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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프에 대해 떠도는 이야기는 단 하나뿐이다. 종소리와 개의 침. 하지만 조건반사에 관한 유명한 실험으로 세상에 알려진 파블로프는 그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파블로프가 최초로 노벨생리학상을 받았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가 식욕에 관한 연구가 아닌 소화계에 관한 연구로 그 상을 받았다는 사실은 대중에게 널리 인식되지 못했다. 파블로프는 여전히 조건반사로 유명한 인물이다.
파블로프에게 영향을 미친 과학자들은 거의 대부분 생리학 진영에 포진하고 있었다. 파블로프 자신이 외과의사이기도 했고, 당시 베르나의 영향으로 생리학에 기초한 실험의학이 태동하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이상한 점이 아니다. 또한 파블로프가 살던 시대는 실험심리학의 태동기이도 했다. 파블로프가 가장 즐겨 읽었고 완전히 암송하기도 했던 책은 조지 루이스의 <공동생활의 생리학="">이었다고 한다. 루이스는 <마음의 물리적="" 기초="">로 유명한 실험심리학의 개척자 중 한명으로, 그의 책 <공동생활~>은 지금으로 이야기하면 대중과학서에 가깝다. 이 책에 그려진 소화기관의 해부도가 파블로프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이 후 그의 과학적 사고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이토록 복잡한 기관이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작동하는지에 관한 연구에 평생을 바치게 된다.
러시아의 유명한 반체제 인사이자 유명한 생리학자였던 세체노프에 의해 파블로프가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회자되기도 한다. 세체노프는 인간의 자유의지란 존재하지 않으며, 스스로의 의지로 내렸다고 믿는 결정들도 사실은 모두 ‘반사(reflex)''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1863년 출판된 <뇌의 반사="">에서 그는, 우리 신체에 존재하는 엄청난 수의 반사와 억제 기작이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주장했는데, 이 주장 자체에는 별반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이렇게 경험을 통해 형성된 반사와 억제반응의 네트워크가 그 사람을 결정하며, 결국 좋은 행동을 하는 사람은 좋은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좋은 기계라고 주장했다. 여기까지도 생리학에 근거한 설명으로 파격적이기는 했으나 당시 정권에 위협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나쁘게 행동하는 사람을 비난할 수 없다고 과감하게 주장했다. 그 근거로 그는 그들은 그렇게 만들어진 기계일 뿐이며, 과오는 그들을 그렇게 만든 사회에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공정하고 친절한 사회는 ’좋은 기계‘만을 훈련시킬 것이기 때문이었다. 세체노프에게 있어 러시아에 ’나쁜 인간 기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러시아 사회가 변할 필요가 있다는 증거였다. 동방정교회와 차르 체제 지지자들은 세체노프를 강력하게 비판했으며 결국 그는 당국과 학교와의 많은 마찰로 인해 파블로프와의 만남을 이루지 못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을 떠나게 된다.
세체노프에게 있어 인간의 행동은 심리학적 요인보다는 생리학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파블로프의 연구는 항상 심리학적 ‘욕구’라는 한 과학자의 목표에 의해 주도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소화관을 연구하던 순수한 생리학적 연구 속에서도 지인들과의 편지를 통해 언젠가는 인간의 영혼과 정신에 관한 연구를 하고 싶다는 의지를 표현하곤 했다. 그가 그러한 연구를 바로 시도하지 않은 것은 이를 연구하기 위한 마땅한 과학적 방법론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개의 식욕이 위액의 분비를 촉진할 수 있다는 연구를 기반으로 노벨생리학상을 수상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한 외과적 실험은 잔인할 정도로 과학적이고 또 잔인할 정도로 동물학대적이다. 동물보호협회와 파블로프의 관계도 재미있는 주제이지만 여기서 다루지는 않는다. 그는 정말 식욕이 개의 위액 분비를 촉진시키는 것인지, 아니면 음식물이 위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그러는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음식을 먹을 수는 있지만 음식이 위에는 도달하지 못하도록 개를 수술했다. 이렇게 수술된 개의 위에도 삽관을 시도해서 위액이 밖으로 흘러나오게 했다. 이런 수술을 통해 그는 식욕이 개의 위액 분비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다양한 음식에 의해 분비되는 위액의 차이를 조사하기 위해 ‘작은 위’를 만드는 실험을 수행했고 이 정교한 수술법을 배우기 위해 다양한 나라의 외과 의사들이 파블로프의 실험실을 방문했다고 한다. 그는 치온의 실험실에서 생리학적 실험기법을 배웠다. 치온은 끌로드 베르나의 제자이다. 치온은 당시 세포학의 부흥으로 이루어진 ‘축소주의적’ 관점에 동의하지 않던 과학자였다. 치온의 영향으로 파블로프도 소화기관의 연구는 세포 수준이 아닌 소화기관을 통해 연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이처럼 축소주의적 유행에 빠지지 않았던 것이 파블로프가 실험심리학의 선구자로 불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었을런지도 모른다. 여하튼 파블로프는 베르나로부터 시작된 생리학적 전통에서 일했지만, 동물의 활동의 근원적인 기저에는 생리학적 원인보다 심리학적 원인이 더욱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세체노프와 파블로프의 생각이 갈리는 지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파블로프의 스승 치온과 파블로프 자신도 급진주의자인 세체노프와 정치적인 노선을 달리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보수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지독하게 이념적이지도 않았다.
많은 현대 생리심리학자들이 회고하듯이 파블로프가 현대 심리학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생리학적 전통에 서 있었으면서도 ‘심리학적 욕구가 생리학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는 데 있는 것이다. 파블로프가 노벨상 수상연설에서 이제는 연구의 주제를 소화에 대한 생리학적 연구가 아니라, ‘소화기계에 깃든 영혼‘에 관한 것으로 바꾸었다는 말을 한 이후부터 파블로프가 진정으로 원했던 연구가 시작된다. 따라서 많은 이들이 파블로프를 조건 반사로만 기억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그가 정신활동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고뇌했던 문제들, 즉 정신활동을 과학적으로 다루기 위해 선결되어야 하는 문제들에 대한 고민은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파블로프 자신인 그의 실험실에서 정신활동을 연구하려는 연구자들에게 벌을 주기도 할 정도로 엄격했기 때문이다. 그가 정신활동에 관한 연구를 과학적으로 시도할 수 있다고 여긴 계기는 ’침샘‘이 정신적인 변화에 민감하며, 침샘에서 흘러나오는 침의 양을 측정함으로서 객관적인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파블로프는 개의 기분을 알아내기 위한 방법으로 ’감정‘이 아닌 ’침‘을 선택한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과학적 사고의 은유!뇌의>공동생활~>마음의>공동생활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