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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적인 가치들은 감성적인 '질'들 내부에 존재한다. 그러나 과학은 감성적인 것을 거부하며 오직 '양'만을 추구한다. 브렁슈비크는 "인식한다는 것, 그것은 측정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예술은 구체적이고 과학은 추상적이다. 이런 이유로 해서 예술가가 주관적인 것을 추구하는 데 비해 과학자는 객관적인 것을 추구한다. 이것은 환상과 실재의 차이이기도 하지만 내면적인 풍요로움과 차가운 비인격성의 차이이기도 하다. 베를렌느는 "예술이란 자기 자신일지니."라 했고 베르나르는 이미 "예술은 나이고 과학은 우리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과학자가 대상들 사이에 성립하는 관계를 추출해 내기 위해 그의 인식에서 모든 주관성을 제거해 버리려고 하는 데에 반해 예술가는 자연을 "자연으로서가 아니라 예술가 자신으로서" 본다. 예술가들은 과학자가 추구하는 지각에 대한 이런 류의 '정신분석(주관적인 것을 찾아내서 제거하는 것)'을 거부한다. 과학자 자신은 바로 자기가 제거하려고 하는 이러한 꿈과 욕구와 열정 속에서 살고 있지 않다는 말인가? 지리학에서 프로방스지방의 지리적 특성을 연구할 때, 토양을 연구하는 지리학자는 과학적인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 토양에 대한 두 지리학자의 서로 다른 의견에 부딪칠 수 있다. 과학적 활동은 이런 경우의 모순을 해결하고 객관적 진리에 입각해 경쟁이론들의 불일치를 해소시킬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3세기 반 전에 프란시스 베이컨은 과학적 학문과 기계적 발명의 발전을, 인간을 현재 상태로부터 구제해 줄 가장 확실한 수단으로 찬양하였다. 그는 종교와 철학과 예술에 등을 돌리고, 인류의 진보를 위한 모든 소망을 기계적 발명의 발전에다 못박았다. 베이컨이나, 과학과 기술 방면의 열성스러운 추종자들, 즉 뉴턴, 패러데이(M. Faraday), 워트(J. Watt), 그리고 휘트니(E. Whitney) 등과 그 아류들 중, 우리들이 애써 얻은 물질적 세계에 대한 온갖 통제 능력들이 20세기에 이르러서는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게 된다는 사실을 예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나간 두 세기 동안 물질적인 생활 수단의 광대한 보급이 전세계적인 규모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로 인해 내적 생활의 개척, 또는 예술 제작이나 향수(享受)에 유효한 여가가 광범하게 보급되기는커녕, 우리는 우리 자신이 기계화의 과정에 이전보다 더욱 깊이 빠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