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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의 화두는 죽음에 대한 질문이다. 이 문장이 주지하듯, 한 번 생각해 본 사람들은 죽음이 단순한 끝이 아니라 생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과 시작임을 알 수 있다. 물론, 화두는 죽음에 대한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예술적 표현이었으나, 좀 더 관찰해보면 사라지고 없어짐에 대한 공포나 적막한 고요에 대한 질문일 것이다.
이 책의 서두에 기술한 작가의 말을 보면, 어릴 적에 ‘나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하는 생사에 관한 질문을 처음 해봤다고 진술하고 있다. 그 것도 어린나이에, 두 번째 새 아버지에 의해 발가벗겨져 사람들이 오가는 공터로 내 쫓겨난 후, 횟수가 늘어 갈수록 수치심과 원망을 벗고 존재의 무상함을 깨달았다고 한다. ‘인간이 우주의 질서나 자신의 인생에 대한 궁극적인 의미를 찾고자 깊은 사유와 관심을 보일 때 특정교리를 믿지 않아도 그는 이미 종교를 가진 것이다’/라고 인용한 글에서 보면 저자는 어려서부터 이미 종교적 색깔을 지녔던 것으로 인식되어진다. 하여 저자는 윤회적 만남과 생사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물음으로 세상을 간파하려고 한다.
기실, 가족들의 삶속에 음울한 정서가 스며있다. 그러나 그녀는 두 번째 아버지의 학대를 본인을 사색적이게 만들었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이것은 그녀가 용서와 화해를 통해 진정한 삶을 추구하는 태도를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 ‘세상이 나에게 준 건 상처 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난 세상을 용서하고 끌어안으려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그녀를 이해하고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더욱 명확해 진다. 본문에 이러한 글이 있다. 여인아,/사랑하는 사람 못 만나 괴로우냐?/미워하는 사람 또 만나 괴로우냐?/그 슬픔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아느냐/그 슬픔의 원인이 무엇인지 아느냐/돌처럼 앉아 있지만 말고/울지만 말고/그 의문의 칼을 품어라/이제 연극과 같은 화려한 화장을 지우고/강의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아라/자궁에서 막 나왔을 때의 참모습이 보이느냐?
자신의 근본을 찾아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그 의문의 근본을 찾기 위해 비구니 산사를 헤매 다니던 어느 날, 문득 법당 뜰에 발가벗고 근엄하게 앉아 있는 누렁이 한 마리에게서 그 답을 얻고 아예 그 질문을 놓아버렸다고 한다. 부질없는 인연과 욕망의 덫에서 빠져나와 입산수도하며 행복의 경전을 만들고 있는 비구니스님들은 저자 자신을 일깨워 주었다고 말하고 있으며 무욕과 텅 빈 마음의 상태를 만들고 그런 적멸의 상태야 말로 진정한 행복이고 해탈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모두 행복으로부터 왔고 행복으로 간다고 비구니스님들의 말을 빌려 이야기하고 있다.
‘비구니 산사로 가는 길’ 이 한권의 책은 4개의 단락으로 꾸며져 있다. 1부는 머무르기 위해 지나가는 바람처럼을 산청 방장산 대원사, 평창 오대산 지장암, 청도 호거산 운문사를 쓰고, 2부에는 너희, 아름다움에 눈 멀었으니로 울산 가지산 석남사, 양산 천성산 내원사, 당진 상왕산 영탑사를 쓰고, 3부는 변하는 것의 아름다움으로 예산 덕숭산 견성암, 문경 사불산 윤필암, 강화 고려산 백련사, 상주 갑장산 용흥사를 썼다. 4부 마지막 단락으로는 길 위에 마음을 버리다를 공주 계룡산 동학사, 보은 속리산 탈골암, 장수 팔공산 팔성사를 엮어 비구니의 삶에 자신의 삶을 보태어 담담하고 진솔하게 소개하고 있다. [인상깊은구절] 여인아,/사랑하는 사람 못 만나 괴로우냐?/미워하는 사람 또 만나 괴로우냐?/그 슬픔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아느냐/그 슬픔의 원인이 무엇인지 아느냐/돌처럼 앉아 있지만 말고/울지만 말고/그 의문의 칼을 품어라/이제 연극과 같은 화려한 화장을 지우고/강의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아라/자궁에서 막 나왔을 때의 참모습이 보이느냐? |
| 새벽 3시다. 도량석이 시작되었다.’ 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조용하지만 잰 걸음의 스님들이 떠오른다. 차가운 물에 세수를 하고 가사를 걸치는 소리, 미닫이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들이 책속에서 걸어 내게로 다가온다. <비구니 산사 가는 길>은 굴곡의 시인 이기와가 사진작가 김홍희와 함께 전국의 산사들을 돌며 펴낸 감동의 기행집이다. 나와 같은 남정네는 평생 들여다 볼 수 없을 법한 비구니들의 생활들을 소소하고 감동적으로 이야기해준다. 여성 특유의 감수성에 시인의 혜안까지 지녔으니 책의 내용은 말하지 않아도 알만할 터. 또한 이기와 시인의 글과 어울리는 아름다운 사진작가의 주인공은 <나는 사진이다>라는 포토 에세이를 펴내기도 한 김홍희 작가이다. 평창 오대산의 지장암, 울산 가지산의 석남사, 예산 덕숭산의 견성암, 그리고 강화 고려산 백련사 등 수 많은 산과 그 속에 자리하고 있는 산사의 모습과 스님들을 이야기한다. 시인은 스님들을 만나고 절에 머물면서 삶의 화두를 찾고 잃어버린 길을 보며, 보이지 않는 답을 본다. 소나무 밑에서 잠시 쉬고 있을 때는 작은 자벌레에게서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지혜를 배우고,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느낀다. 시인은 시집살이 보다 더 고달프고 까다롭다는 행자시절을 마치고 구족계를 받아 스님이 된, 수많은 비구니들을 만나면서 배움과 깨달음의 의미를 되짚는다. ‘계곡물이 꽁꽁 얼어붙어 죽은 듯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꺼운 얼음장 밑으로 실핏줄이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계곡물은 냉장고의 얼음덩어리처럼 죽은 것이 아니라 피가 통하고 있다’ 계곡물 속에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다는 시인의 말은 오래 묵은 된장으로 끓인 구수한 된장국과 같다. 산과, 나무와, 물과, 법당안의 공기들은 무릇 ‘때가 잘 끼는 애욕의 손톱 밑’과 ‘물욕의 발가락 사이사이’를 깨끗이 씻어주는 최고의 멘토가 아닐까... 이기와 시인의 글도 글이려니와..., 실은, 나에게는 김홍희 작가의 사진이 글보다 더욱 좋았다는 것을 고백한다. 눈이 부실 듯 반짝이는 스님의 방, 목탁이 걸려 있는 깨끗한 벽, 법당 앞에 벗어 놓은 하얀 고무신들은 속세에서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겠다는 스님의 무소유를 보여주는 듯 하다. 어른어른 한 물결과 그늘진 산사의 모습, 간절한 소원을 빌기 위해 피어 놓은 단아한 촛불들... 아름다운 처마의 단청과 어두운 그늘의 담 속에서 강하고 부드러운 모습으로 피어난 작은 잎들... 김홍희의 사진들은 산사의 고즈넉한 풍경을 고스란히 책에 담았다. 시간이 나면 글을 쓰고 명상을 한다는 작가의 모습은 산사의 스님들과 꼭 닮았다. 그래서 일까, 사진들은 하나같이 스님들의 법문처럼 깊고 진하게 다가온다. 온갖 더러운 욕망으로 가득한 세상, 오랜만에 차분히 앉아 내 속에 들끓고 있는 욕망들을 잠재울만한 책을 만났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부질없는 속세에 너무 많은 기대와 열망을 안고 있다. 그것이 고스란히 자신을 갉아먹는 벌레인줄은 꿈에도 모른 채... 욕심으로 가득한 속세인들의 모습을 잘 표현한 이기와 시인의 말은 물욕으로 가득한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기에 충분하다.... 수분이 있는 것들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무청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이승에 머무르기 위해 지나가는 바람과 햇살을 끌어와 이불로 덮고 제 몸의 부피를 줄이고 있다. 애욕과 물욕의 수분이 많은 사람들의 몸은 쉬 곰팡이가 슬고 빨리 부패하고 만다. 그들은 제 욕심의 수분을 말리는 방법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