 오늘의 군장성과 경찰간부, 그리고 국가를 이끌어 나가는 위정자와 사회 지도집단이 되어 또다시 조선민중들 앞에서 어깨에 힘을 주는 광경을 그저 가슴으로 성토하며 오늘날까지 이를 수 밖에 없었던 우리의 현대사. 그 과정 속에는 여러가지 노력들이 있었고 발전도 꾀하였을 것이나 2009년을 살아가는 현재에 있어서도 아직도 '척결'이란 단어를 당당하게 내놓을 수 없음은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반면에 북한은 적어도 친일파 척결(토지개혁까지 포함된)의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그 정당성이 인정되고, 따라서 80년 광주민주항쟁 이후 미국의 본질을 알아차린 남한의 청년학생과 수많은 양심세력들이 북한정권의 정통성이 남한의 그것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에 더 많은 끌림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론은 충분히 합리적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러한 정권의 정통성이 개인의 우상화와 권력세습이라는 지극히 봉건적인 낡은 세계관의 형태로 사회체제가 작동된다는 것에 당연히 그 누구라도 찬성할 수 없을 것이며, 게다가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추구한다는 국가에서의 그러한 행태는 더더욱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진선은 끊임없이 고민한다. 일제치하에서 부터 해방정국에 이르기까지 가장 막강한 지도력을 발휘하고 대내외적으로도 남북한을 통합하여 유일한 조선공산주의 운동의 수령임을 인정받은 박헌영과 같은... 본인을 포함한 남한 출신의 혁명가들이 하나둘씩 숙청당하고 진정한 '아름다운 집' 건설이 아닌 소위 주도권의 쟁탈을 위한 활동으로 변질되는 현상들...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우상화 작업과 세습화 작업을 더해가는 현실들...많은 고민과 회의 속에 스스로 살아 온 삶에 대한 그의 고뇌는 실로 읽는 이의 가슴을 움켜쥐게 만든다. 처음 책을 배송받고 나서 42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위에서 말한 중국 연길 노인의 전화로 시작되는 첫 머리를 넘기면서 그 부담은 궁금증과 안타까움, 애절함과 아름다움으로 바뀌어지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두운 시절 혁명가로서의 삶이기에, 때로는 기록 자체가 나중에 발각되어 자신의 발목을 붙잡을 수 있기에, 중요한 순간 또는 일정한 기간동안 아예 기록이 없기도 하다. 일기의 형식이기에 특히나 내가 성인이 되어 비판적 사유가 가능했던, 실제 몸소 느끼며 살아온 90년대의 남한 실상을 이진선의 눈으로 그려보는 것도 퍽이나 흥미로웠으며, 책 속에 등장하는 낯익은 이름들...이를테면 윤동주, 황장엽...등의 청년시절을 엿볼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보다 살기좋고 윤택하며, 인간적인 세상이 되기를 바랄 것이다. 어느 누구라도 고통받고 힘든 세상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건 무슨 'ism'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본능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그 '살기좋고 윤택한, 인간적'이라는 단어가 과연 '누구'를 대상으로 하느냐에 따라 이념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북한을 거론하기란 참으로 거북하기 그지 없다. 그동안 주구장창 권력과 정치권의 방패막으로 정략적으로 이용되어 온 소위 '빨갱이론'과 역시 끊임없이 세뇌당한 반공주의 교육의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뭔가 게림찍하다. 어쩌면 시간이 흐르면서 그리고 또한 경제력의 차이를 보이면서 자연스레 그 부분만을 가지고 우리의 시선 아래 놓고 내려다보는 입장이 은연중에 마음속에 있어서 일런지도 모르겠다. 지속적 논란이 되어 온 북의 인권유린 문제, 핵무기와 또다시 불거진 권력세습문제, 체제 유지를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현재의 북한은 아무리 그 사회,정치적 행동들을 이해할 수 없고 반대한다 할 지라도, 손석춘 원장님의 말씀대로 우리 사회가 인정하고 대화하고 하나로 뭉쳐나가야만 하는 유일하고 대등한 상대방이다. 적어도 영구 분단의 한반도 체제를 고착시키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한 권의 책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책이 가져다 주는 고마움이다. '아름다운 집' 이 한 권의 책은 그 선정에서 부터 읽고 느끼고 쓰기에 이르기까지 더 없이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해 주었다. 다른 이들에게 다함께 같이 읽어보자는 말은 굳이 하고 싶지 않다. 다만, 불우한 현대사를 지니고 있는 우리 나라의 혁명가로서 온 생을 살아간 많은 이들 중에서 '이진선'이라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지식인의 깊은 성찰과 절여오는 가슴아픔과 사랑을 느끼고 싶다면... 또 한편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북한의 해방이후 현재까지의 일련의 모습들을 남한출신 공산주의자 '이진선'의 눈으로 보다 냉철하게 살펴보고 싶다면... 마지막으로 진정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면... 그러한 사람들이 읽어주었으면 하는 어줍잖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추천해 주신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손석춘 원장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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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올해 들어 200권째로 읽은 책이다. yes가족이신 리바우먼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의미있는 책이다. 책 제목만 보아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는 사색적인 책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읽어보니 아름다운 집을 꿈꾸는 한 사람의 치열한 삶과 개인적 고뇌, 우리민족의 어려운 현실을 접하게 하는 그런 책이었다.
이야기는 기자로 근무하고 있는 저자에게 중국 연길에서 걸려온 전화로부터 전개된다. 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기록을 전달해 주겠다는 한 노인의 제보... 알지 못한 힘에 끌려 연길로 출발한 손석춘 기자... 그 노인을부터 전달받은 수많은 수첩들... 이 책은 그 노인으로부터 받은 수첩속 일기의 내용을 옮겨적은 것이다.
일기의 주인공은 이진선... 소설의 주인공이지만 책 내용중에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윤동주, 박헌영, 김삼룡, 황장엽 등의 인물이 등장하고 있어 주인공도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실존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한 1938년부터 일기는 시작된다. 일기는 장장 60년이라는 시간적 간극을 두고 1998년까지 계속된다. 공간적 배경은 한국, 일본, 한국, 북한으로 이동한다. 시대적 상황과 공간적 배경만 보아도 간단한 삶이 아닐거란 생각이 먼저 든다. 그러면서 60년동안 자기의 삶과 생각을 적어온 그 시대 지식인의 삶과 고민, 그런 것들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책 제목으로 사용된 '아름다운 집'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 잘 살 수 있는 이상의 공간이다. 주인공 이진선의 삶이야말로 그 아름다운 집을 짓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이였다. 60년간의 일기를 쓰면서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지를 자문하고 다짐하고 실천해 나간다.
북한이란 사회주의 체제를 선택한 그의 삶이 그가 원하는 '아름다운 집'을 짓는데 성공하지 못한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그의 삶은 성공한 삶이 아닐지는 모른다. 개인적으로 아내 여린과 아들마져 폭탄과 함께 사라져 버리는 비운을 경험한다. 사회적으로 자신의 이상이 실현되기보다는 왜곡과 좌절, 이로 인한 고독감을 되씹는 그러한 삶이었다.
주어진 한계 속에서 자신이 선택한 길이 옳은 길이라는 믿고, 주어진 삶의 순간순간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하는 삶, 이 땅의 지식인들에게 어떠한 길을 걸어갈 것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
| 이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938년 사회주의자 이진선이라는 한 혁명가의 연희전문 시절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일기장인줄 알았는데.. 소설?.. 실화인줄 착각하게 치밀한 손석춘 작가를 다시한번 보기로 했다.. 난 평소 혁명가, 전사, 투쟁... 이런글을 흥미로워 하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책을 읽으며 우리민족과 위대한 사랑을 위하여 혁명가로 잠깐 변신할수있었다... 책속의 인물 윤동주, 박헌영. 이진선 , 이현상, 모택동, 주은래, 김정일, 황장엽, 호치민등등 등장한다. (그중 황장엽씨가 평소 동화를 자주 읽어서 철없는 행보를 했다고 했다.. 나도 평소 동화를 자주 읽는다..앞으로 어떤 철없는 행보가 있을지...) 이진선은 사회주의혁명과 사회주의국가 건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 한국전쟁. 전쟁중 사랑하는 아내 여린과 아들 서돌의 죽음...) 과연 ''이 진선에게 ''개인의 삶에 있어서 사상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어쩌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들과 존재함으로써 살아갈 가치가 있는 것 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진선의 사상 “아름다운 집”이 인생의 감옥이 되었고. 사랑조차 자기 관념에 사로잡혀, 여자를 이해할줄 몰랐던 사람. 수많은 고통과 아픔들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는 내가 보기엔 어리석기 까지한 그의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진선의 꿈. 신념처럼 한반도에서는 아직도 아름다운 집이 만들어지지 못했지만. 우리에게 “아름다운 집”은 언젠가는 지어지리라는 희망을 전해준다. 인간의 삶이 이렇게 불순물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절대 순수할수 있구나!!..... 또한 아름다운 집을 꿈꾸다 꽃잎 처럼 사라져간 젊은 이진선들이 얼마나 많을까? 마음이 아프다... |
| 들쭉꽃을 술을 마시며 그가 쳐다본 세상은 어디일까? 그가 바라던 유토피아적세상이었을까? 자기가살면서 볼수있었던 그 시절 가난하고 어렵게 살던 그런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던 그런 사회였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라는 상상을 해본다. 세상에 그런 사회가 존재 가능할까?라는 생각도 떠오르지만.. 그런사회를 이룬다고 소위 소비에트빨갱이들은 지껄였고 칼막스같은 그럴 듯한 이론을 덧붙여 실현가능하다고 자기는 물론 많은 조선의 선배들을 이미 끌여들이지않았는가? 그 선배들도 나도 그런 세상이 가능하다고 믿은 것아닌가? 그러나 오래도록 기다린 그결과는 김일성개인의 주체사상이란 이념하 이루어진 북조선왕조국가였다. 친민족적 애민정신의 사고를 가지고 그들이 이룰수있다고 생각한 유토피아적인 사회가 결국 김씨왕족세상이었다. 이 얼마나 한심스런 결과인가? 바로 이글은 순수했던 이상주의자가 현실에서 실제 겪여야했던 아픔을 일생에걸쳐 일기체로 그린 이야기이다. 북한은 이미 이런 순수한 애국주의자에의해 성립된 사회가아니라 헤게모니적인 입장에서 김일성이란 권력의화신과 소련의 이익적관점에서 이루어진 사회라는 것에대해 자기자신 알고있었음에도 무력하게 80가까이 그사회에서 삶을 유지해오다 스스로 개인적고통에 자살한 가여린 늙은이의 얘기이다. 나는 이글을 읽고 그런 생각이든다.예전엔 계급적인 사고에서 비롯된 사회주의적인 생각에 몰두한 사람들이 현존한다면...그들은 이미 그런 계급적인 사고를 버렸을것이라는...대신 순수하고 여린 지성인이 무식하고 동물적으로 탐욕스런 그런인간들 보다 잘사는 그런 사회를 추구하지않았을까하는 그런 생각이든다. 들꽃술을 마시면 그가 바라본 우리민족의 희망은 남한이었다. 남한은 그가 생각했던 그런 미국속국도아니고 역동적으로 변화발전하는 그런 사회가되었다.그가 월북을 선택하지않고 남한에서 연세대철학과 교수를 선택했었다면 그는 너무 좋응 세상을 같이 만들고 누리면서 살수있었으리라...대한민국이 이렇게 변해가고 북한이 그렇게 변해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것이다. 그는 이 끔찍한 선택의 오류를 자살로 마감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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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세상을 살아서인지, 언제 한번 제대로 나를 돌아볼 틈을 갖기 못했다. 학생때와 달리 사회에 나오니 활동(?)을 한다는 것이 참으로 버겨운 일이었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다고 해야하나...학생때야 그냥 학점을 포기하면 되는 그런 단순한 것이었지만...정신없이 일만 하며 살다보니 왜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는 왜 노조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그냥 워낙에 하는 거려니... 하며 그렇게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열심히 하는 것이 다였다. 이 책을 보고 나니 내가 얼마나 배부른 활동가(?)였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자,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그 답을 찾게 해 준 이 책에 감사한 맘을 갖는다. [인상깊은구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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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의 사회주의자, 공산당 등 이런 말들은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었을까? 이른바 '빨갱이'라는 말로 금기시된 단어들일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레드콤프렉스 앞에서는 모두가 단순해져버린다. 어떤 사람이건, 단체건 빨간 덧칠을 해 버리면 그 순간 남한에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게 되버린것이다.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우편향 된 사회에서, 이 책의 대중적인 소설(?)형식의 광고는 그 자체가 획기적인 것이었다. 책 제목만으로는 내용을 전혀 예상을 못 하겠지만 책을 덮고 난 뒤 정말 작가가 말하는 '아름다운 집'을 짓기 위해서는 아직 우리 사회는 가야할 길이 멀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지금은 과정일 뿐이다. 아직 자본주의의 성숙 단계를 거치지 않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차츰차츰 다양한 사상을 받아들이고, 다양한 정당들과 다양한 의견이 일반화 되는 사회가 된다면 아름다운 집을 짓는 데에 조금은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과학적 사회주의를 제시했을 때 두가지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자본주의 성숙이라는 물질적 조건과 사회 구성원의 의식수준이라는 주체적 조건이 그것입니다. 두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사회에서 사회주의 혁명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1848년 파리의 혁명이 그러했거니와 1917년 러시아혁명 또한 예외일 수 없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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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손석춘. 많은 이들에게 언론의 폐해성과 한국언론의 후진성을 실감있게 설파하고 있는 언론인이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언론에 대한 문제점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가 신문과 방송이 아닌 단행본 그것도 소설이라는 장르를 빌려서 언론에 대해 다뤘다니... 재미있을까? 읽을만할까? 언론문제로 어떻게 소설을 쓸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책을 집어들었다.
소설가 손석춘. 언론인이기에 글을 잘쓴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기사와 소설은 엄연히 장르의 차이가 특별하니까. 스트레이트성 기사와 소설의 창작성이 어찌 같을 수 있을까.
<아름다운 집="">은 술술 잘 읽힌다. 그리고 재미도 있다. 그리고 역사성도 가지고 있는 책이다. 이진선이라는 인텔리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보면 북한과 남한의 역사가 보인다. 그만큼 그는 한반도의 삶의 궤적을 모두 맛본 인물이다.
이진선은 또 언론인이기도 하다. 역사를 기록한다는 언론인으로 그는 역사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기록해나갔다. 자신의 사랑스런 가족이 전쟁의 한 복판에서 죽었을 때에도 그는 역사의 기록을 멈추지 못했다. 이진선이 쥐고 있는 역사의 펜은 날카롭고, 감성적이며 또한 철저한 이성주의자의 모습이다. 왜곡에 대한 거부감이 있으며, 감상적인 친절함도 완곡히 배제하고 있다.
그리고 그 역사 속에서는 북한과 남한에 대한 환상을 거둔 실제적인 발가벗긴 모습이 나타난다. 이 소설을 읽고 누가 북한에 대한 환상을 가질 것이며, 남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거둘수 있을까.
우리는 이진선의 삶의 궤적을 따라서 사랑과 역사 그리고 언론인의 사명을 함께 느낀다. 또 하나 책을 조용히 덮을 수는 있지만, 마음속에서 용솟음 치는 개인과 역사 그리고 사회에 대한 상식적인 시각과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황석영의 소설처럼 역사의 기록이자 우리 시대의 처절한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가 손석춘. 이제는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여린은 그 까닭도 분명히 밝힌다. "왜 모두 고루 잘살자는데 그걸 싫다 할까요. 민족을 배신한 친일파들을 청산하자는데, 왜 그걸 반대할까요. 도대체 저 사람들은 자신들만 잘살면 된다는 것인가요. 친일과 친미로 외세에 빌붙으려 하는 저들이 끔찍스러워요. 설마 저 사람들도 자본주의가 모두에게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겠지요? 자본이 주인이 되는 사회, 돈이 사람을 좌우하는 사회를 저 사람들도 이상사회로 믿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그러니 더욱 용서할 수 없지요. 저 ㅅ람들이 우리들의 아들딸까지 지배하도록 보고만 있을 수는 더더욱 없어요. 자본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 되는 사회, 인민이 중심되는 사회를 우리가 만들어나가야죠." 그랬다. 바로 그것이 '위대한 사랑'이었다. 이진선과 신여린, 해방공간의 맑은 젊은이들에게 혁명은 사랑의 방법이었다.아름다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