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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여행은 나를 찾아가는 행위라고 일컫는다. 그래서 모두 여행 떠나기를 갈망한다. 배수아는 아니었다. 아니 배수아가 떠난 몽골, 알타이만은 아니라고 말해야겠다. 그곳은 나를 나이게 하는 동시에 잃어버리기 딱 좋은 곳이다. 배수아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그렇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잃어버림과 동시에 온전히 나로 거듭날 수 있는 곳, 알타이는 그런 곳이다. 여행의 낭만을 꿈꾼다. 그러나 알타이에 낭만은 없다. 드넓은 대지, 척박한 땅과 종잡을 수 없는 혹한이 시종일관 휘몰아치며 채찍질한다. 이성이 아니라 생존본능에 의해 먹고 마시고 자고 싸고 씻고, 반복하며 자연과 물아일체가 되어 자연인으로 거듭나는 배수아를 보았다. 기존에 알고 있던 작가 배수아는 거기 그곳에 없다. '수아'로 불리는 동아시아 끄트머리 작은 나라 한국의 여자 배수아가 있을 뿐이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카메라를 들고 어쩌면 나에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그장소의 풍경을 이리저리 직었는데, 특별한 계획이나 훌륭한 전경을 발견해서가 아니라 나의 '지금 여기 있음'에 대하여 스스로에게 주는 증언 같은 것이었다. -52쪽
누구나 노마드의 삶을 꿈꿀 테다. 강박처럼 모든 게 옥죄어오는 시대에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삶은 분명 부러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막상 자유로운 삶이 주어졌을 때 유유자적 그것을 즐겨낼 수 있을지는 순전히 의지에 달려있다. 모두가 꿈꾸지만 단순히 꿈으로만 그치는 이유이다. 멀리서 바라볼 때는 경외심이 일지만 가까이에서 겪었을 때는 뒷걸음치고 말 것이다. 작금의 시대를 사는 인간이란 문명의 경계 안 관습에 익숙해져 있는 탓이다. 간이 천막 유르테 안의 생활은 문명과는 거리 먼 모습이다. 전기가 없으니 어떤 전자기기도 자유로이 사용할 수 없고 전등도 없으며 야크똥을 이용한 난롯불이 유일한 온열기구로써 그들을 밝혀주는 빛이다. 대지 아무 곳에 구덩이를 파서 볼일을 보고 흙으로 다시 덮으면 그만인, 우리가 사는 곳에서는 이상한 일이 그곳에서는 되려 역으로 이상한 일이 되어버리고 만다.
몽골 여행기를 많이 접하지는 않았지만 아예 읽어보지 않은 것도 아니다. 대부분 고비 사막 같은 유명지 일색이었다. 알타이라는 지명이 낯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낯익다고 말할 수도 없는 곳이었고 유목민의 삶이 대게 그렇듯 험난한 여정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막상 들여다본 그녀의 기록은 예상보다 더 험난했고 고생스러웠다. 도대체 이런 떠남이 왜 필요할까 싶을 정도로 그녀 자신을 괴롭힌다는 인상까지 받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점점 해맑아지는 그녀가 있다. 알타이와 사랑에 빠지고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녀가 보인다. 내가 알던 작가 배수아는 시크하고 웃음기라고는 별로 없는 사람이다. 아니 그녀의 글은 그랬다.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의 문체도 그런 기질을 비껴가지는 않는다. 다만 그 안에서 겪은 에피소드를 회상하는 글의 분위기는 천진 그 자체였다. 투바 족장 갈잔의 소설을 읽은 후 무작정 떠나기로 했던 알타이행, 누가 봐도 섣부른 결정이었고 충동적이었지만 배수아 그녀라서 가능하지 않았을까. 내 기억 조각의 배수아 작가는 남들과는 다른, 조금은 특이한 구석이 있는 작가이다. 그래서 여행기를 읽고서 여행의 욕망이 생기지 않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한 노승영 번역가의 말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녀라면 여행기스러운 여행기를 쓰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그녀의 글을 썼겠지, 떠남과 머무름에 고정돼있는 천편일률적인 여행기는 아닐 것이라고, 그래서 여행기에서 따라오는 낭만적 기대나 로망 같은 것은 일절 배제하며 읽었다.
죽을 때까지 평생 갈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던 몽골행. 그것도 알타이. 오로지 갈잔 치낙을 만나기 위해서 그녀의 여행은 시작된다. 아니 무작정 떠남은 시작된다. 그녀 스스로도 이 책은 여행기가 아니라고 말한다. 일상의 도피처가 필요했던 시점이고 그래서 떠났을 뿐이며, 그곳이 알타이였을 뿐이다. 세계로부터 잊힌 땅, 알타이. 유언이 될 수 있는 쪽지를 써서 몸에 지니고 있기를 당부하는 곳이 알타이다. 배수아의 표현을 빌리자면 알타이는 청회색 빛 스텝 황무지, 험준한 산맥과 협곡, 눈꺼풀을 상실한 커다란 눈동자와 같은 호수가 무리를 이루는 곳이다. 그야말로 척박한 원시성으로 똘똘 뭉친 곳이며 인간의 체온이 그리워지는 곳이다. 관광이라는 명목보다는 자기 자신을 시험하기에 더 적합한 곳, 그래서 이 책은 여행기가 될 수 없다. '나를 찾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원초적인 나, 엄마의 자궁에서 처음 세상 밖으로 나오며 울음을 터트리던 최초의 나로 돌아갈 수 있는 관문 같은 곳이라고 해도 되리라. 그곳을 통과한 자는 여행으로써의 충만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되돌아본다는 의미에서 한층 더 홀가분해지리라, 행복해지리라.
여기서는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늘이 도대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알 도리가 없었고, 사실상 알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또다른 사실도 깨달았다. 이곳에서 나는 내가 누구인지조차 거의 절반쯤은 정말로 잊어버리고 있었음을, 그건 예상치 못하게 아주 행복한 기분이었다.-138~139쪽
이상하게도 이 책을 읽는 동안 꿈을 자주 꿨다. 아니 꿈의 잔영 때문에 잠에서 쉽게 깼다. 새벽에 잠에서 깨면 한참을 멍하니 어두움 속에서 머물러 있었다. 또 이상한 것은 꿈 때문에 깼으나 꿈의 내용도 거의 기억나지 않았다는 거다. 분명히 나를 깨울 정도로 신경을 건드리는 내용이었음은 분명한데도 말이다. 그렇다 해서 배수아처럼 델을 걸치고 가장 느리고 가장 늙고 초라한 나약한 말을 타며 스텝 초원을 누비는 그런 꿈은 아니었다. 희미하게 기억나는 건 많은 사람이 등장했고 나는 그저 그들을 맞이하고 떠나보내며 머물렀다는 것 정도. 어느 날, 내 안의 바람이 커졌을 때 나는 그녀처럼 무작정 떠날 수 있을까. 아무런 기대도 기약도 없이 태초의 나를 만나러 훌쩍, 너무도 낯선 곳으로 말이다. 문명의 이기와는 담쌓고 모든 것을 자연과 동고동락하며 누가 누구보다 더 낫고 모자람도 없이 있는 그대로를 순응하며 받아들일 수 있는 알타이의 삶이라면 못할 것도 없으리라. 비교하지 않는 가난으로 풍족한 삶을 사는 그들 안에서 어울릴 수 있다면 말이다. 필요한 건 약간의 각오, 약간의 다짐, 약간의 용기 정도일 것이다. 나는 이미 문명에 흠뻑 물들어있는 사람이므로. 이 더께를 털어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리라.
2009년 7월에 떠난 알타이다. 변덕 심한 알타이의 날씨로 유의 사항에 방한복을 꼭 준비하라는 메시지가 있었지만 배수아는 그러지 않았다. 아니 유의 사항 자체를 크게 개의치 않았던 그녀였다. 알타이의 변화무쌍한 기후에 몸은 녹초가 되고 얼굴은 유목민 여인과 견주어도 손색없을 정도로 변한 배수아, 방한복은 일절 준비하지 못해서(그마저 준비한 것도 일행에게 줘버리고.) 유목민 의상 델을 입고 추위에 벌벌 떨며 해맑게 웃는 배수아가 그려진다. 2009년 이후 2010~11년 두 번의 연이은 방문 이후 다시는 알타이를 찾지 않겠다고 한 배수아다. 그곳에 남겨둔 자신을 찾았을까. 어딘가로 훌쩍 떠났을 때 우리는 대부분 그곳에 자기 자신의 조각 몇 점을 남겨두고 오는 지도 모르겠다. 거듭 방문했던 게 그것을 찾기 위해 혹은 또 다른 조각을 남겨두기 위함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녀의 알타이행은 벌써 햇수로 몇 년이 지났지만 영원처럼 잊히지 않을 인생의 한 페이지가 될 듯하다. 비록 내가 떠난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기록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제 그녀는 다시 그곳을 찾지 않겠지만, 그녀는 여전히 거기, 그곳에 있다.몽골 알타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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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잡아 2,3일이면 대충 다 읽지 않을까, 했던 것이 일주일을 넘기고 나서야 겨우 다 읽었다. 딱히 게으름을 피운 것도 아닌데 유난히 진도가 나가지 않는 책이 종종 있다. 그렇게 꾸역꾸역 읽다 보면 내용도 잘 생각나지 않고 말이다. 소설가 배수아의 알타이 여행기라고 말할 수 있는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얄팍한 책의 두께와 여행기라는 말에 '저것쯤이야.' 생각했었다. 넉넉잡아 이삼 일, 맘만 단단히 먹으면 하룻밤에라도 다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웬걸, 나의 예상과는 달리 진도는 좀체 나아가지 않았고 하릴없이 날짜만 축내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사진이나 그림이 반 이상을 차지하는 다른 여행기와는 달리 이 책은 여느 소설책보다 더 빾빽한 글씨와 알타이 체류기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작가의 공간적 이동이 적었고, 우리에게는 한없이 낯선 알타이의 묘사가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나는 '궁금하면 500원'이 아니라 천 원을 받는다 해도 알타이에 대해 딱히 궁금한 게 없었다. 책이 지루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때에 맞춰 내가 바빠진 탓도 있었고, 기대했던 여행기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변명하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우리 여행자들은 말을 잊은 채 지상의 풍경에 고정했다. 이곳이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던 그 세계, 그 공간에 속하는 것이 과연 맞는가?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탄 비행기는 1만 년 전의 오늘을 향해 시간을 거슬러 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울란바토르에서는 결코 느끼지 못했던 이곳은 알타이다, 나는 알타이에 있다는 감정이 비로소 가슴에서 피어올라 향나무의 흰 연기처럼 나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p.62)
작가의 특이한 이력처럼 여행지 선정도 색달랐다. 많은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이화여자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한 작가는 한동안 공무원(병무청)으로 일하다가 무작정 쓴 소설 '천구백팔십팔년의 어두운 방' 이 1993년 <소설과 사상> 겨울호에 실림으로써 등단했다고 한다. 그 후 독일에서 1년간 체류하던 그녀는 2002년 다니던 직장에 사직원을 제출하고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2009년 여름 그녀가 알타이 고원의 추위에 떨면서 유르테에 불을 피울 야크똥을 모으는 고생을 자초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것은 여행기가 아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것은 여행기라고 불리기에는 어떤 요소가 너무 부족하거나 혹은 너무 넘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결코 여행과 함께 시작하거나 끝나지 않는다. 나는 여행을 떠났지만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여행이 아니라 나로부터의 도피였으며, 특별히 흥미진진하거나 남다른 사건이나 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p.11)
독일어로 소설을 쓰는 몽골 샤먼이자 투바 부족의 추장인 갈잔 치낙에게 이끌려 이름도 낯선 알타이-투바를 그녀는 2009년부터 세 번이나 다녀왔다고 한다. 대부분이 유럽인인 여행객 중에 유일한 아시아인이었던 작가는 끝도 알 수 없는 스텝 초원을 말을 타고 달려보기도 하고, 요리에 재주가 없다는 그녀가 20명 이상의 식사를 자원해서 준비했다가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하기도 하고, 여행의 마지막 무렵에는 병명도 알지 못하는 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기도 했다. 인간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은, 문명으로부터 잊혀진 몇 안 되는 지역 알타이-투바를 그녀는 그렇게 겪어냈다.
"우리들 머리 위의 하늘은 투명한 푸른빛의 폭포이다. 깨끗하고 맑은 대기는 우리의 영혼을 스치며 너울거린다. 찌르는 듯한 햇빛이 환하게 쏟아지는 스텝 초원에 앉아 빵에 부드러운 야크 버터와 달콤한 딸기잼을 발라 밀크티와 함께 먹는다. 밀크티는 항상 한 번에 기본으로 두세 잔을 마셨다." (p.154)
작가의 여행기라기보다는 알타이-투바 유목민 체험기에 가까운 이 책에서도 첼로를 전공한 오스트리아 여인 마리아가 비중있게 등장한다. 그녀는 5개 언어를 할 줄 알고, 유목민과 결혼하여 알타이에 살고 싶다는 염원으로 나이 어린 알타이 유목민 총각과 소개팅을 하고 몽골어와 투바어까지도 배운다. 그러나 문명에 길들여진, 오페라에 열광하는 마리아는 열병과도 같았던 알타이앓이에서 금세 벗어난다.
"나는 누구였던가. 나는 이곳에서 그것을 완전히 잊고 지냈는데, 눈앞으로 닥친 귀향을 생각하니 갑자기 그런 질문이 고개를 들었다. 지금까지 나는 너무나 나 자신으로 존재함으로써만 살아갈 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나 자신이 되기를 그토록 강요하는 불안과 혼돈이 없으며, 그래서 늙은 뿔처럼 단단히 뭉쳐 있던 나의 자아는 무엇인가의 영향 아래 서서히 부드러워졌고, 점점 밀도가 희박해지고 가벼워져서 검은 호수 아래로, 향나무의 연기를 따라, 밤 늑대의 울음 속으로, 달의 둥근 얼굴 속으로 휘발되어버렸고, 그럼으로써 도리어 나는 검은 호수와 향나무의 연기, 늑대의 울음, 달의 얼굴로 동시에 모두 존재할 수 잇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p.224)
여행이 이따금 돌이킬 수 없는 미궁 속으로 나를 이끌 때가 있다. 이곳에 왜 왔는지, 나는 이곳에서 과연 무엇인지, 문명으로부터 나는 얼마나 멀어졌는지, 그것이 나에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작가의 의식 저편을 주목하고 있었다. 어쩌면 작가는 지금 그녀의 가슴 한켠에 알타이의 햇살 한 줌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을 거라는, 그런 예감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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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 미답의 공간으로 수평 이동하는 여행은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내밀한 행위다. 여행자로 살고 싶은 바람에 끌려 빈 시간이면 여행기를 즐겨 읽으며 가야 할 곳을 찾아 자기 나름대로의 이유를 붙여 당위성을 부여한다. 노마드 풍에 끌려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그동안 옥죄어 둔 규범과 울타리에서 벗어나 타인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이 자신을 풀어놓고 대자유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은 용기를 내야 하는 모험적인 일이다. 독일어로 소설을 쓰는 몽골 소설가 갈잔 치낙의 소설 ‘귀향’을 보고 몽골 서북부의 소수민족 투바의 추장이라는 사실에 끌려 저자는 그를 만나러 가야겠다는 생각에 알타이로 떠나게 되었다. 기존의 여행기가 주는 멋진 경관이나 관광 명소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현실 속의 나로부터 도피하는 여행은 울란바토르 공항에 발을 내디디면서 시작되었다.
사방이 스텝 초원으로만 둘러싸인 건조한 땅, 황무지에 가까운 사막에 도착해서야 몽골 특유의 냄새로 저자는 여행을 실감하였다. 여행자들 22명은 몽골과 중국‧ 러시아의 접경지역이며 카자흐스탄 국경과 인접한, 시베리아의 끝자락에 위치한 알타이로 향하였다. 제대로 된 화장실이 없는 공항에다 물 한 방울이 귀한 곳에서 생활하는 게 익숙지 않았을 텐데도 여행자들은 불평하기보다는 척박한 환경에 감내하며 유르테 안에서의 생활에 젖어갔다. 유르테와 유르테에 거주하는 인간들을 보호해주는 여신으로 숭배 받는 불을 꺼뜨리는 행위를 금기시하며 불을 소중히 다뤘다. 잘 마른 야크 똥을 연료로 삼아 보온에 힘쓰는 유테르의 생활은 문명의 이기와는 거리가 먼 생활이지만 원시 본연으로 돌아가 미소 짓는 일이 많았다고 하니 물질적인 축적이 행복의 척도는 아님을 가늠할 수 있었다.
알타이의 거칠고 투박한 자연이 고스란히 펼쳐져 위험을 수반하기도 하는 자연 환경이지만 인간의 발길이 끊어진 다른 행성에 있는 듯한 공간에서 절대 고독의 경지에서 자연에 눈길을 주는 여행자의 시선을 의식한다. 말을 타고 원승을 나갈 경우 예민한 말을 자극하지 않는 게 필요하고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말고삐를 잡아당겨 말을 멈추게 하는 요령을 터득해 미연에 사고를 예방하는 일 등은 유목민들의 생활에 동화되는 일련의 활동이다. 태어난 지 5년이 경과해서야 아이의 머리를 잘라주며 유목 사회의 일원으로 영입되었음을 입증하고 아이에게 말 타기를 배워주는 의식을 치름으로써 환경에 적응할 수 있게 안내하는 풍습은 의미를 지닌다.
여행 중에 현지에서 만나는 이들과의 인연 중에는 강렬한 인상을 남겨 가슴에 들어와 추억하게 하는 이들이 있다. 저자가 만난 첼리스트 마리아는 조용하면서도 느림의 미학을 실현하며 언어에 대한 지대한 관심으로 다양한 세상과 만나는 일에 열성적이었다. 갈잔의 알타이 여행에는 알타이-투바를 위한 지원금과 갈잔 치낙 재단의 몽골 조림사업 기부금이 포함되어 있기에 경비가 비싼 편이지만 좋아하는 일을 위한 일에 열정적인 마리아는 적극적으로 나섰다. 세상 소식과 단절된 공간에서 날 가는 줄도 모른 채 자신이 추구하면 살던 일도 잊고 무위의 상태로 돌아가 알타이의 천연에 빠져들었던 시간은 그동안 쥐고 있었던 것들을 내려놓음으로써 시작되었다. 향나무 계곡 사이를 비상하는 맹금류를 보면서 자유를 만끽하였고 책 한 줄도 안 읽고 시간을 보내는데도 불안하지 않았으며 느리게 움직이며 야크 똥을 모았을 뿐이었던 여행은 현지인 누르하치가 저자에게 건넨 치즈 한 봉지에서 감동을 더한다.
오지 여행을 하다 보면 여행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영양 섭취가 부실한데다 체력은 고갈되어서인지 병을 앓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 역시 북인도 여행 중 몸살감기를 된통 앓으며 해뜨기를 간절히 기다리며 엄동설한을 견뎠던 기억이 떠오른다. 저자 역시 호흡 곤란으로 가슴에 통증을 느끼면서 힘든 시간을 보낼 때 일행이 권했던 동종 요법으로 통증을 완화하며 느린 호흡법으로 가쁜 숨을 달래야 했다. 양고기 스튜 대신에 맨밥에 소금을 뿌려 먹음으로써 기운을 돋우며 서서히 생체 리듬을 회복하여 갔다. 자연으로부터 받은 것 외에는 거의 갖지 않은 유목민들의 검소한 생활은 구멍 뚫린 옷을 입어도 괘념치 않은 의복 착용은 자연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수단일 뿐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오페라 보기를 즐기는 마리아는 무대 맨 앞 입석표를 구하기 위해 서너 시간 줄을 서서 기다려 자신이 관람하고 싶은 공연을 보면서 예술적 취향을 분명히 하였다. 마리아를 만나러 빈으로 간 저자는 알타이 여행을 추억하며 유테르에서 함께 머물렀던 시간으로 회귀하여 유목민처럼 거처를 옮기며 피폐해진 영혼에 쉼을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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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며칠 복잡한 일들로 인해 약간의 두통이 찾아왔다. 어떤 책을 읽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두통만 심해졌다. 그러다가 문득 이 책을 집어 들고 어느 부분을 펴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책에 빠져들었다. 소설이 아닌 여행기에 푹 빠져서 읽어보기는 이 책이 처음이다. 마치 내 눈 앞에 황량한 알타이의 벌판과 그 곳의 냄새, 그리고 바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 책을 읽는 순간만은 그 두통도 사라졌다. 개인적으로 청년시절에 우연히 몽고를 알게 된 후 그 곳을 방문하려고 몇 번 계획을 세웠었다. 그러나 그 때마다 무슨 일인지 그 계획이 무산되었다. 결국 지금까지 나는 몽고를 가 본 적이 없다. 다만 남양주 수동에 있는 몽골문화촌만 몇 번 방문했다. 그 곳에 가면 항상 몽고문화공연을 보게 된다. 여러 가지 기예 공연도 있지만, 가장 내 마음에 드는 것은 악기를 연주하며 몽골의 노래를 하는 공연이다. 그 노래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내가 마치 광활한 몽고 벌판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혹시나 내 조상이 몽고 사람이여서 내 속에 그런 DNA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같은 경험을 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내가 마치 광활한 몽고 벌판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 책은 다른 여행기와는 조금 다른 느낌의 책이었다. 보통 여행기는 그 나라의 유명 건축물이나 유적지 등을 방문하고,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작가 배수아가 몽골에서도 변방에 속하는 알타이 지방에서 갈잔 치낙이라는 투바 유목민과 함께 생활한 한 달 간의 기록이다. 몽골의 서쪽인 알타이 지방에서는 특별한 유적물도 없을 뿐더러 인간이 만든 문명화된 편의 시설도 없다. 단지 유르테라고 부르는 이동식 천막만이 있었고, 작가는 유럽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갈잔의 유르테에 머물렀다. 그러기에 이 여행기에는 특별한 건축물에 대한 감상이나, 커다란 사건에 대한 기록 등이 없다. 그냥 작가가 알타이 벌판에서 생활하고 만난 사람들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 뿐이다. 그런데 그 소소한 이야기가 마치 읽는 사람을 그 알타이 벌판으로 끌고 가는 듯한 힘이 있다. 그 곳에 서면 삶은 전설이었다. 나침반도 망원경도 없는 이 사람들은 어떻게 아는 것일까. 어느 방향이러시아이며 어느 방향이 중국인지, 어느 방향이 울란바토르이며 어느 방향이 카라코롬인지. 이 사람들은 어떻게 아는 것일까, 영혼들이 떠나간 길을. 내 말은 발걸음이 느렸다. 일행이 타고 있는 말 중에서 가장 느렸다. 승마에 겁을 먹은 내가 갈타이에게 가장 느린 말을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 사방을 돌아보니 어느 누구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얼음처럼 차가운 비안개의 물방울 속에서 나는 홀로 터벅터벅 가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내 말과 함께 지상에서 홀로 살아 있는 존재, 홀로 꿈틀거리며 하늘을 향해 움직이는 존재였다. 향나무 계곡으로 올라가는 길은 하늘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었으며 그곳의 산맥은 하늘이 내려앉은 길고 높은 등뼈였다. 길이 오르막으로 변할 때마다 늙고 지친 말은 비틀거렸고, 허덕거렸고, 강풍에 맞서기 위해서 안간힘을 썻으며, 문득문득 몸을 떨면서 비명 같은 외마디 울음을 내질렀다. 왜 말들은 이해할 수 없는 순간에 그런 소리를 지르는 것일까. 마치 그들이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영혼들을 마주치기라도 한 것처럼. 그래서 그 유령들에게 비명의 인사를 건네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는 휘몰아치는 회색빛 바람 속에서 홀로 무서워하며 생각했다. (P143-4) 알타이의 풍경 묘사와 함께 그 곳에서 작가가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소소한 이야기가 매우 정겹다. 특히 그 곳에서 만난 '아름다운 마리아'라고 부르는 오스트리아 여성 마리아와의 우정이 매우 재미있다. 마리아는 오페라를 좋아하고 여러 언어에 능통한 여성이지만, 알타이에서 뿌리를 내리고 싶어하는 여성이다. 실제로 갈잔의 소개로 유목인 총각과 선?을 보기도 한다. 그녀는 마테차를 즐겨 마시는데 작가와 함께 마테자를 마시며 우정을 키운다. 그녀와의 일화 중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를 끌었던 부분은 작가와 함께 투바족의 미인대회에 참가하려다가 무산된 일이다. 갈잔의 농담으로 축제 때 미인대회에 나가라는 말을 사실로 알아듣고, 마리아와 작가는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 대회를 준비한다. 두 여성 모두 페미니즘 성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대회를 기대했던 것은 알타이에 대한 구애였을 것이다. 나중에 그것이 갈잔의 농담이었다는 것을 알고 실망했던 것은 아마 짝사랑의 대상에게 거절 당한 아픔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여행기는 매우 진솔하다. 작가의 무용담이나 무언가를 향한 거창한 묘사가 없다. 매 순간 진솔하고, 진지하게 그 시간을 음미하게 한다. 책 속에 알타이의 황량한 벌판이 펼쳐지는 경험을 하게 하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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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여행은 한 자락으로 기억될 때가 있다. 친구와의 남원 여행이 그랬다. 남들처럼 코스를 밟아 여행했던 전주를 뒤로하고, 남원으로 넘어온 우리는 남원에서의 하루를 종일 자전거를 타며 보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빌린 자전거를 끌고, 오르막길을 한참 오른 끝에 방문했던 남원랜드. 영업시간은 지나 있었고, 아쉬운 마음에 남원랜드와 서로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우리는 10분 넘게 올라간 그 길을 1분 만에 내려왔다. 여행의 한 자락은 그 1분 사이에 찾아왔다. 넓게 펼쳐진 남원의 풍경 위로 저물어가는 노을이 내 눈에 가득 들어차는데, 우리는 이 노을을 보려고 여길 이렇게 올라왔나보다 했다. 그 풍경은 그렇게 지난 여행의 ‘전부’가 되었다.
이렇듯 한 자락은 어떤 풍경이 되는가 하면, 한 사람의 모습이 되기도 한다. 알타이를 여행한 배수아에게는 한스가 있었다.
나는 한스가 그렇게 걸어 식탁에 와서 앉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아침마다 반드시 홍차를 마셨으나 그날은 식탁 어디에도 홍차 봉지가 없었다. "한스, 이제는 차가 하나도 없어" 하고 누군가가 말해주자 한스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에서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평원으로 걸어가서 허리를 굽히고는 그가 조각을 위해서 돌을 고를 때와 마찬가지로 아주 신중한 태도로 몇 송이의 노란 들꽃을 꺾었다. 그리고 그 꽃송이를 식탁으로 가져와 뜨거운 물이 담긴 그릇에 띄우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의 차였다. 세상과 반쯤 격리된 듯한 한스의 몸짓과 태도에는 내 마음을 건드리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시처럼 느껴졌다. 나는 아직도 그날 아침 그의 말없는, 변함없이 주변과 무관하던 표정과 몸짓을 잊을 수가 없다. (p.186)
이 구절을 읽으면서, 나는 그녀가 도저히 저항하지 못할 운명의 힘에 이끌려 몽골로 떠나 약 한 달 간 머물렀다는 서북부 국경 지대인 알타이를 떠올렸다. 사진으로 접한 알타이의 풍경보다, 뜨거운 물이 담긴 그릇에 노란 들꽃을 띄워 그의 차를 마시는 한스가 눈에 선했다. 내가 그곳 알타이에 있었고, 그날 차를 마시는 한스를 보았어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싶었다.
유르테에 불을 피울 야크똥을 모으고, 3주 내내 양고기를 주식으로 먹고 소화불량에 시달리고, 많은 경우 자신의 감정과 언어 안에서 오직 혼자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플 때조차도 가장 많은 미소를 지으면서 유목민으로 거듭난 그녀. 책의 시작부터 그녀의 책이었으나, 저 구절을 읽으면서 이 책은 온전한 그녀의 책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여기서는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늘이 도대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알 도리가 없었고, 사실상 알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또다른 사실도 깨달았다. 이곳에서 나는 내가 누구인지조차 거의 절반쯤은 정말로 잊어버리고 있었음을, 그건 예상치 못하게 아주 행복한 기분이었다. (p.138)
검은 머리를 길게 기르고 치렁치렁한 양털 스커트를 입고, 손에는 양치기 막대를 들고 걸어다녔을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그녀가 아니었으면, 알타이와 울란바토르 그 어디쯤의 풍경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노란 들꽃을 뜨거운 물에 띄워 마시던 한스가 하나의 시였다면, 유목민으로 산 한 달간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거의 절반쯤은 정말로 잊어버리고 있었으나 예상치 못하게 아주 행복한 기분이었다 말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내게 하나의 소설이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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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은 여행기라기보다, 오히려 일종의 체험담에 훨씬 더 가까울 책이다. 한국인이 몽골 지역에서 보고 듣고 겪은 일들을 담은 에세이지만, 작가는 구경꾼이라기보다 그 곳에 살던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지낸 이야기를 이 책의 소재로 삼았다.
초원 여행기를 기대하고 이 책을 읽는다면 좀 당혹스러울지도 모른다. 몽골의 대초원에는 상반되는 두 가지 이미지를 떠올릴 때가 많다. 문명의 이기라고는 없고 고정된 집조차 없이 고달픈 떠돌이 생활이나 다름없다는 이미지, 혹은 번잡한 문명 세계에서 벗어난 대자연의 세계라는 이미지. 하지만 이 책에는 그 두 가지의 이미지 어느 쪽에도 딱히 들어맞지 않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이 책에서 그려낸 몽골 유목 사회는 일명 문명사회의 장점이 전혀 없는 오지도 아니고, 문명사회의 단점이 전혀 없는 이상향도 아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와 똑같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이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고 그 환경을 최대로 활용할 궁리를 하면서, 면면하면서도 생생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구경꾼같은 여행객이 아니라 주민들과 같이 지내면서 보고 들은 일들을 풀어낸 에세이라서, 지나가는 여행객은 알 수 없는 이야기가 많아서 정말 흥미로웠다. 그 중에서도 대초원에서 살아온 몽골 지역만의 정서가 물씬 풍겨나는 대목은 단연 압권이다. 같은 상황에서도 평범한 한국인이 으레 생각할 법한 것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하는데, 언행 한두 가지를 묘사하는 것만으로, 대초원이 사람들이 어떤 사고방식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고, 그곳이 어떤 곳이기에 그런 사고방식이 당연하게 여겨지게 되었는지를, 백 마디 말보다 훨씬 더 뚜렷하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몽골 대초원 지역의 독특한 지역색을 포착한 대목이 여럿 있는데, 구경꾼 입장에서는 알 수 없으며, 같이 부대끼며 지낸 사람만이 포착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아서, 정말 흥미롭고 이채로웠다.
작가 배수아는 환상이나 폄하 같은 고정관념 없이, 보고 듣고 겪은 그대로의 몽골 대초원 이야기를 깔끔하고 생생한 에세이로 써냈다. 에세이 자체로 읽기에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정도이며, 몽골 대초원에 대해 흔히 접할 수 없는 생생한 문화 이야기 등도 정말 흥미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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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본다"시리즈의 여섯 번째 출간집,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은 왜 굳이 알타이에서 걸어야 했는가에 대해 책 전체에 걸쳐 설명하고 있다. 직접 하는 여행보다 여행기를 읽는 편을 택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는 책이다. 책 전체에 걸쳐 작가 스스로 강조해 놓은 구절들이 별도 형광펜 처리가 되어 있는데, 이 부분이 꼭 필요했는지는 모르겠다. 어떤 부분을 강조해서 받아들여야 하는지 여부는 독자 개개인의 몫으로 남겨두어도 좋았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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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알타이 지방의 투바족 지역을 다녀온 여행기이다. 독일인 그룹과 생활을 같이 하는 여행인데, 현지인 그리고 자연과 접할 수 있는 기존 여행보다는 깊이 있는 여행이다.
몽골이 소련하고 친했을 때, 갈잔 치낙이라는 사람이 동독에 유학생으로 선발된다. 선발 과정이 잠깐 소개되는데, 유력 가문의 자제를 이기고 선발된다. 공산주의 몽골에서 선발 과정이 공정한 부분도 있나 보다 생각한다. 어쨌든 이 분이 유학을 마치고, 알타이 투바에 대한 내용으로 독일어로 소설을 내고 알려지게 된다. 그리고 여름철 소수 인원으로 여행객을 맞이하는데, 이 일행에 작가가 합류하게 된다.
몽골의 울란바트로와 울기(욀기에)를 거쳐 알타이 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여기에서 계속 여행 동료들과 함께 유르트 생활을 하게 된다. (유르트와 게르의 차이를 검색해 보았는데, 갈은 것이였다. 게르는 몽골, 유르트는 중앙아시아 용어이다.) 참으로 고생 많은 여행이다. 한 숙소에서 여러명과 같이 잠자리를 하는 것을 근래에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또 샤워 시설 없는 숙소는 더욱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한 여름에도 추우니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는 여행이다. 사진을 보면 나무가 거의 없다. 고산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여행은 고생인가!
이 여행에서 내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말을 타고 여행을 가는 것이다. 매일 말을 타고 어딘론가 구경을 간다는 것은 참 멋있는 것 같다. 알타이 지역이 전기가 안 들어 올 정도의 자연이어서 고독을 느낄 수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현편으로 생존을 해야 하니, 몸이 피곤하면 생각할 시간도 줄어들 것 같기는 하다.
작가는 단짝인 마리아를 만나게 되고, 이후 마리아에 대한 에피소드가 많다. 젊은 빈의 아가씨이다. 한편으로 괴짜인 한스라는 분이 나타나는데, 꼰대 괴짜인 것 같다. 하지만 가장 이질적인 존재는 동양인인 작가일 것이다. 작가가 준비 없이 여행을 떠나 고생하는 이야기가 많다. 그리고 음식 준비를 하는 에피소드는 참 눈물 난다. 역시 요리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배수아 작가가 비건인지 모르겠지만 식사 메뉴에서 고통이 많았을 것이다.
중앙아시아의 특성 상 다른 종족들이 소개된다. 투바 족은 소수 민족이고, 대부분 90%가 카자흐 족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카자흐족과 투바족에 비교가 있다. 물론 이 부분에서는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몽골족에 비하면 카자흐족도 소수 민족이다.
알타이 지역이 엄청나게 큰데, 이 책에서는 몽골 서쪽의 투바족 지역을 이야기한다. 투바족의 삶이 어떤 지는 이 책으로 알 수는 없다. 단 울기 공항에서 다시 서쪽으로 버스로 다섯 시간쯤 가면 호수와 초원이 존재한다. 유르트를 설치하고, 아크 똥을 모아 불을 지피며, 관망하는 것이다. 그들이 찾아오면 마음에 들어 하는 물건을 주고, 보상으로 치즈를 얻으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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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쟁이들의 공통적인 신념을 갖고 있는 배수아 작가는 어느날 한 권의 책 때문에 갑자기 몽골 여행을 결정하게 된다. 그것은 한 권의 소설로, 몽골 부족 추장이 독일어로 직접 쓴 <귀향>이라는 책이었다. 그의 이름은 갈잔 치낙으로 몽골 서북부에 살고 있었다. 우리는 여행을 떠날 때 어떤 걸 준비할까? 인터넷으로 항공권과 호텔을 예약하고, 그 나라와 관련된 여행 책을 한 권 사들고 인터넷 검색을 한다. 하지만 그녀가 여행하는 곳은 '몽골' 이곳은 여행 책자도 거의 없는 미지의 세계다. 걔다가 그녀의 여행 목표는 '몽골'이 아니라 '갈잔 치낙'과의 만남이었다. 그녀는 꽤 독특한 '패키지'를 예약한다. 그것은 갈잔 치낙이 직접 가이드를 해주는 패키지로, 일반적인 여행과 동떨어진 독특한 여행이었다. 그 여행에 호텔은 없다. 관광 버스도 없다. 여행자들은 '유르테'라는 몽골 전통의 천막집에서 거주하게 된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으며, 난로를 피우기 위해 야크똥을 직접 모아야 한다. 그리고 초원을 이동할 때는 '말'을 타야 한다. 마지막으로 당연히, 수세식 화장실도 없다. 그녀는 씩씩하게 몽골의 알타이로 날아가, 그곳을 최초로 방문한 한국인이 되어 갈잔 치낙을 만난다. 아침이 되면 광활한 스텝 초원을 바라보며 딱딱하게 굳은 빵에 야크 버터를 발라 먹고 뜨거운 밀크티를 마신다. 이 책은 크게 두 등장인물이 나온다. 먼저, 여행의 목적인 갈잔 치낙. 그는 젊은 시절 동독에서 유학해 독일어를 할 줄 알았다. 몽골에서 사회주의가 몰락하던 시기인 1995년 무렵, 그는 2천 명의 민족을 이끌고 시베리아에서 그들의 고향 땅인 투바 알타이로 귀향했다. 두 번째 인물은 마리아. 그녀는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저자와 여행지에서 만나 친구가 된다. 마리아는 몽골을 너무 사랑해서 몽골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할 정도였다. "마리아는 인생의 어떤 면에 있어서는 매우 근본적이었다. 사랑의 대상이 가진 모든 면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했고, 좋아하는 일을 향해 나갈 때는 다른 방향을 전혀 돌아보지 않는 고요한 과격함이 있었다." 사물의 비관적인 면을 먼저 보며 그것을 걱정하는 '마리아'와, 만사를 쉽게, 나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지만 막상 현실이 닥치면 항상 실망하고 분개하는 '나'는 알타이의 푸른 초원에서 함께 친구가 된다. 여행 에세이를 좋아해서 자주 읽는 편인데 이번 에세이는 뭐랄까... 다른 에세이에서 보기 힘든 감성이 느껴졌다. 대부분의 여행 에세이는 깔끔한 감성을 담아낸다. 우리가 선호하는 여행지 -유럽, 미국, 일본 같은 질서 정연하고 산뜻한 나라들- 사람에 대한 공기 대신 청결한 공기가 느껴지는 그런 곳들에 대한 여행기가 대부분이다. 이 에세이는 조금 달랐다. 일단 관광지에 대한 최소한의 소개도 없다. 사진도 많지 않으며, 대부분 흑백이다. 그녀는 그 곳에서 특별하게 어딘가를 돌아다니진 않는다. 일어나서 밥을 먹고, 말을 타며 산책하고, 이웃의 초대를 받고, 밤이 되면 촛불과 난로를 켜고 잠든다. 어디론가 여행하기 위해 떠났지만 그 곳에 가만히 머물러 있다 조용히 돌아오는 것 같은 느낌. 도시의 일상 생활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고요한 하루하루.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유목민족의 생활. 그런 이야기들이 배수아 작가의 깔끔한 문체와 함께 묘하게 기록되어 있다. 아마 내가 평생 떠나지 않을 것 같은 여행타입이다. 왠만한 좋은 호텔 잠자리에서도 낯설다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잠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아. 생각해보니 어짜피 못자는 건 마찬가지일 테니 가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기도 하다. 화장실은 좀 곤란하겠지만.
어쨌든 평범하지 않은 몽골 여행기. 배수아 작가의 소설이나 번역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녀와 같이 여행 떠나는 기분으로 읽어보기 좋은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