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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명,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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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기의 반이 지나가도록 우리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텍스트를 파고들고 있다.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참 대단한 사람들이구나라는 생각과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참 무모한 일이었구나 싶다. 예언자처럼 현대의 인간과 정치에도 잘 들어맞는 그들의 주장을 볼 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어떤 분야에도 다리를 걸치고 있는 철학이라는 분야를 볼 때 두려움마저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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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기의 반이 지나가도록 우리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텍스트를 파고들고 있다.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참 대단한 사람들이구나라는 생각과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참 무모한 일이었구나 싶다. 예언자처럼 현대의 인간과 정치에도 잘 들어맞는 그들의 주장을 볼 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어떤 분야에도 다리를 걸치고 있는 철학이라는 분야를 볼 때 두려움마저 느껴지는 것이다.

 

특히 '서양고중세철학' 시간에 교수님께서 "왜 플라톤은 글을 대화편으로 남겼을까?"라는 질문을 하셨는데 한참 생각하며 지내다가 다른 책에서 답을 발견했다. 고대에는 글의 힘보다 말의 힘을 믿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것도 말 속에 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생각을 글로 남기면 이미 그 힘이 퇴색된다고 믿었고, 글을 남기던 소피스트들을 무시했단다. 대화 속에서 변증법적으로 발견해가는 지혜를 추구했던 것이다. 여기 저기서 파편적으로 듣던 그들이 했던 이야기를 책으로 읽으면서 이런 맥락에서 이 이야기가 나왔구나 싶어 반갑기도 하고 깜짝 놀라기도 한다. 상황과 맥락이 있고 대화편으로 되어 있어 마치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듯 읽기가 어렵지 않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통해 결국 소크라테스를 죽인 사람들이 어리석었다는 생각을 한다. 예수님의 희생이 그랬듯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그의 지혜를 완성시켰는지도 모르겠다. '향연'을 통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본다. '역사철학연구' 시간에 기억과 상상에 대해 고민하면서 기억은 인간의 머리 속 기억보다 훨씬 넓은 범위임을 생각한다. 우리 유전자나 무의식에 새겨진 인류 전체의 기억까지도 포함한다. '향연'에는 가멸적 존재이지만 불멸하고 싶어하는 인간이 육체적 생존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불멸하려고 하는 시도들이 나온다. 명예롭게 이름을 남기거나 작품을 남기는 식으로 말이다. '에로스'가 어떤 곳에 어떻게 구현되느냐에 따라 우리는 단순히 후세를 남길 수도 있고, 이름이나 작품을 남길 수도, 소크라테스처럼 사람들의 지혜 속에 살아남을 수도 있겠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o****2 2010.04.17. 신고 공감 1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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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신념에 의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소크라테스의 변명
"자신의 신념에 의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소크라테스의 변명" 내용보기
점점 소크라테스의 깨달음에 존경심이 드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무지의 지. 이 얼마나 대단한 말인가. 조금의 책을 읽다보면 남들보다 많이 읽는다고 아는 척을 하지만 좀 더 많이 책을 읽다보면 도대체 내가 읽은 책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이 빙산의 일각이라고나 할까. 이러면 무지의 지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터넷 서점에서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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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소크라테스의 깨달음에 존경심이 드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무지의 지. 이 얼마나 대단한 말인가. 조금의 책을 읽다보면 남들보다 많이 읽는다고 아는 척을 하지만 좀 더 많이 책을 읽다보면 도대체 내가 읽은 책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이 빙산의 일각이라고나 할까. 이러면 무지의 지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터넷 서점에서의 책 소개를 보면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소크라테스가 신을 믿지 않고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이유로 고발당한 뒤 법정에서 설파했던 변론을 통하여 진리와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과 경종을 사실적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향연에서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라는 형이상학적 이데아론의 근원으로서 사랑을 규정하고 가장 가치 있는 것이며 이상적인 것으로 나아가는 구체적 행위의 원동력임을 밝히고 있다고 한다.

 

월 듀란트가 쓴 철학이야기의 플라톤 편에서는 나이 70세의 소크라테스가 독약을 마시는 장면을 정말 그림같이 보여주고 있다. 간수가 말하는 것처럼 다른 죄수들은 독약을 마시라고 하면 화를 내고 저주를 하는데 소크라테스는 그렇지 않다(철학이야기 월 듀란트 지음 황문수 옮김 25쪽).

 

소크라테스는 변명에서 철학의 최초의 순교자는 자유로운 사상의 권리와 필요성을 선언하고 국가에 대한 자기 자신의 가치를 주장하고 항상 경멸해 온 군중에게 자비를 애걸하는 것을 거절했다. 군중은 그를 용서할 권한을 갖고 있었으나 그는 애소(哀訴)는 떳떳한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했다(철학이야기 월 듀란트 지음 황문수 옮김 24쪽).

 

여러분! 나에게 체면은 별도로 치더라도 재판관에게 청탁한다든가, 그 청탁으로 무죄 처분을 받는다든가 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가르쳐서 설득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재판관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까닭은 다만, 옳고 그름을 판별하기 위해서일 뿐 사사로운 감정을 편파적으로 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그는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을 편애하는 일 없이 법에 따라 재판하겠다고 서약했으며, 여러분도 그 서약을 깨는 습관을 갖게 해서는 안 될 것이며, 여러분 또한 스스로 그런 습관이 몸에 배게 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 모두 신을 공경하지 않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81쪽).

 

그러나 이제 끝을 맺을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제 가야 합니다. 나는 죽기 위해서, 여러분은 살기 위해서. 그러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앞길은 어느 쪽이 더 좋은지 오직 신만이 알 것입니다(104쪽).

 

소크라테스는 죽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후대의 그리스도의 죽음과 비교된다고 한다. 두 경우 모두 속물적인 군중들이 정통적 가르침에 따른다는 명분으로 벌인 희생양 제사에 자발적으로 죽음의 희생제물이 되었다(교양 디트리히 슈바니츠 지음 인성기 외 옮김 80쪽).마지막 내용에서 보듯이 자신의 신념에 의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소크라테스는 정말 위대한 사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향연은 아가톤이 전날 비극 경연에서 우승한 것을 자축하기 위해 친구들을 초대한 축하연에서의 주당(酒黨)들의 주연에 관한 보고서이다. 이 주연의 참석자들 중에는 아가톤, 아리스토파네스, 파이드로스, 파우사니아스,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앉아 있었다. 글의 내용을 보면 남성과 남성간의 사랑이 많이 나온다. 이런 사랑은 그리스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사제지간의 정신적 교류의 일부로 유행했다(교양 디트리히 슈바니츠 지음 인성기 외 옮김 79쪽).

 

작품해설에서도 체육을 장려하고 외적의 침입에서 나라를 방위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자연히 약한 여자에 대한 사랑보다 남성간의 사랑을 존중했던 것으로 본다고 하고 있다. 아름다운 소년이란, 신체의 구조가 조화를 이루고, 그 재기(才氣)와 지력(知力)이 외모에 못지않게 뛰어난 자를 가리키며, 이러한 아름다운 소년을 잘 교육시키면 장차 국가의 유용한 인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아름다운 소년을 사랑하게 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여자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히 남성 사이의 애정을 존중하였다고 할 수 있다(248쪽).

7*****0 2008.08.05.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