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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억은 소설 ㅡ
[예언의 도시]
캄보디아.라오스.프놈펜을 길게 따라 흐르는 메콩 강이 주던 불길함과 주술적 기운을
가라앉혀 놓은 생의 비밀도 그곳에선 누군가에 의해
소설 속에서 메콩 강은 거대한 물 뱀 같이 살아있었다.
무기력 ㅡ저주나 주술에 속수무책..
한껏 부풀렸다 펑 ㅡ터지는 아슬아슬함이..
메콩 강의 기억이란 ..볼온하게 짜릿한
비장스런 고대의 전설같이..
ㅡ까마귀떼의 저주가 캄보디아의 하늘을 덮으리 ㅡ |
| 이 소설은 혼돈의 세계 캄보디아를 배경으로 하여 상처 입은 인간들.그리고 그들이 풀어가는 상처의 해법과 욕망을 다룬 소설이다. 캄보디아의 역사가 생소하다 보니 책을 읽는데 눈과 머리가 걸리적거려 도서관에 가서 브리태니커 사전에서 크메르루즈와 캄보디아에 대해 복사를 해서 기본 상식 정도의 정보를 읽었다. 아마 이 책을 읽을 때 그 정도의 상식이 갖춰지면 책을 읽는데 작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두 남자가 있었다. 두 남자 모두 가난으로 인해 물러나야 했던 아픈상처가 자신들의 삶의 방향을 결정지운다. 한 남자는 세상의 가치를 바꾸겠다는 혁명가로 또 한 남자는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던 그 흐름에 중심에 서기 위하여... 한 남자의 이름은 무니이다.(소설에서는 주로 타라는 명칭.즉 노인이라는 뜻.) 새벽부터 저녁 늦게 까지 논에서 일해야 하는 가난한 농부이다. 그는 아니라이(아름다운 여자라는 뜻)라는 소녀를 사랑한다. 눈부시게 예뻤던 아니라이. "난 예쁘게 살고 싶어." 그녀 이외는 빛나는 가치를 몰랐던 가난하고 소박했던 무니는 그녀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라이가 판사가 된 청년과 화려한 결혼식을 마치고 도시로 떠나갔을때 비로서 그는 또 다른 세상을 보게 된 것이다. "네가 그렇게 웃지만 않았어도, 판사가 된 쿤을 따라 도시로 떠나는 네 웃음속에 조금, 아주 조금 회한의 흔적이라도 스쳤으면, 나는 머리를 깍았을까. 내가 버리는 세상은 모두가 아니야, 바로 이 세상이야. 네가 나를 버리고 가면서도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는 세상 그것을 없애려는 거야" 그래서 그는 크메르루스(1975-1979년까지 집권한 급진공산주의 운동 단체.) 의 열성 혁명가가 된다.세상의 가치를 바꾸기 위해 총을 들었던 것이다. 결국 크메르루즈가 집권을 하지만 아니라이는 남편인 쿤을 탈출시키고 그녀 자신은 전염병으로 사경을 헤매다 무니의 손에 의해서 죽는다.무니는 그녀가 남긴 그 자신의 딸을 안고 밀림으로 들어가 세상과 선을 긋고 고립된 생활을 한다. 아니라이가 남긴 프놈펜의 집에 현재에 무니는 노인이 되어 스라이는 생명력이 넘치는 여자가 되어 함께 돌아오게 된다. 또 한 남자.남상훈. 그는 이정배라는 이름으로 여권을 위조하여 캄보디아에 흘러들어온다. 고국에서의 실패한 꿈을 캄보디아에서 실현시키려.. 자신과 엄마를 배신하고 새 여자를 택한 아버지. 그로인해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내야 했던 그. 언제나 일등을 놓치지 않았던 그는 그로인해 항상 이등의 자리에 머물러야 했던 그래서 졸업식 때 큰 상을 놓치게 된 그러나 그가 좋아했던 여학생이었던 이 종은의 부모와 선생님의 계략으로 인해 세상에 대한 분노를 키운다. 그 계략이란 다름아닌 시험시간에 납부금이 밀렸다는 이유로 그를 벌을 세우고 시험시간이 절반이나 지나간 후에 시험을 치게 한 것이다. 벌을 오래 서 덜덜 떨리는 손으로 시험지에 답을 써내려갔던 어린 소년이었던 남상훈. 자신이 좋아했던 이 종은이라는 여학생을 위해 상까지 양보하겠다는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어린 소년 남상훈은 어른들의 비열한 계략에 분노를 느끼며 손가락 사이에 면도칼을 끼우고 의자의 걸린 선생님의 양복을 쫙쫙 그어내렸던 것이다. 무니가 한 손에 총을 들었던 것처럼...다만 무니가 이 세상을 변혁하려 했다면 그는 자신을 조롱했던 세상의 흐름 즉 자본주의의 중심에 서고자 했던 것이다. 이 두 사람은 결국 캄보디아 프놈펜의 오래되고 낡은 집에서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계로 한 집에서 머무르며 갈등을 겪는다. 이긴자만이 살 수 있는 욕망의 밀림지. 불합리와 서슴 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총소리가 일상인 사회.그래서 목숨도 내일도 기약할 수 없는 나라. 뇌물이 사람의 목숨을 건지고 쉽게 버릴 수 있는 사회 그리고 처철한 가난과 흥청이는 부가 양극화 현상을 이루는 나라.1989년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시장경제체제로 돌입한 엉성한 시스템 속에 무수한 함정을 파놓은 나라. 그리고 자본주의의 흐름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나라가 바로 캄보디아였던 것이다. 이러한 캄보디아에 처음으로 도착한 외교관의 부인 숙영. 그녀는 "한쪽만 살이찌는"불구의 어린 아들을 미국에 남겨둔 채 온 섬약한 어미이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세상"인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으로 아픈 나날을 보낸다. 그래서 그녀는 슬프고 나약한 모든 것들에 대한 따뜻한 사랑의 시선을 가지고 있다. 커다란 체격에 숨길수 없는 심약함과 순수한 영혼을 가지고 있는 남상훈에게 연민의 정을 느낀다. 한편 흐름이 잡히지 않은 그 틈새를 타고 남상훈은 중심에 서고자 했지만 자본주의 흐름은 그것이 엉성한 것이든 질서가 잡힌 것이던 그 흐름을 움직이는 중심들은 쉽게 뚫을 수 없는 견고한 그 무엇이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그들이 쳐 놓은 그물에 걸려 자신이 꿈꾸던 흐름에 합류하고자 하는 그의 꿈은 좌절된다. 그것도 한국주민등록의 회복이라는 미끼를 덥석 물은 독일입양아 출신의 한국인인 조지의 배신으로...조지 역시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은 그 배신에 대한 집착으로 헤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남상훈의 아이 출산을 얼마 앞두지 않은 스라이는 함정을 파 놓았던 당사자들을 향해 총을 발사한다. 그리고 그녀 또한 심한 부상을 입고 죽어간다. 그녀가 무니에게 남긴 말은 참으로 가슴 뭉클하다. "난 알아요 그 사람은 돌아올 수 없어요....상대를 망쳐놓치 않고는 끝내지 않는 거지요. 당신도 그걸 알고 있지요.타. 그런데 당신마저 망가져 가고 있었어요.당신이 얼마나 순결한지를 난 깨달았어요. 당신이 망쳐지는 모습을 보고서 말이예요.그들이 당신까지...망치게 할 수는 없었어요." 군에게 뇌물을 쓰며 남상훈을 구하려 백방으로 뛰는 타(무니)의 망가져 가는모습을 그녀는 더이상 볼 수 가 없었던 것이다. 타의 순결을 지키기 위하여 그녀는 또한 총을 들었던 것이다. 결국 남상훈도 스라이도 죽고 이둘의 새로운 생명인 아기가 태어나고 이 아기는 스라이의 유언대로 숙영의 품에 안기게 된다. 결국 "한쪽만 살이찌는"불구의 아들을 통해 슬프지만 아름다운 세상을 사랑으로 품으려 하는 숙영.불구의 세상을 사랑과 연민으로 떠안으려는 그녀만이 참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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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동네 소설상을 받은 작품은 일단 재미가 보증 돼 있다. 이 책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98년도에 씌여진 것을 감안하더라도 아주 세련된 문체를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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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심 심사평에서 볼 수 있듯이 호흡이 간결하고 압축된 문장으로 급격하면서도 도도한 메콩강의 흐름을 대변해 주는 문체가 이 작품의 성격을 드러내 준다고 하겠다.
실제로 동남아라는 카테고리로 묶여 있으면서도 우리의 의식 저편에 존재하는 캄보디아라는 나라를 배경으로 한 인간 군상들의 필연적 만남을 전제로 한 이야기의 전개는 지극히 예언적이다.
장님이나 신체적 불구자와는 달리 말을 못하는 벙어리나 귀가 안들리는 설정은 자못 신비롭다. '타'의 딸 '스라이'는 그래서 그 척박한 환경이 오히려 순수로움으로 남을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한 가능성은 순수에 대한 열망이 강한 것처럼 보여지는 남상훈에게까지 연결되어진다고 본다.
그리고 조지, 숙영 등이 얽혀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절름거리며 살아가야 하는 인생에 대한 것들이다.
물론 이 절름거린다는 상황은 공산 캄보디아가 겪어야 하는 상황에 다름 아니다. 1수상, 2수상이 있는 언밸러스한 정치 상황에 더욱 언밸러스함을 던져 주는 관리들의 부패와 착취, 그런 힘과는 거리가 먼 핍박 또는 억압이라는 이름의 일상을 지내야 하는 평범한, 그러나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인생들이 겪어야 하는 좌절과 혹간 보이기도 하는 희망인 척 하는 몇가지 작은 성취는 결국 프놈펜이라는 공간을 칠흙같은 빛으로 채색해버리고 만다.
그리하여 그 억압된 소원, 욕망, 분노들이 붉은 색의 메콩강으로 흘러가는 것인가? 강이라는 의미는 이 작품에서 뿐 아니라 어느 경우에도 용광로같은 역할을 하지 않던가!
작가는 무엇을 예언하고 싶었는가. 분노는 억압이 클수록 더욱 커지지만 결국 한없이 커진 분노는 좌절을 불러 온다는 것을 말한다고 본다. 붉은 색이 던져 주는 공포는 파란색으로 희망을 찾으려고 하는 등장인물들의 허망한 몸짓으로 표현된다는 상황은 이 도시에 예언이 없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우리는 일찍이 불교를 받아들였소 스스로를 정화하지 않으면 다음 세상에서 벌을 받게 된다고 배웠지요. 절대로 복수 같은 건 용납되지 않았소. 내가 받는 부당한 대우는 다 내 업의 결과이니까요. 주변의 여러 나라들, 특히 베트남이나 태국의 침략으로 괴로움을 겪으면서도 우리는 스스로를 정화해야 한다고, 그래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던 거요. 불란서인들이 들어와 우리의 것을 빼앗아가고, 우리의 혼을 망쳐도 우리는 법어만을 외우고 있었고. 그런데 누군가가 그렇지 않다고 가르친 거요. 마음 속에 짓눌려 있는 진실을 말하라고, 우리의 미래를 우리가 책임질 수 있다고 말이요. |
| 본심 심사평에서 볼 수 있듯이 호흡이 간결하고 압축된 문장으로 급격하면서도 도도한 메콩강의 흐름을 대변해 주는 문체가 이 작품의 성격을 드러내 준다고 하겠다. 실제로 동남아라는 카테고리로 묶여 있으면서도 우리의 의식 저편에 존재하는 캄보디아라는 나라를 배경으로 한 인간 군상들의 필연적 만남을 전제로 한 이야기의 전개는 지극히 예언적이다. 장님이나 신체적 불구자와는 달리 말을 못하는 벙어리나 귀가 안들리는 설정은 자못 신비롭다. '타'의 딸 '스라이'는 그래서 그 척박한 환경이 오히려 순수로움으로 남을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한 가능성은 순수에 대한 열망이 강한 것처럼 보여지는 남상훈에게까지 연결되어진다고 본다. 그리고 조지, 숙영 등이 얽혀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절름거리며 살아가야 하는 인생에 대한 것들이다. 물론 이 절름거린다는 상황은 공산 캄보디아가 겪어야 하는 상황에 다름 아니다. 1수상, 2수상이 있는 언밸러스한 정치 상황에 더욱 언밸러스함을 던져 주는 관리들의 부패와 착취, 그런 힘과는 거리가 먼 핍박 또는 억압이라는 이름의 일상을 지내야 하는 평범한, 그러나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인생들이 겪어야 하는 좌절과 혹간 보이기도 하는 희망인 척 하는 몇가지 작은 성취는 결국 프놈펜이라는 공간을 칠흙같은 빛으로 채색해버리고 만다. 그리하여 그 억압된 소원, 욕망, 분노들이 붉은 색의 메콩강으로 흘러가는 것인가? 강이라는 의미는 이 작품에서 뿐 아니라 어느 경우에도 용광로같은 역할을 하지 않던가! 작가는 무엇을 예언하고 싶었는가. 분노는 억압이 클수록 더욱 커지지만 결국 한없이 커진 분노는 좌절을 불러 온다는 것을 말한다고 본다. 붉은 색이 던져 주는 공포는 파란색으로 희망을 찾으려고 하는 등장인물들의 허망한 몸짓으로 표현된다는 상황은 이 도시에 예언이 없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 p.207 우리는 일찍이 불교를 받아들였소 - 중략 - 스스로를 정화하지 않으면 다음 세상에서 벌을 받게 된다고 배웠지요. 절대로 복수 같은 건 용납되지 않았소. 내가 받는 부당한 대우는 다 내 업의 결과이니까요. 주변의 여러 나라들, 특히 베트남이나 태국의 침략으로 괴로움을 겪으면서도 우리는 스스로를 정화해야 한다고, 그래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던 거요. 불란서인들이 들어와 우리의 것을 빼앗아가고, 우리의 혼을 망쳐도 우리는 법어만을 외우고 있었고. 그런데 누군가가 그렇지 않다고 가르친 거요. 마음 속에 짓눌려 있는 진실을 말하라고, 우리의 미래를 우리가 책임질 수 있다고 말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