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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기본적 임무는 무엇인가?
"교육의 기본적 임무는 무엇인가?" 내용보기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문화비평가 중의 한 사람인 저자는 서문에서 이 글의 목적은 디즈니사가 미국의 대중문화 형성에 어떤 교육적인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굳이 디즈니가 아니더라도 대기업, 특히 거대한 다국적 미디어 기업들이 점점 더 정보를 통제하고, 공공영역을 침해하고 독점하여 정치·경제적으로 전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것에 대한 문제
"교육의 기본적 임무는 무엇인가?" 내용보기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문화비평가 중의 한 사람인 저자는 서문에서 이 글의 목적은 디즈니사가 미국의 대중문화 형성에 어떤 교육적인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굳이 디즈니가 아니더라도 대기업, 특히 거대한 다국적 미디어 기업들이 점점 더 정보를 통제하고, 공공영역을 침해하고 독점하여 정치·경제적으로 전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것에 대한 문제의 심각성으로부터 결코 우리들도 자유로울 수 없을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디즈니인가? 세 명의 아들을 둔 아버지로서 저자 역시 아동문화의 관찰자가 되기 전에는 (디즈니로 대표되는) 애니메이션은 상상과 환상을 자극하고 순수하고 건전한 모험을 하고 싶은 충동을 유발시키는 유익한 매체라는 가정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노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디즈니의 영화가 전달하는 사회 문화적 메시지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저자는 디즈니처럼 막강한 권력을 가진 문화적 우상이 미국에는 드물다고 말한다. 따라서 부모와 교사와 일반인들은 디즈니 영화가 우리 어린이들의 가치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디즈니가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들 그렇다면 디즈니는 무엇을 가르치는가? 이 문제를 논하기에 앞서서 우리는 먼저 '공교육의 위기'라는 측면을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이 책을 접하다 보면 '공교육의 위기'가 결코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저자는 미국의 학교가 보수주의자와 자유주의자 할 것 없이 민주주의의 대화 과정에서 비판의식을 제거하고, 시민정신을 개인의 의식으로 돌리며, 시민의 책임을 소비행위로 한정하는 등 도전과 위협의 상황에 처했다고 주장한다. 그가 보기에 기업들은 세계 자본주의화에 따라 학교의 사립화, 재정 보조, 선택적 교과과정, 학교와 기업간의 산학협동 프로그램을 통해 학교를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에 두려고 시도하고 있으며, 공교육에 대한 이러한 공격은 시장의 도구적 논리로 감독 받기를 거부하는 공공기관을 와해(민영화)시키려는 계획의 일부이다. 따라서 교육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은 민주적인 공공의 삶을 심화시키고 확장해가고자 하는 투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나는 이미 왕인데 내가 왜 로스앤젤레스의 시장에 출마해야 하는가?" 월트 디즈니의 말이다. 그는 또한 "나는 미래의 학교 건설에 참여하고 싶다. …학교 설립은 전국뿐만 아니라 전세계로 뻗어나갈 교육 시대를 위한 토대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월트의 소망은 그의 사후에 후계자인 마이클 아이스너에 의해 '축하(Celebration)마을'과 '축하학교'로 실현되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축하마을과 축하학교를 만들기로 한 배경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하고 나서 디즈니가 '미래의 학교'를 만들려는 시도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다양한 논거를 제시한 후 그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디즈니의 교육기관들은 비판적이고 윤리적인 사고보다는 기술적 습득을 강조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기보다는 세상에 순응해나갈 수 있는 학생과 노동자만을 생산한다." 이게 과연 미국에만 해당하는 일일까? 중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과연 나는 올바른 길을 걷고 있는지, 미래의 학교상과 교사상은 어떠해야 할지 자문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들이 디즈니에서 배우는 것들 저자에 따르면 디즈니는 두 가지 측면을 지니고 있다. 디즈니는 어린이들에게 시각적 자극과 기쁨을 제공함과 동시에 종종 모순된 메시지를 전달한다. 특히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논란의 소지가 많은 문제들은 여성에 대한 성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방식과 인종차별에 대한 논란이다. 예를 들어 "「알라딘」에서 주체적인 행동과 힘은 알라딘에게 집중되어 있다. 알라딘이 사랑에 빠진 자스민은 그의 즉흥적인 욕망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출세의 주춧돌이다. 자스민의 인생은 거의 전적으로 남성들에게 달려 있고, 그녀의 행복을 마침내 결혼을 허락해주는 알라딘에 의해 보장된다"는 것이다. 「라이온 킹」은 어떨까? "악의 상징인 스카는 선한 사자들보다 털이 검다. 왕족에 속하는 등장인물들은 영국의 귀족적인 말투를 사용한다. 그러나 셴지와 반자이, 즉 혐오스런 하이에나 떼들은 도시의 흑인이나 스페인계 젊은이들의 말투로 … 묘사된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속에 이러한 인종차별과 여성차별의 예는 무수히 많다. 심지어 「귀여운 여인」이나 「굿모닝 베트남」같은 디즈니의 영화 속에서도 동일한 메시지를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경악케 한다. 이런 것들이 아무런 비판 없이 어린아이들에게 수용된다고 생각할 때 등골이 오싹할 따름이다. 저자의 이러한 탁월한 분석이 없었다면 나 역시 마찬가지의 길을 걸었을 테지만 말이다. 교육의 기본적 임무는 사회정의를 위한 투쟁이다. 저자가 볼 때, 디즈니는 공공영역을 기업화하고 대중의 표현과 선택을 제한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한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민주주의의 정의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정부의 간섭 없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고 쓸 수 있는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것은 정말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와 시장을 혼동하는 행위는 정의, 자유, 평등, 그리고 시민권과 같은 시민사회와 민주주의에 대한 중요한 가치에 대한 와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중심에는 디즈니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디즈니에 대한 분석은 대단한 교육적인 효과를 지니고 있다. 상식을 조작하는 디즈니의 이데올로기에 도전하는 일은 기업문화가 어떻게 교육과 오락의 관계를 형성하고, 제도 권력과 문화 정치의 관계가 어떻게 재구성되는지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다. 저자에게 있어서 '교육적 투쟁'은 민주주의를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다. 따라서 그는 교육에 있어서의 이런 투쟁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교육적 투쟁은 (1)비판적 의식을 가르치는 공공영역을 창조하고, (2)빈부의 격차를 줄이고, (3)다양한 공공영역과 연관된 민주적인 미디어 체계를 창조하기 위해 자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폭력영화가 청소년에 끼치는 해악을 비판하기는 쉽다. 마찬가지로 담배회사에 청소년의 흡연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더욱 경계해야 할 일은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무의식적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상업문화'에 대한 분석이다. 그리고 그 역할을 헨리 지루가, 그리고 이 책이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내가 아는 모든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m****1 2002.02.20.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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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 의도가 퇴색되었다면....
"처음 그 의도가 퇴색되었다면...." 내용보기
어린이 왕국 디즈니에 이러한 비판을 가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순수는 그 외의 모든 것을 희색시켜 버린다. 마치 사랑과 같이... 비판 의식을 가로 막고 여러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백인 우월주의 같은 사상을 은연 중 순수를 통해 주입시키며 모든 미디어와 상권을 장악한 체 소비주의와 기업 문화를 퍼트리는 디즈니. 디즈니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해 본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
"처음 그 의도가 퇴색되었다면...." 내용보기
어린이 왕국 디즈니에 이러한 비판을 가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순수는 그 외의 모든 것을 희색시켜 버린다. 마치 사랑과 같이... 비판 의식을 가로 막고 여러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백인 우월주의 같은 사상을 은연 중 순수를 통해 주입시키며 모든 미디어와 상권을 장악한 체 소비주의와 기업 문화를 퍼트리는 디즈니. 디즈니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해 본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리고 그런 걸 느껴보지도 못했다. 그렇지만 만에 하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충분한 문제제기의 동기가 제공된다. 디즈니가 의도했건 안했건... 디즈니에 대한 지루의 의견을 들으며 마치 사회주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소를 띈 사회주의. 그곳으로 유도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의 존재가치를 한없이 낮추게 하며 기업의 존재가치만 키워가는 독재군주의 사회주의 말이다. 처음에 월트의 의도가 그런 것이 아니었다할 지라도 그렇게 퇴색되어 버린 것이 사실이라면 분명히 문제제기를 통해 비판과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지루의 해결책은 좀 미흡한 감이 없지 않지만 그 방향, 접근은 동의한다. 문제제기-비판의식- 해결책. 우리가 해야 할 몫이다.
w*****9 2004.02.2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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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순수함과 거짓말
"디즈니 순수함과 거짓말" 내용보기
디즈니는 더 이상 미국인 월트 디즈니라는 한 개인의 성(姓)만이 아니다. 디즈니는 미국의 유명한 만화영화 제작사이자 미디어 기업이면서 전 세계를 시장으로 하는 거대 기업으로써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지구촌에 살면서 디즈니의 문화적 세례를 받지 않고 자라기는 쉽지 않다. 나 자신도 어렸을 적에 공영방송에서 해주는 디즈니 만화를 보기 위해 일요일 아침마다 텔레비전 앞에 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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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는 더 이상 미국인 월트 디즈니라는 한 개인의 성(姓)만이 아니다. 디즈니는 미국의 유명한 만화영화 제작사이자 미디어 기업이면서 전 세계를 시장으로 하는 거대 기업으로써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지구촌에 살면서 디즈니의 문화적 세례를 받지 않고 자라기는 쉽지 않다. 나 자신도 어렸을 적에 공영방송에서 해주는 디즈니 만화를 보기 위해 일요일 아침마다 텔레비전 앞에 앉던 기억이 난다. 
많은 아이들은 자라는 동안 미키마우스와 같은 디즈니 만화의 주인공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한다. 그 과정에서 디즈니의 주인공들은 낯선 나라의 주인공이 아니라 그들과 친숙한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디즈니사의 주인공들이 보편적인 것, 친숙한 것으로 인식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 지구를 아우르는‘보편성’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있을까?
사람은 일반적으로 슬픔, 기쁨, 즐거움, 놀라움 등의 감정을 갖게 된다. 이런 면에서 생가해보면 어느 정도의‘보편성’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슬픔, 기쁨과 놀라움을 느끼는 상황이나 맥락 등은 각기 다른 상황적 맥락이나 장면들이 존재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한 문화권에서 기쁘거나 즐거운 것이 다른 문화권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코미디 영화는 많은 미국인들에게 즐거움을 주지만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어수선함과 지저분함만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는 한 문화권 내에서도 같은 영화에 대해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즐거움’이라는 말은 어느 문화나 가질 수 있지만 이를 느끼는 것은 정도나 상황은 분명히 다를 수 있다. 그런 점에서‘보편성’은 모두가 절대적으로 같은 느낌을 갖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디즈니는 이러한‘보편성’이 존재한다고 말하면서 디즈니가 말하는‘보편성’은 순수함이라고 포장한다. 그들이 말하는 보편적 순수함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디즈니식으로 문화를 해석하고, 소비하며, 생각하고, 교육 받는 것을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보편성’은 각 사회마다 다를 수 있다. 그 다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그야말로 단 하나의 문화만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 다른 의견과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는 사라지고 자신들의 기준을 강요하는 사회가 될 수 있다. 고작 디즈니의 만화 하나에 대해 순수하게 바라보지 못 하고 꼬여있다고 내게 돌을 던진다고 해도 전 세계를 아우르는‘보편성’이 존재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싶다. 
디즈니의 세계에는 모두가 행복하다. 비록 초반에는 온갖 고생을 하고 고초를 겪을지라도 주인공들은 이를 모두 이겨내고 사랑을 쟁취하고 행복한 결말을 맞게 되는 것이다. 디즈니가 말하는‘순수함’이라는 것은 이와 같은 것이다. 현실에서 사실을 배제하여 따로 떼어 놓고 이 세상 어딘가에는 고통도 상실감도 없는 모든 것이 충족되는 그런 세계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원작은 어찌 됐든지 디즈니의 세계에서 새롭게 탄생되는 주인공들은 모두가 승리자이다. 이것이 디즈니의 철학일 것이다. 월트 디즈니는“어린이들에게 세상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어린이들은 너무나 맑고 투명하기 때문에 결코 나쁜 것을 보거나 이로 인해 다쳐서는 안 된다라고 부모들은 생각한다. 정말 그럴까? 아이들은 이런 것들로부터 무관심하게 살아야만 하는 존재일까? 그렇다면 우리들은 언제부터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일까?
슬픔도 절망도 좌절도 없는 인생은 없다. 또한 기쁨만이 존재하는 인생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그런 곳이 있다면 그곳은 말 그대로‘Utopia’일 것이다. 단어가 의미하는 것처럼‘존재하지 않는 곳’이니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말이 되겠다. 설령 저런 곳이 있다고 해도 그곳이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좋은 곳이라고 할 수 없다. 인간은 기쁨으로부터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슬픔과 좌절로부터도 끊임없이 배우면서 살기 때문이다. 슬픔도 좌절도 없는 인생이라면, 내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행복해지는 것일까? 오히려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생에 대한 어떤 열정이나 환희도 없지 않을까? 달콤하기 만한 환상은 현실을 살아가는 데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
어른들은 왜 아이들에게 현실을 보여주려고 하지 않을까? 어른들은 왜 아이들이 천진난만한 아이로 살기를 원할까? 그들도 나이가 들면 이 세상에서 피를 흘리면서 살아가야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디즈니는 사람들에게 쉴 곳을 제공한다. 현실로부터 도피하여 그들의 험난한 삶에 대한 시름을 잠시 잊은 채 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현실 속에서 많은 착한 사람들은 고통을 겪고 살지만 디즈니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주인공은 손해를 보다가도 말미에는 승리하고, 악당은 처음에는 제법 위세를 부리다가도 결국에는 패배하고 만다.‘매트릭스’라는 영화는 현실을 두려워 현실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알약을 삼키기만 하면 끔찍한 현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디즈니는 이를 파악하고 사람들에게 알약을 나누어준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알약을 기쁜 마음으로 삼킨다. 마치 자신들이 처음부터 그 알약을 원했던 것처럼. 
그러나 알약은 그 자체로 심한 부작용을 초래한다.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더 나아가 안락한 생활을 보장해 줄 수 있다고 이야기 하지만 그렇지 않다. 꿈과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아이들은 디즈니의 세계가 미국 시민으로 인정하는 백인 중산층 가정의 아이들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꿈과 희망도 갖지 못하게 되는 현실 앞에서 좌절하게 된다. 사실 꿈과 희망은 언제든지, 어느 곳에서나 존재하는 것이지 디즈니의 세계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닌데도 말이다. 디즈니식의 꿈과 희망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꿈과 희망이 말이다. 
디즈니는 교묘한 형태로 꿈과 희망을 품을 수 있는 백인 중산층의 가치를 드러낸다. 인종주의와 여성비하, 전체주의와 같은 정치적 이념들은 미키 마우스와 도널드 덕과 같은 주인공들을 통해 드러난다. <알라딘>에서 알라딘은 전혀 아랍인 같지 않고 백인과 같은 외모에미국적 농담을 구사하는 인물이고 <인어공주>의 아리엘은 상체를 드러내 놓고 있어도 인종차별적이라거나 선정적이어서 아이들에게 유해하다는 지적을 받지 않는다. 미키 마우스와 그의 친구들의 모험이 굉장히 폭력적이지만 이는 만화적 상상력으로 치장된다. 생쥐나 다람쥐와 같은 주인공들은 자기보다 큰 적을 상대로 만화가 아니고 현실 세계라면 잔혹하기 그지 없는 방법으로 응징하지만 이를 보고 끔찍하다거나 폭력적이라고 지적하는 사람은 없다. 디즈니는 순수하고 아이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디즈니에 익숙한 아이들은 디즈니의 주인공과 다른 외모를 가진 자신이 모습에 실망하게 된다. 낮은 코와 하얀 피부를 갖지 못하고 디즈니의 주인공만큼 키가 크지 않으며 작은 눈의 자신을 깨닫게 된다. 디즈니는 이 세상을 하나의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기준에 해당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은 곧 디즈니 세계 속의 야만적이고 교활한 악당과도 같은 존재인 것이다. 디즈니가 제시한 외모적 기준에 상처 받는 많은 흑인과 황인이 존재한다. 디즈니는 그들을 타자화하고 있다. 비록 그들이 <뮬란>이나 <포카혼타스>에서 다른 유형의 주인공들을 보여주고 있다고 히지만 지루의 설명처럼 이 역시 기만적이며 그 안에는 다른 형태의 백인들이 동양을 바라보는‘오리엔탈리즘’적인 속성을 보여주고 있다. 서구에서 보는 동양이란 서구에 대한 타자, 즉 남성적인 서구에 대한 여성적인 동양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녀들은 강인한 듯 보이지만 모든 정치적 문제를‘사랑’이라는 화두로 넘어선다. 그녀들을 둘러싼 그 모든 것들 역시 사랑 앞에서는 더 이상 그녀들을 괴롭힐 수 없게 된다. 이성애만을 사랑으로 보는 디즈니의 세계에서는 동성애는 존재할 수 없다. 이는 일탈이며 디즈니의 세계관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가족 중심의,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이며 백인 중심의 세계가 디즈니가 말하는 완벽한 세계인 것이다. 디즈니의 세계에서는 남성은 주체적인 생각을 가진 유일한 인간이며 여성은 부차적인 존재이다. 설령 여성이 이러한 성격을 소유한 것처럼 묘사된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결국 남성들의 세계에 안착함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존재일 뿐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디즈니는 일개 만화영화 제작사가 아니다. 각종 미디어 그룹을 소유한 거대 기업이며 미디어 제국인 것이다. 미디어는 담론을 보도하는 것만으로 그 역할을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담론을 생산하고 소비하며 이를 사람들 속에 문화의 하나로 뿌리내리게 하는 힘이 있다. 언론을 장악하고 디즈니에 반대되는 책들을 출판을 막음으로써 사회의 건전한 자기비판과 소통 방식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 국가의 혈관을 막아 자정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토록 하고 있다. 디즈니의 방식을 따라야만 아름다운 왕국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을 하면서 사람들을 끊임없이 세뇌하고 교육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세뇌의 효과는 미국의 베이비 붐 세대의 예에서 알 수 있듯 자라면서 큰 힘을 발휘하고 있고 앞으로는 더욱 더 그러할 것이다.
아이를 달콤한 말로 꾀어내어 유괴하는 유괴범처럼 디즈니는 디즈니의 세계로 올 것을 꿀과 같이 달콤한 말과 영상으로 꾀어내고 있다.디즈니의 주인공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소비하라.‘Pax Disneya’를 외치면서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문화적 가치를 공유하는 그런 세상.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세상이 오고 있다는 사실은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 더욱 나를 겁에 질리게 한다.
사회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 교육의 목적은 신념을 키워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신념이라도 만들어 낼 능력을 박멸하는 데 있다.”라고 말했다. 한나 아렌트, Totalitarianism, New York, 1968
 한나 아렌트의 이 지적은 디즈니가 추구하는 것에 대한 적절한 지적이다. 디즈니의 세계에서‘소비’를 모든 것에 우선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그런 세상에 되도록 만들고 있으며, 더 나아가 이를 교육의 과정으로 연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교육은 결코 학교교육으로만 국한되서는 안 되며,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맥락을 찾는 과정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 단순히 기능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수단 정도로 이해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지루의 이번 글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각 학교에서는 교과목만이 아니라 현재의 문화적 담론에 대한, 현 세계를 읽어낼 수 있는 교육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학교교육이 세상과 절연된 지식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세상과 함께 하고 역사 속의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호흡하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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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뒤의 디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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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어린이들이 즐겨 보고 참여하는 거대한 디즈니왕국의 실체를 예리한 칼날로 해부해 놓은 듯한 내용이다. 어느 나라 어린이건 디즈니를 아는 어린이라면 꿈에서도 가고 싶어하는 디즈니 왕국. 그리고 그것을 본따 만든 놀이공원도 수없이 많은 것이 디즈니의 위력이다. 특히 초등학교 어린이라면 종류에 관계없이 즐겨 보는 디즈니 만화영화의 위력 또한 대단하다. 하지만 섬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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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어린이들이 즐겨 보고 참여하는 거대한 디즈니왕국의 실체를 예리한 칼날로 해부해 놓은 듯한 내용이다. 어느 나라 어린이건 디즈니를 아는 어린이라면 꿈에서도 가고 싶어하는 디즈니 왕국. 그리고 그것을 본따 만든 놀이공원도 수없이 많은 것이 디즈니의 위력이다. 특히 초등학교 어린이라면 종류에 관계없이 즐겨 보는 디즈니 만화영화의 위력 또한 대단하다. 하지만 섬세하고 아름답고 상상력 풍부한 화면 뒤에 숨은 냄새나는 의도 역시 만만치 않은 것 같다. 헨리 지루의 직설적인 표현이 없었다면, 이 바쁜 세상에 스쳐 지나갈 법한 문화의 해악이 어찌 우리네 가슴에 스며들 수 있었을까? 가면 뒤에 숨은, 권력을 장악한 디즈니 그룹의 맹위가 새삼스레 두려울 뿐이다. 자신을 바로 알고 주관을 갖고 생을 즐겨야 될 것 같다. 어린이뿐 아니라 다 큰 어른들의 마음까지 즐겁게 달구어 주었던 왕국의 이면이라니! 하긴 알고도 복잡하게 더 알려하지 않았던 우리의 무심함 속에 감추어진 허허실실이었을까.

[인상깊은구절]
어린이 문화의 담당자로서 디즈니의 역할이라는 말을 그 표현법 때문에 막연하게 받아들였는데, 디즈니의 애니메이션<헤라클레스>를 선전하는 광고 홍수를 겪고 난 후에, 나는 교육적 전략과 탐욕의 결합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다. 나의 세 아들이 텔레비젼 뉴스를 통해 보여준 뉴욕에서 일어나는 디즈니 행진, 즉 30군데의 교통을 막고 가는 곳마다 화려하고 멋진 광경을 연출하는 디즈니의 장관을 보고서는 경탄을 금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j******3 2003.02.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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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고판 '슈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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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을 분석하는 사회학(또는 경영학) 보고서는 요즈음 트렌드같이 느껴진다. 그 책들은 분석대상 기업을 PR하거나, 기술하거나 또는 비판한다. 이 책, '디즈니 순수함과 거짓말'은 그 중 대상기업을 비판하는 편에 속해 있다. 아이들에게 꿈을 주는 동화의 나라 이미지를 구축하는 디즈니를 비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최근 디즈니가 심어주는 꿈이 단순한 환상일 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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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을 분석하는 사회학(또는 경영학) 보고서는 요즈음 트렌드같이 느껴진다. 그 책들은 분석대상 기업을 PR하거나, 기술하거나 또는 비판한다. 이 책, '디즈니 순수함과 거짓말'은 그 중 대상기업을 비판하는 편에 속해 있다. 아이들에게 꿈을 주는 동화의 나라 이미지를 구축하는 디즈니를 비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최근 디즈니가 심어주는 꿈이 단순한 환상일 뿐이란 지적도 심심치 않게 있어왔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디즈니는 순수한 기업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이미지가, 산산히 부서진다. 디즈니의 황금 만능주의, 극우 보수 이데올로기, 비인간적인 잔인성.... 믿기 어렵다면, 읽어보길 바란다.

[인상깊은구절]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내재하는 인종차별은 노골적인 표현과 더불어 아프리카 출신 미국인과 다른 피부색의 사람들에 대한 복잡한 표현을 기피하는 은근한 태도로 구체화된다. 그와 동시에 백인의 형상은 중산층의 사회관게와 가치체계, 언어사용 등의 특권적인 표현을 부여하여 보편화시킨다.
s*******7 2001.08.0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