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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에 대한 평가는 개개인마다 다르겠지만 그에 대한 서적들을 읽고, 매체들을 통해 조금씩 알게되면 알고 있던 것이나 선입견에 대해 훨씬 대단하고, 훨씬 엄청나다는 사실을 앎과 동시에 긍정적인 평가를 하기 마련이다.
나역시 마르크스를 이해하고 나서, 여러종류의 책들을 접해보았는데, 이책은 그중 가장 나쁘다.
두께에 비해 그를 이해하기 가장 난해했던 책. 그래서 평가는 매우 내게 좋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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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는 단지 더이상 자본주의 시대에 통용되는 않는 폐기된 이론의 생산자이며 혁명가로 여겨졌다. 나 또한 그의 텍스트를 읽어보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몇몇 편견에 가득한 언어들을 접하고 이 세상에 이단아같은 존재로만 여겼다. 얼마전부터인가 자본주의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점점 자본주의를 큰 틀에서 볼수 있는 매우 미약한 작은 시선을 얻게되었다. 너무나도 익순한 삶의 환경이라 전혀 낯설지도, 그래서 또한 전혀 문제 없이 바라보는 이 큰클 자본주의를 조금은 낯설게 바라보며, 얼마나 나를 포함한 현대인들이 자본주의의 폭력성(?)과 한계를 깨닫지 못하고 그 큰 흐름에 힘없이 스스를 맡겨버리는 사회적 조건의 간접적 피해자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가 인간 내면에 미치는 영향은 보이지 않지만 이미 거의 모든 현대인들의 자아를 구성하는 조건이 되고있다. 물질과 소비로 사회적 관계를 형성시키므로 참된 인간성을 별현하려면 그야말로 혁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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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가 시작될 즈음, 지인으로부터 반가운 책 한 권을 선물받았다. 강유원의 고전강의.<공산당 선언>, 부제는 '젊은 세대를 위한 마르크스 입문서'라고 적혀있다. 실은 조금 짧은 연휴지만, 이번 달 계획 도서인 삼국지를 주구장창 읽으려고 맘 먹고 있었건만...뭐, 내가 늘 하는 일이 그렇듯이 계획대로 실행하지 못하고 삼국지 대신 '원숭이 자본론'과 '공산당 선언'을 읽었다.
'공산당 선언' 과의 만남은 엄밀히 말해서 이번이 세 번째 이다.
처음 내가 '선언'을 접한 것은 대학교 1학년때, 백산서당에서 출간한 약 160여 페이지의 얇은 책으로 선언의 원문과 번역문, 그리고 그에 대한 의미를 서술한 책이었고, 두 번째는 2003년도에 레디앙에서 출간한 '레즈를 위하여:새롭게 읽는 공산당 선언'이라는 책으로 선언의 해설에 촛점을 맞춘 것이 아닌 진보진영과 진보운동의 나아갈 길에 대해 수기 비슷한 형식으로 쉽게 쓰여져 있어 인상깊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6년이 지난 지금 새삼스럽게 다시 한번 고전중의 고전인 맑스,엥겔스의 '선언'을 접하게 되었다. 강유원 박사의 공산당 선언은 그 부제가 말해 주듯이 젊은 세대를위한 맑스 입문서로 대학 교양과목 강의 내용을 옮겨 쓴 책이다. 나는 저자를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나게 되었지만, 참 알기 쉽게 잘 설명한다는 인상을 깊게 받았고, 더불어 그의 유머에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솔직히 내가 처음 대학교 때, '공산당 선언'이라는 책을 가지고 다니며 읽을 때도 왠지 모를 타인의 시선을 의식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미 87년 민주화 항쟁을 통해 그동안 금서, 불온서적, 불법 출판물로 분류되었던 사회과학 서적들이 당당히 떳떳하게 출간되어 나온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알고 책을 읽고자 하는 내 자신 마저도 남의 시선을 의식할 정도였는데, 그렇지 않은 다른 이들이 요상스런 눈치를 내게 보냈던 것이 당연한 것일런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다 [공산주의,공산당=마르크스=빨갱이=무시무시=체제전복세력] 등의 도식화를 머리속에 충분히 이식시킨 훌륭했던 우리의 반공주의, 우민화 교육 덕택 아니겠는가. 반면에, 어쩌면 시대를 잘 만나서 전혀 아무렇지 않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아무렇지 않게 이러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 아닌 감사를 해야 할런지도 모른다.
혹자는 선언을 통해 맑스의 무슨 이론을 찾고 배우려 하는 이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선언은 말 그대로 선언! manifesto 이다. 어떤 이론을 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엄밀히 말하자면 그동안 수면위에서 떳떳하게 활동하지 못한 공산주의 운동을 이제는 당당하게 전면에 나서서 활동하자는 선전, 선동을 위한 팸플렛이인 것이다. "공산주의라는 망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는 극적인 문장으로 시작되어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속박의 사슬밖에는 없다. 그들은 세계를 얻을 것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로 끝맺음을 맺고 있는, 맑스,엥겔스가 작성한 선언의 문구는 그 목적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다소 감정적이라는 느낌도 들지만, 우리가 이를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은 160여년 전 당시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면밀한 분석(탄생과 정착 등 자본주의 체제의 역사성)과 그로 인해 미친 사회적 영향들...그리고, 21세기 현재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더더욱 고도화된 형태로 지속되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번 심도있게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강유원 박사의 친절하고도 알기 쉬운 해설을 따라 읽어가며 특히 백번 공감한 것은 역시 자신의 계급에 대한 인식을 올바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반드시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만을 노동자라 칭하는 것이 아니며, 어떤 직장에서 어떤 종류의 일을 하고 있건 자유로운 계약 노동자이고, 월급을 많이 받는다고 하여 그가 노동자가 아니라고 볼 수 없으며, 따라서 화이트칼라니 블루칼라니 구별짓는 것은 노동자를 규정하는 핵심에서 어긋난 것이라 말한다. 더 나아가 계급에 대한 인식은 사회적인 행동으로 표출되어야 하는데 마치 노동자가 자본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어처구니 없음을 꼬집기도 한다. 사실 그동안 내가 조금은 흥분하며 주장(?)해온 진보정당의 현 입지, 그러할 수 밖에 없는 이유와 그 괘를 같이 하는 설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 역시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지 않다. 다만, 책이 출간된 지 160여년이 지나도록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고, 전 세계적으로 읽힌 '고전'을 지적 호기심 측면에서라도 알고 싶은 이들, 또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의 질서 체제는 과연 어떻게 형성되어 왔고 그 본질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은 이들에게는 '공산주의 혁명'이라는 다소 불편한 문구를 떠나서 선언의 논리에 대한 개개인의 동의 여부를 확인해 보자는 측면에서 일독을 권하고 싶다.
계획한 삼국지를 읽지 않고, 갑자기 고전 한 권을 읽은 것이 내게 얼마나 많은 긍정적 힘이 되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오랜만에 세 번째로 접한 '선언'과 함께 한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만은 확실하며, 오늘을 살고 있는 내 자신 스스로에게, 또 금방 잊을지언정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를 다시 한번 묻고 생각할 기회를 던져 주었다. 마지막으로 저자 강유원 박사가 책 말미에, 그러니까 마지막 강의 시간에 언급한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으며 장문의 서평을 끝마치고 싶다.
"21세기 한국에 사는 내가 1848년에 쓰인 마르크스의 팸플릿을 읽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마르크스가 빨갱이라는 생각만 가지고 이 책을 대하면 아무것도 얻을 게 없을 것이다.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를 알려주는 책들은 많다. 그 많은 것들 중의 하나라고 가볍게 여겨도 무방하다. 그러나 그 모든 책들이 회사원의 입장에서, 임금 노동자의 입장에서, 임금 노동자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쓰인 것은 아니다. 책을 고를 때는 이 책이 과연 누구 좋으라고 쓴 것인지를 생각해 봐야 할 것 아니겠는가. 어떤 책을 읽더라도 자기에게 이익이 되어야 한다. 그 이익은 당장 연봉 올라가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생을 길게 보아 사람답게 사는 일에 도움이 되는 것도 이익은 이익이다....(중략) 자기 자신을 위한 공부는 자기 찾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오래된 텍스트를 천천히 더듬어 보면서 진정한 자기를 찾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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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를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몰고 간 19세기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칼 마르크스. '레드 바이러스'에 중독된 우리는 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단순히 반공시절의 교육대로 '빨갱이'의 원류에 불과한 인물인가. 현재 자본주의로 통일된 세계의 현실을 볼 때 마르크스의 사상은 유토피아로 치부되거나 낡은 것으로 간주되곤 한다. 그러나 자신만만하게 승리를 외치며 '역사의 종언'을 외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알고 있는가. 체제의 근본적인 작동기제에 대한 반성의 능력을 상실한 채 맹목적으로 자본의 질서에 편입되고 있지는 않은가. 복잡하게 말할 것도 없다. 중고등학생에게 왜 대학에 가려고 하느냐고 물어보라. 과거와는 다르게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답하는 학생이 다수를 차지한다. 자본주의의 가장 큰 장점으로 '일한 만큼 벌고, 벌어들인 만큼 자유롭게 소비하기'를 들 수 있지만, 과연 그러한 것일까. 약자에게 무자비하고 부유한 자에게는 한없이 관용적인 현실 체제에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있다고, 누구나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정작 체제를 바꾸거나 저항하려는 의지나 열정을 우리는 상실했다.
어디를 가든 돈과 이미지의 외양이, 가난한 열정과 저항의 힘을 누르고 비판적인 인간들을 '좌경'이나 '부적응자'로 낙인찍으며 철저하게 화폐와 소비의 노예가 되기를 종용한다. 강대국들은 더욱 부유해지기 위해 약소국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진실은 '자본의 법칙' 아래 묻혀진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이 유령은 오늘날 유럽을 넘어 전 세계를 떠돌고 있다. 아니, 완강한 힘으로 지배하고 있다. 그 유령은 바로 화폐이자 자본의 권력이다. 그 체제 아래서 개인들은 무력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이 책을 보라. 혹은 아직도 자본주의만이 유일한 체제이고, 경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는가? 경쟁에서 뒤처진다든가, 큰일 나지 않으니 이 책을 펴들라.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지배하는 체제에 대해 한 번이라도 심각하지 않아도 좋으니 살펴보라. 19세기의 한 불행한 철학자의 시야에도 못 미치는 우리의 근시안과 색맹을 느끼게 될 터이니. 그 다음에 다시 일터로 돌아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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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하면 공산주의, 일명 익히 들어왔던 ‘빨갱이’라는 말로 연결되던 나였다. 마르크스 사상이 뭔지도 몰랐지만 그냥 그렇게 은연중에 인식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 누가 이 책을 추천해주지 않았더라면 나의 머리 속에서는 영원히 마르크스가 그런 오해 속에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을지 모르겠다. 이 책은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친절히 설명해주는 입문서이다. 공산당 선언을 통해서 내가 얻게 될 지식이 무엇인가 과연 궁금했었다. 타이틀로만 보면 공산주의 혁명을 촉구하고 선전하는 내용으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정작 내용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마르크스라는 사상가에 대한 고정관념의 세계를 타파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을 통해서 무엇을 주장하고자 했는지 대부분의 것을 이해하고 얻을 수 있었다. 마르크스는 누구보다도 그 당시 사회의 상황을 통해 자본주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 이면에 담긴 무서운 진실과 폐해까지 알리려 한 인물이었다. 자본주의가 미래의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가져다줄 것인지 19세기 초에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졌고 마르크스는 그만큼 깨어있었고 그의 생각은 선견지명이 있었음에 분명하다. 공산당 선언을 통해서 현대의 정세, 그리고 자본주의의 개념을 이해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에 이끌려 이성과 정신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지도의 역할을 하게끔 만들어준다. 원문인 공산당 선언의 숨은 뜻까지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저자인 강유원은 참으로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 설명해놓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처럼 그동안 마르크스에 대한 이념과 사상에 오해가 많은 사람들이라면 마르크스 주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한다. 과연 이 책을 통해서 마르크스의 사상에 대해서 쉽게 접근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어제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 부르주아지는 자신들이 지배권을 얻은 곳에서, 모든 봉건적, 가부장제적, 목가적 관계들을 파괴하였다. 부르주아지는 종교적, 정치적 환상 때문에 은폐되어 있던 착취를 공공연하고 파렴치하며 직접적이고 무미건조한 착취로 바꿔 놓았다. - 오늘날 부르주아지에 대항하고 있는 모든 계급들 가운데 프롤레타리아만이 참으로 혁명적인 계급이다. - 임금 노동은 전적으로 노동자들 상호간의 경쟁에 의거해 있다. ... 부르주아지는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무덤을 파는 사람들을 생산한다. 부르주아지의 몰락과 프롤레타리아의 승리는 똑같이 불가피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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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 선언>을 다시 읽었다. 이 책을 오랜만에 다시 꺼낸 배경은 흥미롭다. 고백컨대 나는 20대에 좌파적 사고와 이념을 사랑했다. 평등과 박애는 한없이 좋은 것이라 인식했고 약자와 소외층을 위해 투쟁하는 것을 멋있게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이십대를 휘감았던 대표적인 좌파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에게 처절한 실망감을 갖게 된 이후, 그리고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선사하는 전존재적인 행복을 경험하게 된 후, 나는 점점 자유주의(liberalism, 自由主義)에 밀착되어 갔다. 인문학이라는 바다에 더 깊고 풍성하게 다가갈 때마다 마르크스와는 점점 더 멀어져 갔다. 사회를 민감하게 응시하는 좌파보다 개인의 성찰에 방점을 찍는 우파에 더 큰 매력을 느껴가고 있는 것이다. 단언컨대 인문학적 사고가 고양되면 될수록 마르크스는 사라진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공산당 선언>을 왜 다시 읽는단 말인가. 답은 분명하다. 비판하기 위해서다.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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