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나이 아직 어리고, 지금보다 상처를 입기 쉬웠을 시절에 아버지는 나에게 어떤 충고의 말씀을 해주셨다. 그후로 나는 줄곧 그 말씀을 마음속에 되새기며 살아왔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어질 때는 말이지,"하고 아버지는 나에게 말씀하셨다."이 세상의 모든사람들이 네가 누리고 있는 만큼 그렇게 유리한 처지에 있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루 정도는 고독했다. 어느 날 아침 나보다 늦게 이곳에 온 어떤 사람이 나를 불러세우고 길을 물을 때까지는.
"웨스트에그 마을은 어느쪽으로 가야합니까?" 그는 힘없이 묻는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길를 가르쳐 주고 걸어갔다. 나는 안내자요,개척자이며,이 고장의 토박이가 되었던 것이다. 그는 우연하게도 이웃의 자유를 나에게 준 셈이었다.
달빛 속을 가로질러 한 마리의 고양이 그림자가 어른거렸고 그 모습을 보려고 고개를 돌렸을 때 내가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는 이 지방의 하늘중에서 어디까지가 자기의 몫인지 결정하려고 나와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말을 건내보기로 작정했다.........다시 한번 개츠비의 모습을 보려고 고개를 돌렸을때 이미 그의 모습이 사라진 뒤였고, 나는 또다시 조용하지 않은 어둠 속에 혼자 남게 되었다.
-위대한 개츠비 - 중
스콧 피츠 제랄드의 소설의 힘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탁월한 문장력에 있다. "위대한 개츠비"의 주제는 그 시대에 밀접하게 마주하고 있어 그 시대가 지나감에 따라 힘을 점점 잃게 되었지만 그의 문체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방식은 힘을 잃지 않았다. |
|
사랑에 대한 쓰라린 상처가 없어서일까 나에겐 그저그런 평범한 이야기였다. 쓰여진지 50년이 훨씬넘어 100년을 바라보는 오래된 이야기라 그런지 내가 보기엔 평범한 드라마 내용과 별반 다를게 없었다. 신분이나 재산차이 때문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얘긴 너무 식상하다. 우리는 이제 너무 많이 길들여졌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마음아프기보다 '결혼은 비슷한 사람끼리 해야돼'란 말을 서슴없이 내밷고 있다. 어느새 백마탄 왕자님을 기대하지도 않고, 단칸방에서 시작하는 순수한 사랑을 꿈꾸지도 않는, 개츠비의 사랑 얘기에도 눈물 한 방울 못흘리는 진저리 쳐지도록 현실적이 되어버린 내 냉장고 같은 마음에 조금은 놀라게 됐다. [인상깊은구절] 그리하여 나는 거기에 앉아서 알지 못하는 오랜 미지의 세계에대해 생각해 보면서, 데이지의 집 부두 끝에서 녹색등불의 빛을 처음으로 보았을때 개츠비의 놀라움이 어떠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는 이 푸른 잔디밭을 향해 머나먼 길을 온 것이었고, 그리고 그의 꿈은 너무 가까이에 있는 나머지 그것을 붙잡는데 실패하지 않을 것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그는 그 꿈이 어느새 그의 뒤에 와 있었다는 것도 모르고 오로지 도시의 저쪽에 광막하게 펼쳐진 그 어두운 어떤 곳, 공화국의 어두운 벌판이 밤하는 밑으로 굴러들어간 그런 곳으로 흘러가 버렸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
|
많은 사람이 읽은 책에 대해, 이제와서 감상을 적는다는 것은 무의미하기도 하고 쑥쓰럽기도 한 일이다. 어떤 리뷰를 쓴들 그 소설 자체보다 그 소설을 더 잘 이해하게 할 수는 없다. 언어를 낭비하고 싶지 않다. 여기에는 부족한 나의 능력에 대한 약간의 변명도 얼마간 포함되어 있지만. 그냥 짧게 적고 싶다. 개츠비는 로맨티스트였으며, 로맨티스트이기 때문에 위대했다. 이 시대의 많은 이들이 위대하지 못한 이유는 낭만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도,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닉이거나, 데이지이거나, 톰이거나, 조단일 것이다. 아니면, 그보다 더 나쁘거나. 산업시대의 어떤 시점을 분기로하여 우리는 사랑에 대한 신뢰를 급격히 잃어왔다. 그러나 개츠비는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을 때, 그렇게 했다. 그가 가진 위대함은 그것이 전부다. 그 사실은, 우리에게 그래도 그런 사랑이 이 세상 어디엔가 다만 한 조각이나마 남아있지 않을까하는 식의, 가늘게 팔딱이는 어린 새의 심장같은 연약한, 그러나 살아있는 희망을 남겼다. 아직도 먼 불빛을 바라보는 것으로 사랑을 지탱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한 사람은 남아있을까? 어쩌면, 당신을 사랑할지 모를 누군가를 위해 오늘 하루쯤은 침실의 불을 끄지 않고 잠드는 것이 낭만일 지도 모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작년 가을, 동부에서 돌아왔을 때만해도 나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이를테면 유니폼을 입은 것처럼 균일해지고 또한 영원히 일종의 정신적 주의력을 기울여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말하자면 나는 특권이라도 부여받은 듯한 눈빛으로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요란한 유람이나 답사 같은 것은 더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오직, 개츠비 한 사람, 이 책에 이름을 부여한 그 한 사람만이 나의 반발을 벗어나는 예외였다 - 개츠비는 내가 경멸하는 모든 것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만일 끊임없이 연출되는 연기의 총체를 개성이라 한다면, 그에게는 무엇인가 현란한 개성이 있었다. 즉, 인생의 장래에 대한 어떤 고양된 감수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마치, 1만 마일 밖에서 발생한 지진까지도 기록할 수 있는 복잡한 기계와 연관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
| 위대한 개츠비..과연 위대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가졌던 느낌은 지금까지 읽었던 미국 소설들이 눈에 스치듯이 지나갔다는 점이었다. 폭풍의 언덕,위대한 유산 등등 많은 미국 소설들에 볼 수 있었던 단면을 위대한 개츠비에서도 읽을 수 있었다. 개츠비. 그는 장교출신의 재력가로서 젊었을때 만났던 데이지를 만나기 위해 수십년간 엄청난 재산을 긁어모았고,그녀가 혹시 참여할까해서 계속해서 성대한 파티를 열어댄다. 그의 집주위에는 사람이 끊이질 않지만 정작 개츠비에 대해 신경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책속의 나는 그런 개츠비를 3자 입장에서 바라본다. 개츠비는 나에게 올드스포트란 경어를 쓰면서 존대하는데 그이유도 내가 데이지와 친한 조던을 알기 때문이다. 개츠비는 이미 톰 뷰캐넌과 결혼한 사이인 데이지를 결국 끌어들이고 둘은 다시 사랑의 정열을 태우게 된다. 하지만 그 사랑으로 인해 톰뷰캐넌의 정부를 차에 치여 죽게 만들고 그들의 사랑은 파국을 맞는다. 책을 지은 피츠 제럴드 역시 상류층의 자제로서 한동안 방탕한 생활을 일삼을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책은 그만큼 미국 상류층의 생활의 일면을 엿볼수 있고 전쟁후 세대들에 대한 아픔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흐름은 허무함이다. 아메리칸 드림의 허무함. 사랑에 대한 허무함. 그리고 생에 대한. 그리고 그는 허무속에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의 죽음에 진심으로 애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
'위대한 개츠비' 제목은 정말 많이 들어 본 듯한데... 사실 내용은 지금 시대와도 많이 와 닿는 듯한 내용이다. 요즘도 좋지 않은 일을 하여 많은 돈을 버는 사람이 물론 있을 것이고 그 사람이 죽으면 그 자리에 아무도 나타나지 않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개츠비라는 사람을 알고 그의 죽음을 보기까지의 일을 말하고 있는데 돈만이 모든것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말하다가도 결국에는 돈이 제일이라는 그런 이야기 인 것 같다.(데이지라는 주인공의 사촌을 보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개츠비라는 인물을 보면서 사랑도 얼마나 허망하고 돈도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상깊은구절] 우리는 서둘러 빗속을 헤치며 차가 있는 데로 왔다. 올빼미 눈이 문 옆에서 나에게 말했다. "집에는 못 갔습니다."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저런!" 그는 놀랐다. "아니 그럴 수가! 몇백 명이나 그 집에 드나들었는데." 그는 안경을 벗어서 다시 안팎을 닦았다. "나쁜 놈들 같으니라고." 그가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