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제대할 무렵, 싸이월드의 미니홈피를 모르면 순도100% 복학생 취급을 받았었다. 너도나도 미니홈피를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침대도 사고 가구도 샀다. 그곳은 사이버 공간의 방이었다. 사람들은 방을 꾸미듯 미니홈피를 꾸몄다. 하지만 내게 미니홈피는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미니홈피의 안에 사람들은 모두가 행복하다. 항상 웃고 있다. 방도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사람들은 미니홈피를 통해 ''난 세상에서 정말 행복한 사람이야''를 내세우고 있는 듯 했다. 실연당한 후 전 여친의 싸이를 보고 눈물을 훔치는 이가 늘어났다. 미니홈피는 자신의 생을 가장 아름답고 수준높게 꾸며주는 공간이다. 그렇다면 그 가식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답은 하나다. 미니홈피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간이었다는 사실. 이로 인해 미니홈피에는 진실성이 희박해 보인다. 그렇다면 진짜 우리 방은 어떠한가. 방은 나를 오롯이 드러내는 공간이다. 내가 생활하는 곳이다. 오직 나만을 위한 공간이다. 내 생활과 인생이 방 곳곳에 스며든다. 그래서 친한 친구나 연인의 방에 가면 그 사람의 성향이나 특징을 예측할 수 있다. 방에는 나의 진실이 숨쉬고 있다. 그 진실은 아름답기도 추하기도 하다. 그러나 상관없다. 나만을 위한 공간이기에. 나를 완전히 드러내주는 공간이기에 사람들은 자신의 방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데 박래부 기자가 작가들의 방을 차례로 침공(?)했다. 물론 건축학적 의미를 찾기 위해 방을 침공한건 아니다. 방은 작가들을 소개해주는 매개체로 사용됐다. 방을 통해, 방의 장식물을 통해, 방에 있는 책들을 통해 우리는 작가의 숨결을 느끼고 그들의 삶을 인식 할 수 있었다. 사실 난 이 책을 특별한 생각 없이 집어 들었다. 하지만 어떤 인터뷰집보다 이 책은 진실됐다. 방을 통해 작가의 삶과 생각을 몰래 훔쳐본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서 난 <작가의 방="">이 참 좋았다. 작가의 방에는 6명의 작가가 나온다. 이문열, 김영하(사실 김영하는 빼야한다. 교수연구실과 방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 교수연구실은 누구나 드나드는 공간 아니던가.), 강은교, 공지영, 김용택, 신경숙이 그들이다. 각각의 작가마다 개성이 뚜렷했다. 그래서 각 장을 읽을 때마다 느껴진 감흥도 천차만별이었다. 먼저 이문열. 한 때 진보 세력이 생각하는 공공의 적이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 방에는 사회에서 드러나는 이데올로기나 가치 등은 없다. 모든 이데올로기 위에 존재하는 인간만 있을 뿐이다. 이문열의 방에 보수꼴통은 없다. 그저 거장의 숨결이 방 곳곳에 뿜어져 있다. 어린 시절 겪었던 아버지의 추억, 지식에 대한 열의, 수많은 책 등이 서재를 지배하고 있다. 소설에 대한 열정도 여기저기를 장식하고 있었다. 정치적으로 싸우면서 생긴 상처도 살며시 모습을 드러냈다. 선비 특유의 검소함과 담백함도 느낄 수 있었다. 김영하는 빼고. 다음 작가는 강은교. 강은교 시인의 방은 평범해 보인다. 교수라면 의당 있을 서재도 뚜렷한 특징이 없다. 방이 좀 지저분한거? 그건 오히려 교수 서재의 전형 아닌가. 그냥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방이다. 그의 서재 처럼 강은교 시인 역시 평범해 보였다. 이 말은 칭찬이다. 강은교 시인은 문학가들 특유의 우월의식이 없어 보였다. 그저 강의하고 시 쓰고 쓴 시를 딸에게 보여주고 시 낭송의 밤에 참가하는 옆집 이웃 같았다. 모든 시인이 랭보다란 생각은 지독한 선입견이었다. 그래서일까. 강은교 시인은 다른 작가에 비해 유달리 시의 대중화를 강조했다. 그래도 서재에 한 가지 특징이 있다. 은포. 그곳은 그냥 창터이다. 하지만 시인이 가끔 창을 내려다 보기 위해 또는 책을 읽기 위해 앉는 공간이다. 거기서 시상을 떠올리기도 하고 지친 몸을 쉬기도 한다. 즉 강은교 시인만의 휴식처다. 거기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작가의 사진을 보면 ''참 착하다''란 말이 떠오른다. 연신 땀을 흘리는 저자에게 미안해하는 시인의 모습에서 그의 서재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강은교 작가와 공지영 작가의 방은 참 대조적이다. 강은교 작가의 방이 조맹부의 수묵화를 연상시킨다면 공지영 작가의 방은 에공쉴레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그만큼 공지영 작가는 정말 치열한 삶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 속에 엄청난 열과 에너지를 품고 사는 사람 같았다. 그 에너지를 원동력으로 노동운동을 했으며 소설을 쓰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고풍스럽게 보이는 조용한 방은 공작가의 에너지를 간신히 틀어 안고 방안의 정적을 유지하고 있는 듯했다. 공지영 작가의 세세한 노동운동 설명을 통해 난 그 어떤 역사서적 보다 더 가깝게 80년대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또한 공지영 작가의 방황하던 젊은 시절 이야기도 가슴으로 읽을 수 있었다. 김용택 시인도 독특하다. 왜사냐면 웃지요란 시구가 떠오르는 삶을 살고 있었다. 한 반에 3명인 학급의 담임이다.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는다. 창 밖에는 섬진강이 흐르고 있으며 사계절마다 모습을 바꾸는 산들이 텅빈 배경을 채우고 있다. 그곳에 김용택 시인이 있다. 조선시대 세력가들이 김용택 시인의 모습을 본다면 저런 지독한 귀양살이는 없을 것이다란 말이 나올 수도. 하지만 도시에서 살기 위해 하루하루 살고있는 내 눈에, 김용택 시인의 삶은 이태백의 행복을 향유하는 그것이었다. 그냥 읽는 순간 그렇게 사는 것도 참 행복하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그의 서재는 세 곳이 소개된다. 그 중 고향집 서재가 김용택 시인과 가장 닮아있다. 책꽂이가 없어 레고처럼 수북히 쌓여있는 책들. 그 책들 안에 있는 책상에서 책을 읽는 시인. 내 방이 곧 나다란 말이 다시 한번 떠오른다. 신경숙 시인과의 인터뷰는 시원찮은 것 같다. 내용이 앞의 것들에 비해 부실한 감이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내 방은 얼마나 나를 표현하고 있을까란 생각을 했다. 과연 내 방에도 내가 있을까.작가의> |
| 내게 있어 머뭇한 고통을 들라면 책을 좋아하는 나를 보고 우와 하는 타인을 두 말 없이 꼽겠다. 예전의 난 그저 책을 읽는 행위 자체를 좋아했으나 그것은 어느새 책을 소장하는 즐거움을 아는 경지에까지 지극히 우연적으로 확대되었다. 나는 책을 사랑하고, 책을 모으는 일에 흥미가 있는 그저그런 인간이다. [작가의 방]의 표제와 표지를 본 순간 쳐드는 무언가를 다스리기엔 나는 너무 지쳐 있었다. 무료한 내게, 잘 드러나거나 공개되지 않은 작가들의 일상 생활이나 생각을 엿보고 싶은 욕구는 언제나 도사리고 있었던 거대한 음모 같은 것이었다. 그 기대는 [작가의 방]을 구입하면서 곧 채워질 작은 구멍이기도 했다. 유명한 여섯 작가와 시인들의 원산지이자 터전은 하나같이 특별하면서도 소박한 곳에 있었다. 그들의 명성에 거대한 서재는 너무나 어울렸고, 당연한 그것들에 난 지독하게 저린 질투를 느껴야만 했다. 하나하나 찾아가 직접 구경하는 그들의 공간, 서재에서 직접 듣는 그들의 이야기는 사소하지만 결코 그렇지만도 않았다. 약간은 상업적인 목적으로 이루어졌을지 모를 기획의 한 모퉁이에 올라 앉아 있으면서도 내내 감탄하고 있었으니 꼭 나쁘다고만도 할 수 없는 행복한 사치일지도 모를 행위였다. 작가와 시인들이 걸어온 방대한 길을 설명할 가장 결정적 근거는 그들이 가진 거대한 서재의 역사뿐이었다. 하나같이 빽빽하다 못해 웅장한 느낌까지 주는 그들의 공간을 나는 시샘하고 부러워했다. 그들의 서재를 엿보는 느낌은 즐거움 자체이자 고통이다. 나는 결코 가지기 힘든 것이었으니까. 여행을 떠나지 못해 타인이 쓴 여행기를 읽으며 간접적 즐거움을 맛보려는 누군가처럼, 내겐 그들의 방이 곧 엑스터시이자 삶의 혼란스러움이었다. 당연한 자리에 차지한 고전은 물론, 역사, 인문, 철학, 자연과학, 사회과학을 망라한 잡학다식의 책 수천권이 바로 그들의 든든한 영양분이자 생활철학이자 문학적 상상력의 원동이었음을 새삼 뼈저리게 느꼈다. 사실 뭔가 특별한 비법이 그들을 최고의 문인으로 만든 것도 아니었다. 그들만의 지독한 열망속 고독한 몸부림이 바로 지금 보는 서재에서 발동하는 것이라 믿기 시작하자 내 머리속의 새가 끊임없이 맴도는 듯한 몽롱한 느낌속에 빠진다. 어느 곳에서나 학자의 냄새가 물씬 느껴지는 이 시대 최고의 창작인들의 방에서 나는 수면제를 한아름 집어 삼킨 것과 동일한 환각을 맛보았다. 어느새 거대한 서재 속에서 부드러운 왈츠 스텝을 밟는 나를 발견하고는 부끄러워 머리를 숙인다. 진심으로 통째 삼키고 싶은 이문열의 방, 현재 우리과 교수로 늘 소녀의 모습 그대로이신 스승님 강은교의 방, 낭만과 감성이 고스란히 들어찬 공지영의 방, 특유의 젊은 감각의 그대로 살아있는 김영하의 방, 시골 체취와 인간내가 물씬 풍기는 김용택의 방, 수줍고 어렴풋한 여인의 모습의 여운이 가득한 신경숙의 방에서 나는 인생 최고의 천국을 맛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누군가의 방과 생각을 엿보는 일이란 역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고통스런 이중 변주곡일지도 모른다. |
| 사람들이 위인전을 읽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위대한 인물의 일상 혹은 어린 시절에 너무나도 평범하거나 그 이하의 행동들을 간접 경험하면서 위대한 인물도 나보다 못한 면이 있구나 라는 안도감을 가지려는 이유가 그 중 하나라고 한다. 잡지의 뒷면에 나와있는 편집 후기를 읽거나, 여러 사람들이 모였을 때 특정인 혹은 유명인의 뒷담화가 즐거운 건, 그 자체가 흥미롭기도 하지만 뭔가 공식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그 이면의 노력들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리라. 우리나라에서 꽤 유명한 작가들의 방을 일러스터와 사진작가를 대동하고 들이닥쳐서 이런 저런 인터뷰를 진행하는 가운데, 이 작가의 방에는 도대체 어떤 책들이 꽂혀 있을까를 엿보는 작업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주제이다. 예전 내가 알던 친구 중의 하나는 그 사람이 어떤 책을 읽는가에 따라 사람에 대한 평가를 했다고 했다. 물론 이 친구가 내 방에 한번 와서는 잡다하기 그지 없는 내 책 목록을 둘러보고선 "도무지 모르겠다" 라고 항복했지만 말이다. 아마도 저자인 박래부라는 사람은 꽤 영향력이 있는 사람인 것 같다. 많은 작가들이 선뜻 자기 방의 구경을 허락하기가 쉽지 않을 테니 문학작가에게 중요한 사람임에는 틀림없으리라.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고 나서 사실 뭔가 개인적인 부분을 엿보았다기 보다 잘 포장된 결과물을 보는 느낌이었다. 책장 어디에선가 B급 영화 비디오테이프를 발견한다던가, 만화책들이 굴러다닌다거나 뭐 이런 게 사람 사는 세상 아닌가? 작가들은 이슬만 먹고 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잘나가는 작가들의 방을 구경한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특히 이문열의 엄청난 서재는 부럽기 그지 없다. 그리고 일러스트레이션으로 그린 서재의 구성도 등은 독특하고 흥미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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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물론, 작가의 방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인테리어 잡지가 하듯은 아닙니다. 글쓴이의 개성도 충분히 드러나 있고, ''서재''라는 외형 못잖게 작가의 내면의 풍경을 묘사, 혹은 서술하는 대목도 많습니다. 그래서 야금야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이 책에서 상당히 ''실용적''인 힌트도 많이 얻었습니다. ''앞으로 조금 넓은 집에 가 살게 되면, 내 책방을 이러이러하게 꾸미리라'' 하는 것에 관련된 정보들 말입니다. 그래서 사실 독서가 더 유쾌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입니다. 이문열 편을 읽으면서는, 서재는 북향인 편이 좋겠구나 ,했습니다. 그리고 김영하 편에서는, 나도 이베이를 통해서 동남아산 책상이나 유럽제 책상을 저렴하게 사봐야지, 했고요. 또 텔레비전을 책꽂이에 놓아도 되겠다는 아이디어도 얻었고요. 강은교 씨의 창가 공간인 ''은포''는 너무 아늑해 보여 부러웠습니다. 이런 잦아들어갈 공간도 한 조각쯤 필요하겠다 했고요. 공지영의 방을 보고는, 나도 아이들과 서재를 공유할 수 있도록 공간 활용을 해야겠다 했습니다. 내 서재에 아이들 책상도 놓아두는 거죠. 김용택의 2학년 1반 교실을 보면서는, 아이들 그림, 내 그림을 액자로 만들어서 벽에 걸어야지 했고, 그의 전주 아파트에서 베란다 바깥에 책을 뉘어 쌓은 걸 보고, ''앗, 나도 그렇게 해야지'' 싶었어요. 신경숙의 집을 보면서는, 정말 부럽더군요. 특히 서재 가운데 책이 한 권도 없는 그 구석 공간이 맘에 들었습니다.
잘사는 작가들의 번듯한 공간이라고 시샘할 마음은 전혀 생기지 않더군요. 자신들의 공간을, 조금은 부끄러워 하고, 조금은 치장해서 보여준 그들이 인간적으로 보였습니다.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인상깊은구절] 그는 북쪽 서재의 창가로 데리고 가더니 창턱에 걸터앉는다. 바깥 창과 안쪽 창 사이에 반달 모양의 공간이 있다. 한 사람이 올라가 다리를 펴고 앉으면 딱 그만큼의 공간이 남을 정도다.... 창밖에는 뒷산이 아주 가까이 다가와 있다. 그는 창턱에 올라앉는다. 생각 많은 소녀 같기도 하고, 부모에게 꾸중을 듣고 억울함을 삭이는 불량 십대 같기도 하다....그곳은 그에게 하찮은 일상을 버티게 하는 에너지를 주는 공간이다.... 그 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귀엽기조차 한 공간이다. 삶의 쓸쓸함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금방 이해할 수 있는, 삶의 모퉁이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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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아이들이 꼭 있다. "책상 구경해도 돼?" 하면서 다른 친구의 책상에 관심있는 아이들. 내가 그랬다.
책을 읽기 시작하고부터는 책상서랍에서 책장으로 관심이 옮겨졌다. 책장이라고 부르기엔 책 수가 좀 적지만, 그 적은 책들을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고, 그랬다. 작가의 방은, 내가 한참 책을 옮기던 그 날에 만났다.
아쉬운 건, 깊이감이 좀 떨어진다는 거다. 내가 원했던 건, 서재를 어떻게 배치하게 됐는지 왜 이 책은 여기에 두었는지, 그런 거였는데, 너무, 간단하고 짧다.
어떤 책이 좋고 싫고 어느 분야가 좋고 싫고에 대한 이야기도 너무 적다. 작가 개인에 대하 이야기도 어느정도 들어갔으면, 좋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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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맛에 딱 맞는 책을 고르기란 사실 어렵다. yes24에서 한 번 구매할 때마다 4만원 정도로 맞춰 사는데 그 중에서 절반 이상은 부분적인 실망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것은 누구의 탓도 아닐테지만 오프라인에서 구매했던 책들도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기다리다 흘끗 본 책을 사오면 실망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구매는 성공적이었다. 내 입맛에 맞아 아주 재밌게 읽었다. 이 책은 여섯 명의 작가들의 집, 특히 서재를 중심으로 밀착취재한 책이다. 고만고만한 수채 색연필로 그린 구조도도 귀엽고 살가웠다. 극우 성향이 있다고 좀 싫어라 했던 이문열씨의 집과 그의 사제 사랑도 감명깊었다. 공지영의 서재도 그녀답게 아름다웠고 화려한 느낌도 들었다. 김영하나 김용택 역시 그 다운 서재를 가지고 있었다.
서재 뿐 아니라 그들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책과 작가의 삶이 고다분하지 않고 다정하니 읽혀 맘에 들었다. 아직 나의 이렇다할 서재가 없는 관계로 일년에 한 번씩 서재를 생각하며 간간히 뽑아 부분적으로 빠르게 읽는다.
책의 내용 중에서 김용택이 시골에서 어린 시절 보낼 때 겨울방학 동안 도스토예프스키에 매달려 바깥에서 놀지도 않고 책만 읽다 밖에 나오니 내가 보던 세상이 아니였다는 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러면서 큰다는 것에 대해서
블로그에 후기를 적으며 불현듯 다시 읽고 싶어지고 또 서재의 꿈을 디자인해보고 있다. 크크크. |
| 너무도 궁금했던 그들 방의 모습. 더욱이 작가들의 구성이 맘에 들어 단번에 구입한 책. 그들 방의 모습은 익히 내가 갖고 있던 그들의 이미지와 부합하기도 하고 그것을 서서히 깨부수기도 한다. 색이 바라고 헌책 종이의 구슬픈 곰팡이 냄새가 날 것 같은 내밀한 그들만의 방을 활짝 열어젖히고 들여다보자니, 그들의 문학적 인간적 삶의 역사가 보란듯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하지만 무엇보다 한결같이 부러웠던 것은 넉넉한 그들의 삶의 모습. 소위 ''잘 나가는 작가''들이라 경제적인 여유를 어느 정도 누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한 그 실제 현실은 내가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바와 충분히 다를 수 있지만 내가 그 모습들을 보며 꿈을 꿀 수 있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내개 역할을 다했다. 나는 생각한다. von zu an! 조금 늦었지만 말이다. 책을 덮고 난 후 내 방 구석구석 여기저기 쌓여 있는 책들을 보니 정리되지 않은 내 삶을 보는 것 같아 괴롭기까지 하다. 둘쭉날쭉 솟아있는 책들을 뽑아, 그들만의 키높이를 재어주기로 했다. 그 위에 켜켜이 쌓여 있는 먼지의 덮개를 벗겨주기로 했다. von zu an. 조금 늦었지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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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와 책 냄새에 중독되면 한 가지 증세가 나타난다.
이런 증세를 치료하기 위해 만든 책일까.
이문열 작가의 서재는 도서관 수준이다. 책장은 천정까지 높아 사다리까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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