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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의 역사 - 마크 마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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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반도의 위치는 간략히 설명하면 서쪽으로는 이탈리아반도와 아드리해를 마주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에게해가 존재한다. 현재 발칸반도의 국가라 하면 그리스, 알바니아,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불가리아가 있으며, 역사적으로는 루마니아까지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은 발칸의 역사이지만, 좀더 쉽게 생각하고자 한다면 당시 유럽쪽에서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고 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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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반도의 위치는 간략히 설명하면 서쪽으로는 이탈리아반도와 아드리해를 마주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에게해가 존재한다. 현재 발칸반도의 국가라 하면 그리스, 알바니아,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불가리아가 있으며, 역사적으로는 루마니아까지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은 발칸의 역사이지만, 좀더 쉽게 생각하고자 한다면 당시 유럽쪽에서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고 있다가 1800년대부터 독립을 한 나라들에 대한 역사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들 국가는 오스만 제국의 약화에 따라 서서히 독립을 이루었지만, 1,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하여 복잡한 정치적인 상황을 겪게 되고, 세르비아 내전이라든지 코소보 내전과 같은 인종 청소가 발생한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지금도 우리 한반도와 더불어 화약고로 불리우는 지역이 바로 발칸지역인데, 이 책에서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시기에서 최근의 시기까지를 다루고 있다. 약 100~200년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들 국가에 대한 책은 국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다가 최근 찾아낸 책이 <발칸의 역사>와 <발칸의 음모>라는 책이다. 사실 <발칸의 역사>는 진작에 크로노스 총서로 나온지 꽤 된 책이지만, <발칸의 음모>는 유고의 외교관 출신이 쓴 책으로서 최근에 발표된 책이었기에 먼저 기존에 구입했던 <발칸의 역사>를 읽어보기로 하였다.


 <프롤로그, 그리고 발칸의 영토와 주민들>

1453년 비잔틴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드 2세에 의하여 점령당하였다. 그 이전에 세르비아는 이미 오스만 제국에 굴복하였으며, 이후 오스만제국은 오스트리아 제국의 빈까지 공격하는 위력을 과시한다. 현재 오스트리아 빈을 생각해본다면 오스만 제국이 빈을 공격하는 동안 발칸제국은 결국 오스만 제국의 통치에 들어갔음을 쉽게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발칸 지역은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받게 되었으며, 이것은 결국 발칸의 주민들이 오스만 제국의 통치에 적응하면서 살아가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오스만 제국은 16세기에는 유럽으로부터 강대국으로 인식되었다. 아니 유럽을 초월한 강대국으로 여겨졌기에, 유럽에서는 오스만 제국을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았다. 심지어 오스트리아 빈은 1600년대 중반까지도 오스만 제국의 공격에 시달릴 정도였다. 이러한 오스만 제국은 이슬람 국가로서 그들의 지배하에 있던 발칸인들은 당연히 피지배인으로서 살아가야 했다. 과거 우리는 '한손에는 칼을, 한손에는 코란을'과 같은 문구를 많이 접하였는데, 이것은 이슬람교를 강제로 개종시키는 것을 뜻하곤 하였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은 강압적으로 이슬람을 강권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스만 제국 내에서 다양한 종교를 인정을 하였기에 이슬람교를 비롯하여 기독교도 역시 공존할 수 있었다. 또한 기독교에서 이슬람교로의 개종도 허용이 되었다. 물론 이슬람교도가 아닌 경우에는 세금 납부에서 불이익을 받긴 하였지만, 어쨌든 다양한 종교가 허용이 되고 있었다. 또한 오스만 제국은 가신들에게 토지의 소유권이 아닌 경작권을 준 것이기 때문에 농민의 존재가 중요하였다. 오히려 유럽의 중세 농노보다 더 적은 세금을 부담하였으며, 그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어느 정도의 배려를 해주었다. 


 그러나, 어쨌든 기독교도들은 피지배 신분이었으며, 지배 계층에 편입하기 위해서는 이슬람교로 개종을 해야 했으며, 농민들도 어려운 삶을 살기에는 다를 바 없었다. 심지어 발칸 지역은 내부적으로 많은 산맥들이 형성이 되어 있어서 그만큼 발전이 더디게 진행되었으며, 당시 유럽의 도시와 비교를 해도 인구수가 상당히 적었다. 이러한 인구는 19세기 중후반에야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도시를 형성하게 된다. 어쨌든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산맥으로 인하여 척박한 지형도 많았으며, 기후도 다양하여 농사 짓기에 부적합 지역도 다수 존재하였다. 그래서, 정부의 골머리를 앓게 한 산적들의 출현이 잦았다. 이들은 농민으로 살기가 어려워지자 산적으로 바뀌었으며, 정부에서도 이들을 제대로 통제할 수가 없었다. 결국 당시의 발칸은 더딘 발전으로 낙후된 지역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나마 그리스 출신의 눈치 빠른 사람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하여 어느 정도 지배 계층으로 들어설 수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기독교도들의 삶은 결코 나아지지 않았다.


 <국가 성립 이전의 발칸>

 몇몇 기독교도 출신의 애국자들은 민족 의식을 고취하고자 노력을 하지만, 결코 쉽지가 않았다. 발칸 지역의 기독교인들은 다양한 민족과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오스만 제국은 이러한 발칸 지역을 완전한 이슬람 영토화를 할 의욕이 없었기에 세금의 부담은 있었지만, 이들이 민족 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오스만 제국의 탄압은 그리 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부적으로 기독교도들간의 통합을 이끌어내기란 쉽지가 않았던 것이었다. 어느 지역에서는 그리스어가 종교를 주관하는 정식 언어이지만, 다른 지역은 슬라브족 언어를 사용하는 모습들은 바로 이러한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스인, 세르비아인, 불가리아인, 왈라키아인, 슬라브인과 같은 다양한 민족과 언어를 기독교라는 종교에 의지하여 통합을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기에 이들의 국가 성립은 쉽지가 않았다. 오히려 기독교 체제보다 오스만 제국의 체제를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오스만 제국은 강제 개종을 시행하지도(물론 고려한 적은 있었다) 않았고, 세금 징수에 큰 문제가 없는 경우라면 심각하게 기독교인들을 통제하지 않았다. 그에 반하여 기독교는 강제적인 측면이 상당히 강하였기에 농민들의 반감을 사는 경우도 많았다. 이러한 다양한 민족과 문화는 이들이 자력으로 국가를 성립하기 위하여 극복해야 하는 요소였고, 1700년대 후반에서 1800년대로 넘어가면서 조금씩이나마 유럽으로부터 전해지는 계몽사상과 혁명의 정신은 조금씩 발칸 지역의 독립을 자극하게 된다.


 <동방문제>

 앞서 발칸 지역의 독립이 결코 쉽지가 않음을 보여주었는데, 18세기 후반부터 슬슬 돌파구가 생기게 된다. 우선 오스만 제국 자체적으로 점차 쇠퇴해져간다는 점이다. 이제 유럽 각국은 오스만 제국이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만만한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다. 특히 러시아는 흑해로 진출하기 위하여 예카테리나 2세때부터 오스만 제국과 세력 다툼을 벌이게 된다. 자신들 스스로 독립할 능력이 없음을 알고 있던 발칸 세력들은 이러한 국제 정세에 촉각을 기울이며 그들의 힘을 이용하여 독립을 꾀하기 시작한다. 세르비아는 러시아에게 군사 개입을 요청하기도 하면서 점차 강대국의 다툼으로 인하여 그들의 국가를 건설할 기회를 꾀하게 된다. 결국 그리스와 세르비아가 각각 국가를 건설하게 되며, 크림 전쟁 이후 오스만 제국은 동네북으로 전락하면서 불가리아와 루마니아를 비롯한 국가들도 서서히 기틀을 갖추어 나가게 되고, 이집트까지 떨어져 나간 오스만 제국은 투르크 혁명으로 인하여 술탄이 물러가고 공화국으로 바뀌게 된다. 이 틈을 노려 세르비아와 그리스왕국은 오스만 제국과 전쟁을 벌이지만, 여전히 오스만은 이들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건재함을 과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이탈리아와의 전투에서도 패배한 오스만 제국을 바라보던 발칸 국가들은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서 1912년 발칸 전쟁을 일으키게 되고, 결국 오스만은 발칸 지역의 영토를 모두 상실한다. 이제 발칸 지역에서 오스만 세력은 완전히 물러나고(물론 이슬람 교도들은 여전히 남아 있었고, 훗날 이들은 인종 청소의 빌미를 제공한다.), 이제 발칸 국가들끼리 세력 다툼에 들어가게 된다. 마케도니아 지역을 두고 불가리아와 세르비아, 그리스 왕국의 연합간의 갈등으로 인하여 그들끼리 2차 발칸 전쟁을 일으키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불가리아는 패배하면서 루마니아,세르비아, 오스만에게 영토를 빼앗기게 되면서 발칸 지역 국가들간의 감정의 골은 깊어지게 된다.


 <국가건설>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발칸 지역의 국가들은 이제 서로의 세력 확장을 위하여 대립을 하게 된다. 2차 발칸 전쟁은 물론이고,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를 놓고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과 갈등을 겪은 세르비아에 의하여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그 이후에도 2차 세계 대전을 고스란히 겪게 된다. 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는 재빨리 독일로 갈아타지만,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독일 편에 들었다가 쿠데타로 인하여 결국 독일의 공격으로 쉽사리 점령당하고, 그리스는 영국의 지원을 믿고 대항하지만, 역시 독일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다. 이후 독일의 패전으로 인하여 이들은 지정학적인 위치로 인하여 소련의 영향을 받게 된다. 이 장에서는 이러한 발칸 지역의 국가들이 어떻게 소련의 영향을 받는지를 다루고 있다. 물론 그리스는 연합국 세력권으로 인하여 독립을 재성취하지만, 공산주의 세력과의 내전과 빈약한 경제 구조(초기 관광 및 경공업 위주로 정책을 수립하였다)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는 과정을 설명한다. 유고는 다양한 민족과 세력으로 나뉘어 있었지만, 티토라는 불세출의 인물의 힘에 의하여 우선 통일된 국가를 형성하고, 소련과의 갈등으로 인하여 소련의 간섭으로부터는 어느정도 자유를 누리게 되었음을 설명한다. 그러나, 티토가 죽은 이후 각각의 연방으로 나뉘면서 서로에게 인종청서와 같은 극단적인 보복으로 인한 갈등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설명한다. 


 대략적인 요약은 위와 같다. 이 책이 크로노스 총서라는 형식으로 작아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허투른 내용없이 알차게 구성되어 있는 느낌을 받았다. 생소한 발칸 지역의 역사를 물론 이 한권으로 다 파악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전혀 알지 못했던 이들 지역의 역사를 어느 정도 파악하기에는 충분한 책이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이들의 역사를 알게 된 것도 사실이지만, 이들 국가가 그들의 역사에서 오스만의 지배를 받았던 부분을 기피하고 감추려는 분위기를 책의 프롤로그를 통하여 읽으면서 역사의 의미를 되새기기도 하였으며, 현재의 발칸 지역의 국가들의 성향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던 책인 것 같다.(교과서에서 루마니아를 동부 유럽의 유일한 라틴족 국가라고 읽은 적이 있는데, 이는 루마니아가 독립 당시 모델 국가로서 라틴족 국가인 프랑스를 참고로 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요약을 한다고 하였으나, 책의 자세한 내용을 통하여 발칸 지역의 복잡한 역사를 한번쯤 접해보기를 권해보고 싶다. 

g*******7 2013.12.2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2015년 1월 16일 금요일 '발칸의 역사' 완독
"2015년 1월 16일 금요일 '발칸의 역사' 완독" 내용보기
지난 학기 도서관 책을 정리하면서 다른 오래된 책들과 함께 지하보존 서고에 들어가기 직전에 빼내온 책이다. 제목을 보자마자 feel이 팍! 꽂혔는데 역사광인 내게도 발칸의 역사는 너무나 생소했기 때문이다. 그간 일과 학교 공부에 치여가며 틈틈이 읽은 '발칸의역사'를 몇 달에 걸쳐 드디어 다 읽었다. 읽으면서 느낀 점은 저자가 이 책을 쓰려고 참 자료를 많이도 찾아 봤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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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학기 도서관 책을 정리하면서 다른 오래된 책들과 함께 지하보존 서고에 들어가기 직전에 빼내온 책이다.

제목을 보자마자 feel이 팍! 꽂혔는데 역사광인 내게도 발칸의 역사는 너무나 생소했기 때문이다.

그간 일과 학교 공부에 치여가며 틈틈이 읽은 '발칸의역사'를 몇 달에 걸쳐 드디어 다 읽었다.

읽으면서 느낀 점은 저자가 이 책을 쓰려고 참 자료를 많이도 찾아 봤다는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은 정말 다양한 곳에서 정말 많은 구절들을 인용했으며 저자가 그만큼 고증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유럽의 화약고라 불리는 발칸은 단순히 인종이나 종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20세기 말 발발한 코소보 사태는 수세기 동안 섞여 살았지만 결코 동화되지 못한 민족주의가 영토를 향한 각국의 이해와 맞물려 폭발한 것이었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전부터 그리스를 비롯한 남동부 유럽은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으며 오스만은 정복지의 국민들을 놀라울 만큼 효율적으로 통치했고 최소한 종교에 관한 한 유럽 기독교의 광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한 관용을 베풀었다.

오죽하면 베네치아 지배하에 있던 아드리아해 연안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주민들이 오스만군이 오자 아예 쌍수를 들고 환영했을까.

 

이책은 발칸의 역사만이 아니라 발칸을 오랫동안 지배한 오스만 제국과 합스부르크 제국을 포함한 유럽 강대국들의 역학관계까지 매우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f********e 2015.01.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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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의 역사를 통해 본 편견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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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화약고"라 불리는 발칸은 극단적 민족주의와 종교분쟁으로 인한 내전과 인종청소라는 잔학행위로 마치 저주받은 땅과 이류인간들이 사는 지역인 것처럼 보여진다. 그러나 그것은 서구인들이 갖는 편견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발칸이 갖는 역사적 특수성과 다민족, 다종교, 다문화의 측면을 고찰하며 한 무리들의 삶의 투쟁기록을 보여주고 있다.   발칸은 역사적으로 로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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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화약고"라 불리는 발칸은 극단적 민족주의와 종교분쟁으로 인한 내전과 인종청소라는 잔학행위로 마치 저주받은 땅과 이류인간들이 사는 지역인 것처럼 보여진다. 그러나 그것은 서구인들이 갖는 편견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발칸이 갖는 역사적 특수성과 다민족, 다종교, 다문화의 측면을 고찰하며 한 무리들의 삶의 투쟁기록을 보여주고 있다.

 

발칸은 역사적으로 로마의 동서분리 후 비잔틴제국의 영토에 속해있었다. 고대이래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지점이라는 지정학적 특성과 그로인한 인종적 다양성이 문화적 다양성을 배가 시켰을 것이다. 또한 오랜기간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은 기간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종교 역시 기독교와 이슬람교, 유대교로 분리시켰다. 그러나 오스만제국 시절만해도 그들에게 다양한 언어조차 커다란 장벽은 아니었다. 민족의 개념이나 국가의 개념이 분명치 않았던 그 시절에는 종교와 민족을 떠나 함께 공존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서유럽의 기독교 문화와 제국주의가 오늘날의 발칸을 만들었다. 이로인해 기독교와 이슬람교간의 경쟁과 투쟁이 발생했고 오스만제국의 쇠퇴와 서구 열강들의 간섭으로 민족주의, 국가주의가 발호해 자신들의 영토를 확보하고 민족적 동일성을 추구하며 분쟁과 전쟁으로 얼룩지게 된 것이다.

 

한국사람으로써 발칸을 이해하기에는 너무나도 다른 역사적 배경때문에 머리속에 쉽게 파악되고 정리되지 않는 점이 많다. 그러나 지구상의 한 지역의 역사를 따라가면서 과연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데에 이데올로기나 종교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의문을 가지게 한다.

y*******0 2007.12.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