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 우리 사회의 평온함은 이전 세대에 빚진 바 많다. 상상이 가지 않는 일제 치하의 서글픔과 독재정권의 날카로움은 80년대 초반 태생인 나에게 극히 낯선 것에 불과하다. 치열한 시절을 그저 ‘역사’라는 한 단어로 묶어 설명할 수 있는 나에게 이 책은 과거로의 여행을 허락했다. 그 시절 나는 이 세상에 없었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진실을 외면하는 것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이로서의 도리가 아닌 듯하다. 광주는 하나의 외딴 섬과도 같았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소리 없이 죽어나갔는지 세상은 침묵했다. 삶과 죽음이 연신 교차하는 속에서 카메라를 든 그의 손은 떨렸다. 그의 눈 앞에 펼쳐진 끔찍한 광경을 그는 외면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모든 이들이 주목하지 않기에 잊혀질 수밖에 없는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그의 몫이라 믿었던 듯하다. 건물 옥상에 올라가 망원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았다. 계속되는 폭력에 사람들은 죽어나갔다. 하지만 생을 마감하는 이의 수가 증가하면 증가할수록 시위에 가담하는 이들의 수 역시 증가했다.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항쟁의 정당함 때문이었다. 우리가 외면한 역사를 사진은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온갖 무기로 무장한 계엄군의 모습이 풍기는 위압감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가진 것이라곤 몸 밖에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작아 보이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하나하나의 작은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낸 거대한 물결 앞에 나는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쓰러졌고, 그들의 빈자리를 또 다른 사람들이 메웠다. 어찌 그들을 ‘폭도’라 매도할 수 있을까. 죽은 이들은 말이 없었다. 태극기 두른 작은 목관이 그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공간이었다. 모든 슬픔은 산 자의 몫이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마냥 슬퍼할 수 없었다. 분노도, 슬픔도 억눌린 1980년의 흔적을 보는 것은 괴로움 그 자체였다. 문득 대학교 1학년 때 광주에서 올라온 친구 녀석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아직도 자신의 집에는 80년 광주민주화 항쟁 당시 계엄군이 쏜 총탄 자국이 남아 있다던… 평범한 가정집에 선명히 새겨진 총탄 자국이라… 그만큼 폭력은 일상적이었다. 너무도 일상적인 폭력에 무감각해진 사람들은 자극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광주의 희생은 자극 치고는 너무도 잔인했다. 여전히 사회의 민주화는 진행 중이며, 그 과정에서 탄생하는 희생자들을 외면하는 우리의 모습은 과거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왜 누구는 살고 누구는 죽어야 하는 것일까. 민주화를 위해 죽은 이들에게 성취된 민주화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살기 위해 죽은 사람들 그리고 살아 있지만 죽은 우리. 광주의 목소리는 너무도 서글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