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육에 활력을 불어 넣는 세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고 믿는데 진실, 아름다움, 선함이다. 진실의 영역은 무엇이 틀린 것이고 무엇이 불확실한 것인지 알려준다. 아름다움의 영역은 추악하고 저속한 경험이나 대상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다. 그리고 선함의 영역은 선한 것이 무엇이고 악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다. p.17 나의 교육적 관점에서는 답보다 질문이 더 중요하다. 즉 지식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이해’는 그러한 질문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과정에서 발전한다 |
|
인간은 어떻게 배우는가? 우리나라 사람만큼 교육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교육에 대해서 잘 모른다. 단지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하는 수준 정도나 매스컴에서 떠드는 수준이 아닐까? 정작 광범위한 지식을 우리가 어떻게 배우는가 에 대해서 아는 수준은 낮은 것 같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배울까? 이 책에서는 이런 심도 깊은 의문과 대답을 제시하고 있다. 처음에 이 책을 보았을 때 ‘인지과학이 발견한 배움의 심리학’이라는 부제가 붙어서, 심리학과 관련된 과학책인줄 알았다. 읽어갈수록 교육학 책에 가까운 책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과연 교육의 목적은 무얼까?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인간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들을 가르치는 것 아닐까? 저자는 ‘기초적인 앎의 방법을 숙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것들을 배우는 것이면서도, 사람으로 인간으로 살아가는 기본적인 소양을 배우는 것이 아닐까? 현대 사회를 치열한 생존 경쟁의 사회로 말하고 있다, 또한 엄청난 속도로 발전과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교육이 시행되고 있다고 말하나 쉽지가 않는 것 같다.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즉 변화에 잘 적응하는 것이 관건이 아닌가 한다. 이러기 위해서는 지식을 창출하거나, 변형하고,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배우고 익혀야 할 것 같다. 교육과정에서 다양한 접근을 통해 더 많은 참여와 오랫동안 관찰하여 이해의 실천 가능성을 높임으로서 가능할 것 같다. 컴퓨터가 미래의 교육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까? 점점 컴퓨터 기반의 교육과 교육과정으로 변화하고, 인공지능과 가상현실이 많이 도입되고 있다. 이런 것들을 통해 이해의 기반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또 끊임없는 정보가 생산되고 유통되지만, 그 정보의 진위조차 알기 힘들기에 무엇보다 정보에 대한 선별능력을 키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닌지. 교육이 추구해야 할 길은 무얼까? ‘교육에 대한 결정은 결국 목표와 가치에 대한 결정’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개인의 목표와 사회의 목표가 잘 어우러지는 그런 교육이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 공적 영역의 교육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큰 문제점 중의 하나인 사교육이기에. 저자는 교육의 책임은 공적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사회가 교육을 책임지지 않는 것은 책임의 방기가 아닐까?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지식의 추구자와 지식의 창조자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학교는 일관성과 공통의 비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공교육의 영역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저자는 학교는 개별화되고 개인화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개인적인 가르침이 중요한 것을 알겠는데 공적인 교육으로 이렇게 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무엇보다 학습에서는 동기부여가 중요하다. 아이들은 무엇보다 자신이 사랑하는 어른의 이정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전체적으로 교육은 최종적인 성취의 절반 정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무엇보다 확고하게 이해에 중점을 두는 교육이 필요하다. 체계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방식을 키우는데 주력해야 할 것 같다. 이해란 ‘개인이 알고 있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공개적으로 보여주고 실행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무엇보다 이런 이해의 평가가 아이들을 나아가게 하는 중요 요인 같다. 우리가 가장 고심해야 할 부분이 평가가 아닐까? 너무 획일적인 교육과 평가가 아이들의 성장을 막는 것이 아닐까? 학문적인 이해의 측정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더욱 고심해 볼 필요가 있다. 교육은 일련의 가치와 사실상의 그 가치를 따르는 것이기에 ‘백년대개’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교육에 종사하시는 분들에게는 상당히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인 것 같은데, 일반인들이 읽기에는 좀 딱딱하고 어렵지 않을까 생각된다. 일례로, 각각의 지능은 특정한 한가지 형태의 정신적 표상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내용을 숙지하지 않고는 이해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전체적으로 과학, 예술, 역사의 예로 본 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많이 이 3가지의 예를 언급하기에 좀 지루한 면도 있지만, 오랜만에 보는 재미있고(?), 유익한 교양서로 이 분야에 제법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새롭게 아는 것이 더 많으니 좋은 배움의 기회였다. 그러나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닌 것 같다. l p. 108. 3줄, 능력을 학장-> 능력을 확장(?) l p. 120. 8줄. 그런 일리 일어나지는 -> 그런 일이(?)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책읽기 삶읽기 213 오늘날 학교에서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 인간은 어떻게 배우는가? 하워드 가드너 글 류숙희 옮김 사회평론 펴냄, 2015.9.3. 2만 원 배우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면 누구나 늘 배웁니다. 학교를 다닐 때에만 배우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는 학교가 널리 퍼져서, 꼭 학교에 다녀야만 배울 수 있는 줄 여기지만, 사람은 먼먼 옛날부터 학교가 아닌 집에서 먼저 배웠고, 마을에서 배움을 넓혔고, 들과 숲과 바다에서 배움길을 한껏 펼쳤습니다. 여느 때에 집에서 즐겁게 삶을 배울 줄 아는 사람일 때에, 나중에 학교에 가서도 즐겁게 지식이나 정보를 배웁니다. 여느 때에 마을에서 기쁘게 사랑을 배울 줄 아는 사람일 때에, 나중에 먼 고장 이웃이나 동무를 만나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새로운 꿈을 배웁니다. 무엇보다도 여느 때에 들과 숲과 바다에서 온누리를 배울 줄 아는 사람일 때에, 이 지구별을 넉넉히 품에 안으면서 사람으로서 아름답게 살아갈 길을 배웁니다. 나는 세상을 이해하는 사람, 그 이해를 바탕으로 살아가는 사람, 열렬하고 지속적으로 이해를 개선하려는 사람을 간절히 바란다. (22쪽) 300년 전 학교에서는 엘리트만을 가르쳤고, 주로 종교적 성격을 띠었다. 그러나 그 다음 200년에 걸쳐서는 좀더 큰 집단을 가르쳤고, 주로 세속적인 성향을 보였다. 이렇게 변화한 이유는 도시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읽고 쓸 수 있는 믿을 만한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뚜렷한 교육 계획과 권한을 가진 중앙집권적 교육담당 부서가 나타났다. (61쪽) 하워드 가드너 님이 쓴 《인간은 어떻게 배우는가?》(사회평론,2015)를 읽으면서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이 책은 ‘현대 사회 학교교육’은 사람한테 무엇을 가르칠 만한가를 다룹니다. 사람들은 오늘날 학교를 다니면서 무엇을 배울 만한가를 찬찬히 짚습니다. 다만, 미국이라는 사회에서 학교와 삶과 사람 사이에 맺는 실타래를 푸는 책인데, 한국 사회는 으레 미국 사회를 좇거나 따르기 마련이니, 한국 사회에서 학교교육이 어떤 모습이고 어떤 흐름인가를 읽는 데에도 길동무가 될 만하리라 느낍니다. 그러면 한국 사회에서는 학교가 어떤 구실을 할까요. 한국 사회에서 학교는 ‘사회 구성원을 이룰 아이들이 사회에 잘 길들도록(적응하도록)’ 교과서를 엮습니다. 사회를 고치거나 바로잡거나 갈고닦거나 새로 지을 만한 아이들이 아니라, 사회에서 시키는 일을 고분고분 잘 따르는 ‘사회 구성원’이 될 만한 교육을 시키려는 중앙정부예요. 요즈음 한국 중앙정부가 역사 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바꾸겠다고 난데없이 나서듯이, 한국 중앙정부는 ‘정부가 시키는 대로 머릿속에 지식을 집어넣어서, 정부가 바라는 대로 사람들이 끌려다니’도록 학교교육 얼거리를 짭니다. 평범한 우리는 스스로의 생각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의 마음이 잘 작동하는 방식과 그렇지 못한 방식을 평가하고, 우리의 사고를 정립하기 위해 공부를 할 때 도움이 될 전략과 보완방법에 대해서도 가치를 평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113쪽) 인간은 그저 가르치고 배우는 것만이 아니다. 사람은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왜 그것을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지를 선택하고 결정하낟. (119쪽) 왜 오늘날에는 ‘보통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아이들을 학교에 넣으려고 할까요? 왜 오늘날에는 모든 아이들이 ‘의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학교에 가야만 할까요? 말은 보통교육이지만, 오늘날 학교교육은 교과서 지식하고 정보만 달달 외워서 시험문제 풀이를 하도록 내모는 얼거리입니다. 허울은 의무교육이지만, 오늘날 학교교육은 다 다른 아이들이 다 같은 교과서를 쳐다보면서 ‘교과서 밖 이야기’에는 눈을 감거나 등을 돌리도록 내모는 얼거리입니다. 국정교과서가 아니더라도 아이들은 ‘교과서 밖’을 살피기 퍽 어렵습니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도 어린이책하고 청소년책이 꽤 많이 나옵니다만,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는 ‘어린이책하고 청소년책이 교과서 진도 보조교재 구실’에서 크게 못 벗어납니다. ‘교과서 학습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 글월을 책에 버젓이 찍으면서 펴내는 어린이책하고 청소년책이라고 할까요. 교과서 진도에 맞추어서 어린이책이나 청소년책이 바뀌는 얼거리라고 할까요. 그러니까, 어린이가 어린이답게 자라도록 북돋우려는 어린이책이 아직 드문 한국 사회요, 청소년이 청소년답게 꿈을 키우도록 도우려는 청소년책이 아직 모자란 한국 사회입니다. 학교교육의 실제 내용에 대해 생각해 보자. 많은 사회에서 중앙관료들이 교육과정을 결정하고 있고, 숙달해야 할 지식의 본질에 대해 공적인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155쪽) 수학에서 유클리드의 증명을 완벽히 체득하거나 모든 대수공식과 삼각비공식을 반드시 습득할 필요는 없다. 예술의 모든 형태를 공부하거나 역사적 사건을 다 알 필요도 없다. 그러나 학생들은 과학자, 기하학자, 예술가, 역사가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알 수 있도록 자신의 능력껏 사례들을 충분하고 깊이 있게 탐구해야 한다. (179쪽) 역사 교과서를 중앙정부에서 쓰는 대로 아이들이 배워야 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아이들은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참’이라고 하는 대목에 길듭니다. 나라에서 가르치는데, 학교에서 가르치는데, 설마 거짓을 가르치겠느냐고 여기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다른 교과서는 어떠할까요? 한국말은 중앙정부가 국정교과서로 슬기롭게 가르치는가요? 아이들이 한국말을 슬기롭게 배워서 사랑스레 쓰도록 북돋우거나 돕는 국정교과서인가요, 아니면 ‘기초지식’이나 ‘시험지식’에 얽매이는 한국말 교과서일까요? 영어 교과서는 어떠하고, 과학 교과서나 수학 교과서는 어떠할까요? 영어를 왜 어떻게 얼마나 배워서 이러한 영어를 어디에서 누구하고 어떻게 써야 즐거운가 같은 대목을 교과서로 슬기롭게 보여줄는지요? 교사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들에게 초기에 형성된 부적절한 표상과 오개념이 지속되는 데 가담하게 된다. 학생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정보를 사용하도록 장려하지 않고 단순히 교재와 수업내용을 암기했는지를 평가하는 필기시험 … 학생들이 단순히 교재와 수업내용을 암기했는지를 평가할 뿐 새로운 방식으로 정보를 사용하도록 도전할 의욕을 주지 않는 필기시험 환경 … (186쪽) 궁극적으로 진실, 아름다움, 선함의 문제에 대한 사회의 답이 중요하지만, 우리의 개인적인 질문과 답은 더욱더 중요하다. 진실, 아름다움, 선함 사이의 접점과 반향들은 그것의 독특한 특성만큼이나 중요하다. (327쪽) 《인간은 어떻게 배우는가?》라고 하는 인문책은 제도권 학교교육에서 담아내어 아이들을 이끌 틀을 어떻게 세울 때에 알맞거나 올바른가 하는 대목을 차근차근 짚으려고 합니다. 아이들을 똑똑하게 가르치는 학교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이 저마다 제 삶을 차분히 바라보면서 제 마음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도록 이끄는 학교교육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짚습니다. 더 많은 지식을 학교에서 배우는 얼거리보다는, 한 가지 지식이라도 뿌리와 줄기와 잎과 열매와 꽃을 골고루 살펴서 제대로 생각하도록 이끄는 얼거리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는 얼마나 유연해질 수 있을까? 사람들이 반드시 합리적으로 일하지 않는다는 것을 심리학자들은 관찰하고 증명했다. 나는 사실 미국인들이 독특한 여섯 가지 경로들을 만들고 지킬 수 있을지 의심하고 있다. (353쪽) 모든 아이는 학교에 다니기 앞서 집에서 배웁니다. 아이를 낳은 어버이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기 앞서 어버이 스스로 먼저 가르칩니다. 아이들은 보육원에 가려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려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제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사랑을 받고, 제 보금자리에서 삶을 물려받으려고 태어납니다. 아이들은 제 어머니와 아버지가 따사로운 손길로 즐겁게 사랑을 베풀면서 가르쳐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태어납니다. 아이들은 제 어머니와 아버지가 일구는 삶을 지켜보면서 저마다 새롭게 삶을 짓는 꿈을 키우려고 태어납니다. 아이들은 어느 만큼 나이를 먹은 뒤에 직업교육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어떤 나이가 된 뒤에 직업훈련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하고 싶은 꿈을 찾아야 합니다. 아이들 스스로 꿈을 찾을 수 있으면, 이때부터 아이들은 스스로 배움길을 떠나지요. 꿈이 없는 아이들은 배움길을 나서지 못해요. 꿈이 없는 아이들을 학교에 몰아넣는다고 해서 교육을 할 수 있지 않습니다. 꿈이 없는 채 또래 무리가 좁은 울타리인 학교에 갇히니, 이러한 학교에서는 폭력과 따돌림 따위가 자꾸 불거질 수밖에 없습니다. 꿈이 없는 또래 무리는 아름다운 길보다는 바보스러운 짓으로 흐르기 마련입니다. 자신이 믿는 것을 말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하는 행동들이야말로 정말 중요하다. (360쪽) 한 가지 방식으로 일하는 법만 배운 기관들은 힘이 들더라도 새로운 것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해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363쪽) 《인간은 어떻게 배우는가?》라는 책을 다 읽고 나서 문득 생각합니다. 이런 책은 대통령이나 시장이나 군수 같은 사람이 읽고서 배울 만한 책입니다. 교육부라든지 중앙정부 공무원이 책상맡에서 서류만 붙잡지 말고 이런 책을 읽을 노릇입니다. 스스로 새롭게 배우지 않고서는 스스로 새로운 하루를 짓지 못합니다. 스스로 새롭게 사랑을 가꾸지 않고서는 스스로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지 못합니다. 똑같은 몸짓은 똑같은 하루를 빚습니다. 새로운 몸짓은 새로운 하루를 빚습니다. 아이들이 저마다 어떻게 노는가 하고 물끄러미 지켜보셔요. 이렇게만 해도 ‘어른’들은 아주 쉽게 삶을 배울 수 있습니다. 기쁘게 웃고 차분하게 노래하는 아이들은 ‘똑같은 놀이’를 두 번 다시 하지 않습니다. 겉으로 훑는 눈길로는 아이들 놀이가 다 똑같아 보일는지 모르나, 아이들은 참말 똑같은 놀이를 안 합니다. 늘 조금씩 새롭게 바꾸어서 한결 재미나게 놀이를 누립니다. 삶에서 배우기에 마을과 학교에서도 배웁니다. 삶에서 배우지 못하면 학교를 아무리 오래 다녀도 아무것도 못 배웁니다. 삶에서 배우기에 이웃사람하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즐겁게 배웁니다. 학교가 학교다우려면 중앙정부 손길을 되도록 덜 타거나 안 타면서, 마을이나 고장에서 조그마한 지역자치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학교를 마친 뒤에 졸업장을 받지 않는다면, 졸업장을 따지지 않을 수 있는 사회라면, 참말 학교는 슬기롭고 올바르게 학교교육을 할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4348.10.30.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
|
인간은 어떻게 배우는가? 왜 배우는가? 에 대한 의문에 직면할 때가 가끔 있다. 괜스레 공부가 하기 싫어질 무렵, 그리고 공부를 해야할 상황에 직면하거나 누가 시키지 않아도 무의식 중에 서점에서 책을 집어 들어 계산을 하고 집에 와서 읽을 무렵. 그런 점에서 왜 인간은 희안하게도 배움의 욕구가 있는 걸까? 왜 스스로 재화를 지불하고 소중한 시간을 써서 지식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걸까? 하는 의문에 휩싸인다. 그런 의문의 해답을 찾이 위해 집은만큼 실제로 이 책은 쉬이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속독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전문적인 내용이라 그런지 문장 자체가 머릿속으로 잘 들어오지 않아 천천히 곱씹으며 읽어야 했다. 하지만 부모를 포함해 교육에 몸 담을 사람, 몸 담고 있는 사람들, 특히 교육 관련 정치인(!)이라면 이 책을 읽어줬으면 한다. 교육이라는것에 문득 드는 의문들과 교육이 가져야할 방향성의 지표와 관련되어 있다고 보기 떄문이다. 작자인 하워드 가드너는 교육심리학의 대가로 기능적인 면에만 치중하는 현대사회의 교육제도에 대한 비판론자라고 한다. 인류가 축적해온 학문적 사고방식과 가치체계를 수련을 통해 진정한 배움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럼 배움은 인간의 본성일까?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아주 오랜 옛날부터, 아마 원시부터 남자는 부계와 여타 남자들의 행동을 통해 수렵생활과 무리를 지키는 것을 배웠고 여자는 모계와 여타 여자들을 통해 남자들의 사냥감을 조리하고 사냥에 참가하지 않는 대신 해야할 일들을 배워왔다. 그리고 사회체계가 진화하고나서도 그의 가족들을 통해, 혹은 여타 교육기관(학교)를 통해 익히고 배웠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산업화 시대를 겪기도 하고 하며 태어난 인간의 인격이 형성되고 혹은 사회 구성원인 사람으로서 성장하기 위해, 다양한 교육이론이 재정립되어가면서 그에 따른 여러 교육론도 대두된다. 전문적인 교육체계가 생기기도 했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어린 시절부터 장려된 교육의 중요성도 나타나기 시작한다. 하워드는 교육의 과정에서 문화적 영향의 중요성에 주목한다. 특히, 세계 최고의 교육을 제공하는 유치원으로 각광받아온 이탈리아 레지오 에밀리아 유치원, 스즈키 교육법, 미국의 키스쿨 등 세계 각국의 독특한 교육방식들을 살피며 효과적 학습과 배움의 방식들을 탐구했다.'사실 사람들은 수태될 때부터 자기가 속한 특정 문화의 가정, 편견,통찰에 둘러싸인다. 이런 경향은 필연적으로 생각 패턴, 감정패턴, 발달 패턴에 영향을 미친다, 두말할 나위 없이 교육기관들 역시 그것이 위치한 문화의 목표와 가설에 막대한 영향을 받는다. 실제로 학교로서는 자신이 속한 문의 가치를 구현하거나 그에 맞서 투쟁하는 수밖에 없다. P.147 ㅡ<05 문화가 중요하다> ' 또한, 교육의 어렴풋한 역사와 교육이 수반되는 환경, 과정을 보고 내려가니 어떻게 교육을 수행해야할지, 이해에 대한 교육을 통해 배우는 학생들을 어떻게 이해를 시켜야할지, 이해를 유도하기 위한 조건들은 뭐가있는지에 대해 언급한다. 물론 하워드도 '이해로 나아가 왕도는 없으나 긍정적으로 보자면 이해를 향사알 수 있는 최선의 방법에 대한 단서는 많다'고 한다. 이는 하버드대학에 연구 중인 다중지능이론이라는 것으로 1 의미 있는 제도에서 배우기, 2 잘못된 개념과 직접 대면하기, 3 이해를 촉진하는 마음의 틀, 4 이해로 가는 다양한 출발점을 나열했다. 그리고 예술, 과학적 분야에서 어떠한 식으로 이해를 통해 학문의 성과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설명도 곁들인다. 처음에 이 책을 읽으면서 단순히 학생(=학교에 다니는 나이 어린 사람들)을 가진 부모가 읽기 좋은, 혹은 교육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다잡기 위해 읽으면 좋을 책이라고만 생각하고 읽었는데 장을 넘길 수록 그들에게 고하는 내용을 통해서, 정식 교육과정을 지나고나서도 끊임없이 배움을 추구하는 모든 이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배우는 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효과적일지, 어떠한 제도가 적합한지에 대해 늘어놓는 부분이 반대로 어떻게 익히면 효과적인 학습이 가능할지를 생각할 수 있는 소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직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완벽히 소화해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다시 한 번 시간을 내서 읽어보고 조금 더 생각해보고 싶다. 인간은 어떻게 배우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배워야 할 것인가? 하고.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교육'이란 무엇인가? 교육이라는 물에 발을 담근 지 벌써 10년이 넘어가고 있다. 그리고 올해는 좀더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어서 공부도 시작했다. 그러나 일을 하면 할수록, 알면 알수록 해결되지 않는 갈증은 계속 존재한다. 수많은 아이들이, 이제는 성인까지 포함하여 수많은 학습자들이 학습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아직 교육계에서는 개인의 역량에만 의존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을 파고 들어가 보면 결국 모든 책임은 개인에게 지워진다. 그런데 그런 곤란을 겪고 있는 사람이 능숙하게 해내는 사람들보다 더 많다는데 함정이 있다. 다수에게 맞지 않는 방법이라면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현실적인 필요에 의한 수많은 이유들이 그러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논쟁 자체를 거부해버리고 있다. 그렇게 너무 오랜 시간 당연하게 주입되고, 받아들이면서 이제는 생각할 이유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같다. 아이들과 만나면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아이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즐거움은 커녕 수많은 상처와 열등감으로 공부에 대한 마음의 문을 일찌감치 닫아버리고 만다는 것을. 왜 그래야 할까. 개별 아이들의 발전 속도에 맞는 교육을 도입하겠다고 대대적으로 개편한 제 7차 교육과정은 실패를 인정하고 슬그머니 개정의 개정을 거듭하며 결국 수준별 교육은 포기하고 말았다. 결국 '따라 올테면 따라 와봐'의 체계로 돌아갔고, 수없는 개정을 거듭하지만 무엇을 위한 개정인지 본질도 흐려진 상태다. 학교라는 과정을 통과한 성인 역시 교육의 문제에 있어 자유롭지 못하다. 평생교육의 시대라고 하는데 진정한 배움이라는 의미를 성인이라고 알고 있을까? 아이들의 교육과 성인의 교육은 달라야 한다. 그런데 교육이 무엇인지 어떤 교육이 바른 교육인지 정의조차 혼란스러운 상황에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 근본 개념부터 차근차근 익혀 나가자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 책이 [인간은 어떻게 배우는가?]였다. 저자인 하워드 가드너는 다중지능이론으로 우리에게는 너무도 익숙하다. 아이큐가 절대적인 지지를 받던 시기에 하워드 가드너가 주장한 다중이론은 처음에는 큰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교육의 방향성을 바꾼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아직 현장에서 실제 적용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처음 이 책의 표지와 저자만 보았을 때는 다중지능이론에 관한 책인가 했었다. 그러나 책에 관한 소개를 보면서 다중이론보다 더욱 큰 범위인 배움 자체에 대한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그동안 느끼고 있었던 답답함의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은 400페이지가 넘는 꽤 많은 분량이었다. 사랑, 행복처럼 배움 역시 누구나 느낌은 알지만 딱히 설명하기 어려운 개념이 아닐까 싶다. 사랑이나 행복은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고, 정도로 다르고, 정확하게 정의하기도, 방법론을 펴기는 더더욱 어렵다. 배움 역시 그럴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그 모호한 가치로 인해 시대에 따라, 사회에 따라 수많은 부침을 겪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저자는 '모든 이들을 위한 좋은 교육은 있다'라는 단언으로 이 책을 시작한다. 그리고 좋은 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답을 찾아 긴 여정을 떠나게 된다. 저자는 좋은 교육을 위한 3가지 요소를 먼저 제시한다. '진실(진), 아름다움(미), 선함(선)'이 그것이다. 처음 이 부분을 읽었을 때는 너무 관념적이거나 이상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었다. 가치는 중요하지만 어떻게 현실에 적용할 것인가. 이런 질문을 예상한듯 저자는 각각의 예를 자세하게 들면서 어떻게 교육 과정에 적용할 수 있는 지, 그에 앞서 이 세 가지의 교육 요소가 왜 기본이 되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진실은 다윈의 진화론,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그리고 마지막 선함은 제 2차 세계대전 때 나치에 의해 진행되었던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로 교육이라는 본질에 대해 설명을 한다. 처음에는 고대 철학에서나 중요시했을 법한 '진선미'의 요소나 예들에 대해서도 의아하게 생각되었만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난 후에는 그 일련의 과정이 눈에 들어오면서 이해가 된다. 저자는 각 주제를 가지고 접근해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 지를 차근차근 단계별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은 비전문가라고 해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렵지 않게 친절하게 설명을 한다. 책의 상당히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지만 지루함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쉽게 읽힌다.
저자가 제시한 또 하나의 키워드는 바로 '이해'이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탐구할 학문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보편적인 의미가 아닌 그가 제시한 '이해'의 의미는 학문을 대하는 깊이있는 사고방식을 뜻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주요 학문의 사고방식에 대한 이해를 심어주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선정한 학문은 과학, 수학, 예술, 역사다. 학생들이 이러한 학문분야의 실질적인 주제에 대해 깊이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략- 그러나 학생들은 과학자, 기하학자, 예술가, 역사가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알 수 있도록 자신의 능력껏 사례들을 충분하고 깊이 있게 탐구해야 한다. 각 학생들은 하나의 예술이나 과학 또는 역사적 시대를 탐구하는 것만으로도 이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 이렇게 한 분야에 집중하도록 하는 목적은 학생들을 그 분야의 소전문가로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잘 이해할 수 있게 하려는 것임을 강조하고 싶다." ---p.179~180
그는 이러한 '이해'가 왜 어려운지, 그리고 그것을 방해하는 요소들은 무엇인지, 그럼에도 '이해'를 위한 교육을 할 수 있는 방법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제시한다. 그리고 그 이해를 위한 교육의 가장 적합한 방법이 바로 '다중지능'임을 강조한다. 그동안 막연히 알고 있던 다중지능의 맥락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제 나의 교육학적 견해를 분명히 드러내야 할 듯하다. 나는 깊은 이해가 우리의 주된 목표여야 하다고 생각한다. -중략- 간단하게 말해 이러한 교육은 두 가지 기초에 토대해야 한다. 하나는 교육자들은 학생들이 중요한 주제와 개념에 대해 참된 이해를 얻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교사들이 생각의 차이를 고려해야 하고, 가능한 한 한없이 다양한 학생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교육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중지능 이론이 효과적이고도 강략한 교육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나는 '다중지능의 관점'이 적어도 세 가지 방식으로 이해를 강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p.287~288
세 가지 방식은 다음과 같다. 1. 효과적인 출발점을 제공한다 2. 적절한 비유를 제공한다. 3. 주제의 핵심적 혹은 중점적 아이디어에 여러 가지 표상을 제공한다.
"학생들이 중요한 주제와 화제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는 방법들을 나는 이 책의 중심 논점들에서 직접적으로 주장해왔다. 나는 개인적인 차이가 교육에서 지장을 주는 짐이라기보다 동맹이라는 데 주목하려고 한다. 만약 이 중요한 주제들에 시간을 투자한다면, 몇 가지 시작점을 통해 그것들에 접근할 수 있고, 다양한 비유를 만들 수 있고, 심지어는 이러한 주제들에 대한 핵심 아이디어들을 몇 개의 모형 언어로 포착할 수 있다. 이러한 다면적인 교육은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깊은, 아니면 좀 더 깊은 이해를 가져다줄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은 중요한 주제들을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즉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에 대한 감각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들은 단련된 마음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중략- 그리고 어쩌면 이해의 달콤한 과실을 맛봤으므로 학생들은 '지식의 추구자', 심지어 '지식의 창조자'로서 자신의 남은 삶을 살아가도록 동기화될 수도 있다." ---p.381~382
이것이 바로 저자가 꿈꾸는 교육의 모습이다. 또한 인간이 배우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 얘기를 하기 위해서 저자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부터 시작하여 하나하나 풀어 헤쳐 나갔던 것이다. 깊이 들어갈수록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의 비전을 보는 순간, 교육의 본질에 대해 느낄 수 있었다. 이해의 단계까지 도달하는 실제적인 방법도 제시했지만 당장 적용하기 어렵고, 언제 적용이 될 지도 요원하다. 그러나 목표가 있다면 한 발자국이라도 나갈 수 있다. 갈지(之) 자로 헤매지 않아도 된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 목표점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일 것이다.
아직도 어려운 점은 있지만, 그럼에도 '교육'에 대한 그 모호함의 갈증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이제부터는 체계적으로 좀더 깊이 들어가봐야 할 것 같다. 역자는 저자의 책을 모두 통독해야 그의 책 구석구석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그가 얘기한 '이해를 위한 교육', '성공적인 교육'이 필요한 순간인 것 같다.
|
|
인간은 어떻게 배우는가? 인지과학이 발견한 배움의 심리학 하워드 가드너
인간, 호모사피엔스라는 하나의 종이 지구상에 70억개의 개체가 있고 전 세계에 분포 되어 살고 있다는 것.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인간에게 있는 교육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발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과연 교육이란 무엇이고 인간이 나이가 들어서까지도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모든 이들을 위한 교육'을 위해 '진실, 아름다움, 선함'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 인류의 중요한 업적을 깊이 있게 탐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는 과학과 인문학들 바탕으로 인간의 마음과 두뇌, 문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것들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배움을 익혀야 하는지, 인간에게 있어서 제일 좋은 교육 방법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사실 교육은 과거에 가까울수록 종교적인 것에서 시작하여 귀족이나 왕족 같은 높은 신분의 사람들에서만 몰래 이루어지다가 산업혁명이후 노동자들이 글을 쓰고 배워야하게 바뀌면서 현대의 학교 같은 교육 과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요즘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학교를 통해 획일적인 공교육으로 아이들을 가르친다. 가드너는 이런 이해를 목적으로 하는 교육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읽기, 쓰기, 계산하기로는 궁극적인 교육의 목표에 다다를 수 없다는 것이다.
가드너는 이 책에서 다중지능과 세계를 표현하는 방법을 통해 다윈의 진화론, 모차르트의 음악, 홀로코스트에 대해 설명한다. 다중지능적인 방법으로 하나의 주제를 설명하자면 논리적인 시작점, 실존적,근본적인 시작점, 심미적인 시작점 등 각 학생들에게 맞는 방법으로 이해를 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 이론은 현대 각광받는 교육이론으로 알고 있었는데 저자의 책을 직접 읽어보니 다중지능 이론의 중요성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틀에 박힌 읽기, 쓰기, 계산하기에만 집중된 현재의 학교 교육을 벗어나 각각 아이의 특성에 맞게 교육을 해 줄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랄 뿐이다.
|
|
[인문 서평] 인간은 어떻게 배우는가? - 인지과학이 발견한 배움의 심리학 . 교육은 진실함과 아름다움, 선함을 추구하는 과정이라고 가드너는 말한다. 그는 그의 다중지능이론이 배움의 과정에 잘 녹아있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그는 교육의 역할은 어른의 역할을 모델화하고 문화적 가치를 전달하는데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교육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다라고 표현한다. 사실 이 부분은 나하고 같은 생각이다. 대안학교 총무일을 할 때 현장의 교사들과 가장 많은 논쟁을 한 부분이 이 부분이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이러한 부분 때문에 학교는 교육의 폭과 깊이, 지식의 축적과 구성, 과정의 획일성과 개별화라는 이질적 요소의 균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특히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에 다문화사회라는 부분을 더욱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는 이러한 요소 때문에 문화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서양의 교육이 현장의 경험을 중시하는 실용적 학풍을 중요시하는 반면 동양은 정해진 관습적 교육을 더 중시하는 학풍이라 이러한 문화와 결합된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성공적인 교육이 되기 위해서는 열정적인 교사와 동기부여가 된 학생, 잘 만들어진 교육방법론, 지역사회의 응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1990년대 만들어진 미국의 피닉스대학을 매우 성공적인 모델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 대학은 제대로 된 건물도 교직원도 없지만 온라인과 프랜차이즈 형식으로 강력한 성장을 이루어내고 있다. 미용과 보건분야 등 실용적 학문을 주로 운영하고 있는 이 대학은 현장의 전문가들이 직접 교육에 참여함으로서 실질적인 학문적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는 것은 이해를 어떻게 시키느냐라고 말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그의 다중지능이론이 강력함을 발휘한다고 말하고 있다. 다중지능이론의 교육구조는 좋은 질문에서 출발하는 효과적 출발점-적절한 비유를 통한 발산-모형언어를 통한 수렴이라는 구조이다. 학생이 스스로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좋은 질문으로 시직된 이해의 시작이 다양한 은유와 비교를 통해 확산이 되고 자신이 이해된 내용을 수렴하는 모형언어로 수렴하는 것이 다중지능이론이 제공하는 이해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이론을 세 가지 빙산(다양하고 큰 이해가 필요한 주제)에 적용하여 말해주고 있다. 진화론(자연과학의 가장 큰 주제)을 상징하는 핀치새의 알까기, 예술을 상징하는 모짜르트의 오페라, 홀로코스트(정치적 책임을 생각하는 주제)와 관련한 반제회의라는 세 가지 빙산을 다중지능이론으로 이해의 폭을 어떻게 넓힐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대목은 우리의 교육이 다양성을 추구하면서도 집중성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요즘 뇌과학으로 표현되는 신경과학계와 심리학계가 만나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매우 적절한 지적이라 생각된다. 결국 이것은 숲을 볼 것인가 나무를 볼 것인가와 관련한 문제라 생각한다. 숲을 보고 나무를 보는 자세가 제대로 된 산을 알 수 있는 것처럼 큰 방향이 잡히는 것이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다증적 요소를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 가드너의 목표이다. 오랜만에 나하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학자의 글을 읽으면서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
이러한 교육적 뿌리를 가진 교육시스템이 우리의 신라의 화랑이라 생각하는 본인은 이러한 좋은 이론을 우리의 교육현장에서도 실현해보고 싶은 생각이다. 만들어진 시스템에 들어가서 교육을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화랑의 본 모습을 우리 시대에 실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시간이 되었다.
|
|
[인문 서평] 인간은 어떻게 배우는가? - 인지과학이 발견한 배움의 심리학 . 교육은 진실함과 아름다움, 선함을 추구하는 과정이라고 가드너는 말한다. 그는 그의 다중지능이론이 배움의 과정에 잘 녹아있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그는 교육의 역할은 어른의 역할을 모델화하고 문화적 가치를 전달하는데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교육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다라고 표현한다. 사실 이 부분은 나하고 같은 생각이다. 대안학교 총무일을 할 때 현장의 교사들과 가장 많은 논쟁을 한 부분이 이 부분이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이러한 부분 때문에 학교는 교육의 폭과 깊이, 지식의 축적과 구성, 과정의 획일성과 개별화라는 이질적 요소의 균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특히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에 다문화사회라는 부분을 더욱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는 이러한 요소 때문에 문화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서양의 교육이 현장의 경험을 중시하는 실용적 학풍을 중요시하는 반면 동양은 정해진 관습적 교육을 더 중시하는 학풍이라 이러한 문화와 결합된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성공적인 교육이 되기 위해서는 열정적인 교사와 동기부여가 된 학생, 잘 만들어진 교육방법론, 지역사회의 응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1990년대 만들어진 미국의 피닉스대학을 매우 성공적인 모델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 대학은 제대로 된 건물도 교직원도 없지만 온라인과 프랜차이즈 형식으로 강력한 성장을 이루어내고 있다. 미용과 보건분야 등 실용적 학문을 주로 운영하고 있는 이 대학은 현장의 전문가들이 직접 교육에 참여함으로서 실질적인 학문적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는 것은 이해를 어떻게 시키느냐라고 말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그의 다중지능이론이 강력함을 발휘한다고 말하고 있다. 다중지능이론의 교육구조는 좋은 질문에서 출발하는 효과적 출발점-적절한 비유를 통한 발산-모형언어를 통한 수렴이라는 구조이다. 학생이 스스로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좋은 질문으로 시직된 이해의 시작이 다양한 은유와 비교를 통해 확산이 되고 자신이 이해된 내용을 수렴하는 모형언어로 수렴하는 것이 다중지능이론이 제공하는 이해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이론을 세 가지 빙산(다양하고 큰 이해가 필요한 주제)에 적용하여 말해주고 있다. 진화론(자연과학의 가장 큰 주제)을 상징하는 핀치새의 알까기, 예술을 상징하는 모짜르트의 오페라, 홀로코스트(정치적 책임을 생각하는 주제)와 관련한 반제회의라는 세 가지 빙산을 다중지능이론으로 이해의 폭을 어떻게 넓힐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대목은 우리의 교육이 다양성을 추구하면서도 집중성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요즘 뇌과학으로 표현되는 신경과학계와 심리학계가 만나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매우 적절한 지적이라 생각된다. 결국 이것은 숲을 볼 것인가 나무를 볼 것인가와 관련한 문제라 생각한다. 숲을 보고 나무를 보는 자세가 제대로 된 산을 알 수 있는 것처럼 큰 방향이 잡히는 것이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다증적 요소를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 가드너의 목표이다. 오랜만에 나하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학자의 글을 읽으면서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
이러한 교육적 뿌리를 가진 교육시스템이 우리의 신라의 화랑이라 생각하는 본인은 이러한 좋은 이론을 우리의 교육현장에서도 실현해보고 싶은 생각이다. 만들어진 시스템에 들어가서 교육을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화랑의 본 모습을 우리 시대에 실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시간이 되었다.
|
|
가끔 논문을 찾다보면, 일견 연관이 없어보이는 분야들이 어느 순간 접점을 이루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교육학과 뇌과학도 그 중에 하나인데, 인간의 뇌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 진척을 이룸에 따라 정신질환이나 원인을 알 수 없는 증후군의 치료에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 읽었던 ‘빌리지 이펙트’나 ‘커넥톰’과 같은 책은 이러한 측면에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물론 각각의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는 전혀 다른 내용이긴 했으나, 교육에 관한 내용이 조금씩은 담겨있었기에 저자의 교육에 대한 관심을 알 수 있었다. 반면에 이번에 읽은 ‘인간은 어떻게 배우는가’는 교육학과 심리학의 대가인 하워드 가드너가 저술한 책으로, 보다 인문사회적인 관점에서 교육에 대한 본질을 살펴본 책이다. 저자는 이것을 인지과학이라고 이야기한다.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저자가 앞서 기술한 현대 뇌과학의 발전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설사 이것이 정신질환이나 유전병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교육은 이러한 기능적인 접근이 아니라 인류가 쌓아온 체계를 통해서 접근해야한다고 설명한다. 그런 점에서 책을 읽어보고 싶어 서평단을 신청하게 되었다. 나는 과학쪽에 몸담고 있기 때문에 생소한 단어들이 많고, 다양한 접근법들을 나열하는 설명방식에 조금 어렵다는 인상을 받았으나, 책의 중반을 넘어서니 점차 익숙해지면서 쉽게 빠져들 수 있었다. 특히 책에서 제시 되는 예시로 다위니즘, 피가로의 결혼과 홀로코스트가 반복되는데, 깊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책을 통해서 세 가지 예시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게 되었다. 또한 일반적인 책이 여러가지 관점을 제시하면서 ‘이런것이 있다’ 정도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 반면에, 이 책은 여러가지 관점과 함께 본인이 소위 ‘밀고 있는’ 한 가지 제도를 언급하고 거기에 대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자애로운 독재자라면 한 가지 방법을 통해서 학생들을 교육하고 싶다는 저자의 표현을 보면서 익살스러움 속에 숨어있는 본인 철학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의 진행은 교육에서 불변하는 가치를 설명한 뒤, 여러 나라의 교육이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설명하고, 본인이 추구하는 다양한 접근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불변의 가치는 미스코리아로도 잘 알려진 진선미이다. 책의 내용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주목할만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9장에서 설명하고 있는 다중지능 이론이다. 이는 동시에 책의 맹점이기도 한데, 흡사 창조경제처럼 무슨 뜻인지 실체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생각하기에 저자의 주장과 약간 상충하지 않나 생각하는 부분이 몇가지가 보이는데, 하나는 다중지능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다학제간의 교육을 경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양한 접근법을 추구하면서도 현대의 미디어는 너무 과도하게 다양한 추론을 가능하게 하여서 오히려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물론 교육자의 입장에서 개념의 핵심에 집중하도록 안배를 해주어야한다고 덧붙이고 있지만, 책에 조금만 더 친절하게 다중지능 이론에 대한 정의를 기술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나 이후에 상기의 예시를 통해서 풀이를 해 주기 때문에 어렴풋이나마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요약하자면 어떤 주제에 대해 한 가지 표상 만을 가지지 말고 다양하게 접근하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간단해 보이는 말이지만, 최근에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역사교과서의 편향성을 생각해보면 참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저자 또한 그러한 차이점의 대립에 대해서 추적을 하는 입장이 아닌 다양성을 소개하는 입장에 그쳐야한다고 선을 긋고 있다.
세계가 모두 똑같은 교육을 받는다면 참 지루한 세상이 될 것 같다. 저자는 다양한 이론 중에 본인이 주장하는 ‘한 가지’의 이론을 밀고 있지만, 이 내용 역시 ‘다양성을 갖춘 하나의 경로’다. 약간은 난이도가 있지만 현상이 아닌 제도에 중점을 두는 저자의 접근법도 신선했고, 내가 아직도 받고 있는 교육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나는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는데 개인적으로 언어 습득론(language acquisition theory)에도 관심이 많아서 여러 과목을 수강한 적이 있었다. 물론 이제는 그런 학문에 대한 관심도 어느덧 지나간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으나, 그러한 관심과 흥미를 다시 되살리는 역할을 한 책이 있는데 바로 하워드 가드너가 쓴 『인간은 어떻게 배우는가?』이다. 나는 『인간은 어떻게 배우는가?』라는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한편으로는 인간의 인지나 지식 습득과 관련된 전문 내용을 다루리라는 생각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학창 시절에 새로운 지식의 세계로 들어갈 때 느꼈던 두근거림을 떠올리면서 호기심이 크게 발동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인간은 어떻게 배우는가?』에서 주로 다루는 내용은 이 책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이나 기대와는 사뭇 달랐다. 제목만 놓고 보면 이 책은 인간이 지식을 습득하는 방식에 대한 연구나 이론을 소개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저자가 염두에 두는 것은 교육의 목적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자신이 창안한 특정 이론(다중지능 이론)을 소개하는 것이다. 저자는 ‘교육의 목적’을 ‘학생들에게 주요 학문의 사고방식에 대한 이해를 심어주는 것’으로 규정한다(p. 179). 여기서 저자가 염두에 두는 '이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단순한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특정 학문 분야의 이론과 원리와 논리를 납득하여 새로운 상황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의 함양’이다. 학문의 실용성을 강조하여 현실에서 사용 가능한 실무 중심의 학과들이 인기를 얻었던 과거와 달리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들의 중요성이 새롭게 재고되는 오늘날 현실에 비추어보면, 저자의 이런 지적은 대단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또한 저자는 깊은 이해를 주된 교육학적 목표로 받아들이면서(p. 287), 풍부한 이해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인지적 관점과 문화적 관점을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여기서 인지적 관점이 필요한 까닭은 우리의 인지가 발달하여 학습이 시작되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습득된 개념들 중에는 논리적 근거나 이론적 타당성이 없는 부적절한 표상이나 오개념(誤槪念)이 있으므로 이런 것들을 찾아내어서 그보다 더 적합한 교상과 개념들을 각인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화적 관점이 필요한 까닭은 학습자가 특정 학문 분야에서 익힌 것을 다양한 상황에 직접 적용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저자가 염두에 두는 ‘이해’를 위해서는 즉각적이고 반사적인 직관이나 습득보다는 학문적인 사고방식이 중요하다. 바꿔 말하면, 단순 암기나 주먹구구식 정보 흡입보다 체계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방식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어떤 주장을 담은 명제(가령, 흡연은 암을 유발한다)를 들을 때, 그 자체를 기정사실이나 진실로 받아들이기보다 두 현상 사이의 인과관계가 성립하는지 그렇게 인과관계로 엮기 위한 고리들이 타당한지의 여부를 고민하고 다른 요인들이 개입될 여지가 있는지를 깊이 탐구함으로써 과학자처럼 생각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이해’에 대한 이런 정의를 바탕으로, 저자는 ‘다중지능적 관점’을 제안한다. 여기서 저자가 염두에 두는 다중지능은 인지과학에서 말하는 주요 개념인 ‘정신적 표상’과 관계가 있는데, 정신적 표상이란 ‘모든 사람이 각각 마음과 뇌 속에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와 이미지, 민속심리적 언어’를 가리킨다(p. 101). 이런 정신적 표상은 특정한 실제 환경에서 구체화되고 발달된다. 이런 정신적 표상과 관련해서, 저자는 인간이 지닌 지능을 언어지능, 논리수학지능, 공간지능, 음악지능, 신체운동지능, 자연지능, 자기성찰지능, 타인에 대한 인간친화지능, 실존지능(삶과 죽음, 궁극적 실존에 대한 문제들을 숙고하는 경향) 등 아홉 가지로 세분한다(pp. 108~109). 저자가 제안하는 관점에 ‘다중지능적’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가 주장하는 ‘다중지능적 관점’은 단순히 인간의 두뇌 구조나 인지 능력의 분석에만 의존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그처럼 계량화, 도식화할 수 없는 요소들(학습자의 성격, 동기 감정)의 역할에도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저자가 주장하는 ‘다중지능적 관점’은 학습과 관련된 인간의 전 요소를 통할하여 다루는 강점이 있다고 하겠다. 이해를 강화하는 데 있어서 다중지능적 관점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효과적인 출발점을 제공한다: 하나의 주제를 어떻게 잘 소개할지에 대한 교육적 결정이 중요한데, 다중지능 이론은 하나의 주제에 접근하는 풍부한 방법(이야기식, 수리적, 논리적, 실존적‧근본적, 심미적, 실천적, 인간친화적 시작점)을 제공한다. 2. 적절한 비유를 제공한다: 익숙한 영역에서 빌려온 사례들이 낯선 영역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도 있다. 3. 주제의 핵심적 혹은 중심적 아이디어에 여러 가지 표상을 제공한다: 핵심 아이디어에 대해 다수의 ‘모형언어’(주어진 주제나 학문에서 추출한 개념. 가령 과학에서 모형은 그래프나 숫자나 논리적 연산이고, 인문학에서 모형은 언어며, 예술에서 모형은 그림이나 악보임), 다양한 해석을 만들어낼 수 있고, 그 주제에 대해 새롭게 대두된 설명을 평가할 수 있다. 다중지능 이론에서도 관건은 실천 방안이다. 저자가 제안하는 학습 방법론이 아무리 우수한 것이어도 학습 현장에서 제대로 실천되지 않으면 허사다. 이런 점에서 보면, 교사들이 수행하는 역할의 중요성이 크게 대두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책에서 조금 아쉬운 점은, 저자가 현실에서 활용 가능한 다중지능 이론의 실천법을 소개하는 데까지는 착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번역자의 글을 보면, 이 책의 저자 하워드 가드너가 일련의 책을 저술했다고 하니 이후의 작품에서 그런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간은 어떻게 배우는가?』는 이 분야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읽기에는 약간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하워드 가드너가 전개하는 논리를 끈기 있게 차분히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오늘날 한국 교육 환경의 실재를 반추하면서 효과적인 전인 교육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사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여러 가지 통찰과 아이디어를 그 속에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