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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이 정청래 - 정청래 12.3 비상계엄 이후 혼란스럽고 답답한 시국에 거침없는 발언으로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시원하게 해주는 정청래 의원의 책을 읽어 보았다. 거침없는 발언 때문에 '당대포'라는 별명이 붙은 정청래 의원은 별생각 없이 던진 발언으로 당직 자격정지 1년의 징계를 받기도 했지만 조중동 보수언론이나 종편을 향해서는 타협하지 않고 물러섬 없이 치열하게 대포가 되어 할 말을 하며 당당하게 싸운다. 대학생 정청래는 1988년 조통특위장으로 활동하다 첫 징역을 살다가 나왔고 1989년 10월 13일 농수산물 수입 개방 철회, 노태우의 매국적 방미 결사반대, 유신독재 배후 조종 그래그의 귀국 촉구, 국가보안법 철폐를 외치며 미국대사관저 점거 농성으로 목포 교도소 1.04평의 독방에서 징역을 살고 있을 때 1991년 4월 강경대 열사가 전경의 쇠 파이프에 맞고 사망을 하고 연이은 대학생들의 분신자살 사건을 보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왜 지금 이 순간에 이 좁은 공간에 존재하고 있는가. 인간이란 미미한 존재다. 한 번 왔다가는 인생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의 꿈은 무엇인가. 7,000만 한민족 공동의 꿈. 그것은 분단의 극복과 통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 우리 겨레의 공동의 꿈을 내 인생의 목표로 삼는다면 그것은 자연 속에서 왔다가 자연 속으로 돌아간 멋진 인생이지 않겠는가. '분단의 극복과 통일의 제단에 내 인생을 저당 잡히는 것'이 그의 존재의 이유가 되었다. 법적 제도권의 틀 안에서 할 수 있는 지름길은 정치였다. 그는 입법, 행정, 사법의 권력에서 입법권력에 참여하는 국회의원이 되기로 결심했다. 재산이 없었던 청년 정청래는 당시 운동권 출신들의 밥벌이로는 제격인 학원 강사를 시작했다. 마포에 학원을 창립하고 교육사업을 하면서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북한통일정책학과를 전공해 정치학 석사를 받았다. 학원사업을 10년하고 2004년 만 38세 정청래는 제17대 국회의원에 도전했다. '노사모'에 가입하여 활동을 시작했고 열린우리당으로 입당하여 당당하게 당선되었다. 그리고 국회의원 정청래는 다짐을 했다. '저는 국회의원이 되면서 국회의원 같은 국회의원, 국회의원 같지 않은 국회의원이 되자고 마음속 다짐을 했습니다. 옳고 그름 사이에서 결코 좌고우면하지 말고 줄타기와 물 타기를 하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국회의원 같은 국회의원은 국회의원 고유한 업무 영역인 입법 활동, 행정부 감시활동(국정감사 등), 소외된 계층과 지역 현안을 챙기는 일, 그리고 상임위와 관계없는 야당으로서의 정치활동을 충실히 하자고 다짐했습니다. 국회의원 같지 않은 국회의원은 몸에 힘주며 거드름을 피우고 약자에게 군림합니다. 저는 허위의식과 허장성세를 버리고 수평적 리더십으로 국민을 하늘같이 받드는 종복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자는 다짐이었습니다.' - 217 제17대 국회의원으로 문화관광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언론개혁과 문화콘텐츠산업 발전에 앞장서 왔다. 제19대 국회의원으로 국정원 댓글 사건, 민간인 사이버 사찰 문제를 파헤쳤다. 제19대 국회 시작 후 2015년까지 정청래 의원은 12관왕 수상을 기록했다. 정청래 의원은 '강성'이다. 국민의 눈으로 대신 싸우고, 할 말은 속 시원하게 한다. 매번 욕먹고 매 맞으면서도 정의를 위해 거침없고 화끈하게 보수언론과 맞선다. 국민을 대신해서 싸워주는 사람, 할 말을 거침없이 속 시원하게 하는 사람, 불의에 맞서는 정의로운 사람 정청래는 화끈하고 순발력 있고 군더더기가 없고 명료하다. 하지만 알고 보면 눈물도 많고, 수줍음도 많고, 정도 많고, 웃음도 많은 인간적인 따뜻한 성품을 지닌 남자다. 요즘 같은 어지러운 시국에 답답한 속을 시원시원한 '대포'말로 뻥 뚫어주시는 분 '정청래 의원'의 꾸밈없고 진솔한 자신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