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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나의 제롬, 나는 이제 내가 아니고, 더 이상 내가 아니고, 너와 함께만 있어"
그들의 사랑은 그들이 찬양하는 신 안에서 서로를 찾는 그런 조용하고도 순결한 사랑이었습니다. 알리사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내가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도 알지못한 채 그를 사랑하고 싶은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가 모르게 그를 사랑하고 싶다".. 이런 것이었습니다.... 사랑을 사랑한다고 말해버리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정말로 귀중한 것은 말로 다 담아낼 수 없는 것이죠.정신적인 사랑...
<좁은문>이라는 제목은 성경에서 따온 것인데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라"(누가복음 13장 24절)... 이건 반드시 성경적인 것만을 말하진 않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신앙인에게만 해당되는 것도, 신앙적인 것에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크고 넓은 길을 걷기를 좋아하고 좁은 길로 가기는 꺼려하지요... 사랑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사랑한다는 말로 쉽게 이불을 펴는 시대가 온 거죠. 사랑이 욕망이라는 이름으로 변질되어버렸지요.. 성욕.. 쉽게 사랑하고 쉽게 헤어지고 쉽게 감정을 드러내고 또 사랑한다는 것을 알아주기 원하고 또 받아주기 원하고.. 이게 요즘의 실태죠.. <좁은문>에서 알리사는 영혼의 순결한 사랑을 하길 원했죠.. 그래서 정말로 '헤어지지 않고 사는 것'을 꿈꿨습니다... 속박이 아니라, 구속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의 자유를 그들이 찾는 신 안에서 완성하려고 했습니다...
지금 세대에게는 어쩌면 고리타분하다고 느낄지도 모르지만 이 책은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경적을 울려주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에 대한 경고.. 잘못 읽으면 사랑에 대한 결벽주의, 순결주의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사랑에 대한 확신입니다. 이런 구절이 있어요..
"언젠가는 둘이서 함께 신비로운, 커다란 나라를 우리가 보게 되리라는 이상한 신념이 나의 마은 속에 자리잡고 있어.." 알리사는 이런 말들을 합니다. 신비주의도 그 무엇도 아닙니다. 사랑에 대한 확고한 신념입니다. 알리사가 제롬을 간절히 원하지만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함께 나눌 더 큰 기쁨을 위해서 말입니다. 물론 그녀가 육체적인 사랑을 경멸했다기 보다는 무엇이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가를 지혜롭게 판단한 거죠..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방식은 다르다고 하지만, 그것은 표현 방식만 다를 뿐 우리가 원하는 사랑은 다들 말하지 않아도 한 가지입니다. 다들 말만 다르고 표현만 다를 뿐 한가지입니다. 사랑한다면 그들처럼.... [인상깊은구절] *오 나의 제롬, 나는 이제 내가 아니고, 더 이상 내가 아니고, 너와 함께만 있어"좁은문>좁은문> |
| 앙드레 지드의 대표작은 4가지로 압축된다. 좁은문, 전원 교향악, 사전꾼들, 배덕자. 배덕자를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을 읽어 보았는데, 그만의 섬세한 감각이 엿보이는 '작품'들이 었다. '좁은문'은 순결하고 높은 사랑 이야기 이다. '알리싸'와 그를 사랑하는 소년 제로옴. 그리고 삼각관계를 만드는 줄리에뜨를 둘러싼 사랑 이야기 이다. 나는 이 작품이 '노벨상 수상작'이라는 점이 의심스럽다. 솔직히 말해서, 적절히 문학적 형상화를 한것은 인정할수 있지만, '최고의 작품'이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간의 사랑과 신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 고뇌하는 순결한 '여인'의 모습은 일상의 권태로움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어필하는 무엇인가가 있지만, 어떻게 보면 비누거품 같은 감수성으로 도말한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명작'이라는 뒷 그림자를 남긴 '작가'들은 대부분 하나의 '신앙'을 가졌다. 지드의 '전원 교향곡'이나 '좁은 문'에도 그런 신앙이 흐른다. 앙드레 지드는 문학적으로도 그리고 문학 정치적으로도 활동폭이 넓었던 작가 중의 하나다. '고전'이다. '명작'이다. 라고 평가받는 책들을 쓴 이들은 대부분 지드와 같은 행적을 가지고 있다. 나에게 있어선 이 작품이 뇌리에 남긴 '선율'은 점점 페이드 아웃이 된다. 나중에는 한번 읽었었던 작품중의 하나로서만 기억이 될지도 모른다. 전원 교향곡이나, 사전 군들도 마찬가지다. 지드 모랄의 총 결산이라고 평가 받는 사전군들이 '누보 로망'의 모태가 되었다는 둥의 말은 '한번 읽어 볼까'라는 생각을 독자들로 하여금 들게 하지만, 과연 느끼고 충분히 생각하면서 마지막에는 '감탄'으로 책을 덮을수 있는 작품일까는 의심스럽다. 작품의 명성에 비해 나로 하여금 불러일으키는 '감흥'은 대단치 못한 그런 작품중의 하나가 된 것이다. 우습게도 중간쯤 읽다가 이해가 가지않아 처음부터 다시 보면서 이 작품을 꼼꼼히 읽었지만, 억지 '감동'을 내 스스로 요구할 뿐이었던 것이다. '노벨상 수상작이 잖아!! 감동을 해야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깊이깊이 감동을 느낄수 있는 '실마리'를 잡을수 없었던 것 같다. 지금도 '좁은문'은 읽혀질 테지만, 그 좁은문은 '작품' 좁은문이 아닌 '노벨상 수상작가의 작품 좁은문'으로 읽혀 질 것이다. 그렇지만 한가지. 다른 작품들에서는 볼수 없는 얇고 섬세한 지드만의 '섬세한 감성'을 엿볼수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