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개의 책들은 처음 몇 십 쪽을 읽어보면 어느 정도의 시간을 걸려 독파하게 될지를 가늠할 수 있다. 이제는 한 시대의 고전처럼 되어버린 <세계화의 덫> 같은 경우는 그야말로 공부하는 마음으로 꼼꼼히, 그리고 시간을 갖고 읽게 되는 책이다. <삼국지> 같은 경우는 그 양에 일단 기가 질리면서도 재미 때문에 눈을 떼지 못하고 단숨에 읽어내는 책이다.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같은 책은 세월아 내월아 하며, 읽다 졸리면 자고, 어디까지 읽었는지 까먹으면 대충 앞부분부터 다시 읽어서, 도무지 언제 다 읽을지 알 수 없는 책이다. 또 한 부류의 책이 이번에 읽은 <문화 속의 성>과 같은 경우다. 오래들고 있기가 싫어서 단숨에(대개 하루나 이틀 정도에) 읽어버리고 마는 책이다. 물론 정말로 가치없는 책이라면 읽다가 그냥 아무데나 던져버리고 말지만, <문화 속의 성>은 그렇지는 않아서 그런대로 꼼꼼히 읽어 볼 수 있는 책이었다. 이 책이 의미를 갖는건 대략 3가지 정도였다. 첫째는 시의성 있는 문제의식. 둘째는 섹시한 소제목. 셋째는 작은 얘깃거리들. 근친혼, 낙태, 처녀성, 성 상품화, 정력 만능주의, 자위행위, 동성애, 변태까지 성과 관련해 관심이 갈만한 문제들은 약간 한물간 주제까지 포괄하고 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논의들을 정리하기에는 괜찮은 교재로 쓸 여지가 있다. 하지만 너무나 뻔한 결론에, 그나마 고리타분하고 당위를 강조하는 글쓰기 방식이 흥미를 반감시킨다. 하지만 길어야 다섯 쪽을 넘지 않는 짧은 글의 제목을 뽑는 재주만큼은 높이 살만하다. "앵무새 피가 잘 묻으면 처녀", "크래커 과자는 자위행위 방지용", "자위행위는 왕권에 대한 도전"과 같은 제목들, 정말이지 한번 읽어보고 싶어진다. 이런 섹시한 제목들은 그 안에 그만큼 독자를 끌어들일만한 얘깃거리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섹스의 어원을 설명하면서 나오는 아리스토파네스(몸의 앞은 여자, 뒤는 남자로 이루어진, 그래서 남녀의 사랑을 서로의 '반쪽'을 찾는 행위라고 표현하게 된 사연을 제공한 양성체)의 얘기야 워낙에 알려진 것이라 하더라도, 먹이를 보면 발기하는 보노보 원숭이 이야기나, 여성용 자위행위 도구 발달사가 실은 히스테리(이 말 자체의 어원도 자궁이라니 원 참) 치료를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도 재미있다. 혹 대학 신입생으로서 이제 당당히 성에 관해 즐길 권리와 함께 책임질 능력도 겸비된 자로서, 바람직한 성 지식이 필요한 후배라면 이 책을 한번 권해주고 싶다. 하지만 개방적이고 성에 대해 특별한 터부없이 생활해 온 20대 후반의 남성이라면, 글쎄 이건 그냥 단순히 읽을거리 이상의 평가를 받기는 힘들겠다. |