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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어머니란 어떤 존재인가? 언제나 가족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자신보다 다른 가족을 위해서 살아가시는 존재.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이러한 모습이 바로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어머니의 보편적인 형상일 것이다. 대체로 성인이 될 무렵까지, 자식들은 어머니를 위해서 무엇을 해드리기보다 언제나 요구하기만 한다. 그리고 그러한 태도가 우리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었던 것은 아닐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한국적’ 어머니의 형상에는 언제나 다른 가족들을 위해 인고하고 희생하는 존재로서의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다.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우리들이 언제나 의지할 수 있는 편안한 존재이기만 했던 것이다. 늘상 가족을 위해서 살며 우리와 함께 생활하기에, 사람들이 어머니의 역할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대개 자식들은 대학에 진학하면서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거나, 혹은 군대에 가게되면 어머니의 빈자리를 실감하게 된다. 특히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힘든 일이 닥쳤을 때는 어머니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좋은 일이 있으면 언제나 같이 즐거워하고,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도 곁에서 지켜봐 주시는 어머니. 자식으로서 그런 어머니의 크신 은혜에 보답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노릇이다.
더욱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자식들은 대체로 살아 생전의 불효에 대한 아쉬움과 회한(悔恨)의 감정만이 남게 된다. 한자(漢字)로 부모의 은혜를 ‘호천망극(昊天罔極)’이라 표현하는데, 그 은덕과 사랑은 마치 하늘이 크고 넓어 끝이 없는 것과 동일하다는 의미이다. 때문에 자식들이 아무리 잘 모신다고 해도 어머니의 은덕을 끝내 다 갚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의 어머니, 조선의 어머니>는 조선 시대 지식인들이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해 한문으로 쓴 글들을 모아, 한글로 번역하여 엮은 책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지만, 조선 시대에도 우리의 어머니들은 남편과 자식들이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언제나 뒷바라지에 최선을 다 하셨다. 아무래도 자식의 입장에서 쓴 글들이기에 다소의 미화(美化)는 없지 않겠지만, 이 책에 수록된 기록들에서 우리는 가족을 위해서 헌신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가 있다.
15세기의 유학자인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어머니 밀양 박씨(密陽朴氏:1420~1479)의 행장(行狀)에서부터 19세기의 문장가인 이건창(李建昌:1852~1898)의 어머니 파평 윤씨(坡平尹氏:1828~1886)의 행략(行略)까지, 모두 33인의 어머니에 대한 기록이다. 여러 인물들에 관한 기록은 보통의 경우 앞선 시기의 인물부터 수록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책의 경우 그 순서가 19세기의 인물부터 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리고 그러한 편찬 체제는 대상 인물들의 삶을 중심으로, 조선 시대 여성들의 생활상을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한 개인이 어머니의 삶을 돌아보는 회고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조선 시대를 살아야 했던 여성들의 처지를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여기에 수록된 기록들은 몇몇 다른 형식의 글들이 섞여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죽은 사람에 대한 공식적 기록의 성격을 갖는 행장(行狀)이나 묘지(墓誌)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대체로 묘지(墓誌)는 죽은 사람의 행적을 돌 따위에 기록하여 무덤 옆에 파묻는 글이며, 행장(行狀)은 죽은 이의 행적을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상세히 서술한 형식의 글이다. 이밖에도 무덤 앞에 세울 비석에 세우기 위해 적은 묘갈문(墓碣文)이나, 그 사람의 행실을 간략히 기록한 행략(行略)과 행실기(行實記) 혹은 행적기(行蹟記), 그리고 살아 있는 동안의 일들을 기록한 유사(遺事)와 같은 다양한 제목의 글들도 포함되어 있다. 대체로 행장이나 묘지 등의 기록은 죽은 이의 사회적 활동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되기 때문에, 대외적 활동이 미미하기만 했던 조선 시대 여성들의 그것은 남아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
행장이나 묘지로 어머니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은 그만큼 어머니에 대한 자식으로서의 안타까움이 컸던 때문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그 내용만큼은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애절한 추념(追念)으로 채워져 있다. 죽은 이의 행적을 기록하는 대개의 글들이 그렇지만, 어머니의 세계(世系)를 열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다음으로 결혼하기 전의 일화를 중심으로 특별한 재능이 있음을 드러내고, 결혼 후 시부모의 봉양과 어려움 속에서도 가족을 화합으로 이끈 어머니의 노고 등을 상세히 적고 있다. 대체로 이러한 내용들은 각 기록들에 공통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여성들의 시집살이를 논하고 있는 부분에서, 남성 중심적인 봉건 사회에서 한 ‘개인’이 아닌 ‘가문의 봉사자’로 살아가야 했던 조선 시대 여성들의 아픈 현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책에는 현대에까지 바람직한 여성상으로 일컬어지는 이이(李珥:1536~1584)의 어머니 사임당 신씨(師任堂申氏:1504~1551)와 몇 해 전에 <선택>이란 책의 등장 인물로 소개된 이현일(李玄逸:1627~1704)의 어머니 안동 장씨(安東張氏:1598~1680)의 행적도 수록되어 있다. 윤증(尹拯:1629~1714)의 어머니로, 청나라의 침략으로 인해 발생한 병자호란(丙子胡亂:1636)의 와중에서 피난처인 강화도에서 자결한 공주 이씨(公州李氏:1607~1637)의 파란만장한 삶도 기록되어 있다. 또한 인현왕후의 언니이며, 이재(李縡:1680~1746)의 어머니인 여흥 민씨(驪興閔氏:1656~1728)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얼마나 조심스러운 삶을 살아야 했는가 하는 실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밖에도 김만중(金萬重:1637~1692)의 경우에는 자신이 어머니 해평 윤씨(海平尹氏:1617~1689)의 행장을 상세히 기록하였음에도, 조카인 김진규(金鎭圭:1658~1716)에게 명하여 조모(祖母)의 습유록(拾遺錄)을 남기도록 하였다. 김만중은 자신의 어머니를 위하여 밤을 새워 쓴 소설 <구운몽>을 창작하기도 했던 인물인데, 이러한 태도에서 그의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감정을 확인할 수가 있을 것이다.
자식의 입장에서 남들에게 내보이고픈 내용으로 채운 이 글에서, 나는 역설적으로 힘겹게 살아간 조선 시대 여성들의 일반적인 삶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공식적인 성격의 글을 지닌 행장이나 묘지문은 아마도 자식의 입장에서 기리고 기억하고 싶은 어머니의 면모를 중심으로 적은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대체로 어머니의 가문에 대한 장황한 열거와 여성으로서의 입장이 강조된 일화를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결국 ‘남성’이었던 자식의 입장이 강조될 수밖에 없고, 자신의 어머니가 여성으로서 자신보다 가문을 위해서 얼마나 희생적인 삶을 살아야했는가를 강조하고 있다.
남에게 맡기지 않고 밤을 새워 시부모를 간병하는 어머니의 모습, 혹은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남편이나 다른 가족들이 알지 못하도록 힘겹게 꾸려오신 살림살이, ‘부녀자의 직분은 오직 술 빚고 밥하는 일’이라는 것을 내세우고 또 그것을 어머니의 표상으로 내세우는 기록 등은 단적으로 조선 시대를 살았던 여성들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당시의 사회적 인식 때문에 여성들은 글조차도 제대로 배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을 어머니들은 ‘여자로서 글 잘하는 사람은 팔자가 좋지 못하다’라는 말로 자신을 위안해야만 했다. 때문에 시집가기 전에는 글을 배워 책을 읽거나 시를 짓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하더라도, 결혼 후에는 자신이 글을 알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감추려고 하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당시로서는 당연한 현실이겠지만, 결혼이란 대체로 양가 부친의 혼약(婚約)에 의해서 결정되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남편이 일찍 죽어 혼자가 된 경우에는 자식들의 교육은 매우 엄격하게 시행하였는데, 이는 자식의 사회적 성공을 통해 자신과 가문의 존재 의의를 드러내고자 하였던 때문이다. 그렇기에 여기에 수록된 글들에서는 대체로 어머니 개인의 모습은 잘 드러나지 않고, 철저히 가문과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으로만 그려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면모에서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자신의 능력을 억누르며, 단지 그 사회가 용인하는 범위의 행동만으로 체념하고 살았던 당대 여성들의 모습이 연상된다. 또한 당시에는 남편이나 자식들의 사회적 활동에 대해서도 애써 참견하지 않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여기에 수록된 어머니들은 이름이 아닌 성(姓)만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모두 ‘해평 윤씨’와 같이 본관과 성만으로 표기되었는데, 이것은 당시 여성들의 보편적인 현실이었다. 심지어 그들이 낳은 딸조차도 사위의 이름에 의해서 구별되고 있는데, 이것은 ‘이름없는 삶’을 살면서 오직 남편이나 자식에 의해서만 존재 의의를 지니게 되는 여성의 사회적 처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즉 명칭으로만 보자면 똑같은 파평 윤씨(坡平尹氏)라고 불리면서, 자식이 이건창이냐 혹은 임성주(任聖周:1711~1788)이냐에 따라서 그 실체가 달라지게 된다. 또한 어머니의 품계(品階)인 정부인(貞夫人) 혹은 정경부인(貞敬夫人) 등의 호칭도 남편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부여되었다. 이처럼 당대의 여성들은 오로지 남성들에 의해 그 존재 의의를 지닌 것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사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들의 개성적 측면도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소설을 보아서는 안 된다’고 늘 말하면서도, 한글 소설을 즐겨 읽었던 안정복(安鼎福:1712~1791)의 어머니 전주 이씨(全州李氏:1694~1767)를 통해서 당시 여성들이 소설을 좋아했다는 문학사적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자신이 글을 안다는 것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자식들이 곁에서 기록한 시가 수백여편에 이르러 <영수합고>라는 시집을 남긴 홍석주(洪奭周:1774~1842)의 어머니 달성 서씨(達城徐氏:1753~1823)는 여류 시인으로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이밖에도 80세가 넘어 조정에서 마련한 일종의 경로잔치인 수친계(壽親?)에 참석하기도 했던 이식(李植:1584~1647)의 어머니 무송 윤씨(茂松尹氏:1555~1637)에 관한 기록을 통해서는 당시의 풍속을 엿볼 수 있다.
아무래도 자식의 입장에서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어머니에 대한 글을 쓰노라면, 그 내용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당대에 통용되는 바람직한 여성상에 어긋나지 않는 내용을 위주로 채워나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쓰여진 내용을 통해서 당대 양반 부녀들의 생활상을 확인할 수 있고, 또한 다양한 인물들의 기록에서 보편적인 상황과 개성적인 측면을 구별하여 문화사적인 관심 속에서 다룰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이 책에서는 각 글의 끝 부분에 ‘읽고 나서’란 항목으로, 역자(譯者)가 글을 쓴 사람의 행적과 집안에 대해서 소개를 하고 있어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도 지적하고 싶다.
고전의 현대화는 중요한 작업이다. 특히 중세의 지식인들은 주로 한문(漢文)으로 자신의 기록을 남겼기에, 오늘날 그들의 작품을 일일이 읽어내기란 그리 쉽지 않다. 따라서 한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한문으로 이루어진 원전(原典)은 커다란 장벽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런 까닭으로 한문으로 된 자료를 한글로 번역하여 소개하는 작업은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할 작업이다. 근래에 한문으로 된 원전을 한글로 번역하여 소개하는 작업이 부쩍 많이 이루어지고 있어, 상당히 반가운 마음이 든다. 무엇보다 언어적 장벽으로 거두고 중세의 지식인들의 생각과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없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 자식 잘 키우는 것이 주어진 사명이었던 조선시대였던 만큼 지금까지 잘 알려진 여성들은 몇몇 경우를 제외하곤 대부분 유명한 선비들의 어머니들이다. 이 책은 그런 어머니들에 대한 책인데 특이한 것은 그 아들들이 직접 자기 어머니에 대해 쓴 글들을 모아 놓았다는 점이다. 대부분은 돌아가신 후에 올리는 제문같아 보이는데 아들 본인이 썼다는 점이 재미있다. 원래는 한문으로 쓰여진 글을 한글로 편역했는데 처음에는 어머니의 집안내력에 대해 소개하고 차례로 그분의 일생을 말하고 마지막은 남기신 교훈을 전하고 있다. 각 글 밑에 '읽고나서'라는 란을 달아 객관적인 정보들을 담고 있다. 조선시대 어머니들의 면모를 알 수 있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