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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필이란 학자는 오래전부터 알았지만 그가 주해한 주역을 읽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주역을 제대로 읽어 보자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는데184쪽 산지박괘까지 읽고는 책을 덮어 버렸다. 그리고 대산선생의 주역강의를 읽고 있다. 책을 덮어버린 이유는 역자의 번역을 믿을 수가 없어서다. 두툼한 두께를 자랑하는 <주역왕필주>라는 책은 분명 한자로 된 왕필의 주해서를 번역한 책인데 이건 뭐 한글로 쓰여있어서 번역서지 실상 읽어보면 도대체가 무슨 말인지도 모를 그런 번역서다. 자그마한 토씨 하나의 차이로 문장이 확 바뀌니 이런 역서를 믿고 책을 읽을 수가 없다. 예를 들자면(일단 174페이지 9째줄 九五를 육오라고 잘못 표기한 것은 넘어가고), 177쪽의 서(噬)가 깨물어로 역이 되었는데(이 한자의 우리말 훈독이 깨물 서다) 곧바로 이어진 177쪽의 噬는 씹어로 역이 되었다. 서자가 깨물다, 씹다는 뜻으로 쓰이는 글자인 건 맞지만 번역이란 걸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역은 일관되어야 한다. 번역에서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뉘앙스의 차이다. 깨무나 씹으나 무언가 입안에서 으스러뜨리는 행위라는 것은 똑같지만 엄연히 느낌이 다르고 형태가 다른 글자다. 입술을 깨물며 분노를 참았다라는 글과 입술을 씹으며 분노를 참았다는 말의 느낌이 다르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깨무나 씹으나 뭐가 다르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할 말 없지만 깨무는 것과 씹는 것은 뉘앙스가 다른 글자다. 눈을 눈깔이라고 해도 같다고 할 판이고 노인을 늙은이라 불러도 똑같은 호칭이라고 말 할 판이다. 또 한 가지 예를 들자면 183쪽의 '賁는 亨하니 小利有攸往하니라'다. 이 구절을 역자는 '비는 형통하니, 가는 바를 둠이 조금 이로우니라'라고 번역했다. 대체 우리말이면서 어려운 말이라고는 한자도 섞이지 않은 이 문장이 말하는 바는 무엇인가? 도대체가 이해가 안 된다. <비는 형통하니~> 그래. 어려운 말이 아니다. 비라는 괘는 형통한, 좋은 괘라는 소리지? 그 다음부터가 모르쇠다. 가는 바를 둠이 조금 이롭다니? 가야지 이롭다는 것인가 아니면 가더라도 이롭다는 것인가? 이는 천박한 나의 소견으로만 봐도 순전히 攸자 한 자를 이상하게 역해서 그런 것 같다. 攸자는 바 유라고 훈독하지만 그 뜻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攸자의 가장 큰 기능은 역시 어조사로서 ~바 뿐만 아니라 장소, 곳 등을 나타내는 처소사로도 쓰이는 글자다. 그러니 攸를 "가는 바를 둠이"하는 식의 ~바로 해석하지 않고 ~곳으로 해석하면 어떨까? "비는 형통하니까 가는 곳에(곳에서) 작은 이로움이 있다" 이렇게 해석하면 전혀 생뚱맞은 문장이 되는가? 난 오히려 攸를 ~바가 아니라 ~곳으로 해석하는 게 훨씬 머리에 잘 와닿는다. 뭐 번역이란 것이 어차피 한계라는 것이 있는 작업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우리말 번역이라면 우리말을 쓰는 사람들이 읽어서 이해가 되어야 번역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무슨 변역이니 지괘니 도전괘니 하는 따위의 낮선 단어가 쓰인 문장이 아니고 누구나가 다 쓰는 말로 이루어진 문장인데 막상 읽어보면 대체 무슨 말인지를 모르는 문장을 두고 과연 번역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190쪽에서는 또 '박剝은 깎이는 것이니 柔가 剛을 변함이니 가는 바를 둠이 이롭지 않음은'따위로 말했다. 역자가 한국사람인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우리말은 이렇게 쓰지 않는다. 깎이는 것이니 유가 강을 변함이니라니? 움직임에 관한 말이 나왔으면 그 움직임으로 인해 일어난 어떤 상황이나 변화가 와야 한다. 즉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역으로 결과는 원인에서 비롯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맞아서 아프다고 했을 때 아픈 원인은 맞은 것이다. 또한 맞은 것의 결과로 나는 아픈 것이다. 즉 맞아서 아픈 것이다. 때려서 욕을 먹었다라고 했을 때 욕을 먹은 결과는 때린 원인에 있다. 그리고 때린 결과로 욕을 먹은 것이다. 박은 깍이는 것이니는 원인이다. 주어가 들어간 주부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유가 강을 변함이니 가는 바를 둠이 이롭지 않음은~이라는 이상한 문장이다. 하다못해 '강을'이라고 역한 것을 '강으로'라고 을을 '으로'로 고치기만 해도 문장은 확 바뀐다. 유가 강을 변함이니가 아니라 유가 강으로 변함이니라고 말이다. 또한 '변함이니'라는 번역도 이상하긴 매 한 가지. 이는 현토가 '니'로 되어서 변함이'니'로 번역을 한 것 같은데 옛날에 붙은 현토를 지금의 우리말로 곧이 곧대로 해석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옛날에 쓰던 말이 어찌 지금의 말과 같을까? 분단 오십 년 만에 남과 북이 쓰는 말도 이렇게 달라졌는데 말이다. 변함이니를 하다못해 변해서라고 말해도 이 요상스러운 번역문은 이렇게 바뀐다. '박은 깎이는 것이니 유가 강으로 변해서'라는 문장이 된다. '박은 깎이는 것이니 유가 강을 변함이니'와 '박은 깎이는 것이니유가 강으로 변해서'와는 천양지차의 문장이다. 번역이라면 최소한 의미전달이 가능하고 오해의 소지가 없어야 하는 것 아닌가? 책을 산 것이 너무나 아깝다. 대산의 주역강의를 다 읽고 나면 다른 주역책을 읽어봐야겠다. 이 책 <주역왕필주>는 절대로, 절대 절대 절대로 사람들에게 권하지 않겠다. 이해못할 우리말로 나열된 글을 떡하니 전면개정 번역판이라고 출간할 수 있는 출판사측에 경의를 표한다. 출판사측의 어느 한 사람도 이 책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책을 출간했다고 생각한다. 대단한 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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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유명한 고전의 하나인 주역. 하지만 너무도 어려운게 사실이다. 주역을 연구하는 학자들과 주역 해석서가 수없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 중 천재 중의 천재라는 왕필의 주석서는 오래전부터 인정받아 왔다. 왕필은 도가의 영향을 받은 현학자이기에 도가의 입장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괘효의 구조를 익히고 상하, 중정, 응비의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여러 번 읽다 보면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