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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결산)표류 소설의 형식을 빌어 인류애에 대해 발언하다
"(2015 결산)표류 소설의 형식을 빌어 인류애에 대해 발언하다" 내용보기
아이들을 실은 배가 거센 풍랑에 그만 난파당하고 만다. 간신히 구명보트에 오른 아이들은 천신만고 끝에 무인도에 닿는다. 그곳은 거의 파라다이스! 새로운 환경에 낯설어하지 않고 특유의 적응력을 발휘하며 신세계를 열어나간다. 그렇게 현지 생활에 익숙해질 즈음 육지와 소통이 이루어지고 마침내 구조되어 부모들 품으로 돌아온다. [파리 대왕] 및 [15소년 표류기] 등 어린이 표류
"(2015 결산)표류 소설의 형식을 빌어 인류애에 대해 발언하다" 내용보기

아이들을 실은 배가 거센 풍랑에 그만 난파당하고 만다. 간신히 구명보트에 오른 아이들은 천신만고 끝에 무인도에 닿는다. 그곳은 거의 파라다이스! 새로운 환경에 낯설어하지 않고 특유의 적응력을 발휘하며 신세계를 열어나간다. 그렇게 현지 생활에 익숙해질 즈음 육지와 소통이 이루어지고 마침내 구조되어 부모들 품으로 돌아온다. [파리 대왕] 및 [15소년 표류기] 등 어린이 표류 소설의 정형화된 시퀀스다. [인수푸, 사라진 아이들의 섬]도 일견 유사한 결을 보이고 있다. 특히 [15소년 표류기]에 바치는 오마주라 할 정도로 장면이나 분위기에 쥘 베른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테라니엔으로 아이들을 싣고 갈 네 척의 배 가운데 하나가 “쥘 베른호”이고, 사고 발생 직접적 계기가 배를 고정하던 밧줄이 풀려 표류하게 되는 것으로 설정하는 등 아이디어를 상당 부분 차용하고 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소재나 이야기를 푸는 방식은 기존 표류 소설의 루틴을 따르고 있지만 메시지가 사뭇 다르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무인도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통해 추악한 인간 군상과 욕망으로 이글거리는 사회의 단면을 리얼하게 짚어내는 우화적 접근이 그간의 정형화된 테마였다면 인수푸는 무인도보다 거기 고립된 아이들을 향한 외부의 시선에 더 주목하고 있다. 2차 대전 중 실화를 바탕으로 곤경에 처한 아이들을 어떻게든 살리고자 염원하는 숭고한 인류애와 친구를 위해 국경을 초월하여 우정의 손길을 내미는 미래 세대의 공감과 연대에 대해 발언하고 있는 것이다. 표류 소설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하겠다.

 

이야기는 슈테판의 편지에서 비롯된다. 전쟁을 겪으며 공습에 시달리던 우르비엔 나라 아이의 고달픈 하소연은 인간 본연의 정서와 행복을 건드리고 있다. 테라니엔 대통령에게 쓴 편지의 제목이 “사안 : 잠이 필요해요!”. 아이들이 안락하게 수면을 취할 수 있는 생존권 보장과 행복추구권에 핀 조명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는 두 축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하나는 슈테판이 정착하게 된 인수푸섬에서의 아이들 생존기이고 다른 한 축은 미국, 아니 테라니엔에서 오지 않는 슈테판을 기다리며 실의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미하엘의 분투기다. 슈테판 일행의 인수푸에서의 삶은 예상외의 활기로 충만하다. 절절한 눈물은커녕 신기하고 보람찬 날들의 연속이어서 누구든 끼어들고들 정도였다. 아이들의 생존 본능과 낯선 환경에 대한 적응력은 실로 눈부시다. 체계적인 사회집단을 뺨칠 정도로 모든 일이 합리적으로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물론 양념으로 약간의 실랑이도 벌어져 흥미를 더하고 있지만. 백지 상태에서 편견 없이 빨아들이는 흡수력과 낡은 틀에 얽매이지 않는 창의력을 발휘하며 아이들은 잠재능력을 무궁무진 펼쳐나갔다.

 

녹색 목도리를 두른 슈테판을 손꼽아 기다리던 미하엘은 사고 소식을 접하고 잠시 낙담한다. 하지만 곧 아이다운 감수성을 회복하여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여리고 작은 신호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한다. 미하엘은 그예 추락한 비행기에서 발신한 음성을 듣고 만다. 친구들의 생존을 확신한 후 펼친 행동은 거의 역대급! 추리소설 뺨치는 기지를 발휘하여 전략을 세우고 재능 있는 동지를 포섭하였으며 주도면밀하게 이를 실행에 옮긴다. 미하엘이 이렇게 창의력을 발휘하고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늘 사랑과 관용으로 품어주고 기다려주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였다. 특히 할아버지는 아이들의 생명에 대한 인상적인 견해로 미하엘을 울컥하게 만든다.

 

“물에 빠진 아이 한 명은 전쟁터에서 죽은 백 명의 군인들만큼 끔찍하지. 그리고 전쟁터에서 죽은 한 명의 군인은 익사한 백 명의 아이들만큼이나 끔찍하고.(...) 하지만 1은 100보다 작잖아요.(...) 그게 사과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사람의 목숨이라면?” (260쪽)

 

민주주의, 아니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이보다 더 정확한 인식과 바람직한 태도가 더는 없을 것이다. 그런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내면화하고 있던 미하엘에게 열 한 명 아이들 목숨의 무게는 얼마나 크게 다가왔을까? 그러기에 형식적인 비행 규칙 따위는 대수롭지 않았을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불법 비행이었지만 동기의 순수성을 모두가 알았기에 돌아오는 미하엘을 따뜻하게 맞아준다.

 

미하엘의 용기와 도전은 국경을 넘어 친구에게 가 닿고 세대를 넘어 미래를 향하고 있다. 이런 아이의 순수한 감성이 세상을 구하고 인류를 살릴 수 있는 열쇠가 아닐까? 그래서 이 책, [인수푸, 사라진 아이들의 섬]은 무인도 표류 소설의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실은 인류애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하겠다. 국경을 넘어, 세대를 초월하여 공감하고 연대하자고 권하고 있다.

a*****7 2015.12.1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