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지만큼 깔끔한 책이었다. 과하다 싶을 정도의 담백함이 느껴졌다고 할까? 과도한 담백함이 밋밋함을 불러오지는 않았나 싶다. 사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제목때문에 꽤 끌렸었다. 특히 40대 여성이 그린 삶의 아름다움을 정원에 투영시켜 그렸다는 점에서 엄마에게 꼭 읽어보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솔직히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한 채 그저 40대 여성의, 넉넉함 삶을 살아가는 여유로운 주부의 모습만을 봤을 뿐이다. 내가 너무 각박한 삶을 살아가고있기 때문일까? 간단하게 책에 대해 살펴보자.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현대인에게는 언제나 쉴 수 있는 곳에 대한 간절함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베스 켑하트는 모든 일상의 틀에 허덕이는 현대인들의 부러움이 될 만한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그녀가 발견한 챈티클리어 공원은 소유주가 개발의 바람 속에서 꿋꿋하게 지켜낸 공간이다. 그리고 그 곳을 아는 사람에게 더없이 좋은 휴식의 공간이 되고 있다. 그 속에서 그녀가 느끼는 앞으로의 삶에 대한 성찰이 담긴 책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그녀 혼자만의 생각들이 가득 담긴 책인데다가, 내가 아직 그녀의 나이가 되기에는 많은 시간이 남았기 때문인지 솔직히 책에서 많은 공감을 이끌어내긴 역부족이었다고 생각한다. 세피아톤의 멋진 사진들이 오히려 바쁘고 지친 내 마음에 조금의 위안이 되었으면 되었을까, 명상록이라는 책 설명에는 못 미쳤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어떤 모습을 보고 그녀의 감상을 적어내린 책 정도로밖에 읽히지 않았다. 멋진 사진을 잘 살려내지 못한 책이 되버린 것 같아서 참 아쉬웠다.물론 번역본의 한계를 느낀 것일지도 모르겠다. 원문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있을 때 이 책을 읽는다면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 삶의 성찰을 해보기엔 힘든 책이었다. 혹시 모르겠다. 그녀와 같은 40대의 가정과 직업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이라면 좀 더 공감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마지막에는 "챈티클리어가 지나온 길"이라는 내용이 들어있다. 이 부분은 참 좋았던 것 같다. 기존에 살고있던 원주민들과 이주민들간의 이야기, 그리고 그 곳을 거쳐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은 내 마음 속이 잔잔한 호수가 되는 기분이었다. |
| 이 책은 챈티클리어라는 작은 공원에서 느낀 생활의 단상들, 그리고 그 속에 찍은 공원의 아름다운 이모저모를 담았습니다. 챈티클리어 공원은 펜실베이니아 남동쪽에 위치한 아담한 공원으로 마지막 주인이었던 아돌프 로젠가르텐 주니어가 개발로 인해 사라져가는 고향의 모습에 안타까워하다 자신의 집과 정원을 앞으로도 계속 보존하리라 결심을 하고는 일반인에게도 개방하여 주민들의 안식처로 사용되는 공간입니다. 30에이커니까 여의도공원의 절반 정도되는 크기군요. 이 책에 실린 사진들(저자의 남편이 찍었다고 알려진)을 보니 정말 근처를 지나갈 때 꼭 한 번 들러보고 싶은 정도로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는 곳같습니다. 저자는 마흔한 살이 되던 생일날 그곳을 처음 방문하고는 그곳의 매력에 홀딱 빠져버리고는 마음의 양식을 차곡차곡 채웠습니다. 그녀가 처음으로 얻은 것은 차분함입니다. 정신없이 살아오던 삶의 속도에서 잠시 벗어나 '잃은 것보다는 얻은 것과 감사함에 초점을' 맞추고, 이제 중년이 된 나이조차도 축복으로 다가오더라는 것이죠. 그리고는 공원 이곳저곳을 통해 자연이 가르쳐주는 인생의 교훈을 음미하고 또 배워나갑니다. 혹자는 저자의 고민이 생존의 절박함이 없는 한가로운 고민이라고 하겠지만 일상에서 보다 치열하게 살기 위한 충전의 휴식이라고 보시면 좋겠습니다. 휴식은 원래 여유로운 것입니다. 한 단계 도약을 위해서는 지금까지 했던 것과는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시도를 해봐야 합니다. 지금까지와 똑같은 일을 하고도 다른 결과를 바라면 그것이 더 우스운 것이겠지요. 따라서 게으름에 대해서 남다른 편견이 있는 우리나라 문화에서 휴식과 여유는 지금보다 더욱 강조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몸이 게을러져야 머리가 바쁘게 돌아갑니다. 새마을운동때처럼 몸이 너무 바쁘면 머리가 게을러지고 그러면 뒤처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젠 산업사회가 아니라 정보화사회이기 때문입니다. 꼭 여유가 있어야 이런 책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오히려 이런 책을 일부러 접하면서 오히려 여유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브레이크가 없는 차를 고장난 차라고 하는데 여러분의 인생에는 어떤 브레이크를 준비하고 있습니까? (2006.6.5. 북코치 권윤구) 인상깊은 구절 : 속도는 아드레날린이다. 속도는 열기이고, 뿌연 것이기도 하다. 결혼해서 아들을 낳고, 중년이라는 삶의 접점에 도달해서야 시간의 중요함을 배웠다. 그제야 다시 걷고 새롭게 보는 것을, 멈춰 서서 색깔과 경사면과 그늘에 관심을 두는 것을 배웠다. 계절이 그저 1년의 한 때가 아니라 매일매일 임을 알게 되었다. 꽃은 준비가 되어야 핀다는 것을 중년에 접어들어서야 알게 되었다. 우리는 때론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는다. 그때 걸음을 늦추면 한결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다. 그제야 내 생에 남은 날들이 새삼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된다. |
| 책을 두번이나 읽고 나서야 글에서, 사진에서 푸르름과 바람의 숨결이 느껴진다. 이 책을 첫번째로 읽었을 때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결정 내릴 일들은 머리 속을 갑갑하게 누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라는 질문에 요리조리 피하느라 혼자서 끙끙대며 지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을 읽었는데 글이 무엇을 말하는지 저 사진이 내게 보여주려는 것은 무엇인지 알기가 어려웠다. 느끼기 어려웠다고 해야하나. 얇은 책이어서 쉬이 쉬이 읽혀지기는 했으나 책을 덮고나서는 내가 무엇을 읽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고민에 빠졌다. 왜 어떠한 감정도 내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내용이 어려워서도 아니고 읽을 때 소란스런 곳에서 읽은 것도 아닌데 글자만 읽었다는 기분이 들었던 것은 왜일까? 작가가 전해주려는 챈티클리어 정원(Chanticleer Garden)의 여유로움이나 살아있음이, 그곳의 생생함이 내게 전해지지 않았던 것은 내 속에서 책에 불어넣을 숨이 부족했음이 아닐까. 숨을 쉬고 살아가고 있음에도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장담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건가. 내가 쉬는 숨으로는 작가가 내게 준 선물을 살아 숨쉬게 할 수가 없었다. 책은 작가와 독자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이 그러했다. 내게 챈티클리어 정원에서 보고 들었던 모든 것을 작가는 마술을 부려 작고 얇은 이 책에 넣어보내주었다. 마술에서 중요한 것은 콧기름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메마른 삶을 보내고 있었던 내게 콧기름이 어디 나오겠는가. 마음이 말랐다는 것을 그것을 내가 메마르게 했다는 것을 알게 해준 책에게 감사의 뜻으로 콧기름이 나오도록 콧바람을 쐬러 가주었다. 콧바람을 쐬다보면 콧기름도 나올테니 그럼 나는 그 마법의 보따리를 풀 수 있지 않을까하고 바라면서. 챈티클리어 정원은 나무가 숨쉬고 바람이 통하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에 강가가 보이는 의자에 앉아 책으로 여행을 떠나보았다. 작가의 눈길의 닿는 곳, 발길이 닿는 곳, 손길이 닿는 곳을 눈을 감고 상상해보기도 했다. 시원한 강바람을 전해주는 강에게도, 그늘을 만들어주는 나무에게도, 두발을 디딜 수 있게해준 땅에게도 눈짓으로 고맙다고 말하며 책을 덮어두었던 펴고 읽기 시작하자 콧바람의 힘이었을까. 사진들이 하나 둘 생생하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이런 색이었구나. 소녀가 있는 연못의 물은 저렇게 투명했구나.''라고 혼자 말하며 신이 나서 내 주변의 풍경을 눈으로 찍은 뒤에 눈을 감고는 그곳의 사계절을 상상해보았다. 겨울이면 죽은 것 같은 나무도 강도 부지런히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금 찬란한 봄을 맞이하기 위해서 말이다. 미처 알지 못했다. 자연을 둘러본다는 것이 이토록 폐에 상쾌한 숨을 가득 차게 해주고 머리 속을 맑게 해주고 가슴 속을 따뜻하게 해주는 지를. 알고 있었는데도 잊고 지낸 것일지 모른다. 고향집에 내려갈 때 상쾌한 공기로 인해 고향에 온 것을 알며 두근거리던 때도 있었으니 말이다. 어떻게 잊어버렸을까? 무엇이 그리 바쁘다고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자연을 잊어버렸을까? 작가는 마흔의 나이를 넘겨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이 책을 쓴 이유는 무엇일까. 마흔이라는 나이는 어떤 나이일까? 십대때 20대인 이모에게 물었었다. "이모의 나이가 되어도 고민이 많아?" "너가 지금 하는 고민은 그때면 기억도 나지 않을만큼." 20대의 나. 이모의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십대때 어떤 고민을 했는지는 꺼낼 틈도 없이 20대의 고민에 푹 빠져살고 있다. 20대의 나 30대의 이모에게 질문한다. "이모 나이가 되어도 삶이 이렇게 힘이 들어?" "너 30살 되면 니가 한 질문 그대로 해주마." 하며 웃기만 하는 이모. 이제 곧 마흔이 되는 이모. 삶이라는 것에 내가 아는 누구보다 많이 고민하던 이모.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이모는 둘째 아이가 커서 자신의 손이 필요하지 않을 때가 무서울 것 같다고 말한다. 그때는 자신과 마주해야함을 피할 수 없을테니 두렵다는 이모. 하지만 믿는다. 우리 이모는 당당히 자신의 삶에 맞설 것임을. 책을 읽으면서 왜 사람들이 열심히 이룬 지위, 명예등을 버리고 농촌으로 가는 지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다. 과연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내 생애 남은 날을 아름답게 보내기 위해 할 일은 무엇일까? 자연 속에서 작가가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자연의 선물을 받았기 때문일까? 자연 속에서 고민을 떠올리면 나를 한동안 짓누르던 고민이 한 없이 작아지게 느껴진다. 바쁜 일상 속에서는 고민이 고민을 불러서 덩어리가 자꾸만 부풀어져서 고민에 눌려 숨쉬기도 힘이 들었는데 자연의 신비 앞에서는 고민이 한없이 작아져서 어디서 엉켜있는지와 어떻게 풀면 되는지 보여 고민을 해결할 수 있다. 한 걸음 물러나서 보면 전체가 보이는 것과 비슷한 이치가 아닐까? 덕분에 요즘 나를 짓누르던 고민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자연과 일상을 떨어뜨려 놓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닐까한다. 사람은 자연의 일부이니까. 자연 속에서 나를 찾는 것은 선물을 풀어보는 것처럼 기대되고 두근거리는 일이다. 딱딱한 책상에서 이 책을 읽기 보다는 자연의 숨결을 느끼면서 읽기를 권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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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41살이 된 생일날 ,
누군가의 엄마이며, 아내이고, 딸이자 자매, 친구인 ''베스 켑하트''가 우연히 혼자 ''챈티클리어''라는 정원을 들리게 된다
마흔살이 넘은 여자가 그것도 자신의 생일에 혼자 정원을 들리다니...
''챈티클리어 공원''
미국 펜실베니아 남동지역에 있는 정원으로 ''아돌프 로젠가르텐 주니어''의 선물이라고 한다.
그의 부친이 30에이커의 부지에 주변의 땅과 나무가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사라지는 것을 막기위해 자신의 유산으로 남겼고 그의 아들이 커서 또 그 정원을 일반인들에게 공개를 하고 돌보는 정원이었다.
삶에 지쳐가던 중년 여인이 우연히 이곳에 들려 그곳 대지의 숨쉬고 살아있음을 알고 2년간 매주 빠지지 않고 들리면서 가만히 있는 것 같은 자연도 매일 변화하는 것을 보고 느끼며 자신의 어린시절 자연과 어울렸던 순수했던 모습, 현재는 자신의 아이들이 자연과 어울리면서 노는 모습에서 우리 인간도 자연의 일부분이고, 예쁜 꽃도 계절이 저물면 땅에 떨어져 흙으로 돌아가듯, 우리도 꽃피는 시기가 있고 떠남을 준비하는 시기가 있다는 것을 그래서 휴식할 시간이 오면 그것을 편안히 누릴수 있다는 것을 순수히 받아들인다.
처음 책의 제목만 보았을 땐 내게 얼마남지 않은 생애를 좀더 아름답게 보내기 위한 작가의 노력들이 쓰여져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읽을수록 정원안에서 내가 만나는 자연속에서 내 삶을 찾고 돌아보는 작가의 입장이 그 정원의 아름다움과 편안함이 그래서 내 생도 이렇게 편안한 정원처럼 변할수 있게 해 달라는 작가의 심정이 와 닿았다.
우리모두가 그러하듯 심신이 지치고 힘들땐 가까운 산이나 바다를 찾아 마음의 안정을 찾는것이 그녀가 정원에 들러 얻은 느낌과 같지 않을까?
책을 읽어나갈수록 나이만 들어가며 현실때문에, 내 고집때문에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없던 내게 정원이라는 공간에서 땅의 숨쉼, 작은 진달래꽃 하나의 향기, 날아다니는 씨앗에서 그것이 나와 함께 숨쉰다는 편안함과 고마움을 느끼게 한다.
지금 당장이라도 편안한 운동화 신고 나무많은 곳, 물 흐르는 소리 들으며 나도 저 자연의 일부라고 소리치며 뛰어다니고 싶다.
나의 주변이 모두가 이 책을 읽으면서 편안한 마음을 가지기를 바란다. [인상깊은구절] 내가 이룬 성과가 없다고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되돌아보면 그 반대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언어로 고착시킬 수 없고, 간직하거나 조종하거나 붙잡을 수 없는 것을 신뢰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하고 싶다. 나 자신과 싸움하기를 멈추고, 옳게 살려고 애걸복걸하는 것을 멈추는 법을 배웠다. 또 변화에 발맞추고 언덕에 앉아서 내가 받은 축복을 되새길 줄 알게 되었다.(p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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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았을 때 책이 참 예뻐서 기분이 좋아졌다. 출퇴근 할때 주로 책을 읽는 나는
이번에도 버스에서 책을 펼쳤다. 처음엔 머리가 무겁고 피곤해 집중이 잘 안되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잔잔한 글과 사진에 집중이 되고 마음도 편안해졌다.
두번째 읽으니 처음보다 더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사진도 있었나.. 하면서
사진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고. 이번엔 챈티클리어정원 산책을 다녀온 듯한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꾸미지 않은 잔잔하게 마음에 와 닿는 글을 읽으면서 조금씩 편안해지는 나를 느꼈다.
어려서 막연하게 나이가 들면 땅을 사서 나무를 많이 심고 공기좋은 곳에서 전원 생활을
즐기겠다고 생각했던 나는 첸티클리어에서 좋은 시간을 보낸 작가가 꽤나 부러웠다.
어떻게 사는것이 잘 사는 것일지는 모르겠으나 작가는 바쁘게 살던 생활을 멈추고
모든 것을 놓아둔 채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고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발견하게 된거 같다.
나는 아직 젊은 나이이고 도전이라는 단어와 더 익숙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세상을 좀더 여유롭게 바라볼 필요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나무보단 숲을 보는것이 더 도움이 될 때도 있는 법이니까..
나만의 정원이 아름다워지는것도 황폐해 지는것도 오로지 내 몫이라면..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 [인상깊은구절]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고 살아가며, 그것이 인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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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에 남은 아름다운 날들'' 은
책을 너무나 느리게 읽는 나에게 좋은 책이었습니다.
늘 한 책을 잡으면 일주일정도가 걸리니..
답답해할뿐이었거든요,
그런데 이 책은 얇을 뿐아니라 속에 자연 사진들도 있어
글이 쉽게 읽혀지는 것이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우리 집 주변에도
내 조급한 마음이 조금 쉴수 있는 작은 정원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도시화되면서 나무 한 그루 보려고 해도
저 멀리로 돌아서 한참을 가야하기에... 안타까웠습니다.
챈티클리어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꼭 내가 그 정원 속으로 들어가있는 듯한 느낌도 받았는데
<<우리는 때론=""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는다.="" 그때="" 걸음을="" 늦추면="" 한결="" 아름다운="" 삶이="" 보인다.="">>
책 표지에 있던 말인데... 참 좋은 것 같네요.
기회가 된다면 가족들과 주말쯤 풀, 꽃
그리고 물도있고 나무도 있는 곳으로 떠나봐야겠어요...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인상깊은구절] 아들이 내게 다시 물었다. "씨앗은 뭐에 쓰려고요?" 내가 대답했다. "씨앗은 이미 지나간 것들을 위한 거야. 또 앞으로 올 것들을 위한 것이고." p144우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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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책 사이즈도 그렇지만, 아주 예쁜 수첩도 함께 왔습니다.
베스 켑하트..........하는 마흔한살의 여자가 펜실베니아의 <챈티클리어>라는 정원이 있는 곳으로 이사를 오면서 그 아름다운 정원을 사계절로 묘하한 책입니다.
목가적이고 아름다운 사진그림에 일단 한번 매혹당하구요.
읽으면서 그 아름다운 사진들이 <첸티클리어>라는 정원의 실제 사진임에 다시한번 감탄하게 됩니다.
저자는 12살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도 하고 중년을 맞는 여자이기도 하고 사랑받는 아내이기도 합니다.
그의 묘사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안락한 가정의 행복을 철철 묻혀 자연을 묘사합니다.
저도 두째아이가 아주 어리던 몇년전 시골에 가서 한 2년을 살다 온적이 있습니다.
봄이면 마른논에 모가심어지고 물이차고 모내기가 이루어지고 모내기한 사이사이로 올챙이가 자라고 그 올챙이가 엄지 손톱만한 청개구리가 되어 아이들 손에 들려지고, 호박이 열리고, 배추가 심어지고 하는 자연을 경험한적이 있습니다.
신기할 것도 없는 그 논 길을 매일매일 하릴없이 아이들과 쏘다니고, 풀포기 하나하나를 발견하는 재미로 시간을 보내던 그 감동을 기억합니다.
내 생애의 유일한 전원 생활이었지요.
그때 아이들은 개구리랑 친구가 되고 메뚜기랑 놀고, 흙을 밟으며 자연을 경험했었습니다.
이책을 읽으며 그때가 떠올라 잠시 미소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한편의 추억같은 책이라고 느꼈습니다.
지금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느라 그때의 일이 마치 꿈처럼 아스라 합니다만, 아마도 그런감동을 저자는 오래오래 길게 느끼며 행복해 한 것 같습니다.
수채화 같은 이야기를 읽고 나니 이책을 가가이 두고
삶이 힘들때 늘 펼쳐볼 수 있게 해야 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아쉬운것은.............
오랜세월 인디언 들이 지켜온 <첸티클리어>를 지켜나갈 생각은 하면서도 그들에게서 그 아름다움을 빼앗아 가진 자들이 그것을 누림에 있어 조금의 죄스러움도 없는 것이 약간 맘에 들지 않습디다.
이렇게 말하면 지나친 민족주의....내지는 이데올로기다...라고 할지는 몰라도
어째든.................인디언들의 땅이고........이름도 그렇고.........
뺏은건 뺏은 거니까~~~~ㅎㅎ
여름날 소나기 지나간후의 상쾌함뒤에서.......잃은 땅의 주인의 슬픔을 읽어버린건........제 잘못입니다.
아름다운 책임은 분명합니다.
더운 여름밤..........안녕히.......주무세요 [인상깊은구절] "우린 파로 전을 만들어 먹지요. 연의 씨앗도 견과류처럼 먹어요. 목화도 먹고. 맛이 좋았지요. 아, 이곳에서는 맛과 정원에 대해 너무 몰라요"첸티클리어>첸티클리어>챈티클리어> |
| 이책을 읽을 수 있게되어 정말 행운 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이처럼 삶을 살아간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놓치는 것이 참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세상은 참 넓고 볼 것이 많은데...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한 것을 무심코 지나간다는 것을 이책을 읽으면서 생각 하게되었다. 사람이 죽음을 앞두면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을 하나하나 무심코 지나가는 것을 더 자세히 보려고 한다. 모두 다 하나라도 더 이쁘게 머리속에 남기기 위해서 집근처의 챌티클린저 정원에서 그동안 바빳던 일상을 이곳 정원에서 천천히 그 아름다움과 놓쳐 오면서 살았던 것을 생각한다. 가끔 우리는 희미해지는 과거의 흔적에 휩싸여 썩은 내를 맡는 것 같다. 그러나 흙을 뚫고 통통한 흰 싹들이 아노는 광경을 볼 수 있다면, 씨앗이 은밀히 싹을 틔우고 그것이 어느 날 생명을 꽃피우는 것을 볼 수 있다면, 우리 안에서 그 내밀한 장래를 볼 수 있다면.... 우리의 우울과 불신은 어리석고 부질없는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성장하는 사람이라고.(P17中) 정말 물을 잘 대는 사람은, 너무 조금 주면 잡초가 생기지만 너무 많이 주면 토양을 버린다는 것을 잘 안다. 마치 쉽게 번돈이 사람의 독창력을 무디게 만들 수 있듯이. 이책은 여러무로 내게 반성을 해주었던 책이었다. 마치 일상적인 기계속에서 기계가 돌아가듯 그렇게 빠른 생활속에서 이책은 조금이나마 여유를 일깨워 주었던 책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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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에 남은 아름다운 날들...
왠지 곧 죽음을 앞둔 사람이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쓴 듯한 느낌이 드는 제목이다.
하지만 그런 느낌과는 달리...
이 책은 저자가 챈티클리어라는 작은 공원에서 느낀 생활의 단상들과 공원의 아름다움을 사진 속(저자의 남편이 찍었다고 한다)에 담아... 마치 수채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에세이집이다.
책 표지도 맘에 들었고, 부록으로 같이 온 수첩도 맘에 들었다. 이 수첩에 뭘 적을지 아직 고민중이다.
챈티클리어 공원은 펜실베이니아 남동쪽에 위치한 30에이커 정도의 아담한 공원으로 흙과 나무와 꽃, 그리고 연못과 집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정원이다. 주인이었던 아돌프 로젠가르텐 개발로 인해 사라져가는 고향의 모습에 안타까워하다 자신의 집과 정원을 앞으로도 계속 보존하리라 결심을 하고는 일반인에게도 개방하면서 주위 사람들의 안식처와 휴식처도 되면서 추억속의 공간으로 자리를 잡는다.
저자의 어머니로서, 부인으로서, 작가로서의 삶에 지쳐 있을 때 찾은 챈타클리어는 살아 숨쉴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이자 삶이다. 41살 저자는 이제 막 인생의 전환점을 돌았다.
이 책에서는 자연속에 어떻게 살아가는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야기 중간중간에 실린 사진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챈타클리어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면서... 나두 그곳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삶을 살아가면서 조금만 주위를 살펴보면... 우리는 아름다운 여러가지를 만날 수 있다.
각박한 도시 속의 콘크리트 건물 속에서도, 지루하고 똑같은 일상에서도... 살아가는 아름다운 자연을, 행복한 삶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미사리나 춘천의 여러 멋진 카페들을 보면서, 나두 아름다운 전원에서의 멋진 삶을 꿈꾼적이 있다.
아담하면서도 멋진 전원카페를 하면서 자연에 동화되어 글도 쓰고, 영화도 보고, 하고 싶은 것 하면서 편하게 살고 싶었던 적이 있다.
물론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지만... 과연 그렇게 살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으니깐... 조금만 더 노력하면 그렇게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작은소망을 간직하면서 책을 덮는다.
여태까지 살아 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음에 감사하면서 가만히 눈을 감는다 [인상깊은구절] 우리는 지금까지 길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는다. 그 때 걸음을 늦추면 한결 아름다운 삶이 보인다. |
| 좋은 기회... 행운처럼 이 책을 만났다. 책을 읽으면서 중간 중간 드는 생각이 "책과 사람사이에도 인연이란 것이 있는것 같다." 라는 생각이 었다. 내 나이 아직 인생을 논할만한 위치에 있지는 않지만...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나의 삶에 대해서 무언가 알수 없는 답답함과 촉박함에 시달리고 있을 때가 요즘이었다. 그때마침 가뭄에 단비마냥 나에게 다가온 책이 "내 생에 남은 아름다운 날들"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은 왠지 나도 마흔살.. 불혹의 나이가 되어서 저자와 인생의 친구처럼 첸티클리어 공원을 거니는 느낌이었다. 글을 읽는 나 또한 평소에 자연에 대한 알 수없는 동경이 있어서인지... 저자가 첸티클리어 공원의 작은 모습 하나 하나를 보여 줄때 마다 알 수 없는 묘한 황홀경에 빠졌다. 마치 꿈속에 그리던 공원을 눈앞에 보고 느끼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이런 느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저자의 자연의 내면을 바라보는 서정적 눈 덕분인듯 하다. 그리고 중간 중간 저명한 작가나 건축가들의 말을 실어주었는데 내용을 음미하며 잠시동안 나만의 생각에 빠져들 수 있는 좋은 이벤트였던 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첸티클리어의 사계를 느끼며... 저자와 함께 자연 속에 들어 있는.. 첸티클리어 공원이 말해주는 삶의 진리를...아름다움을...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난 책에 대해서 보는 사람에 따라 책은 새로이 만들어 지는 것이기에 이 책이 좋다 나쁘다는 평을 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이 책을 덮으면서 드는 생각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이 책은 좋은 휴식터가 되어 주는 것은 분명하다는 사실이다. 잠시 잊었던 삶의 여유를 찾고 조용히 첸티클리어 공원의 품안을 거닐고 싶다면 이 책이 그 평화로운 여행의 티켓이 되어 줄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