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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 이야기 2015-135 『흔들리는 마흔, 붙잡아주는 화두』 이지형 / 흐름출판 우선 정신이 번쩍 드는 시 한 편을 옮겨본다. “만권의 책을 다 읽고 자기 개수작까지 한마디 더 까야 직성이 풀리는 천재 따위는 꿈꾸지 말아라. 인생은 목숨을 걸고 까부셔야 할 가장 중심된 과녁 딱 하나만 깨우치면 되는기라. 그것을 깨우치는 덴 만 권의 책이 아니라 돌팔매질이 제일이라. 허공 속에서도 과녁을 헤아리는 돌팔매질만 익히거라.” 백기완 선생의 詩 〈아버지 교훈〉 중에서 사실 무엇에 홀려 사는지도 모른 채 방향 감각을 잃고 살다가는 삶이 대부분이다. 내 딴엔 깊이 생각해서 또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 생각하고 행동에 옮겼지만, 남이 볼 때는 그저 ‘우습다’, ‘기가 막히다’는 반응을 줄 수 있다. 물론 상대방은 그런 느낌조차도 내색 안하고 그냥 눈길을 돌리며 등을 보이고 가버리니 나는 영영 깨우칠 기회가 없다. 아니 설령 나를 깊이 생각해줘서 좋은 조언을 해 준들 내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그저 덜 후회하는 삶이되길 바랄 뿐이다. 그러나 후회하는 것도 복이다. 이 땅을 떠날 때까지 후회는커녕 ‘눈에 흙이 들어오기 전엔’하다가 그냥 간다. “나이 마흔, 불혹(不惑)이 망상임을 깨닫는 나이다.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아쉬움에 휩싸여(과거), 불확실한 전망을 두려워하고(미래), 발 디딜 곳 마땅찮은 처지를 한탄하며(현재) 흔들린다. 나이 들었다고 삶이 저절로 힘들 리 없다. 미세한 삶의 떨림을 위태롭게 느낄 만큼 예민해졌다는 뜻일 게다. 앞으로도 계속 흔들릴 것인가. 흔들림 앞에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가.” 돌팔매질 할 힘 있다고 아무데나 휘둘러봐야 허망하다. 내 삶의 여정에서 과녁하나 찾는 일이 그리 만만치 않다. 때론 남이 찾아준 과녁을 내가 찾은 것처럼 착각하고 살다간다. 이 책의 지은이도 흔들렸다. 많이 흔들렸다. 그래서 스스로 과녁을 제대로 찾는 눈을 비비고 또 비볐다.
“선(禪)에 관한 이 자그마한 해설서를, 모진 세상 헤쳐 나가는 방편의 모음으로 봐주셨으면 한다. 1,000년 전 선사들이 의지했던 화두들을 새롭게 분류하고 요즘 입맛에 맞게 풀이한 이유다. 거칠게 흔들리는 삶의 바다로 나아가자. 다른 곁가지 모두 쳐내고, 정말로 화두 딱 하나씩만 틀어쥔 채 다시 시작해보자.”
‘판을 엎으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 보름달 밝게 뜬 어느 밤. 암두가 친구인 설봉, 흠산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암두가 맑은 물이 담긴 그릇을 기습적으로 가리키더니 동료들의 반응을 구한다. 흠산이 나선다. “물이 맑으면 달이 나타나기 마련이지!” 설봉이 뒤따른다. “물이 맑으면 달이 사라지지!” 암두는 아무 말 없이 일어나더니 물그릇을 발로 걷어차고 나가버렸다. - 누구나 위기 또는 고착의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그런데 그 상황에 매몰되어서는 그 상황을 타개할 방책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판을 깨야 새로운 세계가 보이고 해결책이 보인다. ‘내려놓고 또 내려놓고’ ; 한 스님이 조주를 찾아와 물었다. “저는 일체를 버리고 텅 비운 마음으로 이곳에 왔습니다.” 조주가 말했다. “내려놓게(放下着)!”, “네? 무얼 내려놓으란 말씀입니까?” 조주가 다시 말했다. “그럼, 짊어지고 가든가(着得去)!” - 완전 말장난 같다. 삶의 무게는 누구에게나 간단치 않다. 저마다의 방법으로 그 무게를 줄이기 위해, 또 내려놓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내려놓기 위해 애를 쓰는 ‘나’를 지속적으로 점검하지 않으면 또 다른 굴레가 발목을 잡는다. ‘크게 죽고 다시 산다’ ; 한 수행자가 노 선사에게 물었다. “절벽에 매달려 있지만 곧 떨어질 듯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손을 놓게” 다른 수행자가 물었다. “벼랑 끝에 간신히 버티고 서 있는 중입니다. 어떻게 합니까?” “한 걸음 내딛게.” - 죽으라는 얘기다. 절벽에 애처롭게 매달리지 말고, 벼랑에서 애매한 자세로 궁색하게 견디고 있지도 말고 그냥 뛰어내리라는 얘기다. ‘죽을 각오’다. 나의 낡은 마음을 벗어 던지는 것이다. 구태의연한 마음, 두려움을 벗어버리라는 이야기다. 크게 한 번 죽었다가 홀연히 다시 살아나라는 얘기다. 날마다 펼쳐지는 일상 속에서, 작게라도 죽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리고 툭툭 털고 일어나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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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다. 물러자니 어깨에 잔 책임이 등을 떠밀고, 확 나아가자니 넘어지고 잘못될가봐 두렵다. 어지해야 하나. 답답한 상황을 깨뜨리고 뛰어나가고 싶지만 눈앞은 철벽이다. 내 뜻대로 움직였다가는 가족의 생계가 흐트러진다. 자초한 고해고해, 그 거친 세상의 바다를 어떻게 건널 것인가. 건널 수 있을 것인가. - '머리말' 중에서
틀을 걷어차라
세상은 풀기 어려운 문제로 가득하다. 이것을 취하면 저것을 잃고, 저것을 취하면 이것을 잃는다. 이것과 저것을 한꺼번에 잃기도 한다. 그러나 주어진 문제 안에 갇힌 채 고심해선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 일상적인 문제야, 그 문제 안에 머물면서도 얼마든지 해답을 구할 수 있다. 상식으로 풀 수 없는 난제일 경우 그런 식으로는 답이 안 나온다.
어떻게 해야 할까? 판을 깨고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 문제 자체를 깡그리 잊는 순간 해답이 돌출한다. 화두를 깨는 것은 난제 중에서도 난제다. 틀 자체를 걷어차지 않으면 기존의 틀에 내내 얽매이기만 한다. 선사禪師들은 화두를 깨려고 주어진 프레임부터 깨뜨렸다. 즉 판을 뒤엎었다.
단하丹霞가 낙양 혜림사에 들렀다. 대접이 별로였다. 한겨울에 냉방 신세를 져야 했다. 이 절에는 영험하다는 목불木佛이 하나 있었다. 야밤에 그는 조용히 방에서 빠져나와 본당에 안치된 목불을 끌어내 불을 지폈다. 난리가 난 것이다. 이에 원주 스님이 얼굴이 사색이 되어 튀어나왔다.
"이게 무슨 일이오? 감히 불상을 태우다니!" "부처님을 태워 사리를 얻으려는 것뿐이오" "목불에 무슨 사리가 있단 말이오!" "사리도 없는 나무 덩어리를 땔감으로 쓰는데 왜 호들갑이요?"
젊은 행각승의 갑작스러운 도발은 절을 충격에 빠뜨렸다. 원주원주는 절의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사람이다. 생각치도 못한 사고를 목격하고 패닉에 빠져 맨발로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성난 스님들이 몽둥이 하나씩 들고 도열해 있을 모습이 그려진다. 하지만 단하는 딱 한 마디로 그들을 제압했다.
"영험하다는 목불의 사리를 한번 확인해보자는 것뿐이거늘..."
우리가 가슴에 품고 있는 삶의 기준은 무엇인가? 우리가 무조건적으로 추구하며, 죽을힘을 다해 찾고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 가족의 행복? 건강한 노후? 아니면, 무사한 일상? 모두 좋다. 그러나 행복과 건강과 무사를 견인해줄 거의 유일한 수단으로 우리는 언제나 돈이나 권력, 출세를 꼽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의 마음은 어쩌면 무형無形의 대웅전일 것이다. 그곳에 조바심으로 안치해놓은 목불이 혹시 돈이나 명예나 권력에 대한 욕심 따위는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 당장, 내 마음속의 목불을 부수어야 한다. 그런 조건들이 우리의 행복과 건강과 무사한 일상의 필요충분조건인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목불 안에 감추어진 사리 따위는 없다. 단하가 산하山河를 떠돌던 1,200년 전의 당唐나라 때의 일은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은 어떤가? 고정관념은 여전하다. 돈, 명예, 권력 안에 행복, 건강, 안락 등의 비밀은 담겨져 있지 않다. 모조리 사리 없는 목불과 같다. 근거없는 일상의 허위허식, 목불과 결별하자.
기왓장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다
남악南嶽이 어느 날 기왓장 하나를 들고 절 뒤편으로 걸어갔다. 갑자기 주저앉더니 기왓장에 물을 적셔, 손에 집어든 다른 돌로 그 표면을 맹렬히 갈기 시작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좌선하던 젊은 스님 한 명이 쪼르르 다가와 남악에게 물었다. 순진하게 물은 이는 수행 중이던 마조였다. 남악이 웃더니 마조馬祖에게 답했다.
"기왓장을 갈아 무얼 하시려고요?" "기왓장이 어떻게 거울이 됩니까?"
남악 회양懷讓(677~744년)은 육조 혜능의 수제자다. 마조는 바로 남악의 제자이다. 혜능이 기틀을 다진 선禪은 실제로 손孫 제자인 마조 스님을 거치며 중국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렸다. 임제, 조주 등을 비롯한 중국의 걸출한 선승禪僧들이 모두 마조의 법맥에서 쏟아져 나왓던 것이다. 논리로는 다다를 수 없는 상황을 실제 몸으로 보여준 고수의 방책이 실로 놀랍다.
애쓰면 빗나간다
"수많은 경전은 가리키는 손과 같아 손가락 이끄는 대로 하늘의 달을 보다가, 달 지고 손가락 잊으면 한가하나니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잠잔다네" - 소요消遙
소요(1562~ 1649년)는 조선 중기의 선사이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경전일 뿐이니, 진정으로 쳐다봐야 할 것은 경전이 담고 있는 깨달음의 내용이라 할 달월이라는 것이다. 이어지는 문장에서 그는 달도 손가락도 한꺼번에 버린다. 즉 달이 이미 졌으니 달을 향하던 손가락도 잊으라는 것이다.
선은 매번 이런 식이다. 둘 중에 무얼 선택할까 고민하지 않는다. 양쪽을 단번에 넘어서버린다. 구분 자체를 뛰어넘는다. 허들 넘듯 안간힘을 쓰는 것도 아니다. 다리를 한껏 치켜들어 장애물을 넘는 대신, 힘 다 빼고 슬쩍 돌아갈 뿐이다. 그게 무엇이든 애를 써서 추구하지 말라는 투다. 애쓰면 고작해야 빗나간다고 말하는 것 같다.
과녁 앞에 선 궁사弓師들은 어깨의 긴장부터 푼다. 무릇 물에서 뜨려면 온몸의 힘을 빼야 한다. 무언가 의식하고, 무언가 추구하는 마음으로는 그 무언가에 쉽게 도달하지 못한다. 전후좌우의 사정과 욕심, 불안을 모두 가라앉혀야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피안에 도달할 수 있다.
평상심이 도道이다
종일토록 봄을 찾아 헤매었건만 봄은 보지 못하고 짚신이 닳도록 산 위의 구름만 밟고 다녔네. 뜰 앞에 돌아와 웃음 짓고 매화향기 맡으니 봄은 매화 가지에 이미 무르익어 있었던 것을.
행복도, 진리도, 깨달음도 멀리 있지 않다. 세상 끝까지 발품 팔아봐야 별 소득 없다.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내는 마음이 그대로 도道다. 그 자리에서 내고 있는 일상의 마음, 그 평상심 외에 다른 비밀스러운 무엇인가를 찾으려는 시도는 언제나 실패다. 이러쿵저러쿵 헛 생각을 하지 말자.
크게 죽고 다시 산다
한 수행자가 노老 선사에게 물었다. "절벽에 매달려 있지만 곧 떨어질 듯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손을 놓게" 다른 수행자가 물었다. "벼랑 끝에 간신히 버티고 서 있는 중입니다. 어떻게 합니까?" "한 걸음 내딛게"
송나라 때 도천道川이라는 선사가 살았는데, 그의 게송 중에 '현애살수懸崖撒手'라는 문장이 있다.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놓으라니? 백범 김구 선생이 거사를 앞둔 윤봉길 의사義士에게 이 게송을 인용했다는 일화도 있다. 벼랑 끝에서 한 걸음 더 내딛으란 말은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을 가르킨다. 이 말은 한 마디로 죽으라는 소리다. 애처롭게 매달리지 말고 그냥 뛰어내리라는 얘기다.
"필사즉생必死卽生 필생즉사必生卽死"
뛰어내리기 전에 먼저 해야 할 게 있다. 그렇다. 바로 '죽을 각오'다. 자신의 케케묵은 낡은 마음을 내던지라는 가르침이다. 즉 몸과 함께 구태의연하게 절벽과 벼랑 끝에 매달린 마음까지 버리라는 것이다. 천 길 아래로 내던지면 그 빈 공간으로 새롭고 건강한 마음이 힘차게 밀고 들어온다. 모든 것 내버리고 밑바닥에서 새로 출발해 성공한 이들이 바로 이런 부류이다.
삶에 지름길은 없다
누구나 웬만큼 살아보면 아는 일이지만, 사는 데 지름길은 별로 없다. 목마르면, 먼 길이라도 물어물어 물 있는 곳에 찾아가 그곳에서 직접 물을 마셔야 목마름이 해소되는 법이다. 누가 대신 물을 마셔준다고, 아니면 누군가에게 기막힌 갈증 해소법을 배운다고 목마름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언론인 출신인 저자 이지형은 직장을 대여섯 번 옮기고 나이 마흔을 넘기면서 '화두話頭'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고백한다. 과녁을 찾는 일은 곁가지를 쳐내는 일과 같다.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들이 시야를 가리므로 곁가지 다 쳐내고 나면 굵은 나무둥치가 드러난다. 순간 과녁은 또렷하게 보인다.
자기계발서 만 권보다 천년 전 선사들처럼 화두 하나를 붙잡고 다시 스타트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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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마흔,붙잡아주는 화두. 책 표지가 참 멋진 책이다라는 생각과 함게 이 책을 펼치게 되었다. 불혹의 나이라 일컷는 마흔... 사실 마흔은 불혹의 나이가 아닌것 같다. 나이 마흔이 지나며 나의 마음은 갈팡질팡 더 헤메이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현 사회를 살아가며 많은 이들이 마흔이 불혹의 나이가 아님을 실감하기에 불혹이라 일컷는 나이 마흔을 이리 역설적으로 표현한 제목이 나오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든다.
30도를 넘나드는 무더운 날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입추를 지나며 귀뚜라미 소리도 들려오니 계절의 흐름은 참으로 오묘하다.
열대야로 인한 현상인지 심란한 마음의 표현인지 늦은 시간 뒤척이다, 귀뚜라미 소리와 함께 넘어가는 책장이 마음 편하게 해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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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부르스의" 잘 있거라,나는 간다 " 와 지는 단풍잎의"잘 있거라 나는 간다"가 어찌 다른지 맥락 파악의 중요성이 작자의 표현과 함께 나에게 오롯이 전달 된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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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중요한 것이라도 절실하게 원하지 않으면,그건 허상이다. 이 문장 또한 요즘 나의 현실과 맞물려서인지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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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스님의 "산은 산이요,물은 물이다"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이 아무런 소용을 갖지 못하게 되는 경지까지는 아니라도 이 책과 함게하는 순간 만큼은 마음의 평온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심란한 밤, 꿈에
"사과는 사과맛이 있고 배는 배맛이 있듯이 각자 사람마다 맛과 향기가 다르다"는 이야기로 인해 상대에 대한 불편한 나의 마음을 달랬던 기억이 난다. 항상 제일 중요한것은 각자의 마음에 있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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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이 먹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일까? 예부터 마흔을 넘기면서부터 각각의 10년을 주기로 그 나이에 이름을 붙혔다. 마흔을 불혹으로, 쉰살을 지천명으로, 그리고 일흔을 고희로 부르는 등 해당 나이에 대한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가꾸어 나가야 하는가를 말하는 말들로 이르고 있다. 이 때, 마흔을 불혹이라고 했으나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지금의 마흔은 흔들릴대로 흔들릴 수 밖에 없는 나이다. 과거의 삶에서의 마흔과 지금의 마흔은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바뀌었기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마흔이 갖는 무게 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한가지 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팍팍한 인생에서 더한 무게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나이가 바로 마흔일 것이다. 마흔의 문턱에서, 혹은 마흔을 갖 넘긴 이들에게 마흔이라는 어려운 시기에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꼿꼿하게 내 의지대로 내 생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무엇인가를 이야기 해주는 책이라는 생각이다. 저자 이지형은 올해 마흔 일곱이다. 딱 내 나이의 누군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이기에 더욱 공감이 간다. 내게 무슨 일이 있을 때 바로 옆의 누군가의 위로가 힘이 되기는 한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순간이다. 그는 이런 마흔의 흔들림을 선인들의 말들에서 그 중심을 찾아내어 흔들리지 않도록, 꼭 붙잡아주도록 하고 있다. 틀을 깨고 나오기 위해서, 내가 선 자리를 다시 한번 돌아보도록 하기도 하고,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져 보기도 하는. 그리고 물러나서 쉰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단순해질 수 있도록, 그리고 마침내는 주저없이 떠날 수 있는 용기를 얻기 위해서 선인들의 말들을 빌어 힘을 주고 있다. 그는 마흔의 내가 버거운 것은 너무도 많은 일상의 자질구레한 것들을 벗어버리지 못함이라고, 그 곁가지들을 쳐내버리지 못함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을 정리할 수 있는 결단과 용기와 선택이 마흔의 내가 할 일이라는 말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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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저마다 하나씩 문제를 안고 살아가게 된다..10대,20대,30대 에는 대부분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가 많다면 40대가 넘어서면 자신의 문제를 벗어나게 된다...나와 가족,부모님 그리고 직장에서의문제...여러가지 문제들이 있음으로 인하여 우리 삶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그 문제만 생각한다면 그 해답을 얻기가 힘들다..알렉산더 대왕 앞에 놓여있는 복잡한 골디우스의 매듭...그 매듭을 풀기위해서 고민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가진 칼로서 그 매듭을 자르는 것이 자신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가 있다..알렉산더가 했던 행동은 그문제의 틀을벗어나 그 문제 자체를 깨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그것이 바로 요즘 이야기 하는 프레임을 바꾸는 것이다.. 대다수 40대가 가진 문제들...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문제가 가진 틀을 깨는 것이 중요하다...특히 그런 문제들은 복합적인 경우가 많으며 하나를 선택하여 그 문제를 해결하면 다른 곳에서 문제가 생겨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히게 한다...그러한 문제들을 푸는 방법 그 자체를 바꿈으로서 40대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할수가 있다... 굴레...말이나 소의 머리와 목에서 고삐에 걸쳐 얽어매는 줄을 의미하지만 우리 삶에도 그러한 굴레들이 있다..특히 40대에는 그러한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서 힘겨워하고 버거워 한다...그러한 굴레들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굴레가 가진 것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것에 걸맞는 행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들어 직장 생활을 하면서 생기는 머리 아픈 문제들...그것이 직장 뿐 아니라 가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그 직장이라는 틀 안에서 해결하기 보다는 그 직장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직장에서 나와 다른 일을 하기위한 준비라고 할 수 있다...이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건강이나 집안의 불화 등 여러가지 문제들을 자신이 가진 굴레가무엇인지 찾아가고 그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책에는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스스로 고민하면서 불교에서 그 깨달음을 얻고 있으며 불교에서 자신이 가진 문제들을 풀어가게 된다..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법륜스님이떠올랐다....법륜 스님은 전국을 다니면서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해결책을 이야기 하는데 그 해결책의 근본은 그 문제에 대해서 그 틀을 깨는 것 즉 화두를 깨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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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살펴 볼 책은 "흔들리는 마흔, 붙잡아 주는 화두" 입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화두'라는 단어는 불교에서 온 용어이기는 하지만, '이야기를 시작하는 첫머리, 어떤 중요한 문제를 탐구하기 위한 실마리'라는 뜻으로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쓰이는 용어입니다. 이 책의 출발점은 마흔이라는 나이입니다. 공자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의미로 마흔을 '불혹(不或)'이라고 했지만, 실상 우리네 마흔은 참 힘든 나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20대와 같은 겁없는 용기와 체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경험을 바탕으로 신중하게 무엇인가를 펼쳐나갈 수 있는 30대도 아니며, 그렇다고 인생을 정리하기 시작하는 50대도 아닙니다. 즉 마흔은 나아가지도 물러설 수 도 없는 나이입니다. 아직은 젊다는 생각으로 무엇인가를 하고 싶지만 이젠 노후도 걱정해야하는 나이입니다. 그렇다고 나만 생각할 수도 없는 나이입니다. 위로는 생계를 책임져 드려야하는 나이 드신 부모님이 계시고, 아래로는 아직 사회생활도 시작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철없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자신감은 줄고 걱정은 늘고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활속에서 닥치는 일들은 그때그때 그냥 때우기 일 수 가 아닌가 싶습니다. 마흔을 넘어선 저자 역시 마흔세대의 이러한 고민을 조금은 현명하게 해결하게 도와주고 본인 역시 해결하고자 이 책을 쓴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자는 책에서 이러한 진퇴양난의 마흔이 바로 삶의 곁가지가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얘기합니다. 자잘하게 이리저리 챙겨야하는 일들이 너무 많다보니 정작 중요한 일에는 신경 쓰지 못하고 떠밀리듯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기에 맘대로 살아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곁가지를 모두 쳐내고 중요한 것 하나에만 집중하면 문제를 해결 할 원리를 깨우치게 된다고 짚어주고 있습니다. 선불교에서 공부하는 책과 유명 선사들의 어록에서 발췌해온 60여개의 화두를 통해 복잡하고 어지러운 현실에서의 나만의 해결책을 찾아보는 참고서로 이 책에 접근하고자 합니다. 우선 목차를 통해 이 책에서 던지는 화두를 살펴보겠습니다. 1장 프레임 깨기: 틀을 걷어차야 답이 나온다 마음속에서 끌어내 깨뜨려야 할 것들?나무에 이빨로 매달렸을 때 벗어나는 법?판을 엎으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절실함은 반드시 방법을 찾는다?틀을 깨는 질문은 아름답다?어찌하지 못할 때 어찌하려면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와 닿은 1장과 8장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어쩌면 앞서 얘기한 머리속 복잡한 마흔의 상태를 애써 외면하고 현 생활에 안주하고 있는 마흔세대인 나,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맞닥뜨려야하는 현실임을 불안해 하며 순간순간 기억해냅니다.
'목불안에 감추어진 사리 따위는 없다. 돈,명예,권력의 내부에 행복과 건강,안락의 비밀 같은 것은 담겨져 있지 않다. 죄다 사리 없이 허울뿐인 목불들이다. 그러니 끌어내 태워라. 근거 없는 일상의 허위의식, 그 목불들과 결별하라.' 우리사회는 남의 시선을 참 중요시하는 사회입니다. 특히 마흔세대의 경우 남의 시선을 정말로 중요시 여기는 어른들의 시선에 맞춰 드려야하고, 마흔세대에선 이해할 수 없는 아이들의 시선은 이해해 보려 노력해야 합니다. 여기서 내가 챙겨야 하는 일들이 그러나 실상 나에게 중요하거나 도움이 되지는 않는 그리고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에 정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게 됩니다. 이젠 과감히 그러한 것들과 결별하고 오롯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에 집중하리라 결심해 봅니다.
'보름달은 완성만은 아니다. 단절이기도 하다. 단절이야말로 새로운 삶의 필수 조건인지 모른다.' 단절은 과거를 부정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얽매인 수많은 곁가지들을 쳐내고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과거에 얽매인 삶은 새로운 시작이나 발전을 이뤄낼 수 없음을 잘 알면서도 그것을 끊어내지 못해서 질질 끌려다니게 되고 때론 겁이 나서 안주하기도 합니다. 서서히 조금씩이 아니라 단번에 베어내야지만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틀을 걷어차고 프레임을 깨고 나면, 이젠 낡은 마음을 내던져 한계를 넘자.' 이 책을 처음부터 정독하며 제가 고민하고 얻은 결론이자 저의 마흔삶의 시작점으로 삼고자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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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 불혹 여기까지 참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간혹 미련이 남는 과거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래도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인생의 무게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또 다른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이 앞서다가도. 그동안의 내 노력이 결실을 보는 듯하다가도 그만큼 나이가 들었음을 내 눈으로 확인할 때면 흔들립니다. 아직도 열심히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현실에서 알게 모르게 뒷전으로 물러서는 스스로를 보게 될 때도 흔들립니다. 나이가 있는 만큼 나름의 처세도, 나름의 위치도 자리 잡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빠른 시대의 변화에 뒤처지고 있는 듯한 소심함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청년 시절의 패기와 열정보다는 안정됨과, 정적임을 먼저 선택할 때는 나도 모르게 나이가 들어감을 인정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매사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삶과 비교 아닌 비교를 할 때도 있고, 나름의 정형화에 발 들여놓지 않은 내 인생을 돌아보게 될 때는 나만 뒤처진 것 같고. 나만 모르는 것 같고, 나의 하루는 무의미하게 보내는 듯한 느낌도 가질 때가 있습니다. 물론 생각을 하면서도 꾸준히 노력을 합니다. 아직도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도전하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에 수많은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고, 읽고 듣곤 합니다.
<흔들리는 마흔, 붙잡아주는 화두> 저자도 똑같은 인생의 흔들림을 있었답니다. 그의 흔들림을 잡아 준 것이 선(禪)과 화두(話頭)인데요. 그 몇 개의 화두를 잡고 풍파를 헤쳐 나왔고, 가까스로 살았다고 합니다. 인생의 풍파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겪게 될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고 말은 하면서도 나에게 폭풍우가 밀려오면 중심도 못 잡고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눈앞이 안 보이고, 세상이 어지럽고, 온몸에 기운이 빠지게 흔들립니다.
<흔들리는 마흔, 붙잡아주는 화두> '화두'의 사전적 의미는 <선원에서 참선 수행을 위한 실마리를 이르는 말, 조사(祖師)들의 말에서 이루어진 공안(公案)의 1절이나 고칙(古則)의 1칙이다>라고 합니다만, 우리가 떠올리는 '화두'의 뜻은 <이야기를 시작하는 첫머리, 어떤 중요한 문제를 탐구하기 위한 실마리>라는 뜻으로 우리의 일상 속에서 흔히 쓰이는 단어이지요. 선불교에서 수행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마음에 품고 깊이 고민하는 키워드이지만, 이것은 꼭 불교에만, 종교생활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서도 '화두'를 꺼내보게 합니다. 종교의 영역이 보통 사람들의 마음속을 닦아주고 함께 수행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볼 때도 평범한 이들의, 불교에서 말하는 속세의 사람들이 번뇌 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찾아가는 수행을 하는 것처럼 <흔들리는 마흔, 붙잡아주는 화두>에서도 수행을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선불교는 불교의 한 종파입니다. 불교는 사실 '말'의 종교라고 말합니다.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뒤 수십 년에 걸쳐 설법을 하고, 제자들은 그 많은 말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그런데 붓다가 죽고 천 년이 지나 그 말들이 쓸모없다고 주장하는 무리들이 나타났지요. 메시지는 메시지라는 겁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말로써는 전해지지 않는다. 직접 체험해야 한다. 말을 버려라"
그래서 나온 방법이 바로 선(禪)이고, 경전 없이 스승과 제자들이 벌였던 대화의 기록이 선문답(禪問答)입니다. 그런데 선문답을 종교만의 것으로 본다면 너무나 숭고해서 마구 다룰 수 없다고 하는 이도 분명 있을 겁니다만, <흔들리는 마흔, 붙잡아주는 화두>에서는 속세로 끌고 내려옵니다. 누구도 범접 못하는 종교만의 것이 아닌, 늘 곁에 두고 마음껏 활용해서 복잡한 마음을 다스려가는 수행의 도구로 사용하도록 말이죠. 그래서 이 책의 첫 장을 읽자마자 '이렇게 통쾌한~!!' 이란 감탄부터 하게 됩니다. <흔들리는 마흔, 붙잡아주는 화두>를 읽으면서 아직도 가끔은 흔들리고 있는 나의 불혹을 잡아줄 수 있는 간단한 수행, 깊은 수행이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을 가지면서 말이죠.
세상은 참 모질죠.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모질기도 하지만,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에 휘말릴 때도 있습니다. 어제는 말을 잘 듣던 아이가 갑자기 부모의 속을 다 태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승승장구하던 사업이 어쭙잖은 작은 일로 곤두박질치는 경우도 있고요, 나의 속은 그렇지도 않은데 숱한 오해를 받는 억울한 경우도 있습니다. 때론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도 생깁니다. 하지만 때려치우고 싶다고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절대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수는 없다. 앞서 말한 대로, 그냥 수학문제 같은 게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일상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풀고 싶으면 풀고, 싫으면 말고 할 그런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p39)
이 말을 삶에 적용해보려고 합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나의 인생이나 타인의 인생이나 비슷하게 돌아간다는 겁니다. 물론 강약의 정도야 있겠지만, 사람 때문에 겪는 좌절과, 돈 때문에 겪게되는 좌절, 반대로 세상 때문에 웃게 되는 경우가 비슷비슷합니다.
<흔들리는 마흔, 붙잡아주는 화두>는 인생의 모든 것을 담고 있습니다. 주체는 '나'입니다. 불교에서는 '나를 내려놓으라'고 합니다. 모든 것은 '나'로 인해 생겼고, 바라게 되고 욕심이 되고, 그러다가 번뇌가 쌓인다는 말을 언뜻 들었던 것 같습니다. 불자가 아니라서 불교에 대한 얘기를 함부로 할 수는 없지만, '나를 내려놓다'라는 말이 참 깊이 각인이 되어있습니다만,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기에 이것을 실행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한 제자가 조주에게 물었다. "붓다는 누구십니까?" 조주가 되물었다. "너는 누구냐? 혜초가 법안에게 물었다. "무엇이 붓다입니까?" 법안이 혜초에게 말했다. "그대는 혜초다."
<흔들리는 마흔, 붙잡아주는 화두>에서는 나를 내려놓는 법, 나를 위로하는 법, 나에게 용기를 주는 법. 그리고 나의 마음을 다지는 법을 이야기합니다. 세상은 내가 보는 것대로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너무나 교과서적인 이야기이겠지만, 내가 좋다고 하면 좋은 세상으로 보이고, 나쁘다 하면 나쁜 것만 먼저 눈에 띕니다.
보적이 번잡한 시장을 거닐다가, 푸줏간 옆을 지나게 됐다. 마침 돼지고기를 사려는 손님과 푸줏간 주인 사이에 흥정이 시작됐다. 손님이 진열대 위에 올려놓은 고기를 유심히 살펴보다가 말했다. "최상등품으로 한 근만 주시오." 푸줏간 주인이 칼 하나 달랑 든 채, 천진하게 웃으며 말했다. "손님, 어디인들 최상품이 아니겠습니까?"
삶이라는 것이 이렇습니다. 우리가 늘 찾고자 사는 삶의 지혜와 진리는 어느 구석에 귀하게 숨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최고의 삶, 최고의 방법이라는 것도 결코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장에서 고기를 파는 푸줏간 주인의 말처럼 어디인들 최상이 아니겠습니까.
삶의 지혜와 진리가 어디 후미진 산속, 어두운 곳에 따로 감추어져 있던 적이 있던가?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발붙이고 서있는 바로 이곳이 진리의 장소일진대, 우리는 애써 먼 곳에서 의미 있는 무언가를 찾으려고 한다. --- 어디인들 최상의 장소가 아니겠는가? 무엇인들 최상품이 아니겠는가?(p68)
<흔들리는 마흔, 붙잡아주는 화두> 화두에 대해, 나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쉬울 것 같으면서도 어렵습니다. 이 책 역시 톡톡 튀는 선문답과 느낄 수 있는 뜻에 재미도 있고, 이해도 쉽게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 속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가서 왜 이런 선문답이 남겨졌는지. 그 선문답으로 중생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해주고 싶은지에 대한 글을 읽으면 나름 또 어렵게 느껴집니다. "세상에 취하지도, 힘들어하지도 마라" 책 속의 한 줄입니다. 나를 찾는 것, 흔들림 속에서 나를 찾아 기둥을 세워주는 것.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짧은 시간 안에 답을 얻으면 다행이고, 설사 답을 아직 찾는 중이라고 해도 다행입니다. 아무런 느낌 없이 사는 것보다는 나를 찾기 위해 무엇이라도 움직였다는 것에 저는 중점을 두고 싶습니다. <흔들리는 마흔, 붙잡아주는 화두> 이 책을 그렇게 해석하고 싶습니다. 나를 찾기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그런 책으로 말입니다. 지금 당신의 화두는 무엇입니까? 한적한 산사에서 들리는 풍경 같은 맑은 느낌을 떠올리게 하는 <흔들리는 마흔, 붙잡아주는 화두>에서 나의 화두를 찾아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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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을 불혹이라고 한다. 마흔이 되면 흔들리지 않고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한 건 나뿐만은 아니었나보다. 머리말에 적힌 저자의 글을 보고 동시대에 살아가는 마흔 부근의 사람들이 공감을 많이 할 것이다. '마흔, 불혹이 망상임을 깨닫는 나이다.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아쉬움에 휩싸여(과거), 불확실한 전망을 두려워하고(미래), 발 디딜 곳 마땅찮은 처지를 한탄하며(현재) 흔들린다. (6쪽)' 이 책은 삶에 지친 사람들, 흔들릴 때 단단히 붙잡아 나를 지탱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화두라고 하며, 화두들을 새롭게 분류하고 요즘 입맛에 맞게 풀이한 책이다.
요즘의 내 마음에 부합하는 책이다. 다양한 책을 읽으며 흔들리는 나를 붙들어매고 싶었지만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는 것은 핵심을 짚어내지 못하고 곁가지의 흔들림에만 관심을 집중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꽉 틀어쥐고 있던 물건들을 정리하며 애정을 갖고 관리할 것들만 추리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공허한 모임을 최대한 자제하게 된다. 마음의 번뇌를 리셋하며 복잡한 마음의 곁가지를 쳐내고 단순하게 내면을 들여다보니 이제는 화두 하나 붙잡아두고 생각을 집중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지금 이 책의 선택은 적절했다.
이 책에는 총 12장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옛사람들의 다양한 선문답을 훑어보는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고, 그에 이어지는 저자의 이야기를 보는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었다. 보름달 밝게 뜬 어느 밤, 암두가 친구인 설봉, 흠산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암두가 맑은 물이 담긴 그릇을 기습적으로 가리키더니 동료들의 반응을 구한다. 흠산이 나선다. "물이 맑으면 달이 나타나게 마련이지!" 설봉이 뒤따른다. "물이 맑으면 달이 사라지지!" 암두는 아무 말 없이 일어나더니 물그릇을 발로 걷어차고 나가버렸다. (27쪽) '판을 엎으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라는 제목의 글 첫머리에 나오는 선문답이다. 두 사람을 통해 한 사물을 바라보는 두 가지 극단의 시각이 제시되었다면 판을 깔아놓은 암두는 물그릇을 확 차버리면서 스스로 판을 깨버린 것이다. 사물을 바라보는 이분법을 깨면 새로운 시각이 열릴 것이다. 이에 이어 알렉산드로의 고르디우스의 매듭 일화라든가 콜럼버스의 달걀 일화를 언급하며 프레임을 바꾸는 일에 대해 논한다.
선문답을 차근차근 읽으며 지금의 나에게 강하게 와닿은 부분이 무엇인가 살펴보니, '내려놓고 또 내려놓고'에 있었다. 한 스님이 조주를 찾아와 물었다. "저는 일체를 버리고 텅 비운 마음으로 이곳에 왔습니다." 조주가 말했다. "내려놓게 放下着!" "네? 무얼 내려놓으란 말씀입니까?" 조주가 다시 말했다. "그럼, 짊어지고 가든가 着得去!" (113쪽) "방하착!"과 "착득거!"라는 두 마디의 말은 나를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고 말하는 그 순간마저도, 짊어지고 갈 또 다른 짐들을 꾸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저자의 질문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이 책은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짤막하게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한꺼번에 많은 분량을 읽는 것보다는 조금씩 읽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선문답은 궁서체로 담겨있으니 좀더 곱씹으며 천천히 읽는 것을 추천한다. '곁가지 다 쳐내고 딱 하나만 붙들고 살자!'는 표지의 글처럼 복잡한 마음 상태를 정리하고, 정리한 마음마저 한 차례 걸러내는 데에 도움이 되는 책이다. 그러다보면 내 마음에 어떤 것을 담고 지내야할지 보이게 된다. "방하착!"과 "착득거!"를 조용히 읇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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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마흔, 붙잡아주는 화두
마흔이 되기 전의 길목에서~ 삶에 대해서도 그리고 나에 대해서 ~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흔들리는 마흔, 붙잡아주는 화두. 우리의 삶의 화두는 무엇인가?
아니, 내 삶의 화두는 무엇일까? 나의 삶을 흔들리게 하는 것들로 부터 나를 지키는 연습, 아니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이 책은 자질구레하게 챙길 일은 많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만 늘어날 때 곁가지 다 쳐내고 딱 하나만 붙들고 살자! 라고 말한다. == 책 표지
그래~~ 딱 필요한 것들만 붙잡자.
이 글이 눈에 확 들어왔다. 지금 이 순간 아주 소소한 작은 일들로 부터 내 삶의 의미를 알고, 찾자. 읽으면서 진지한 질문에 엉뚱한 답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정확하게 아주 간단 명료하게 진리에 가까이 가는 것 같기도 하다.
내 발밑이 천국이다. 삶의 비밀~, 이러쿵저러쿵 헛생각하지 않으면, ( 조주가 스승 남전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도입니까?” 남전이 답했다. “평상심이 도이니라.”), 깨달음은 시장통에도 있다.
진정으로 절실한가, 삶은 누구에게나 힘들고, 어렵다. 언제나 간단치 않다. 그러니 그래도 살아내야 하는 것이 삶인것 같다. 늦은 밤 조금씩 소리내서 읽었던 책이다.
그래서 다른 책에 비해 조금 오래 걸렸다.~~읽고 생각하고, 떠오르는 나의 잡념을 잠재우고, 다시 생각하기를 여러번~~읽고 난 후가 더 가벼워지는 책이다. 내 안에 있던 쓸모 없는 고집, 아집, 잡념을 조금씩 버리는 시간들이였다.
흔들린다고 계속 주저하고, 넘어질 수 없듯이~ 이제는 내 걸음으로 걸어가고 싶다. 당신의 삶에 화두를 찾아가기를 바라면서~~ 책장을 덮는다. " 이 서평은 출판사의 제공받은 도서로 작성된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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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까지 아직 4년 정도 남았다. 마흔이 아니어도 흔들리기에 책의 제목이 끌린다. 『흔들리는 마흔, 붙잡아주는 화두』. 나는 가톨릭 신자이나 부모님의 종교는 불교로 낯설지 않은 단어 '화두' 마흔이 되기 전 미리 찾아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수록 흔들림이 더한 것 같은 요즘. 과거 불혹이란 나이 40에 과연 다른 것들에 혹하지 않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진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의 변해가는 모습 또한 그런 불안감을 키웠다. 그런 지금 내게 필요한 화두는 무엇일까? 종교를 떠나 다시금 생각을 해봐야 할 시기인 것 같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말을 떠올려본다. 첫 마음을 잃은 직장에서 혼자 마음을 졸이던 시절들, 나와 생각의 괴리가 큰 회사와의 헤어짐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내 바람은 바람처럼 사라졌다. 책은 선사들의 이야기와 선문답, 게송 등으로 시작한다. 그에 따른 저자의 해설로 책이 이어진다. 각 장에 5~7가지의 화두에 대한 예화들로 책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장과 장 사이에만 구분이 확실하며 각각의 글은 제목만 중간중간 표기하며 흐름을 깨진 않는다. 화두이기에 급하게 읽기 보다는 천천히 곱씹는 것이 좋은 것 같다. 가장 마지막 글 '길을 아는 것과 걷는 것은 다르다'에 나오는 글이 책을 잘 마무리 해주는 것 같아 발췌를 해본다. 아무리 사소한 일도 내가 직접 실행하고 체험하지 않으면 전혀 내 것이 아니다.(p.269) 책을 읽으며 흔들리는 내 마음을 잡아줄 화두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있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바람은 바람처럼 사라진다. 어쩌면 단순하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복잡하게 살았기에 더 흔들린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너무 사회에 순응하며 살고 싶지도 않다. 지금의 흔들림은 그런 내 바람을 실체화 시키는 시간이 아닌가 싶다. 마치 3D 프린터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며 입력된 형상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아직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전보다 그 흔들림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버틸 때는 버티고, 흔들릴 때는 흔들리는 것 그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누군가의 삶을 따라하기 보다는 내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글을 줄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