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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33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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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아직도 언론이 공평정대한 객관적인 사실만 보도하는 것으로 믿고 계시는 분이 있을까요? 언론이 왜곡보도를 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언론 역시 사회 구성원 중 하나로서 많은 의견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의견에 비해서 아주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긴 하지만요. 어떤 사실을 어떤 시각으로 소개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도, 심지어 어떤 사실을 보도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도 누군가의 가치관에 입각해서 '선택'되는 것입니다. CNN, 뉴욕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타임지, 포브스지, 월스트리트저널지 등등을 외신의 전부라고 믿고 계실 수도 있지만 그건 서방자본주의사회의 이익과 시각에서 보도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고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랍권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알 자지라 위성방송이 나타난 이유도 서방중심의 언로독점을 막아보려는 여러 시도 중의 하나입니다. 이 책은 알베르토 코르다의 사진으로 본 쿠바혁명이야기입니다. 제목이 '코르다의 쿠바, 그리고 체'인데 아마도 체 게바라가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얻고 있음을 고려한 다분히 상업적인 선택입니다. 실제 본문은 체보다는 피델 카스트로를 중심으로 되어있거든요. 본문에서 쿠바혁명의 대략적인 내용을 알 수 있지만 책에 나오지 않은 앞이야기를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냉전시대 미국은 반미만 표방하지 않는다면 그가 누구라도 지원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가 독재로 국민들을 학살하든, 부정부패를 하든 말이죠.(지금은? 글쎄요..) 쿠바의 경우 미국이 지명한 정치지도자는 바티스타입니다. 그는 미국의 지원을 바탕으로 꼭두각시 대통령들을 좌지우지 했고, 본인이 직접 대통령으로 통치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에 만족하지 못했는지 1952년 그가 쿠데타를 통해 재집권을 하면서 미국으로의 경제적 종속은 극에 달하고 국민들은 고통으로 신음을 하게 되죠. 1959년 당시 미국은 쿠바의 상거래 중 75%를 관장했고, 광업과 통신 분야의 90%를 소유한 것으로 나옵니다. 그런 군사독재와 미국의 식민지화로부터 민중들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젊은 변호사인 피델 카스트로는 젊은 의학도였던 에르네스토 게바라(우리에게 체 게바라로 알려진) 등을 설득하여 반군을 조직하게 됩니다. 이후의 흐름은 이 책에 나와있는 대로입니다.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은 모두 알베르토 디아즈(후에 코르다로 불리는)의 사진입니다. 쿠바에서 패션사진과 광고사진의 선구자로 유명세를 떨치던 그는 쿠바에서 혁명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피델 카스트로를 만나고는 운명이 바뀌어버립니다. 반란군의 지도자였던 피델 카스트로의 일거수 일투족을 따라다니며 그와 관련한 역사적 사건들을 사진으로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그의 사진에서 보이는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는 순수한 열정으로 국민들을 사랑했던 정치지도자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표지에도 나와있고 코르다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체 게바라의 사진은 1960년 3월 초에 일어난 '라 쿠브르' 테러사건 희생자들의 장례식장에 참석한 체 게바라를 찍은 것입니다. 혁명군이 독재자 바티스타를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뒤 일년이 지난 상황인데 CIA의 공작으로 추정되는 두 차례의 테러로 인해 항구 노동자 여든한 명이 사망하고 이백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엄청난 사건이 발생합니다. 장례식에 참석한 그의 복잡한 심정을 잘 포착한 이 사진은 이후 밀라노의 대학생들이 데모를 할 때 사용되면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체는 볼리비아 혁명을 위해 게릴라전을 하다 1967년 10월 8일 정부군에 체포되어 미 CIA의 동의하에 9일 총살되었습니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매력적인 사진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쿠바인의 시각으로 본 쿠바혁명, 쿠바위기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지나치게 미국의 시각으로 세계사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런 시각을 조금 교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균형잡힌 시각이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같네요. (2006.6.5. 북코치 권윤구) 인상깊은 구절 : 시대를 앞선 "국경 없는 의사"였던 게바라는 과테말라에서 미국에서 훈련된 용병대가 당시 지나치게 진보적이라고 평가되었던 아르벤즈 대통령의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해 개입하는 것을 목격했다. 1955년 그는 장차 그의 운명을 바꿀 사람을 만난다. 그는 부모에게 보내는 편지에 "쿠바의 젊은 지도자가 나에게 자기 나라 무장 해방운동에 참여하지 않겠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당연히 수락했지요. 이 순간부터는 내가 죽더라도 슬퍼하지 마세요. 미처 끝까지 부르지 못한 노래에 대한 아쉬움만 무덤까지 가져갈 뿐입니다."라고 썼다. |
| 세상은 안정기에 접어든 듯하다. 지난 20세기를 수놓았던 격동을 찬양하는 것은 마치 무모한 행동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고착화된 자본의 흐름이 처음부터 지금과 같았던 것은 아니었다. 모든 것엔 흐름이 있듯 자본주의 사회의 형성 역시 일정한 흐름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우리는 몇몇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게 된다. 획일화된 사회를 살아가고, 그 질서에 아무런 문제제기도 하지 않는 젊은 이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열광했던 것은 다름 아닌 체 게바라였다. 오늘날 북한과 더불어 (부시의 표현을 빌리자면) ‘악의 축’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쿠바 역시 이러한 흐름 덕인지 동경의 대상으로 자리잡았다. 다소 촌스러운 듯한, 하지만 여전히 그 근엄함 면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체의 모습에 경외를 표현하는 것은 지배 질서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이리라. 하나의 사진집을 접했다. 검은 양장 표지에는 CUBA par CORDA 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CORDA 라는 이름은 솔직히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오늘날 유일하게 남아있는 체의 사진을 찍은 작가라고 했다. 하지만 책의 첫 부분을 장식하고 있는 그의 사진은 다소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었다. 1950년대 초반, 그가 찍은 사진들은 혁명과는 거리가 멀었다. 시간이 흘렀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제는 희미해진 인화지에 남아있는 것은 다름 아닌 여성의 알몸이었다. 넘치는 에로티즘은 그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듯했지만 동시에 타인의 몸을 탐하는 인류의 보편적 시선에 충실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은 변화를 요하고 있었고, 그 움직임을 주도한 것은 쿠바였다. 쿠바 혁명은 그의 삶에 있어서 일종의 전환점이었다. 여성들로 가득 채워지던 그의 사진이 변화했다. 혁명의 지도부를 향해 망원렌즈를 들이대는 그 순간 그는 이미 총 아닌 카메라를 멘 혁명군이었다. 쿠바가 존재치 않았더라면 아마도 그는 재능 있는 패션전문 사진 작가로서만 역사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그의 사진 역시 세월을 모르는 듯했다. 얼마나 긴 시간을 버티어 왔는지를 보여주려 작정이라도 한 것마냥 사진은 거칠었다. 그 거침 속에는 젊은 피델과 체가 갇혀 있었다. 군복 차림의 그들에겐 두려운 것이 없어 보였다.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는 이에게 무엇이 장애가 될 수 있을지… 사진은 그들에게 끝없는 젊음을 선사했다. 그 어떤 사진에서도 혁명을 잊은 카스트로나 영원히 잠든 체 게바라의 모습은 엿보이지 않았다. 책의 페이지 곳곳은 혁명을 말하고 있었다. 혁명은 과거 어느 한 시점의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책장을 넘기는 그 순간만은 말이다. 90mm 망원렌즈에 잡힌 체의 시선에 그는 사로잡혔다고 했다. 그 시선은 사진으로 남아 오늘날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잊혀질 듯 잊혀지지 않는 그리움으로, 꿈꾸지만 결코 실천하지는 못하는 그 무언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