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 그리스도는 왜 십자가를 졌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이 책의 제목과 같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선택한 십자가이다. 그렇다면, 왜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선택했는가? 온갖 고통과 모욕을 당하며 십자가를 선택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이다. 이 책은 십자가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는 책이다. 흔히들 쉽게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나 자신을 위한 십자가라고 쉽게 이야기는 한다. 이 책은 십자가의 의미를 쉽게 말하지 않고 있다. 세부적으로 하나, 하나 설명해 나가며 그 십자가의 고통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해하기 쉽게 십자가는 나 자신을 위한 십자가였음을 알게 해준다. 믿음이 좋으신 분이든 아니면 이제 막 신앙생활을 시작한 새신자들에게도 좋은 책인 것 같다. 십자가의 의미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또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한 '기독론'을 아주 쉽게 설명해 놓은 책이다. 누구나 읽어보면 많은 감동을 얻을 책이다. |
| 대중 전달학을 전공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탁월한 은사에 의해서일까, 그의 글은 예수의 마음을, 또한 예수를 아는 지식을 쉬우면서도 명확하게 전달한다. 일반 독자에게는 어려울 수 있는 기독론을 복음주의의 관점에서 현대의 대중적 언어로 전달하기 때문에 이해도 용이하며 무엇보다 은혜가 있다. 그래서 ‘예수가 선택한 십자가’는 불신자에게는 복음의 정수를 제대로 전달하고 신자에게는 자기를 변화시킨 복음이 지금 여기에서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되묻게 한다. 나또한 이 책을 통해 신자로서 과연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그 이해에 따른 삶의 태도가 어떤지 다시금 점검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난 이 책을 이 글을 쓰기 3개월 전에 읽었다. 그때 나는 매우 힘든 상태에 빠져있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역 가운데서 감당할 수 없는 힘든 일들이 몰려와 소망을 잃게 되었고 그래서 그 사역을 길을 계속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선택할 고민에 봉착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아픔 속에 몸서리치던 중 예수를 떠올리게 됐다. 그가 공생애 기간에 보여주었던 순종의 모습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죽을 만큼 싫었을—그래서 그는 죽음을 택했다—그 십자가 앞에서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 지가 궁금했다. 그 마음이 내 마음으로 전이되면 갈 수밖에 없는 나의 길을 기쁨으로 걸어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어 내 서가 한 구석에서 오랫동안 읽혀지지 않은 채로 꽂혀있었던 이 책을 집어 들고 침대에서, 지하철 안에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책은 나의 예상을 완전히 빚나갔다. 이 책은 십자가 앞에서, 십자가 밑에서, 십자가 위에서 자기를 향해 고민 하셨던 예수를 말하고 있지 않았다. 대신 스스로 질 수 없는 십자가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과 섬김의 마음과 모습이 시종일관 드러난다. 특히 다음 이 부분은 지하철안에서 읽고 있던 나를 결국 울컥하게 했다. ‘천국의 면류관을 버리고 가시 면류관을 쓰신 그분의 가장 멋있는 부분은 무엇인지 알고 싶은가? 바로 당신을 위해 그렇게 하셨다는 것이다. 바로 당신을 위해.’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던 주님을 따르는 첫 번째 발걸음은 예수의 길을 나또한 그대로 따르고자 하는 결단이 아니다. 나를 위해 걸어가셨던 그분의 발자국에 깊이 배어있는 사랑의 깊이를 깨닫는 것이 먼저다. 그때야 비로소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부르실 때에는, 그로 하여금 와서 죽으라고 명령하시는 것이다’라고 외쳤던 본회퍼의 말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제야 비로소 나의 좁고 빈약한 신념과 물음에서 나와 예수에 의한 은혜의 넓음과 부유함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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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 루케이도, 흔히 일어나는 일상적인 사건을 통해 성경말씀으로 독자를 이끌어가는 그의 능력은 탁월하다.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사건을 말씀에 적용하는 그의 탁월함에 매료되었다. 읽은 책 페이지 수가 늘어갈수록 '저자는 이 사건을 어떻게 말씀에 적용시킬까'라는 궁금증과 함께 '나 같으면 이 사건에는 이렇게 적용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만큼 이 책은 '흡입력'이 있는 것 같다.
책 제목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처럼 이 책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다루고 있다. 영화를 볼 때, 초보수준의 관람객은 배우들 중심으로, 특히 주인공 중심으로 볼 것 같다. 그러나 영화관람의 고수들은 주인공 뿐만 아니라, 조연배우, 단역배우 심지어 엑스트라까지 모든 출연진들을 파악하지 않을까? 배경 화면과 배경 음악, 자잘한 소품까지 그들의 눈에 들어 올 것이다.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영화관람 초보와 고수 사이에는 그 영화를 이해함에 있어 깊이나 내용의 질적 차이가 분명 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맥스 루케이도는 '십자가 사건' 해석의 고수다. 그가 가진 말씀의 지식과 믿음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우리에게 더 깊이있고 풍성한 십자가의 은혜의 세계를 알려주고 있다. 십자가 사건을 보면서 놓치기 쉬운 주님의 세밀한 은혜를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십자가만 본 것이 아니라 성경을 응하게 하기 위해 예수님이 선택한 다른 것들도 눈여겨 보았다. 군병들의 침, 가시 면류관, 못, 죄패, 두개의 십자가, 갈보리의 길, 옷, 찢긴 몸, 해융, 물과 피, 수의, 빈무덤 등이 그것이다. 예수님의 권세로 얼마든지 위에 열거한 모든 것들은 물리칠 수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그렇기에 예수님이 선택하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선택하신 이유는? 바로 나를 위해서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위해 한 일이다. 다 너를 위해 한 일이다."
맥스 루케이도를 통해서 한 수 또 배운다. 신실한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출발한 '왜?'라는 이 질문은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을 얻게 해 준다는 것이다. 무조건 "믿습니다"가 아닌 "왜 이렇게 하셨을까?", "왜 이것일까?"등과 같은 질문을 하며 말씀을 읽어간다면 더 깊은 말씀의 샘에서 생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함께 나누고픈 맥스 루케이도의 깨달음
세상에서 가장 악명 높은 길은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즉, 슬픔의 길이다. 전통에 따르면 예수께서 빌라도의 뜰에서 갈보리로 가신 길이 바로 그 길이었다고 한다. 그 길에는 그리스도인들이 흔히 헌신의 목적으로 활용하는 14개의 지점이 표시되어 있다. 그 중 한 지점에서 빌라도의 선고가 내려졌다. 시몬이 나타나 십자가를 진 지점도 있다. 그리스도께서 넘어지신 지점도 두 군데 있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지점도 있다. 14개 지점들은 각각 그리스도의 마지막 여정 중에 일어난 사건들을 되새겨 주고 있다. 이 길은 정확한 길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AD 70년 그리고 다시 AD 135년에 예루살렘이 파괴되면서 도시의 거리들도 파괴되었다. 따라서 그 금요일 그리스도께서 걸으시던 정확한 길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 길이 시작된 곳만은 확실하다. 그 길은 빌라도의 법정이 아니라 천국의 뜰에서 시작되었다. 아버지가 우리를 찾아 하늘의 집을 떠나시던 날, 그 여정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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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키나 한 말일까? 그가 십자가의 고통을 그대로 안고 죽어가는 그 때의 심정을, 우리는 얼마나 헤아릴 수 있을까?
어리석게도 나는 지금까지 맥스 루케이도를 작가로만 알고 있었다. 나는 동화작가로서 예전에 그의 동화를 가슴에 품은 적이 있었다. 아, 나도 저런 작품을 써야겠다.
그런데 이번에는 교양 필수 기말고사 때문에 참고도서로 빌린 책 가운데 맥스 루케이도의 작품이 들어 있었다. 그의 작가적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던 터라 망설임없이 이 책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금방 책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재치발랄한 우화에다, 시의적절한 자신의 경험담 그리고 놀랄만큼 흡인력 있게 당기는 그의 문필력. 간단명료하면서도 그의 글은 사람을 당기게 하였다. 그리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C.S루이스나 필립 얀시 또는 폴 브랜드와는 또 다른 맛이 있었다. 가벼운 듯 하지만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묵직함이 살아 있었다. 살짝 살짝 나를 치고 지나간 듯 하였지만 그 종소리는 계속해서 내 귀에 잔향을 남기고 있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중심으로 저자는 다양한 프리즘을 통해 예수님을 이야기한다.
그의 고통, 그의 수치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야 했던 그 아픔, 그 사랑을 목소리 높여 말한다.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결국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고 싶다면 단연코 이 책을 읽어볼 일이다.
결코 후회하지 않을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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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꼭지로 이루어진 이 책은 매 꼭지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경험으로부터 시작해서 성경의 진리로 들어간다. 그래서 까딱하다가는 무슨 말인지 몰라 다시 앞으로 되돌아가야 할 때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도 중반에 접어들면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그때 쯤이면 그런 진술 방식에 푹 빠져 있을 테니까. 그래서 재미있다. 쇼핑하면서, 운전하면서, 청소하면서 겪는 일들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우리 사는 모습을 나타내기 때문에...더군다나 그것 하나하나가 십자가의 메시지에 연결이 되니 그런데 그 십자가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다른 누구나 무엇을 위한 것이 아닌 바로 나를(당신을) 향한 것이라고 증거하는데, 그 증거 앞에서 빠져나가기가 힘들 정도여서 어느 때는 숨이 막히기까지 하다. 개인적으로는, 집 나간 딸 이야기가 있는 '갈보리 길'과, 우리의 시험을 다 당한 분으로 예수님이 묘사되는 '포도주 적신 해융'이라는 부분에서 마음이 녹아내렸다. 그랬더니 또 어느새 피와 물, 수의 등을 통해 계속 이어지는 하나님의 약속이 나를 사로잡더니, 마지막 15장에서는 나의 모난 모든 것들을 십자가 아래 다시금 내려놓도록 만들었다. 이 책은 초청하는 책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우리를, 나를 초청하는 책이기에 위대하다. 특히, 웬만해서는 빠져나갈 수 없는 강력한 초청이라는 면에서 다 읽고나서는 이렇게 고백하게 만든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면 난 아무것도 아니다. 난 예수님을 믿어요. 내가 어떤 상태에서라도 죄악 가운데, 죄책 가운데 있었을지라도 다시금 고백케 되는 말, 그가 나를 대신하여 그 죄의 댓가를 담당했기에..나 대신 고난 받으시고 죽으셨기에..바로 나를 위해 그러셨기에..난 예수님을 믿어요. [인상깊은구절] 예수님. 입술이 갈라지고 입이 부르튼다. 목이 너무 타 들어가 침조차 삼킬 수 없다. 목소리는 잔뜩 쉬어 말도 못한다. 그는 목마르다.그분의 입술에 마지막 물기가 닿았을 때를 찾으면 다락방의 식사 때로 족히 열두시간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거기서 포도주를 입에 대신 후 예수님은 맞고 침뱉음을 당하고 멍들고 찢겼다. 십자가를 져야 했고 죄를 지셔야 했다. 단 한 방울의 물도 그분의 목을 적셔 주지 못했다. 그분은 목이 마르다. 왜 그분은 가만히 계시는 걸까? 얼마든지 능력이 있지 않은가? 물 항아리를 포도주 항아리로 바꾸시지 않았던가? 요단 강에 벽을 세우고 홍해가 갈라지게 하시지 않았던가? 말씀 한 마디로 비가 그치게 하시고 파도를 잔잔케 하시지 않았던가? 성경은 그분이, 광야를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셨다고 말하지 않는가? 하나님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리라'고 하지 않으셨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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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 책을 읽게 되었을까.. 열심히 새벽기도 하는 중에 간절히 내 삶의 기도제목에 몰입하던 중에 인터넷도 끊고 오로지 세미한 음성에 집중하던 때..
바로 그 때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의 메세지..
왜 하필 십자가형인가 왜 하필 그 곳엔 십자가가 세 개였을까 왜 하필 그 때 예수님은 목마르다고 하셨을까 왜 하필 군사들의 조롱 가운데 계셨을까 왜 하필 가시 면류관인가 ......
의심 많고 이해하지 못하면 행동조차 못하는 나에게 그가 바로 예수님임을 알려주시기 위해서이다.
호기심 많고 신기하다는 단어를 즐겨 쓰는 나에게 바로 나를 위해 한 일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찬양.. '주님은 신실하고 항상 거기 계시네 주 사랑을 뭐라할까 주 사랑이 내 생명보다 귀하고 주 사랑이 파도보다도 강해요 세월이 가고 꽃이 시들어도 주 사랑 영원히 주님 사랑 신실해요'
그 다음날 새벽 삶에 얽힌 크고 작은 기도제목을 모두 내려놓고 눈물을 주체할 수 없도록 울고 또 울고..
제 삶은 그 사랑만으로 충분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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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꼭지로 이루어진 이 책은 매 꼭지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경험으로부터 시작해서 성경의 진리로 들어간다. 그래서 까딱하다가는(그러니까 한눈 팔다가는, 딴 거 하면서 보다가는..) 무슨 말인지 몰라 다시 앞으로 되돌아가야 할 때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도 중반에 접어들면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그때 쯤이면 그런 진술 방식에 푹 빠져 있을 테니까. 그래서 재미있다. 쇼핑하면서, 운전하면서, 청소하면서 겪는 일들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우리 사는 모습을 나타내기 때문에...더군다나 그것 하나하나가 십자가의 메시지에 연결이 되니 그런데 그 십자가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다른 누구나 무엇을 위한 것이 아닌 바로 나를(당신을) 향한 것이라고 증거하는데, 그 증거 앞에서 빠져나가기가 힘들 정도여서 어느 때는 숨이 막히기까지 하다.
개인적으로는, 집 나간 딸 이야기가 있는 '갈보리 길'과, 우리의 시험을 다 당한 분으로 예수님이 묘사되는 '포도주 적신 해융'이라는 부분에서 마음이 녹아내렸다. 그랬더니 또 어느새 피와 물, 수의 등을 통해 계속 이어지는 하나님의 약속이 나를 사로잡더니, 마지막 15장에서는 나의 모난 모든 것들을 십자가 아래 다시금 내려놓도록 만들었다.
이 책은 초청하는 책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우리를, 나를 초청하는 책이기에 위대하다. 특히, 웬만해서는 빠져나갈 수 없는 강력한 초청이라는 면에서 다 읽고나서는 이렇게 고백하게 만든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면 난 아무것도 아니다. 난 예수님을 믿어요. 내가 어떤 상태에서라도 죄악 가운데, 죄책 가운데 있었을지라도 다시금 고백케 되는 말, 그가 나를 대신하여 그 죄의 댓가를 담당했기에..나 대신 고난 받으시고 죽으셨기에..바로 나를 위해 그러셨기에..난 예수님을 믿어요. [인상깊은구절] 예수님. 입술이 갈라지고 입이 부르튼다. 목이 너무 타 들어가 침조차 삼킬 수 없다. 목소리는 잔뜩 쉬어 말도 못한다. 그는 목마르다.그분의 입술에 마지막 물기가 닿았을 때를 찾으면 다락방의 식사 때로 족히 열두시간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거기서 포도주를 입에 대신 후 예수님은 맞고 침뱉음을 당하고 멍들고 찢겼다. 십자가를 져야 했고 죄를 지셔야 했다. 단 한 방울의 물도 그분의 목을 적셔 주지 못했다. 그분은 목이 마르다. 왜 그분은 가만히 계시는 걸까? 얼마든지 능력이 있지 않은가? 물 항아리를 포도주 항아리로 바꾸시지 않았던가? 요단 강에 벽을 세우고 홍해가 갈라지게 하시지 않았던가? 말씀 한 마디로 비가 그치게 하시고 파도를 잔잔케 하시지 않았던가? 성경은 그분이, 광야를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셨다고 말하지 않는가? 하나님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리라'고 하지 않으셨던가? 이런 질문에 덧붙여 물어야 할 질문이 또 있다. 그분은 왜 사마리아에서 피곤하셨고, 나사렛에서 괴로우셨으며 성전에서 화나셨을까? 왜 갈릴리 바다의 배 안에서 주무셨고 나사로의 무덤에서 슬프셨으며, 광야에서 배고프셨을까? 그분은 목말라 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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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던 루케이도의 작품이다. 역시 기다림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예수님처럼의 감동이 사라지기도 전에 다시 찾아온 루케이도를 통해 만나는 그리스도의 감동이 온 몸에 퍼져난다.
선물, 우리들이 받아도 즐겁지만 줄때 더욱 행복할 수 있는 선물을 통해서 그는 글을 시작한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들에게 분에 넘치는 선물을 주시는 분이다. 그는 십자가를 통해서 가장 아름답고 놀라운 선물을 우리들에게 주셨다. 그분의 십자가 주변에서 우리들이 만날 수 있는 것들은 과연 어떤 것들인가?
그는 십자가 사건 주변의 모든 사건들 특히 너무 작고 보잘 것이 없어서 또는 역겨움으로 해서 무시하고 지나쳤던 것들 가운데서 놀라운 구원의 비밀을 찾아낸다. 깊은 묵상과 연구의 결과일 것이라는 것은 읽는 과정마다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들이 이해하는 차원에서 끝날 일이 결코 아니다. 그의 글 가운데서 우리는 마치 십자가의 예수님을 손에 잡을 듯 느끼게 된다. 아니 잡을 수 있다. 2000년전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 나타난 그분의 사랑은 확실한 실체가 되어 우리들을 뒤흔든다.
루케이도의 글은 현대적이다. 단순하고 명쾌하다. 가장 진부할 수 있는 글을 상큼하게 써내려 가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또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유머를 알고 있다. 그의 글은 잔잔한 웃음을 통해서 진리에 이르게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의 글이 가진 가장 큰 힘은 그가 십자가의 진리를 깨닫고 있다는 점이며 그의 열정을 전달하고자 하는 특별한 열심이 있다는 점이다. 그의 글은 우리들이 사소하게 생각하는 일상을 통해 깊은 진리를 만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선물, 십자가가 바로 우리들을 위한 아니 나를 위한 하나님의 선택이었음을 한치의 부정할 여유도 없이 드러내준다. [인상깊은구절] 하나님은 얼마든지 다르게하셨을 수도 있다.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목을 축일 포도주가 예수님께 건네졌다. 그렇다면 얼굴 닦을 수건이 주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시몬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졌지만 예수님의 빰을 닦아 주지는 않았다. 그분의 기도 한마디면 천사들이 움직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천사들이 예수님의 침을 닦아 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럴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절대 그렇게 명하지 않으셨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못을 택하신 그분은 침도 택하셨다. 인간의 창, 해융과 더불어 그분은 인간의 침도 견디셨다. 왜? 야수 안에 있는 미녀를 보실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
| 읽은지는 좀 오래된지라 책 내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이 좀 아쉽다. 내가 부대에서 한참 바쁠때 읽게 된 책이다. 주변 동료를 통해서 보게 되었고, 그 후에도 내가 주변에서 뭐 좀 감동적인 책 없어? 하면 추천하곤 한 책이다. 맥수루케이도 목사님의 글은 전반적으로 이렇다고 하면 된다. 대표적이라고 말하면 될런지도, 글 분위기가 거의 다 이런식이다. 따뜻한 감동이 있다. 그만큼 한부분에 세밀한 관찰이 있어서 가능할 것이다. 이런 것을 통하여 독자는 감동을 받는다. 예수님의 십자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일수도 있다. 기독교인으로서도 그냥 십자가, 십자가로서 여길수있는 것이다. 그것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작업을 작가가 해냈다. 참 괜찮은 책이다. 풍부한 예를 접목시켜서 큰 은혜를 체험하리라 확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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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입니다. 우리위해 기꺼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며, 감사하는 주간입니다. 다윗이 고백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는 제대로 이해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고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시8:4)’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는가? 왜 인간으로 사셨는가? 왜 온갖 어려움과 고난을 당하셨는가? 왜 그렇게 비참하게 죽으셔야 했는가? 우리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셨다(롬5:8). 미국최고의 크리스천 작가라 해도 과언이 아닌 맥스 루케이도 목사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의 장면들을 하나 하나 가리키며, 그 모든 것이 ‘나를 위해 하신 일’이라며 고백하고 있다. 날카로운 가시로 만든 면류관, 손과 발을 관통한 세 개의 못, 옆구리를 찔러 물과 피를 쏟게 했던 창, 야수와 같은 얼굴로 주님얼굴에 내뱉은 로마병정의 침, 겉옷은 물론이고 속옷까지도 벗기우셨던 주님의 그 애처럽고, 안타까운 모습을 떠올리며 비통함을 금치 못한다.
주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면서도, 이 땅에 발을 딛고 계시는 그 어느 한 순간도 자신을 위해 당신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인간의 연약함과 고통을 그대로, 모조리 겪으셨고 그렇게 죽으셨다. 고통으로 신음하는 그 순간에 사람들이 건네는 포도주적신 해융(진통제 혹은 마취제)을 거절하셨다. 왜? 우리가 당해야 했던 고통의 모든 것을 철저하게 온전히 당하시기 위하여… 세상의 어느 누구도 교수형 밧줄을 목걸이로 하지 않으며, 전기의자를 명함에 그려 넣지 않는다. 그러나 허다한 그리스도인들은 2000년 전 로마인들이 사용하던 사형틀로 악명이 높았던 십자가를 사랑하며 간직하고 살아간다. 그것은 우리를 향한 주님의 절절한 사랑의 증거이었기에… 당신은 이 예수를, 이 십자가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선택과 결과는 당신의 몫이다! 예수님은 당신을 위해 이 십자가를 선택하셨다! [인상깊은구절] 십자가는 세계 어디서나 기독교의 상징이다. 엉뚱한 선택 아닌가? 고문의 도구가 희망의 물결을 주도하게 되다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