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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문을 위해, 학문을 하며 살아가고픈 모든이들의 필독서
"■ 학문을 위해, 학문을 하며 살아가고픈 모든이들의 필독서" 내용보기
막스 베버는 1917년 독일 뮌헨대학의 진보적 학생단체인 <자유학생연합>으로부터 <직업으로서의 정신노동>에 대한 연속강연회에 초청받아 강연했다. 주제는 <직업으로서의 학문> 강연원고는 베버가 직접 수정 보완하여 출간되었다. 그 후 누구라도 이름은 들어보았을 법한 널리 알려진 강연문이 되었다.    얇지만 강렬한 이 책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읽고 느끼는 바가
"■ 학문을 위해, 학문을 하며 살아가고픈 모든이들의 필독서" 내용보기

 

막스 베버는 1917년 독일 뮌헨대학의 진보적 학생단체인 <자유학생연합>으로부터 <직업으로서의 정신노동>에 대한 연속강연회에 초청받아 강연했다. 주제는 <직업으로서의 학문> 강연원고는 베버가 직접 수정 보완하여 출간되었다. 그 후 누구라도 이름은 들어보았을 법한 널리 알려진 강연문이 되었다. 

 

얇지만 강렬한 이 책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읽고 느끼는 바가 많았다. 필자가 꼭 학자나 교수를 목표로 한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학문연구에서 나오는 결과는 알 가치가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긍정하는 삶의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학문을 주업으로 하는 직업을 가지진 못했지만 항상 동경하는 학자적 삶. 그 이상을 위해 방황하던 지난날(현재까지도)에 이 책을 좀 더 일찍 읽었으면…….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학자가 되는 길의 외적요건인 -능력과 요행- 을 다루면서 담담하게 현실적인 교수와 학자의 모습을 소개한다. 내적요건인 열정과 소명의식을 말하면서 진지하고 냉정한 어조로 학자의 도취와 열정을 소개한다.

 

학문에 문외한인 모든 사람들로부터는 조롱당하는 저 기이한 도취, 저 열정, "네가 태어나기까지는 수천 년이 경과할 수밖에 없었으며", 네가 그 판독에 성공할지를 "또 다른 수천 년이 침묵하면서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은 학문에 대한 소명이 없는 것이니 다른 어떤 일을 하십시오. 왜냐면 열정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만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 page 33~34

 

열정이 아무리 순수하고 깊다고 하더라도 열정만으로는 어떤 학문적성과도 억지로 얻어 낼수 없으며 열정이 만들어내는 <영감>을 얻어내기 위하여 끈덕진 작업이 필요하다는 말 역시 잊지 않는다.

 

베버는 체험이 개성의 본질을 이루며 체험이 개성의 특징이라는 관념이 지배하고 있는 것을 비판한다. 단지 개성을 가지기위해 체험하는 것 이상이 학자에게는 필요하다고한다.

 

학문영역에서는 순수하게 자신의 주제에 헌신하는 사람만이 <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학문 영역에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위대한 예술가치고 자기 일에, 그리고 오로지 자기 일에만 헌신하는 것 이외에 다른 일을 한 예술가를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 page 39

 

끊임없이 자기 일에 헌신하여 자신의 과업에 내적으로 몰두하는 자. 이를 통해 정점에 오르는 순간 과업의 진가를 보여주게 된다고 한다. 이것이 학문영역에서의 개성일 것이다. '남들과 어떻게 다르게 새롭게 할 수 있을까?' '내가 돋보일 수 있을까?' 는 학문의 영역의 개성이 아니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나는 여태껏 어떤 방식으로 학문을 바라봤던 것일까?' 하고 깊은 반성을 하게 된다.

 

주지주의의 이름아래 합리화 과정과 탈주술화를 통하여 근대 학문은 발전되어 왔다. 반면 문화인은 진보과정 속에 편입되어있고, 진보 속에 있는 자 앞에는 계속 또 다른 진보가 놓여있게 된다. 누구도 자신의 죽음의 시점에서 스스로가 진보의 절정에서 있다고 할 수 없게 되면, 문화인에게는 죽음이란 삶에서 의미 없는 사건이 된다. 죽음이 의미가 없기 때문에 문화생활 자체도 의미가 없게 되는데, 문화생활이 스스로 무의미한 진보를 통해 죽음을 의미 없는 것으로 낙인찍기 때문이다. 

 

여기서 '인간의 생활 속에서 학문의 소명은 무엇이며 그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학문이 행복에의 길이 아니라면 직업으로서의 학문의 의미는 대체 무엇일까? 톨스토이는 이와 같이 말했다고 한다. 

 

학문은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학문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 즉'우리는 윤리적-당위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윤리적-당위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문제에 어떤 답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 page 55

 

베버는 학문연구의 전제, 곧 학문연구에서 나오는 결과는 <알가치가 있다>라는 의미에서 중요하다는 이 전제를 내면적으로 긍정하느냐에 따라 개인별로 학문의 궁극적 의미를 수용하거나 거부할 수 있다고 한다. 

 

덧붙여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을 언급하면서 정치는 강의실에서 배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도자나 선동가는 자신의 주장을 집회 같은 비판이 가능한 곳에서 해야 한다. 교수를 상대로 제대로 된 비판을 할 수 없는 학생들 앞에서 자신의 특정한 입장을 강요하는 것은 삼가해야한다는 것이다.

 

탈주술화가 일어나고 종교와 신학이 주도성을 상실한 근대에는 각각의 분야의 학문이 저마다의 가치를 주장한다. 한 분야에 속하게 되면 다른 분야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신이 지고, 새로운 예언자와 구세주를 고대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상황에서 우리는 갈망하고 고대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며 다른 길을 택해야한다는 교훈, 일에 착수하여 일상의 요구를 - 인간적으로 직업상으로 - 완수해야할 것이라며 책을 마무리 짓는다.

 

g****a 2010.09.0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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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가르치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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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록인데다, 번역까지 잘 되어 재미있게 읽었다. 이 강연은 1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 쯤 이루어져, 강연을 둘러싼 사회적 분위기 때문인지, 핵심만을 간명하게 제시하는 모습이 독자인 나의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혼란의 시기에 청년들은 이 대가에게 혼란을 이겨나갈 엄청난 '초식'을 한 수 배우고 싶었을 터인데, 오히려 저자가 청년들에게 제시하는 절대무공의 '초식'은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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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록인데다, 번역까지 잘 되어 재미있게 읽었다. 이 강연은 1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 쯤 이루어져, 강연을 둘러싼 사회적 분위기 때문인지, 핵심만을 간명하게 제시하는 모습이 독자인 나의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혼란의 시기에 청년들은 이 대가에게 혼란을 이겨나갈 엄청난 '초식'을 한 수 배우고 싶었을 터인데, 오히려 저자가 청년들에게 제시하는 절대무공의 '초식'은 아주 기본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자는 내용이라, 이 강연을 듣는 청년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도 궁금하다.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진다. 학자의 조건: 외적 조건은 능력과 운, 내적 조건은 열정과 학문에 대한 소명의식이다. 합리화 과정과 학문의 발전: 서구가 중세의 일원론적 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오자, 오히려 주지주의적 합리주의에 의해 새로운 일신교로 다가가고 있다고 걱정한다. 과학적 합리주의는 사실판단과 할 수 있을 뿐이지 가치 판단은 할 수 없는데, 근대인들은 과학적 합리주의가 둘 다 가능할 것이라고 오판한다. 이 부분에서는 양자물리학의 시대에 사는 나는 정말 과학이 가치 판단을 통한 의미 자체에 대한 정의와 판단이 불가능할까, 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내가 너무 진화생물학과 양자물리학의 세계 속에서 살아서 의문을 갖게 된건가. 모르겠다. 사실 판단과 가치판단: 강단과 정치의 장을 혼돈하지 말라고 한다. 강단에서는 사실 판단을 통한 지식을 학생들에게 전달할 뿐이지 가치 판단을 통한 선생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학생들에게 전달하지 말라고 한다. 또, 저자는 선생은 노력을 통해 정치를 강단으로 불러 들이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글쎄, 여러가지로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다. 무엇이 옳은가? 어차피, 나는 학자가 아닌 이상 무언가 선택을 해야 하고, 그 선택의 자장 내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데, 그 때 나는 이 유보를 계속 선택할 수 있을 것인가?

 

결국, 고전의 많은 역할 중 하나가 우리가 알고 있으나 잊고 있는 것들의 기원을 재탐색하는 것이라면, 이 책의 그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대학을 가서 전공 공부를 하려는 고등학생이나, 대학에서 학문의 길을 갈 것인가 고민하는 학생이나, 삶 속에서 공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고민하는 사람들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g********m 2009.11.0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