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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천하를 얻은 군주, 세종대왕(世宗大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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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종대왕일까   태종(太宗) 18년(1418) 6월 3일 그의 첫째 아들 양녕대군(讓寧大君)이 폐세자가 되었고, 셋째 아들 충녕대군(忠寧大君)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두 달 후인 8월 10일 태종은 보위를 충녕대군에게 물려주었고, 충녕대군은 경복궁(景福宮) 근정전(勤政殿)에서 즉위식을 가졌다. 그는 이후 32년간 실로 한 시대에 이뤄졌다고 믿기 힘든 수많은 업적을 남기고 승하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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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종대왕일까

 

태종(太宗) 18년(1418) 6월 3일 그의 첫째 아들 양녕대군(讓寧大君)이 폐세자가 되었고, 셋째 아들 충녕대군(忠寧大君)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두 달 후인 8월 10일 태종은 보위를 충녕대군에게 물려주었고, 충녕대군은 경복궁(景福宮) 근정전(勤政殿)에서 즉위식을 가졌다. 그는 이후 32년간 실로 한 시대에 이뤄졌다고 믿기 힘든 수많은 업적을 남기고 승하했다. 그에게는 ‘세종’(世宗)이라는 묘호(廟號)가 붙여졌다.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세종대왕(世宗大王) 그 분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세종대왕. 초등학교 때 동상으로나마 한번쯤 뵈었을 세종대왕. (심지어 그가 살지 않은 경운궁(慶運宮,덕수궁)에서도 그의 동상을 볼 수 있는 웃지 못할 현실이 있긴 하지만.) 늘 우리 곁에 함께 하는 세종대왕. 그런데 우리는 그에 대해서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 집현전(集賢殿), 앙부일구(仰釜日咎), 자격루(自擊漏), ……. 대체 이것들이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아니, 우리는 세종대왕의 인간상이나 그의 지도자로서의 능력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세종대왕과 소헌왕후(昭憲王后) 사이의 거룩하고 위대한 사랑에 관해 우리는 제대로 알고 있을까? 세종대왕을 알아가고 공부해가면서 무수히 나에게 던져진 의문들이다.

 

2007년 12월.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새로운 지도자가 뽑혔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2008년 1월 오랜만에 세종대왕을 다룬 극이 방영된다고 한다. 극작가 신봉승(辛奉承)이 사극「조선왕조 500년」‘뿌리깊은 나무’ 편에서 세종대왕을 다룬 이후 거의 30년만이다. ‘전혀 새로운 감성의 드라마’라는 표현에서 뭔가 탐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사극에서는 세종대와 같은 치세는 잘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루하고 밋밋하다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만큼 세종대가 실로 믿기 힘든 태평(太平)의 시대였음을 반증하기도 한다. 아무튼 그런 세종대왕이 다루어진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왜 세종대왕일까?” 그것은 세종대왕과 그의 시대가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이 그만큼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의 지도자상은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탁월한 정치가 세종대왕

 

이 책은 바로 그런 세종대왕의 지도자상, 정치가로서의 모습을『세종장헌대왕실록』(世宗莊憲大王實錄)을 비롯한 적지 않은 사료와 수십 여 개의 참고문헌을 통해 살펴보고 있다. 저자는 그것을 ‘수성(守成) 리더십’이라 부르고 있다. 사실 ‘겨레문화의 샘터’이며, ‘운암호에 가득찬 많은 양의 물’처럼 방대한(이 표현은 이 책의 169쪽 참조) 세종대의 정치와 문화에 관한 수많은 학자들의 끊임없는 연구가 있었고, 그 성과는 한 권의 책으로 쉬이 정리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런데 이 책은 기존의 연구 방향에서 조금 빗겨나 그의 정치가로서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다는 데 독특한 점이 있다. 하기야 문화가 꽃이며, 그 줄기가 정치임을 고려한다면 정치, 특히 그 정점에 있는 지도자(국왕, 대통령 등)의 중요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으며, 매우 이 책은 그 점에서 신선한 느낌마저 가지게 한다(?).

 

정치가 세종대왕의 모습은 어땠을까? 어떤 리더십으로 한 시대를 이끌어갔을까? 이 책은 다양한 상을 제시하고 있는데, 나는 책을 읽으며 나름대로 다음과 같이 정리해보았다.

 

첫째, 그는 타고난 재능과 엄청난 노력으로 갖추어진 방대한 학문지식을 바탕으로 현실의 난제들을 풀어나갔다. 역사상 성군(聖君)으로 일컬어지는 이들의 면모를 보면 학문 수준이 높은 이들이 적지 않다. 세종대왕은 그 가운데 최고봉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는 원래 한 번 본 책은 잊어버리지 않을 정도로 기억력이 탁월했을 뿐만 아니라 그 책을 수백 번, 심지어 수천 번까지 읽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가 책을 많이 읽는다고 이야기한다지만 그것은 세종대왕 앞에 대면 한없이 미약할 뿐이다. 그가 세자 시절 책을 너무 많이 읽어 태종이 내관을 시켜 책을 모두 수거하게 했는데, 그 가운데 떨어진 구소수간(歐蘇手簡)을 수천 번 읽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둘째, 그는 무서운 집념과 자기 통제력을 지니고 있었다. 세종대왕은 재위 기간 부왕인 태종에 의해 장인의 가문이 풍비박산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등 개인적으로 엄청난 불행을 겪었으며, 시종일관 병마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그는 그러한 개인의 아픔을 찬란한 정치의 밑거름으로 삼는 놀라운 면을 보여주었다. 과연 이런 무서운 자제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셋째, 그는 진정 나라와 백성을 위해 몸을 낮추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당시 중국은 최강국이었다. 그런 중국을 상대로 지킬 것은 지켜가면서 명분과 실리로 대해나갔다. 그런 과정에서 그는 수없이 몸을 낮춰야 했고, 그는 그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나라와 백성을 지키는 데 개인의 체면이나 명예가 무슨 대수냐는 것이다. 

 

넷째, 그는 탁월한 인재 관리 능력을 보여주었다. 신분고하를 가리지 않고 인재를 등용하는 데 노력하였으며, 또한 등용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그들이 최대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었다. 특히 집현전 관리들은 수십 년 동안 다른 관직을 못하게 하면서 오직 학문 연구와 교육 등에만 몰두하게 하였는데, 이는 참으로 유례가 드물다. 그 속에서 한 시대를 풍미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나왔다. 황희(黃喜), 맹사성(孟思誠)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청백리 중의 청백리이다. 유관(柳寬), 허조(許租), 변계량(卞季良), 신숙주(申叔舟),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하위지(河緯地), 정인지(鄭麟趾), 정창손(鄭昌孫), 최만리(崔萬里), 김종서(金宗瑞), 최윤덕(崔允德), 이종무(李從茂) 등 정말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그들이 모두 세종대에 활약했다. 이들은 세종대왕의 뜻을 잘 알고 있었고, 그 뜻을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찬란한 정치와 문화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야말로 태평천하(太平天下)를 만들어갔던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참으로 보기 드문 시대를 이들은 만들어갔던 것이다.

 

다섯째, 그는 백성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위하는 정치를 펼쳤다. 지금으로부터 약 600년이 조금 못 되는 시기, 이 땅에는 사람 대접을 받지 못했던 여종과 그의 남편에게 출산휴가가 주어지는 파천황(破天荒)에 가까운 일이 일어났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새로운 문자가 만들어졌다.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될 수 있고 중화라는 자부심을 건들 수도 있다는 반대 의견이 있었지만, 세종대왕은 진정한 유학의 나라라는 이상을 실현하고 백성들이 편안하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훈민정음이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관철시켰다. 만약 훈민정음이 없었다면 나는 이 글을 한글이 아닌 한문으로 쓰고 있거나 아예 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여섯째, 그는 (이 책에서 특히 강조하고 있는) 중용(中庸)의 정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는 수많은 이들이 있으며, 그들의 갈등을 봉합하고 화합하여야만 진정한 정치의 발전을 이룰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의 의견을 경청하되 결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이치에 맞게 일을 처리하는 중용의 미학이 필요하다. 세종대왕은 이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현실 정치에 정확하게 적용시켰다.

 

세종대왕에게서 발견되는 지도자상은 이것 말고도 무수하다. 이 책은 그런 지도자상을 간명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이밖에도 이 책은 많은 부분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먼저 사대(事大)가 지니는 진정한 의미를 정치학자의 입장에서 명쾌하게 풀어주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다음으로 훈민정음 창제가 지닌 정치적 의미를 풀어내고 있는데, 이 부분이 특히 많은 공감이 갔다.『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이것이 앞으로의 문화컨텐츠로서 큰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는 주장은 우리가 반드시 귀담아 들어야 할 부분이다. 국역본으로 11,000쪽에 달하는 방대한『세종장헌대왕실록』하나만 제대로 알고 있어도, 현재의 우리 문화의 힘은 지금보다 몇십, 몇백 배 커질 것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다. 우선 정치가로서의 세종대왕을 다루다보니 그의 개인상이 간과된 느낌이 든다. 이는 세종대왕과 정조(正祖)를 비교하는 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사실 영조(英祖)가 사도세자(思悼世子)를 뒤주에 가둔 데에는 물론 정치적인 문제도 있지만, 영조와 사도세자 개인의 문제도 분명히 있다. 그것을 지나치다 보니 인물을 면밀히 파악하는 데 다소 한계를 보여준다.

 

황희에 관한 설명도 아쉽다. 능력이 있다면 도덕성은 다소 등한시해도 괜찮다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 황희의 매관매직과 같은 일은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황희는 재상의 자리에 있으면서 이런 면들을 충분히 불식시킬 만큼 충분히 청백리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황희가 그렇게 명재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탁월한 정치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되겠지만, 자신의 허물을 덮고도 남을 만큼 도덕성이 뛰어난 면을 보여준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점을 지나치고 있는 것은 다소 아쉽다.

 

 

세종대왕과 그 시대가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

 

한 사람의 아름다운 삶은 언제나 감동을 준다. 더구나 수많은 것을 가진 이른바 ‘가진 자’임에도 그것을 과감히 내팽겨치면서 자신의 주변, 크게는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더욱 그러하다. 그렇기에 세종대왕은 한국인들이 가장 존경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한 사람이다.

 

세상에는 뛰어난 군주들이 많이 살다 갔다. 하지만 세종대왕만한 이를 찾기는 힘들다. 노비에게 출산휴가를 준 것, 훈민정음의 창제는 그것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그는 이 두 가지만을 해낸 것이 아니다. 세종대왕과 그를 보좌하는 충직하고 명석한 신하들은 실로 한 군주의 시대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믿기 힘든 수많은 일들을 해냈고, 수많은 책들을 만들었다.『농사직설』(農事直說)은 농사를 천하의 근본으로 여겼던 조선의 기반을 더욱 탄탄히 다지는 역할을 하였다.『고려사』(高麗史)는 직서주의를 선택함으로써 우리가 고려의 역사를 코레아라는 자랑스러운 이름으로 여기게 만드는 바탕이 되었다. 실록(實錄)을 4부, 그것도 활자본으로 편찬하게 하면서 동아시아의 다른 실록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경지의 계기를 마련했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수많은 과학기구들은 백성들의 생활을 편하게 만들어준 최고의 명품들이었다.『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는 한글로 지어진 최초이자 최고의 작품이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움직이매, 꽃이 좋고 열매가 많나니.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아니 그치매, 내를 이루어 바다에 가나니.’라는 천하의 명문은 그 어떤 문학작품보다 찬란하고 위대하다. 훈민정음은 수천 년 역사 속에서 혁명 중의 혁명이었다. 갑인자(甲寅字)는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아름다운 금속활자였다.『칠정산』(七政算)은 조선은 중국과 다른, 또 다른 천하의 중심을 분명하게 보여준 명품이었다. 이 말고도 무수한 업적이 있으며, 이 모든 일들이 세종대에 이루어졌다. 이것만 미뤄보아도 세종대왕은 진정한 천하를 얻은 군주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다. 이 모든 것이 개인의 아픔과 그 아픔을 나라와 백성을 위한 지극한 마음으로 승화시켜 정치를 해나간 세종대왕의 면모에서 나온 것임을 기억한다면 그가 왜 진정한 천하를 얻은 군주인가를 다시 깨닫게 된다. 이상사회.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다. 세종대왕은 그것을 현실에 실현시키려 노력했으며, 그 나름의 시대상에서 그것은 상당 부분 실현되었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민주화라는 좋은 여건이 주어짐에도 끝없이 타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우리의 정치 현실을 돌이켜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오늘의 우리 정치를 보자. 해방이 된지 60여 년이다. 국민들의 뜨거운 열망과 염원으로 놀라운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뤄냈다. 하지만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말로는 하나같이 비참했다. 대통령이 자신의 재위 시절 통치 기록을 집에 가지고 가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무엇이 그렇게 부끄러웠을까? 공직자들의 도덕적 해이는 가히 위험수준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우리 정치인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면서 걸핏하면 “역사가 나의 마음을 알아줄 것이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거침없이 지껄인다. 우리 국방부는 자주국방을 외치고 있다. 그게 맞는가? 그렇다면 주한미군은 왜 아직도 우리 땅에서 저렇게 시퍼렇게 살아 있어 우리 국민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가? 과거 조선은 중국을 큰 나라로 섬겼지만, 그렇다고 중국의 군대가 우리 땅에 들어와서 돌봐주는 따위의 일은 없었다. 무슨 놈의 자주국방. 어림없는 소리이다. 그러니 이라크 파병같은 국가의 막중대사에 미국의 의견에 무조건 따르는 줏대 없는 행동을 보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 대한민국에서, (현재까지의 역사 가운데) 가장 행복하게 살고 있는 우리가 과연 세종대왕에 미치는 지도자를 만날 수 있을까? 그 만분의 일이라도 따라가는 지도자를 만날 수 있을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것을 반성하고 부끄러워해야 한다.

 

하지만 절망해서는 안 된다. 오늘의 비참한 정치 현실. 그러나 우리는 희망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분명 우리는 이러한 비참한 현실을 극복해 진정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 그 답은 지난 날의 우리 역사 속에 있다. 세종대왕과 그 시대가 새삼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이다. 이 책은 그 점에서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지금이라도 세종 정치의 사례를 여러 측면에서 발굴하고 소개해 “문화창조·민생애육의 생명수를 기세 좋게 콸콸 흘러내리게” 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래서 “수만 수천 마지기 논의 벼모가 모두 일제히 생기를 띠고 자라나고 피어나, 가을 하늘 맑은 바람에 황금의 물결을” 이루게 해야 한다. 실로《세종실록》은 우리 모두가 목욕하고도 남을 문화컨텐츠의 보고이며, 용기와 믿음을 주는 희망 정치의 생명수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그 생명수를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기를 희망하며 끝을 맺는다. (박현모,『세종의 수성 리더십』, 삼성경제연구소, 2006, 170쪽)

 

 

 

[덧붙임] 이 글을 쓰면서 다음의 문헌과 사이트를 활용하였습니다.

 

김상억 주해,『용비어천가』, 을유문화사, 1975.

민족문화추진회 국역,『국역 연려실기술』1, 민족문화추진회, 1966.

민현구,「세종대왕」,『한국사시민강좌』제30집, 일조각, 2002.

세종대왕기념사업회 국역,『국역 세종장헌대왕실록』1,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68.

오주석,「김홍도」,『한국사시민강좌』제30집, 일조각, 2002.

이성무,『조선왕조사』1, 동방미디어, 1998.

조선왕조실록 사이트

k******9 2007.12.25.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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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조직은 수성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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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으로 얻은 느낌은 두 가지다.   첫째는 의사결정에서 왕이 주도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신하들의 의견을 두루 묻고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라는 말로 창의적인 해결책이 제시될 수 있도록 한다는 것. 이렇게 독선적이지 않으면서도, 반대 의견을 줄기차게 제시하는 신하도 회의에 참여토록 하여 집단적 사고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하였다.   우리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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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으로 얻은 느낌은 두 가지다.

 

첫째는 의사결정에서 왕이 주도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신하들의 의견을 두루 묻고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라는 말로 창의적인 해결책이 제시될 수 있도록 한다는 것. 이렇게 독선적이지 않으면서도, 반대 의견을 줄기차게 제시하는 신하도 회의에 참여토록 하여 집단적 사고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하였다.

 

우리 사장님이 배웠으면 좋겠다.

 

둘째는 정조와의 비교.

신하를 가르칠 정도로 학식이 뛰어났던 정조는 너무도 뛰어났던 탓에 독선으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 정조처럼 뛰어나서 다른 사람들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능력도 부럽지만, 그러나 정말로 뛰어난 사람은 자신의 힘과 능력을 감추고 타인을 주인공으로 만들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최근의 화두인 서번트 리더십과도 관련되겠지?

 

 

세종이 왕이었던 시대는 창업기를 거쳐 안정적인 국가로 발돋움 해야 하는 수성기였다. 이 시기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제도를 안정화시킬 필요가 있다.

 

제도를 바로잡고 안정화를 꾀하다보면 지금까지의 질서에 젖어있는, 또는 다른 목표를 가진 사람들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들과의 의견충돌을 조정하고 탄탄한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세종과 같은 사람이 필요했겠지 싶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q*******6 2010.04.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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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뚝심 세종의 진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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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독서유감>입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신영복 선생님은 역경의 산 증인입니다. 언제고 무엇인가를 다시 시작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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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독서유감>입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은 역경의 산 증인입니다. 언제고 무엇인가를 다시 시작할 때 이 분의 이름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선생님은 <처음처럼>이라는 서화 에세이집을 낼 때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역경(逆境)을 견디는 방법은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며,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수많은 처음'을 꾸준히 만들어내는 길밖에 없다고 할 것입니다.
    수많은 처음이란 결국 끊임없는 성찰(省察)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목이 잎사귀를 떨고 자신을 냉정하게 직시하는 성찰의 자세가 바로 석과불식의 진정한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처럼>,p.7)
수많은 처음 중에서도 신년 초는 꽤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지난 한 해를 반성하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한 계획을 세울 때입니다. 아직 올해의 계획을 세우지 않으셨다면, 이번 한 주는 2008년을 위한 새로운 다짐의 주간으로 삼아봄이 어떠할른지요.

어제 새해 아침을 맞아 가볍게 집안 청소를 했습니다. 유효기간이 다한 책을 버렸습니다. 270여 권 정도 됐는데, 거개가 컴퓨터 관련 서적이었습니다. 애착이 가거나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버렸습니다. 집이 조금 더 넓다면 어떻게든 보관했을 터이지만, 버리면서 서운한 감정보다 시원한 기분이 더 컸습니다. 기술서는 인문서와는 달리 유효기간이 매우 짧습니다. 기껏해야 몇 년. 버린 것 이상으로 새로운 것을 익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올 초 책 읽기의 주제는 '사람'입니다. 자서전이든 평전이든 한 인물에 대해 집중적으로 읽어볼 생각입니다. 책보다는 사람을 배우기가 쉽습니다. 열정을 배우고 절절함을 느끼고 반성과 성찰을 통해 나를 이끄는 데는 책보다는 사람이 좋습니다.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을 통해 그가 살았던 사회와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훨씬 생생합니다. 친근하고 생동적입니다. 지식 습득과 마음 공부를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것이 사람 배움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합니다.

오늘과 내일은 세종대왕에 관한 책을 소개할까 합니다. 즐겨 보던 대하사극 <대조영>이 끝나고 후속 드라마로 <대왕 세종>을 한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과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상징하는 중심도로의 이름은 '세종로'입니다. 그 거리에 있는 동양 최대의 파이프 오르간을 보유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대표적인 문화예술기관의 이름은 '세종문화회관', 한국 최초의 남극 과학기지의 이름은 '세종과학기지', 대한민국 최초의 이지스함 1호 이름도 '세종대왕', 현재까지 최고액권인 만원 지폐의 주인공 역시 세종대왕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올해 우리나라는 세종대왕 배우기가 유행이 될 것 같습니다. 정조 배우기가 끝나면 세종 배우기로 넘어갈 것 같기 때문입니다. 시대를 달리했던 두 임금은 비록 그 스타일은 달랐을지 모르겠지만 지식으로 신하를 압도하고 현실을 바로 인식하고 개혁을 추진했다는 면에서는 아주 많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의 리더십을 소 모는 것에 비유하지면, 정조는 앞에서 소를 끄는 스타일이었고, 세종은 뒤에서 소를 모는 스타일이었습니다. 두 임금 모두 그 역할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재임 기간 내내 편안한 날이 없었고 잔병을 달고 살았습니다. 세종이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었음은 누구나 아는 터이고, 정조 또한 그 죽음이 독살이 아닌 과로사일 것이라는 추측도 있습니다. 이런 면만 보자면 저는 세종을 닮고 싶습니다. 느릴 것 같지만 멀리 오래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뒤에서 소를 몬다고 해서 수동적이라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세종은 그 누구보다 부지런했고 박학다식했습니다. 무엇인가를 시작하면 곧 그 분야의 전문가가 곤혹스러울 정도로 집중했습니다. 역사에서부터 천문, 역학, 기술, 음악까지 그의 관심이 미치지 않는 범위가 없었습니다. 훈민정음의 창제도 집현전 학자들의 도움 없이 세종이 홀로 만들었을 거라는 추측이 지배적입니다. 훈민정음 반포 이후 집현전 수장이었던 최만리가 소리 높여 반대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제   목 : 세종의 수성(守成) 리더십
   지은이 : 박현모
   펴낸곳 : 삼성경제연구소 / 2006.5.12 초판 발행, 2007.4.25일刊 개정판 4쇄를 읽음 (5,000원)

세종의 리더십에 대해서는 세종국가경영연구소 연구실장인 박현모가 쓴 <세종의 수성(守成) 리더십>을 보면 매우 잘 알 수 있습니다. 잘 알려진 세종의 백성을 생각하는 정치, 곧 위민정치에서부터 공적으로 허물을 덮게하고, 마음을 기울여 인재를 등용하여 한 번 믿은 사람을 끝까지 중용한 그만의 지식경영 방식까지, 이 얇은 책 한 권에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세종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에 대한 굴욕적인 사대외교 역시 당시로서는 가장 실용적인 외교였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아직 나라의 기틀이 잡히지 않은 조선 초의 상황에서 보자면 매우 일리 있는 평가입니다.

최근 출간된 이한의 <세종, 나는 조선이다>를 함께 읽고 있는데,  이 책은 세종대왕의 일대기와 주변인들에 대해 비교적 소상히 알 수 있지만, 세종에게서 배울 만한 핵심을 조목조목 정리한 데에는 <세종의 수성 리더십>이 훨씬 좋습니다. 얇지만 참 많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배울 점이 참 많습니다. 세계적 발명품인 훈민정음 창제도 세종의 여러 위업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그 위대함이 아니라, 세종 시기의 수많은 업적을 가능하게 했던 그의 철학, 사고하는 방식과 일 처리 방식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책 읽기'가 아닌 '사람 배움'의 목적이니까요.

결과적으로 세종 시기에 수많은 업적이 있었지만, 당시 인재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조금 쓸 만하다 싶으면 고려왕조에 대한 단심(丹心)을 버리지 못하고 두문동에 은둔하고 있거나, 그도 아니면 2차에 걸친 '왕자의 난'으로 숙청되거나 죄를 뒤집어 쓰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천출의 구분 없이 젊은 인재를 구했습니다. 비록 허물이 있더라도 능력이 있으면 모두 중용했습니다. 명재상으로 알려진 황희 정승 또한 엄청난 반대를 무릅쓰고 중요했습니다.

황희는 세종의 아버지뻘이었습니다. 상왕인 태종 때 사람으로 세종과 함께 일하기 시작했을 때 이미 환갑이었습니다. 그는 과거 권력을 잡은 동안 매관매직을 일삼았고 사위가 저지른 살인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조서를 변조하고 죄없는 사람에게 그 죄를 뒤집어 씌우기도 했습니다. 면직과 파직을 거듭했던, 결코 깨끗하지 않았던 관리였습니다. 그러나 세종은 그를 중용했습니다. 그는 아무리 복잡한 사태도 그 핵심을 파악해 간명하게 정리하는 재주가 있었고, 인재를 발굴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신의 손 장영실도 그의 작품입니다. 세종은 그를 끝까지 믿었고, 황희는 이에 청빈한 재상으로서 대업을 보필했습니다. 황희는 세종으로 인해 청백리로 거듭났고, 세종은 황희의 도움으로 동방의 성주(聖主)가 될 수 있었습니다.

세종은 '미스터 뚝심'입니다. 이 별명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 세종실록>편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한번 마음 먹은 일은 그 끝을 봐야 했습니다. 물론 홀로 하지 않았습니다. 전문가를 발굴하고, 그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여 전문가를 긴장시켜 가며 일을 해내고야 말았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참을성이 많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라고 할 때까지 의견을 구한 후에 시행케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정치를 숙의(熟議)의 정치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는 조선왕조 내내 따라다니는 독살설로부터 자유로운 임금이었습니다.

새해 첫 출근 시간이 다가옵니다. 시간에 쫓기어 글을 어설프게 끝내지만, 못다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기약해야겠습니다. 2008년, 세종과 같은 뚝심으로 계획한 바, 모든 것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n******8 2008.01.1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세종, 그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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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세종대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세종대왕과 정조에 대한 이야기가 TV에 드라마로 만들어지면서 더욱 더 관심이 높아진 것 같다.  아마도 우리 나라 사람들이 가장 훌륭한 인물로 꼽는 위인이 세종대왕일 것이다. 그리고, 세종대왕에게서 현실을 헤쳐나갈 수 있는 리더십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이 책에서 '세종 르네상스'라고 말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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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들어 세종대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세종대왕과 정조에 대한 이야기가 TV에 드라마로 만들어지면서 더욱 더 관심이 높아진 것 같다.

 아마도 우리 나라 사람들이 가장 훌륭한 인물로 꼽는 위인이 세종대왕일 것이다. 그리고, 세종대왕에게서 현실을 헤쳐나갈 수 있는 리더십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이 책에서 '세종 르네상스'라고 말할 정도로 인기가 있는 이유가 현재 우리 나라가 처한 상황과 비스하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현재 우리는 전환기의 불확실한 상황에 처해 있으며, 지금이 변화의 시기이자 도약의 시기이다 보니 리더십과 국가경영의 중요성을 더 크게 인식하고 있는 것같다. 우리가 존경할만한 우리 지도자상의 부족, 고유 정치 사상의 부재는 세종대왕으로부터 그 리더십을 찾고자 하는는 것이다. 

 실록속의 세종은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정적들과 싸우고 협상하고, 때로는 독선적으로 처리하면서도 항상 그 정신에는 애민의 정신이 있고, 현실과 이상 속에서 끊임없이 번뇌와 고뇌를 거듭하는 인물이었다. 단지 성군으로만 떠받들어져 존재하는 신화속의 인물이 아니라 현재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현실속의 인물이자 역사속의 인물이기도 하다. 

 
 이 책은 태종의 선택이 왜 양녕이 아닌 충녕이었는지로 시작하여 백성을 위한 위민정치, 개혁방식, 외교 및 북방정책, 그리고 수성의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왜 양녕이 아닌 충녕이었나?

 태종은 아마도 양녕을 수성기의 지도자감이 아니라고 판단을 하였다. 태종대까지의 임금은 마상의 정치를 필요로 했지만 이제는 수성의 정치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왕이 되기 위한 첫번째 조건은 인심을 잃지 않는 것이다. 둘째는 자기 절제력과 치우치지 않은 공적인 태도이다. 셋째, 어떤 정치 세력에게도 얽매이지 않는 독자성이다. 넷째, 스스로 돌이켜 반성하는 태도이다. 이러한 점들에서 태종은 세자인 양년의 변화 가능성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무엇보다 항상 배우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즉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배움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세종의 실용외교, 북방정책

 세종은 항상 중요한 개혁문제나 국익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외교문제의 경우 항상 신료들과의 토론을 거쳐서 결정하였다. 자신의 독단적인 결정이 아니라 신하들에게 의견을 묻는 과정 하나를 거침으로써 외교적 실책을 줄일 수 있었다. 이러한 점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그리고 항상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활용함으로써,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세종은 항상 모든 일의 기준이 위민에 있었다. 백성을 위한 정치, 그것이 곧 하늘의 정치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로부터 나온 것이 훈민정음의 창제이며, 수많은 과학기기의 발명이다. 그리고 하나의 정책을 실시하기 위하여 무수히 많은 연구를 하며, 거기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노력하였다. 그 하나의 예가 여론조사의 실시이다.

 

 무수히 많은 업적, 인재등용의 원칙, 즉 죄과가 있더라도 공적으로 덮게 하라는 것은 지금에도 새겨볼 만하다. 작은 하나의 실수를 가지고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재능과 능력이 있으면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그 공적으로 죄과를 갚게 하는 것은 인재 활용의 기본이 될 것이며, 정적의 의견이라고 하더라도 끝까지 의견을 청취하는 통제력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자신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경청을 하며 토론을 하는 것은 현실의 우리에게서도 너무나도 필요한 과정이다. 그것이 아무리 반대하는 정적의 의견일지라도 말이다.  

 

 흔히 수성기의 리더십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보통 창업기의 리더십은 그 과정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높이 평가된다. 그러나 한 번 이루어진 창업을 정상으로 올려놓는 과정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현상을 유지하는 정도가 아니라 창업기의 이루어진 무수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끊임없는 노력 및 수성기에 존재하는 무수한 도전을 이겨내는 과정이 수성기의 리더십인 것이다. 

a****e 2008.07.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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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군 세종의 경청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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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을 창제한 큰 업적때문에 다른 업적이 도리어 가리는 성군, 세종대왕의 리더십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정리한 책이다.   세종의 정치는 한 마디로 '백성들의 평범한 생활을 위한 비범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세종 리더십의 원천은 ① 초인적인 자기 통제력,  ② 인재를 기르고 적재적소에 배치,  ③ 숙의의 정책결정 방식,  ④ 실용적 사대외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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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을 창제한 큰 업적때문에 다른 업적이 도리어 가리는 성군, 세종대왕의 리더십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정리한 책이다.

 

세종의 정치는 한 마디로 '백성들의 평범한 생활을 위한 비범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세종 리더십의 원천은

① 초인적인 자기 통제력,  ② 인재를 기르고 적재적소에 배치,  ③ 숙의의 정책결정 방식,  ④ 실용적 사대외교를 통한 국익의 확보 를 들 수 있다.

 

세종은 세종은 유교 이외에 풍수학, 도교, 불교에 대해서도 나라에 이롭고 국가에 도움이 된다면 실용적 차원에서 이용하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실용주의가 현재 대한민국의 외교에서 실행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 책에서는 세종과 정조를 비교하기도 하는데, 이것이 재미있다.

세종은 과제를 집현전 학자들에게 던져놓고 기다리는 스타일인 반면에,

정조는 자신이 전면에 나서 규장각신이나 초계문신을 가르치는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특히, 정조는 국왕이 직접 문신들을 가르치고, 과제검사를 하고, 시험을 치게 하기도하였는데, 이런 "임금이자 스승"의 모습에 대해 오익환과 정약용은 아래와 같이 비판했다.

 

"왕이 신하를 가르칠 상대로 보고, 비판과 조언을 받을 상대로 보지 않으니, 국왕의 박식과 다언에 묻혀 언로가 막혔다. 물러나서는 앞날을 걱정하나, 들어가면 임금의 비위를 맞추는 풍습이 생겨 신하가 왕의 말을 어기지 않는 것만을 낙으로 삼게 된다."

 

사실 총명한 윗 사람이 아랫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있는 것은 상당한 참을성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윗 사람이 말을 많이 하고 가르치려고 들면, 언로가 막힌다는 측면은 현대의 경영자들이 깊이 생각해야 될 점이라고 본다.

YES마니아 : 로얄 k******5 2008.06.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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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리더십을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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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연구에세이 문고판을 몇권 사 읽다가 CEO와 리더십을 주제로 10권을 한패키지로 엮어 판매하길래 지름신이 또 나를 그냥두지 않았다. 문고판이 좋은이유는 내용이 있으면서 쉽게 읽을수 있다는 것이다. 대략 200페이지 내외이면서 그 내용은 기대 이상이다. 가지고 다니면서 언제 어디서나 읽을수 있고, 읽기에 지루해지기 전에 끝을 보게된다. 이런 좋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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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연구에세이 문고판을 몇권 사 읽다가 CEO와 리더십을 주제로 10권을 한패키지로 엮어 판매하길래 지름신이 또 나를 그냥두지 않았다. 문고판이 좋은이유는 내용이 있으면서 쉽게 읽을수 있다는 것이다. 대략 200페이지 내외이면서 그 내용은 기대 이상이다. 가지고 다니면서 언제 어디서나 읽을수 있고, 읽기에 지루해지기 전에 끝을 보게된다. 이런 좋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비하면 우리나라에선 문고본이 많이 나오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첫번째로 들게된 책이 '세종의 수성리더십'이다. 근래에 자기계발과 자기경영이 그 어느때보다도 강조되고 있다. 그에 발맞추어 리더십이 단연 화두이다. 한국의 위대한 지도자를 한명 꼽으라면 단연 세종대왕을 꼽을 것이다. 하지만 리더로서 모델을 찾으라면 우리역사에서 많은 사람이 있을지라도 왜 리더인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찾을수가 없다. 아직 리더로서의 지도자 연구와 한국적인 리더십의 원형이나 사례등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근래들어서 이순신,왕건,주몽,연개소문 등과 같은 역사속에서 리더의 전형을 찾을려고 하는 모습이 많이 눈에 띈다. 특히나 문고본이나 책한권으로 역사적 자취를 남긴 인물들의 리더십을 엿볼수 있게 되다니 정말 고마운 일이다.

이책은 태조를 창업으로 볼때 세종은 수성기로 보고 있다. 혁명을 지나 사회운영 메커니즘이 안정화되고 제도화되어가는 시기이다. 세종이 창업의 단계를 지나 수성의 단계로 진입시키기 위해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하였다. 수성의 리더십은 단지 현상유지가 아니라 끊임없는 혁신과 지속적인 생명력으로 지속적인 성장 시스템을 구축하여야만 되는 것이다.

 

성장 시스템의 지속적인 구축을 위한 세종의 리더십 원천을 보면 자기 자신에 있어 초인적인 자기 통제력을 가졌으며 인재를 등용함에 있어 인재를 기르고 적재적소에 배치하였으며 정책을 결정함에 있어 숙의의 정책결정 방법을 통하여 충분한 시간과 토론을 거쳤다. 과거속의 리더십이 지금의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무엇일까? 과거를 창조적으로 활용하여 미래의 발판이 될수 있게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지금 우리에겐 좋은 리더십을 갖춘 사람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필요하다. 희망의 정치가 필요하고 침체되어 있는 사회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불러일으킬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도 필요하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리더의 상을 세계 최고의 리더십이라고 떠벌리는 외국의 사례와 비교해 결코 뒤지지 않은 바로 우리 역사속 리더에게서 그 원형을 찾아 보았으면 한다.

이 책이 바로 리더의 부재에 살고있는 우리에게 대리만족이나마 줄수 있지 않을까 생각든다.

a*****l 2007.03.06. 신고 공감 0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