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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그물을 빠져 나온 이옥의 글에 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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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둔덕에 꽃이 있으니, 이름은 봉선. 비단처럼 번쩍이고 붉은 모래처럼 무성하여, 야들야들 사랑스러워라. 따다가 손톱을 물들이면, 연지를 칠하듯 하기에, 아침에 뜰에서 꺾이자마자, 저녁에는 화장대 앞에 가져가지. 아아, 서리같이 흰 여인들의 손이, 그 가지며 잎을 죄다 뜯어 온전하지 못하구나. 홀로 꽃나무 하나가 남아, 초연하게 자신을 지키고 있나니, 흰 눈 같되 녹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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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둔덕에 꽃이 있으니, 이름은 봉선. 비단처럼 번쩍이고 붉은 모래처럼 무성하여, 야들야들 사랑스러워라. 따다가 손톱을 물들이면, 연지를 칠하듯 하기에, 아침에 뜰에서 꺾이자마자, 저녁에는 화장대 앞에 가져가지. 아아, 서리같이 흰 여인들의 손이, 그 가지며 잎을 죄다 뜯어 온전하지 못하구나.

홀로 꽃나무 하나가 남아, 초연하게 자신을 지키고 있나니, 흰 눈 같되 녹지 않고 옥 같아 흠이 없어라. 겨울 매화의 개결한 아우라고도 하고, 고운 배꽃의 외경하는 벗이기도 하네. 성근 그림자를 달빛 아래 갸웃 드리우고, 맑은 향기를 비 온 뒤 흘려보내누나.

하지만 흰 색이라 붉게 물들이지 못하기에, 여인들이 잡풀이나 마찬가지로 여겨, 손에 따지 않고 비단 치마를 돌리나니, 수풀 속을 집 삼아서 나비를 맞아 홀로 즐겨, 따스한 바람 맞으며 수명대로 사는구나. (71~72, ‘흰 봉선화야, 너는 어이 희어서(白鳳仙賦)’)

 

태학사에서 의욕적으로 펴내고 있는 한국 고전 산문선 시리즈의 3번 타자로 나선 『선생, 세상의 그물을 조심하시오』에 나오는 글이다. 참 곱다. 여성적인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게, 아마도 조선시대 여류 문인의 글인가 보구나, 라고 지레짐작하기 쉽다. 지은이의 이름도 참으로 아리땁게도 이옥이라고 하지 않은가.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이옥(1760~1812)은 여성이 아니라 어엿한 남성이다.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에서 고미숙이 말한 것처럼, 이옥은 여성보다 더 여성적 비련과 애수를 잘 드러낸 아주 특이한 작가이다.

 

위에 인용한 글에서도 단박에 알 수 있듯이, 이옥의 글은 그 내용에 있어서 조선 시대 선비들이 전통적으로 즐겨 다루었던 대상이나 주제에서 사뭇 멀리 떨어져 있다. 또한 그 형식에 있어서도 빈번한 대화체의 사용, 방언과 토속어의 구사, 자질구레한 세부 묘사와 장황한 나열식 기술 등 자유분방한 문체를 구사하는 새로움을 보여준다. 규범적인 내용과 엄격한 형식을 중시하는 봉건적 글쓰기에서 벗어나 있는 이러한 그의 글쓰기 방식은 분명 근대를 향해 진일보하는 혁신이었지만 그가 살던 당대에는 글쓰기의 정도(正道)에서 너무 벗어난 파격으로 여겨져서 당시 정조가 주도한 문체반정의 첫 표적이 되고 말았다.

 

생원시에 급제한 후 성균관 유생으로서 벼슬길에 나서기 위한 과거를 준비하고 있던 이옥은 그가 쓴 글의 문체를 문제 삼은 정조로부터 문체 교정을 위한 벌을 받는다. 그럼에도 그의 문체가 바로 잡히지 않자, 이어 군복무에 처해지고 나중에는 유배까지 당하는 등 갖은 고초를 겪는다. 정조로부터 마침내 사면을 받고 나서도 한번도 관직에 나아가지 못한 채 불우한 삶을 마치게 된다. 마치 위 글에 나오는 흰 봉선화처럼 사대부로서 자신의 본래 쓰임새를 세상에 한번도 떨치지 못한 셈이다. 하지만 여인들이 잡풀이나 마찬가지로 여겨 거들떠보지 않는 흰 봉선화가 오히려 수풀 속에서 나비와 더불어 더 오래 삶을 즐기는 것처럼, 세상에서 버림받은 그 역시 그로 인하여 남들이 별로 주목하지 않는 대상들에 시선을 주면서 자신만의 문체로 개성적인 글들을 쓰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그가 그 즐거움을 생애의 마지막까지 온전한 기쁨으로 누렸으면 좋으련만 실제 사정은 그렇지 못해서, 그의 글에서는 평생 말단한직조차 얻지 못한 불우한 자신의 삶에 대한 서글픔이나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회의(懷疑) 쪽으로 기울어지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이런 서글픔이나 회의는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세상의 치밀함과 거대함에서 비롯되는 것일 터인데, 그는 이를 거미가 쳐놓은 그물에 비유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으로 삼은 글에서, 그가 거미의 입을 빌려 말하고 있는 세상의 그물이 바로 그것이다.

 

오호라! 기린은 붙잡을 수 없고 봉황은 유인할 수 없듯이, 군자는 도리를 알기에, 오랏줄에 묶여 감옥에 있는 것이 재앙이 될 수 없소. 아무쪼록 이것을 잘 보시고 삼갈 것이며 힘쓸지어다! 스스로의 이름을 팔지 말고 스스로의 재주를 함부로 자랑하지 말며 이익을 추구하다가 재앙을 부르지 말고 재물 때문에 죽지 마시오. 스스로 똑똑한 채 망령되이 굴지 말고, 남을 원망하거나 시기하지 마시오. 땅을 잘 가려서 디딜 만한 곳인지를 알아본 뒤 발을 내디디고, 때에 맞추어 갈 때 가고 올 때 오도록 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세상에는 훨씬 큰 거미가 있으니 그 그물은 내가 쳐 놓은 경계 정도가 아니고 훨씬 크다오.”

이 선생이 그 말을 듣고, 지팡이를 던져 버리고 세 번이나 자빠질 정도로 허겁지겁 문간에 이르러 문에 자물쇠를 채우고는, 바닥을 굽어보면서 비로소 한숨을 쉬었다. (78~79, ‘선생, 세상의 그물을 조심하시오(蜘蛛賦)’)

 

이 글의 행간을 가만 들여다보면, 비록 가난하고 불우하지만 세상의 그물에는 포획 당하지 않은 자신의 청빈한 삶에 대한 자부심이나 안도감보다는 타고난 개성과 재능을 맘껏 펼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경직되고 고루한 세상에 대한 경계와 한탄이 더 크게 느껴진다. 이처럼 당시 세상을 지배하고 움직였던 세상의 그물, 즉 봉건적 이데올로기의 근본적 오류와 크나큰 결함에 대해서 이옥은 무력감과 더불어 깊은 반감을 지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성격이나 기질이 이를 드러내놓고 지적하고 비판하는 정공법을 구사할 정도로 강인하거나 담대하지는 못해서, 그의 글에서는 대부분 간접적이고 소극적이고 우회적이고 역설적인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세 들어 사는 방에서 종이 창 구멍으로 엿본 세모(歲暮)의 시장 광경을 상세히 묘사하면서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상품들을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나열하고 있는 시장(市記)’이라는 글에서처럼, 때로는 글의 의도를 전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해체적인 방식으로 이러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별다른 이의 없이 받아들이고 있듯이, 문학이란 순전히 세상을 교화하거나 혁신하는 계몽의 도구만도 아니요 그렇다고 스스로 즐기며 기뻐하는 자기만족으로서의 향유의 수단만도 아니라는 것이 진실이라고 한다면, 이옥은 바로 그러한 참다운 문학을 실험한 최초의 인물이 아닐까 여겨지기도 한다. 옮긴이가 이 책의 머리말에서 이옥을 두고 조선시대에 등장한 진정한 문인’, 또는 봉건사회의 질곡에서 벗어나 참다운 개성을 글 속에 담아내려고 했던 실험적 작가라고 높이 추켜세우고 있음은 이 때문이다.

 

한번도 관직에 오르지 못해 경세(經世)의 기회를 얻지 못했고 그렇다고 산림에 은거하면서 풍류를 벗삼아 안빈낙도(安貧樂道)를 누리지도 못한 그의 삶이 이렇듯 계몽향유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문인으로서의 남다른 자각을 낳은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의 경우인지는 나로서는 가늠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그의 글에는 주류에서 제외된 소수자 또는 아웃사이더로서의 자신의 삶의 모습이 다양한 형태로 담겨 있다는 사실이다.

 

그가 당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최대 희생자였던 궁녀, 열녀, 기생, 가난한 평민의 어미, 양반 자제로부터 버림받은 중인 처녀 등 기구한 삶을 살아간 비운의 여성들, 나름대로 일가를 이루었으나 세상에서는 그리 알아주지 않는 예인들, 그리고 일반 평민들의 편에 서서 의로운 일을 행한 기인들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가지고, 저잣거리에 떠도는 그들의 이야기를 여러 편 글로 남겼다는 사실이 이를 증거한다. 당대의 현실이 잘 드러나 있어서 마치 간결하게 스케치한 세태 소설을 읽는 느낌이 드는 이러한 패관잡기류의 글들은 이 책에서는 제1부와 제5부에 묶여져 있으며, 4부의 일부도 여기에 해당한다. 이러한 글들은 재미있게 읽히면서도 사회비판적인 면모가 강하게 느껴진다는 점에서 향유보다는 계몽쪽으로 더 많이 기울어 있는 글들이라 하겠다.

 

하지만 문인 또는 작가로서의 이옥의 진면목은 계몽보다는 향유쪽으로 더 기울어져 있는 이 책의 제2부와 3부에 묶인 글들, 그리고 제4부의 일부 글들에서 만날 수 있다. 특유의 섬세하고 풍부한 여성적인 감수성을, 생생한 묘사, 가상의 대화, 구체적 나열 등 다채로운 표현 기법들을 동원해서 문장으로 옮기는데 성공하고 있는 이옥의 개성적인 글들은 오늘날의 웬만한 산문들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현대적이다. 이러한 글들에서 다루고 있는 대상들 역시 일상 속에서 흔히 마주치는 작은 동물들(벼룩, 거미, 개구리, 고양이 따위)이나 생활의 소품들(족집게, 거울, 책 따위)로서 역시 사소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다. 이옥은 사소하고 하잘것없는 이들 존재로부터, 우리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과 굴곡 많은 인생의 무게를 가늠해내는데 참 잘 어울리는 어떤 깨달음을 홀연히 불러내오는 뛰어난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글들은 참으로 맛나게 읽히면서도 그 끝에 가서는 어떤 묵직한 울림을 우리 가슴에 남긴다.

 

선생, 세상의 그물을 조심하시오!’ 라고 정색을 하면서 내게 들려주고 있는 그의 따끔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따스한 봄날,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내가 취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인가? 이옥의 혀가 달린 글에서 퍼져 나와 내 가슴을 아직도 가득 울리고 있는 이 감칠 맛 나는 은은한 글의 울림 때문인가? , 이 울림을 뭐라 부를 것이며 이 취함을 뭐라 불러야 하는가? 이옥이 선물로 받은 책들을 읽으며 취한 것처럼, 나 역시 그의 산문들을 모아 펴낸 이 책에 취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으리.

 

나는 책을 좋아하고, 또 술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거처하는 지역이 외지고 이 해는 흉년이기도 하므로, 돈을 꾸어다 술을 사올 길이 없다. 바야흐로 따스한 봄기운이 사람을 취하게 만들므로 그저 아무도 없고 아무 집기도 없는 빈 방안에서 술도 없이 취할 따름이다.

어떤 사람이 내게 술단지에다가 『시여취(詩餘醉)』 한 질을 넣어 선사하였다. 그 내용은 곧 『화간집(花間集)』과 『초당시여(草堂詩餘)』였고, 편집한 사람은 명나라 인장(鱗長) 반수(潘叟- 潘游龍)였다.

기이하여라! 먹은 누룩으로 빚은 술이 결코 아니고, 서책은 술통과 단지가 결코 아니거늘, 이 책이 어찌 나를 취하게 할 수 있으랴? 그 종이로 장독이나 덮을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그렇게 읽기를 사흘이나 오래 하였더니, 눈에서 꽃(玄花)이 피어나고 입에서 향기가 머금어 나왔다. 위장 안의 비린 피를 깨끗이 쓸어버리고 마음에 쌓인 먼지를 씻어주어, 정신을 기쁘게 하고 온 몸을 안온하게 하여 주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하유(無何有, 이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별천지)의 곳으로 빠져들었다. 아아! 이것이 바로 술지게미 언덕 위에 노니는 즐거움이니, 제구(, 절묘한 시어)에 깃들어 살아감이 마땅하도다.

무릇 사람의 취함이란 것은 어떻게 취하느냐에 달려 있지, 꼭 술을 마신 뒤에야 취할 필요가 없다. 붉은 색과 초록빛이 현란하고 아롱져 있다면, 사람의 눈은 그 꽃이나 버드나무에 취하게 된다. 연지분과 눈썹그림이 태탕(駘蕩, 화창함)하다면, 사람의 마음은 혹 그 아리따운 여인에 취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책이 거나하게 취기가 돌게 하여 사람을 몽롱하게 만드는 것이, 어찌 한 섬 술이나 다섯 말 봉급만 못하겠는가? (…중략…)

나는 모르겠다. 이것이 책인가, 아니면 술인가? 오늘날에 또한 누가 능히 이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125~127, ‘책에 취하다(墨醉香序)’)



c*****t 2010.11.19. 신고 공감 2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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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핀 꽃이 글로 남아 피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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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핀 꽃이 글로 남아 피어나다옛사람들의 남겨진 문장의 행간에서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일에 탁월한 재주를 보이는 작가 설흔의 책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에서 한 사람에 주목한다. 그는 조선 후기 정조 왕 때 사람으로 정조의 문체반정으로 인해 자신의 꿈을 접어야 했던 사람이다. 사실적이면서 개인의 정감을 중시하는 매우 개성적인 시와 산문을 남겼고, 희곡 ‘동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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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핀 꽃이 글로 남아 피어나다

옛사람들의 남겨진 문장의 행간에서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일에 탁월한 재주를 보이는 작가 설흔의 책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에서 한 사람에 주목한다. 그는 조선 후기 정조 왕 때 사람으로 정조의 문체반정으로 인해 자신의 꿈을 접어야 했던 사람이다. 사실적이면서 개인의 정감을 중시하는 매우 개성적인 시와 산문을 남겼고, 희곡 동상기도 지었다. 그의 산문은 친구 김려가 엮은 담정총서에 수록되어 전한다. 바로 이옥이 그 사람이다.

 

이옥(17601815)은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필두로 당시 새롭게 대두되는 사회적 흐름에 기반하여 자신의 감정과 의지를 이전 시대와는 다른 글로 고스란히 담아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태학사 발간 선생, 세상의 그물을 조심하시오에는 심경호 교수에 의해 번역된 이옥의 글은 5부에 걸쳐 스물아홉 편이 실려 있다. 책의 말미에 원문도 포함되어 있어 한자가 자유로운 사람에겐 더 유용한 책일 것이다.

 

그는 과거에 대비해서 연습하던 ''도 산문의 문체로 훌륭하게 부활시켰으며, 일반 민중들이 관청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소지(장첩狀牒)도 인간관계의 실상을 반영하는 허구적 요소를 지닌 산문으로 멋지게 사용하였다. 불경의 어조를 패러디하여 자신의 인생관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그는 봉건사회의 질곡에서 벗어나 참다운 개성을 글 속에 담아내려고 하였던 실험적 작가였다.”

 

이옥에 대한 일반적 평가를 반영한 글이라 생각된다. 이옥은 출사를 하지 남겨진 흔적이 적어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다. 다만, 그가 남긴 글을 통해서나마 만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그러더라도 남겨진 글을 통해 그의 사람됨이나 감정과 가치관을 알 수 있기에 그나마 다행이라 여겨진다.

 

그의 글은 사실적 묘사가 탁월하다. ‘시장이나 흰 봉선화에 대한 글을 보면 단어의 나열만으로도 충분히 대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그 나열이 다분히 의도된 글쓰기의 일환이었다는 점이 특징으로 다가온다. 이는 예리한 관찰력을 요구하는 글이기에 이옥은 사물에 대한 애정이나 현실 사회에 대한 지극한 관심이 있었다는 반증도 된다. 그 바탕에는 백성들의 일상에 대한 관심과 삶의 애환을 측은지심에서 바라보는 마음일 것이라 여겨진다.

 

땅을 잘 가려서 디딜 만한 곳인지를 알아본 뒤 발을 내디디고, 때를 맞추어 갈 때 가고 올 때 오도록 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세상에는 훨씬 큰 거미가 있으니, 그 그물은 내가 쳐 놓은 경계 정도가 아니고 훨씬 크다오.”

 

가미의 입을 빌어 자신을 경계하는 글로 보인다. 어쩌면 자신이 걸린 세상이라는 그물에 옥죄어 살았을 이옥의 삶이 그대로 담겨있는 듯하다.

 

이 책은 이렇게 좌절당한 자신의 꿈을 글을 쓰면서 살았던 이옥이라는 사람에 대해 조금은 더 깊은 이해를 할 기회를 만들어 준다. 숨어 있는 문장가 이옥, 못다 핀 꽃이 글로 피어나 세상과 만난다.

m*****8 2016.09.06.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