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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를 이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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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에 대한 평가는 개개인마다 다르겠지만 그에 대한 서적들을 읽고, 매체들을 통해 조금씩 알게되면 알고 있던 것이나 선입견에 대해 훨씬 대단하고, 훨씬 엄청나다는 사실을 앎과 동시에 긍정적인 평가를 하기 마련이다.   나역시 마르크스를 이해하고 나서, 여러종류의 책들을 접해보았는데, 이책은 그중 가장 나쁘다.   두께에 비해 그를 이해하기 가장 난해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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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에 대한 평가는 개개인마다 다르겠지만

그에 대한 서적들을 읽고, 매체들을 통해 조금씩 알게되면

알고 있던 것이나 선입견에 대해 훨씬 대단하고, 훨씬 엄청나다는 사실을

앎과 동시에 긍정적인 평가를 하기 마련이다.

 

나역시 마르크스를 이해하고 나서, 여러종류의 책들을 접해보았는데,

이책은 그중 가장 나쁘다.

 

두께에 비해 그를 이해하기 가장 난해했던 책.

그래서 평가는 매우 내게 좋지 않다.

g*******c 2007.03.09.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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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는, 그러나 가볍지 않은 공산당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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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는 단지 더이상 자본주의 시대에 통용되는 않는 폐기된 이론의 생산자이며 혁명가로 여겨졌다. 나 또한 그의 텍스트를 읽어보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몇몇 편견에 가득한 언어들을 접하고 이 세상에 이단아같은 존재로만 여겼다. 얼마전부터인가 자본주의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점점 자본주의를 큰 틀에서 볼수 있는 매우 미약한 작은 시선을 얻게되었다. 너무나도 익순한 삶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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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는 단지 더이상 자본주의 시대에 통용되는 않는 폐기된 이론의 생산자이며 혁명가로 여겨졌다. 나 또한 그의 텍스트를 읽어보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몇몇 편견에 가득한 언어들을 접하고 이 세상에 이단아같은 존재로만 여겼다. 얼마전부터인가 자본주의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점점 자본주의를 큰 틀에서 볼수 있는 매우 미약한 작은 시선을 얻게되었다. 너무나도 익순한 삶의 환경이라 전혀 낯설지도, 그래서 또한 전혀 문제 없이 바라보는 이 큰클 자본주의를 조금은 낯설게 바라보며, 얼마나 나를 포함한 현대인들이 자본주의의 폭력성(?)과 한계를 깨닫지 못하고 그 큰 흐름에 힘없이 스스를 맡겨버리는 사회적 조건의 간접적 피해자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가 인간 내면에 미치는 영향은 보이지 않지만 이미 거의 모든 현대인들의 자아를 구성하는 조건이 되고있다. 물질과 소비로 사회적 관계를 형성시키므로 참된 인간성을 별현하려면 그야말로 혁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저자는 강유원인데 이분의 이력은 범상치않다. 범상치 않다는 말이 특별한 이력의 소유자가 아니라, 평범한 노동자이면서 철학을 공부하고 고전을 읽으면서 글을 써서 살아가는 철저히 현실에 뿌리박고 살아가는 글을 쓰며 책을 펴내는 문자텍스트와 현실텍스트를 모두 공유하는 학자라는 말이다. 그래서 그가 쓴 책들을 보면 어려운 고전도 쉽게 읽을 수 있는 현실성이 있으면서 그 수준 또한 가볍지 않다.

저자 강유원이 마르크스의 거대한 사상적 산맥을 정복하는데 가장 쉬운 첫걸음이 바로 <공산당 선언>이라고 한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의형식으로 쓰여진 <공산당 선언>이다. 쉽게 쓰여진 <공산당 선언>이지만 워낙 압축적인 글이고, 몇백년에 걸친 이야기를 단 몇줄에 끝내는 밀도높은 문장이기에 읽고 나서도 기억되는 것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작동원리와 그의 문제점,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의 근본토대, 그래서 자본주의가 주는 상처를 조금이라도 비켜갈 수 있는 이해는 생긴 것 같다.

칼 마르크스에 대해서, 그의 시대와 자본주의 대해서, 그리고 그가 외친 혁명의 필요성에 대해서 조금 이해하고 나니, 왜 그렇게 역사의 선각자들이 분노하며 시대를 바꾸려고 했는지 어렴풋이 이해할 것 같다. 이 큰들을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시대가 주는 상처를 거부할 수 있고, 그 거대한 틀이 요구하고 압박하는 족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시선을 얻은 것만으로도 큰 유익이라 할 수 있다. 이 책 한권이 마르크스를 좀더 읽고 싶은 과중한 부담감을 나에게 안겨주었고, 그의 관한 몇권의 책을 주문했다. 한 시대를 고민하고 그것을 변혁시키고 싶어했던 마르크스의 거대한 꿈이 바록 현실적이지는 않았지만 20대에 그러한 꿈을 꾸고 평생을 세상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바꾸고 싶어한 그의 들끓는 정신을 나도 배우고 싶다. 개인의 삶이 아니라 사회적 삶을 고민한 마르크스와 앵겔스의 정신은, 비록 그들의 이론이 구시대의 유물쯤으로 취급되는 이때에 다시금 젊은이들의 피를 끓게 만들고 좁은 자아의 틀을 깨치고 나오는 개혁의 망치가 되리라 생각한다.



YES마니아 : 골드 f****1 2011.11.15. 신고 공감 3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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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만나는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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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가 시작될 즈음, 지인으로부터 반가운 책 한 권을 선물받았다. 강유원의 고전강의.<공산당 선언>, 부제는 '젊은 세대를 위한 마르크스 입문서'라고 적혀있다.  실은 조금 짧은 연휴지만, 이번 달 계획 도서인 삼국지를 주구장창 읽으려고 맘 먹고 있었건만...뭐, 내가 늘 하는 일이 그렇듯이 계획대로 실행하지 못하고 삼국지 대신 '원숭이 자본론'과 '공산당 선언'을 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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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가 시작될 즈음, 지인으로부터 반가운 책 한 권을 선물받았다.

강유원의 고전강의.<공산당 선언>, 부제는 '젊은 세대를 위한 마르크스 입문서'라고 적혀있다. 

실은 조금 짧은 연휴지만, 이번 달 계획 도서인 삼국지를 주구장창 읽으려고 맘 먹고 있었건만...뭐, 내가 늘 하는 일이 그렇듯이 계획대로 실행하지 못하고 삼국지 대신 '원숭이 자본론'과 '공산당 선언'을 읽었다.

 

'공산당 선언' 과의 만남은 엄밀히 말해서 이번이 세 번째 이다.

 

                                      

 

처음 내가 '선언'을 접한 것은 대학교 1학년때, 백산서당에서 출간한 약 160여 페이지의 얇은 책으로 선언의 원문과 번역문, 그리고 그에 대한 의미를 서술한 책이었고, 두 번째는 2003년도에 레디앙에서 출간한 '레즈를 위하여:새롭게 읽는 공산당 선언'이라는 책으로 선언의 해설에 촛점을 맞춘 것이 아닌 진보진영과 진보운동의 나아갈 길에 대해 수기 비슷한 형식으로 쉽게 쓰여져 있어 인상깊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6년이 지난 지금 새삼스럽게 다시 한번 고전중의 고전인 맑스,엥겔스의 '선언'을 접하게 되었다. 강유원 박사의 공산당 선언은 그 부제가 말해 주듯이 젊은 세대를위한 맑스 입문서로 대학 교양과목 강의 내용을 옮겨 쓴 책이다. 나는 저자를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나게 되었지만, 참 알기 쉽게 잘 설명한다는 인상을 깊게 받았고, 더불어 그의 유머에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솔직히 내가 처음 대학교 때, '공산당 선언'이라는 책을 가지고 다니며 읽을 때도 왠지 모를 타인의 시선을 의식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미 87년 민주화 항쟁을 통해 그동안 금서, 불온서적, 불법 출판물로 분류되었던 사회과학 서적들이 당당히 떳떳하게 출간되어 나온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알고 책을 읽고자 하는 내 자신 마저도 남의 시선을 의식할 정도였는데, 그렇지 않은 다른 이들이 요상스런 눈치를 내게 보냈던 것이 당연한 것일런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다 [공산주의,공산당=마르크스=빨갱이=무시무시=체제전복세력] 등의 도식화를 머리속에 충분히 이식시킨 훌륭했던 우리의 반공주의, 우민화 교육 덕택 아니겠는가.

반면에, 어쩌면 시대를 잘 만나서 전혀 아무렇지 않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아무렇지 않게 이러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 아닌 감사를 해야 할런지도 모른다.

 

혹자는 선언을 통해 맑스의 무슨 이론을 찾고 배우려 하는 이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선언은 말 그대로 선언! manifesto 이다. 어떤 이론을 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엄밀히 말하자면 그동안 수면위에서 떳떳하게 활동하지 못한 공산주의 운동을 이제는 당당하게 전면에 나서서 활동하자는 선전, 선동을 위한 팸플렛이인 것이다.  

"공산주의라는 망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는 극적인 문장으로 시작되어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속박의 사슬밖에는 없다. 그들은 세계를 얻을 것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로 끝맺음을 맺고 있는, 맑스,엥겔스가 작성한 선언의 문구는 그 목적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다소 감정적이라는 느낌도 들지만, 우리가 이를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은 160여년 전 당시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면밀한 분석(탄생과 정착 등 자본주의 체제의 역사성)과 그로 인해 미친 사회적 영향들...그리고, 21세기 현재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더더욱 고도화된 형태로 지속되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번 심도있게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강유원 박사의 친절하고도 알기 쉬운 해설을 따라 읽어가며 특히 백번 공감한 것은 역시 자신의 계급에 대한 인식을 올바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반드시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만을 노동자라 칭하는 것이 아니며, 어떤 직장에서 어떤 종류의 일을 하고 있건 자유로운 계약 노동자이고, 월급을 많이 받는다고 하여 그가 노동자가 아니라고 볼 수 없으며, 따라서 화이트칼라니 블루칼라니 구별짓는 것은 노동자를 규정하는 핵심에서 어긋난 것이라 말한다. 더 나아가 계급에 대한 인식은 사회적인 행동으로 표출되어야 하는데 마치 노동자가 자본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어처구니 없음을 꼬집기도 한다. 사실 그동안 내가 조금은 흥분하며 주장(?)해온 진보정당의 현 입지, 그러할 수 밖에 없는 이유와 그 괘를 같이 하는 설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 역시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지 않다.

다만, 책이 출간된 지 160여년이 지나도록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고, 전 세계적으로 읽힌 '고전'을 지적 호기심 측면에서라도 알고 싶은 이들, 또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의 질서 체제는 과연 어떻게 형성되어 왔고 그 본질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은 이들에게는 '공산주의 혁명'이라는 다소 불편한 문구를 떠나서 선언의 논리에 대한 개개인의 동의 여부를 확인해 보자는 측면에서 일독을 권하고 싶다.

 

계획한 삼국지를 읽지 않고, 갑자기 고전 한 권을 읽은 것이 내게 얼마나 많은 긍정적 힘이 되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오랜만에 세 번째로 접한 '선언'과 함께 한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만은 확실하며, 오늘을 살고 있는 내 자신 스스로에게, 또 금방 잊을지언정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를 다시 한번 묻고 생각할 기회를 던져 주었다.

마지막으로 저자 강유원 박사가 책 말미에, 그러니까 마지막 강의 시간에 언급한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으며 장문의 서평을 끝마치고 싶다.

 

"21세기 한국에 사는 내가 1848년에 쓰인 마르크스의 팸플릿을 읽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마르크스가 빨갱이라는 생각만 가지고 이 책을 대하면 아무것도 얻을 게 없을 것이다.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를 알려주는 책들은 많다. 그 많은 것들 중의 하나라고 가볍게 여겨도 무방하다. 그러나 그 모든 책들이 회사원의 입장에서, 임금 노동자의 입장에서, 임금 노동자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쓰인 것은 아니다. 책을 고를 때는 이 책이 과연 누구 좋으라고 쓴 것인지를 생각해 봐야 할 것 아니겠는가. 어떤 책을 읽더라도 자기에게 이익이 되어야 한다. 그 이익은 당장 연봉 올라가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생을 길게 보아 사람답게 사는 일에 도움이 되는 것도 이익은 이익이다....(중략)

자기 자신을 위한 공부는 자기 찾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오래된 텍스트를 천천히 더듬어 보면서 진정한 자기를 찾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d*****3 2009.10.04. 신고 공감 3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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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풀어쓴 마르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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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를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몰고 간 19세기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칼 마르크스. '레드 바이러스'에 중독된 우리는 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단순히 반공시절의 교육대로 '빨갱이'의 원류에 불과한 인물인가.  현재 자본주의로 통일된 세계의 현실을 볼 때 마르크스의 사상은 유토피아로 치부되거나 낡은 것으로 간주되곤 한다. 그러나 자신만만하게 승리를 외치며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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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를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몰고 간 19세기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칼 마르크스. '레드 바이러스'에 중독된 우리는 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단순히 반공시절의 교육대로 '빨갱이'의 원류에 불과한 인물인가.

 현재 자본주의로 통일된 세계의 현실을 볼 때 마르크스의 사상은 유토피아로 치부되거나 낡은 것으로 간주되곤 한다. 그러나 자신만만하게 승리를 외치며 '역사의 종언'을 외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알고 있는가. 체제의 근본적인 작동기제에 대한 반성의 능력을 상실한 채 맹목적으로 자본의 질서에 편입되고 있지는 않은가. 복잡하게 말할 것도 없다. 중고등학생에게 왜 대학에 가려고 하느냐고 물어보라. 과거와는 다르게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답하는 학생이 다수를 차지한다.

 자본주의의 가장 큰 장점으로 '일한 만큼 벌고, 벌어들인 만큼 자유롭게 소비하기'를 들 수 있지만, 과연 그러한 것일까.

 약자에게 무자비하고 부유한 자에게는 한없이 관용적인 현실 체제에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있다고, 누구나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정작 체제를 바꾸거나 저항하려는 의지나 열정을 우리는 상실했다.

 

 어디를 가든 돈과 이미지의 외양이, 가난한 열정과 저항의 힘을 누르고 비판적인 인간들을 '좌경'이나 '부적응자'로 낙인찍으며 철저하게 화폐와 소비의 노예가 되기를 종용한다. 강대국들은 더욱 부유해지기 위해 약소국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진실은 '자본의 법칙' 아래 묻혀진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을 가장 정확하게 지적한 이가, 현대의 유명한 경제학자나 정치가가 아니라, 19세기 중반 자본주의의 태동기에 살았던 마르크스다. 자본주의가 힘차게 싹을 틔우던 19세기 유럽에서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문장으로 공산당 선언을 써내려간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이 유령은 오늘날 유럽을 넘어 전 세계를 떠돌고 있다. 아니, 완강한 힘으로 지배하고 있다. 그 유령은 바로 화폐이자 자본의 권력이다. 그 체제 아래서 개인들은 무력하기만 하다.

'회사원 철학자'인 강유원씨가 풀어쓰고, <씨네 21>에 만화를 그리는 정훈이씨가 삽화를 그린 이 책은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이 지금-여기서 지니는 의미를 강의 형식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그러나 경제학이나 정치학의 딱딱한 논문을 떠올리면 오산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강유원씨의 쉽고 경쾌한 문장과 정훈이의 만화를 통해 중학생 이상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엮였다.

 군대 시절 '마르크스'가 적힌 책을 지니고 있으면 무턱대고 압수당했던 기억이 스쳐간다. 그대, 아직도 마르크스가 단순히 빨갱이로 보이는가?

 

 그렇다면 이 책을 보라. 혹은 아직도 자본주의만이 유일한 체제이고, 경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는가? 경쟁에서 뒤처진다든가, 큰일 나지 않으니 이 책을 펴들라.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지배하는 체제에 대해 한 번이라도 심각하지 않아도 좋으니 살펴보라. 19세기의 한 불행한 철학자의 시야에도 못 미치는 우리의 근시안과 색맹을 느끼게 될 터이니. 그 다음에 다시 일터로 돌아가라.

2*****h 2009.04.21.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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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원의 고전강의 - 공산당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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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하면 공산주의, 일명 익히 들어왔던 ‘빨갱이’라는 말로 연결되던 나였다. 마르크스 사상이 뭔지도 몰랐지만 그냥 그렇게 은연중에 인식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 누가 이 책을 추천해주지 않았더라면 나의 머리 속에서는 영원히 마르크스가 그런 오해 속에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을지 모르겠다.   이 책은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친절히 설명해주는 입문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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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하면 공산주의, 일명 익히 들어왔던 빨갱이라는 말로 연결되던 나였다. 마르크스 사상이 뭔지도 몰랐지만 그냥 그렇게 은연중에 인식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 누가 이 책을 추천해주지 않았더라면 나의 머리 속에서는 영원히 마르크스가 그런 오해 속에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을지 모르겠다.

 

이 책은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친절히 설명해주는 입문서이다. 공산당 선언을 통해서 내가 얻게 될 지식이 무엇인가 과연 궁금했었다. 타이틀로만 보면 공산주의 혁명을 촉구하고 선전하는 내용으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정작 내용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마르크스라는 사상가에 대한 고정관념의 세계를 타파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을 통해서 무엇을 주장하고자 했는지 대부분의 것을 이해하고 얻을 수 있었다.

 

마르크스는 누구보다도 그 당시 사회의 상황을 통해 자본주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 이면에 담긴 무서운 진실과 폐해까지 알리려 한 인물이었다. 자본주의가 미래의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가져다줄 것인지 19세기 초에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졌고 마르크스는 그만큼 깨어있었고 그의 생각은 선견지명이 있었음에 분명하다. 공산당 선언을 통해서 현대의 정세, 그리고 자본주의의 개념을 이해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에 이끌려 이성과 정신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지도의 역할을 하게끔 만들어준다.

 

원문인 공산당 선언의 숨은 뜻까지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저자인 강유원은 참으로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 설명해놓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처럼 그동안 마르크스에 대한 이념과 사상에 오해가 많은 사람들이라면 마르크스 주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한다. 과연 이 책을 통해서 마르크스의 사상에 대해서 쉽게 접근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어제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 부르주아지는 자신들이 지배권을 얻은 곳에서, 모든 봉건적, 가부장제적, 목가적 관계들을 파괴하였다. 부르주아지는 종교적, 정치적 환상 때문에 은폐되어 있던 착취를 공공연하고 파렴치하며 직접적이고 무미건조한 착취로 바꿔 놓았다.

 

- 오늘날 부르주아지에 대항하고 있는 모든 계급들 가운데 프롤레타리아만이 참으로 혁명적인 계급이다.

 

- 임금 노동은 전적으로 노동자들 상호간의 경쟁에 의거해 있다. ... 부르주아지는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무덤을 파는 사람들을 생산한다. 부르주아지의 몰락과 프롤레타리아의 승리는 똑같이 불가피하다.

h****5 2011.02.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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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필요가 전혀 없는 '공산당 선언'의 존재성을 재확인해준 책
"읽을 필요가 전혀 없는 '공산당 선언'의 존재성을 재확인해준 책" 내용보기
<공산당 선언>을 다시 읽었다. 이 책을 오랜만에 다시 꺼낸 배경은 흥미롭다. 고백컨대 나는 20대에 좌파적 사고와 이념을 사랑했다. 평등과 박애는 한없이 좋은 것이라 인식했고 약자와 소외층을 위해 투쟁하는 것을 멋있게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이십대를 휘감았던 대표적인 좌파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에게 처절한 실망감을 갖게 된 이후, 그리고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선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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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산당 선언>을 다시 읽었다. 이 책을 오랜만에 다시 꺼낸 배경은 흥미롭다. 고백컨대 나는 20대에 좌파적 사고와 이념을 사랑했다. 평등과 박애는 한없이 좋은 것이라 인식했고 약자와 소외층을 위해 투쟁하는 것을 멋있게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이십대를 휘감았던 대표적인 좌파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에게 처절한 실망감을 갖게 된 이후, 그리고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선사하는 전존재적인 행복을 경험하게 된 후, 나는 점점 자유주의(liberalism, 自由主義)밀착되어 갔다. 인문학이라는 바다에 더 깊고 풍성하게 다가갈 때마다 마르크스와는 점점 더 멀어져 갔다. 사회를 민감하게 응시하는 좌파보다 개인의 성찰에 방점을 찍는 우파에 더 큰 매력을 느껴가고 있는 것이다. 단언컨대 인문학적 사고가 고양되면 될수록 마르크스는 사라진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공산당 선언>을 왜 다시 읽는단 말인가. 답은 분명하다. 비판하기 위해서다.

   기존 번역본을 제쳐두고 강유원의 것으로 다시 만났다. 시대가 바뀐 만큼 새로운 감각과 해석이 필요했다. 고전은 그렇다. 항시 고전의 반열에 오른 텍스트는 시대마다 다르게 읽히는 법이다. 번역과 해석도 변화하지만 독자의 독해와 시각도 변화하는 것이다. 평소 강유원의 통찰과 넉살을 좋아해왔던 터라 짧지 않은 분량은 순식간에 넘어갔다. 부제는 '젊은 세대를 위한 마르크스 입문서'다. 저자가 자신의 대학 강의에서 수강생을 가르쳤던 내용이 이 책의 뼈대가 되고 있다.

   책이 강의내용에 따라 순차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공산당 선언>의 긴밀한 포인트를 짚어내는데 유리한 면이 있다. 저자는 마르크스의 생애와 사상을 초입부에 적지 않은 분량으로 소개했다. 이어 13개의 파트로 나누어 주제별로 <공산당 선언>을 강의한다. 책 곳곳에서 마르크스와 <공산당 선언>을 해석하는 저자의 주관을 엿볼 수 있다. 책 말미에는 <공산당 선언> 완역본을 부분적으로 수록하기도 했다.

   저자 강유원이 마르크스와 <공산당 선언>을 바라보는 관점은 '필요'이다. 마르크스가 주장했던 이상(理想)은 결국 실패한 것이지만 지난 2,000년 동안 어떤 식으로든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상가이기 때문에 충분한 연구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 지구상 대부분을 뒤덮고 있는 자본주의가 완벽한 진리가 아님을 인식하고 그 오류와 폐해를 대척선상에서 진단해본다는 취지에서라도 <공산당 선언>의 존재성은 긴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저자가 <공산당 선언>을 바라보는 시선의 유의미성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해석'의 수준이지 '변혁'의 단계는 아니다. 다시 말해서 자본주의가 가진 한계와 오류를 지적할 수는 있지만 그 대안과 대체로서 마르크스주의는 절대로 상정될 수 없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주창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인류사에 아무런 공익을 주지 못했고 오히려 굴곡되고 변형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과 희생을 감내하게 했다. 20세기 10%의 인류가 마르크스의 제자들과 아류들로부터 살육당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마르크스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그의 사상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받은 독재자들에 의해 20세기의 절반은 철저히 유린당했다.

   다시 한 번 역설컨대 자본주의의 대체로서 마르크스는 존재할 수 없다. 20세기에 마르크스주의는 모두 사멸했다. 소련을 위시한 동유럽 공산권의 몰락을 보라. 또한 중국을 보라. 중국은 아직도 정치적으로는 공산당 일당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등소평 시대에 이미 국가자본주의로 돌아섰다. 그 결과 세계의 공장이 되었고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했으며 조만간 달에 중국인을 보내려 하고 있다. 미국과 함께 G2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자본주의는 어쩔 수 없는 도도한 흐름이다. '물질만능주의의 범람'과 '양극화의 심각성'이 자본주의의 한계로 나타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시 마르크스를 들여다 볼 수는 없다.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기존체제에 대한 폭력적 전복'이라는 핵심적인 사상에 있다. 러시아혁명 때 레닌이 마르크스주의를 소련 공산당의 이념적 토대로 천명한 이후 스탈린의 수용소에서 죽어간 사람들, 기근과 처형으로 죽어간 우크라이나 농민들, 중국 '공산혁명'과 '문화혁명'으로 전쟁과 사회공학으로 죽은 사람들, 북한의 인민재판과 수용소에서 죽어간 사람들, 1990년대 기아로 죽은 300만 명의 북한 동포들, 베트남과 캄보디아에서 사회공학으로 죽어간 사람들, 쿠바와 남미와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 등에서 사회공학으로 처형된 사람들의 숫자는 과히 천문학적이다. 이를 자행한 독재자와 그 추종세력은 직간접적으로 철저하게 마르크스주의에 함몰되었다.

   지식인의 잘못된 사상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20세기의 불행은 우리에게 잘 가르쳐주고 있다. 폭력적 계급혁명을 꿈꾼 마르크스가 집단화의 폐단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예측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은밀하게 '감안'한 것이다. 마르크스의 텍스트는 충분히 매혹적이다. 그 휘발성과 선동성은 항시 핍박받는 자들의 '살상무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물론 마르크스가 수많은 사람들을 직접 죽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혁명을 위한 불가피한 폭력'에 대한 책임만은 엄연하게 그의 몫이다. 그가 전달한 사상적 크기는 그 규모와 파괴력 면에서 개별사건의 직접성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것이었다.

   '기존체제에 대한 폭력적 전복'과 함께 <공산당 선언>의 또 하나의 핵심은 '역사적 유물론'이다. 부르주아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의 이행이 필연적이라고 주장했던 마르크스의 예언은 빗나갔다. 또한 그것이 당시 유럽 내 최대공업국인 독일에서 가장 먼저 발생할 것이라는 추측도 어긋났다. 그가 생전에 필연이라 역설했던 혁명은 독일이 아니라 공장노동자가 극소수에 불과한 농업국 러시아에서 일어났다. 사실 역사를 필연적으로 규정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역사는 예측과 논리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필연화할 수 있을 만큼 인간의 지성은 궁극적이지 않다. 즉 마르크스 사상의 또 하나의 잘못된 전제는 과학적 역사론이었던 것이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만약 그가 예나대학에서 적절한 자리를 보장받았거나 엥겔스를 만나지 않았다면 20세기의 역사는 다시 쓰였을 것이다.

   책의 띠지에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착취당하고 싶잖은 사람들을 위한 약도", '성공하고 싶은 회사원을 위한 고전", "공산당선언으로 자기계발을"이라는 기가 찬 문구가 띠지를 도배하고 있다. <공산당 선언>으로 무슨 자기계발을 한단 말인가. 설사 그렇다 치자고 하자. 그렇다면 그 논거가 책에 기록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그에 관한 텍스트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성공적인 회사생활과 자기를 계발하는 방법론은 책 어느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띠지가 속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본래 성공과 자기계발은 마르크스와는 전혀 상관없는 테마이기 때문이다. <공산당 선언>이 태생적으로 갖는 모순도 문제지만 출판사의 격 떨어지는 광고카피도 궁색하다. 책의 본질을 형용하지 못하는 무리한 문구가 오히려 이 책의 '별 볼일 없음'을 역설적으로 수식하고 있을 뿐이다.

   모예술가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했다. 책읽기의 관점에서 이를 패러디하면 '인생은 짧고 독서는 길다'가 된다. 읽어야 할 책은 많은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부족하다. 그렇다면 아무 책이나 읽을 수는 없다. 꼭 필요한 책, 즉 양서를 선택하는 것도 독자의 능력인 것이다. 개인에게 주어진 시간의 채산성
(採算性) 차원에서 <공산당 선언>을 읽는 것은 시간 낭비이자 시간에 대한 모독이다.

   큰 맘 먹고 <공산당 선언>을 다시 읽고 내린 결론은 간단하다. 읽을 필요가 전혀 없는 책이다. 방대한 독서광이자 편집의 달인으로 알려진 완벽주의자 카를 마르크스의 감상적이고 폭발적인 표현력을 새삼 확인한 것,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지하골방에 숨어서 읽지 않아도 된다는 현실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공산당 선언>의 가치는 충분하다. 이 냉혹한 평가의 미만은 있되 이상은 없다. 그것이 21세기의 시계가 가리키고 있는 <공산당 선언>의 현재성이다.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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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로얄 g*****o 2012.12.1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