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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때였나 중딩때였나, (아님 고딩때였나?-_-;;;) 하여간 머나먼(?)옛날 일요일이면 EBS에서 '고전'이라 불릴만한 옛날 영화를 해주곤 했었는데, '야구 중계가 없다면' 대부분의 경우 아버지와 함께 그런 영화들을 시청했던 터라 적지 않은 '고전 영화'를 관람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원채 오랜 시간(?)이 지난 터라 대부분의 영화는 제목조차 기억이 없지만 그 와중에 단 하나, 바로 '제3의 사나이'라는 영화의 '제목만큼은' 기억이 난다. 아니, 사실 제목 뿐만이 아니라 몇몇 장면들도 기억이 난다. 오스트리아의 대관람차, 웬지 모르게 어두우면서도 매력적이었던 배경, 오손 웰스(맞나?)의 정말이지 소름끼칠 정도의 갑작스런 등장 등등등. 내용이 확실히 기억나진 않아도 영화장르가 스릴러물이었다는 것은 아직도 기억이 나고, 굉장히 재미있게 봤었기에 언젠가 한번 다시보고 싶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문예출판사에서 얼마전 그 영화의 원전소설이 번역되어 나왔다길래 아쉬운 김에 구입해 읽게 되었다. 전후 미-영-프-러 4개국에 의해 분할통치되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빈(당시 빈은 독일로 치자면 베를린과 비슷한 유형의 분할통치를 받고 있었던 것 같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본 소설은 명목상 3류 서부극 소설가, 실질상 백수(?)인 '롤로 마틴스'가 절친한 친구인 '해리 라임'으로부터 초청을 받고(사실은 일거리를 부여받고) 빈에 입국해 갖가지 알수없는 일들을 겪게되고, 그러한 이상한 일들을-구체적으로는 해리의 죽음(?)으로 인해 촉발된-마틴스가 순전히 '우정'과 '정의감'에 불타서 투박하지만 날카롭게 파해쳐가는 것이 기본적인 스토리다. 따지고보면 본 소설은 일종의 추리물이고, 나름 극적인 반전(?)도 있는 터라 내용을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것은 독자가 '될'분들을 위한 예의가 아닌 것 같기에 내용에 대한 서술은 여기서 줄이고 감상으로 바로 넘어간다면. 우선 주인공 캐릭터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본서 뒤의 해제에 보면 마치 본 소설이 선과 악의 뚜렷한 대립을 기반으로 서술한 것처럼 설명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점에 대해 다소 의문스럽다. 주인공인 롤로 마틴스는 저자 말마따나 어색한 세례명인 '롤로'와 완고한 네덜란드식 성(姓) 사이의 갈등(?)에서 보여지듯 '결정 불가능한'인물이다. 굉장히 단순하고 무조건적인 충성만을 하는 사람인 것처럼 보이면서도 순진하고 정의로우며, 무뚝뚝하고 경우가 없으며, 무식한 것처럼 보이지만 따뜻하고 절도있으며 날카로운 면모도 종종 보인다. 이는 그의 정신적 지주이자 친구인 해리 또한 마찬가인데 한 여자를 포함하여, 적지 않은 친구들이 그를 죽고 못살 정도로 따르게 될 정도로 매력적인 인물이지만 알고보면 잔혹하고 무책임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캐릭터들은 소설을 더욱 흥미있게 만들고 있으며, 사실상 본 소설의 재미의 근본적인 기반(?)이 되고 있는 듯 싶기까지 하다. 아울러 '해리'에 대한 등장인물들의 태도에 대해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이 부분도 혹여 스포일러(?)가 되지 않을까 싶어 압축적으로 감상을 적자면) 해리의 일탈에 대한 슈미트의 반응과 마틴스의 반응은 비슷하지만 결국 상이한 선택을 한다. 따지고보면 양자의 태도 모두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어떤것이 옳은 행동이었을까? 사람이 하는 일이 늘상 그렇듯 둘의 태도 모두 아쉬움은 남는다. 하지만 그런 태도 외에는 방법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소설은 마치 '영화화'되는 것을 예정한 것 같이 느껴질 정도다. 롤로 마틴스가 자신의 필명(마틴 덱스터)으로 인해 겪게되는 해프닝(벤자민 덱스터라는 당대 훌륭한 소설가와 혼동되어 마틴스는 엉겁결에 문화협회 세미나에까지 참여하게 되며-당연하게도-그 세미나를 엉망진창으로 만든다)이나 극적인 반전 순간의 묘사는 독자로 하여금 자연스레 영화적 상황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암튼 본 소설은 기본적으로 '재미있다'. 심심하신 분은 일독을 권함.^^ ps. 문예출판사의 '제3의 사나이'(라고 언급하긴 하겠는데, 국내에 지금 '유통'되고 있는 '제3의 사나이'는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것 뿐이다)에는 그레엄 그린의 또 하나의 소설인 '정원 아래에서 (Under the Garden)'가 수록되어 있다. 삶의 의지를 잃고 있던 주인공이, 자신이 생의 목표의 근원으로 삼아왔던 어린시절 살던 집 정원에서의 경험을 반추하기 위해 옛집으로 돌아와 느끼게 되는 실망감(크고 나서 보니 전부 그저 자신의 헛된 상상의 산물이었더라는)으로 인해, 자신의 지난 삶을 뉘우치게 되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한다는 것이 본 소설의 기본적인 스토리. 이 소설은 '의식의 흐름 기법'을 '노골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어떻게 보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특히 주인공의 어린 시절 정원에서의 경험 부분) 어떻게 보면 심오한 철학서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때문에 다소 지루한 면도 없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주인공이 기존에 자신이 지니고 있던 '희망의 덧없음'을 깨닫게 되어 외려 '삶의 의지'를 갖게 되는 부분이 꽤나 흥미로웠는데 비교적 보수적인(?) 결말을 보면서 뜬금없게도 저자의 만년의 삶이 어땠는지 조금 궁금해지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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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에 비엔나에 가면서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을까 해서 들고 갔던 그레엄 그린의 <제3의 사나이>입니다. 오래 전에 명화극장을 통해서 본 <제3의 사나이>는 마지막 장면만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있어 원작을 읽어보고 싶기도 했던 것입니다. 앙상한 가지가 너무도 추워 보이는 도로 멀리서 다가오는 안나가 길가에서 기다리는 마틴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지나가는 마지막 장면이 충격적이기까지 했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의 비엔나의 분위기는 지금과는 달라도 엄청 달랐을 것이라서 원작의 분위기를 느껴본다는 것이 전혀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유럽을 대표하여 오스만터키에 맞서던 오스트리아제국이 비참한 지경에 빠진 것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터키 등과 함께 연합국에 맞섰다고 패전했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발칸반도를 두고 러시아에게 밀릴 수 없었던 배경이 있다고 합니다. 전후 연합국은 오스트리아 제국의 영토를 분할하고 독일과 분리하는 정도로 마무리를 했던 것인데,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는 오스트리아가 나치 독일에 병합되어 연합국과 맞섰다가 패전을 당했던 것이고, 연합국은 양국의 국토를 분할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독일과 베를린을 동서로 나누어 연합국과 소련이 감시한 것처럼, 오스트리아와 비엔나 역시 소련을 비롯한 미영소 등 4개국이 분할 감시하였던 것입니다. 이 소설의 시기적 배경은 바로 4개국이 분할 감시하던 무렵입니다. 전쟁 후 물자가 부족한 비엔나에서 페니실린을 암거래하면서 폭리를 취하고, 더하여 불량 페니실린을 유통시켜 환자가 죽는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암거래를 주도하는 해리 라임을 수사당국이 뒤쫓고 있는 상황입니다. 주인공 롤로 마틴스는 해리의 어릴 적 친구로 라임 덕에 비엔나를 여행하곤 했던 것입니다. 이야기는 해리 라임의 초청으로 비엔나를 방문한 마틴스는 라임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에 망연자실하게 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라임의 사고현장을 찾은 마틴스는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을 깨닫게 되고 그의 죽음을 뒤쫓기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라임의 애인이라는 안나를 만나게 되고... 극적인 장면은 없지만 해리의 죽음을 뒤쫓는 과정은 추리 스릴러물의 전형을 따르고 있습니다. 마틴스가 해리의 죽음을 캐고 나선 것은 해리와의 우정이 그만큼 순수했기 때문인데, 과연 해리 역시 마틴스에 대하여 순수한 우정을 가지고 있을까요? 하지만 사건을 파고들면서 마틴스는 해리가 자신을 대한 태도가 진실했는가를 되돌아보기 시작합니다. 결정적인 것은 해리가 주도한 페니실린 암거래의 불법성과 비윤리성이 적절한 처벌을 받아야 된다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마틴스는 교통사고로 죽었다던 해리를 만나게 됩니다. 해리로부터 자신을 페니실린 암거래에 가담시킬 생각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해리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지하 하수도로 도망한 해리를 경찰과 함께 뒤쫓고 결국 해리에게 총을 쏘아 맞추기까지 합니다. 마틴스가 해리를 찾아냈을 때 해리가 했던 “지독한 바보야”라는 말은 해리 자신에게 했던 것인지, 아니면 마틴스에게 했던 것인지 작가는 분명하게 정하지 않았습니다. 책읽는 사람의 몫으로 돌리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저는 마틴스에게 했던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돈을 벌 길을 주겠다는데 바보같이 발로 찼다는 의미겠지요. 영화는 원작에 충실하게 전개되었던 것 같습니다만, 마지막 장면만큼은 다르더군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신 분들은 영화도 다시 한 번 보시고, 소설도 다시 한 번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책에는 <정원 아래서>라는 소설이 같이 담겨 있습니다. 주인공 와일디치가 어린 시절을 보내던 윈튼홀에서의 기억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론은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것들이 환상이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데, 저 역시 어린 시절의 기억이 그저 환상이었는지 확인을 해보아야 할 것 같다는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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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은 아마도 2006년 개정판 이전 책인듯 하다.개정판으로 읽지 않았으니 그안에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지점이 있어 혼자 오독의 기쁨을 누렸을뿐이다.^^ 작품의 인물을 누구의 시점에 방점을 두고 싶었을까에 대한 해석도 가능하겠고...혹은 소설의 인물들의 성격에 대한 해석을 어리석음과 대척점을 두고 해석해 볼 수도..있지 않을까...편집자 의도(?)와 상관없이 소설을 처음 읽으며 느낀 감정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난감했던 상황에서 서로 다른 두 표지 덕분에 정리 받은 기분이 들어 오히려 개운한 기분마저 들었다.^^ 조금은 오락성이 가미된 추리소설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읽다가 드는 생각은 예전에 읽다..포기한 적은 없었나 하는 생각이 들만큼 이미 만났던 상황들이 들어 혼란스러웠다. 왜냐하면 이 소설은 추리물인데..순간순간 시간의 흐름 속으로 들어가게 만든다.a 가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b 가 말하고 있고..그런데 사건은 또 뭔가 명확하게 잡히는 것 같지도 않는 기분...변죽만 올리고 있는 것 같은...추리물에 전형적인 스피드함과 두뇌 회전을 마구마구 하지 않고 있음에 순간 갑갑증이 있엇던 모양이다. 이 엄청난(?) 소설을 읽으면서 말이다.그래서 결말이 궁금했다. 이번에도 포기하면 언제 다시 읽게 될지 기약할 수 없어서... 라임의 초대를 받고 빈에 오게된 마틴스라는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라임의 장례식이었다. 이렇게 황당할 수가...그런데 라임의 죽음에 대해 사람들이 뭔가 숨기려는 걸 눈치챈 마틴스..는 스스로 범인을 찾고 싶어한다. 그 마음에는 라임이란 사내에 대한 믿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사건을 가장한 사고인지,그냥 사고인지..알 수 없는 미궁 속으로 빠져 들수록 뭔가 개운치 않은 상황이 마틴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3의 사나이'는 너무 거대한(?) 트릭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타인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잘 속고 있는지에 대한 경고는 아니였을까 "우리는 타인이 우리를 신통치 않은 존재로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욱 신통치 않은 존재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14쪽 " 사람에게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들이 많이 있는 법이예요.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말이에요.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예요.우리는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지녀야 해요"/122~123쪽 다시 표지로 돌아와 생각해 보면, 로트렉의 표지 속 남자를 마틴스로 이해해도 될까...진실과 마주하게 되었을 때 믿었던 진실이 거짓으로 드러난다 하더라도,끝끝내 진실을 알아내겠다는 결연한 의지.. 읽는 동안에는 마틴스의 심리를 충분히 따라가지 못했지만..자신이 믿었던 무언가가 거짓을 넘어 악마를 보게 되었다면...그는 진실을 찾으려 했던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하게 될까... 범인이 누구인가에 너무 집착한 탓에 처음에는 지루함이 있었지만 읽어갈수록 선의 가면을 쓴 악의 무언가를 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그래서 '제3의 사나이'와 함께 실린 '정원 아래에서'는 다음에 읽어야 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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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제3의 사나이]라고만 달았지만, 중편 [제3의 사나이]와 [정원아래서]가 들어있다. 흥미로운 점은, 전자의 작품에 대한 헌사를 동명의 영화감독 캐롤 리드에게 바친것. '캐롤리드에게 존경과 애정을 ,그리고 빈 시 맥심의 집, 카사노바, 오리엔탈에서 보낸 수많은 이른 아침 시간의 추억을 당신에게 바칩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곳에서 무수히 회의를 했고, 그게 작가에겐 참 행복한 추억이었다보다. 당근, BFI (British Film Institute)나 AFI (American Film Institute)의 100대 영화중 언제나 상위에 랭킹되도록 (고전영화음악 컴필레이션 음반에 지터로 연주한 테마곡이 실리는데다) 그의 작품을 잊지못하게 만들어주었으니까.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어떤 부분은 영화가 더 낫고 어떤 부분은 원작이 낫다는 생각이 들지만, 결론적으론 영화가 원작을 뛰어넘은 경우 (원작보다 영화가 더 좋았어요)가 되어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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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사나이 하면 오손 웰스가 나왔던 영화를 떠올리게 되기 마련이다. 웰스 선생이 악역으로 나와 스위스 뻐꾸기 시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은 오랫동안 영화 관련자에게 회자되는 명장면이니까. 아쉽게도 원작에는 그 대사가 없지만, 영화 전편에 흐르던 정조는 원작에도 동일하게 가져가고 있다. 그레엄 그린 선생은 첩보소설의 아버지 같은 양반으로 이외에도 다양한 첩보소설을 쓴 건 알고 있었는데 그것 말고도 순문학도 손 대셨다는 건 작품 해설을 보고 알았다. 큰 출판사에서 장르소설 낼 때 꼭 하는 변명 같은 건데 작가 선생이 원래 순문학도 하셨고 어쩌고저쩌고.... 이제 그런 소린 안 했으면 좋겠다. 책이 재미있으면 됐지 출신성분이 중요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