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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만큼 국가 조직이 막강하고 정교했던 시대가 없었다. 또한, 20세기만큼 개인의 자아가 뚜렷하고 개인의 사회활동이 활발했던 적도 없었다. 자연히 개인의 활동과 국가의 이해관계가 결부되거나 맞부딪치는 일이 늘어났고, 곧이어 딜레마를 야기한다. 개인의 활동이 조직에서 악용되는 경우, 개인에게는 어느 정도나 책임이 있을까? 이 딜레마는 나치 조직에서 정점을 찍는다. 나치 조직이 전례없이 극악무도하고 파괴적인 범죄를 저질렀는데다, 세계 2차 대전 후 나치 체제를 단죄하면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 했기 때문이다. 관료제에서 이 딜레마의 대표로 꼽히는 인물은 아이히만이다. 500만이 넘는 유대인을 학살하는 데 최종 책임자 역할을 했던 그는, 자기는 단지 위에서 내려온 명령을 관료로서 충실히 따랐을 뿐이라고 강변했다. 과학계에서는 질소로 비료를 합성하는 데 성공했던 프리츠 하버가 있다. 그는 1차 대전 때 독일군을 위해 독가스를 개발했는데, 이 기술이 훗날 유대인을 가스실에서 학살하는 데 활용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계에서는 누구일까? 단연 레니 리펜슈탈이 첫손에 꼽힐 것이다.
아무리 그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는 아는 것처럼, 아무리 영상매체에 무관심한 사람도 손기정 선수가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뛰는 영상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영상은 베를린올림픽 기록영화인 <올림피아>의 한 장면이다. 베를린올림픽은 나치 치하의 독일에서 열렸는데, 나치는 올림픽 기록영화를 찍기 위해 대규모의 인력, 수많은 물자, 뛰어난 인재를 아낌없이 투입했다. 그 때 감독을 맡은 사람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인 레니 리펜슈탈이다. 그녀의 <올림피아>는 기록영화의 한계를 뛰어넘은 훌륭한 걸작으로 칭송을 받았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2차 대전 이후 그녀는 나치 전범과 다름없는 취급을 받아야 했다. 나치가 패망한 후 그녀는 영화계에서 사실상 추방되었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사진작가 등 다른 활동을 할 때도 끊임없이 구설수와 비난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 단죄가 과연 공정한 것이었을까? 레니 리펜슈탈은 나치의 기록영화를 만들었고, 대단한 걸작품을 내놓았다. 여기서 방점이 찍힌 대목은 나치 기록영화라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훌륭한 결과물을 내놓았다는 것이었다. 나치 시대에는 나치이념을 반영한 극영화가 수없이 만들어졌지만 그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도, 감독과 배우를 기억하는 사람도 없다. 영화인으로 전후에 나치 낙인이 찍힌 사람은 오직 리펜슈탈뿐이었다. 다른 영화들은 이념적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기억할 가치가 없다고 여겨져 이내 잊혀졌다. 게다가 리펜슈탈이 만든 영화는 어디까지나 기록영화, 즉 다큐멘터리였다. 진행되는 행사를 단순히 필름에 담은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더욱이 그녀는 정식으로 나치에 입당한 적도 없었고, 그녀가 나치의 반인륜적 악행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명확한 증거도 없다. 이쯤 되면 처음의 딜레마는 더한층 강렬해진다.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다큐멘터리를 극적이고 흥미진진하고 예술적인 영상으로 만들어냈다고, 그 다큐멘터리의 이념적 배경에 열광했다는 증거가 될까? 그저 영화예술에 심취했을 뿐이라는 그녀의 해명은 정녕 비루한 변명일 뿐인가?
<레니 리펜슈탈 금지된 열정>은 딱히 레니를 옹호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레니를 둘러싼 상황을 레니의 입장에서 그려내고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레니의 주변 조건을 하나하나 짚어가다 보면, 리펜슈탈이 나치 전범 취급을 받은 것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가혹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어쩌면 생애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대형 프로젝트의 감독을 맡게 될 기회를 거절하지 않은 것이 죄악일까? 보다 좋은 영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촬영과 편집에 온갖 노력을 기울인 것이 죄악일까? 자신을 대폭 후원하는 정권의 정치 이념에는 관심 없이 그저 맡은 일에만 전념한 것이 죄악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어리석을 정도로 순진했다거나 주변 일에 지나치게 무관심했다면 몰라도 도덕적, 법적인 죄악이라고 단언하기에는 망설여진다. 이런 방관자적 자세가 나치 집권에 결과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 개인에게는 과연 어떤 명목의 책임을 물어야 한단 말인가? 어쩌면 리펜슈탈이 여론에서 그토록 가혹한 단죄를 받았던 것은, 그 딜레마에서 고개를 돌리고 싶었던 대중적 심정의 발로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레니 리펜슈탈이라는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서평 첫머리에 언급한 '개인의 활동을 악용하는 조직'도 그렇거니와, 예술계에서는 이 딜레마가 더한층 미묘해진다. 레니 리펜슈탈과 나치 체제는 아주 극단적인 경우지만 이례적인 사례는 결코 아니었다.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활동을 하는 주체가 재능 있는 사람을 후원하는 것도, 그 후원을 받은 사람이 훌륭한 성과물을 내놓는 것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후원활동의 성과물은 후원자의 '결백함'과 연계되어야 하는가, 완전히 별개로 취급되어야 하는가? 전자라면, 떳떳하지 않은 사람의 후원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죄인 취급을 받아 마땅하다는 말인가? 후자라면, 후원자의 가당찮은 이념을 예술적으로 훌륭하게 승화시킨 성과물은 이념의 연장선에서 바라보아야 하는가, 예술 자체로 감상해야 하는가? 레니 리펜슈탈은 이 딜레마가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난 삶을 살았다. 리펜슈탈은 죽었지만 그 딜레마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 답을 내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개개인의 몫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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