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뭐라고 해야할까. 처음 이책을 읽었을때의 느낌을...세상이 이렇게 되어가면 안되는데...하던 막연한 생각이, 구체적으로 왜 어떻게 잘못되어가고 있는지 글로서 확인할때의 느낌말이다. 저자는 라다크에서 오래 살면서 그곳의 척박한 자연에 맞추어 나름대로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문화가 소위 선진산업사회라는 것의 개발앞에서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를 주의깊게 관찰했다. 무겁지만 예술적 가치가 있는 공예품인 물동이가 가벼운 싸구려 플라스틱 양동이로 바뀌고, 서로 보살피며 어려운데서도 행복을 찾을 줄 알았던 공동체가 여자들과 어린애들이 소외되고, 가진자와 못가진자로 구분되어가는 모습. 야크털로 만든 털신발이 싸구려 운동화로 바뀌고 토착지에서 자라나는 곡물이 먼곳에서 지원금을 받으며 수입되는 작물앞에서 경제적 경쟁력을 잃는 모습. 우리가 광신하듯 얘기하는 개발, 발전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분별한 것인지, 얼마나 서구사회에 맞추어진 것인지, 그 결과 개발과 발전이라는 것이 얼마나 삶의 질을 낯추어 버렸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면서 얘기하고 있다. 이 책은 단지 학자가 책상앞에서 개발과 발전을 비판한 이론서가 아니다. 작가가 수십년 동안 라다크에서 살면서 비록 겨울이면 춥고, 밤이면 어둡더라도 정신적으로 풍요로웠던 삶이 지역적 특성과 전통을 무시한 서구사회에 맞춰진 소위 개발앞에서 어떻게 변해갔는지를 사실적으로 얘기하고 있는 책이다. 또한 단지 비판뿐만이 아니라 개발이라는 것이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가 하는 대응책까지도 제시하고 있다. 미국(혹은 선진국)에서는 이렇게 한다더라... 이 한마디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고, 물질적 가치를 맹신하고, 세계화를 부르짖으며 무분별하게 그들의 뒤를 그대로 밟고 있는 이땅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제발 사람들에게 이 책 한번 읽어보라고 통사정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라다크 사람들이 너무나 발전해 있는 서구사람들은 어떻게 사냐고 묻자, 서구에서 정말 잘 사는 사람들은 라다크 사람들처럼 산다고, 자연재료로 지은 집에서, 인공재료를 넣지 않은 빵을 먹고, 천연직물로만 만들어진 옷을 입고 산다는 대답앞에서 의아해 하는 부분은 인상적이다. 우리는 선진국의 모형을 쫓아 구조조정을 했다. 기업들이 회생하는 것 같았다. 많은 부작용이 나오긴 했지만 뭐, 그것이야 발전의 과정일 뿐이니까. 그치만 서구에서는 구조조정의 부작용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그것이 정말 올바른 경제회생의 길인지에 대한 회의가 나오고 있다. 우리는 뭐 어쨌든 따라간다. 그 잘못된 길에 대한 올바른 대처방법이란 것이 나오면 그때가서 또 따라가면 되니까. 정말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정말 우리에게 맞는, 우리에게 좋은 삶의 방법이란 어떤것일까... 너무 늦기전에 생각해봐야 되지 않을까? 참, 이책은 절판되고 개정판이 나왔다. 그치만 난 여전히 요새 나오는 매끈매끈한 종이보다는 조금은 거칠거칠하고 시간이 지나면 누렇게 변하는 종이로 만들어진 이책에서 정감을 느낀다. |
| 저자가 살았던 라다크는 매우 정겹게 느껴지는 시골같았다. 진흙으로 벽돌을 만들어 집을 짓고 직접 옷감을 짜서 옷을 만들어내는 등 자급자족의 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여유는 우리들이 가지는 휴식 시간의 천 배보다 더 값진 여유이리라. 현대인들의 스트레스나 각종 문명에 의한 병들은 라다크인에게는 희귀한 병 같았다. 그러나 급속도로 변해가는 라다크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우리 나라와 같은 예전의 나약함이었다.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자,예전에 우리 나라 아이들이 미군들에게 손벌렸던 것처럼 라다크의 아이들도 관광객들에게 손벌리고 다녔다.젊은이들은 서구 문화를 매우 빠르게 받아들여서 청바지에 콜라,햄버거와 같은 서구인의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아기에게 분유를 먹이는 그들은 예전에 이 같은 사실에 놀라워한 것을 까맣게 잊고 서는 서구인들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라다크인들은 이제 오래된 기초를 무너뜨릴 것이 아니라 그 기초 위에다가 건설을 할 필요가 있음을 밝히고 있는 저자는 라다크인이 영어로 대답할 것이 아니라 자랑스레 라다크어로 말하며 주체성을 잃지말라고 한다.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보인 것은 태양에너지의 사용이었다.누군가가 "문을 열자마자 열은 새어나가 버릴 거예요."라고 말했을 때 과연 태양에너지가 라다크인들에게 도움이 될지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그러나 태양빛을 일년에 300일 정도를 받을 수 있는 라다크에서는 태양에너지 말고 또 다른 유용한 것들이 그들에게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 아닐까? 우리도 라다크의 가능성과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 자신을 반성해 봐야 하지 않을까? |
| 갱지로 된 푸석푸석한 느낌의 책,, 읽기도 전에 이 책이 주는 생각의 핵심에 벌써부터 다가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라다크,, 인도여행을 꿈꾸고 관련서적을 찾던 중 알게된 티벳이라는 곳, 그리고 라다크,,, 야크라는 야생동물을 키우고,, 바람과 함께 절재된 생활을 하는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 어쩌면 나는 글쓴이의 오래된 미래,,, 라는 제목에서부터 홀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하나하나 풍족하지는 않지만 더불어 사는 최소한의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풍요속의 빈곤이라고 했던가,, 물질의 풍부함이 결코 나의 행복과 편안함과 연결되지 않는 허전함이 가득한 삶에서 나의 외로움을 채워주기 위한 것은 서로간의 맘이라는 단순함을 찾게 해준 글.... 지은이가 보았다는 그 순수한 눈빛을 나 또한 느끼고 닮고 싶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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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우연한 기회가 찾은 이 책에 대해서 내가 느끼는 감정은 특별하다고 해야 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사람사이의 인연이외에도 사물과 사람과의 어떤 인연도 믿는다. 그만큼 나는 오래된 미래에서 느끼고 공감했던 점이 많았던 것이다. 누군가 근래에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주저없이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오래된 미래를 추천할 것이다.
저자는 6개국 언어를 구사할 수있는 언어학자로 라다크를 방문하였고, 단기체류를 계획했지만 라다크 사람들의 삶의 자세와 방식에 매료되어 그후 16년간 이곳에 머물렀다. 그러한 과정에서 저자가 써내려가는 본서는 기타 외적인 부분만을 치중하여 보여주는 여타의 여행기와는 전혀 다른 감동을 준다.
저자는 1975년 즉, 인도정부가 라다크를 개방하고 개발을 시행하려고 했을 때 들어온 얼마 안되는 소수의 외국인이었고, 그래서 라다크의 전통적 사회와 서구적 개발이라는 침입에 의하여 전통적 사회가 변질되는 모습을 긴 시간에 걸쳐서 관찰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발전이라든지 진보라든지 하는 서구적인 개념에 있어서 얼마나 오도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1975년 무렵의 라다크는 척박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매우 정교하게 그리고 자연친화적으로 거의 완벽한 자급자족 경제체제를 만들었다. 그들은 이러한 척박한 환경을 전통적 공동체의 테두리에서 그리고 티벳불교의 정신적 기반하에서 평화롭게 그리고 슬기롭게 대처해왔다. 그들은 행복했으며 친절했고, 너그러웠으며 순박했다. 저자는 라다크의 초기체류기간 이러한 라다크 사람들의 순박한 미소와 긍정적 삶의 자세, 그리고 정신적으로 매우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자신이 속해있는 서구사회에 대해서 뒤돌아 보게 된다.
그리고 개발과 진보라는 포장으로 시작된 현대적 문물의 유입은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러가지 문제들을 양산하게 되었다 즉, 전통적인 문화는 어느덧 세계화라는 물결 속에서 단일화된 문화에 파묻혀가기 시작했고, 오염이 시작되었으며 삶의 질은 더욱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동체간 사람들의 관계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바라보는 저자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애통했을까 생각된다.
물론 저자는 개발과 진보라는 미명하에 파괴되어가는 이전의 사회체제를 어떠한 파라다이스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저자가 주목한 것은 정도의 차이이며, 그것은 무엇보다도 인간과 인간간의 관계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 전통적 사회에서는 비교적 시간은 느리게 흘러가고 사람들은 여유롭지만, 서구적 가치관에 매몰된 현대사회에서는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사람들은 여유롭지 못하다. 저자는 서구사회가 해왔던 오류를 그대로 답습할 필요는 없으며, 건전한 전통문화의 기초위에서 조화로운 발전을 추구할 수 있는 대안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저자 자신이 그러한 사회적 운동을 전개하고있다.
이러한 과정을 한국도 물론 거쳤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일본에 빼앗겼고, 그래서 우리의 전통적 사회와 가치관은 빠른 속도로 파괴되었고 심하게 왜곡되었다고 믿는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우리스스로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가.
세계화의 물결을 받아들여야 된다고 한다. 이제 우리에게는 선택은 제한적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세계화에 참여하지 않으면 무엇인가 큰일이 생길 것같다. 이미 나는 우리 스스로 복구할 수 없는 심한 좌절과 파괴를 경험했다고 본다. 그러나 세계가 서구인들이 말하는 발전과 진보라는 미명하에서 단일화되고 메마른 사회로 변하는것에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저자가 말했던 것 처럼 아직 시간은 늦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회복할 기회가 더디지만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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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조상들, 아니 멀리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들까지만해도 사람들은 참으로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고 순응하며 살아왔다. 자연계의 가장 기본이 되는 물질인 물이 항상 순환하며, 인간 또한 자연의 순환 체계 속의 한 부분인 것을 이미 깨닫고, 자연계 내의 다른 존재에 피해를 끼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에 만족하고 욕심 부리지 않으며 살아 온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히말라야 지방의 사람들 속에 녹아들어간 저자는 그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의 참으로 자연친화적인 생활 모습들을 낱낱이 보여 주고, 물질 문명의 유입으로 인해 그 아름다운 생활의 모습들이 어떻게 깨어져 가는지도 보여준다. 이 책이 여기에서 끝났다면, 아마 그렇게 큰 감동을 주지는 못했을 것 같다. 라다크 사람들은 무엇이 잘못 흘러가고 있는지를 알아냈고, 다시 옳은 방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새로운 노력들을 하고 있다. 그 노력 또한 단순히 옛날로 돌아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새로운 도전이 된다.
재생 용지로 만들어진 책장의 거칠거칠함이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이 재생 용지의 거칠함마저 따듯하게 느껴진다. 친환경적으로 생활한다는 것은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우리의 고정 관념을 바꾸고 이제까지의 것과 조금은 다른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인상깊은구절] 우리가 일으켜야 하는 변화는 우리의 삶을 매우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그 변화는 흔히 환경운동 내부에서조차도 희생으로 취급된다. 우리가 얼마나 덕을 보는가를 깨닫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포기하고 더 적은 것으로 견뎌야 한다는 데 강조점이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끝없는 경제 성장과 물질적인 번영이 정신적/사회적 빈곤, 심리적 불안정 그리고 문화적 생명력의 상실을 대가로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다. |
| 참 힘들게 구한 책이었다. 대구에 있는 녹색평론사에까지 전화를 걸어 어디서 구할수 있는지 물어봤으니...그렇게 해서 구한 책이라서 그런지 두고 두고 애정이 가는 책이 되었다. 책을 처음 받았을때 그 잔잔하던 충격~~ 아! 재활용지로도 책이 만들어질수 있구나.. 특히나 녹색평론사의 논조와 잘 맞아떨어져 언듯 조잡하게 보일수도 있는 그 겉모습이 더욱 정감어렸다. 이제 라다크 얘기를 해볼까? <오래된 미래>라는 말이 어울리게 난 그곳에서 과거와 미래를 함께 느꼈다. 단순히 우리나라의 50-60년대의 못살던 과거가 아니라 생활 공동체에서 느껴지는 순수함과 그들의 물욕없음이 티벳이라는 고요함과 일치하는 듯 했다. 특히 그런 폐쇄적인 사회에서 가지기 쉬운 여성에 대한 학대나 고된 노동과는 전혀 다른 여성존중에 대한 전통과 풍습은 놀랍기까지 했다. 요즘들어 우리 사회에서 패미니즘이 많이 확산되고 보편화 되기는 했지만 일상생활에서 우러나오는 그들의 여성 역할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우리의 미래'라 이름짓기에 부족함이 없다. 라다크 사람들은 운좋게도 개인의 이익과 전체 공동체의 이익이 상충하지 않는 사회를 물려 받았다. 이런 사회가 1980년대 이후로 서구사회에 알려지면서 관광과 호기심의 대상이 되고 변화해 간다. 양적 변화가 질적 변화를 일으킨다는 말이 라다크에서도 통용되는 것이다. 라마승이 기술자가 되고, 미국 영화가 시내에 걸리면서 팝송에 젊은이들이 마음을 뺏기는 것이다.그러나 아직 희망은 있다. <작은것이 아름답다>는 슬로건 아래 <반개발운동>이 라다크에도 뿌리 내리고 있다고 한다. 내가 이 책을 읽은것이 몇년 전이니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마음이 답답할 때 소로우가 살던 월든숲과 함께 생각나는 티벳의 고원 라다크... 영원한 나의 미래였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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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연 행복할까? 우리는 과연 행복하지 않을까? 우리는 과연 부족할까? 우리는 과연 진보하고 있을까?
삶에 대한 물음은 쉽지 않다. 언제나 우리는 우리의 삶보다는 남의 삶에 대해 물음을 하고 산다. 물음의 화살을 자신에게 돌리는 것. 그것을 우리는 진보라고 부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반성적 성찰..진보와 보수의 구분이 사라지고 급진과 온건의 의미가 흔들리고 있는 지금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위해서 질문의 화살을 우리에게 돌리는 것 그것이 진정 필요하다.
내가, 아니 지금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 라다크에 간다면 뭐라고 할까?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라는 여성학자처럼 그들에게 넘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그들에게서 부족한 것을 확인하고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자동차,선풍기,에어컨,컴퓨터,티브이,오디오,김치냉장고 그런것들은 그곳에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그곳의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그곳의 사람들은 지혜롭고 사물과의 관계또한 본받을만 하다고...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그 많은 것을 모으고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그 많은 것을 포기하고 버려 왔는데 티코를 모는 것보다, 레간자를 몰고, 레간자보다는 비엠더블유를 모는 것이 행복하니까 우리는 우리의 아들과 영화를 보러가는 것도 포기하고 우리의 애인에게 편지를 쓰는 것도 포기하고, 포기하고 포기하고...좀더 사고 좀더 모으고 좀더 쓰고...그런데, 정말 그들이 우리보다 행복하단 말인가?
난 가끔 내 방만이라도 라다크처럼 만들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많은 욕망과 벌써 관계를 가져버렸다. 버려라! 버리지 않는 자는 얻을 수 없으리니... 오래된 미래는 저자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아직은 말이다. 우리의 미래는 그리 희망적이지 않을 지도 모른다. 좀더 많은 희망의 전문가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말이다. 아니 우리 모두가 희망의 전문가가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인상깊은구절] 갈수록 서구문화는 정상적인것, 유일한 방식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리고 세계 전역에서 점점더 많은 사람들이 경쟁적이고 탐욕스럽고 자기 중심적으로 되어감에 따라 이러한 성향들은 인간 본성 탓으로 돌려진다. 그렇지않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있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서구사회의 지배적 사고는 오랫동안 우리가 본래 공격적이고 , 다원주의적 투쟁에 영원히 갇혀있다고 가정해왔다. 사회를 조직하는 방법에 관련하여 이러한 관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근본적으로 중요하다. 우리가 선이나 악의 내재성을 믿든 믿지 않든간에 인간본성에 대한 우리의 가정은 우리의 정치적 이념의 밑에 깔려있고 따라서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제도의 모습에 영향을 미친다. |
| 현재의 세계는 많은 문제점을 안은 채 굴러가고 있다. 환경문제,인종-종교-민족 분쟁,사회내 분열,경제의 불확실성(실업,인플레이션)등 산적한 문제를 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 목적지도 제대로 정하지 않은 상태로 마냥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세계의 이곳저곳을 파괴하고 있다. 파괴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고 말할지 모르나 문화와 생태의 다양성을 획일화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파괴라고 말할만 하다. 그리고 그 파괴는 "서구화"란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다. 저자는 서구인으로서 히말라야의 작은 마을 라다크 사람들과 16년 이상을 함께 보냈다. 그럼으로써 전에는 비판의 대상이 아니었던 자신들의 문화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서구문화도 세계문화의 일부임을, 다른 문화도 그 나름대로 존중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음을,아니 오히려 서구문명이 겪고 있는 그 많은 문제를 풀 수 있는 대안으로 이 작은 마을의 전통문화를 지목하고 있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라다크' 이곳은 우리들의 옛고향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인정많고 큰 욕심을 부리지 않은 채 자연에 순응해 가며 살았던 우리의 옛 사람들을 그대로 만나볼 수 있다. 잠시 잠깐이라도 고향에 온듯한 느낌을 주며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지금껏 행해왔던 서구화에 대한 깊은 반성도 함께 안겨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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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나는 공포에 휩싸인다. 그리고 그 빈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증대된다. 문제는 그러한 불안의 원인이 인간에게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인간의 만능을 신뢰하는 이기적인 인본주의자는 아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인간 내면의 성선설에 희망을 보이기도 하고 또한 아름다운 인간 공동체를 꿈꾸기도 한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은 지나친 욕심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 속에 내재된 기본적인 이해와 바램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내가 부단히 인간에게서 그 두려움의 이유를 찾아가듯이 지금은 뭔가 엉뚱한 것에 우리는 정신을 빼앗기도 있는 것 같다. 세계는 인류의 보다 안정되고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고심하겠지만 과연 우리의 미래는 긍정할 수 있을까? 이건 지금 신나게 달려 나가는 인터넷, 경제 정보 시대에 제동을 거는 발언이 아닐까? 그러나 모두는 진지하게 이러한 세대의 추세를 고려해 볼 것이라는 것을 나는 짐작할 수 있다.
스웨덴의 여성 학자 노르베리 호지가 인도의 작은 마을(독립적인 곳이다) 라다크에서 너무나 놀라운 경험을 하고 그것을 토대로 미래를 말하고 있다. 정말 웃음이 나오고 신기할 정도로 라다크는 전통적 생활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그들은 천천히 즐겁게 일하고, 조금만 먹지만 행복해 하는 사람들이다. 예쁜 것, 화려한 것 그러한 것이 그들의 유혹거리가 되지 않는다. 그저 편안하고 통 넓은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며 사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모든 것에 만족하고 용서하는 삶을 그들은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천연적인 곳이 개방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관광을 다녀 갔고 라다크는 어줍잖은 서구식 개발을 배웠다. 그들은 돈을 만지게 되었고 어 넓은 집에서 화려한 옷을 입고 지내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웃음이 있는가? 대답은 짐작하겠지만 노이다. 그렇게 모든 것의 만능이었던 개발이 라다크의 웃음을 빼앗았다.
생태계와 평화, 천진하던 인간의 마음을 담보로 한 개발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들은 더욱 불행해졌을 뿐이다. 우리는 부자가 되고 싶어하고 명예와 권력을 얻고 싶어 한다. 궁극적 이유는 무엇인가? 행복 때문이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행복의 열쇠는 그것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가난하고 불편해도 전혀 그것을 의식할 수 없는 자연스러움, 그 욕심 없는 마음에 행복은 숨어 있다. 세계의 분쟁과 전쟁, 생태계 파괴와 자원 고갈. 이러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그것을 이 지구상의 마지막 천연 보루였던 라다크도 어느듯 배워 버렸다.
몹시 씁쓸한 일이다. 다만 노르베리 호지가 이 글을 남겼음에서 짐작해야 하듯이 우리는 그녀의 진실한 외침을 들어야 할 것 같다. 서구식의 개발이 만능은 아니라는 것! 오! 너무 낭만적이고 불가능해 보이는 일일 것 같다고 의문 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겠다. 하지만 그렇게만 믿고 새로운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면 결과는 우리의 믿음대로 되어버릴 것이다. 그녀가 16년간이나 라다크에 있으면서 적고 있는 그녀의 변화들을 들어보자. 6000원에 우리는 그 비싼 경험을 살 수 있다. 책의 종이 마저도 무척이나 자연스럽고 냄새까지 날 것 같은 풍경. 이미 나는 그녀의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 [인상깊은구절] "곡식이 무겁게 자라서 이랑까지 슥여지기를! 굵게 자라서 백명의 청년들도 벨 수 없기를! 너무나 무거워서 백명의 처녀들이 나를 수 없기를! -라다크의 씨뿌리는 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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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론적인 사고 방식에서 우리는 '너'와 '나'로 분리된다.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문명이 발달하고 과학이 눈부시게 발달한 현대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자연을 지배해야하는 대상으로 간주하여 끊임없이 파괴한다. 파괴해야만 인간의 욕망을 채워주는 '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작자가 오래 전에 여행했던 라다크는 인간과 자연이 분리되지 않은 생활을 하였다. 자연의 일부분으로써 강이 흘러가듯 그렇게 몸을 실었는데, 서구화 바람으로 인해 그들의 전통과 소박한 삶을 몸서리치게 싫어하게 된다. 속된 말로 '촌스럽다'고 단정하면서.
이 책 서술자는 유럽인의 시각으로 봤기 때문에 우리가 보는 눈과 다소 다를 수 있다. 현대사회의 긍정적, 부정적인 면을 두루 볼 수 있었던 작자는 점점 개발되는 라다크의 변화는 모습을 더 정확하게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라다크의 변화 못지않게 우리나라도 비슷한 단계를 밝고 왔으며 지금 또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본다. 팍스아메리카라는 말처럼 문화, 경제 모든 것이 미국으로 통하고 있으며 그에 발맞추듯 유아들까지 영어열풍에 휩싸이지 않았는가.
무조건 개발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볼 수 없으나 라다크가 전통적 문화의 파괴와 함께 환경오염을 가져올 수 밖에 없는 요인으로 작자는, 변화는 무조건적으로 개선으로 본다는 그들의 시각의 문제점을 첫번째로 든다. 오직 되돌아볼 때에만 파괴적인 영향이 명백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현대세계와의 접촉에서 비롯되는 상대적 열등감이 그 이유라 한다.
근본적으로 인간이라는 것은 '욕망의 덩어리'이라 할 수 있다. 아래에서 인용했듯이 욕망은 채우면 채울수록 갈증을 일으키는 요물이다.
'오래된 미래'라는 책 제목이 참 재미있었다. 오래도니 미래라는 것은, 과거 속에서 미래를 찾는다는 말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새로워야할 미래가 오히려 낡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내 나름대로의 해석이다.
욕망의 덩어리는 갈수록 커지고 그 문제점이 눈두덩이처럼 불어나 다수의 사람이 자연을 파괴했을 때 맞게 되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 때야 옛날의 방식, 인간이라는 것은 자연의 일부라는 것, 자연과 인간이 한몸이라는 것을 인식할 때야 그 치료법을 간신히 찾지나 않을지. 그 치료법이라는 것은 이미 과거에 명백히 제시됐었는데. 우리의 미래는 항상 과거 속에 있어왔다. 현명한 현대인이라면 과거 속에서 밝은 미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우주는 끝없는 강과 같다고 한다. 그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동시에 그것은 끊임없는 움직임속에 있다. 전체로서 강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말할 수 없다. 흐름을 멈추고 조사해볼 수는 없다. 모든 것이 움직임 속에 있고 분리해낼 수 없이 얽혀있다. 타시는 또 "모든 것이 연기의 법칙하에 있습니다. 나가르주냐가 말했듯이, '관계를 통한 근원은 부처의 풍요롭고 심오한 보배입니다.'이 수준에서 우리의 범주와 구분, 이름 - '너'와 '나','정신'과'물질'- 은 하나가 되고 사라져버립니다. 우리가 견고하고 실체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순간순간 변하고 있습니다. 나무가 공인 것과 똑같이 '자아'도 공입니다. 그것을 깊이 생각해보면 당신 자신도 주위의 모든 것의 한 부분으로 녹아버립니다. '자아'는 궁극적으로 우주 속의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망상이 아마도 깨달음으로 가는 길에서 가장 큰 장애물일 것이다. 절대적이고 항구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은 끝없는 욕망의 순환으로 인도하고, 욕망은 고통을 가져온다. 분리된 자아와 하나하나의 사물의 개념에 집착함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