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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지성계의 양심을 대변하는 와다 하루키 교수에게 그의 장기를 묻는다면 아마 바로 이 한일관계사를 꼽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와다 교수는 모르긴 해도 일본보다 한국에 그의 독자가 더 많을 만큼, 그는 한국의 다양한 일간지와 잡지에 그의 생각을 피력해 왔는데, 그의 생각과 글 들 중 상당수는 바로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지난 천 수 백 년 간 어떻게 변천해 왔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이 송주영 한신대 교수 번역본은 2015년에 북&월드에서 초판이 나왔지만, 와다 명예교수 저 원본 일어판은 2010년에 간행되었다. 일본이 한국을 병탄한 게 1910년이고 이 책이 머리말에서 '한일병합 100주년을 돌이본다'고 그 취지를 밝히는 것도 다 그런 배경에서이다. 책에서는 모두 여섯 개의 꼭지를 통해 20세기 이후 양국사의 주요 고비를 돌아보는데, 1장은 러일전쟁은 물론 그로부터 십 년 앞선 청일전쟁까지 커버한다.

타계한지 벌써 30년이 다 되어가는 소설가 시바 료타로의 <고개 위의 구름>은 발표 당시 일본은 물론 그 번역본이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는데, 책에서는 이 소설의 주제와 교훈에 대해 '파산"을 선고한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한국을 보호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병합했다는 일제 당국의 선전이 철저한 허구라는 점이 하나이며, 사태를 방치할 경우 열도를 겨눈 칼과도 같은 반도를 러시아가 삼켰을 게 자명하므로 선제조치 혹은 정당방위 수순으로 한일병합이 이뤄졌다는 논리가 근거 박약이라는 게 그 둘째이다. 사실 저런 일제의 선전, 혹은 현재까지도 우익들이 미는 로직은 한국인이라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터이며 와다 교수가 지론처럼 입버릇처럼 비판하던 프로파간다이기도 하다.

유감스럽게도 이후에 변절한 육당 최남선이 작성한 기미독립선언문은 지금 읽어도 국한문혼용의 명문인데, 이 책에서는 p72 이하에서 현대적으로 다듬은 버전으로 전부를 소개하고 있다. 저자들은 단지 문장만 훌륭한 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상도 흠잡을 데 없이 삐어나다고 한다. 와다 교수의 관점은 특정 주장이 당대의 국제 현실을 가감이나 왜곡 없이 바라보는지의 여부에 주목하며, 사심이 가득 낀 비뚤어진 세계관을 진실인 양 맹신하는 태도를 '환상'이라며 비판한다. 선전에 속거나 오도된 일본인들도 환상에 빠진 것이며, 식민 지배층에 속은 조선인들은 말할 것도 없겠는데, 이 선언문에는 그런 환상이 조금도 보이지 않고 냉엄한 현실을 직시한다며 높은 평가를 내린다.

제3장은 김일성의 만주 항일운동에 대해 다룬다. 김일성 회고록 제4권에는 '(겨우 23세였던 그가) 대원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저자 와다 교수는 달리 출처가 없는 걸로 봐서 이 구절이 와다 교수 자신의 저술을 그대로 인용했으리라고 추측한다. 과연 해방 전 아직 인지도가 높지 않았던 김일성이 모스크바를 당시 방문했을지에 대해 책에서는 여러 시나리오를 제기한 후 하나의 결론을 내놓는다.
일본은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자 전의를 상실하고 무조건 항복을 발표한다. 그렇다면 일본의 일반 시민들 정서는 어떠했을까? 와다 교수는 염전 정서가 가득했고 연이은 패전과 폭격으로 사기가 땅에 떨어졌던 국민들은, 이른바 덴노의 옥음으로 여튼 전쟁이 끝난다고 생각하자 그저 기뻐했다는 식으로 당시의 분위기를 전한다. 반면 조선인들은 일제의 폭압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기쁨에 들떠 마음껏 환희를 표현했는데 그 과정에서 빚어진 일부 폭력적 충돌상에 대한 기록도 책에 나온다(p147 등).

한국전쟁의 기원에 대해서 종래 한일의 진보 역사학계에서는 이른바 수정주의 스탠스인 브루스 커밍스(쿠밍스)의 남침유도설이 큰 힘을 얻었었는데, 1996년 고대 박명림 교수가 구 소련 외교문서를 인용하여 집성한 <...발발과 기원>이 나와 학계의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 그러나 와다 교수의 입장을 형성하는 거대 지평은 아직 수정되지 않았으며 여전히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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